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55] 눈고양이

 

 읍내 장마당에 마실을 가든, 도시에 있는 헌책방에 나들이를 가든, 우리 식구들은 가방과 장바구니를 챙깁니다.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때에는 가방에 넣습니다. 가방으로 모자라면 장바구니를 꺼냅니다. 장바구니라 하지만, 천으로 짠 바구니라 할 테니까, 천바구니라고 해야 옳습니다. 가방을 쓰든 천바구니를 쓰든, 따로 환경사랑이나 자연사랑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가방과 바구니를 쓰는 일이 옳고 바르며 한결 즐겁다고 느낄 뿐입니다. 가방과 천바구니를 쓴대서 이 천바구니가 ‘에코백’이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천으로 만든 바구니일 뿐입니다. “GO GREEN”이라 새겨진 예쁘장한 ‘눈고양이 천바구니’를 잡지 선물로 끼워 주기도 한다던데, “푸르게 살자”라거나 “푸르게 걷자”라거나 “풀과 함께 걷자”라거나 “풀과 함께 살자”라 적는 천바구니는 없을는지, 또 ‘스노우캣’이나 ‘SNOWCAT’이 아니라 ‘눈고양이’라 적는 천바구니는 없을는지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스노우 퀸’이나 ‘스노우스 퀸’이라 안 하고 ‘눈의 여왕’이라 했어요. 조금 더 생각했으면, ‘눈 색시’나 ‘눈 아가씨’라 이름을 붙였겠지만. (4344.5.1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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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빠가 된 날 작은 곰자리 10
나가노 히데코 지음, 한영 옮김 / 책읽는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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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낳기’를 모르는 아버지들한테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3] 나가노 히데코, 《아빠가 아빠가 된 날》(책읽는곰,2009)



 첫째를 집에서 낳으려다가 마지막때에 옆지기 몸이 많이 나빠져서 병원으로 가서 낳았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어버이로서 집살림을 살뜰히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한여름날이더라도 방에 불을 넣어야 하는 줄 살피지 못했습니다. 방을 어둡게 해야 하는 줄 알더라도, 여름날이고 겨울날이고 아이 낳을 방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집에서 즐거이 낳으려고 하는 요즈음, 지난일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여러 가지를 살피거나 갖추는 일도 해야겠으나, 아이가 어머니 몸속에서 어떻게 크면서 어떤 몸과 마음으로 지내다가 바깥으로 나오는가를 먼저 잘 살피며 깨닫지 않고서야, 아이를 집에서건 병원에서건 조산원에서건 즐거이 낳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새 살붙이를 헤아려야 하고, 무엇보다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집에서 낳는 요즈음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이제 아이는 아주 마땅히 병원에서 낳고, 아기를 낳은 다음에 산후조리원에 다녀야 하는 줄 여깁니다.

 아이를 낳다가 힘들다든지, 어머니나 아이가 많이 아프다든지 할 때에 찾아가는 병원인 줄을 잊습니다. 아이를 낳고 몸풀이를 할 때에는 집식구가 궂으면서 기쁜 일을 맡아야 하는 줄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처럼 아이를 집에서 낳고픈 이들은 따순 이야기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따순 이야기에 앞서 정보조차 거의 없습니다. 보건소나 병원에서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니, 병원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새로운 한식구가 될 오롯한 목숨하고 앞으로 지낼 나날을 찬찬히 톺아보는 일부터 없습니다. 어두운 방(어머니 몸속)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오는 아이한테 눈부신 전등불을 비출 뿐 아니라, 다 다른 어머니마다 다 다른 겨를(더 일찍 낳거나 더 더디 걸려 낳거나 하는)을 들여 아이가 새 누리로 나오는 줄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 곁에서 몸풀이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갓 태어난 아이한테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기저귀를 채우는 일뿐 아니라, 아이가 쓸 물건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낱낱이 밝히며 가르치는 일이란 몹시 드뭅니다.


.. 아빠랑 엄마는 마음먹었단다. 온 식구가 함게 아기를 맞이하기로. 우리 집에서 말이야. 준비는 다 되었고, 엄마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어 ..  (4∼5쪽)


 아이를 낳아 아이와 어떻게 함께 살고 싶은가를 헤아리지 못할 때에는 아기를 어디에서 어떻게 낳아 누가 얼마나 몸풀이를 맡아서 하는가를 헤아릴 수 없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어머니가 낳고, 어머니는 한 집안 살가운 사람인 줄 생각하지 못할 때에,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흐름과 길과 삶을 옳게 바라볼 수 없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을에서나 가르치지 못하고 배우기 어렵습니다. 어른들부터 젊은이와 푸름이한테 아이낳기를 물려주지 못합니다. 교사라 해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나이와 마음과 몸에 걸맞게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합니다. 마을에서 이웃이라 하더라도 집안 어른과 어슷비슷한 생각과 앎조각으로 아이낳기를 바라볼 뿐입니다. 왜 종이기저귀나 가루젖을 선물할까요. 종이기저귀를 쓰면 쓰레기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이 쓰레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왜 생각하지 않을까요. 공장에서 만드는 가루젖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는가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아이한테 맞히려는 예방주사는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입에 넣는 먹을거리를 비롯해서 휴지 한 장까지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얼마나 생각할까요.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는 성교육을 하지만, 사람교육과 사랑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배움과 사랑배움에 삶배움이 되도록 이끌지 못해요. 사람은 저마다 어떻게 목숨을 얻고, 사람은 서로서로 어떻게 사랑을 나누며, 사람은 다 함께 어떻게 삶을 일구는가를 가슴으로 깊이 느끼고 온몸으로 또렷이 아로새기도록 돕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교육을 하면서도 막상 ‘성별에 따라 어떠한 몸이며 마음인가’를 비롯해서, 다른 성별에 따라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바라보거나 서로를 아끼면서 함께 살아야 하는가를 옳게 이야기하지도 못합니다.

 기껏 성교육이나 ‘아이낳기’ 교육을 한달지라도 여자한테만 하지, 남자한테 하는 일은 드물 뿐더러, 남자(아버지)들 스스로 아이낳기를 배우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성별 교육이든 교과서 교육이든 지식을 이야기하는 테두리에서 그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면서 사랑을 나누어야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졸업장이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살아갑니다. 누구나 통장이나 재산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너그러운 마음길로 살아갑니다.


.. “엄마는 아기를 낳아서 엄마가 된 거예요?” “그럼.” “그러면 아빠는 언제 아빠가 되었어요?” ..  (7쪽)


 그림책 《아빠가 아빠가 된 날》(책읽는곰,2009)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결은 퍽 앙증맞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를 낳는 어버이와 식구들 이야기치고는 좀 엉성하구나 싶습니다. 더구나, 《아빠가 아빠가 된 날》이라는 그림책에는 아이가 둘씩 있으면서 셋째가 태어나는데, 아빠나 엄마 되는 사람이 갓난쟁이를 왜 이리도 서툴게 안는가 궁금합니다. 아기 어머니가 갓난쟁이를 무릎 꿇고 앉아서 ‘아기 안은 팔이 허벅지에 닿지 않도록 떨어뜨리’면서 젖을 물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기는 젖을 5초나 15초 물지 않습니다. 5분도 물고 15분도 뭅니다. 갓난쟁이가 아닌 책을 들더라도 ‘책을 쥔 손을 허벅지에 안 대고 5분쯤 든 채’ 읽으면 팔이 어떠한지 생각해야지요.

 그렇지만, 그림책 《아빠가 아빠가 된 날》을 보면, 무엇보다 큰 잘못이 있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고”라 말하지만, 무슨 준비를 다 했는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합니다. 글로든 그림으로든 어떤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말로 이렇게 “준비는 다 되었고”라 해서 끝날 아이맞이가 될 수 없어요. 그림책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배냇저고리뿐 아니라 기저귀와 손수건조차 안 보입니다. 가위와 봉투는 보이고, 아기를 씻긴다는 목욕통은 보입니다(목욕통이 하나만 있으니 냉온욕이 아닌 따뜻한 물에 태지를 벗기는 목욕만 하겠군요). 그런데, 아기를 낳은 다음 커텐을 젖혀 햇볕이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합니다. 아기와 어머니가 얼마나 눈부셔 하는가를 모르기에 그렸구나 싶지만, 이렇게 할 바라면, 아기를 병원에서 낳는 일하고 다를 구석이 조금도 없습니다. 새근새근 잠든 갓난아기를 ‘아빠가 팔을 허벅지에 안 붙이고 엉거주춤하게 안은 모습(31쪽)’에서도 창문까지 열어 햇볕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 아름이는 말이야, 외갓집에서 태어났어. “귀여운 딸이 태어났다네.” 하는 전화를 받고, (아빠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지 ..  (13쪽)


 그림책을 그린 이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아빠도 아빠로 새롭게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쓰고 그렸(33쪽)”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이가 태어나면 새롭게 어머니와 아버지로 살아내기 마련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앞서부터 두 어버이는 새롭게 어머니 노릇과 아버지 노릇을 하기 마련이고, 혼인을 하기 앞서부터 두 어른은 새로운 여자 구실과 남자 구실을 하기 마련인데다가, 무럭무럭 몸이 크고 마음이 자라면서 씩씩한 한 사람이자 착하고 참다운 한 사람으로 살아내기 마련입니다.

 아기를 안고 귀엽게 바라본다든지, 자그마한 아기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 주겠다고 다짐했어(18쪽)” 같은 말을 할 줄 알아야 ‘아빠가 아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누리를 돌아보면, 이만 한 다짐조차 못 하거나 안 하는 아버지가 너무 많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어도 철이 안 들 뿐더러 옳게 살아내지 못하는 아버지가 참으로 많습니다.

 《아빠가 아빠가 된 날》이라는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기보다, 바보스러운 나날을 그치지 못하는 아버지들한테 ‘아이를 낳는 일’부터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요 사랑이며 아름다움인가를 깨달아, 이제부터라도 따스하고 사랑스레 살아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길잡이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그림책이라기보다 아버지한테 읽힐 그림책이구나 싶고, 철없는 아버지들은 ‘아이 낳는 흐름’이나 ‘아이를 낳고 몸풀이를 맡거나 집일을 맡는 삶’이 어떠한지 거의 모를 테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는 싹둑 자른 다음 ‘씩씩하며 튼튼히 마음을 다스리자’는 이야기만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자면, 집 바깥보다 집 안쪽에서 더 오래 지내면서 집밖일 못지않게 집안일을 사랑스레 맞아들여 나누거나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4344.5.17.불.ㅎㄲㅅㄱ)


― 아빠가 아빠가 된 날 (나가노 히데코 글·그림,한영 옮김,책읽는곰 펴냄,2009.4.24./95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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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5.14.
 :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다



- 어린이날에도 생각하고 어버이날에도 생각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찾아가지 못했다.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다. 둘째가 곧 태어나기 때문에 이 일 저 일 건사하느라 몸이 고단해서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 이웃 생극면 도신리까지 가는 길을 못 가곤 했다.

- 바람 제법 불지만 따스한 토요일, 오늘은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 두툼한 겨울옷 한 벌을 빨고 나서 수레에 태운다. 아침부터 아이한테 할머니 뵈러 가자고 말해 두었다.

- 자전거를 달리면서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신다며, 얼른 오라고 말씀하신다. 곧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헤엄터에 가시는데, 오늘 미리 전화를 하지 왜 이렇게 갑자기 오느냐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아이 할머니)는 오늘 헤엄터를 안 가기로 했다며 집에서 기다리신단다. 어머니, 죄송해요.

- 바람이 퍽 세게 분다. 광월리 집에서 생극면 가는 길은 야트막한 내리막인데 페달을 밟으면서 힘이 든다.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도 맞바람이지는 않겠지.

- 인천에서 살아갈 때에 골목꽃을 보러 바지런히 마실을 다녔지만, 곳곳에 조용히 깃든 꽃과 나무가 겨우 목숨을 이을 뿐이었다. 시골에서는 한참 신나게 달리더라도 이리로도 숲이고 저리로도 푸른 멧자락이다. 두 다리로 걸어서 멧길을 오르든, 이렇게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든, 어디에서나 푸른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 더없이 시원하면서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되겠지.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닿다. 문간에서 단추를 눌러도 소식이 없다. 어디 가셨나 했더니 꽃밭에서 일하시는구나. 아이는 이내 할머니 손을 잡고 꽃밭 사잇길을 걷는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밥 먹었어요?” “네. 밥 먹었어요.” “무슨 반찬 먹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와 먹었어요.” 뜬구름 잡는 대꾸이지만, 아이는 차츰차츰 말수가 늘어난다. 할머니가 닭장 앞으로 데려가 준다. 집 둘레에는 어른 닭만 있고 새끼 닭, 곧 병아리가 없는데, 할머니 닭장에는 중병아리가 있다. 할머니가 열무김치 담가 보라며 손수 다듬어 주셔서, 자잘한 잎사귀를 아이와 함께 들고 닭장으로 가져가서 내려놓는다.

-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할아버지 따라가느라 바쁘다.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문 닫고 와야지.” 하니, “네.” 하고 뒤를 돌아보다가는 한눈으로는 할아버지한테 달라붙고 싶어서 “아버지가 문 닫아. 파리가 들어가잖아.” 하고 외친다.

- 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찍은 사진을 아이한테 쥐어 주며, 아이보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드리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이러한 심부름을 곧잘 해낸다. “응, 뭐야?” “사진이요, 벼리 사진이요.” 할머니가 “우는 사진 있네. 왜 울었어?” 하고 묻는다. “말 안 들어서 울어요. 밥 안 먹어서, 벼리가.” 언제 왜 이렇게 울었는가를 아는구나. 용한 녀석. 그런데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오기 앞서, 집에서 밥 잘 안 먹었잖니?

- 할아버지가 “벼리 짜장면 먹을 줄 알아? 짜장면 좋아해?” 하시더니,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말씀한다. 아버지가 타고 온 자전거와 수레를 접어 할아버지 자동차 짐칸에 싣는다. 모처럼 수레까지 접어 본다. 덮개 단추를 떼고 등받이를 뗀 다음 왼편과 오른편 칸막이를 안쪽으로 눕히면 끝. 바퀴도 뗄 수 있지만, 짐칸에 넉넉히 들어가니 떼지 않는다.

- 무극 읍내 짜장면 집에 들어간다. 아이는 퍽 졸립지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노느라 졸음을 잘 참는다. 배는 그닥 안 고프기에 얼마 안 먹는다. 사이에 할머니한테서 얻어먹은 까까가 좀 많았으니까. 이제 우리 집까지 태워 주신다고 하기에 고맙게 얻어탄다. 집으로 돌아가자며 차에 타니, 아이는 할머니 품에서 금세 잠든다. 이제껏 잠을 잘 참았구나. 벼리야, 오늘은 네가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 반까지 안 자고 놀다가 고작 한 시간 잔 다음에 이렇게 나왔으니까 곯아떨어지지.

- 아이는 세 시간쯤 낮잠을 잔다. 낮잠에서 깨어나 일어나자 마자, “어, 할아버지 어디 있어?” 하고 묻는다. “할아버지가 벼리 집까지 태워다 주셨어.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다음에 또 찾아가서 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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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1.5.5.
 : 수레에서 이불을 걷어내다



- 오늘부터는 수레에서 이불을 걷어내기로 한다. 걷어낸 이불은 빤다. 날이 제법 폭하기 때문에 이불을 안 덮어도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아이는 수레에 앉으며 가야 하니까 아빠 두툼한 겉옷은 한동안 그대로 둔다.

- 어린이날을 맞이해 아이한테 자전거를 태워 주기로 한다. 아이는 저 혼자서 제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하루하루 다리힘이 쑥쑥 붙는 아이는, 이제 아주 조금씩 달릴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자전거를 달린다기보다 엉금엉금 몇 발짝씩 긴다고 해야 맞다. 이렇게 엉금엉금 기는 나날을 하루이틀 보내다가 어느 날 비로소 슬슬슬 저 가고픈 대로 자전거를 굴릴 수 있겠지.

- 아이는 수레에 앉아 마을길을 지나면서 마을 어르신한테 “안녕!” 하고 인사를 한다. 마을 어르신은 자전거 뒤에 붙인 수레에서 아이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 깜짝 놀라면서 금세 웃음꽃을 피우며 “어머 귀여워라. 그래, 안녕!” 하고 인사를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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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수다 - 차도르를 벗어던진 이란 여성들의 아찔한 음담!
마르잔 사트라피 글 그림, 정재곤.정유진 옮김 / 휴머니스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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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만 하는’ 여자와 ‘사랑 못 받는’ 여자
 [만화책 즐겨읽기 43] 마르잔 사트라피, 《바느질 수다》


 새벽에 일어나고 아침에 밥을 차리며 빨래를 조금 하다가는 청소를 또 조금 하면 금세 낮입니다. 낮에는 또 낮대로 아이한테 무엇을 먹일까를 헤아리고, 몇 가지 일을 하노라면 어느덧 저녁입니다. 날마다 맞이하는 하루는 날마다 훌쩍 지나간다고 느낍니다.

 바깥이 희뿌윰하게 밝는 새벽 네 시 무렵이면 으레 잠이 깨는데, 오늘은 다섯 시 오 분에 겨우 일어납니다. 어제 하루 일요일을 맞이해서 빨래도 꽤 하고, 이런저런 집일을 퍽 한 탓인지 몸이 좀 무겁습니다. 닭 우는 소리가 꽤나 시끄럽다고 느끼며 일어나는데, 닭이 우는 때는 요즈음 봄철에는 새벽 네 시 반쯤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텃밭 가장자리에서 쉬를 눈 다음, 이제 잎을 무럭무럭 돋우는 감자를 돌아봅니다. 잎사귀 앞뒤로 숨거나 달라붙은 무당벌레를 하나하나 잡아서 돌로 눌러 죽입니다. 토마토 잎을 꽤나 갉아먹은 무당벌레도 하나하나 잡습니다. 새벽에 잡고 낮에 보면 또 꽤나 달라붙고, 낮에 잡은 뒤 저녁에 다시금 돌아보면 또 많이 달라붙습니다. 잡아 죽이고 또 잡아 죽여도 끝나지 않습니다.

 고랑에서 돋는 풀은 뽑거나 캐도 그치지 않습니다. 또 돋고 새로 돋으며 자꾸 돋습니다. 그야말로 쑥쑥 돋는 온갖 풀입니다. 푸성귀를 길러서 내다 파는 이들이 푸성귀에 붙이는 값은 너무 싸지 않나 하고 생각하면서 무당벌레를 잡습니다. 어쩌면, 손으로 벌레를 하나하나 잡고, 손으로 풀을 하나하나 캐거나 뜯으면서 키운 푸성귀라면 제값을 받아야 할 노릇인지 모릅니다. 또한, 풀약을 치며 키운 푸성귀라 하더라도 풀약을 치는 값과 품이 만만하지 않은 만큼, 이러거나 저러거나 제값을 받으려면 오늘날 사람들이 가게에서 사들이는 값에 몇 곱을 해야 하리라 느낍니다.

 언제부터인가 ‘공정무역’이라는 말이 떠돕니다. 다국적기업이나 재벌기업이 시세차익을 많이 노리면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마구 부리며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 일꾼이 일한 보람을 옳게 거둘 수 있도록 하는 물건을 사고팔자는 일이라 합니다. 우리 식구들도 때때로 공정무역 물건을 장만하지만,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커피나 코코아나 초콜릿 들을 공정무역으로 사고파는 일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사람들이 날마다 흔히 먹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부터 옳고 바르게 사고팔아야 한다고 느끼거든요.

 한국사람은 쌀부터 얼마나 옳거나 바르게 사고팔면서 먹을까요. 배추 한 포기를, 무 한 뿌리를, 시금치 한 손을 얼마나 옳거나 바르게 사고팔는지요. 생활협동조합 회원으로 들지조차 않거나 생협 물건은 너무 비싸서 돈있는 사람만 사다 먹는다고 여기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논을 일구는 일꾼이 거둔 벼가 쌀이 되기까지 들이는 품을 헤아리면서 가게에서 쌀을 사다 먹는 도시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자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낮잠 자러 가고 여자들은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2쪽)


 만화책 《바느질 수다》를 읽습니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를 그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이 그린 작품입니다. 140쪽밖에 안 되는 만화책이 1만 원 값이 붙어 무척 비쌉니다. 여느 만화책을 생각한다면, 값이 세 곱이나 비쌉니다. 두꺼운 껍데기를 붙였기에 이토록 비싼가 싶지만, 2005년에 나온 《페르세폴리스》를 헤아리니 이때에 159쪽으로 나온 만화책도 1만 원이었습니다. 여느 만화책을 만드는 종이보다 좋은 종이를 쓰니까 값이 더 비쌀밖에 없는지 모르는데, 한결 빼어난 작품이더라도 여느 만화종이를 쓰고 여느 만화책으로 만들어 여느 사람들이 여느 손길로 사랑할 수 있게끔 여느 사랑을 다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을 꿉니다.


- “그래도 그 여잔 복도 많네. 최소한 불알 하나는 건드려 본 거 아냐. 나는 건드려 보기는커녕 지금까지 구경도 못했다고. 뭘 그렇게 쳐다보고 그래?” “그럼 네 새끼들은 어떻게 낳았는지 설명해 봐!” “성령으로 잉태했나 보지!” “자기들 말이 맞긴 해. 나는 자식을 넷이나 낳았지. 무려 넷이나. 하지만 남자 물건을 본 적은 없어. 그 사람은 방에 들어와 불을 끈 다음엔, 으차! 으차! 으차! 그렇게 나는 애를 가졌지. 그러니 고추를 볼 새가 있었겠어?” (21∼22쪽)
- “내 말 좀 들어 봐. 나는 열세 살에 처음 결혼했어.” “열세 살이요?” “그래, 열세 살! 족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장관이나 장성한테 시집가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어. 그래서 나보다 쉰여섯 살이나 많은 장군님을 남편으로 맞아야 했지.” “쉰여섯 살 차이요?” “그래, 예순아홉이나 먹은 노인네였어.” “아, 전혀 몰랐어요.” “이제는 알게 됐잖니.” “그 나이에도 여전히, 음, 그러니까, 그거 가능해요?” “사실, 나도 모른단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자꾸 말 끊지 말고 내 얘길 들어 봐! 그 사람은 어머니께 결혼 허락을 받으러 왔고, 어머니는 단숨에 그러라고 하셨지.” (25∼27쪽)



 만화책 《바느질 수다》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이름은 “바느질 수다”이지만, 이 만화에 나오는 할머니나 아주머니 가운데 바느질을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집에서 바느질을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안 보입니다. 바느질을 하면서 수다를 떠는 줄거리가 아니라,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줄거리인 《바느질 수다》입니다.

 꼭 바느질을 하는 사람만 “바느질 수다”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책이름 “바느질 수다”는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 수다라는 뜻보다 “바느질 + 수다”라는 이름에서 무언가 깊은 뜻을 넌지시 들려준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꾸 “바느질 하는 사람들 수다”를 곱씹고 맙니다. 만화영화로도 나온 만화책 《달려라 하니》를 되새깁니다. 창수네는 제법 잘사는 집이라 할 텐데, 창수네 어머니가 집에서 창수하고 하니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을 보면, 창수네 어머니는 ‘꽤 잘사는 집안 여자’라 할 만하지만, 으레 뜨개질거리를 손에 듭니다. 눈으로는 뜨개질거리를 바라보면서 입으로는 창수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빚은 숱한 어린이책을 읽다 보면, 사이사이 나오는 그림에서 뜨개질하는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곧잘 나옵니다. 영화로 나온 〈말괄량이 삐삐〉를 보아도,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떠는 대목에서는 으레 모두들 뜨개질을 합니다. 일본에서 나온 그림책에서도 어머니들이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다를 떠는 대목을 보면 으레 뜨개질을 합니다. 눈으로는 뜨개질거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예 눈으로 안 들여다보아도 빼어난 솜씨로 뜨개질을 하곤 합니다.


- “아직도 사랑하세요?” “당연히 아니지!” “그럼, 사진은 왜 가지고 계세요?” “그 사람 사진이 아니라, 내 결혼식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거야.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아직도 사랑할 수 있겠니? 그런 몹쓸 짓을 당하고도. 베를린에 도착한 날, 그 사람은 마중조차 나오지 않았어.” (40쪽)
- “유부남이 애인을 만나러 갈 때는 말이다. 깨끗이 빨아 빳빳하게 다린 옷을 입고, 이에서는 광채가 나지. 입에서는 꽃향기가 나고,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이야깃거리도 넘쳐나지.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주잖아. ‘당신은 아름답고 지적이오. 그러니까 뭐랄까, 당신이랑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당신은 정말이지 귀한 진주 같다고나 할까.’ 그저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거지.” (50∼51쪽)


 한국은 뜨개질이 자리잡은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한국사람 옷짓기는 뜨개질이 아닌 바느질입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뜨개질을 하든 바느질을 하든, 이와 같은 옷짓기는 으레 여자가 도맡습니다. 예부터 바느질하는 어머니와 뜨개질하는 할머니가 있을 뿐이지, 바느질하는 아버지나 뜨개질하는 할아버지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밥하는 아버지나 빨래하는 할아버지를 찾아보기 더더욱 어렵습니다. 걸레질하는 아버지나 아기 업는 할아버지는 얼마쯤 있다고 할 만할까요.

 그런데, 밥이고 빨래이고 걸레질이고 바느질이고,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적잖은 나라에서는 온통 여자한테 도맡깁니다. 서로 하는 집일이 아니고, 함께 즐기는 집일이 아니며, 나란히 나누는 집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이제는 남자도 여자도 집일을 안 하곤 합니다. 집일을 하는 일꾼을 따로 두곤 합니다. 이제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일을 안 하곤 하지만, 집일만 안 할 뿐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마저 안 하곤 합니다. 아이를 어릴 적부터 유아원이든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넣습니다. 초등학교에 들 무렵이면 벌써 여러 학원을 드나듭니다. 집에서 아이와 어버이가 마주하는 겨를이 몹시 적습니다. 어린 나날부터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틈이 얼마 없으면서 ‘한식구’라는 말을 섣불리 씁니다.


- “정말? 네 남편도 바람피워?” “거의.” “그게 무슨 뜻이야?” “그 사람은 언제나 한눈을 팔았어. 위험할 정도로 말이야. 특히 차 타고 갈 때! 눈이 아주 360도로 휙휙 정신없이 돌아가서 사고 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남자들도 폐경기 같은 게 있다는 거 알지? 그런데 남자들은 티가 덜 나잖아. 그래서 젊은 여자한테 그렇게 환장하는 거야. 자기들도 젊어 보이고 싶어서. 아직 능력이 죽지 않았다는 걸 온 세상에 광고하고 싶으니까! 늙은 여자랑 같이 있으면 늙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되고.” (73쪽)


 집에서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옆지기는 이야기합니다. 아이를 낳았으면, 적어도 세 해는 아이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세 해 동안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집에서 함께 지내면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첫째 아이하고 네 해째 함께 살아가면서 생각합니다. 옆지기가 하는 말을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살아내면서 몸으로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예쁜 모습도 미운 모습도 웃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집에서 고스란히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갈 때에, 아이는 아이대로 사랑을 받아먹고,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사랑을 나눕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사랑을 받습니다.

 어린 아이는 사랑 말고는 받을 만한 다른 무엇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한테는 사랑 빼고는 줄 만한 다른 뭐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는 사랑 아닌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한테 사랑 아닌 돈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너 살 어린 아이한테뿐 아니라 예닐곱 살 어린 아이한테도 매한가지입니다. 예닐곱 살 어린이라 하든 열한 살 어린이라 하든 사랑을 나눌 노릇입니다. 열네 살 푸름이라 하든 열여덟 살 푸름이라 하든, 사랑을 주고받도록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아야지,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주어야지, 돈을 줄 수 없습니다.


- “바하르가 결혼한다니! 상상이 가? 우리 딸이!” “이제 겨우 고등학교 졸업했는데?” “남편감이 억만장자래. 런던에 집이 일곱 채나 있대. 모나코에도 두 채나 있고.” “런던에 사는 억만장자? 몇 살인데?” “마흔한 살! 영국에 산 지 25년 됐대. 로열 칼리지 출신이래. 그 나이엔 원하는 게 확실하지! 아, 타지! 너무 잘됐어! 굉장해! 나, 너무 행복한 거 있지?” “그럼 어째서 마흔 살이나 먹었고, 25년 동안 유럽에서 살았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은 남자가 이제 겨우 열여덟 살짜리 계집애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건지 설명해 봐!” “왜냐하면 말이지, 너도 서양 여자애들이 어떤지 알지? 열 살, 열한 살이 지나면 순수함을 잃지. 그 사람은 이란인이고! 그래서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딸이 거기에 딱 들어맞은 거야.” “잘 들어, 파르바네! 네가 여기까지 찾아왔으니까 말인데, 내 의견을 말해 줄게. 나는 네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해? 바하르는 아직 어려. 공부도 하고, 독립심도 키우고, 자아를 발견할 수 있게 좀 내버려 둬! 너도 네가 고른 남자랑 결혼했잖아. 그 애도 좀더 큰 후에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줘.” “그래서 결과가 어떤지 아니? 내가 고른 남자는 말다툼을 할 때마다 내가 자기를 쫓아다녔다고 어찌나 불만을 늘어놓는지 말도 마. 양가집 규수라면 얌전히 기다렸을 거라면서 말이지.” (96∼97쪽)


 아이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어버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살다가 곱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어버이한테서 사랑받으며 살아온 아이는 서로서로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을 듬뿍 누리는 길을 걷다가 곱게 사랑씨를 남기며 흙으로 돌아갑니다.

 만화책 《바느질 수다》를 덮습니다. 처음 태어나던 날부터 짝꿍을 만나 아이를 낳고 할머니가 되기까지 살아온 숱한 여자들이 어린 나날부터 얼마나 사랑받았던가 하고 곱씹습니다. 만화책 《페르세폴리스》에 나오는 주인공은 당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어린 나날부터 따스히 사랑받았습니다. 《바느질 수다》에서 이야기를 풀고 맺는 주인공 또한 둘레 할머니들과 고모들한테서 넉넉히 사랑받습니다.

 만화를 그린 마르잔 사트라피 님은 언제나 따순 사랑이 감도는 터전에서 예쁘게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마르잔 사트라피네 할머님이나 고모님은 사랑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할 만합니다. 남자들한테 성 노리개라든지 부속품이라든지 집일을 해주는 밥어미나 심부름꾼 대접만 받았다 할 만합니다.

 제법 돈있는 집에서 살아온 여자들이든, 몹시 돈없는 집에서 살아온 여자들이든 ‘여자 삶’이라는 테두리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예쁜이 수술은 엄두도 못 낼 가난한 집 여자들이 ‘차 마시는 수다’ 아닌 ‘바느질 수다’를 떨면서 주고받을 아쉬움이나 슬픔이든, 물질문명을 퍽 누리던 지식 여성들이 느긋하게 ‘차 마시는 수다’를 떨면서 ‘여성이 누릴 살곶이’에 얽힌 고단한 나날을 주고받든 똑같습니다.

 문득 김은성 님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새만화책,2008)가 떠오릅니다. 《내 어머니 이야기》에 나오는 ‘솔방울을 속치마 샅에 끼우며 노는 할머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곰곰이 헤아리자니, 여자들 ‘바느질 수다’나 ‘차 마시는 수다’에서는 온갖 눈물과 웃음이 고스란히 배어납니다. 그렇지만, 남자들 ‘술집 수다’나 ‘담배 수다’는 그닥 재미없을 뿐 아니라 따분하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이 논이나 밭에서 일할 때이든, 멧자락에서 나무를 하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에 펼치는 수다가 되면 몹시 재미나며 즐겁습니다. (4344.5.16.달.ㅎㄲㅅㄱ)


― 바느질 수다 (마르잔 사트라피 그림·글,정재곤·정유진 옮김,휴머니스트 펴냄,2011.2.14./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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