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8.2.

숨은책 1071


《朝鮮 農村問題辭典》

 인정식 글

 신학사

 1948.10.15.



  처음에는 일본사람이 세운 〈경성문고〉라는 책숲이었고, 여러 손길을 거치고 조선총독부가 돌보다가 1945년을 맞이하고서 서울 〈종로도서관〉이 오늘날처럼 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1948년에 32723째로 깃든 《朝鮮 農村問題辭典》인데, ‘1977.12.31. 제적’이라는 손글씨가 적히고서 버림받습니다. 버림받는 숱한 책은 그냥 헌종이로 팔리지만, 작은책 하나는 용케 살아남습니다. 가까스로 헌책집 일꾼 손에 닿았으며, 저는 이 책을 2004년 10월 21일에 서울 〈숨어있는 책〉에서 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책숲에서 들이는 책이 꾸준하게 많다면 ‘책시렁’을 나란히 늘일 노릇이지만 막상 안 늘립니다. 오래 묵은 책부터 ‘알뜰히’ 솎아서 ‘신나게’ 내버립니다. 그래야 새책을 ‘신나게’ 사들여서 갖추거든요. 책숲마다 책이 늘어나면 작은 골목집을 한 채씩 장만해서 ‘1948년 책’이며 ‘1958년 책’이며 ‘1968년 책’을 둘 만해요. 멀쩡한 책을 헌종이로 버리기보다는 ‘작은 골목책숲’을 늘리는 길을 가면 될 텐데, 나라(정부·교육청)에서는 그닥 마음이 없습니다. 인정식 님은 ‘시골 이야기’를 1948년에 엮어냅니다만, 2025년에 ‘시골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요? 시골사람으로 시골살림을 짓는 사람부터 드뭅니다. 그나저나 〈종로도서관〉은 그 옛날, 책 안쪽에  부엉이 무늬를 새겨서 “注意 침을 칧어지 마시고 책장을 만지시오” 하고 글씨를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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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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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8.2.

숨은책 1070


《아기와 비둘기》

 최병엽 글

 아동문예

 1991.6.25.



  우리 아버지는 1991년에 《아기와 비둘기》라는 노래책을 ‘동심천사주의’로 이름높은 ‘아동문예’란 곳에서 얼추 250만 원을 펴냄터에 바쳐서 내놓습니다. 다른 글바치(시인)도 이렇게 돈을 바쳐서 책을 냈다지요. 〈소년중앙〉 글보람(신춘문예)을 타면서 콧대를 높인 그분은 “교감이자 신춘문예 당선시인이 13평짜리 코딱지만 한 집에서 살면 얼굴이 안 선다”고 여기면서, 빚을 내어 48평짜리 인천 연수동 새 잿더미(아파트)로 갑자기 옮기기로 합니다. 지난날을 돌이키면 ‘늘 창피한 울 아버지’인데, 그분이 안 창피했다면, 그분이 ‘코딱지 13평 작은집’을 안 떠나려 했다면, 저도 그냥 인천에 뿌리를 내려서 작은책벌레로 조용히 살았을 텐데 싶더군요. 작은책벌레는 작은숲을 잃으면서 먼길을 돌았습니다. 작은책벌레는 ‘동심천사주의’가 아닌 ‘아이곁에서’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수수한 어버이로 삶을 누리면서 늘 우리 아이들하고 하루를 노래하려는 마음입니다. 옛집 마루에 멧더미처럼 쌓였던 《아기와 비둘기》는 딱 한 자락 남았습니다. 다 어디를 떠돌겠지요. 이 창피한 노래책 겉에 깃든 ‘비둘기한테 모이 주는 아이’는 제 어린날 모습입니다. 그분은 어느 날 인천 송도유원지로 언니랑 저를 데려가서 제 모습을 신나게 찍으셨어요. 이러고 얼마 뒤에 이 책이 나왔습니다. 얼굴몫(초상권)을 바라지는 않습니다만, 아이가 새랑 노는 모습을 이녁 책에 담고 싶다면 먼저 물어보기라도 하고, 고맙다는 말 한 마디라도 해야 할 테지만, 아이한테 늘 술담배 심부름을 시키던 그분은 늘 그저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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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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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8.2.

숨은책 1069


《할매하고 손잡고》

 권정생 글

 올바름

 1990.9.20.



  “대구시 동구 신암1동 714번지”에 있었다는 ‘올바름’이라는 곳에서 펴낸 《할매하고 손잡고》입니다. 이런 책이 있는 줄 2013년에 처음 알았고, 그 뒤로 헌책집을 돌고돈 끝에 열한 해가 지나고서야 드디어 저도 한 자락을 손에 쥐었습니다. 제가 만난 헌책은 1991년에 어느 분이 아이한테 건넨 손길이 묻었습니다. 1991년 9월에 ‘권정생 이야기책’을 받은 아이는 놀라운 사랑씨앗을 누린 셈입니다. 더구나 이 값진 책을 기꺼이 내놓아 헌책집에서 새롭게 이웃한테 퍼질 수 있었으니, 작은씨앗 한 톨로 작은숲을 베풀었습니다. 권정생 님이 남긴 글을 죽 보면, ‘시골·아이·작은·별·눈물·할매·할배·일하는 손·걷는 발·밥 한 그릇’ 같은 이야기가 줄줄이 흐릅니다. 권정생 님하고 마음동무인 이오덕 님도 이런 이야기를 꾸준히 남겼습니다. 두 분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서울’도 ‘돈·이름·힘’도 아니요, ‘아파트·자동차·부동산·대학교’도 아닙니다. 두 분은 따갑게 나무라는 글도 제법 남겼되, 작은사람으로서 작은시골에서 작은마음을 짓는 작은씨앗을 늘 심었다고 느낍니다. 오늘날 누가 “할매하고 손잡고”나 “아이하고 손잡고” 같은 글감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만할까요? 이 여름에 같이 땀흘리는 이웃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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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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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7.12.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

 시몬 베유 글/이민경 옮김, 갈라파고스, 2018.12.13.



낮에 노포나루로 간다. 대구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빈자리가 많아 널널하다. 맨뒤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면서 멧숲바라기를 한다. 무릎에 책을 얹고서 멀거니 바깥을 본다. 푸르게 일렁이는 숲자락을 지켜본다. 부산하고 대구 사이는 ‘깊숲’이로구나. 어린날 내가 자라던 인천은 옆에 부천과 서울이 있는데, 옛 부천은 복사밭이 아름다웠으나 이제 모두 사라졌고, 인천과 부천·서울 사이에는 들숲이 아예 없다. 대구에 닿아 〈이육사 기념관〉을 구경한다. 엉성한 얼거리에 놀랐다. 〈코스모스북〉을 들르고서 〈북셀러 호재〉에서 책을 장만한다. 〈물레책방〉까지 마실하고서 부산으로 돌아간다. 큰고장에는 마을책집이 곳곳에 많다. 그렇지만 큰고장 이웃님은 마을책빛을 누릴 틈이 너무 밭아 보인다. 《국가가 아닌 여성이 결정해야 합니다》는 잘 나온 글이요 책이라고 느낀다. 책이름을 살짝 돌려서 “나라가 아닌 내가 해야 합니다”라든지 “나라가 아닌 아이가 해야 합니다”라든지 “나라가 아닌 어른이 해야 합니다”처럼 생각해 볼 만하다. 우리 삶은 우리가 지을 노릇이요, 우리 새길은 우리 손으로 빚을 노릇이며, 우리 꿈과 사랑은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가꿀 노릇이다. 어떤 우두머리도 아닌 ‘나·너·우리’가 할 일이다.


#Leshommesaussisensouviennent #Uneloipourlhistoire #SimoneW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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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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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7.14.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

 예롱 글·그림, 뿌리와이파리, 2019.10.28.



새벽에 부산에서 길을 나선다. 순천을 거쳐서 고흥읍에 닿고, 옆마을을 스치는 시골버스를 탄다. 마침내 논둑길을 걷는다. 귀가 확 트인다. 우리 보금숲인 시골은 시끌소리가 없다시피 하구나. 풀죽임물을 뿌려댄다든지, ‘뒷술잔치’를 꾀하는 몇몇 벼슬꾼을 빼면, 이 들길이란 참으로 반짝이는구나. 논마다 내려앉은 흰새가 많다. 바람소리와 구름송이를 맞아들인다. 바깥마루에 등짐을 부린다. 즐겁게 씻고 빨래를 하고서 등허리를 편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를 읽었다. 그림님 짝꿍은 ‘검은살갗’이라고 한다. 키큰 검은살갗인 짝꿍하고 마실을 하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볼 뿐 아니라, 슬금슬금 비켜선단다. 옆에 누가 앉건 말건 우리는 스스로 할 일을 하면서 나아갈 곳에 가면 된다. ‘이웃’이 아닌 ‘남’이라 여기면, ‘남’인 터라 겉모습만으로 이리 재고 저리 따지면서 꺼리거나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내치기 일쑤이다. 서로 ‘사람’으로 마주하면 낯선 누구라도 사근사근 마주하는 사이로 지낸다. 서로 ‘숨결’로 바라보면 처음 보는 누구라도 스스럼없이 지나치면서 온마음이 아늑하다.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저만 알던 거인”(오스카 와일드)으로 뒤바뀐 오늘을 살아간다고 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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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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