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틈바구니 나무

  일산에서 택시를 타고 인천으로 간다. 고속도로는 여러 도시를 가로지른다. 창밖을 내다보니 공장이 줄짓는다. 아 온통 공장이네, 하고 생각하는데, 길이 막히고, 저쪽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내 눈으로 들어온다.

  공장은 무엇이고, 나무는 무엇인가. 공장 사이에 있는 나무는 무엇이고, 나무가 우거진 곳에 있는 공장은 무엇인가. 나무 한 그루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또 보고 다시 본다. 푸르면서 파랗고, 맑으면서 고운 바람이 살살 분다. 이곳은 고속도로가 아닌 숲이로구나.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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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35] 길찾기



  네 식구가 함께 택시를 타고 경기도 일산에서 움직입니다. 나는 작은아이를 안고 앞자리에 앉습니다. 문득 내 눈에 한 가지가 들어옵니다. 어라, 택시에 붙은 ‘네비게이션’ 기계에 한글로 ‘내비’라 적혔네? 피식 웃습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큼큼 재채기를 하면서 목소리를 고른 뒤, 택시 일꾼 아저씨를 부릅니다. 택시 일꾼 아저씨하고 ‘네비게이션’과 ‘내비’ 이야기를 나눕니다. 택시 일꾼 아저씨는 ‘네비’인지 ‘내비’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ㅓ’인지 ‘ㅐ’인지 모를 뿐더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네비’게이션 기계에 적힌 ‘내비’라는 낱말이 틀린 줄 느끼지 않은 셈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그러게요. 처음부터 ‘길찾기’라고 하면 이렇게 ㅓ와 ㅐ를 틀리지도 않고, 더 알아듣기 좋았을 텐데요.” 택시 일꾼 아저씨는 내 말을 듣고서 “그래, ‘길찾기’라고 하니까 바로 알겠네요. 그 말 좋네.” 합니다. 우리는 왜 ‘길찾기’로 나아가지 못할까요. 왜 한국말사전에 아직 ‘길찾기’라는 낱말을 안 실을까요.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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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고

꽃을 사람들이 보고

꽃은 마음마다 스미고

꽃과 노래가 흐르고

꽃으로 사랑을 그리고

꽃이랑 어깨동무하고

꽃같이 웃고

꽃하고 이 길 걷는

바람 한 줄기



4347.6.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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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블랙홀 - [할인행사]
해롤드 래미스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영화 〈사랑의 블랙홀〉은 꽤 오래된 작품이라고 한다. 언제 극장에 걸쳤는지 살펴보니 1993년이다. 그렇구나. 1993년이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이네. 그때에 나는 영화는 아예 쳐다보지 못한 채 살았는데, 그무렵에 나온 영화이니 볼 수 없고 알 수 없었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2014년에 비로소 본다. 2014년에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몹시 아팠다. 나야말로 ‘늘 똑같은 하루’를 굴레로 만들어서 쳇바퀴를 도는 모습 아니었는가. 나는 아직 스스로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는 사랑’을 안 바라보았구나. 나는 언제부터 ‘늘 되풀이하는 똑같은 굴레’를 조용히 내려놓고는, 내가 만든 내 덫에서 나 스스로 풀리면서 ‘새롭게 열며 웃는 삶’을 가꿀 수 있는가.


  사랑을 하기에 하루가 흐른다. 흐르는 하루는 ‘늙음’이나 ‘나이’가 아니다. 흐르는 하루란 언제나 사랑이다. 하루가 흘러서 이틀이 된다. 이틀이 흘러서 사흘이 된다. 하루와 이틀과 사흘은 늘 같다. 늘 같으면서 새롭다. 영어로는 〈Groundhog Day〉인 영화를 왜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잘못 붙였을까? 아무래도 이 영화를 수입해서 배급한 이들 모두 이 영화를 제대로 못 읽고 ‘늘 똑같은 틀을 되풀이하는 굴레와 덫’에 사로잡혔는가 보다. 깨어나지 못하는 하루를 빗대는 말 ‘그라운드도그(마멋)’을 ‘블랙홀’로 빗댈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빗대어도 맞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면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할 만한다. 그래, 우리 스스로 읽기 나름이다. 제대로 보면 늘 다 본다. 제대로 보지 않으니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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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책


  책은 늘 새롭게 읽는다. 그러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책읽기란 새롭게 읽기이기에, 새롭게 읽는다고 느낄 때에 책읽기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누구라도 새롭게 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책을 손에 쥐고 펼쳤으나 ‘새롭다’고 느끼지 못하면, 책읽기가 아니다. 책을 손에 들어 한 장 두 장 넘기는 동안 ‘새롭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책읽기하고 자꾸 멀어진다.

  하루에 아홉 시간이나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아홉 차례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은 아홉 시간에 걸쳐 아홉 차례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가르치면서 웃는다고 한다.

  나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 늘 새롭게 쓴다. 나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늘 새롭게 읽는다. 아이들은 만화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어떻게 보는가. 늘 새롭게 본다. 아이들은 영화 〈말괄량이 삐삐〉를 어떻게 보는가. 늘 새롭게 본다.

  새롭게 보는 동안 하루를 새로 연다. 새롭게 보지 못할 적에는 날마다 늘 똑같이 되풀이한다. 새롭게 보는 동안 사랑을 새로 가꾼다. 새롭게 보지 못할 적에는 날마다 늘 똑같이 되풀이하기에 툭탁질이 그치지 않는다. 4347.6.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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