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4.8.24. 큰아이―좋아요



  그림엽서 뒤에 짤막하게 글을 지어서 사름벼리한테 건네면, 사름벼리는 이 쪽글을 공책에 옮겨적는다. 어느 때는 공책 한 쪽을 넘기고, 어느 때는 공책 한 쪽을 못 넘긴다. 공책 한 쪽을 넘기든 못 넘기든, 사름벼리는 남는 자리에 무언가 잔뜩 채운다. 사름벼리 스스로 가장 잘 알거나 좋아하는 말을 적는다. 사름벼리가 가장 자주 많이 적는 말은 “좋아요”와 “사랑해요”이다. 이 두 가지 말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참으로 자주 쓰고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아이 스스로도 이 말을 하면 할수록 저절로 피어나는 꽃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좋아요” 하고 적는 글에서 ㅇ이 동글동글 춤을 춘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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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밥 먹자 88. 2014.8.26. 새우볶음밥



  엊그제 읍내에 갔을 적에 산들보라가 갑자기 “새우! 새우!” 하고 외쳤다. 그래서 새우를 한 꾸러미 장만했다. 산들보라도 사름벼리도 새우를 퍽 잘 먹는다. 국에 넣건 밥에 넣건 야무지게 먹는다. 이 새우를 어떻게 차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밥을 볶아서 넣기로 한다. 먼저 다 된 국부터 밥상에 올리고, 동글배추를 채썰기 해서 올리고는, 오이를 올린다. 국에 담아 데운 두부를 썰고, 김을 자른다. 새우볶음밥은 살짝 뜸을 들이고 나서 올린다. 자, 너희가 노래노래 부른 새우를 넣은 볶음밥이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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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벼리가 책상 밑으로



  책상 밑으로 몸을 넣으면서 팔을 쭉 뻗는다. 무엇을 할까. 가만히 지켜본다. 한참 이렇게 있던 사름벼리가 그림책을 한 권 꺼낸다. 어라. 책을 꺼내려고 책상 밑으로 그렇게 몸을 넣었니? 책상을 끌면 될 텐데 참 어렵게 꺼내는구나. 그렇지만, 너는 이렇게 놀면서 꺼내고 싶었겠지. 4347.8.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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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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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4



시와 늦여름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안도현 글

 창비 펴냄, 2008.1.21.



  여름이 저뭅니다. 늦여름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집니다. 아직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 이불이나 빨래를 말리기에는 좋습니다. 일찍 찾아오는 저녁에 부는 바람에는 가을내음이 물씬 흐릅니다. 논이 펼쳐진 들길 사이를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 제법 익은 나락마다 고소한 냄새를 퍼뜨립니다.


  풀벌레 노랫소리가 짙을 만한 철입니다. 멧새는 겨울을 앞두고 부산을 떨어야 할 철이고, 멧짐승도 슬슬 바지런히 추위를 헤아려야 할 철입니다. 그런데 풀벌레 노랫소리가 그리 짙지 않습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시골에는 으레 농약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 가끔 나는 숙박계에 이 세상에 없는 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벽에 구름의 바지를 걸어놓고 잠든 적 있다 ..  (세상의 모든 여인숙)



  흙이 있는 땅이면 으레 풀이 돋기 마련입니다. 풀은 어디에서나 돋습니다. 사람이 심은 남새 씨앗도 돋지만, 풀이 스스로 퍼뜨린 씨앗도 돋습니다. 풀은 사람이 뜯어서 먹기도 하지만, 들짐승이나 숲짐승이 뜯어서 먹기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마을마다 소를 많이 키웠기에 소한테 풀을 먹이려 했지, 풀에 함부로 약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모든 풀은 저마다 쓰임새가 있어서 함부로 뜯거나 죽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풀을 여러 가지로 씁니다. 첫째, 즐겁게 먹습니다. 둘째, 옷을 짓는 실을 얻습니다. 셋째, 바구니나 자리나 신을 삼을 적에 씁니다. 넷째, 지붕에 얹거나 울타리를 두를 때에 씁니다. 다섯째, 몸이 아플 때에 알맞게 씁니다. 여섯째, 잎사귀를 덖거나 말려 우려서 마십니다. 일곱째, 짐승한테 먹이려고 씁니다. 여덟째, 풀이 돋아 흙을 붙잡으면 큰비가 내려도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아홉째, 풀밭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 언제나 싱그러우면서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습니다.



..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  (명자꽃)



  풀을 모르는 사람은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풀을 모르고서는 삶을 가꿀 수 없습니다. 풀을 죽이거나 짓밟는 사람은 시골내기가 되지 못합니다. 아니, 풀을 죽이거나 짓밟으니 시골마을을 돌볼 수 없습니다.


  풀이 죽은 데에서는 나무가 죽습니다. 풀이 죽어 나무가 죽으면 사람이 죽습니다. 풀이 죽어 나무가 죽으면 숲이 사라집니다. 숲이 없는 곳은 비가 오지 않아요. 메마를 뿐입니다. 풀과 나무가 없으면 냇물이 흐를 수 없어요. 풀과 나무가 없으면 논이고 밭이고 일굴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억지로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풀 없이 먹을거리를 뽑아내는 짓’을 함부로 합니다. 흙을 온통 죽이거나 말리면서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공산품 같은 먹을거리를 거둡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셈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 셈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땅을 망가뜨릴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면서 이 땅에 푸른 물결이 아닌 잿빛 도시와 아파트와 공장과 발전소와 송전탑 따위만 들이부을까요.



..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  (조문弔文)



  안도현 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2008)를 읽습니다. 애타면서 철이 없는 모습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어떤 사람이 애타는 몸짓이면서 철없다고 할 만할는지 헤아립니다.


  너일까요. 나일까요. 우리 모두일까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철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참말 철없는 삶이 아닐까요.


  안도현 님이 사는 마을에서 뒷집 할배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안도현 님은 뒷집 할배가 ‘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길입니다. 더 밝은 길이나 더 어두운 길은 따로 없이 우리는 모두 길입니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 길인 줄 모르기 일쑤이고, 어떤 길인지 안 느낄 뿐입니다.


  그러면, 안도현 님은 어떤 길일까요. 안도현 님은 스스로 어떻게 빛나는 길일까요. 안도현 님은 스스로 어떤 철이 든 사람으로서 시 한 줄을 읊을까요.



.. 식구들이 모두 달라붙어 키운 염소를 / 겨울에 잡았다 ..  (염소 한 마리)



  늦여름이 저물면서 가을이 코앞입니다. 달력에 있는 숫자로 헤아리는 가을이 아니라 살갗으로 느끼는 가을이요, 달력 숫자가 아닌 바람결과 햇살로 느끼는 가을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찾아오는 겨울도 살갗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마주하는 철이 되겠지요.


  바람을 느끼듯이 여름을 듬뿍 느끼다가 가을내음을 맡습니다. 햇살을 느끼듯이 여름을 한가득 누리다가 가을빛을 바라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따사롭게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에 봄이 싹틀 때에 들에도 봄빛이 피어납니다. 우리 마음에 가을열매가 무르익을 때에 들에도 가을열매가 무르익습니다. 우리 마음에 봄이 싹트지 않는다면 들에도 봄바람이 불지 않아요. 우리 마음에 가을이 무르익지 않는다면 들에도 가을내음이 퍼지지 않습니다.



.. 시골 서점 책꽂이에 아주 오랜 시간 꽂혀 있는 시집이 있다 / 출간된 지 몇해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 ..  (오래된 발자국)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는데 풀벌레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농약바람은 맡을 수 있지만 짙은 풀바람을 쐬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풀벌레와 새와 개구리가 노래잔치를 이루는 모습은 차츰 사라지면서,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기곗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넘칩니다.


  소리가 사라진 곳에 노래가 사라지고, 노래가 사라진 곳에서는 시를 읽지 않습니다. 라디오를 켜거나 텔레비전은 켤 테지만, 시집을 펼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조용히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서 조용하지 않습니다. 시골에 노래가 없기에 조용합니다. 시골은 풀이 죽고 노래가 멀어지면서 고요할 뿐입니다. 4347.8.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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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61] 고운소금



  나는 왜 언제부터 ‘가는소금’이라고 말했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퍽 어릴 적이었지 싶은데, 불쑥 ‘굵은소금·가는소금’을 말하다가 동무가 퉁을 놓았지 싶어요. “얘, ‘가는소금’이 어디 있니? ‘고운소금’이지!” 이러구러 몇 해 지나 어느 날 또 ‘가는소금’이라고 말했는데, 어머니가 ‘고운소금’으로 바로잡아 줍니다. 얼마 뒤 또 ‘가는소금’을 말하고, 이웃 아주머니가 ‘고운소금’으로 바로잡아 줍니다. 한참 여러 해가 흐르고 흐른 요즈음, 우리 집 곁님이 ‘고운소금’ 이야기를 꺼냅니다. 곰곰이 돌이키니, 나는 어릴 적부터 참 끈질기게 ‘가는소금’이라 말했구나 싶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곱다’라는 낱말을 ‘아름답다’라는 뜻으로만 써야 한다고 잘못 알기 때문일까요. 어쩌다 입에 한 번 붙은 말씨가 안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소금도 밀가루도 잘게 빻을 때에는 ‘곱다’라고 가리킵니다. ‘가늘다’라 가리키지 않습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굵은소금·가는소금’이 올림말로 나오고, ‘고운소금’은 올림말로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어릴 적 동무와 이웃을 비롯해 우리 곁님과 곁님 어머니 모두 ‘고운소금’만 말합니다.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보지만 실마리를 알 길은 없습니다. 4347.8.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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