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꽃도 아름답다
문영이 지음 / 달팽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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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에서 살아가시는 할머님 모습


- 책이름 : 지는 꽃도 아름답다
- 글 : 문영이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7000원



 이 책 하나 21 ― 할머니 삶터도, 내 삶터도 아름다워요
 :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읽으며



 〈1〉 내가 발딛고 있는 삶터


 태어나고 자란 인천을, 지난 1995년 4월 5일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15일, 열두 해 만인지 열세 해 만인지 돌아왔습니다.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안 분위기’ 탓에 인천 부모님 집에서 더 살기 싫어지기도 했지만, 새로 지은 널따란 아파트 방 한켠에서 지내는 일은 꼭 옥살이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살고 싶었고, 이웃과 어깨동무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넓은 집으로 옮겨 가고 싶어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넓지 않아도 좋다’고, 마흔여덟 평짜리 새 아파트보다는, 연탄 때는 낡고 조그마한 5층짜리 아파트였어도, 열세 평짜리 헌 아파트가 훨씬 낫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는 옆집과 윗집과 아랫집 모두 사촌과 다름없는 이웃이었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았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제 동생이었으며, 동네 형들은 제 친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 나도 어릴 때는 어른들 새벽잠 없는 내력도 몰랐고, 번개같이 움직이는 칼날 밑에서 실같이 이어져 내리던 실고추 내력도 몰랐다. 그리고 고단한 잠 깨워 이른아침 대참에 찬이슬로 얼굴 씻기시는 어머니 마음은 더더욱 몰랐다 ..  〈13∼14쪽〉


 나어린 사람한테 열 몇 해는 얼마나 긴 세월일까요. 키가 우쑥우쑥 자라고 몸집이 덩실덩실 커집니다. 나이든 사람한테 열 몇 해는, 늙은 나이에 숟가락 몇 번 더하는 세월일까요. 인천을 떠나기 앞서 보았던 그 골목길이 그대로인 곳에서는 ‘그동안 햇볕에 조금 더 바래고 먼지와 차방귀에 조금 더 까매졌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는 집과 길과 나무를 만납니다. 그동안 좀더 많은 사람과 일을 겪었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이 허리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어르신들을 골목길에서 만납니다.


..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편이 조청을 못 만들게 한다. “사서 먹는 것보다 돈도 더 들고, 욕보고” 하지만, 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걱정해서란 것을 안다. 슬며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떡방앗간에 가 보면 설탕가루나 당원 봉지를 툭툭 터서 쌀가루에 섞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입맛을 버려 놓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 떡을 할 때는 고명이나 떡가루에 그런 잡스런 것을 못 넣게 지킨다. ‘요즘 사람은 다 단것을 좋아한다’고 떡을 하러 온 사람이나, 방앗간 주인이 말리지만, 나는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  〈160쪽〉


 문득, 나고 자란 이곳에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좁고 자그마한 집이기는 해도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에서 오순도순 지내셨다면 당신들께서 인천을 떠나셨을까 싶은 생각(부모님은 인천을 떠나 용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옮기셨습니다). 덧붙여 제가 인천집을 싫어하며 떠났을까 싶은 생각.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이었다면 마땅히 나무 한 그루를 어린나무로 심거나 씨앗으로 심었을 테지요. 그 나무가 여태껏 자랐다면 나즈막한 지붕을 훌쩍 넘어 담벼락 바깥 골목길까지 그늘을 드리우거나 열매 달린 가지를 내어주었겠지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저는 저대로 기둥 굵게 자란 나무를 보며 집구석을 애틋하게 돌보았겠지요.

 창영동, 금곡동, 송현동, 송림동, 화평동, 만석동, 인현동, 송월동, 전동, 북성동, 송학동, 내동, 용동, 답동, 율목동, 신포동, 신생동, 신흥동, 유동, 항동, 선화동, 숭의동, 도원동, 도화동, 주안동, …… 4월부터 다섯 달 동안 두 다리와 자전거로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면서 동이름을 하나하나 읊어 봅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신흥동에서 신포동까지 장보러 걸어오던 일, 북성동을 지나 신생동 은행에 들렀던 일, 답동과 율목동을 가로지르는 싸리재를 넘나들던 일, 국민학교가 있던 신흥동 둘레 숭의동과 선화동과 도원동에 사는 동무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 기찻길로 석탄이 들어오면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서 기찻길로 다시 서울 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일, 기차가 안 다닐 때면 하나부터 천까지 헤아리며 기찻길을 밟고 주안동까지 걸어서 오가던 일을 곰곰이 되짚습니다.

 재개발과 도심정비사업과 구시가지정화라는 달콤쌉싸름한 이름을 내건 막개발로 사라진 조그맣고 지붕 낮은 한 층짜리 집들을 떠올립니다. 아직까지 골목집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으면서 해가 뜨면 빨래나 이불을 내놓아 말리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해바라기를 하는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예나 이제나 골목길 한쪽에서 일을 합니다. 잠깐잠깐 쉬는 가운데에도 두 손은 재게 놀려 굴이나 조개를 까거나 나물을 다듬어 저잣거리에 내다 팔 준비를 합니다.


.. 나는 무슨 먹을거리든 주된 재료 맛을 살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모든 떡을 소금간만 하듯, 김치도 무배추가 지닌 단맛을 살리려 많은 양념을 넣지 않는다. 올해는 통깨 넣는 것도 그나마 잊어버렸다 ..  〈155쪽〉


 머잖아 재개발로 쓸려나갈 주안동, 수봉공원 옆쪽 구석진 동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감나무를 사진에 담을 때입니다. “거, 뭐하시오?” “네, 감나무가 좋아서 사진으로 담으려고요.” “허, 감나무는 뭐하러 찍나?”

 왜 사진 찍느냐고 말을 건 아저씨네 집에서 자라는 감나무도 찍을걸 그랬나요. 아저씨네 감나무를 사진으로 담았다면, 그 아저씨는 무어라 대꾸를 하셨을까요.

 지난 일요일, 송림동 달동네에 있는 꽃집(꽃을 파는 집이 아니라, 꽃을 많이 키우는 집입니다. 꽃그릇 숫자가 쉰은 훌쩍 넘을 듯하고, 온 집이며 마당이며 남새밭으로 가꾸어 놓아서, 꽃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집임자 아주머니가 2층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잘 자란 까마중을 살짝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까마중을 따먹었다면 아주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나.


.. 어차피 살림은 정성이다. 물을 쓸 때도 무엇을 먼저 씻을까 차례를 잡아서 씻고, 불을 쓸 때도 불을 한 번 지펴 차례를 잡아 잇달아 쓰다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만 옆 불구멍을 잠깐 열고 쓰면 좋을 것을 ..  〈148쪽〉


 지난 수요일, 자전거로 광명에서 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당산동을 지나 신촌까지 달렸습니다. 한참 도림동을 지나갈 무렵에는 일부러 오르락내리락하는 달동네 안쪽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서울 도림동 골목집도 조금 묵은 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을 계단이며 난간이며 담벽 위며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한둘이든 몇몇이든 올려놓습니다. 좀더 오래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해서 고추 말리는 집까지 보지는 못합니다. 요즈음 인천 동구 골목집들은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거든요. 다 말리고 거두어들인 집도 있으나, 웬만한 골목길마다 ‘차 못 다니는 좁은 길’이면, ‘차 뜸한 길’이면 으레 한쪽으로 길게 고추를 펼쳐놓습니다. 비가 오면 비닐이나 천막을 씌워 놓습니다.


.. 옥수수밭을 매고, 나머지 덩굴콩도 심었다. 덩굴콩이란, 빛깔이나 모양이 제비콩 같으면서 동글동글한데, 맛은 그보다 훨씬 좋은 콩이다. 이름을 몰라, 유난히 덩굴져 오르기를 좋아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  〈120쪽〉


 어제는 항동에서 집으로 걸어옵니다. 우산이 없어서 택시나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가방에 든 것은 비닐로 꽁꽁 싼 다음 걷기로 합니다. 장대처럼 쏟아지다가 멎고, 가늘게 내리다가 이내 굵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멎는 비. 답동성당 옆으로 지나갈 때 뒤따르던 차가 빵빵거립니다. 10초만 기다려 주면 빵빵거리지 않고도 우리 옆으로 스쳐 지나갈 틈이 나오는데. 골목길 한쪽에 함부로 대놓아 길을 좁게 하는 자동차를 보며 빵빵거리지 않는 차들입니다. 꼭 사람한테만 빵빵거립니다.


.. 옛 방식대로 버려지는 쌀뜨물로 그릇을 씻고, 빨래는 환경친화비누로 쓰는 일을 철저한 사명으로 지킨다면 맑은 냇물이 간직되고, 떠났던 가재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시냇물이 살아나 예전같이 아무 데서나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산을 찾는 배낭 속에서 물병을 빼고 그것을 돈으로 셈해 보면(플라스틱 물병까지) 엄청나리라 ..  〈101쪽〉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비가 와서 물이 차거나 넘치는 곳에 가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옛 시외버스터미널 앞길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찰방찰방. 곱고 멋진 옷 차려입은 어른들은 이제나저제나 버스가 물살을 가르며 와 주나 걱정하며 처마 밑 계단짬에 주루루 서 있고, 저를 비롯한 꼬맹이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가슴까지 물이 찬 터미널 앞길에서 신나게 놉니다.


.. 거름으로 쓰이는 쓰레기는 밥상에 올려지는 밥만큼이나 정갈하게 골라낸 다음이라야 쓸 수 있다. 비닐조각은 없느냐? 유리조각이나 건축폐기물은 아니냐? 화학약품이나 많은 소금기는 없느냐? 건전지, 깡통, 수은, 쇠붙이는 섞이지 않았느냐? ……… 땅도 땅 나름대로 깨끗한 정성을 쏟아야 소화해 내고 살이 된다 ..  〈88쪽〉


 제가 중학생일 때 형은 고등학생. 형은 우산을 거의 안 가지고 다녔습니다. 내리는 비를 그예 맞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우산을 둘 쥐어 주면서 형한테 주라고 하지만, 형은 우산을 받지 않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어 형한테 씌워 주지만, 형은 발걸음을 빠르게 놀리며 비를 맞고 가겠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이면 늘 되풀이되는 실랑이였는데, 오래지 않아 저도 형을 따라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학교를 오갑니다.


..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다워서이다 ……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은 그런 곳에 아스팔트길이 왜 있어야 할까? 몇 십 몇 백 년을 자란 숲을 어떻게 그리 쉽게 벨 생각을 했을까? ..  〈79∼80쪽〉


 아무 걱정도 생각도 근심도 마음도 없이 비를 맞고 걷던 적이 언제였을까.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걷기로 하니, 빗방울이 튀어 옷을 적셔도 괜찮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길에서 사진기도 비를 맞히며 걷습니다. 골목길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옆지기가 “또 흑백으로 찍어요? 비오는 날은 칼라로도 찍어 줘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알았어요.” 대꾸하고는 렌즈 앞에 끼운 필터를 빼고 흑백으로 맞춥니다.

 비오는 날 구름을 흑백으로 찍으면 빛도 구름 그림자도 한결 또렷합니다. 빛깔있는 사진으로 찍으면 빗물에 촉촉히 젖어드는 계단이며 골목집 꽃그릇이며 알록달록한 느낌이 살아납니다.


..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바뿐 내 아들딸을 생각하여 고생을 마다하지 않듯이, 늙은 사람도 할 수만 있다면 고단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도 있어야겠다. 자리를 양보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자리를 받은 것 같은 마음은 없었는지? 그리하여 건성인 인사치레는 없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  〈70쪽〉


 예배당에서 나온 듯한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쓰고 골목을 걷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신을 벗고 양말발로 걷습니다. 쏟아지기도 하지만 골목길을 줄줄줄 흐르는 빗물 때문에 신을 신으나 마나겠지요.


.. 오빠는 내게 가벼운 심부름 한 번 시키는 일이 없었지. 삼촌들이 어쩌다, “영이야 물 한 그릇 다오.” 하면, “삼촌, 영이도 삼촌하고 똑같은 학생이여. 왜 그 애한테 심부름을 시켜.” 하고 오빠보다 두 살 아래인 삼촌에게 싫은 눈치를 보냈지 ..  〈41쪽〉


 집에 닿습니다. 젖은 옷을 벗고 젖은 가방을 풀어 놓습니다. 가방을 열어 비닐봉지에 담긴 책을 꺼내어 펼쳐놓습니다. 몇 권이 살짝 젖었네요. 비닐봉지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 있는 듯합니다. 가방 빨아 본 지 꽤 되었구나 싶어, 이 김에 함께 빨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젖은 옷가지와 가방을 들고 살림집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며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어,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전깃줄을 붙잡고 앉아 있네요. 흔하디흔한 고추잠자리가 이제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데. 요 고추잠자리가 우리 집 창가 전깃줄에서 비긋기를 하고 있군요.


.. ‘이제 나도 벌레먹은 옥수수가 내 몫이구나.’ 지금 딸아이는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아득한 딱한 일로 보일까? 그 마음 이렇게 잠깐인 것을……. “오늘은 벌레먹은 것까지 어렵지 않게 다 팔고 왔다.”며 어린 아들딸 앞에서 즐거워 할 그 옥수수장수를 떠올리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  〈31쪽〉


 밤새, 새벽내, 또 아침나절까지 해가 났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가랑비로 바뀌었다가 갰다가 되풀이됩니다. 바람은 몹시 붑니다. 뒷집 너머로 있는 전철길에서는 5분에 한 대쯤 지나가는 전철 소리가 꾸준히 이어집니다. 때때로 석탄 실은 짐열차가 지나갈 때면 구르르릉 하면서 건물이 조금조금 흔들립니다. 1958년에 지은 건물인데, 여태껏 저 짐열차 구르르릉에도 잘 견디며 서 있군요.


.. 식혜가 검은빛이 나는 것은 밥이 적게 들어간 것이고, 따라서 달지 않아 설탕을 많이 넣은 억지 맛이다 ..  〈160쪽〉


 〈2〉 일흔세 살 할머님 이야기


 이야기책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너덧 번 읽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또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오셨는가 돌아보면서.

 책읽을 틈이 없이 바쁘게 산다는 동무나 선후배한테 이 책을 사서 선물해 줍니다. “너희 할머님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봐.” 하고 말하면서.

 남편바라지에다가 딸아들바라지로 젊은 날을 다 바친 문영이 할머님은, 마지막 아이가 제금을 난 다음, ‘이제부터는 내 하고픈 일을 하나 해 볼라요’ 하고 남편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시오’ 하고 선선히 받아 주는 말을 듣고, 예순세 살이던 1997년에 문학강의를 처음으로 들어 봅니다. 그 뒤 당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띄엄띄엄 짤막한 글을 쓰셨고, 2003년 8월에 이오덕 선생님 책 《우리 글 바로쓰기》를 읽으며, ‘내가 참 바른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당신이 썼던 글을 ‘우리 글 바로쓰기’에 알맞게 추슬렀습니다. 머리가 허옇게 된 ‘흰바가지’가 되었으나 “동네에 불이 나면 물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이고, 자배기를 안고 저마다 오직 불을 꺼야 한다는 한 생각으로 뭉치던 사람들”처럼 자그마한 글 하나를 써서 나누면서, 말이며 삶이며 사람이며 땅이며 곡식이며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4340.9.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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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20 : 어떤 책을 선물할까


 모리모토 코즈에코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 《조폭 선생님》을 봅니다. 주인공은 조직폭력배 후계자인 딸이자 고등학교 수학선생. 조직폭력배 집안에서 태어나 조폭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 이 가운데 학교 교사들은 조폭을 쓰레기처럼 여겹니다. 어린 딸아이는 커서 교사가 되기로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생각에 아이들이 물들지 않으면서 자기 꿈을 키우고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산바치 카와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 《4번 타자 왕종훈》 쉰두 권을 다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배정서를 잘못 받아 엉뚱한 학교로 가게 된 시골아이 왕종훈은 야구 솜씨가 하나도 없었지만, 농사꾼 아들답게 땀방울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면서 자기가 사랑하고 아낄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갑니다. 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땅꼬마이지만, 이 땅꼬마는 터무니없다고 할 만큼 연습과 훈련을 거듭하면서, 겉모습으로만 얕잡아보는 사람들 매무새를 속속들이 깨뜨립니다.

 “일본사람은 엉터리라서 일본만화가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하늘을 날아도 “네, 하늘을 나는군요” 하고 받아들일 뿐이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만화에서도 “사람이 하늘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일”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한국만화 가운데 적잖은 숫자는 억지나 거짓으로 느껴집니다.

 《기독교의 전도자 6인》(신구문화사,1976)을 읽으니, 조선 시대에 천주교를 받아들여 온몸으로 믿고 따르던 정하성이라는 분은, 천주교리 참뜻을 헤아리며 착하고 올곧게 살아가려고 애쓸 뿐, 자기 뱃속을 차리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살에 관한 어두운 백서》(종로서적,1981)를 읽으니, 프랑스 사회에서도 엉터리 같은 일이 참 흔히 일어나는군요. 공무원들은 ‘공무집행’만 하고, 자기가 하는 공무집행 때문에 삶이 무너지고 살아갈 빛을 잃으며 목숨을 끊는 사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댁의 문제지요. 저는 돼지고기 상점의 보건 상태를 조사할 뿐입니다. 시설개조를 못하신다면 영업을 계속 하실 수 없을 겁니다.(150쪽)”라고 말하며.

 《오카방고의 숲속학교》(갈라파고스,2005)라는 책을 읽습니다. 아직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아이들이 어머니를 따라 아프리카로 삶터를 옮깁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도 보츠와나가 어디 있는지 찍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차 뒷자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170쪽)”을 보게 되고, 저마다 자기한테 무엇이 중요하고 아름답고 고마운지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응노―서울ㆍ파리ㆍ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를 읽습니다. 독재정권이 그림 그릴 자유를 억눌렀지만, 이 억누름은 이응노 님 스스로 새 그림세계를 열도록 도와주기도 했군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펴낸 책이 하나둘 나와 출판기념잔치를 벌입니다. 이 책들은 누구한테 주려고 만들까요. 이 책들에는 무슨 이야기를 담을까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살가운 동무한테 선물할 만한 책으로 이어갈까요. (4340.9.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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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이라는 긴소설이 1970년대 끝무렵에 조그마한 ‘손바닥책(문고판)’으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으나, 그 뒤로, 또는 그 앞으로 ‘긴 줄거리를 담은 책’이 손바닥책으로 나온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책이 새로 나온 뒤 얼마만큼 팔리게 되면, 손바닥책으로 보급판을 만드는 문화가 널리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토지》 같은 책도 일본에서는 손바닥책으로 나옵니다. 보도사진가를 이야기하는 어느 일본 손바닥책은 쪽수가 자그마치 1000쪽을 훨씬 넘는데 책 만듦새는 튼튼하여 책장이 안 떨어지고, 읽기에도 괜찮고 무게도 가볍습니다. 우리 나라였다면 이런 책을 큼직하고 무겁게 만들어서 들고 다닐 수 없게, 그러니까 책꽂이에만 모셔 두도록 했겠지요. 책값은 5만 원도 아닌 10만 원쯤 붙었을 테고요.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애장용’이라고 하며 양장에다가 책상자까지 만든 판이 나온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좀더 많은 사람이 가벼운 마음으로 값싸게 사서 널리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보급판’이나 ‘손바닥책’을 만들겠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토지》나 《혼불》 같은 긴소설도 손바닥책으로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소설책을 한국처럼 두껍고 무겁고 비싼 고급종이를 써서 만드는 곳은 없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이든 다른 어느 나라이든, 소설책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그러니까 공부하는 책, 학문 깊이를 파헤친 책, 인문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어떤 전문 분야를 다룬 책도, 그림과 사진이 많이 들어간 예술 쪽 책도 으레 가볍고 튼튼하면서 보기 좋고 값싸게 만드는 편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면서도,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장서로 갖추어 자료로 쓸 수 있는 판도 함께 만듭니다(도서관에서 기꺼이 사 주니 이렇게 할 수 있을 테지요).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요새는 웬만하게 만들어서는 책이 안 팔린다고 해서 책값을 올리며 빛깔 곱게 꾸밉니다. 책마다 껍데기를 씌우거나 띠지 두르기는 유행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래, 책값을 올려붙인 책이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사 주지 않는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마을 흐름은 ‘어차피 이 책을 사서 볼 사람은 사서 보니까, 그렇게 사서 보아야 할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내자’고 생각하는 도둑질은 아닐까요. 좀 지나친 말이라 하실지 모르겠으나, 우리네 책마을 모습이 이렇잖아요. ‘어차피 사서 읽을 사람’이라 한다면 ‘좀더 값싸고 즐겁게 사서 보도록’ 해 주어야 좋고, ‘이 책을 몰라보고 못 사는 사람한테도 널리 알리는 길’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를 출판사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들부터 ‘속에 담은 줄거리’를 살피며 책을 사 보는 버릇을 제대로 못 들이고, 또는 안 들이고 있으니까요.

 겉꾸밈(디자인이나 장정)이 좀 허술하더라도 속에 담은 줄거리가 알뜰해야 좋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졌거나 무슨 교수가 쓴 책이라 해서 훌륭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책을 낸 역사 깊은 출판사라고 해서 ‘이곳에서 새로 내는 책마다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아직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 써낸 책을 낯선 출판사에서 냈을 때, 이 책들은 찬찬히 살피며 돌아볼 값어치가 없을까요.

 제가 헌책방을 자주 다니며 책을 보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① 겉꾸밈이 좋다고 모두 읽을 만한 책이지 않습니다. ② 이름난 사람, 학식과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해서 훌륭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지 않습니다. ③ 권위와 역사 깊은 출판사라 해서 한결같이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을 내지는 않습니다. ④ 책크기(판형)가 작고 가볍고 값싸고 좀 질이 낮은 종이를 쓴 책이라고 해서 뭔가 좀 덜 떨어지거나 모자란 책이지 않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은 사람이든 책이든 사물이든, 일자리든 자연이든 삶이든, 사진이든 연속극이든 영화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좋고 싫고’를 가리기 일쑤입니다.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일도 잘하고 똑똑할 것처럼 생각하지 않나요. 얼굴이 곱상하고 예쁘면 더 마음이 끌리지 않나요.

 참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일 때부터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일류대학교 들어가기 난장판’에 끌려들고 맙니다. 사물과 사람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자기가 참으로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자리를 찾기보다, 돈과 이름과 힘을 더 많고 높고 크게 얻을 수 있는 학벌과 연줄을 찾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갑니다. 형편이 이러하니, 책 한 권을 볼 때에도 속보다 겉을 더 따지거나 찾게 되지 싶어요. 요즘 들어서 드물게 나오지만, 못생긴 탤런트나 영화배우 숫자는 참 적어요. 연속극에 나오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잘나고 잘생기고 몸매 늘씬한 사람입니다. 장애인은 아예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만큼 ‘장애인 이동권’과 ‘장애인 활동권’이 막혀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더욱이 장애인 이야기나 푸대접받는 소수자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구경하기 힘들고, 어쩌다 나오는 책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구호를 벗어나지 못해요. 영어니 논술이니 하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동안 아예 한참 뒤로 밀려나 버리고 만 ‘우리 말과 우리 문화 이야기’를 다룬 책은 큰 책방 진열장에서도 구석진 자리에나 조금 있을 뿐입니다. 뭐, 이런 책을 사 보는 사람이 드무니 책방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요.

 사람 손은 하나라서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도 하나입니다. 욕심을 잡으면 나눔을 못 잡고, 명예나 돈이나 권력을 잡으면 사랑과 믿음과 즐거움을 놓칩니다. 겉멋을 잡으면 속멋을 놓치기 마련이고 학벌과 학력을 잡으면 참된 사람살이와 사람공부는 놓칠밖에 없습니다. 책 하나 만들어 사람들한테 읽히겠다는 책마을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이 마음과 살림을 좀더 헤아리고 살피는 눈길을 잡지 않는다면 얄궂은 길로 갈밖에요. 책 하나 찾아내어 읽는 우리들도 겉꾸밈과 유명세 따위에 자꾸자꾸 빠진다면, 속을 잘 차리면서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꾼 책하고 그지없이 멀어질 테고요.

 어제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황안나 지음,샨티,2005)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예순다섯 나이에 두 다리로 남녘땅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걸어서 밟아나가는 여행을 떠난 할머니 삶과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나 역시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하기에 ‘오늘’은 항상 가장 적합한 때이다.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본단 말인가!” 하는 대목에서 한동안 책장을 덮습니다. 이 외침 그대로 우리들은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을 밝히는 책, 겉멋이나 유명세나 유행이 아니라 자기한테 지금 가장 쓸모있으면서 올곧음과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책, 달디단 설탕이나 짜디짠 소금이 아니라 구수하면서 하루 세 끼니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된장찌개 같은 책을 즐기는 일이 출판사한테는 ‘조그마한 책’ 조촐히 내는 마음을 일으켜세우고, 우리 자신한테는 ‘조그마한 책’ 가붓이 즐기는 마음을 잠깨울 수 있을까요. 조용히 믿어 봅니다. (4338.8.18.나무.처음 씀/4340.9.16.해.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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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에서 볼일을 본 어제 낮, 자전거를 몰고 남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보라매공원을 스쳐서 영등포에 이릅니다. 영등포역을 웃지르는 고가도로를 탑니다. 영등포역 둘레에 조용히 자리한 지붕 낮은 집이 몇 군데 보입니다. 비바람에 지붕 날아가지 말라며 벽돌로 꾹꾹 눌러놓았네요. 어느덧 여의도를 지나 당산역. 한강시민공원으로 잠깐 접어듭니다. 여섯 달 만에 지나가 봅니다. 그때나 이제나 자전거 타고 시민공원 들어가는 길은 참 알쏭달쏭입니다. 길이 익숙한 사람 아니고는 들어갈 구멍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길알림판이란 보이지 않으니까요. 가파른 구름다리 계단을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올라갑니다. 차라리 들고 올라가는 편이 나을까. 한강다리를 건너고 합정동으로 나옵니다. 자전거가 안쪽 길로 들어가도록 마음써 주는 자동차가 좀처럼 없었으나 그예 한 대가 살살 멈춰 줍니다. 고개 꾸벅. 홍대전철역 앞을 지날 무렵, 뒤에서 자전거를 들이받을 듯 마구 모는 스포츠카 한 대. 버스는 정류장에 반듯하게 대지 않아 뒷차는 하는 수 없이 길에 뻘쭘하게 서고. 차방귀와 자동차에서 내는 뜨거움을 옴팡 뒤집어쓰며 동교동에 닿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다른 곳에서 달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기 딸아들이 자전거를 몰고 볼일을 보러 다녀도 앞뒤옆에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갑자기 끼어들까요. 당신한테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는 사람이, 또는 살가운 벗님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와 놀래킬까요.

 동교동 헌책방에서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책을 구경합니다. 제 뒤로 지나가다가 툭 치는 책손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구경하는 자리에 밀치고 들어오는 책손도 있군요. 마침 그림책을 살피고 있는데, 책방 문을 열자마자 제 옆자리로 밀치고 들어온 분은 아이들 영어 그림책을 고릅니다.

 신촌에 있는 헌책방 한 군데 더 들릅니다. 오늘은 몸이 찌뿌둥해서 책 구경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 신촌닷거리에서 애오개로 내닫습니다. 덩치 큰 버스는 자전거한테 1미터를 내주기보다는 빵빵거림으로 주눅들게 합니다. 노란 학원버스는 어디에서나 신나게 내달립니다. 저 버스에는 틀림없이 아이들이 타고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뒷날 운전면허증을 따서 차를 몰게 될 때에 어떤 매무새일까요.

 어린이책은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고 아버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좋은 책’을 많이 사 주십니다. 비록 중학교 들어가는 때부터는 ‘좋은 책’은 뚝 끊어지고 ‘학습지와 참고서’로 바뀌긴 해도. 그나저나 우리 어버이들은 당신 스스로 어린이책을 읽고 삭이고 되뇌인 뒤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있을까요. 어린이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고, 나보다 가난하거나 힘없는 이를 돕고, 잔꾀 부려 남을 괴롭히지 말며, 오순도순 서로 아끼며 살라’일 텐데. (4340.9.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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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카이투스의 모험
야누스 코르착 지음, 송순재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
- 글 : 야누쉬 코르착
- 옮긴이 : 송순재ㆍ손성현
- 펴낸곳 : 내일을여는책(2000.3.15.)
- 책값 : 6000원


 

 이 책 하나 20 ― 아이들아, 교과서는 책이 아니야
 : 《안톤 카이투스의 모험》을 읽으며


 2000년 봄에 사둔 책을 2007년 여름이 되어서야 읽었습니다. 처음 손을 대기는 2006년 여름. 그러니까 책 하나 사둔 채 일곱 해나 그냥 보내다가 겨우 손에 댄 뒤에도 한 해에 걸쳐서 읽은 셈. 마지막은 깊은 밤에 읽었습니다. 마무리에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잠을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잠이 절로 달아났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날짜를 적어 넣은 뒤 덮습니다. 불을 끄고 눕습니다.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머리속에서 빙빙 돕니다.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불은 켜지 않고 책 앞자리에 몇 마디 끄적입니다. ‘이 훌륭한 책을 펴낸 이는, 이 책을 제대로 알아보고 즐기는 사람이 없어서 그예 판이 끊겨 버릴 판에다가 아예 사라져 버릴 판인 이 책을 놓고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플까. 아니, 판이 끊어지게 되더라도 누군가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가 이 책을 끄집어내어 읽으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슬기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되지 하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고 홀가분했을까.’


.. 선생님, 비록 아이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잘해 주셔요. 우리 어린이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정말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몰라요 ..  〈182∼183쪽〉


 1979년, 한국에서는 ‘세계 아동의 해’ 기념우표가 나옵니다. 하지만 ‘세계 아동의 해’를 유네스코가 외쳤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 노동착취는 여태까지 이어져 옵니다.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부자나라로 물건을 팔아야만 되도록 다국적기업이 벌써부터 주리를 틀고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물건 씀씀이가 보통 헤프지 않은 남녘땅 사람들 살림살이도 가난한 나라 아이들 노동착취가 끊이지 않게 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입니다.

 해마다 5월 5일이 어린이날입니다만, 어린이날에서조차 아이들을 꼭둑각시나 어른들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행사만 보일 뿐입니다. 어린이날을 맞이해도 이날을 누가 왜 기리는지 돌아보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1979년이 ‘세계 아동의 해’였으나 기념우표를 만들어 팔 줄만 알지, ‘왜 세계 아동의 해를 기리는지’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남녘땅 사람은 없습니다.


 ○   ○


 지난주 낮입니다. 은행에 볼일이 있어 길을 가다가 도원야구장(인천 숭의동) 쪽에서 무슨 큰소리가 들리기에 기웃기웃 살펴봅니다. 학교옷 입은 아이들 무리가 제법 보입니다. 깃발이 펄럭이고 경기장 둘레에 적잖은 사람들이 웅성댑니다. 뭘까? 이곳에서 무슨 경기라도 하는가?

 얼핏 넘겨다보이는 전광판을 보니 8회를 치르는 경기. 오호, 경기가 참말 있네. 옆지기와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갑니다. 문이 열린 지정석으로 들어가니 3루 응원자리는 빈틈없이 꽉 찼고 지정석도 거의 빈자리가 없습니다.

 무슨 야구 경기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만히 둘러보고 바닥에 흩어진 유인물을 찬찬히 살피니 ‘미추홀 야구대회’ 마지막날 경기입니다. 인천고등학교와 화순고등학교가 펼치는 경기. 3루 응원자리는 인천고등학교 학생으로 꽉. 1루 응원자리는 썰렁. 나중에 알았지만 화순고등학교는 전라도 학교였고, 거리가 멀어 응원을 한 사람도 못 왔구나 싶더군요.


.. 그 중에서도 카이투스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굽 높은 여자 뾰족구두, 나일론 스타킹, 레이스 달린 옷을 입은 경찰관들이 계속 넘어지면서 허둥지둥 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찰관들은 외국인 백만장자들을 이 끔찍한 긴급사태에서 보호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 공원의 멋과 자랑이었던 고목들이 덜덜 몸을 떨더니 땅 위로 뽑혀져 나왔다 …… 카이투스는 완전한 무질서를 원했고, 그것을 이루어냈다.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55쪽〉


 쭈뼛쭈뼛 둘러보며 빈자리를 찾아 앉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앞으로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무리. 야구장 옆에 있는 중학교 아이들로 보입니다. 옆지기가 한 마디 합니다. “쟤네들 너무 귀엽지 않아요?” 중학교 아이들은 앞머리가 3센티미터도 안 되어 보일 만큼 짧은 머리, 아니 까까머리입니다. 옆지기는 이런 까까머리가 귀엽다고 합니다.

 아직도 중학교 아이들은, 인천 쪽 중학교 아이들은 까까머리여야 하나? 고등학교 아이들은 조금은 길지만, 학교에서 머리 길이 검사하는 틀에 얽매여 있음이 훤히 보입니다. ‘학생다운 머리 길이’란 있나? ‘단정한 머리 길이’란 있는가? 아이들을 모두 저렇게 똑같은 옷에 똑같은 머리로 만들어 놓으며 무슨 개성을 키우고 창의성을 기른다고. 아니, 이 나라 교육 얼거리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몸피에 매무새에 지식에다가 생각틀마저 판박이처럼 짓눌러 버리도록 맞추고 있지. 대학교에 가서도 피말리는 겨루기를 하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세상과 담을 쌓고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매달리도록 몰아붙이고 있지.


.. 카이투스는 자기가 이제 막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초보자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실험했다 ..  〈16쪽〉


 인천고를 응원하는 학부모들을 봅니다. 1,2,3학년 모두가 응원하는 소리보다 조금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몸짓이나 소리나 장난이 아닙니다. 저 학부모들은 왜 저렇게까지 응원을 해야 하는지.


.. “이 유리병들과 뼈다귀는 또 뭐 하는 데 필요한 거냐?” 할머니가 물어 보셨다. “안 그래도 네 방은 쓰레기 천지 아니냐?” “그냥, 필요한 거예요.” 카이투스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른들은 자기하고 관련된 말이 아니면 다 허튼 소리라고 하고, 돈으로 사거나 팔 수 없는 것은 전부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  〈37쪽〉


 경기는 인천고가 이기면서 대회우승까지 거머쥡니다. 화순고 선수들 솜씨가 떨어진다고까지 느끼지 않았으나, 응원 하나 받지 못한 채 주눅이 들어서 어이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으니 뭐. 안방경기(?)라지만, 대회우승을 거머쥐어야 나중에 프로지명 받기에도 좋다고 하지만.


.. “그게 아줌마하고 무슨 상관 있어요.” 카이투스가 투덜댔다. “얘야, 버릇없에 말투가 그게 뭐니?” 아저씨가 말했다. “왜 남의 일에 끼어들고 그러세요! 귀찮단 말이에요!” 어른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 특히 어린이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게 참견하고, 큰소리를 치고, 쓸데없는 질문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62쪽〉


 아이들은 왜 학교옷을 입어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학교옷을 입히는 교사들은 무슨 교육 효과를 바라는가요. 학교옷을 입어야 하는 아이들은 이 옷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아이들은 왜 머리가 짧아야 하나요. 남자는 까까머리, 여자는 짧은머리, 이런 잣대는 누가 만들었나요. 초등학교 다니며 곱게 길렀던 머리를 눈물을 흘리며 자르고 마는 아이들 마음을 헤아리는 교사나 교육 공무원은 없는가요. 남자는 모두 머리 길이가 짧아야만 ‘품행이 방정한 모범생’이 된다고 어느 누가 논문으로 증면해 보였는가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아주 오랜만에, 아니 학교 안까지 들어가 보기는 1994년 2월에 졸업식을 하고 나서 거의 처음이 아니었느냐 싶을 만큼 오랜만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난 유월에. 저는 그 학교 4회 졸업생인데, 어느덧 20회 졸업생이 될 아이들이 다니고 있군요. 그런가? 세월이란 참 무섭구나 생각을 하며 예전 선생님들을 한 분 두 분 뵈었습니다.


.. 조슈아의 엄마는 다 큰 사람과 얘기하는 것처럼 조슈아하고 의논하셨다. 아이들을 믿고 존중하는 어른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카이투스는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  〈94쪽〉


 학교 다닐 때 ‘우리보다 몇 살 많지 않은 형’으로 느끼던 젊은 교사들입니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나 이때나 마찬가지로 동네 형’으로만 느껴집니다. 달라져 보이지 않네요. 새로 학교 교사가 된 이들은 저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 이들 동네 형이나 동생으로 보이는 교사들 손에는 크고작은 몽둥이가 들려 있습니다. 설마 지금도 그러려고.


.. “나도 몰라. 난 어렸을 때 참 행복한 아이였어.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에겐 좋은 부모님과 환하고 편안한 집, 따뜻한 옷과 많은 책들, 놀이기구가 있는데 왜 다른 애들에겐 먹을것도 없고 자꾸 나쁜 일이 생길까 하고. 시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거든.” “도시에도 마찬가지야.” 카이투스가 한마디 했다 ..  〈161∼162쪽〉


 옛 국어 선생님이 마음을 써 주어서, 20회 졸업생이 될 1학년 아이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얻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녁 10시까지 남아서 ‘자율학습’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1학년 가운데 공부를 잘한다 싶은 아이들을 모아서 ‘글쓰기(논술) 보충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글쓰기 보충수업을 받는 아이들 앞에 섰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선가 ‘퍽 …… 퍽 …… 퍽 ……’ 하는 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창가에 다가가 어디짬에서 나는 소리인가 헤아려 봅니다. 투박하지만 굵고 힘찬 소리. 밀걸레 자루인가? 야구방망이는 아닐 테고. 골프채는 아니겠지. 골프채는 소리가 안 나니까. 각목인가?


.. “……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니? 내 수업시간은 너무 시끄럽고 진도도 너무 느리다는 거야. 선생님이 무섭게 하고 벌을 많이 주면 학생들은 그 선생님 말을 잘 듣지.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고 싶었어. 그리고 학생들이 그걸 이용하지 않기를 바랐던 거야.” ..  〈177쪽〉


 “선생님, 남녀공학 학교로 하겠다는 (설립자) 약속은 안 지켜지나요?” “남녀공학? 아, 요새는 남녀공학 하겠다고 하면 아이들이 반대할 거야. 여학생하고 한 반이 되어 수업을 하면 자기들(남학생)이 내신이 딸리거든.”

 거의 모든 학교(중고등학교)가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진 인천. 남학교와 여학교로 나뉘어진 채 받는 중고등학교 수업은 서로서로 무엇을 남길까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도록 이끌어 줄까요.


.. 서커스 단장은 전보를 쳐서 카이투스를 위해 엄청나게 큰 정원이 딸린 멋있는 집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것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정원에서 놀아도 안 되고, 다른 친구들을 불러들여도 안 되고, 축제를 벌여도 안 되고, 집안을 뛰어다녀도 안 되고 ..  〈122쪽〉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학교에 붙들어매인다면, 집을 나서는 시간과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따질 때, 자기 자신을 차분하게 돌아보거나 다스릴 짬이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새벽밥도 제대로 먹기 힘들도록 집을 나서야 하는 아이들이 집구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 양말이나 속옷을 손수 빨아서 입을 겨를이 있을까요. 아니, 빨래할 힘이나마 남아 있을지.

 저녁 열 시에나 끝나는 학교인데,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를 만한 쉼터가 있을까요. 인천에 있는 어느 책방이 저녁 열한 시나 열두 시까지 할 테며(서울에도 없지만), 어느 문화시설이 그 늦은 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아이들이 쉴 수 있도록,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따습게 안아 줄까요.


.. 우린 부자는 아니지만, 너에게 항상 좋은 충고와 친절한 마음을 줄 수 있을 거야 ..  〈95쪽〉


 아이들 마음밭을 뿌리깊이 다지는 풋풋한 나이 열셋∼열여덟입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이 ‘이팔청춘’이 무엇인지 느껴 볼 수 있을까요. 쏟아지는 소낙비를 몸으로 느껴 볼 수 있을까요. 눈부신 햇살이 어떤 느낌인지 발끝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침저녁으로 어머님이 차려 주는(아버님들이 함께 밥상을 차려 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도 꿈같은 소리로만 느껴집니다) 밥상에 오르는 곡식이 어떻게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돌아볼 수 있을까요. 자기들이 내딛는 땅에서, 자기들이 바라보는 ‘집과 학교 둘레’ 골목집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톺아볼 수 있을까요.


.. 손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인간들은 짐작도 못할 거야 ..  〈169쪽〉


 열여섯 어린 후배들을 한 사람씩 일으켜세우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해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자리에서 일어나기도 멋쩍어하는 가운데 ‘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고 싶은 대학교라도 말해 보라고 하나, 가고 싶은 대학교나 학과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이 교실에 갇혀서 무엇을 자기들 머리속에 집어넣고 있지요. 점수에 맞추어 아무 대학교에나 가면 그만인지.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이 고등학교 교사들한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대학교까지 마치게 하고 시집장가를 보내고 나면, 이 아이들을 낳은 어버이한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지.


.. 그렇게 사람들은 티격태격 싸웠다. 걱정거리가 많은 인간들이란 늘 그런 모양이다. 서로서로 도와주기보다는 모두 자기 일에만 바쁘다 ..  〈69쪽〉


 인천에서 썩 공부를 잘하는 학교 축에 못 들어가는 곳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교 한 곳에 들어갔으나 더 배울 거리가 없다고 느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둔 뒤 여태껏 그렁저렁 살아온 열여섯 살 많은 선배를 보는 이 아이들 마음속에는 무슨 느낌과 생각이 오갔을까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가야 할 곳은 대학교만이 아니다’는 제 말을 이 아이들은 무슨 느낌으로 헤아릴까요.


.. 늘 나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주 씩씩하고 끈질기게 말야 ..  〈5쪽〉


 아이들한테 한 가지 이야기를 굵직하게 했습니다. 대학교 등록금으로 들어갈 엄청난 돈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고, 너희들은 머리 좋은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찬찬히 생각해 보라고, 그 많은 돈을 너희들한테 대고 있는데, 너희들이 대학교까지 마치자면, 요즘 돈으로는 2억 원에 가까운 돈이 들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그러면 너희 부모님들은 그 어마어마한 돈을 벌려고 무슨 일을 해야겠느냐고, 또 너희들한테 그 많은 돈을 들이며 대학교까지 보내게 하는 뜻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부모님한테는 버거운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학교를 간다 만다 생각하지 말고,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에 이르는 돈을 빌려 달라고 해 보라고, 그 돈으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해서 꼭 한 해 동안 전국여행이든 세계여행이든 해 보라고. 나라안 여행이든 나라밖 여행이든 알뜰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밥값과 잠값으로 2만 원 안팎밖에 쓰지 않으니(더 아낄 수도 있고) 한 해 동안 퍽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온몸으로 세상을 부대낄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더 나아지려고 사는 사람이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내는 완벽꾼이 되려고 경쟁판이나 싸움판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너희들 이런 자리에서도 쭈뼛쭈뼛 말을 못하는데 여자친구 한 사람 사굴 수 있겠느냐고. 너희들한테 한 번 주어진 삶이기에 너희들 스스로 길을 골라서 가야겠지만,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다부지게 거부하고 너희들 하고픈 일이나 이루고픈 꿈을 찾아서 훨씬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 학교 선생들이 몽둥이 들고 뚜들겨팰 때면 그 몽둥이를 한 손으로 붙잡고 더는 못 때리게 끊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법이란 사람들이 살기 좋도록 하고자 만들지, 사람을 옭아매거나 짓누르려고 만들었으면 그때부터는 법이 아니라고. 너희들이 보고 있는 그 교과서나 참고서는 책이 아니라고. (4340.9.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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