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물 기저귀 빨래


 종이달거리가 아니라 천달거리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다. 그렇지만, 기계빨래를 벗고 손빨래로 돌아오는 사람은 그닥 안 늘어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손빨래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라면 기계힘을 빌 수 있다고 느낀다. 아프고 힘드니까.

 바쁜 사람들도 기계힘을 빌 만하다고 여기지만, 바쁜 사람들이라 한다면 더더욱 손힘을 누리며 빨래를 맞아들일 노릇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바쁘니까.

 바쁘니까 바쁜 겨를을 쪼개어 책을 읽는다. 바쁜데, 바쁜 틈을 나누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꿈을 북돋운다. 바쁘기 때문에 내 손과 몸과 일과 삶을 아끼는 길을 걸어간다.

 요즈음 사람들은 기계힘을 빌면서 “빨래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계힘을 빌리는데 빨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옳게 말하자면 빨래를 하는 삶이 아니라 “기계를 쓰는” 삶이라 해야겠지.

 기계빨래라고 손쉽다고 느끼지 않는다. 기계빨래를 한대서 집일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느낀다. 집일은 늘 고만큼 있다. 집일이란 내가 살아가는 만큼 나 스스로 해야 하기 마련이다. 손을 써서 빨래를 하는 동안 내 손을 더욱 사랑할 수 있고, 손을 놀려 빨래를 하기에 내 옷과 빨래를 한결 사랑할 수 있다.

 옆지기 핏물 기저귀 빨래를 한다. 첫째를 낳은 지난 200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핏물 기저귀 빨래를 신나게 했다. 핏물 기저귀 빨래를 마감한다 했더니, 이때부터는 천달거리 빨래가 이어졌다. 2010년 가을에 둘째를 밴 뒤로는 천달거리 빨래가 그친다. 2011년 오월에 둘째가 태어났으니 이제부터 핏물 기저귀 빨래가 다시 생긴다.

 핏물 기저귀이든 천달거리이든 북북 문지른대서 핏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핏물 기저귀는 그때그때 빨아 말려야 하니 늘 삶을 수는 없지만, 아침부터 낮까지 나오는 핏물 기저귀라면 두어 장 모아 삶을 수 있고, 아기 보랴 집일 하랴 눈코 뜰 사이 없으면 목초물 뿌린 물에 담가 둔다. 처음에 물을 조금씩 뿌리며 한손으로 핏자국을 살살 문지르면 제법 핏기가 빠지는데, 이렇게 핏기를 뺀 기저귀를 목초물 뿌린 물에 담근다고 하겠다. 삶을 때에도 목초물 뿌린 물에 한동안 담고 나서 삶으면 핏기는 더 잘 빠진다.

 집식구들 몸에서 나온 때를 내 손으로 느낀다. 살붙이 몸에서 나온 피를 내 손으로 받아들인다. (4344.5.24.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살아가는 말 56] 갓난쟁이

 갓난아기를 바라봅니다. 요 갓 난 아기를 바라봅니다. 이 땅에 갓 나온 아기는 어머니젖을 물다가는 잠이 들다가는 잠이 깨다가는 할머니나 아버지 품에 안겨 두리번두리번 멀뚱멀뚱하다가는, 곁에서 누나가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쫑긋합니다. 어머니 배에서 열 달을 사는 동안 늘 듣던 조잘조잘 재잘재잘 노래하는 소리는 갓난아기한테는 어떠한 느낌이었을까요. 갓난아기가 새근새근 잠들 무렵 시끄러우면 안 되니까 피아노를 치지 말라 했지만, 갓난아기가 제법 큰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고는, 동생이 듣도록 피아노를 쳐 주렴, 하고 말하니 금세 피아노 뚜껑을 살며시 열면서 신나게 또당또당 두들깁니다. 누구한테서 딱히 배운 적이 없는 아이 마음대로 가락에 따라 이 소리 저 소리 부드러이 들려줍니다. 생각해 보면, 고작 세 해 앞서만 하더라도 어린 누나는 제 어린 동생과 마찬가지로 갓난쟁이였습니다. 갓난쟁이에서 제법 큰 아이는 이제 어엿하게 누나 노릇을 하고, 누나 노릇을 하는 어린이를 키우는 어버이 또한 이제는 늙수그레한 나이로 접어드는 아버지요 어머니이며, 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낳은 분들은 갓난쟁이였을 적에 어떤 모습인지 떠올리기 힘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살아갑니다. (4344.5.23.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즐겁게 살고 싶어 책읽기


 
 즐겁게 살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돈을 벌고 싶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예쁘게 살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이름값을 얻을 뜻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힘(권력)을 누릴 마음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맑은 꿈을 믿으면서 밝은 넋을 나누고 싶어 책을 읽습니다. 상을 받으려는 나머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는 삶이 사랑스러워 책을 읽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거머쥐겠다며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기운을 차리면서 책을 읽습니다. 더 많이 읽어도 되고 조금만 읽어도 되며 못 읽어도 됩니다. 백 쪽이나 천 쪽쯤 읽어도 흐뭇하고, 열 쪽이나 한 쪽을 읽거나, 아예 한 줄조차 더듬지 못하더라도 기쁩니다. 나는 책 하나에 깃든 모든 알맹이를 받아먹을 때에도 반갑지만, 글 한 줄에 서린 조그마한 씨눈을 얻어먹을 때에도 웃음이 납니다. (4344.5.22.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졸업장과 책읽기


 구급차에 실린 옆지기가 충주 시내에 있는 병원에 왔다. 병원 간호사들은 옆지기가 아기를 낳도록 돕기보다 온갖 검사와 조사를 한 시간 남짓 한다. 이때에 간호사 한 사람이 “보호자 분 되시지요?” 하면서 조사쪽지를 하나 내미는데, 이 조사쪽지는 ‘아기 낳을 어머니’ 종교가 무엇이고 학력은 어떠한지를 묻는다. 종교를 천주교라 하니 “카톨릭이라는 거죠?” 하고 대꾸한다. 아기를 낳는데 학력을 왜 적느냐고 묻지만 부질없다. 앞으로 면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버지와 어머니 학력을 또 적어야 하니까. 설마, ‘종교 있고 가방끈 짧은’ 아기 어머니들은 현대의학으로 다루어야만 한다고 여기지는 않을까 싶어 근심스럽다.

 조사쪽지를 돌려보내고 첫째하고 분만대기실이라는 데에 앉아서 기다리면서 생각에 잠긴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 책을 내놓는 사람은, 이 책을 장만하여 읽을 사람들 ‘마지막 가방끈’이 무엇인가를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따질까. 어느 책 하나를 더 잘 읽는 사람이란 나라밖으로 찾아가서 배우고 돌아온 사람일까. 대학원까지는 마쳐야 인문책을 거뜬히 읽어낸다 할까. 대학교쯤은 다녀야 문학이고 예술이고 즐길 만한가. 고등학교만 마치거나 중학교만 마친 사람은, 초등학교만 다니거나 학교 문턱을 밟지 못한 사람은 책을 읽을 눈높이가 안 된다 할까. (4344.5.22.해.ㅎㄲㅅㄱ)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분꽃 2011-05-23 19:47   좋아요 0 | URL
참.. 슬픈 세상이지요ㅠㅠ
 


 병원 작은 방


 병원 작은 방에는 텅 빈 냉장고하고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다. 휴지 한 장 이불 하나 따로 없을 뿐 아니라, 빨래비누나 대야조차 없다. 둘째를 낳은 대학병원에서 입원수속을 하는데, 간호사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이야기 없이 무턱대고 4인실 자리를 잡았다고 알려준다. 병실이 어떻게 있다고 밝힌 다음 어디를 쓰겠는지 물어야 하지 않나? 이 사람들은 네 살 아이가 있는 집안 사람들이 4인실 방에서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다른 애 어머니와 견줄 수 없이 몸이 대단히 나쁠 뿐더러 여린 옆지기를 여느 4인실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알쏭달쏭하다. 간호사 말을 끊고 불쑥 말한다. 여기 1인실은 없나요? 1인실이요? 있어요. 4인실은 얼마쯤 하나요? 4인실은 4만 원이요. 1인실은요? 1인실은 10만 원이요. 그러면 1인실로 해 주셔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저희는 아이도 있고 애 어머니하고 함께 자야 하는데 1인실로 해야 해요.

 첫째를 낳던 병원을 떠올린다. 첫째를 낳던 인천 병원에도 이곳 충주 병원과 마찬가지로 텅 빈 냉장고하고 큼지막한 텔레비전이 있었다. 다만, 휴지는 있었는데, 인천 병원에서도 대야와 빨래비누와 이불은 없어서 집에서 모조리 들고 왔다. 인천에서는 집과 병원이 가까웠지만, 시골집에서는 자가용으로 40분은 달려야 하는 먼길이다. 자가용 없는 우리 식구는 여러 사람한테 도와주십사 이야기해서 겨우 이것저것 챙겼다.

 병원 작은 방에서 아이가 뛰어놀라 하기란 몹시 힘들다. 그래도 아이는 잘 뛰어놀아 주었다. 잘 견디어 주었다. 새벽 두 시 사십오 분부터 깨어서 낮에 두 시간 살짝 잠들었을 뿐, 졸리면서 잠을 안 자는 아이는 이 작은 병원 방에서 온힘을 짜내어 제 어머니 아버지하고 살아내 준다. 아이가 얼마나 심심해 할까 걱정스럽지만, 몸이 힘든 아버지는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한다. 옆지기 몸이 썩 좋지는 않지만, 개인 병실로 옮긴 다음 몇 시간 지나서 아이 손을 붙잡고 바깥으로 나온다. 병원 앞 문방구에 들러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산다. 아이는 제 손바닥에 꼭 쥘 만한 작은 수첩 둘을 쥔다. 하나만 하면 안 되겠니? 응, 안 돼. 둘 다 할래? 응, 둘 다 할래. 하나에 400원짜리 작은 수첩을 둘 나란히 사 준다. 병원으로 돌아온 아이하고 한 시간 남짓 그림을 그리면서 논다. 그러나 한 시간 뒤에는 무슨 놀이를 해 줄까. 옆지기가 텔레비전 켜 주라 이야기한다. 드디어 텔레비전을 켜서 만화영화 나오는 곳을 찾는다. 만화영화이든 다른 뭐뭐이든 그닥 재미나지 않을 뿐더러 아이하고 신나게 볼 만하다고 느끼기 힘들다. 광고는 너무 시끄러우면서 쓰잘데없다. 한 시간 남짓 텔레비전을 보았나 싶은데 눈과 귀가 몹시 아프다.

 인천 병원에서도 그랬지만, 충주 병원에서도 책 있는 자리란 없다. 적어도 병의학을 다룬 책이라든지, 아이를 낳을 어머니나 아버지나 식구나 살붙이나 이웃이 읽ㅡ,,으면서 헤아릴 만한 책 하나조차 없다. 아니, 어린이 그림책이나 동화책마저 없다. 아이들이 갖고 놀 만한 놀잇감 또한 없다. 요사이에는 사람들이 아이를 잘 안 낳는다지만, 두셋 낳는 집안이 아예 없지 않을 뿐더러, 제법 있다. 둘째나 셋째를 낳으려고 병원에 오는 어머니들이 많다. 그렇지만, 첫째나 둘째가 병원에서 놀거나 읽을 거리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할 뿐더러, 병원에서 함께 지내는 아버지 될 사람들이 ‘아이낳기’와 ‘살림하기’와 ‘집일하기’를 깨우치도록 돕는 책이란 한 가지도 없다. 애 아버지가 애 어머니한테 해 줄 국과 밥 몇 가지라도 하도록 도와주는 요리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사랑하면서 돌보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무슨 책을 읽을까. 그저 셈틀 앞에 앉아서 인터넷 바다를 누빌 뿐인가.

 병원 작은 방이든 긴 골마루이든 분만대기실이든 어디이든, 책이 놓이는 병원을 한국땅에서 꿈꾸고 싶다. 아름답거나 훌륭한 책이 놓이자면 아주아주 오래오래 걸릴 테지만, 적어도 후줄그레한 잡지 하나라도 놓일 책꽂이가 있는 병원 작은 방을 꿈꾼다. (4344.5.21.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