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지 ‘서울로! 서울로!’ 가는 세상입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랐어도 지역에서 문화밭을 일구며 가꾸려는 사람보다는, ‘서울에 가서 이름을 날린다’든지, ‘서울에서 큰돈을 번다’든지, ‘서울에 사람이 많으니 이 무리에 섞이면 힘(권력)을 얻을 수 있다’든지 하면서, 자기 고향땅을 등집니다. 젊었을 때에는 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서울에서 복닥복닥 부대끼며 세상을 배운다고도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풋풋한 이십 대 젊은 날을 서울에서 살았군요. 참으로 서울에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서울과 제법 먼 부산이나 대구나 대전쯤만 해도 젊은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천에는 젊은이가 적습니다. 젊은 나이에 인천에 머물러 있으면, ‘머리가 나쁘다’든지, ‘어딘가 문제 있다’든지, ‘사고라도 쳤다’고 바라보기 일쑤입니다.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산타는자전거로만이 아니라, 동네에서 생활자전거 문화를 조촐하고 조용하게 나누려는 모임이 터를 잡기 어려워요. 하지만, 누가 나서서 이런 모임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만들자고 하면서 세 사람이 뭉쳐서 작은 모임을 열었고, 이제는 제법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어제, 쌀쌀해지는 날씨에 자전거는 집에 놓고 모임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처음에는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두 번째로는 보리술을 마시러 갑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찾아간 보리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모두들 ‘윽, 이게 뭐야?’ 하고 술잔에서 입을 뗍니다. 보리술에 물을 타도 장난이 아니게 탔고, 김이 빠져도 보통이 아니게 빠졌기 때문입니다. 술집 일꾼을 불러다가 따져도 ‘새 술인데요?’ 할 뿐. 그렇다면, 서른 마흔 쉰 나이까지 살아온 모임 분들이 여태껏 술을 마셔 오면서 보리술 맛도 모른다는 소리일는지.

 즐거웠던 모임이 확 나빠지려고 합니다. 지역에서 지역사람한테 장사하면서 어째 이럴 수 있는지. 그러나 ‘술은 알맞게 마시라’는 하늘 뜻인지 모를 일. 이제 그만 마시고 집으로 가라는.

 한 해 두 해 세 해, 이렇게 술을 마시는 가운데 술맛이 혀에 달라붙어, 냄새만 맡아도, 눈으로만 보아도 술맛이 어떻겠구나 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자전거를 한 해 두 해 세 해, 이렇게 타는 가운데 모두들 손떨림이 줄고 안전하게 즐기게 됩니다. 요즈막에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백 가지 친구 이야기》, 《해와 같이 달과 같이》, 《황새울 편지》 들을 꼭 세 번 되읽었습니다. 앞으로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까지 거듭 읽으면, 줄거리며 글쓴이 뜻이며 더 짙게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며 그려지겠지요.

 책을 다 읽고 나서 소개글을 쓸 때, ‘한 번 더 읽어 보고 쓸까?’ 싶어 한 번 더 읽고, ‘두 번 더 읽으면 좀더 나으려나?’ 싶어 두 번 더 읽고, ‘내 안에서 조금 더 삭이자’ 싶어 세 번 더 읽습니다. 이야기문이 솔솔솔 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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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낮, 제법 따뜻했습니다. 아니, 더웠습니다. 그래서 긴팔 웃도리를 벗고 가방에 끼워둔 채 돌아다녔습니다. 반소매 차림으로.

 오늘 낮, 어제만큼 덥지는 않지만 햇볕이 따사롭습니다. 도서관에서 손 비비며 글을 쓰다가 옥상에 올라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파리 구경을 합니다. 얼어죽거나 겨울잠을 자야 할 파리들이 한두 마리 날아다닙니다.

 그제 담가 놓았던 긴바지 두 벌을 빱니다. 찬물 빨래라 손이 시리지만, 얼어붙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차영차 빨아서 햇볕에 널어 둔 다음 도서관으로 내려와서 글쓰기를 다시 하는데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보일러를 돌리면 좋을는지, 아니,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망설입니다. 올겨울은 영 도 아래로 떨어질 날이 있을까요? 뒷간에서 《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라는 책을 읽다가 “흙이 건강하면 벌레나 해충이 끼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에 안 걸리듯 건강하지 못한 흙에 병충해가 붙는 것입니다.(57쪽)”라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지금 우리 삶터는 얼마나 튼튼할까요. 우리 나라 날씨는 얼마나 날씨다울까요. 이런 날씨를 느끼면서(또는 아예 안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들 몸과 마음은 얼마나 튼튼할 수 있을까요. (4340.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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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물


 속이 쓰리다. 졸립지는 않은데 눕고 싶다. 잠깐 숨을 멎고 그대로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있어 본다. 내가 이대로 숨을 거두고 죽는다면? 내 삶은?

 몇 분이었을까, 아니 일 분쯤이었겠지. 이러고 있자니, 죽음이란 참 부질없는 노릇이라고, 이대로 숨을 거둔들 무엇이 아깝겠으며, 여기에서 더 산다 한들 무엇이 더 넉넉하겠느냐 싶다. 나는 나대로 내 깜냥껏 하는 만큼 살면 되지 않겠느냐.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덜 바라느냐. 무엇이 더 있으면 좋고 무엇이 더 없으면 나으냐.

 얼마쯤 잠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일어난다. 옷을 하나씩 벗는다. 알몸뚱이가 되어 씻는방으로 들어간다. 빨래를 한다. 빨래 하나 마친 뒤 몸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몸을 씻는다. 찬물이 말 그대로 차갑게 살갗으로 와닿는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진다. 아직 날씨도 영상 십오륙 도쯤 되지 않는가? 십일월이 코앞인데 이런 날씨이다. 아직 보일러는 돌리지 않는다. 아니, 보일러는 고장이 나서 돌릴 수 없다. 올겨울은 보일러 없이 날 수 있을까? 보일러를 돌린다 해도 기름값이 걱정이다. 올겨울은 옷 두툼하게 껴입고, 바닥에는 깔개를 잔뜩 깔아 놓은 채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버티리라. 해가 다르게 날이 따뜻해진다. 아니, 더워진다. 가게에서 사 온 비름나물에 곰팡이가 피었다. 부랴부랴 냉장고에 다시 돼지코를 꼽는다. 잠들 뻔하던 모기가 다시 깨어났다. 아직도 잠잘 때 모기장에서 자야 한다. 모기는 모기장 바깥이 온통 제 세상이다. 사람은 조그마한 모기장이 자기 집이다. 이제는 여름만이 아니라 봄가을도, 겨울마저도 사람이 모기장 신세를 져야 할 판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겨울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겨우나기를 하며 기름을 안 쓸 수 있겠지. 빨래를 할 때 조금 손이 차지만, 겨울 빨래처럼 손이 시리거나 얼어붙지 않는다. 한두 가지 빨래를 하고 나면 손에도 피가 몰려서 따뜻하다. 찬물이 따순 물처럼 느껴진다.

 빨래를 셋, 넷까지 하고 다섯까지 한 다음 하나를 남긴다. 저녁에 걸레를 빨거나 내일 아침에 씻을 때 빨려고. 씻을 때 빨아야 물을 덜 쓴다.

 빨래 두 가지는 빨래집게에 집어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널어 놓는다. 햇볕이 괜찮다. 이불 둘 들고 나와서 담벼락에 널어 놓는다. 저 멀리, 담벼락에 이불 널어 놓은 집, 빨래를 빨랫줄에 줄맞춰 널어 놓은 집이 보인다. 아파트라면 빨래 구경도 못할 테지.

 마당이 있어(옥상 마당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느끼고 햇볕을 쬘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옥상과 마당을 바라다볼 수 있어 좋다. 이웃집 창문으로 살림살이를 살며시 들여다보기도 하고, 우리 집 살림살이가 우리 집 창문을 거쳐 이웃집에 들여다보여지기도 한다.

 기차가 지나간다. 전철도 지나간다. 집이 옹옹옹 울린다. 옆지기가 예전에 말했다. 그렇게 옹옹옹거려도 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긴, 그렇겠지. 올해로 쉰 살을 먹은 이 집은 여태껏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는데. 이 집이 무너지면 이웃집들은 오죽하겠는가.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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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낙타와 성자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엘리아스 카네티 님 책은 좋다. 반갑다. 하지만, 이분 책을 훌륭히 우리 말로 옮길 만한 사람은 우리 나라에 없을까? 훌륭하게 우리 말로 옮길 수 있도록 번역가한테 시간을 주고 마음을 써 주는 편집자나 출판사는 없을까? ... '리뷰' 대신 '번역 문제' 이야기를 풀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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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사는 ㅇ님이 책을 한 꾸러미 보내 주었습니다. ㅇ님이 하나하나 사서 읽었던 책입니다. 책 안쪽에 ㅇ님이 찍어 놓은 도장 자국이 자그맣게 보입니다. ㅇ님은 이 책을 하나하나 고를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헤아리면서 고맙게 책장을 펼칩니다. 구겨지거나 접히거나 비틀린 곳 하나 없이 깨끗한 책입니다. 먼저, 엘리아스 카네티 님이 쓴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읽습니다.

 그러나 한 장 두 장 넘기는 책장이 자꾸 끊기고 또 끊깁니다. 책을 쓴 분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얼추 짚을 수 있으나,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는 느낌은 옅습니다. 왜 그러지? 책을 덮고 며칠 묵힙니다. 다시 책장을 펼쳐 읽습니다. 또 덮습니다. 다시 읽다가 또 덮습니다. 이러기를 보름 남짓.

 오늘 아침, 한 번 더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오늘은 두 쪽을 넘기지 못합니다. 다시 책을 덮고 엘리아스 카네티 님이 쓴 《구제된 혀》나 《군중과 권력》을 헤아려 봅니다. 책꽂이에서 《군중과 권력》을 꺼내어 짚이는 대로 한 대목 골라 읽어 봅니다.


.. 필자는 군중결정체를 군중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경계가 분명하고 커다란 항구성을 지닌 인간들의 소집단이라고 규정한다. 이 집단은 개괄적 성격을 띠면서도 한눈에 봐서 그대로 파악될 수 있는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  〈85쪽〉


 오늘 읽다가 막힌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다시 펼칩니다.


.. 보석 상인들은 별도의 미음자형 건물에 모여 있는데 길고 가느다란 가게 안에서 남자들이 수작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24쪽〉


 우리 나라에는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나오는데, 이 가운데 대단히 많은 책이 ‘번역’책입니다. 창작책 가운데에도 나라밖 이야기를 글감으로 삼은 책이 많고, 나라밖 책으로 공부하거나 나라밖에 나가서 둘러보거나 느끼거나 공부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 많습니다.

 책마다 자기 빛깔이 있고 얼굴이 있어서, 백 가지 책이라면 백 가지 빛깔과 얼굴을 느낀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요즘 나오는 백 가지 책을 보면서 백 가지 빛깔이나 얼굴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다 똑같은 빛깔이라고, 다 어슷비슷한 얼굴이라고 느낍니다.

 어린이책 번역을 보아도, 어른책 번역을 보아도 매한가지입니다. 먼저, 책을 써낸 사람, 글쓴이 모습이나 말씨나 얼굴이나 말투나 느낌을 읽기 어렵습니다.

 책을 써낸 사람마다 이름이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마다 자기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나라가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이 살아온 겨레붙이가 다를 테고, 책을 써낸 사람이 어울리며 만나는 사람이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이 보고 듣고 배우고 부대끼는 삶과 삶터가 다를 테며, 책을 써낸 사람마다 쓰는 말이 다를 텐데. 책을 써낸 사람마다 생각하며 나타내려는 이야기가 다르고, 책을 써낸 사람마다 바라거나 꿈꾸는 세상이 다를 텐데.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를 읽다가 막힌 대목을, “보석장수들은 따로 ㅁ자 꼴로 지은 건물에 모여 있는데, 길쭉하고 좁은 가게에서 손수 보석을 다듬고 있다”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썩 내키지 않습니다. 번역책을 읽으면서 왜 번역글을 다듬으며 읽어야 하지? 막힘없이 술술 읽을 수 없는지?

 들뢰즈를 우리 말로 옮길 때, 들뢰즈처럼, 또는 들뢰즈보다 더 깊이 학문을 갈고닦아야 가장 훌륭하게 들뢰즈를 옮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페이터 산문을 우리 말로 옮길 때, 페이터가 살았던 지난날과 그 나라 문화와 사회를 두루 톺아보는 눈길이 없다고 해서 페이터 산문을 우리 말로 옮길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각해 봅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일제강점기 때 이 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짓밟히고 시름시름 앓으며 고달팠는가를 돌아보는 마음이 없이 〈낙엽을 태우며〉를 읽거나 〈학도여 성전에 나가라〉를 읽을 때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목넘이 마을의 개〉는, 〈탁류〉는, 〈모래톱 이야기〉는 지난 우리 삶과 역사를 굽어살피지 않으면서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헤아릴 만한 작품일까요. 〈잉여인간〉은, 〈당신들의 천국〉은, 〈유예〉는 지금 우리 삶과 터전이 어떠한 모습인지 넘겨다보지 않으면서도 알뜰하게 곰삭이면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작품일까요. 흘려들은 지식하고 머리로 생각한 깜냥만으로 〈태백산맥〉이나 〈봄날〉이나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속속들이 새겨읽을 수 있을까요.

 가와바타 야스나리 님이 쓴 〈눈나라(설국)〉는, 이 작품으로만 훌륭했기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까요.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라는 사람이 일본 문화와 문학을 모두 사랑하면서, 일본사람과 하나가 되어 도쿄에 살면서 〈눈나라〉를 미국말로 옮겨내지 않았을 때에도 〈눈나라〉는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까요. 일본말로 된 문학을 미국말로 옮긴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도쿄 이야기》를 썼고, 《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를 썼습니다. 두 가지 책 모두, 일본사람 저리 가라 할 만큼 일본과 도쿄 문화와 사회를 깊이 꿰뚫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정체성인 ‘미국사람’을 잊지 않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초등학교에 들지도 않았는데 영어를 배우고 한문을 외우는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지난 토요일 잠깐 서울 나들이를 하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에서 “마미! 마미!”를 외치는 어린 계집아이를 보았습니다. “엄마! 엄마!”를 외치지 않고 “마미! 마미!”를 외치는 어린아이는 여덟아홉 살쯤? 아이 어머니는 딸아이가 ‘마미’라고 해도 “원 녀석두, 마미가 뭐니, 엄마지 않구?” 하고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엄마’가 아닌 ‘마미’라고 쓸 줄 알아야 영어가 몸에 익은 생활말로 버릇으로 굳어서, 앞으로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자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영어를 그렇게 생활말로 쓰면 좋지’ 하고는 느낄는지 모릅니다.

 이리하여 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기는 인터넷게임에서도, ‘준비, 땅!’이 아니라, ‘ready, start!(또는 ready, go!)’가 버젓이 알파벳 글자로 찍혀서 화면을 채웁니다. 스물 안팎 젊은이들이 ‘고 고 고’라고 말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한참 알쏭달쏭해 한 적이 있습니다. 시내버스에서도 영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미국말을 쓰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필리핀이나 다른 유럽나라 문화와 사회를 우리들은 얼마나 잘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이토록 미국말이 우리 삶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한국말로 창작한 문학이며 예술이며 문화며, 미국말로 옮겨서 소개하거나 알리는 일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미국말 할 줄 아는 사람 많고, 일본말 할 줄 아는 사람 많으며, 중국말 할 줄 아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나라밖 말 잘하는 사람’들은, 우리 문화와 문학과 예술을 나라밖 사람들한테 ‘그 나라밖 사람들이 살갗으로 느끼며 받아들일 만큼 들려줄 만한’ 높낮이가 되어 있는지요.

 어쩌면, 제가 너무나 많이 바라는지 모릅니다. 너무 높은 자리를 꿈꾸는지 모릅니다. 《Death of a Salesman》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밖에 옮길 줄 모르는 이 나라인데. 《Being and Nothingness》을 《존재와 무》로밖에 옮길 줄 모르는 이 나라 사람들인데.


.. It was a bright cold day in April, and the clocks were striking thirteen ..


 번역가가 아닌, 이 나라 대학생들이, 또 고등학생이, 또 초등학생이, 또 토익점수 높게 받은 사람이, 이 글월 하나를 우리 말로 옮긴다면 어떻게 옮길까요. 이 글월은 조지 오웰 님이 쓴 《1984》 첫 줄입니다. (4340.10.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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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꾼 2009-03-2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우연히 카네티를 검색하다...허나 두 번째 지적 부분은 교정자도 충분히 잡아줄 수 있었습니다. 과거 전 직장 동료들과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 '제대로 된' 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한국어 문장 구사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로 외국어를 하나씩 무작위로 뽑게 한 다음 그 언어를 죽기 살기로 가르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외국어는 스파르타식으로 좀 휘몰아치면 웬만큼 언어감각이 있는 사람은 잘 배우잖아요~ 뭐 행간의 의미야 차차 실력이 늘면서 보이는 거니까...그런데 세일즈맨의 죽음이 '세일즈맨의 죽음'이면 안 되나요?

파란놀 2009-04-14 14:50   좋아요 0 | URL
세일즈맨의 죽음은... 언젠가 쓴 글이 있는데... 좀 깁니다 ^^;;;
 

내가 떠올리는 헌책방 발자취
: ‘추억’을 넘어 ‘현실’로 힘쓰는 헌책방 삶터




 저는 올 사월에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와서 사진책 도서관을 조그맣게 열었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린이책 도서관’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이 드문드문 있고, 이렇게 외치는 분들 가운데 자기 집 한쪽 방을 트거나 따로 방을 얻어서 그동안 자기가 모아 온 어린이책으로 조그맣게 ‘지역 어린이책 도서관’을 여는 분들이 있습니다. 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 모두 이 조그마한 어린이책 도서관을 제대로 굽어살피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 한다면, 번듯한 건물이나 수십 수백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갖춘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가까이 찾아가며 책을 쉴 수 있는 곳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갈 수 있고, 도서관에서만 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마을마다 다른 문화와 사회를 고이 지키고 가꾸면서 튼튼히 이어나갈 수 있는 터전입니다. 도서관 만든다며 수십 수백 억을 들여 새 건물을 지어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 돈을 푼푼이 나누고 쪼개어, 마을마다 크고작은 ‘지역 사랑방’ 구실을 하는 터전이 달세 걱정 않도록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는 어린이책 도서관도 드물지만, 어른책 도서관도 드뭅니다. 아이들이 쉴 곳도 없지만, 어른들도 쉴 곳이 없어요. 길을 거닐다가 다리쉼을 할 만한 나무걸상 하나 제대로 마련된 곳이 어디에 있을까요? 여름이라면 모르지만, 겨울에는 차가운 돌걸상에 앉을 수 없어요. 플라스틱 걸상도 그렇지요. 인천에도 서울에도 광주에도 대구에도 부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치르고 들어가야 하는 찻집과 밥집과 술집은 있어도, 손바닥만한 동네 쉼터가 없어요. 나무그늘을 느낄 수 있는 텃밭도 마당도 사랑방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또 무엇이 없을까요? 제가 느끼기로는, 시골에서 마을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골목길을 걸어가며 찾아갈 수 있는 헌책방은 차츰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헌책방이 자취를 감추기 앞서, 동네 새책방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동네 헌책방은, 동네 새책방이 곳곳에 많이 있어서, 동네사람들이 자기 마음밭을 일구는 책을 부지런히 사서 보는 문화가 이루어져 있을 때 비로소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립니다. 한 사람이 자기 주머니돈을 털어서 사서 읽은 책을 기꺼이 내놓아 주어야 헌책방에 헌책 하나 깃들이거든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동네 새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습니다. 동네 새책방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참고서와 자습서만 살 뿐입니다. 참고서와 자습서는 책일까요? 학습지는 우리 마음밭을 고이 가꾸어 줄까요? 동네 새책방을 동네 책 문화로 이끌지 않거나 이끌지 못하는 우리들은, 우리가 살가운 보금자리로 여겨 살고 있는 동네를 메마르고 팍팍한 곳으로 나뒹굴게 합니다. 동네에 나무그늘 하나 제대로 없는데, 어찌 동네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거나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을까요? 온통 씽씽 내달리는 자동차만 가득한데, 어찌 아이들이 뛰놀 수 있을 테며, 어른들이 막걸리 사발 주고받으며 세상 부대끼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요새 아이들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인터넷게임에만 빠진다고들 합니다만,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이 ‘우리 말 문화를 망가뜨린다’고도 합니다만, 아이들을 방구석으로 내몰고, 아이들이 방구석에서 인터넷게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닥달한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닐까요? 아이들이 뛰놀 골목길이 없는걸요.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추스르고 더 넓은 세상을 헤아려 볼 책을 만날 수 있는 책쉼터인 동네 새책방과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고 있는걸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헌책방을 왜, 어떻게, 언제, 얼마나 자주 다녔을까요? 헌책방만이 아니라 동네 새책방에는 얼마나 자주 찾아갔을까요? 우리는 동네 새책방이나 헌책방을 찾아가면서 어떤 책을 만났고, 어떤 책으로 우리 가슴을 적셨으며, 어떤 책으로 여태껏 느끼지 못한 새로움을 맛보며 세상 톺아보는 눈길을 가다듬었을까요?

 제 어린 날을 뒤돌아봅니다. 제 어린 날은 책하고는 담을 쌓은, 아니 책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날입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있었으나, 월부 책장사한테 사들인 전집 몇 가지가 있었을 뿐이고, 이 책은 우리 형이 보라고 들여놓았습니다. 저는 마냥 골목길 놀이가 좋았고, 골목길 동무들하고 온갖 놀이를 하며, 대나무로 낚싯대 만들어 갯벌로 낚시하러 가기를 즐겼습니다(제 어릴 적까지는 망둥이 낚시를 곧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가 낮에 밥 먹으로 잠깐 돌아온 뒤 다시 저녁까지 뛰어놀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숨바꼭질을 하며 박쥐하고 벗삼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집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전집 책이 불쌍해 보여서, 또 어머니 꾸지람을 듣기도 해서, 또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하기도 했고, 독서부장 맡은 계집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조금 있어서, 더듬더듬 몇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헌책방 추억을 떠올리자니, 그냥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헌책방이 참 많았다”는 것뿐. 어린아이한테는 책이고 뭐고는 눈에 안 들어오고 온통 놀잇감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머리통이 조금 굵어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눈을 뜹니다. 참고서와 교재를 값싸게 사고팔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 아니었음을, 참고서 팔이로 돈을 버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지만, 우리 눈길이 학습지에서 풀려날 때 바야흐로 책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짐을 처음 살갗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독일말 참고서 하나를 사고 책값을 셈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뒷통수를 자꾸 긁어대는 무엇인가 있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학습지 아닌 여느 인문사회과학책’들이 책시렁에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군요. 흠칫 놀랍니다. 아, 지금 내가 셈치르는 이 녀석은 책이 아니구나, 진짜 책이 저기 있구나.

 고개를 떨구고 참고서를 가방에 쑤셔넣습니다. 한 달 뒤, 보충수업을 땡땡이치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찾아와, 여섯 시간 남짓 안쪽 구석에 박혀서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후비는 책, 내 가슴을 파고드는 책, 내 모자라고 못난 눈길을 나무라면서 한손을 내밀어 붙잡아 일으켜 주는 책,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날마다 한 그릇씩 고운 목숨을 선사해 주는 책.

 추억이 어릴 틈 없이 현실로 찾아온 헌책방입니다. 그래도 추억 하나 끄집어내 본다면, “좋은 책 하나 손님들한테 건네줄 수 있으면 저희들 보람이지요. 뭐, 우리들이 세상에 이름을 내려고 헌책 파나요?” 하고 살며시 웃던 헌책방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문 사회면 한 줄짜리 기사 ‘궂긴 소식’으로도 실리지 못한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시고, 간판이 내려지고, 그 자리에 손전화 가게며 빵집이며 술집이며 닭집이며 들어서던 일들 …… 이랄까요.

 서울 청계천과 인천 배다리와 부산 보수동과 전주 홍지서림 골목과 대전 원동 저잣거리와 청주 중앙로 들에는 아직 크고작은 헌책방거리가 드문드문 남았습니다. 서울 골목골목에서 적잖은 헌책방들이 허리띠 졸라매며 애쓰고 있습니다. 서울 신촌을 중심으로 열 군데 남짓 헌책방이 점점이 모였습니다. 모두들, ‘추억’으로 끝날 수 없는 ‘현실’로, 우리 삶으로 헌책방 문화를 지키며 가꾸고자 낮은 자리에서 말없이, 다소곳이 힘쓰고들 있습니다. (4340.10.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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