처음과 처음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한 척 가라앉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아날는지 지켜볼 일인데, 맨 처음 배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사람은 선장이고, 맨 처음 주검으로 나온 사람은 안내원이라고 한다. 맨 처음 배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사람은 다른 이들이 배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나도 돕지 않았고, 맨 처음 주검으로 나온 사람은 끝까지 다른 이들을 돕느라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맨 처음 빠져나와 살아난 사람은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말을 못한다. 맨 처음 주검으로 나타난 사람은 얼굴 사진이 훤히 퍼지면서 ‘똑같이’ 아무 말을 못한다.


  두 사람 모두 ‘1등’이다. ‘1등 만능주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 사람은 저마다 다른 ‘1등’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사람으로 자라야 아름다울까. 우리 어른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을 하고 꿈을 키울 때에 사랑스러울까.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릴 적에 곁님이나 나는 늘 ‘아이들 밥그릇’을 먼저 채워서 밥상에 올린다. 우리 어머니나 장모님도 언제나 아이들 밥을 먼저 퍼서 밥상에 올린다. 왜 그럴까? 왜 아이들 밥그릇을 어른들 밥그릇보다 먼저 퍼서 밥상에 올릴까?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아이들이다. 사랑을 주면서 즐거운 어른들이다. 아이들이 처음에 받고 마지막에 받을 한 가지는 사랑이다. 어른들이 처음에 주고 마지막에 줄 한 가지는 사랑이다. 아픈 마음과 다친 마음에 따사로운 사랑이 깃들 수 있기를 빈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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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손바느질 - 36.5℃ 손바느질 소품 37
송민혜 지음 / 겨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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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옷장에는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떠 주신 스웨터가 아직까지 걸려 있어요.-머리말쪽

제 쓰임이 있는 소품들이라면 아이가 늘 곁에 두고 쓰면서 엄마 사랑을 담뿍 받을 수 있어요.-12쪽

느리게
한 땀 두 땀

빛깔 고르고
바늘땀 더하는 재미

손꽃 핀다.-17쪽

청 자투리를 밑으로 덧대고 위쪽으로는 해진 올을 그대로 살려 수를 놓았더니 꽃 한 송이 곱게 피었답니다.-31쪽

아이는 자르고 엄마는 바느질, 사이좋게 뚝딱.
안 입는 옷과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장식줄.-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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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느질은 언제나 손바느질이었다. 글은 언제나 손글이었다. 빨래도 언제나 손빨래였다. 삶과 사랑과 꿈은 언제나 사람들 스스로 손으로 일구었다. 손질을 하고 손길을 보내며 손빛을 밝혔다.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스스로 놓거나 잃거나 잊으면서 손이 제구실을 잃는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언제나 우리 손으로 빚지만, 이제 손이 아닌 기계를 빌어 모든 것이 태어난다. 마음이 있으면 손이 아닌 발로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사랑을 담은 마음이라면 손이 아닌 기계를 쓰더라도 아름답다. 《처음 손바느질》은 바느질 가운데에서도 ‘손바느질’을 노래한다. 바느질노래라고 할까. 시집살이 아닌 ‘시집노래’이듯, 살림살이를 ‘살림노래’로 가꾸면, 이런 예쁜 책이 태어날 테고, 예쁜 책을 읽는 사람들 가슴에는 예쁜 씨앗이 자랄 테지.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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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손바느질- 36.5℃ 손바느질 소품 37
송민혜 지음 / 겨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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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75) 존재 175 : 존재하지도 않는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최승자-즐거운 일기》(문학과지성사,1984) 88쪽 〈시인〉


 존재하지도 않는

→ 있지도 않는

→ 드러나지도 않는

→ 나타나지도 않는

→ 보이지도 않는

→ 없는

 …



  말을 빚는 시인입니다. 말을 가꾸는 시인입니다. 시인은 한 마디 두 마디 알뜰살뜰 보듬어 말빛을 밝힙니다. 시인이 쓴 ‘존재’라는 낱말은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내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있다’와 ‘드러나다’와 ‘나타나다’와 ‘보이다’를 모두 나타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말 ‘있다’를 쓰더라도 다른 느낌을 아울러 담아요. ‘보이다’를 쓰거나 ‘드러나다’를 쓸 때에도 다른 느낌을 함께 담습니다.


  한자말 ‘존재’를 써야만 깊거나 너르지 않아요. 시인 스스로 ‘있다’라는 낱말을 깊거나 너르게 다룰 수 있습니다. ‘보이다’나 ‘나타나다’라는 낱말을 새롭게 가다듬어 한결 환하게 선보일 수 있어요. 4347.4.17.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정작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라는 뼈를 / 그러나 시인은 삼켰고


‘실(實)은’은 “실제로는, 사실대로 말하자면”을 뜻합니다. ‘실제(實際)로’는 “거짓이나 상상이 아니고 현실적으로”를 뜻하고, ‘현실적(現實的)’은 “현재 실제로 존재하거나 실현될 수 있는”을 뜻하며,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합니다. 이래저래 살피면 모두 돌림풀이입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실은’을 ‘곧’이나 ‘그러니까’나 ‘알고 보면’이나 ‘가만히 따지면’이나 ‘정작’이나 ‘참으로는’이나 ‘참말로는’이나 ‘이 땅에는’ 같은 말마디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시간의 뼈를”은 ‘-의’를 손질해서 “시간이라는 뼈를”이나 “시간에 있는 뼈를”로 손볼 만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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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꽃 한가득 터지다



  모과꽃이 한가득 터진다. 나무 곁에 서면 꽃내음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아이들은 뒤꼍을 오르내리면서 민들레 꽃대를 꺾어 씨앗을 후후 날리거나 갓꽃을 꺾어 꽃놀이를 하곤 한다. 아이들은 키가 작아 모과꽃을 올려다보기 만만하지 않지만, 꽃내음은 어디에나 살랑살랑 퍼지니, 아이들 몸에도 모과빛이 흐를 테지.


  먼저 터지고 나중 터지는 꽃을 바라본다. 숱한 꽃송이가 한꺼번에 노래하다가는, 일찍 터진 꽃은 살며시 지고, 새로 터지려는 꽃이 새삼스레 노래한다.


  나무 곁에 서면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나뭇가지마다 터진 꽃송이를 바라보면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맑게 트인 하늘빛을 먹고, 싱그럽게 부는 바람을 먹는다. 나무가 자라는 흙땅이 폭신폭신하다. 4347.4.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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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4-17 18:06   좋아요 0 | URL
모과꽃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파란놀 2014-04-17 18:28   좋아요 0 | URL
갑갑하거나 아픈 일을
이 고운 모과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