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13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3



보고 지어서 함께하는 사랑

― 동물의 왕국 13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5.25.



  2010년부터 지네와 한집에서 삽니다. 비가 자주 내려 축축한 날이면 으레 지네가 나타납니다. 보일러를 돌려 집안을 덥히면 지네는 스스로 밖으로 나갑니다. 되게 커다란 지네가 나오는 날이 있고, 조그마한 지네가 나오는 날이 있습니다. 이럭저럭 지네와 살았구나 싶은데, 엊저녁 지네가 처음으로 내 오른발을 타고 올라와서 발끝을 깨뭅니다. 처음에는 살짝 따끔하다 싶어 모기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발가락이 살짝 간지럽습니다. 뭔가 하고 발을 드니 지네입니다. 어라, 이 아이가 왜 내 발가락을 감고 올라왔을까. 발을 툭툭 털어 지네를 떨굽니다. 지네는 볼볼 기어 어디론가 숨습니다.


  지네는 내 발가락을 왜 물었을까요. 지네는 내 발가락을 문 뒤 어디로 갔을까요. 지네한테는 우리 집이 어떤 터전일까요. 이곳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기 앞서부터 지네가 살았을까요. 지네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목숨들이 이곳을 저희 삶터로 삼아서 살아왔을까요.



- “그곳의 자료로 인간의 역사를 봤다! 인간이 얼마나 전쟁을 되풀이했는지! 그때마다 얼마나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루었는지! 역시 내 생각이 옳았다. 동물은 서로를 죽임으로써, 가장 머리를 쓰고, 가장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그리고 그 동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최악이다.” (26∼27쪽)

- “너 같은 게 있어서, 이 세상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거야! 글로뷸! 저런 천박한 자가 가진 천박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천박한 무기에 질 네가 아니다! 천박한 저 녀석의 생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옥뿐!” (33쪽)




  모기는 사람한테 내려앉아 피를 빱니다. 모기는 피를 빨아서 이녁 목숨을 잇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모기를 보면 잡아서 죽입니다. 요즈음은 약을 뿌려서 죽입니다. 왜 모기는 사람 피를 빨아먹으려 하고, 왜 사람은 모기를 보면 몽땅 죽이려고 할까요. 파리가 지구별에서 사라지면 지구별은 쓰레기로 넘쳐서 망가질 테니 파리는 지구별에 알맞게 있어야 할 텐데, 모기는 지구별에서 먹이사슬을 어떻게 지키는 구실을 할까요. 모기가 모두 사라지면 지구별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모기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잠에서 깨면, 나도 잠에서 깨어 모기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들은 모기를 잡을 때까지 다시 잠들지 못합니다. 나는 모기가 물거나 말거나 그냥 자곤 하지만, 모기가 문다 싶어도 모기가 물 만한 자리를 손으로 슥슥 비비면서 잡습니다. 내 피를 조금 내주고 잡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나와 달리 아이들은 모기 소리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어버이로서 내가 밤에 할 일은 아무튼 모기를 때려잡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에는 오줌기저귀를 가느라 밤잠을 못 이루었고, 오줌기저귀를 뗀다 싶으니 밤오줌을 누이느라 밤잠을 못 이루더니, 밤오줌을 이럭저럭 잘 가린다 싶은 요즈막에는 밤에 틈틈이 모기를 잡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더 크면 밤에 어떤 일을 맞이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모기란 참말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 “글로뷸의 데이터 수집 완료. 또한 녀석의 전멸 패턴을 완성했다.” (74쪽)

- “어떤 종교든 이 천국에는 ‘죽은 후에만’ 갈 수 있지. 이게 네게 내는 문제야. 종교는 살아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가르침인데, 어째서 죽은 후에만 갈 수 있는 곳에, 천국을 만들었을까?” (84∼85쪽)





  물을 마시면 물은 내 몸이 됩니다. 골짝물을 마시면 골짝물은 내 몸이 됩니다. 냇물을 마시면 냇물은 내 몸이 됩니다. 수돗물을 마시면 수돗물은 내 몸이 됩니다. 소주를 마시면 소주는 내 몸이 됩니다. 막걸리를 마시면 막걸리는 내 몸이 됩니다. 찻물을 마시면 찻물은 내 몸이 되지요.


  자동차가 끝없이 오가는 도시에서 숨을 쉬면, 자동차 배기가스는 내 코를 거쳐 몸으로 들어와 내 숨결이 됩니다. 핵발전소 둘레에서 살며 숨을 쉬면, 방사능이 내 코뿐 아니라 살갗을 거쳐 몸으로 들어와 내 숨결이 됩니다. 광산에서 탄을 캐는 일을 하면, 탄가루가 코와 살갗으로 스며들어 내 숨결이 될 테고, 시골 밭자락에서 일을 하면, 흙내음과 풀내음이 코와 살갗으로 스며들어 내 숨결이 될 테지요. 그런데, 시골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비료를 치면, 농약과 비료가 내 코와 살갗으로 들어와서 내 숨결이 됩니다.


  아픈 사람은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을 꾸준히 몸에 넣었기 때문입니다.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을 꾸준히 몸에 넣은 다음, 이를 털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 아픈 사람은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을 몸에 안 넣습니다. 몸을 아프게 할 만한 것이 몸에 들어왔어도 다시금 몸 바깥으로 내보내면 됩니다.


  누구나 이녁 삶을 스스로 짓는데, 누구나 이녁 몸과 마음 또한 스스로 짓습니다. 아름답거나 튼튼한 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아름답거나 튼튼한 몸이 되도록 짓습니다. 아름다움이나 튼튼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몸이 어떻게 되든 생각을 쏟지 못합니다.



- “넌 자각하지 못했겠지만, 신은 네게 ‘생명을 주는 힘’을 맡겼다. ‘샐러드 우동’, ‘루크’. 네가 만든 키메라는 자아와 진짜 생명을 가졌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키메라를 연구하고, 생명을 연구해도 이룰 수 없었던 위업을 넌 이루어낸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모든 생명을 죽이려 했던 네게, 신은 ‘생명을 주는 힘’을 맡기다니.” (93쪽)

- “일레인! 이 별을 파괴해선 안 돼! 이 별은 사랑스러운 생명으로 넘쳐나고 있어!” (150쪽)

- “일레인, 생명을 알아 줘! 빼앗기 전에 그 생명의 아름다움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159∼160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셋째 권을 읽습니다. 이제 이 만화는 곧 끝이 납니다. 열넷째 권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권을 앞둔 열셋째 권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다른 목숨을 빚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나와 너 사이에서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도록 하는 삶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왜 새로운 목숨을 너와 나 사이에서 빚으려 할까요? 내가 그러모은 돈을 물려주려고? 내가 지은 집을 물려주려고? 내가 쌓은 이름을 물려주려고? 우리는 왜 너와 나 사이에 새로운 목숨을 빚을까요?


  언제나 오직 하나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누린 삶을 사랑하기에 새로운 목숨을 빚습니다. 너와 내가 아름답게 하루하루 누리면서 가꾸었기에 사랑으로 새 목숨을 빚고 싶습니다.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 새로운 손길로 이 땅을 한결 아름답고 튼튼하게 돌보면서 가꾸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목숨이 자라면서 새로운 눈길로 이 땅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 “주어지지 않았다면, 만들면 돼.” (111쪽)

- “쿠오우의 울음소리를 들어! 사랑해. 일레인.” (132∼133쪽)

- “그렇다면 마음대로 파괴해. 직성이 풀릴 때까지 부수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넌 정말로, 태어난 의미를 잃게 될 거야.” (162쪽)

- “그건, 네 몸이 엄마보다도 깊은 사랑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이야. 그런 네 몸이, 쿠오우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이게 온기라는 거야.” (180∼181쪽)




  지구별에 평화가 깃들려면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지어서 아름답게 하루를 즐기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별에 평등과 민주와 자유가 넘실거리려면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어떤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지어서 사랑스레 하루를 누리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삶을 이루고, 생각이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생각이 있을 때에 삶과 사랑이 있습니다. 생각이 없이 이끌리기만 한다면 삶도 사랑도 없습니다. 쳇바퀴를 돌거나 수렁에 갇히거나 기계 부속품이 된다든지 노예처럼 부려먹힐 때에는 삶과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생각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아이들한테서 생각을 빼앗습니다. 입시지옥은 아이들이 생각을 못하게끔 가로막습니다. 입시지옥이 끝난 뒤에는 취업이라는 그물이 있어, 다시금 생각을 가로막습니다. 돈을 벌지 않으면 굶어서 죽는다는 잘못된 지식을 사람들한테 심으니, 사람들은 이러한 굴레에 사로잡혀 그만 생각을 잊습니다. 돈을 버는 쳇바퀴로만 나아가고 말아, 스스로 지을 아름다운 삶과 사랑을 잃습니다.


  살아갈 뜻을 스스로 찾을 때에 살아갑니다. 살아갈 뜻을 스스로 찾지 못하다면 노예이거나 기계 부속품일 뿐입니다. 4347.8.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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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집



  며칠째 마을 깜고양이 한 마리를 똑같은 데에서 본다. 마을 깜고양이는 여럿인데 살집이 아주 많아 토실토실한 녀석이 이웃 신기마을 어귀 버스터 걸상 밑에서 지낸다. 이 깜고양이는 왜 이곳에서 지낼까. 아니, 이 깜고양이는 왜 이곳에서 자주 마주칠까. 어쩌면 우리 서재도서관 풀밭에서 잠을 잘는지 모른다. 이곳은 농약을 아무도 안 치는 풀밭이니, 깜고양이로서는 먹이를 찾기에 무척 좋을는지 모른다.

  어제 낮에는 한참 낮잠을 즐기는 깜고양이를 본다. 오늘 낮에는 새앙쥐 한 마리를 우걱우걱 뜯어서 먹는 깜고양이를 본다. 어제도 오늘도 깜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어제는 졸린 눈으로 꿈뻑꿈뻑 쳐다보다가 귀찮다는듯이 저쪽으로 갔고, 오늘은 밥을 맛나게 먹으면서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 신나게 쥐를 뜯어먹는다.

  마을고양이 가운데 몇 마리는 우리 집 광에서 산다. 마을고양이 가운데 몇 마리는 우리 집 뒤꼍 풀밭에서 산다. 그리고 이 깜고양이는 우리 서재도서관 풀밭에서 사는구나 싶다. 마을고양이한테 먹이를 챙겨 주는 일은 드물지만, 깜고양이한테는 우리 집이 지낼 만하면서 먹이를 곧잘 얻을 수 있는 넉넉한 터이지 싶다. 비가 오면 비를 긋는 처마가 있고, 풀밭은 더운 여름에 시원하며, 한겨울에는 볕이 잘 드는 데에 있다가 보일러방 둘레에서 새근새근 잠을 잘 테지.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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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아니다. 철이 든 사람은 나이가 어려도 어른이다. ‘어른’은 나이로 따지지 않는다. ‘철’로 따진다. 철이 들 무렵부터 비로소 슬기를 깨우친다. 철이 들지 않으면 슬기를 가꾸지 못한다. 철이 들어 스스로 생각을 깊고 넓게 다스릴 때에 슬기롭게 삶을 보듬는다. 그러니까, 나이를 먹어 혼인을 한 뒤 아이를 낳는대서 어른이 되지 않는다. 철이 안 들면, 나이를 먹어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철없는 사람’으로 지낸다. 철이 들면, 혼인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더라도 ‘철든 사람’이기에 슬기로운 어른으로 삶을 빛낸다. 시집 《코끼리 주파수》를 읽는다. 이 시집을 쓴 사람은 어른일까 아닐까. 이 시집을 쓴 사람은 철이 들었을까 안 들었을까.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철이 들지 않을 적에도 시를 쓸 수 있을까. 철들지 않은 채 쓰는 시와 철이 들고 나서 쓰는 시는 어떻게 다를까. 철없는 눈으로 이 땅을 바라본다면 어떤 시를 쓰고, 철든 눈으로 온누리를 헤아린다면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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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주파수
김태형 지음 / 창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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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1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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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28) 분하다扮


여기 걸린 그림은 〈로빈 후드로 분한 페인 씨〉이며, 제작 연도는 1839년이다

《수전 데니어/강수정 옮김-베아트릭스 포터의 집》(갈라파고스,2010) 117쪽


 로빈 후드로 분한 페인 씨

→ 로빈 후드로 꾸민 페인 씨

→ 로빈 후드로 차린 페인 씨

 …



  외마디 한자말 ‘扮하다’는 ‘분장(扮裝)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분장하다’를 찾아보면 “배우를 꾸미다”를 뜻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분하다’이든 ‘분장하다’이든 한국말로는 ‘꾸미다’라는 뜻입니다.


  한국말이 따로 있는데 굳이 외마디 한자말을 끌여들여서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옛날부터 쓰던 대로 쓰면 되고, 아이들한테는 한국말을 알맞게 가르치면서 물려주면 됩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온 보기글 “이십 대의 아가씨이지만 분장이 잘되어 사십 대의 여자처럼 보였다”는 “이십 대 아가씨이지만 잘 꾸며서 사십 대 여자처럼 보였다”나 “스물 남짓한 아가씨이지만 잘 꾸며서 마흔 남짓한 여자처럼 보였다”로 손질해 줍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여기 걸린 그림은 〈로빈 후드로 꾸민 페인 씨〉이며, 그린 해는 1839년이다


“제작(製作) 연도(年度)”는 “만든 해”로 고쳐써야 올바르지만, 이 글월에서는 “그린 해”나 “그린 때”로 손질해 줍니다.



 분하다(扮-) = 분장하다

 분장(扮裝)하다 : 등장인물의 성격, 나이, 특징 따위에 맞게 배우를 꾸미다

   - 이십 대의 아가씨이지만 분장이 잘되어 사십 대의 여자처럼 보였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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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 피터 래빗의 어머니
수전 데니어 지음, 강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환경책 읽기 64



삶을 짓는 길이 푸른 꿈

―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수전 데니어 글

 강수정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0.5.7.



  나는 도시에서 살 적에 그리 푸른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우리 서재도서관(사진책도서관)’을 잘 건사하는 길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길도 아름다운 꿈이라 할 만하지만, 늘 이 언저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작은아이가 태어날 무렵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이렇게 살면서 꿈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돌아봅니다. 돈을 얻거나 이름을 거머쥐는 일도 꿈이라면 꿈이 되지만, 이러한 꿈에서 머물 때에는 꿈이 아니요, 날마다 새롭게 이야기를 지어 즐겁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될 때에 비로소 꿈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 시골의 친척집을 찾을 때마다 베아트릭스는 느낌을 기록하고, 집안의 공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스케치에 담았으며, 동식물과 화석의 세밀화를 그렸다 … 사람들은 벽장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결혼예복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액면 가치가 없다고 해서 낡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  (14, 19쪽)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한테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녁은 ‘옛날로 돌아가자’ 하고 말하느냐고. 나는 ‘옛날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늘 ‘새로운 앞날로 나아갈’ 뿐입니다. 다만,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곰곰이 되짚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날마다 노래를 불렀어요. 옛날 사람들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날마다 지었어요. 수출이나 수입이 없어도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임금이나 땀임자가 없어도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지식인이나 양반이 없어도, 이름 높은 학자나 관리가 없어도, 빼어난 싸울아비나 전쟁무기가 없어도, 참말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늘 노래였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노래가 없습니다. 대중노래는 있으나, 스스로 제 삶에서 짓는 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밥이나 옷이나 집을 스스로 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날마다 새로운 하루로 맞아들여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으레 쳇바퀴를 돌듯이 똑같은 일을 날마다 되풀이할 뿐입니다. 출퇴근 지옥이요, 월급바라기이며, 세금정산에 머리가 아플 뿐인 오늘날입니다.



.. 1893년에 스코틀랜드에 머물던 베아트릭스는 노엘이라는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노엘은 베아트릭스의 가정교사였던 애니 무어의 어린 아들이었다. 베아트릭스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노엘에게 그림편지를 보내기로 했고, 이것은 결국 베아트릭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 책 속에서 동물들에게 안락함과 평온함을 주던 인테리어는 이제 그 작은 공간을 멋지게 가꾼 주인에게 안온함과 소속감을 주었다 ..  (31, 54쪽)



  나는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뜻에서 시골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시골에서 부르던 푸른 노래를 새롭게 배워서 즐겁게 누리고 싶기에 시골에서 삽니다. 풀을 뜯을 적에는 풀노래를 불러요. 구름바라기를 할 적에는 구름노래를 불러요. 자전거마실을 하면 자전거노래를 부르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면 버스노래를 부르지요.


  밥을 차리며 밥노래입니다. 설거지를 하며 설거지노래입니다. 빨래를 하며 빨래노래이고, 가끔 아이들한테 골을 부리면 골노래입니다. 골짜기로 나들이를 하면 골짝노래예요.


  바닷가에서 바다노래입니다. 들에서 들노래입니다. 손에 책을 쥐고 책노래예요. 종이를 마룻바닥에 펼쳐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 그림노래예요.


  노래가 안 되는 삶은 없습니다. 삶이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늘 노래예요. 노래가 되는 삶이기에 즐겁습니다. 노래가 되는 삶이기에 날마다 새롭게 부르고, 날마다 즐겁게 맞아들입니다.



.. 힐 탑을 구입하고도 윌리엄과 결혼을 할 때까지는 어쩌다 한 번씩 머물렀을 뿐이지만, 그런 사실도 이 방에 가구를 더하고 재배치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이리저리 손보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 방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집을 구입하고 35년이 지난 1940년 무렵이었다 … 베아트릭스는 집 뒤편에 날개를 증축하면서 농가 부엌 위쪽의 방 하나를 자신이 쓸 용도로 꾸몄다. 처음에는 이곳을 서가라고 부르며, 남동생인 버트램의 유화를 걸어놨었다. 베아트릭스보다 여섯 살 아래인 버트램도 누나처럼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을 탈피해서 농부가 되었다 ..  (105, 128쪽)



  수전 데니어 님이 빚은 이야기책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갈라파고스,2010)을 읽습니다. 수전 데니어 님은 ‘내셔널 트러스트’ 일을 한다고 해요. 베아트릭스 포터 님이 숨을 거두면서, 또 숨을 거두기 앞서, 수없이 ‘내셔널 트러스트’에 내놓아, 시골마을과 시골숲을 그대로 건사하기를 바란 땅을 돌본 일을 맡기도 했다고 해요.



.. 베아트릭스의 공간 배치에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단연 그웨이니노그의 정원을 꼽을 수 있다 … “꽃이 만발했다. 내 정원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형식을 탈피한 옛날 스타일의 농가 정원, 꽃밭 주변에 상자 모양의 산울타리를 두르고 채송화와 팬지와 까치밥나무와 딸기와 완두콩, 그리고 제미마를 위한 큼직한 세이지도 있다 … 야생으로 자라난 것이 정원과 과수원을 전부 뒤덮었고, 숲 속에도 보인다.” ..  (152, 157쪽)



  베아트릭스 포터 님은 이녁 삶을 스스로 천천히 지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삶도, 시골살이도,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는 삶도, 시골에서 그림을 그려 얻은 돈으로 아름다운 땅과 집을 사들여 아름다운 마을이 이어지도록 가꾸는 삶도, 모두 스스로 지었습니다.


  차근차근 지었어요. 무엇보다, 베아트릭스 포터 님은 이녁이 그린 그림을 알뜰히 아끼고 사랑한 이웃들이 한 푼 두 푼 ‘책을 사 주는 일 때문에 번 돈’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땅을 장만합니다. 땅을 장만하는 삶을 스스로 지었고, 땅을 장만한 뒤 아름다운 터로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빛과 슬기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 베아트릭스는 이 책에서 드디어 자신이 꾸민 정원의 아름다움, 엄밀히 말하자면 정원이 자리를 잡아 그렇게 무르익기를 바라는 모습을 한껏 자랑했다 … 그녀의 드로잉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고, 그곳에서 살다 보니 농부가 되고 싶었으며, 그건 다시 개발 앞에 취약한 자연을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고원과 황무지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내 늙은 다리로는 두 번 다시 거닐지 못할 그곳의 돌과 꽃, 습지와 황새풀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무수한 젊은 백치들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건 기꺼운 일 아닌가.” ..  (165, 176, 203쪽)



  나는 고흥 시골집에서 살며 여러 가지로 꿈을 푸르게 꿉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곳을 바탕으로 둘레 땅을 차근차근 장만해서 아름답게 푸른 숲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직 우리 땅은 없으나, 내가 쓰는 글로 푼푼이 돈을 그러모아서 땅을 열 평 백 평 천 평 만 평 십만 평 백만 평 장만하기를 꿈꿉니다. 이 땅에 아름답고 푸른 꿈을 꾸는 이웃들이 찾아와서 알맞게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알맞게 삶을 가꿀 수 있기를 꿈꿉니다.


  우리 이웃은 대통령 이름을 알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웃은 사건·사고나 신문·방송을 알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웃은 풀을 마주하면서 풀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습니다. 우리 이웃은 나무를 마주하면서 나무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습니다. 한 그루 두 그루 천천히 나무를 심습니다. 한 뙈기 두 뙈기 텃밭과 꽃밭을 찬찬히 일굽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땅을 밟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도랑과 냇물과 개울에 몸을 담가 뛰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돗물이 아닌 샘물을 마시기를 바라고, 사냥꾼이나 약초꾼이나 난 캐는 이들이 시골숲에 함부로 깃들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기계로 갈아엎는 땅이 아니라, 우리 식구와 이웃이 누릴 만큼 손수 흙을 보듬고 갈면서 밥을 얻기를 바랍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아닌, 즐겁게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꿈이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꿈을 품기에 삶을 가꿉니다. 꿈이 없으면 삶을 짓지 못하고 쳇바퀴를 돕니다. 꿈이 없으면 삶뿐 아니라 사랑도 믿음도 짓지 못합니다.


  예배당에 가야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성경책을 들춰야 믿음이 아니고, 내가 나를 바라보듯이 이웃과 동무를 바라볼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삶을 가꾸는 삶노래가 이 나라뿐 아니라 지구별 어디에서나 푸르게 피어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슬기를 모아 사랑스럽게 살고, 사랑스레 살아가는 이웃이 가끔 서로서로 찾아가면서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꿈길을 걷기에 삶길이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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