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57) -의 : 새 봄의 도래


지금 많은 사람이 새 봄의 도래를 지켜보고 있지. 새로운 사고방식의 도래 말이야

《톰 새디악/추미란 옮김-두려움과의 대화》(샨티,2014) 141쪽


 새 봄의 도래를

→ 새봄을

→ 새봄이 오는 모습을

→ 새 봄날을

→ 새봄이 찾아오는 날을

 …



  토씨 ‘-의’는 한자말과 잘 어울립니다. 이 보기글에서도 한자말 ‘到來’를 넣으니 토씨 ‘-의’가 척 달라붙습니다. 한자말 ‘도래’가 아닌 한국말 ‘오다’나 ‘찾아오다’를 넣으면 토씨 ‘-의’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말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하고 스스로 생각할 때에 말느낌과 말마디가 사뭇 달라집니다. 새봄이 오는 모습을 지켜본다고 할 때에는 “새봄을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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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사람이 새 봄날을 지켜보지. 새로운 생각 말이야


‘지금(只今)’은 ‘이제’나 ‘오늘날’로 다듬습니다. ‘도래(到來)’는 ‘오다’나 ‘찾아오다’나 ‘닥쳐오다’나 ‘밀려오다’로 손보고, “지켜보고 있지”는 “지켜보지”로 손봅니다. ‘사고방식(思考方式)’은 ‘생각’이나 ‘생각틀’이나 ‘생각밭’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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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409) 자구적字句的


단 have a good time의 자구적 의미를 살리려면 구체적 상황을 부가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최용식-한국영어를 고발한다》(넥서스,2005) 50쪽


 자구적 의미를 살리려면

→ 말뜻을 살리려면

→ 말느낌을 살리려면

→ 말빛을 살리려면

→ 말마디를 살리려면

 …



  이 짧은 글월에 ‘-的’붙이 한자말이 셋이나 있습니다. ‘자구적’을 살피려고 옮겨 적는데, 글월을 끝까지 적다가 놀랍니다.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쓰는 영어를 까밝힌다고 하는 책에서 얻은 보기글인데,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쓰는 ‘-的’붙이 한자말부터 제대로 바로잡을 노릇이 아닐까 하고 느낍니다.


  한자말 ‘자구(字句)’를 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예 안 쓰지는 않으나 이런 한자말을 쓰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흔히 쓰는 말은 ‘글자(-字)’입니다. 그러나 ‘글자’라고도 할 까닭은 없습니다. ‘글’이라고만 하면 되고, ‘글씨’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자(文字)와 어구(語句)를 아우르는” 낱말이 ‘자구’라 하는데, ‘문자’는 “인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시각적인 기호 체계”라 합니다. ‘어구’는 “말의 마디나 구절”이라 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니,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문자 = 글’이요, ‘어구 = 마디’로군요. 문자와 어구를 아우르는 낱말이라면 ‘글마디’라 적으면 되는군요.


  이 보기글에서는 ‘말뜻·말느낌·말빛·말마디’로 손질할 수 있는 한편, ‘글뜻·글느낌·글빛·글마디’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로 어떻게 쓸 때에 환하게 뜻이 드러나는가를 헤아리면 됩니다. 4339.1.12.나무/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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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have a good time을 말뜻을 살리려면 어떤 흐름인지 더 드러내야 한다


‘단(但)’은 ‘다만’으로 손질하며, ‘의미(意味)’는 ‘뜻’으로 손질합니다. “구체적(具體的) 상황(狀況)을”은 “어떤 흐름인지”로 손보고, “부가적(附加的)으로 표시(表示)해야”는 “더 나타내야”나 “더 드러내야”나 “덧붙여 밝혀야”로 손봅니다.



 자구적 : x

 자구(字句) : 문자와 어구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자구 해석 / 자구를 수정하다 / 개혁 조항의 자구를 꼬치꼬치 따졌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89) 자구적自救的


베아트릭스처럼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그런 흐름을 막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큰 힘이 됐다

《수전 데니어/강수정 옮김-베아트릭스 포터의 집》(갈라파고스,2010) 179쪽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 스스로 애써서

→ 스스로 힘써서

→ 스스로

 …



  “스스로 구원함”을 뜻한다는 한자말 ‘자구(自救)’입니다. 이 한자말에 ‘-的’을 붙인 ‘자구적’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한국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자말 ‘구원(救援)’은 “구하여 줌”이나 “건져 내는 일”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구(救)하다’는 “돕다”나 “벗어나게 한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구원함’은 한국말로 제대로 풀면 “스스로 건지다”나 “스스로 돕다”나 “스스로 벗어나게 한다”를 가리킵니다.


  “자구 수단을 강구하다”는 “스스로 길을 찾다”라든지 “할 일을 스스로 생각하다”로 손질합니다. “자구 노력이 결실을 맺어 부도 직전의 기업이 정상화되었다”는 “스스로 애쓴 끝에 넘어질 뻔한 기업이 제자리를 찾았다”로 손질합니다.


  스스로 애써서 모든 어려움을 풀어 헤칩니다. 스스로 힘써서 말과 글을 갈고닦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기울여 삶을 가꾸고 사랑을 나눕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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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처럼 스스로 애써서 그런 흐름을 막겠다고 팔을 걷어부친 많은 사람들 마음이 큰 힘이 됐다


“노력(努力)을 통(通)해”는 “애써서”나 “힘써서”로 다듬고, “사람들의 의지(意志)”는 “사람들 마음”이나 “사람들 뜻”으로 다듬습니다.



 자구적 : x

 자구(自救) : 스스로 구원함

   - 자구 수단을 강구하다 / 자구 노력이 결실을 맺어 부도 직전의 기업이 정상화되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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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160] 칠월



  참말 무더운 칠월에는

  아주 시원한 소나기와 뭉게구름

  여기에 수박 익는 냄새



  유월이 저물고 칠월이 다가오면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더위를 잔뜩 느낍니다. 그렇지만 칠월이 되면 수박이 무르익어 곧 따먹을 수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더운 한여름이기에 더위를 식히는 그늘과 골짜기와 수박이 있습니다. 추운 한겨울에는 추위를 녹이는 따스한 기운이 있을 테지요. 삶을 밝히는 아름다움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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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1~2 세트 - 전2권 - 극장판 무비필름북 극장판 무비필름북 명량
서울문화사 편집부 엮음 / 서울문화사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 〈서편제〉와 〈명량〉



  아이들과 오늘 저녁에 영화 하나 볼까 하고 생각하면서 〈서편제〉를 먼저 혼자서 주루룩 보는데, 이 영화가 처음 극장에 걸리던 때하고는 아주 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서편제〉가 극장에 걸렸을 때에 들던 궁금함이 하나 있었는데, 그 궁금함을 오늘 그대로 느꼈다. 무엇인가 하면, 영화 〈서편제〉가 열 해나 스무 해쯤 지난 뒤에 다시 보면 어떻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판소리’와 같은 우리 겨레 문화를 안 다루었으니 이 영화가 애틋하다고 느꼈을 뿐, 영화 얼거리나 짜임새로 볼 때에는 참으로 모자라다고 느꼈다. 1993년에서 스물한 해가 지난 2014년에 다시 보니 〈서편제〉는 너무 어수선하며 어설픈데다가 어지럽다. 돌로 쌓은 울타리가 있는 길을 걷는 대목은 그림이 더없이 예쁘지만, 군데군데 ‘예쁜 시골마을’과 ‘풀로 지붕을 얹은 집’이 나올 뿐, 딱히 영화답게 누릴 만한 이야기가 없네 하고 새롭게 느꼈다.


  요즈음에 어느덧 극장 관객 1600만이 넘었다고 하는 영화 〈명량〉이 있다. 이 영화를 어디에서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 구암리 바닷가에서 ‘이순신 나오는 무슨 영화’를 찍는다는 소리를 이태쯤 앞서인가 지난해인가 들은 적 있다. 고흥이라는 깨끗한 시골마을과 바닷가에서 영화를 찍는다니, 깨끗한 마을과 숲과 바다가 온통 쓰레기밭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그 마을 언저리에는 한동안 기웃거리지 않았다.


  영화 〈명량〉은 무엇을 말하거나 보여주려는 영화일까? 글쎄, 시골에는 극장이 없으니 이 영화를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러 도시로 나들이를 갈 마음은 없다. 나중에 디브이디가 나오든 영화파일을 누군가 우리한테 선물을 하든 딱히 볼 마음마저 없다. 왜냐하면, 영화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조선 수군이 일본놈을 신나게 때려죽이는 모습을 찍으면서 ‘짜릿한 나라사랑(애국! 충성! 일본놈 엿먹어!)’을 외칠 테니까, 뭐 하러 이 영화를 보겠는가. 일본 제국주의 바보들이 미국 진주함에 폭탄을 퍼부으면서 싱글싱글 웃는 모습하고 무엇이 다를까. 미국 다국적기업 머저리들이 핵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낄낄거린 짓하고 무엇이 다를까.


  저녁이 늦어 영화는 안 보기로 한다. 이튿날 저녁에 〈나니아 연대기〉를 보기로 한다. 문학으로도 영화로도 〈나니아 연대기〉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느낀다. 이야기가 없는 영화를 왜 보겠는가. 생각해 볼 노릇이다. 열 해나 스무 해 지난 뒤에, 영화 〈명량〉을 몇 사람이나 볼까? 제발 영화를 ‘관객 숫자 장난’이 아닌 ‘삶을 밝히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빚어내는 영화감독이 한국에서도 나오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4347.8.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영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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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93. 2014.8.19. 베개랑 책놀이



  잠자리에서 베개를 꺼낸다. 하나를 꺼내고 둘을 꺼낸다. 커다란 베개까지 꺼내어 마룻바닥에 깐다. 그러고는 베개에 벌렁 드러눕는다. 이렇게 하면서 손에 손에 책을 쥔다. 누워서 책을 펼친다. 작은아이는 누나를 흉내내고, 누나는 베개에 누워서 폭신폭신 뒹굴며 읽는 책이 재미있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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