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업고 곰취 뜯기


 지난 목요일에 숲에 들어가 뜯은 곰취를 거의 다 먹었기에 오늘 새로 뜯으려고 아이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한낮이 될 무렵부터 졸립다 했으나 세 시까지 안 자고 버텼다. 몹시 졸립지만 숲으로 간다니 좋다며 따라나선다. 그러나 조금 걷지 않았어도 힘들다며 안아 달라 한다. 아이를 안고 숲길 오르막을 오른 다음, 내리막과 판판한 길에서는 내린다. 여느 때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아하겠지만, 퍽 졸리니까 조금만 좋아한다. 그래도 잘 뛰고 잘 걷는다.

 아버지가 곰취와 쑥을 뜯느라 바쁘니 자꾸자꾸 안아 달라 한다. 하는 수 없이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으라 한 다음 쑥이랑 곰취를 뜯는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숲속에서 노래를 부른다. 흥얼흥얼 노래를 하면서, 아이가 해바라기를 해 주기를 바란다. 쑥을 뜯든 곰취를 뜯든 온갖 풀내음을 잔뜩 느낀다. 내가 아는 풀내음이 있을 테지만 내가 모를 풀내음이 훨씬 많겠지. 아이도 아버지도 온갖 풀내음과 바람소리를 맞아들이면서 낮나절을 보낸다.

 아직 나물을 얼마 못 뜯었는데 아이는 졸립다며 그예 안아 달라는 말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스럽다. 어차피 나물을 뜯느라 쭈그려앉았으니 아버지 등에 엎어지라고 말한다. 아이는 등판에 찰싹 달라붙는다. 한동안 이러고 나물을 뜯다가 아이를 업는다. 업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물을 더 뜯는다. 쑥은 오늘 저녁 먹을 만큼도 못 뜯었고 곰취도 이틀쯤 먹을까 말까 싶을 만큼밖에 못 뜯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등허리가 결린다. 아침부터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이니까, 낮나절 십 분 남짓 아이를 업고 나물을 뜯어도 등허리가 버겁다. 포대기가 있어 아이를 꽉 업을 수 있으면 좀 오래 나물을 뜯을 수 있겠지. 이제 아이가 많이 크기는 했지만, 포대기이든 깔개이든 챙길 수 있는 어버이 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나. 이래서야 집살림 맡은 사람이라 말하기 부끄럽기만 하다.

 졸린 아이는 등에 업혔으나 잘 생각은 않는다. 나물 뜯는 모습을 등판에서 내려다보기만 한다. 누런 빛깔, 흙빛 멧개구리가 폴짝 나온다. 아이는 올들어 처음 보는 개구리이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개구리를 보았던가? 모르겠다. “여기 개구리 있네.” “개구리?” “응, 개구리. 자 봐. 여기 있지?” “어, 개구리야.”

 더 나물을 뜯다가는 아이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겠다고 느껴 숲에서 나오기로 한다. 멧길을 걸어 집으로 내려온다. 숲에서 빠져나오니 아이는 걷겠다고 한다. 집까지는 내리막이니 콩콩콩 달리고 싶은가 보다.

 아이는 집에 닿으면서 어머니를 부르고, 집으로 들어가서 이내 어머니 곁에 눕는다. 아버지는 아이 낯과 손과 발을 씻기고 새 옷을 입힌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다시 눕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두 시간쯤 낮잠을 자 주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꾼다. 다음달에 둘째를 낳을 어머니는 힘들어 자리에 눕고, 아버지는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를 삶고, 빨래 몇 점을 한다. 첫째 아이 오줌기저귀를 다 삶은 다음 둘째 아이한테 쓸 새 기저귀를 삶는다. 이 사이에 저녁으로 먹을 쌀을 씻어 불린다. 뜯은 나물은 저녁밥을 안칠 때에 흙을 씻기로 한다. 아이가 실컷 자고 일어나면, 마을 어귀 큰길가에 있는 보리밥집(이자 마을 구멍가게)으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서 보리술 두 병쯤 사올까 생각한다. 오늘 하루도 어설프지만 이모저모 애쓴 나한테 주는 선물로.

 아이는 저녁나절에 자전거에 붙인 수레에 태워 준다고 하면 신나서 함박웃음을 짓겠지.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자전거수레를 오래오래 즐길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더 몸을 다스리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버지가 몸이 오래오래 튼튼해야 아픈 옆지기 몸을 틈틈이 주무를 수 있다.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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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19 19:37   좋아요 0 | URL
ㅎㅎ 시골에 사시니 이런 정취도 있네요.그나저나 개구리는 참 오랫만에 보는것 같군요^^

파란놀 2011-04-20 07:06   좋아요 0 | URL
요사이는 시골에서도 개구리가 많이 사라지거든요... 약을 많이 치니까요...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레이먼드 브릭스 글 그림, 미루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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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석 장 느낌글 009]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라는 이름으로 옮겨진 ‘레이먼드 브릭스’ 님 그림책은 그냥 《UG》라는 이름으로 2001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한국판으로 옮기며 ‘UG’를 ‘우가’로 적는데, 이 아이는 ‘천재 소년’이 아닙니다. 그냥 사내아이입니다. “난 동굴에 사는 게 싫은데(10쪽)” 하고 생각하며, “강을 조금 구부려서 이쪽으로 흘러오게 하면 안 될까요(18쪽)” 하고 생각하는 여느 아이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는 여느 아이가 아니라 ‘천재’ 아이라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대로 즐거우면 즐겁다 말하고 힘들면 힘들다 말합니다. 재미있으면 재미있게 즐기고 따분하면 따분하다는 느낌이 얼굴에 묻어납니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맛있게 먹고 싶으며, 더 재미나게 놀고 싶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예쁘게 느끼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저절로 품는 마음입니다. 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가라는 아이는 석기 시대이고 아니고를 떠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동무나 어른들은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들 돈벌이에 바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내칩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레이먼드 브릭스 그림·글, 미루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3.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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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빠빠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4
아네트 티종 지음, 이용분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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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놀이동무 바바빠빠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1] 아네트 티종·탈루스 테일러, 《바바빠빠》(시공주니어,1994)



 네 살 아이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면 어버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여느 집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까요. 첫째는 어느덧 네 살로 자랐고, 한 달 뒤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첫째가 걸어간 길을 둘째 또한 걸을는지, 둘째는 첫째하고 좀 다른 길을 걸을는지 잘 모릅니다. 다만, 시골자락에서 태어날 둘째는 첫째와 똑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첫째한테 했듯이 사랑으로 보살펴야 할 뿐 아니라, 첫째한테 제대로 못한 사랑나눔을 더 따사로이 나누어야 하리라 느낍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요모조모 가르칩니다. 말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퍽 어린 아이한테는 ‘말보다는 몸으로 더 자주 더 많이’ 가르칩니다. 제 어버이가 살아가는 나날이 아이한테는 책이고 교과서이며 스승입니다. 어버이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가면, 아이는 저절로 옳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갑니다. 좋다는 어린이책 백만 권이든 천만 권이든 부질없어요. 책 한 권 쥐어 주지 않더라도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어버이는 ‘책에 깃드는 모든 좋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아이랑 같이 살아오는 동안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이것저것 배웁니다. 아이 앞에서 말을 어떻게 하고, 아이 앞에서 어떻게 살아내며, 어버이이기 앞서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살아가는가를 되짚습니다. 아이한테 먹이는 밥이란 어른이 함께 먹는 밥입니다. 아이한테만 아이 몸을 생각하는 밥을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 또한 나란히 같은 밥상에서 먹는 밥을 아이한테 먹입니다. 자가용을 모는 어버이는 자가용을 좋아하는 아이를 낳고, 자전거를 달리는 어버이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자가용 없이 걸어다니는 어버이는 두 다리로 걷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낳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아토피는 어버이 되는 사람 몸에 쌓인 나쁜 것들이 유전자에 아로새겨져서 아이한테 이어지는 아토피입니다. 아이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으나, 모두 어버이가 잘못한 나머지 아이가 괴롭습니다. 어버이 되는 사람 스스로 당신 몸에 나쁜 것들이 쌓이도록 막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지 않으며, 아이한테 화학연고를 발라 주거나 약을 먹인대서 아토피가 사라지거나 가라앉을 수 없습니다. 한동안 ‘어른 눈에 안 보일’ 뿐, 화학약을 써서 살짝 안 보이도록 한 아토피는 아이 몸에 그대로 잠든 채 다시 깨어날 때를 기다립니다.

 예부터 몸이 아픈 사람은 ‘더 맑은 바람과 물과 햇볕과 흙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시골로 보냈습니다. 도시에서 아픈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하지 못합니다. 도시에는 일거리가 많아 돈을 조금 더 쉽게 한결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튼튼한 사람들이 도시에서 버티며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몸이 여린 사람은 도시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아이들 가운데 꽤 튼튼한 녀석들이라면 도시에서도 잘 놀 테지만, 여느 아이들한테 도시는 참 끔찍한 보금자리입니다. 정수기를 쓴들 물이 맑을 수 없고, 먹는샘물을 사다 마신들 페트병에 담긴 물이며, 자동차가 끝없이 가득한 데에 맑은 바람이 없습니다. 공기청정기를 쓰는 집은 시멘트로 발라 세운 높직한 건물인데, 이 높직한 시멘트 건물은 고작 서른 해를 못 버티기 때문에 허물어 새로 올려야 합니다. 도시에서 집이란 집이 아닌 돈(부동산)입니다. 집 아닌 돈(부동산)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가 아이다움을 건사하기란 매우 힘듭니다.


.. 바바빠빠는 프랑수아네 집 꽃밭에서 태어났습니다 ..  (2쪽)


 그림책 《바바빠빠》를 읽습니다. 나라밖에서는 꽤 일찍부터 나온 그림책이지만, 한국에서는 1994년에 드디어 선을 보입니다. 그나마 1994년에 선을 보인 한국 그림책 《바바빠빠》는 빛느낌이 참 얄딱구리합니다. 《바바빠빠》를 소개하며 출판사에서 쓴 글을 읽어도 ‘분홍 괴물’인 바바빠빠라 하지만, 한국 그림책을 읽으면서 바바빠빠가 참말 ‘분홍이’가 맞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분홍이 바바빠빠라면, 말 그대로 분홍 빛깔을 곱게 느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서 팔아야 할 텐데요.

 네 살 아이한테 한국판 《바바빠빠》를 차마 보여주지 못합니다. 헌책방에서 만난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보여줍니다. 네 살 아이는 두 살 적부터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를 갖고 놀며 좋아했습니다.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는 1972년 6월 1일에 첫 쇄를 찍고, 우리 집 일본판 책은 2003년 3월에 203쇄를 찍었답니다. 우리 집 한국판 《바바빠빠》는 2007년 12월 5일에 29쇄를 찍었군요. 그나저나, 한국판 《바바빠빠》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81년으로 적히는데, 일본판에는 프랑스판 저작권이 1971년으로 적힙니다. 뭔가 알쏭달쏭합니다. 일본은 ‘바바빠빠’ 그림책이 처음 태어난 1971년 이듬해인 1972년부터 일본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히도록 했고, 한국은 자그마치 스물세 해가 지난 1994년에야 비로소 한국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을 읽힐 수 있습니다.

 내 어린 날, 에이에프케이엔을 틀 때에 가끔 볼 수 있던 바바빠빠를 떠올립니다. 그무렵 바바빠빠 그림책이 나왔다 하더라도 이 그림책을 사 줄 만큼 넉넉한 집은 드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날 그림책을 사 줄 만한 집이 드물든 많든 적든 어떻든, 아이들이 즐겁게 볼 그림책을 마련하는 데에 마음을 쓰지 못한 대목이 적잖이 슬픕니다. 그래도, 이제는 나라밖 좋다 하는 그림책을 퍽 쉽게 한국책으로 만날 수 있으니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 바바빠빠는 동물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원에서 바바빠빠는 우리에 갇혀 불행하게 지냈지요 ..  (6∼7쪽)


 일본판 《おぱけのバ-バパパ》만 보다가 한국판 《바바빠빠》를 보면서 한두 줄 짤막하게 적힌 글을 함께 읽습니다. 그림으로 보아도 알 수 있기는 했는데, 바바빠빠는 꽃밭에서 태어났네요. 어린이 프랑수아가 꽃밭에 물을 줄 때에 물을 맛나게 받아먹으며 몽글몽글 몸이 커지며 태어났어요.

 꽃밭에서 태어난 바바빠빠는 꽃과 같은 목숨입니다. 꽃처럼 예쁘고 꽃잎처럼 푸릅니다. 들꽃처럼 작고 가녀리며, 들꽃처럼 씩씩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바바빠빠는 착합니다. 바바빠빠는 슬기롭습니다. 바바빠빠는 포근합니다. 바바빠빠는 꾀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커다란 집이나 빠른 자가용을 바라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더 맛난 밥이나 더 거룩한 이름값을 꿈꾸지 않습니다. 바바빠빠는 마음을 나눌 좋은 동무를 그리워합니다. 바바빠빠는 사랑스레 어울릴 예쁜 벗을 아낍니다.


.. 사람들은 바바빠빠를 영웅처럼 환영했습니다. 바바빠빠가 많은 사람들을 구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바빠빠는 친구 프랑수아에게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  (25∼26쪽)


 새벽 다섯 시 반에 깨어 한 시간쯤 옹알거리던 아이는 다시금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뜨개한 긴치마를 혼자서 단추 꿰어 입고 한들한들 놀다가는, 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가는,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뜬 아이 곁에 다가가 볼을 부비며 이따가 더 신나게 놀고 조금 더 코 자자고 소곤소곤 말을 거니, 아버지가 저한테 해 주듯 아이도 제 아버지 머리를 살살 토닥이고 쓰다듬다가 조용히 눈을 감고 잠들어 줍니다.

 잠든 아이는 두 시간쯤 코 하고 꿈누리를 거닐다가는 번쩍 눈을 뜨고는 쉬 한 번 하고 나서 콩콩걸음으로 다가올 테지요. 그러면, 빈 그릇 하나 들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요 앞 비탈논 둘레로 나갑니다. 싱그러이 자라는 쑥을 그릇 가득 뜯어 쑥버무리도 하고, 쑥을 잔뜩 넣은 된장국도 합니다. 식구들은 아침을 맛나게 먹고는 오늘도 새 하루를 새삼스레 맞이하면서 부산스레 복닥이겠지요.


.. 바바빠빠는 어린이들과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29쪽)


 바바빠빠는 어린이와 함께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어버이라 해서 모두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어버이라 하든 갓난쟁이였고 어린이였으며 푸름이였습니다. 어느 어버이라 하든 마냥 신나게 뛰노는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가난하거나 괴로운 집에서 태어나 ‘놀이하는 어린 나날’을 못 보낸 어른이 있기도 할 텐데, 어린이는 누구나 놀이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커야 아름답습니다. 어른 또한 어린이와 함께 놀이하는 사람이어야 아름답고, 놀이를 실컷 즐겼으면,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다시금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지겹도록 하거나 억지로 하는 돈벌이 일거리가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즐겁고 아이와 함께하면서 기쁜 일거리를 찾아 내 살림살이에 알맞게 돈을 벌거나 밥을 벌면 됩니다. 돈을 더 많이 번대서 엄마 아빠가 서로 더 알콩달콩 놀 수 있지는 않거든요. 돈을 더 많이 벌었기에 아이 놀잇감을 잔뜩 장만해 주며 재미나게 놀도록 해 줄 수 있지 않거든요. 놀이에는 놀이동무가 있어야 하고, 일에는 일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둘이 서로 좋은 놀이동무이자 일동무입니다. 아이는 어버이 둘 사이에 새길을 열어 주는 놀이동무가 되면서 천천히 심부름을 익혀 집일을 거드는 고마운 일동무가 됩니다.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 줄 아는 바바빠빠는 어떠한 심부름이든 즐겁게 거뜬히 해낼 줄 압니다. 놀 때에는 잘 놀고, 일할 때에는 잘 일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한몫을 하는 사랑스러운 목숨을 선물받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 바바빠빠 (아네트 티종 그림,탈루스 테일러 글,이용분 옮김,시공주니어 펴냄,1994.6.30./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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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 아이 새벽맞이와 책읽기


 아버지는 네 시 반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하려 한다. 네 살 아이는 다섯 시 반에 칭얼거리다가 일어난다. 아이가 엊저녁에 일찍 잤다면, 아주 일찍, 그러니까 다섯 시나 여섯 시나 일곱 시쯤 잠들어 밤새 고이 자다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면 토닥토닥 달래며 함께 놀아야겠지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어제 하루 졸리면서 낮잠을 꾸욱 참고 저녁까지 맞이하면서 저녁에도 일찍 잠들지 않고 겨우겨우 잠들다가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달라붙으면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만다.

 아이 어머니는 큰방으로 나와서 아이를 옆에 누우라 한다. 아이는 어머니 곁에 눕지 않는다. 큰방 바닥에 널브러진 그림책 하나를 펼친다. 어제 아이가 보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놓은 그림책이다. 아직 어스름이 깔려 어두운데 저렇게 책을 보아도 되나 걱정스러워 불을 켜고 싶지만 불을 켜지 않는다. 조금 기다리면, 1분 2분 3분이 지나며 먼동이 트니까, 차츰 밝는 바깥 빛살을 받아들이도록 해 주자.

 아이는 그림책을 다 보고는 아버지 옆으로 와서 무릎에 머리를 받치고 누웠다가 방바닥에 모로 누웠다가 한다. 아이 어머니가 일어나 아이를 부른다. 둘이 옆방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는다.

 한숨을 돌리고 아이한테 간다. 아이는 눈을 뜬 채 누웠다.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힘들고, 그렇지만 잠을 자기는 싫은가 보다. 아이 볼에 아버지 볼을 대고 살며시 말을 건다. 예쁜 돼지 조금 더 코 자고 이따가 쑥 뜯으러 가자고, 학교에 가서 언니 오빠 들하고 놀려면 조금 더 코 자야지, 안 그러면 몸이 힘들어서 잘 못 논다고, 아버지는 쌀 씻고 더 일을 할 테니까 벼리는 코 자고 이따가 놀자고, 소곤소곤 말을 건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되는 사람이 젊을 적, 밤 열두 시나 한 시에 잠들더라도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했고, 늦게 자더라도 일찍 일어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아이는 늦게 잠들었어도 금세 몸이 개운해지는지 모른다. 어버이로서 더 기운을 차리고 새삼 기지개를 켜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려는 아이를 반가이 맞이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이는 아직 아이일 테니까, 새벽 일찍 일어났으면 낮잠을 자 주지 않겠나. 어쩌면 오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도 낮잠을 다시 거르며 저녁까지 칭얼댈는지 모르리라. 그래도 어버이라면 아이를 더 예쁘게 바라보며 더 고운 말씨로 따스히 토닥이며 얼싸안아야 하지 않겠나.

 아이를 다시 들여다본다. 발로 바닥을 통통 차더니 이내 잦아든다. 눈을 살며시 감았다. 조용히 잠들어 주려나 보다. 고맙다, 예쁜 아이야.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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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구나무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2010년 6월 30일에 멧골자락으로 살림집을 옮긴 우리들이 참으로 이 시골자락 작은 집에서 고이고이 살고픈 마음을 담아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는다. 첫째가 무럭무럭 크고, 둘째가 어여삐 태어나 자라는 동안, 살구나무 두 그루도 씩씩하게 뿌리내려 주면 좋겠다. 한 그루는 첫째 아이를 생각하면서 심고, 다른 한 그루는 둘째 아이를 헤아리면서 심는다.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살구나무 두 그루는 아직 막대기를 꽂은 듯한 모습이다. 밤에는 퍽 쌀쌀한데 이 두 어린나무가 다부지게 힘을 내어 튼튼하게 제 보금자리로 삼아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4344.4.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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