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통신 우리시대의 논리 4
전태일기념사업회 엮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전태일 통신
- 엮은이 : 전태일기념사업회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11.13.)
- 책값 : 만 원



.. 점점 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아르바이트로 사람을 채우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파트타임이라는 이름으로요. 시간당 임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일자리입니다. 4대보험이라고 하는 건강보험도, 고용보험도, 산재보험도, 국민연금도 물론 없습니다. 그 시간당 임금도 최저임금에 딱 맞추어 그 이상은 주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일까요? 오히려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까지 다 빼앗긴 채 일하고 있습니다 ..  〈41쪽〉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어 나눌 만한 자리가 얼마쯤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신문에? 방송에? 잡지에? 낱권책에? 교과서에?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포털이라고 하는 곳에 작은 모임이나 방을 마련해서 자기 이야기를 띄울 수 있습니다. 자기가 띄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몇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나 경제나 여러 곳에 두루 ‘영향을 끼칠 만한 매체’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기꺼이 찾아다니며 듣고 담아내는 일이란 몹시 보기 힘듭니다.


.. 강남구청은 주변 아파트에서 보기 흉하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이유를 내겁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궁색한 억지 주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 쓰레기를 치우고 재활용하는 넝마공동체가 없다면 그 처리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  〈133쪽〉


 너무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할까요? 너무 낮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듣지 못할까요? 너무 낮은 자리에서 아파하기 때문에 내려와서 쓰다듬어 주기 힘들까요?

 낮은 자리에서 살면 안 될 까닭이 있을까요? 낮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인가요?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푸대접을 받아야 할 까닭이 있는가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조용하게 공동체를 이루어 지내면 안 되는가요?


..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삼성재벌이 어떠한 방법으로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악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지, 듣고도 믿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  〈267쪽〉


 더 오래 학교를 다녀서 더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학교를 못 다니거나 덜 다닌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졸업장 갯수와 자격증 갯수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자격증과 졸업장 하나 없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은행계좌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사람이라고 해서, 통장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감쌀 대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대목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흐르는 맑은 냇물이 아닌 정수기를 사 주면 될까요. 아이들한테 산과 들과 멧짐승과 들짐승이 아니라, 그림책과 사진책과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여주면 될까요. 아이들한테 따순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졸업장과 대기업 명함과 서울 강남 아파트를 장만해 주면 될까요? (4340.10.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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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올 4월부터 아침 또는 낮 또는 저녁에 틈틈이 동네 골목길 마실을 합니다. 으레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메지만, 사진기를 놓고 다닐 때도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나오지 않을 때면 꼭 ‘이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지만,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일도 좋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발자국이 되어, 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에도 뒷사람들이 살펴보고 요즈음 인천 삶터를 느끼도록 해 줄 테지만, 제 눈으로 비춰지고 제 마음에 담긴 인천 골목길 삶터 모습은, 비록 ‘눈으로 그려 볼 수 있는’ 발자국으로 남지 못할지라도, 제가 만나는 사람들한테 하나하나 펼쳐지겠지요. 사람과 사람으로 부대끼고 복닥이고 어울리는 느낌이 건네지면서.

 달동네 골목길 밤마실을 하면, 저기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고, 깊어가는 밤에 반짝이는 전기불빛 가운데 도드라지는 붉은 십자가, 하얀 십자가가 많이 보입니다. 예배당이 참 많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이런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그러던 지난주, ‘저 예배당 사람들도 설교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환경이 더러워지고 있음을 이야기로 듣고 할 텐데, 왜 밤에도 십자가 불을 켜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길이 어두워서? 깊은 밤에도 동네사람들한테 따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지난 목요일,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한다며 전철길에 오릅니다. 인천에서도 서쪽 끝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 길. 참 멉니다. 걸상이 천이 아닌 쇠붙이로 된 열차가 드문드문 있어서, 이런 열차를 타고 가자면 엉덩이도 시렵지만 기분이 나쁩니다. 누가 불지를까 걱정된다고 전철 깔개를 쇠붙이로 한다면, 버스 깔개와 기차 깔개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요? 비행기는 어떻고? 궁시렁궁시렁 중얼중얼 투덜투덜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그즈음, 양복을 쪼옥 빼입은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긁직한 목소리로 ‘하느님 찬양’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읊습니다. 전철을 함께 탄 옆지기는, 저 아저씨 예전에도 보았다고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읽던 책에 다시 머리를 박습니다. 조금 뒤 책을 덮고 고개를 듭니다. 참사랑이라면, 믿는 사람한테만 축복을 내리는 사랑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한테도 축복을 내리는 사랑일 텐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참사랑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한테 저주를 퍼붓는 사랑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끌지 않으며 더욱 아끼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랑일 텐데, 하는 생각이 꼬물꼬물. 하느님을 믿는다기보다 자기 이익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 사랑을 믿는다기보다 자기 이름과 돈과 힘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다기보다 하느님 말씀을 자기 좋을 대로 풀이해 버리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이 성경이라고 해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외려 ‘하느님 이름’으로 전쟁이 판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4340.10.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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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빡이면 어때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마빡이면 어때
- 글ㆍ그림 : 쓰치다 노부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20.)
- 책값 : 8000원



― 왜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아이들한테 읽히나?
: 쓰치다 노부코, 《마빡이면 어때》를 보면서



 〈1〉 수수한 이야기 하나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주인공 데코는 일요일 아침 머리를 자릅니다. 어머니가 손수 잘라 줍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뺀 집안 식구들이 아이 머리를 보면서 ‘이마가 너무 넓다’면서 하하호호 웃습니다. 집안 식구들 웃음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웃음일 텐데, 아이로서는 마을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여깁니다. 이리하여 몸이 움츠러들고 모든 일에서 짜증만 쌓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이런 아이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못 헤아렸는지 모르고, 어쩌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어려움을 풀어나가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아이 오빠도 동생을 감싸기보다는 짓궂게 놀리기를 즐길 뿐입니다. 다만, 아이 언니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려 냅니다. 그리하여 아이는 훤하게 드러난 그 이마도 괜찮은 이마가 될 수 있다고, 아니 예전 이마보다 훨씬 괜찮은 이마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 언니는 대단한 요술을 부리지 않았으나, 그 마음씀 하나와 작은 물건 하나로 동생 마음뿐 아니라,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동무들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참 수수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네요.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참으로 잘 잡아챘네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일본사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문득,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이 어릴 적에 겪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일을 겪으며 잔뜩 심통을 부렸는데, 자기 언니가 ‘그 어린 나이로서는 요술을 부렸다’고 느낄 만한 어떤 일 하나를 해 주었고, 그 일 덕분에 여태까지 즐겁게 잘 살아오고 있어서, 언니와 어머니와 식구들과 동무들한테 이런 자기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림책을 빚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형과 제 머리는 늘 어머니가 깎아 주셨습니다. 머리 깎는 집에 갈 돈을 아낄 셈이었지요. 없는 살림에 머리 깎을 돈까지 쓰기란 얼마나 힘들었던가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집 어머니들도 당신 딸아들 머리를 손수 깎아 주었습니다. 머리 깎는 가위는 몇 없어서, 가위 하나로 온 동네 어머니들이 서로 빌려 가면서 깎곤 했습니다. 머리집 머리가 아닌 어머니 머리라서 우둘투둘 깎인 아이도 있어서(제 머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서로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눈썹 위로 싹둑 하고 많이 깎는 까닭이라면, 머리가 눈을 찌르기 때문이지요. 훤히 드러나는 자기 이마를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라면, 또 이렇게 훤한 이마를 놀리는 동무들이라면, 사람을 겉모습으로 먼저 살피는 마음이 벌써부터 물들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좋고, 살이 통통하면 통통한 대로 좋으며, 머리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습니다. 서로를 생긴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는 이런 데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아 주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머니가 좋은 뜻에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고 해도, 아이가 바라는 머리 모양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지요.


 〈2〉 아쉬움


 퍽 괜찮다고 느낀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몇 번 다시 넘겨보다가 덮으며 생각합니다. 일본땅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은 여러모로 많이 즐겁고 재미있을 만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한국땅 아이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을 아이들한테 읽혀 주거나 보여줄 한국 어머니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글쎄, 저는 이 그림책을 한국땅 어머니들한테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썩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책을 보면서 곳곳에서 아쉬웠습니다.

 먼저, ‘마빡이’라는 이름이 아쉽습니다.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아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따서 책이름으로 삼고, 책 곳곳에 ‘마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펴낸 일본에서는 《데코짱》이라고만 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고 말하듯 그림책에서도 ‘마빡이’를 말하면 훨씬 잘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하겠지만, 익살꾼 유행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마빡이’가 참 잘 붙인 이름이라 하겠지만,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잘 붙인 이름으로 이어갈까요? 그때 아이들은 ‘마빡이’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번역 그림책을 한두 해만 아이들한테 읽힐 생각은 아니겠지요?

 다음 아쉬움으로, 나오는 사람들 이름. 주인공은 일본 이름인 ‘데코’를 쓰지만, 마을 가게 이름이며 유치원 이름이며, 유치원에서 어울리는 동무들 이름이며 모두 한국 이름입니다.

― 경아, 세은, 대현, 주희, 순화, 고은, 연우, 성은, 가람, 금미, 혜원, 정화

 왜 주인공 아이만 일본 이름을 쓰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모습이며 학교 모습이며 아이들 놀잇감 모습이며 집안에서 할아버지와 부모님들 모습이며 모두 ‘일본 문화와 사회’임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데코’라는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본사람 이름임을 천천히 알아갈 텐데, 갑자기 마을 분위기나 유치원 동무들 이름을 이렇게 한국 이름으로 바꾸어 놓으면 더 헷갈리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이런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얄궂게 쓰고 만 낱말과 말투들. 몇 가지 다듬어 봅니다.

 ┌ 데코의 머리를 잘라 준대요
 └→ 데코 머리를 잘라 준대요

 토씨 ‘-의’를 붙였지만, 책 뒤쪽에 보면 “데코 이마”로 적은 대목이 보입니다. “데코 이마”로 쓰듯이 “데코 머리”로 써야 알맞습니다.

 ┌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 시장 나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이렇게 하면 어때?

 ‘것’을 붙여서 말을 늘여뜨립니다. 요즘 어른이나 아이나 다들 이런 말투를 씁니다. 자꾸자꾸 퍼집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처럼도 씁니다.

 ┌ 자, 귀여운 이마로 변신!
 └→ 자, 귀여운 이마로 바뀌어라!

 ┌ 으, 얼굴 심하다
 └→ 으, 얼굴 너무한다

 요즈음 아이들도 ‘변신합체로봇’을 좋아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장난감을 쥐어 주고 싶어하며, 어떤 말과 글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 거울 속 이마에는
 └→ 거울에 비친 이마에는

 ┌ 언니 주문이 진짜 통했나 봐요
 └→ 언니 주문이 진짜 들었나 봐요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나 몸이 비칩니다. “거울 속에 내가 있네” 하고 말할 수 있으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자면, “거울에 비친 이마”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 마빡이 주문은 점점 퍼져 나가서
 └→ 마빡이 주문은 조금씩 퍼져 나가서

 ‘점점(漸漸)’이나 ‘점차(漸次)’나 ‘차차(次次)’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라 해서 쓰면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이 예부터 써 온 토박이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차츰-자꾸-꾸준히-지며리’ 들이 있음을.

 또다른 아쉬움을 들자면,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는 2000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7년에 번역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합’니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밥상 앞에 앉아 신문이나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데코네 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 일을 돕’습니다. 그 옆에서 데코네 오빠는 ‘자기 아버지처럼 밥상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합니다. 주인공 훤한 이마 문제를 언니가 풀어 준 아침 모습에서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아버지 되는 분은 늦잠을 잔 뒤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을 테고, 양복을 차려입고(이때에도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 주고 옷을 입혀 주고) 회사에 가겠지요. 그 뒤 어머니는 할아버지 수발을 한 다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저녁 찬거리를 사겠지요.

 이야기 무대는 ‘옛날이 아닌 지금’입니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집식구들 모여 있는 자리라든지, 서로 맡은 일이라든지 이렇게 그려야 했을까요. ‘여자 = 부엌데기’, ‘남자 = 바깥양반’이라는 낡은 틀을 그대로 이어가야 했을까요. 한 번쯤은 깊이 돌아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더 있습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에 담긴 줄거리나 느낌이나 뜻이나 즐거움은, 그림책 작품으로 보자면 참 괜찮구나 싶은데, 우리가 굳이 이런 일본 그림책까지 한국말로 옮겨서 펴내야 할까 싶어요. 다양성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일본 그림책을 번역하는 일이란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만한 깊이와 너비를 담은 그림책쯤이라면, 한국 그림책 작가가 우리 터전과 아이들 문화를 헤아리며 스스로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생활 이야기 그림책’조차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요? 출판사에서는 ‘손쉽게 번역하는 길’만 좇을 생각인가요?

 그림책 번역은 다른 번역보다 품이나 시간이 적게 듭니다. 금세 옮겨서 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 하나를 창작하자면, 제대로 된 그림책 하나 빚어내자면, 아이들이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할 만한 그림책 하나 엮어내자면, 그림을 그려내는 분도 짧지 않은 시간을 땀흘려야 하고, 출판사 편집자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편집을 하면서 품을 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게다가, 애써 펴낸 창작 그림책이 두루 사랑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알 길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 그림책 작가가 못 빚을’ 만한 이야기책도 아니요, 우리 둘레에도 참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감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번역하는 한편으로, 또는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는 한편으로,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나 그림책 작가가 되고픈 젊은이를 알아본 다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우리 형편에 맞게 그려 보면 어떨까요?’ 하고 주문을 하고 자료를 대어 주면서 창작을 불태울 수 있게끔 뒷배해 주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먹고살아야 하기에, 먹고사는 길을 헤아려 ‘좀더 많이 팔릴 만한 책’, ‘계약금과 인세 낸 돈을 거두어들일 만한 책’을 빨리빨리 번역해 내는 일은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내서는 우리 아이들 앞날이 밝을 수만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나름대로 꿋꿋하게 발판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지붕을 튼튼히 마련할 수 없잖습니까. 뿌리가 깊은 나무여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부터 보는(아이들만 보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보는 책이 어린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한 나라에 태어나 한 사람으로 커 가는 어린이들 마음에 자그마한 씨앗을 심거나 어린나무를 심어서 앞으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도록 옆에서 손을 내미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한테나 굴뚝같겠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는 ‘좋은 그림책 만 권’이 반가울까요?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날마다 여러 번씩 읽어 줄 ‘수수한 그림책 열 권’은 안 반가울까요? 아이들한테는 더 많은 책보다는 더 많은 부모 사랑이 애틋합니다. 그림책을 엮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좋은 책’을 베풀어 주려는 마음보다는, ‘수수하고 멋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으면서 피와 살이 될 수 있는 밥과 같은 책을 딱 한 가지’ 베풀 수 있으면 좋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나으리라 봅니다.

 돈 많은 부자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가 아니니까요. 책으로 둘러싸인 아이가 행복할까요? 펴내는 책 가짓수가 많은 출판사가 좋은 책을 펴내는 곳일까요? 일본책 이름 《데코짱》을 《마빡이면 어때》로 이름을 고쳐서 낸 이 그림책은, 별 다섯 만점에서 넷 반을 주고 싶으나, 이 책을 번역해 낸 마음씀과 움직임을 헤아렸을 때에는 둘 반만 주고 싶습니다. (4340.10.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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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크는 아이들 -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자라는 숲 속 유치원 이야기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 지음, 나카무라 스즈코 그림, 은미경 옮김 / 파란자전거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숲에서 크는 아이들
- 글 : 이마이즈미 미네코, 안네테 마이자
- 그림 : 나카무라 스즈코
- 옮긴이 : 은미경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3.24.)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4 ― 골목집 꽃밭길과 숲속 학교
 : 독일에는 《숲에서 크는 아이들》이 있네


 〈1〉 초등학교 교과서 ‘자연 사랑’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만들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생활의 길잡이》라는 교과서를 보았습니다. 교과서 한 권을 본다고 해서,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 샅샅이 살필 수 없습니다. 다만, 살갗이라도 핥을 수 있을까요.

 7단원 ‘자연 사랑’을 펼칩니다. 첫 주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까닭을 알아봅시다”입니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고, “우리가 지구 환경을 보전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쪽에서는 “나무를 심자!”는 제목으로 글 하나 싣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체 차량의 37%에 해당하는 약 2백만 대의 차량이 디젤 자동차이니 그만큼 공기 오염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고 말하면서.

 나무를 심는다고 공해 문제가 풀릴 턱이 없지만,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나무를 어디에 심을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서는 “공기 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로수를 많이 심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가로수로 과일 나무를 심는다면 거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교과서로서는 온힘을 다해 밝힌 ‘더러워진 공기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 셈이라 하겠으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인지 낱낱이 들어서 말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가로수를 많이 심”자고 교과서는 말합니다만, 거리나무는 누가 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심을 수 있나요? 자동차 북적이는 길거리 어디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아스팔트를 깨고? 거님길 돌판을 깨고?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를 뽑고? 길거리에서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는 있을까요?


.. 아이들은 모두 물놀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페릭스도 정원에서 있는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자주 하지요. 그런데 냇물에서의 물놀이는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입니다. 파블로나 베스는 벌써 장화 신은 발로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냇가에 들어갔네요 ..  〈25쪽〉


 우리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 어느 곳에도 ‘아이들이 나무를 심을 만한 조그마한 땅뙈기’는 없습니다. 동네 골목길에도 나무를 심을 자리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산다고 할 수 있는 아파트 꽃밭에 나무를 심을 틈이 있을까요? 다세대주택이 바글바글 몰려 있는 비탈길 동네에 나무 심을 빈 땅이 있을까요?


.. 집에서는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할지 항상 아빠하고 엄마가 정하지만, 숲속 유치원에서는 뭐든지 다 같이 결정합니다 ..  〈29쪽〉


 ‘자연 사랑’ 단원에서는 “장바구니 사용하기”도 말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갈 때에 비닐 봉지 한두 개씩만 절약한다면, 우리 나라 전체로 볼 때에 엄청난 양이 절약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가실 때에 꼭 장바구니를 가져가도록 말씀드리는 것도 작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잣거리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일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늘 장바구니뿐 아니라, 헌 비닐봉지를 갖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잣거리를 거닐며 하나둘 사들이는 찬거리나 푸성귀나 먹을거리 어느 것도 ‘가게에서 비닐랩을 씌워 놓았’습니다. 벌써 한 번 비닐랩에 씌워진 물건을 살 때 비닐봉지 하나 적게 쓰는 일도 우리 삶터를 지켜 주는 좋은 일이곤 합니다. 하지만 비닐랩은 어쩌지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 족발이나 다른 먹을거리를 주문해 먹을 때, 밥집에서는 비닐랩을 얼마나 씌워서 가져다주는지요.

 우리 스스로 줄일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만, 정작 크게 마음쓰고 바꿔야 할 곳, 뿌리깊은 골칫거리를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들 몸짓은 그저 헛시늉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더욱이, 저잣거리에 물건 사러 가는 사람을 오로지 ‘어머니’로만 못박은 대목이 껄끄럽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살피면서, ‘집안일은 어머니(여자) 몫, 집안에서 아버지(남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는 몫’으로 나눠져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 그뿐인가요? 나무열매들도 빨강, 파랑, 검정 다채로운 빛깔을 뽐냅니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선명한 황록색 잎사귀들이 아름답게 펼쳐 있습니다. 새의 깃털처럼 우아한 이 땅꼬마 풀고사리들이 숲속에서는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 냅니다.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숲은 단순히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네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모여 숲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  〈34쪽〉


 초등학교 교과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고등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설마…….

 두렵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면서 지식을 외워야 할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짜여져 있는지 들춰보기 두렵습니다. 아니, 이 두려운 교과서로 열두 해씩이나 제도권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되어 있는 틀에서 찌들고 시들면서 싱싱함을 잃어가는데, 싱싱함을 잃어가는 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두렵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사회에 나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어떤 일을 어떤 자리에서 할까요.


.. 천천히 먹고 여유 있게 쉬었기 때문인지 페릭스는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야, 이제 놀아야지! 그런데 장난감도 없는데 뭘 하지?’ 집이라면 정원 모래밭에서 놀아도 되고 트럭이나 미니카 같은 장난감도 있지만, 숲속에는 나뭇잎과 나무, 풀, 나뭇가지, 흙, 돌멩이 같은 것밖에 없습니다. 새로 온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  〈42쪽〉





 〈2〉 골목집 꽃그릇


 도서관 일을 마치는 저녁나절, 사진기 하나를 들고 골목길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도심 정화 재개발 사업’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밀려나거나 무너질 판에 놓인 여느 사람 살림집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놓습니다. 시와 개발업자는, 골목집 사람들한테 ‘입주권’이나 ‘이주 비용’을 도와준다고 말하지만, 입주권이 있다 한들, 골목집 사람들은 ‘새로 지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없습니다. 아파트 값도 치러내지 못하지만, 관리비 낼 만한 형편도 아닙니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골목집에서는, 많지 않은 돈으로도 달세를 내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며 오순도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집 사람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던 조그마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면, 이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자리를 마련해 어떻게 먹고사나요. 시나 개발업자 눈으로는 지붕 낮고 꾀죄죄해 보이는 게딱지집일지 모르지만, 이 게딱지집에 사는 이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하고 넉넉한 궁궐입니다. 한 사람한테는 발 뻗고 개운하게 잘 수 있는 방 한 간, 새힘을 얻을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부엌 한 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여기에, 제 먹을거리 얼마쯤 손수 마련할 수 있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 주차장에는 부모님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과 같이 페릭스 엄마는 자동차를 타고 왔고, 베스 엄마는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왔지요. “자동차보다 수레 달린 자전거가 더 멋져.” 페릭스는 베스의 자전거가 부러웠습니다 ..  〈48쪽〉


 골목집 사람들은 시멘트로만 뒤덮인 길바닥 한켠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그러모아 내놓습니다. 헌 스티로폼 상자도 알뜰히 모아 놓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 흙을 한 주먹씩 퍼 온 다음 헌 꽃그릇과 스티로폼 상자에 차곡차곡 모읍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놓고, 때때로 당신들이 눈 똥오줌도 모아서 작게 두엄더미를 만들어 꽃그릇 흙과 섞곤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골목길 바닥에는 흙 한 줌 없지만, 날마다 푸른 새숨을 내뿜어 주는 싱그러운 꽃밭길로 다시 태어납니다.


.. 아이들은 낙엽을 모아서 땅바닥에 늘어놓고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색을 칠하지? 도대체 누가 이런 모양을 만드는 걸까. 숲의 요정일까?” 페릭스가 물었습니다. “나무 스스로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만든단다. 나무는 살아 있기 때문이지. 사람이나 동물처럼 말야.” ..  〈73쪽〉


 지난 4월부터 올망졸망 터져나온 꽃망울이 시월을 넘기며 마지막으로 노랗고 붉은 꽃내음을 남깁니다. 드문드문 있는 거리등불 어두운 골목을 거닐면서도 풀냄새와 꽃냄새를 느낍니다. 무릎을 꿇어 풀하고 키높이를 맞추고 꽃하고 눈높이를 맞춥니다. 사진 찍던 손을 거두어 꽃잎을 쓰다듬습니다. 가로세로 50센티미터를 겨우 넘을 만한 작은 꽃그릇에서 나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한두 평 될까 말까 한 작은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서 발그스름하게 익어 가는 감을 올려다봅니다. 저 감나무는 저 집하고 역사를 함께했을까요? 저 작은 집을 마련한 분이 ‘우리도 이제 우리 식구들 따숩게 지낼 집 하나 마련했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에 어린나무 얻어와 마당 한켠에 심어서 이렇게 키워냈을까요?


.. 귀를 기울여 보니 나뭇잎들이 스치며 사락사락 속삭이는 소리, 바람이 낙엽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은 퍼드덕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도 들렸고요.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다정다감한 숲의 너른 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했습니다. 아침에 엄마한테 혼났던 것도, 친구들과 싸운 것도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  〈76쪽〉


 시골에 갈 때마다, 산에 갈 적마다 흙을 한 봉지씩 담아 와서 옥상에 텃밭을 마련한 분들을 봅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한두 해에 걸쳐서 흙을 조금씩 모아 오셨고, 이렇게 모은 흙으로 옥상 텃밭을 일굽니다. 흙과 함께 벽돌도 하나둘 모았습니다.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당신들 손으로 꾸민 옥상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서 당신들 밥상에 올려놓고도 남을 만큼 됩니다. 고추농사를 짓는 텃밭이 되었다가는 콩농사를 짓는 텃밭이 됩니다. 어느새 3층 다세대집을 웃자랄 만큼 키큰나무가 된 오동나무를 보면서, 이야, 오동나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컸구나, 하고 놀랍니다.


.. 다른 아이들도 뒤영벌이 다시 꽃에 살포시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설레는 맘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곤충을 쓰다듬어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왠지 뒤영벌과 친구가 된 것처럼 모두 기분이 좋았습니다 ..  〈125쪽〉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집안에 들여놓고(또는 툇마루에 내놓고) 지냅니다. 골목집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나무며 집밖에 내놓고 지냅니다. 생각해 보면, 아파트는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꽃밭이 있으나, 이 꽃밭은 관리인이 꽃나무 몇 가지와 잔디를 모셔 놓는 자리이지, 상추나 시금치나 무나 배추를 심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골목집은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밖에 없습니다. 집안이 좁으니까요. 골목집 바깥 꽃그릇에는 온갖 푸성귀와 꽃이 자랍니다. 그러나 이 푸성귀를 뜯어 가는 사람이 없고, 예쁜 꽃이 자랐다고 해서 꽃그릇을 훔쳐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 숲은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으며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답니다 ..  〈122쪽〉


 달동네 집을 죄 밀어내고 번듯번듯 높직높직 올려세운 아파트 옆을 지나갈 때면 몸이 움츠러듭니다. 아파트 둘레는 ‘아파트사람들 자가용’이 들락거리기 좋도록 길을 닦았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느라 걷기 안 좋습니다. 게다가 씽씽 내달리기까지 합니다. 빵빵거리기도, 앞등 불빛을 깜빡거리거나 사람 눈높이로 쏘기도 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몸을 활짝 폅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는 조용한 골목길. 드문드문 옛날 나무전봇대를 만납니다. 인천에 터잡은 중국사람들 살림집을 봅니다. 예전에 틀림없이 다른 살림집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계단짬에 잠깐 앉아 다리를 쉽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달동네 언덕받이입니다. 그다지 멀잖은 곳에 바다가 보입니다. 도심지 살림집과 길거리 등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기불은 언제까지 켤 수 있을까요.





 〈3〉 우리 어른들은 무슨 학교를 바라는가


 《숲에서 크는 아이들》은 독일에 있는 ‘숲속 유치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아이들은 시멘트나 쇠붙이 따위로 지은 딱딱한 건물이 아닌, 부드럽고 무른 흙과 풀이 있는 숲에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배웁니다.

 참 부럽습니다. 우리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교육 터전입니다. 지금 우리한테 숲이 얼마나 남아 있나요? 온누리 구석구석 아파트를 짓는다며, 지역자치정부는 공장을 세워 돈벌이를 해야 한다면서, 인천시장만 해도 그나마 남은 몇 안 되는 곳까지 파헤쳐 경제자유도시니 영어도시니 뭐니 만든다고, 여기에다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를 때 쓸 경기장이니 선수촌아파트니 지하철 2호선이니 또 짓는다고 어마어마하게 공사판 법석을 피웁니다.

 지금은 국제공항이 들어섰지만, 이 자리는 오랜 소금밭이었습니다. 도시사람들이 좋아하는 ‘조개구이’에 쓰이는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 드넓은 갯벌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앞바다는 망둥이도 잡던 곳이었으며, 몇 만 마리에 이르는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로지 사람 좋을 대로만 생각하면서 날짐승과 바닷짐승 보금자리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아이들이 함께 누리고 즐길 ‘바다 놀이터’ 또한 빼앗은 셈입니다. 가까이 보면 인천사람이지만, 인천 둘레 바닷가로 놀러와서 갯벌과 밀물썰물 달라짐을 느끼면서 자기 마음에 깃든 자연을 키울 남녘나라 사람들 삶터를 잃었어요.


.. 아이 엄마는 냇가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짐작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  〈49쪽〉


 《숲에서 크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속 학교’는 돈으로 닦아세우거나 올려세울 수 없는 학교입니다. 돈을 들일 까닭도 없는 학교입니다.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으면, 우리 생각을 돌려놓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학교이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알뜰히 돌보거나 가꿀 수 있는 학교입니다.

 참말, 우리 터전에서는 숲속 학교란 꿈꾸기 어려운 곳이라 할 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조금은 남아 있잖아요. 숲속 학교뿐 아니라 ‘바다 학교’를 가꿀 수 있고, ‘들(논밭) 학교’와 ‘산 학교’를 껴안을 수 있어요.


.. 요즈음 엄마 아빠와 함께 숲에 산책하러 가는 일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숲은 아무리 가도 물리지 않는 곳이니까요. “저건 전나무, 저건 가문비나무예요.” 페릭스는 아빠에게 가르쳐 주기 바빴습니다. “어떻게 아니?” 아빠는 언제나 신기해 하며 물었습니다 ..  〈136쪽〉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돈’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바다 학교든 찾아내어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일류대학교 졸업장’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들 학교든 돌보며 지킬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풋풋한 젊음을 키워 가는 아이들한테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산 학교든 어깨동무하며 웃고 뒤놀 터전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4340.10.2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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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아침 2007-11-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번역한 책을 이렇게 리뷰해주시니 새롭고 기쁩니다. 제 블로그에 이 글을 옮겨 놓겠습니다.

파란놀 2007-11-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은 참 좁네요 ^^;;;
어줍잖은 글 읽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도서관에서 띄우는 글]
 3 ― ‘책 싸게 사는 길’ 여쭙는 님이시여



 사람들이 묻는다.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묻는다. 아니,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글을 남기며 묻는다. 인터넷새책방에 책소개 글을 띄워서 5만 원짜리 상품권에 뽑히라는 둥, 여러 인터넷새책방을 두루 살피며 마일리지와 쿠폰을 어떻게 주는가를 살피라는 둥, 이런저런 도움말을 들려준다.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댓글을 남기면서.

 어떤 책을 사고 싶기에 싸게 사고 싶을까. 자기가 바라는 책은 얼마짜리 책이기에 값싸게 사고 싶을까.

 책을 싸게 사면 좋을까. 좋다면 무엇이 좋은가.

 책을 싸게 사면 더 잘 읽을 수 있는가. 책을 싸게 사면, 그 책에 담긴 줄거리를 한껏 넉넉하게, 한결 속깊이 헤아리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책을 엮어내어 파는 책마을 사람들은 왜 쿠폰을 붙이는가. 인터넷새책방은 왜 마일리지를 쌓아 주는가. 이들은 왜 책소개 글을 띄워 주었다고 몇 만 원에 이르는 선물을 베풀까.




 인터넷 모임 게시판에 올려진 ‘묻기’ 글에 엉뚱한 댓글을 남기는 나. “저는 동네책방에 주문해서, 책에 적힌 값대로만 책을 사기 때문에 책을 싸게 사는 길은 모르겠네요. 님께서는 책을 싸게 사는 길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보다, 그 책을 살 수 있도록 알바를 하시는 편이 좀더 슬기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분들 가운데 절반 조금 웃돌 만큼은, ‘책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헌책방에서 책을 값싸게 사는 이들이, ‘자기가 헌책방에서 사서 읽은 책’을 헌책방에 되팔려 할 때에는 무척 아까워한다. ‘2000원 주고 산 책’이라면, 이 책을 헌책방에 되팔 때 얼마쯤 받을 수 있을까? 얼마쯤 받아야 알맞을까?

 헌책방에서 책을 사며 ‘책값이 싸서 좋다’면, 자기로서는 참으로 자기 마음밭을 추스르거나 가꾸는 데에는 썩 좋은 책까지는 안 찾는다는 소리인가. 책을 살 때 헤아리는 첫 번째 잣대는 그저 ‘싼 책값’ 때문인가. 그래서 자기 마음이며 머리며 몸뚱아리며 아름답게 가꾸어 줄 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고 해도, ‘비싼 책값’이면 도리질을 칠 생각인가. 그러면, 얼마쯤 되는 책값이 싼 편이며, 얼마쯤 되는 책값이 비싼 편일까.

 자기가 읽고픈 책을 한 권 장만하고자, 부지런히 일해서, 땀흘리며 일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는 없을까. 갖고는 싶은데 돈이 없는 터라 슬그머니 도둑질을 해서라도 갖고 싶은가. 갖고는 싶고 도둑질하기도 싫어서, 그 책을 갖고 있는 사람한테 빌린 다음, ‘어, 잃어버렸는데?’ 하면서 안 돌려주고 자기 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느끼는 ‘책을 싸게 사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면,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찾아가서 두 다리가 아프도록 서서 읽는 길이 하나 있다. 다음으로는, 내 다른 씀씀이를 모두 줄이면서, 이를테면 머리를 머리집에 가서 깎지 않고 내 손으로 가위질해서 깎는다든지. 옷을 더는 사지 않고 바느질로 기워서 입는다든지. 또는 이웃사람한테 헌옷을 물려받거나 얻어서 입는다든지. 자가용은 아예 타지도 말고, 대중교통조차도 웬만하면 타지 말고 두 다리로 걸어다니든가 자전거로 다닌다든지. 밥을 밖에서 사먹지 말고 도시락을 챙겨서 먹는다든지. 과자부스러기 군것질을 하지 만다든지. 찻집에서 차를 사 마시지 말고 보온병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 걸상에 앉아서 마신다든지. 비싼 술집에서 술 마시지 말고 가게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마신다든지. 노래방에 가지 말고 집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뜯는다든지. 이러저러하게 돈씀씀이를 줄이고 아낀 돈으로 책을 사는 길, 이 길만큼 ‘책을 싸게 사는’ 좋은 길은 없다고 느낀다.

 뭐, 생각해 보면, 책을 꼭 우리 집 책시렁에 꽂아 놓아야만 하지는 않아. 마음에 담아야 책이 아닐까. 머리에 새겨야 책이 아닐까. 내 두 손에, 내 두 다리에, 내 발바닥에 콱 박혀야 책이 아닐까. 내가 품는 생각에, 내가 움직이는 몸뚱이에, 내 모든 몸짓에 하나로 녹아들어야 책이 아닐까. 책에 담기는 지식 가운데 잊어버리는 것이 있으면 어떠랴. 다시 들춰보지 못하면 어떠랴. 그러면 자그마한 공책을 늘 들고 다니면서, 이 공책에 ‘자기가 읽은 책에서 마음에 와닿은 대목’을 가지런하게 옮겨 적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내 나름대로 반갑다고 생각하는 글귀를 모은 내 책’을 새롭게 엮으면 된다.




 내가 인천 배다리 한쪽 귀퉁이 자그마한 자리에 연 도서관에는 내 나름대로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 온 책을 그러모아 놓았다. 이곳을 찾아오는 분 가운데 “여기에 책이 몇 권이나 있어요?” 하고 묻는 분이 으레 있고, 이렇게 묻는 분한테 으레 “책 권수가 그렇게 중요하나요? 그냥 읽고픈 책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읽으시고, 이 책 저 책 죽 둘러보며 반가운 책을 찾아보셔요.” 하고 대꾸한다.

 그러다가 그끄제쯤, 이런 생각 하나가 났다. 우리 도서관에 있는 책 권수를 묻는 분이 있으면, “음, 날마다 꼬박꼬박 세 권씩 읽을 때, 당신께서 서른 해 동안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있습니다.” 하고 대꾸해 볼까 하는. (4340.10.19.쇠.ㅎㄲㅅㄱ)

***
이 글은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 지킴이가 띄웁니다.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있으며, 금-토-일에만 열어 놓습니다. 찾아와서 책을 읽는 값은 따로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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