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이야기 카르페디엠 19
안케 드브리스 지음, 박정화 옮김 / 양철북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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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두 친구 이야기
- 글쓴이 : 안케 드브리스
- 옮긴이 : 박정화
- 펴낸곳 : 양철북(2005.11.18.)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5 ― 엄마한테 얻어맞는 아이를 지키는 동무
 : 안케 드브리스, 《두 친구 이야기》


 

 (1) 서울, 전철, 동무, 고향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달픕니다. 가는 길이 멀어서가 아니라, 누구 하나 안 지친 사람이 없는 사람들만 가득한 대중교통이기 때문입니다. 서울 볼일 마치고 전철을 타고 수원이나 안산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고달플 테지요. 전철에 탈 때부터 자리에 앉을 꿈을 꿀 수도 없는 가운데, 적어도 한 시간, 또는 한 시간 반을 서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전철로만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또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을 들어가야 하고, 버스에서 내린 뒤 또 걸어서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걸어야 할 테니까요.


.. 그러나 벤 아저씨도 나중엔 유디트의 아빠처럼 떠나버렸다. 어느 목요일 밤, 아무 말도 없이. 아저씨와 엄마는 싸우지도 않았다. 처음에 엄마는 무척 초조해 하더니 나중엔 화를 냈다. 그 후 며칠 동안 유디트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덕분에 엄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어느 날 밤 엄마는 유디트를 후려갈겼고, 유디트는 쓰러지면서 옷장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  (18쪽)


 옆지기 고등학교 적 동무를 서울 회기동에서 만나고 헤어진 때는 저녁 열 시 반. 전철을 타니 열 시 사십육 분. 터덜터덜 달리는 전철이 동인천역에 닿으니 열두 시를 훌쩍 넘겼고, 역부터 집까지 걸어오니 거의 새벽 한 시.

 서울사람들은 대중교통도 늦게까지 있으니, 저녁 열 시 조금 넘었을 무렵부터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하는, ‘서울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 마음을 모릅니다. 서울에서 사는 회사사람들은 일곱 시나 여덟 시쯤 끝나 가볍게 술을 한잔 마신다고 하여도 겨우 한 시간 남짓 앉아 있다가 금세 자리를 떠야 하는 아쉬움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어도 자기 집에 닿으면 열두 시는 우습지 않고 한 시께에 이르니, 몸이 축날 테지요. 더욱이 이튿날 새벽 다섯 시 반쯤부터 짐 챙기고 부랴부랴 새벽버스 타고 전철역에 가서 서울 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오징어처럼 짓눌리며 선 채로 꾸벅꾸벅 졸며 회사에 닿아도 여덟 시가 넘어가니, 날이면 날마다 몸은 고단하고, 어서 빨리 주말이 찾아와 모자란 잠 좀 자자고 재촉하게 됩니다.


.. “왜 못했니?” “저…… 또 두통이 도져서요.” 유디트는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우선 해 놓은 것만 보자꾸나.” 유디트는 초조하게 책가방을 뒤졌다. 베크만 선생님은 기다리면서 유디트의 수그린 머리를 보았다. 곧은 금발이 얼굴을 덮었다. 베크만 선생님은 문득 저런 스웨터를 입으면 질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디트가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힐끗 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잔뜩 겁먹은 눈이었다. 왠지 이 아이는 너무 연약해 보여. 도저히 화를 낼 수 없는 아이야 ..  (31쪽)


 서울 회기동에서 인천 끝자락까지 달리는 전철에 타고 있는 고단함에 찌들고 쩐 사람들 얼굴을 봅니다. 갓 스물을 넘긴 아가씨들은 얼굴에 화장을 짙게 발랐지만, 그 화장 뒤에 감춰진 얼굴이 얼마나 힘겨워할까가 마음에 그려집니다. 젊은 사내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리가 없어 서 있기는 하지만, 가만히 서 있는 일이 얼마나 고단할까요. 그렇다고 자리에 앉아서 가는 사람도 아늑하지만은 않습니다. 좁아터전 전철 걸상에 옹크린 채, 더구나 겨울이라 다들 옷이 두툼하니 더욱 낀 채로 꼼짝을 못하고 한 시간 넘게, 또는 두 시간 가까이 앉아 있는 일은 고문이에요.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자율학습에 목이 매어 얼굴이 파리해졌던 중고등학교 수험생 때에도 오십 분에 십 분씩 틈을 주고 걸상에 짓물러진 엉덩이를 쉴 수 있게 했습니다.

 모두들 무엇 때문에 이리도 먼 길을, 날마다 네 시간 남짓 전철과 버스에서 보내며 살아야 할까요. 날마다 네 시간씩 전철과 버스에서 보내면서 만나는 사람은 몇이나 되고, 이렇게 만나는 사람과 몇 시간쯤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가요.

 얼마나 깊은 만남과 사귐이 되는지요. 우리들 ‘서울 아닌 곳 사람’은 왜 ‘서울 아닌 우리 고향이나 터전’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가요. 왜 인천에서, 왜 수원에서, 왜 안산에서, 왜 부천에서, 왜 강화에서, 왜 일산에서, 왜 용인에서, 왜 구리에서, 왜 문산에서, 왜 광명에서, 왜 안양에서, 왜 군포에서, 왜 이천에서, 왜 의정부에서, 왜 동두천에서, …… 서울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으면서 찾아가고 돌아가고 해야 하나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을, 우리와 어릴 적부터 같은 골목길과 놀이터와 집과 학교와 마을에서 뒹굴고 뛰놀던 동무들하고 복닥이고 부대끼면서 오붓하게 살아가지는 못하는가요.


.. 미하엘이 말을 더듬거려도 아빠는 결코 재촉하거나 신경질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돌 같은 침묵 때문에 미하엘은 더욱 긴장했다. 미하엘은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등과 배의 발진과 갑작스럽게 높아지는 열에 시달렸다.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조차 아빠는 읽을 책과 공부할 거리를 주었다. 당연히 텔레비전도 볼 수 없었다 ..  (50쪽)


 광명에서 태어나고 일산에서 자란 옆지기네 동무들한테 뿌리는 무엇일까요. 옆지기가 태어났던 들판 판자집은 모두 아파트로 바뀌어, 이제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뛰놀았는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숲과 쇼핑센터로 바뀌어 가는 일산에는 새 학교를 자꾸자꾸 짓습니다. 분당도 그렇고 성남도 그렇고 용인도 그렇습니다. 인천에서도 논밭을 메우고 산을 깎아서 만든 연수동에 새 학교를 뚝딱뚝딱 지었고 예전 도심지에 있던 학교를 그리로 옮겼습니다. 서울 강북 종로에 있던 학교를 강남으로 옮겼듯이. 그러면서 요즈음은 송도 새도시에 새 학교를 짓는다고 법석입니다.

 우리들한테는 새로 짓는 집이 바로 고향이고 일터이며 동네가 되고 있습니다. 고향이라는 이름은 주민등록증에만 남을 뿐, 인천사람이고 서울사람이고 부산사람이고 다른 틈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산속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골목길 달동네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들판에서 태어나 자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시멘트 병원에서 태어나고 시멘트 학교에서 배우며 시멘트 아파트에서 삽니다. 쇳덩이 자가용에 아버지 어머니가 태워서 움직이게 하며 두 다리는 흙 한 뼘 밟을 일이 없지만 십만 원도 넘는 아주 좋은 운동신을 신고 발바닥은 보송보송 말랑말랑입니다.


.. 유디트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동생을 데리러 오는구나.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네 시간이 없지 않니?” 소피가 다시 콜라를 따르며 말했다. “이, 있어요.” 거짓말이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 데니스를 데리고 집에 가면 할 일이 언제나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엄마가 하루 종일 직장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 ..  (64쪽)


 늦은밤 인천으로 달리는 전철은 알맞게 이야기가 있고 알맞게 조용합니다만, 사람들 말소리는 시끄러운 전철 소리에 묻힙니다. 창밖으로는 높직한 울타리가 가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땅위를 달리고 있어도 땅위를 달리는지 어쩐지 알 수 없습니다. 창문을 내다보아도 어느 역에 서는 줄 모릅니다. 전철 안에 마련된 자막방송을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아야 겨우 알 수 있습니다.

 졸고 있는 사람, 자고 있는 사람, 주정하는 사람, 수작 거는 사람, 손전화 문자 보내는 사람, 들고다니는 텔레비전 보는 사람이 있으나 책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긴요, 책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이 뻘쭘한 때에, 이 지친 때에. 그래도 더러더러 책 하나 손에 쥐는 사람이 보입니다. 흔한 싸구려 사랑타령 소설이든, 한 달 만에 일억을 벌었다는 재테크 놀음이든, 윗사람한테 잘 보이고 빨리 진급하는 재주를 일러주는 처세학이든, 책 하나 쥘 수 있는 매무새가 반갑습니다.

 아침에 서울로 들어가는 전철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양복쟁이 아저씨가 으레 두 사람, 옷 말끔히 차려입고 예수 사랑 외치는 아주머니가 으레 한두 사람 있습니다. 밤깎이 칼을 팔고, 석유 냄새 코를 찌르는 실장갑을 팔며, 주머니에 넣는 손전등을 파는 한편, 몇 장에 만 원짜리 음반을 팔고, 양말도 팔고, 허리띠도 팔고, 우산도 팔고, 선풍기덮개도 팔고, 싸구려 볼펜도 팔며, 덤 얹어 주는 반창고를 파는 한편, 하모니카 장애인 아저씨가 지나가고, 서로 꼭 붙잡은 채 걷는 장님 늙은 부부가 지나가고, 휠체어에 몸을 실은 말없는 아저씨가 둘쯤 지나가고, 한 다리를 절며 동냥을 하는 아저씨, 예수찬양 테이프를 틀어놓고 눈감은 채 동냥하는 아지매, 껌을 들이밀며 파는 할머니, 쇠돈 담긴 종이잔을 흔들며 돈 좀 넣으라는 할머니, 말없이 복사종이를 돌리며 천 원을 바라는 젊은이, …… 들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인천으로 돌아가는 밤전철에는 아무런 장사꾼이 없고 아무런 설교자가 없으며 아무런 동냥꾼이 없습니다.


.. 엄마는 유디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생크림 케이크까지 사 왔다. 하지만 그 케이크 때문에 배가 아팠다니 묘한 일이었다. 생크림은 너무 기름지고 달았다. 유디트는 위장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랜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제 몫으로 준 큰 조각 하나를 억지로 입에 쑤셔넣었다. 때맞춰 화장실에 가서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다행히 엄마는 화를 내지 않았다 ..  (98쪽)


 인천에서 서울 이문동으로 전철을 타고 학교를 다니던 1994년 한 해 동안, 날마다 줄잡아서 일곱∼열쯤 되는 장사꾼과 동냥꾼과 설교자를 만났습니다. 한 해쯤 다니면서 거의 날마다 보는 사람이 있어서 나중에는 얼굴을 알아보기도 합니다. 굵직한 목소리로 “조금∼만, 도와, 주쎄요!” 하고 외치던 절름발이 아저씨가 어느 날 말끔하게 머리를 깎고 옷도 깔끔하게 입은 채 그 “조금∼만, 도와, 주쎄요!” 하고 외치며 지나가는데, 제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아이구, 오늘은 머리 깔끔하게 깎고 왔네!” 하며 웃습니다. 동냥꾼 아저씨는 살짝 곁눈으로 바라보다가 지나가는데, 목소리에 살며시 더 힘이 실리며 한결 굵어집니다.


.. 유디트는 미하엘을 집에 들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그렇게 멍이 들었냐고 물어 볼 것이 뻔하고, 그러면 친구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너무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를 위해 일부러 찾아온 친구를 모른 척하다니. 이 학교에서는 유디트를 찾아온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  (105쪽)


 어릴 적 한동네에서 치고박고 싸우기도 하고, 골목길 술래잡기도 하고, 숭의동야구장 빈터에서 야구놀이도 하던 어릴 적 동무들 가운데 고향 동네에 그대로 눌러앉아서 살아가는 녀석들이 몇몇 있는 한편, 서울로 기나긴 전철길을 따라서 졸음과 고단함에 쩔디쩐 채로 살다가 슬그머니 서울로 집을 옮기며 떠나간 녀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혼인한다고 전화하면서 예식장을 알려줄 때면 으레 자기들 고향 동네가 아닌 서울 예식장이기 일쑤고, 새살림 얻는 집도 인천이 아닌 서울이기 마련이며, 한동안 돈이 없어 집값 싼 인천에 머물다가 어느새 서울로 훌쩍 날아가곤 합니다.

 집을 서울로 옮기면서, 동무 녀석들은 전철을 버립니다. 버스에서 떠납니다. 한결같이 자가용을 굴립니다. 그 옛날, 똥배 하나 없고 허벅지 단단하여 공차기를 하든 농구나 배구놀이를 하든 지치지 않고 몇 시간이고 뛰어놀던 동무들이, 이제는 오 분 달리기를 해도, 아니 일 분만 달리기를 해도 헉헉대지를 않나, 백 미터를 못 걸어가서 택시를 타자고 하지 않나, 애엄마도 아닌데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술을 마시고 밥을 사먹고 해마다 새로 나오는 손전화 기계를 장만하며 또닥또닥 누르면서 지냅니다.


 (2) 주먹질


 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돈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책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그이를 아끼는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한 사람한테는, 그이가 나누려는 뜻과 마음이 얼마나 있으면 좋을까요.


.. “게다가 싸구려도 아니지. 진열장에서 그 옷을 보자마자 생각했지. 내 딸한테 사 줘야겠다고.” 엄마는 이렇게 말하면서 유디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엄마는 찻주전자한테 말하고 있었다 ..  (122쪽)


 1994년 봄날, 대학교 선배가 된 형들이 우리들 새내기를 부르며 주먹질을 하고 머리박기를 시킵니다. 다른 동무들은 선배들 말이 무서워 따르지만, 저는 선배들 주먹질을 손으로 막고 머리박기를 하지 않습니다. “니가 뭔데? 이러는 게 선배냐? 이 따위 짓거리가 대학생이라는 선배자식들이 하는 거냐? 부끄럽지 않아?” “뭐야? 이 자식이!”

 1995년 11월 어느 날, 논산 훈련소에서 조교한테 발차기를 맞고 머리박기며 얼차려며 갖가지 쓰라림을 겪습니다. 1996년 1월,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디엠지 안쪽에 있는 소총중대로 배속을 받아 들어간 첫날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 다섯 시께. ‘비상’이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니, 싸리비 한 자루씩 나누어 주며 병장 한 사람이 이끄는 대로 어디 산속을 깊디깊이 들어갑니다. 한 시간 남짓 걷기만 해서 들어간 산속에서 길이 하나 나옵니다. 헉헉거리면서도 병장 그이 엉덩이만 보며 일 미터 거리를 지킨 채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니, 분대원이며 내 전입동기며 낙오를 했습니다. 병장은 나를 빼놓고 다른 분대원과 전입동기한테 머리박기를 시키고 군화발로 갈비뼈와 옆구리를 걷어찹니다. 갖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죽어야 하는구나. 그냥 죽어야 하는구나. 그냥 있어도 죽고, 뒹굴어도 죽고. 또 죽어야 하는구나.


.. 유디트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항상 조심해. 미하엘은 생각했다. 유디트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애를 알아야만 해. 유디트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았으므로 미하엘은 종종 몸짓이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보고 생각이나 감정을 짐작해야만 했다. 가끔은 상처받은 것 같은,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받은 표정이라…….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걸까? ..  (130쪽)


 상병 계급장을 달고 6호봉이 지난 1997년 사월 어느 날, 1소대 내무반으로 들어가 김 아무개 일병 이름을 부릅니다. 침상에 앉아 고개를 살짝 들고 ‘네’ 하는 그녀석. 군화 신은 채로 침상에 올라가 그대로 김 아무개 일병 얼굴을 걷어찹니다. 잇달아 어깨며 배며 가슴이며 다리며 걷어차고 밟습니다. 그러고 나서 1소대 왕고참 병장한테 거수경례를 붙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나옵니다.

 때리면 맞고 굴리면 구르고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만 내며 살다가, 살다가, 그만 나도 때리는 사람 굴리는 사람 죽으라고 외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김 아무개 일병이라고만 말해 오다가 ‘야이 찢어죽을 종간나 아무개 새끼야’를 아무렇지도 않게 읊어대는 내 고참과 똑같은 군인이 되어 버립니다. 삽을 들었으면 삽날이고 삽자루고 몽둥이가 되고, 총을 들었으면 총부리고 개머리판이고 몽둥이가 됩니다. 빈손이면 주먹이, 군화를 신었으면 군화발이 몽둥이입니다.


.. 이모가 있는 한 주는 후닥닥 지나갔다. 유디트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그 안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리아 이모가 있는 집안엔 구석구석 봄기운이 감돌았다. 엄마도 달라 보였다. 엄마가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이었다 ..  (215쪽)


 뺨을 맞으면 뺨이 얼얼하면서도 뒷간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제가 뺨을 후려갈기면 뺨맞은 그 녀석이 뒷간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저는 1997년 12월 강원도 양구 눈덮인 도솔산을 군짐차에 실려 만기전역을 하며 떠났지만, 얻어맞은 뺨에 흐르는 눈물은 1998년에도 1999년에도 2000년에도 2008년인 오늘에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채 고스란히 이어가고 있지 않을까요. 군대라는 곳이 있는 동안. 사람을 사람이 아닌 계급으로 나누고, 사람이 사람을 따스하게 껴안지 않으며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빨리 총알 적게 쓰며 죽여 없앨 수 있는가를 머리속에 집어넣고 몸에 익히도록 하는 그런 군대라는 곳이 우리 사회에 또아리를 틀며 버티고 있는 동안.


.. “그래, 뭐라던?” 할머니는 뭔가를 캐내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매맞는 것 말이다.” “트루더!” “얘기 좀 하게 입 다물어요!” 할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미하엘에게 몸을 돌렸다. “그 애가 늘 맞고 지낸다는 건 알고 있었니?” “한 번 맞았던 건 알아요. 그 후로 학교가 끝나고 바래다주었죠. 때린 남자애들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남자애? 남자애라니?” “유디트를 마구 때린 애들요.” “남자애들!” 다시 한 번 할머니는 조롱하는 듯이 웃었다. “남자애들이 자기를 때렸다고 하던? 그건 엄마 짓이었어!” 미하엘은 놀란 눈으로 할머리를 바라보았다. 머리로 피가 쏠렸다. 비좁고 후덥지근한 방 안에 있으려니 점점 어지러워졌다.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  (256∼257쪽)


 주먹질과 욕설과 얼차려와 괴롭힘과 따돌림 들로 ‘저마다 소중한 목숨붙이’였던 사람을, ‘누구보다도 끔찍하고 몸서리쳐지는 살인병기’로 뒤바꾸어 놓는 군대계급 소굴은, 군대를 벗어난 뒤 다니는 대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집안에서도, 동네에서도 어쩌는 수 없이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아가씨를 만나도 제멋대로가 되어 쉽게 손찌검을 하고, 자기 아이한테도 이웃 아이한테도 쉬 짜증을 부리며 손이 먼저 올라가는 남정네가 되게 합니다. 스스로 못된 손목아지를 잘라버려야겠다고 다짐하며 고치고 추스르고 깎아내고 도려내는 동안에도.


.. “장볼 돈으로 인형을 샀지!” 섬뜩한 목소리로 으르렁대는 엄마의 손에 빵칼이 들려 있었다. 유디트는 숨이 멎었다. “안 돼, 엄마……. 안 돼! 인형은 안 돼!” 유디트는 비명을 질렀다. 엄마는 코알라 인형에 칼을 쑤셔넣었다. 네 번, 다섯 번 칼질을 반복하는 사이에 인형은 넝마조각이 되었다. 엄마는 칼을 다시 치켜올리고 유디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유디트는 얼어붙은 채, 칼이 번쩍거리는 것을 보았다 ..  (282쪽)


 농약을 뿌려서 거두는 곡식에 농약이 배이고 쌓입니다. 자동차 배기가스가 넘치는 도심지에 뿌연 먼지띠가 겹겹이 쳐지고 늘어납니다. 돈 많이 벌자고 하는 곳에 돈이야 많이 들어오겠지요. 바라는 것은 돈뿐이니까요.


 (3) 《두 친구 이야기》라는 책


 2005년 12월, 《두 친구 이야기》를 눈깜짝할 사이에 읽어냈습니다. 2008년 1월, 《두 친구 이야기》를 다시 집어들고 열흘에 걸쳐서 자근자근 씹어먹듯이 천천히 읽습니다. 할머니가 자기 어머니한테 모질게 했던 끔찍한 주먹질과 따돌림과 괴롭힘을, 이 어머니가 자기 딸한테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퍼붓고 있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감돕니다.

 여리고 작은 아이 ‘유디트’는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한테 얻어맞습니다. 이웃집 할머니한테까지 들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이한테 잘못이 있어서 휘두르는 주먹질이 아니고, 아이가 미워서 휘두르는 주먹질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그랬듯이, 어머니가 딸한테 하는 주먹질과 괴롭힘과 따돌림은 아무런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 까닭 없이, 그냥 미워서, 그러면서도 제 자식이니 때린 다음에 눈물을 흘리고.


.. “유디트를 도와야 해. 유디트의 엄마도 마찬가지고. 더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그런데 어떻게 주소를 찾아내지?” ..  (263쪽)


 작지는 않지만 여린 아이 ‘미하엘’이 있습니다. 미하엘은 자기를 때리지는 않지만 모질게 괴롭히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홀로 외로우며 아버지한테 시달리다가 병까지 앓는 미하엘한테, 이웃에 살던 ‘스테피’라는 계집아이는 마음을 열어 주면서 ‘함께 나누어서 좋으니까 친구지’ 하는 깨달음을 나누어 줍니다. 이 아이 스테피는 뒷날 미하엘이 당차게 ‘아버지하고 안 살겠다’고 하면서 네덜란드에 있는 이모하고 살겠다고 자기 권리를 말하는 뒷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미하엘은 고향나라 네덜란드에서 만난 유디트를 보면서, 미국에서 지내며 아버지한테 시달리는 동안 만났던 스테피 모습을 그림자처럼 느낍니다. ‘새로운 두 친구’가 무엇을 서로 나누어야 하는가를 느낍니다.


.. 유디트는 천천히 돌아누웠다. 여전히 숨쉴 때마다 힘들었다. 엄마가 조리대에 처박을 때 갈비뼈를 다친 게 틀림없었다. 여기에 계속 있으면 나도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내 코알라처럼 말이야. 다시 한 번, 유디트는 미하엘의 목소리를 들었다. “뭔가 해야만 해…….” ..  (284쪽)


 스테피는 미하엘한테 “텔레비전을 혼자 보면 엄마하고 같이 볼 때보다 훨씬 재미없어. 같이 있으면서 엄마가 웃으면 나도 더 많이 웃게 돼.”(52쪽) 하고 말했습니다. 미하엘은 유디트한테 “유디트, 너한테 엄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어. 너희 집에 갔을 때 …… 넌 남자애들이 때렸다고 말했지?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야? 난 친구잖아, 안 그래? 왜 그냥 맞고만 있어? 누군가한테 말을 해야 해. 엄마가 자기 자식을 때리는 건 정상이 아니야.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네가 기다리기만 하면 엄마는 널 계속 때릴 거야. 뭔가 해야만 해. 계속 비밀로 할 수 없어. 우리가 도와줄게. 약속해.”(273∼279쪽) 하고 말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아끼는 동무이기 때문에, 몸과 몸으로도 아끼면서 함께 웃고 함께 울고 싶은 동무이기 때문에, 내 즐거움은 네 즐거움이 되고 네 아픔은 내 아픔이 되는 동무이기 때문에, 나 혼자 걷는 두 걸음이 아닌 너와 함께 한 걸음씩 걷고 싶은 동무이기 때문에. 그런데, 유디트를 괴롭히며 때리는 어머니는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동무를 만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동무를 찾으려고 할까요? (4341.1.1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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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임자도 압니다. 자기가 파는 책 가운데 그냥 ‘돈이 될 만한 책­’인지, 우리 ‘책 문화에서 더없이 소중한 책’인지. 그러나 책을 사고팔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 책들을 팔아야 살림을 꾸릴 수 있거든요. 이 책들을 팔아야 다른 좋은 책을 사들일 수 있고, 다른 좋은 책을 사들인 뒤 또 팔아야 또 다른 좋은 책을 사들일 수 있거든요.

 몇 해 앞서, 1910년대인가 1920년에 처음으로 나왔다고 하는 국어사전 이야기가 잠깐 신문에 오르내린 적 있습니다. 이 국어사전을 찾아낸 교수는 ‘어디에서 찾았는지’ 밝히지 않았고 ‘고서점’이라고만 했는데, 부산 보수동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찾았지 싶어요. 그래, 이런 책들을 헌책방 임자들이 모를 리 없겠지요. 더구나 100해 가까이 된 책이라면, 어떤 헌책방 임자도 그 책을 허투루 다루지 않으며 함부로 아무한테나 내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당신들이 그 책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 좋은 책이 나한테 있다’는 보람을 느낄 테고요. 그렇지만 헌책방 임자는 이 책을 가장 잘 알아볼 만한 사람한테 팝니다. 이 책을 가장 잘 알아볼 만한 사람이라면 그 책 값어치를 가장 잘 느끼며, (헌책방 임자한테) 가장 괜찮은 값을 쳐 줄 만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이 얼마나 왜 소중한가를 알고 있는 이라면, 자기가 끌어들일 수 있는 책값을 헤아리기 마련이고, 자기가 가진 돈 테두리에서 소중한 책 하나를 기꺼이 사곤 합니다.

 헌책방 임자한테는 책을 잘 알아보는 사람 못지않게 값을 제대로 쳐 줄 사람이 소중합니다. 당신도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또한, 헌책방 임자한테 책을 대주는 샛장수도 먹고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이런 옛책 한두 권을 팔면서 팍팍하고 고달픈 요즘 살림형편에 기지개를 켤 수 있고요.

 우리들 책손은 헌책방에 ‘우리들이 반가이 여길 만한 책’이 있어야 즐겨찾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반갑게 여길 만한 책을 기꺼이 사들일 만한 돈이 주머니에 넉넉해야 헌책방을 즐겨찾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헌책방 나들이가 뜸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즐겨찾던 헌책방 임자가 애써 갈무리해 놓았던 ‘우리한테 반갑거나 좋았던 책’이 안 팔리거나 묵어 버리곤 합니다. 다른 책손이 알아보고 사들여 준다면 그 헌책방으로서는 ‘책돌이’가 잘되어 ‘다른 반갑거나 좋은 책’을 사들일 밑돈을 마련하는 한편 헌책방 살림을 꾸릴 테지만, ‘우리한테 반갑거나 좋은 책’을 우리 스스로든 다른 사람이든 알아보지 않거나 못하며 팔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하거나 대단한 책이라 해도 맞돈이 되지 못하고 말아요. 이리 되면 헌책방 일꾼도 힘듭니다. 가게세 내고 살림돈 얻어야 하는데, 책돌이가 안 되니, 책돌이가 될 만한 책에 자꾸 눈을 돌리게 됩니다.

 헌책방에 책이 안 나오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나날이 책읽는 사람이 줄고, 나올 만한 책은 웬만큼 나왔으며, 더 많은 이익을 바라며 책을 물건으로 다루는 사람이 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 책눈길을 좀더 넓히지 않는 까닭이 있습니다. 좀더 부지런하게 책을 즐기지 못하는 까닭도 있고요.

 책이 돌고 돌려면, 자료로 둘 책이 아니고서는 다른 이한테 내어주거나 헌책방에 내놓아야 좋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한테 새로우며 반갑거나 좋은 책’을 꾸준하게 찾아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읽은 책은, 이 세상에 나온 책 가운데 아주 적습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우리한테 반가울 책이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 책들은 예나 이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이 책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줄 모르거나 못 느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 부피는 어느 금을 넘어갈 수 없으니, 우리한테 반갑거나 좋을 모든 책을 죄 알아보며 읽어낼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만큼은 알아야 할 테며, 우리가 볼 수 있는 만큼은 찾아보려는 몸짓과 움직임을 잃어서는 아니될 일이라고 느낍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일도 잘못이라고 느껴요.

 헌책방 일꾼들은 말합니다. ‘당신들이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일하면서도 참 놀라운 대목이, 그렇게 많은 책을 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당신들이 처음 보는 책이 많다’고. 우리들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만나거나 손에 쥐어드는 책은, 헌책방 일꾼이 ‘만져 본’ 책 가짓수나 권수와 견주면 새발가락에 낀 먼지만큼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제법 안다고, 무슨 지식이 있다고, 어디 교수라고, 무슨 학자라고 이름쪽을 내밉니다. 뭐, 이름쪽 내미는 일이야 자기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이름쪽을 내밀려면, 자기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힘써야지요.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부지런히 자기 머리와 마음과 몸을 갈고닦거나 추슬러야지요. 여태껏 우리 삶터와 세상을 밝혀 온 훌륭한 이들 얼과 넋이 고이 담긴 소중한 책 하나가 끝없이 묻혀 있음을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찾아나서기도 해야지요. 헌책방 일꾼들이 ‘우리들 책손한테 반가울 책’인 한편 ‘헌책방 일꾼한테는 밥벌이가 될 고마운 책’을 한결같은 매무새로 찾아나설 수 있어야지요.





 책이 살면 우리 삶도 삽니다. 우리 삶이 살면 우리가 즐기는 일이나 놀이도 삽니다. 우리가 즐기는 놀이와 일이 산다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회 얼거리나 문화 터전도 힘을 얻으며 살찔 수 있을 테지요. 우리 사회와 문화가 북돋운다면, 우리가 마음껏 즐기며 누릴 책도 한껏 나아질 테며 푸짐하게 펼쳐질 테고요.

 우리가 애쓰는 만큼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새책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베스트셀러에만 눈길을 맞춘다면 새책방 책꽂이는 베스트셀러에 더 많은 자리를 내어줍니다. 우리가 처세와 실용서적에만 마음을 쏟는다면 새책방 책꽂이는 처세와 실용서적에 자리를 훨씬 많이 내어줍니다. 우리들이 어린이책을 많이 찾아보니 새책방 꾸밈새가 확 달라지지요? 우리들이 인문학 책을 좋아한다면, 자연과학 책을 좋아한다면, 생태와 환경 이야기를 다룬 책을 좋아한다면, 돈-이름-힘이 아닌 사랑-믿음-나눔을 담은 책을 좋아한다면, 새책방 책꽂이와 꾸밈새는 어떻게 거듭나겠습니까. 우리가 도서관에서 즐겨 빌려읽는 책에 따라 도서관 사서 눈높이도 달라집니다. 도서관 높낮이는 도서관을 즐겨찾는 우리들 몸가짐과 손뻗음에 달려 있습니다. (4341.1.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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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리고 뒤돌아보니 극장에 남은 사람 열대여섯
 [내가 본 영화 1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고



 - 1 -

 홍성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ㄱ출판사 사장님이 시내에 나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 극장에 함께 있던 사람 숫자는 다섯이라고 합니다. 제가 인천 ㅇ극장에서 옆지기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열대여섯쯤 함께 보았습니다. 사백 사람 남짓 들어올 수 있는 극장에 열대여섯이라.

 고등학교 다니던 때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나 〈숲속의 방〉을 보러 인천 ㅇ극장이나 시민회관에 찾아갔을 때, 영화를 함께 본 다른 사람들 숫자는 너덧이었습니다. 그때 뒤로 이렇게 적은 숫자가 큼직한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 2 -

 124분에 걸친 짧지 않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핸드볼 하나로 살아가는 아줌마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펼칩니다. 배경은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을 앞둔 훈련과 올림픽 때 경기를 치르던 일.

 국민학교 적부터 핸드볼이라는 운동경기가 참 좋았고, 학교에 운동부라도 있으면 이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며 고등학교며 대학입시에 따른 교과서 외우기에만 치달을 뿐, 동아리 활동으로라도 핸드볼 운동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장 한쪽 구석에 핸드볼 골대라도 있어야 이 운동을 하지요. 골대가 있어도 그물이 없으니 공 한 번 넣으면 주으러 가는 것도 일이지만.

 혼자서는 핸드볼을 할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평일 낮 두어 시에 가끔 보여주는 방송중계를 보곤 했습니다. 그것도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 때 드문드문.

 중고등학생 때(1988∼1993) 집에서 핸드볼 중계방송을 보노라면, 관중자리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는데, 저처럼 핸드볼 중계방송을 ‘재미있다고 지켜본’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제가 핸드볼 중계방송을 보던 때, 형은 으레 ‘재미없는 걸 왜 보냐?’ 하면서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 3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첫머리에, 전국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응원하는 관중 거의 없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인천 ㅎ’ 팀은, 우승을 했어도 팀이 해체가 됩니다. 해체되는 핸드볼 팀 연고지가 ‘인천’이라는 대목이, 인천을 연고지로 했다가 해체된 숱한 운동팀들을 떠올리게 해서 살짝 아찔합니다. 현실 삶과 영화 이야기가 다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또 누구나 알면서도 바꾸지 않다시피, 핸드볼이건 하키건 체조건 펜싱이건 양궁이건 배드민턴이건, 여느 때에는 이러한 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선수들한테 눈길 한 번 따숩게 건네는 사람이 드뭅니다.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 하나만 해서 먹고살아간다는 일은 아주 위험합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가운데 자기 밥벌이가 따로 있어야지요. 따로 자기 밥벌이가 되는 일을 하면서 생활체육으로 운동경기를 즐길 수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얼거리를 살피면, 돈이고 힘이고 이름이고 없는 사람들이 돈과 힘과 이름을 얻는 어렵고 고달프지만 고작 하나 보임직한 길이 ‘운동선수로 금메달을 따거나 세계대회 1등’이 되는 길입니다. 박세리는 그저 골프를 즐기면 좋았을 사람이지만, 세계대회 1위를 하지 않고는 스스로 먹고살 길도 자기 운동을 이어나갈 길도 없습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불쌍하고 쓸쓸하고 고단한 삶입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나오는 핸드볼 선수들은 어떠한가요. 팀이 우승을 해도 포상금 한 푼이나마 제대로 주어졌을까요. 고작 스물 앞뒤일 선수들이 ‘뛸 곳이 없어지’면 어찌해야 할까요. 운동 하나만 죽어라 바라보며 살아왔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 나오는 ‘한미숙’ 남편처럼, 핸드볼 하나만 알고 사회는 ‘좆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사기에 걸리고 폐인이 되다시피 스러져 갈밖에 다른 길이 있을까요. 그래서 몇몇 생각있던 운동선수들은 영화에 나오는 ‘김혜경’처럼 나라밖으로 눈을 돌리며, 더 가시밭길과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구단으로 가고 스위스로 가고 오스트리아로 가고 하면서 선수목숨을 이어가잖아요.


 - 4 -

 운동경기는 돈이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일까요. 그러면, 고작 서른다섯도 못 되어 거의 다 은퇴를 해야 하는 이런 운동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서른다섯, 또는 마흔쯤 되는 나이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 여느 사람들한테는 왜 자기 일터를 다니는 가운데, 야구며 축구며 핸드볼이며 하키며 체조며 달리기며 헤엄치기며 활쏘기며 탁구며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터전이 없을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구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천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침 축구’ 하나를 빼면 무슨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을까요. 그나마 아침 축구도 남정네들이 하지, 남녀가 아우르며 즐길 수 있는 놀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마음껏 맑은 바람을 쐬면서 뛸 수 있는가요. 하다못해 골목길에서 자동차 빵빵거림에 시달리지 않으며 배드민턴이라도 할 수 있는지요. 초중고등학교 잘 닦인 테니스장에서 동네사람들이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지요. 운동부가 있는 초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동네사람들도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지요.

 “생각도 하고,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시골학교 체육교사가 된 스승이 한미숙한테 하는 말)

 ‘한미숙’과 ‘송정란’ 들이 뛰던 핸드볼팀 감독이었던 분은 어느 시골학교 체육교사가 되어 아이들한테 핸드볼을 가르칩니다. 실업팀 감독이었을 때는 늘 찌푸린 얼굴이었는데, 시골학교 체육교사로 일할 때에는 활짝 갠 밝은 얼굴입니다.


 - 5 -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갑니다. 얼마쯤 나오다가 툭 끊어집니다. 영화를 볼 때는 자막 올라가는 마지막까지 보는 맛이 있는데, 인천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늘 자막을 잘라먹습니다.

 뒷간에 들러 물을 빼고 낯을 씻습니다. 옆지기와 손을 잡고 터덜터덜 싸리재 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 앞에 섭니다.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동네 구멍가게에 들르기로 합니다. 보리술 두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삽니다. (4341.1.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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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 적잖이 있습니다만,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헌책방을 깎아내리는 사람도 제법 됩니다. 헌책방은 한낱 참고서만 파는 데로만 여기는 사람도 많아요. 헌책방은 ‘우리 나라 사회경제가 낮았을 때나 찾아들던 추억어린 옛날 곳’으로, 그러니까 사라져 가는 곳으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헌책방 참맛을 못 보고 참느낌을 못 느끼는 분들이 안쓰럽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을 굳이 안쓰러워할 까닭은 없습니다. 불쌍하다면 불쌍하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훨씬 크게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책쉼터이자 문화쉼터이자 동네쉼터 한 군데를 놓치고 있으니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저대로 헌책방 나들이를 즐깁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는 분들은 새책방 나들이도 부지런히 합니다. 모두들 ‘책’을 좋아하고 찾기 때문입니다. 책 하나에 담긴 깊은 우물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푸고 또 푸어도 마르지 않는 시원한 우물을 느꼈는데, 어찌 이곳을 자주 찾아가면서 새로 물 한 바가지 떠 마시고프지 않을까요.



 1959년에 우리 말로 옮겨진 《에밀 파게-독서술》(양문사)을 봅니다. 이 책은 1972년에 ‘서문당’ 출판사에서 다시 나옵니다. 1959년판과 1972년판은 옮긴이가 같습니다. 둘 모두 이휘영 님.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판이 끊어졌습니다. 일본사람 야마무라 오사무 씨가 펴낸 《천천히 읽기를 권함》(샨티,2003)은 에밀 파게 님이 쓴 《독서술》이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건만, 《천천히 읽기를 권함》은 우리 말로 옮겨져도, 《독서술》은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1900년대 첫머리(양문사 판은 1923년에 나온 판을 옮겼다고 합니다)에 나온 책이라서, 요즘 세상과 견주면 너무 낡았기 때문일까요. 그러면 무엇이 낡았을까요.


― 잘된 소설은 우리들에게 잡히지 않던 인생, 우리들 손에서 반쯤 빠져 달아나던 인생 그 자체를 우리들이 잡도록 거들어 주는 것이다. (33쪽)


 집 앞에 있는 할아버지 헌책방에서 1980년대 책을 하나 만났습니다. 요즘은 어느 누구도 안 사간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책입니다. 누군가 이 책을 팔려고 헌책방에 찾아오면, 헌책방 일꾼들은 ‘요새는 이런 책 사가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도 살 수 없어요.’ 하고 손사래를 칠 만한 작은 책입니다. 책이름은 《경기남부 노동조합 임금인상 대책위원회 엮음-노동자는 왜 싸워야 하는가》(사계절,1988)입니다.


― 그러면 왜 기업주는 물건을 만들어 팔면 돈을 벌게 되느냐?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물건을 생산해서 팔았을 때 비로소 돈을 가장 많이 벌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물건을 만들어 팔되 자기가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니고 남을 부려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 돈을 버는 원천이고 돈을 가장 많이 버는 비결입니다. (47쪽)


 2004년에 우리 말로 옮겨진 책 하나를 책상맡에 두고 가끔 들춰보고 있습니다. 2004년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책상맡에 두었는데. 아직도 다 안 읽고 있습니다. 아니, 아직 책상맡에서 떠나보내기 싫어서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어서 읽어치우고 새로운 책을 읽어도 나쁘지 않지만, 책상 앞에 앉을 때마다 이 책을 생각하고 싶어서 빨리 읽어내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알아보는 이가 많지 않아서 누군가라도 소개하는 글 하나 끄적여 주지 않으면 그예 잊혀져 버릴 수 있습니다. 저로서는 늘 보고 있으니 날마다 기쁨과 고마움을 얻어 가집니다만.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일본에서 1981년에 펴냈던 《내가 만난 아이들》(양철북)이라는 책입니다.


― 인간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어딘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흙발로 짓밟는 일일 것이다. (69쪽)


 일본에서도 《내가 만난 아이들》은 꾸준히 사랑받고 있을까요. 아니면 아쉽게도 판이 끊어져서 사라져 버렸을까요. 우리 나라에는 스물세 해 만에 알려지며 읽히는데, 앞으로 언제까지 살아남으며 읽힐 수 있을까요.

 책상맡 오른쪽에는 《내가 만난 아이들》이 있고, 왼쪽에는 《구스따보 구띠에레즈/김명덕 옮김-우리네 목마름은 우리 샘물로》(한마당,1986)가 있습니다. 종교에 크게 눈길을 안 두던 때에도 해방신학 책을 곧잘 사다 읽었고, 종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요즈음도 해방신학 책이 보이는 대로 마련해서 조금씩 읽어 보고 있습니다. 앞에 ‘해방’이 붙었든 안 붙었든 ‘신학’입니다. 뒤에 ‘신학’이 붙었든 안 붙었든 ‘해방’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 착취와 가난에 희생 제물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려는 자는 누구나 그같은 문제의식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31쪽)


 곰곰이 돌이켜보니, 예나 이제나 대통령으로 뽑힌 이들이나 국회의원이 된 이들은 한목소리로 ‘부동산 정책’을 외쳤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지키려는 정책을 외친 적은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에 따라서, 아파트에 살고 싶은 이가 있습니다. 골목길 허름하다고는 해도 조용하며 오붓한 터전에서 옆집 사람하고 이웃하면서 떡이며 밥이며 술이며 김치며 나눠먹고 살고픈 이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며 제힘으로 밥과 옷과 집을 풀어내며 살고픈 이가 있습니다. 도심지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거나 공무원 일을 하면서 다세대주택에서 알맞는 전세집 얻어서 살고픈 이도 있습니다. 전통 기와집에서 살고픈 이가 있고, 흙으로 지은 집에 풀로 지붕을 얹어서 살고픈 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나라 정책은 ‘아파트만 우걱우걱 지어내려는 데’로만 쏠려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안 지켜 줍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나 아닌 사람이 나와는 다르게 살아가려는 터전’을 고이 껴안으려는 매무새를 잃어가거나 내버립니다.




 히유, 한숨 한 번 쉰 다음, 모니터 옆에 살짝 기대어 놓은 손바닥책을 잡아서 펼칩니다. 《폴 란돌미/김자경 옮김-슈베르트》(신구문화사,1977)입니다. 신구문화사 손바닥책은 1989년쯤인가 재판을 한 번 찍은 뒤로는 싹 자취를 감추었지 싶습니다. 그 뒤로 한 번 더 찍은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슈베르트가 서먹서먹해 한 곳은 에티켓이 까다롭고 격식만 따지는 상류사회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묵묵히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을 구석에 숨어 있었다. (71쪽)


 슈베르트 노래를 아는 이 많을 테며, 슈베르트 노래가 흐르는 ‘고급스러운 까페와 공연장이나 미술관’ 또한 꽤 많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슈베르트 삶과 생각을 알면서 슈베르트 노래를 듣는 이는 얼마나 될까요. 슈베르트가 어떤 마음으로 옥구슬 같은 노래를 지어냈는지 차근차근 짚으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얼마쯤 있을까요.

 오늘 모처럼 날이 풀립니다. 해가 반짝입니다. 다만, 바람은 퍽 부네요. 책상맡에 가득가득 쌓인 낡은 책에는 이만 눈길을 접고, 내 사는 동네에 있는 할배 헌책방들에 꽂혀 있는 낡은 책을 구경하러 나들이를 가 보아야겠습니다. 등짝으로 햇살을 느끼면서 두 눈과 두 손으로는 낡은 종이장을 느끼며 머리를 식히고 싶습니다. (4341.1.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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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옥중기
 

 감옥에 갇힌 분들이 남긴 글이 책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신영복 님이 보낸 짤막한 엽서를 모아 《엽서》가 나오기도 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나오기도 합니다. 박석조 님 형제가 주고받은 《옥중에서 오고간 편지》가 있으며, 서준식 님이 쓴 《서준식 옥중서한》도 있습니다. 문익환 님도 감옥에서 쓴 글과 편지를 모아 책이 여러 권 나왔고, 사회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 이런 일 저런 일로 감옥에 갇혀서 식구들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남긴 일기나 편지가 책으로 묶이기도 합니다.


 ┌ 오스카 와일드 쓴 《옥중기》
 └ 루이제 린저 쓴 《옥중기》


 나라밖에서 이름난 책이라면, 그람시 님이 남긴 《옥중수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루이제 린저 님이 쓴 《옥중기》가, 또 오스카 와일드 님이 쓴 《옥중기》가 있어요. 


 한편, 나라안에 이름난 시인이 남긴 책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못한 김현승 시인 《옥중일기》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가만히 보면, 모두들 ‘옥중(獄中)’이라는 말을 씁니다.


 ┌ 감옥에서 쓴 글
 ├ 감옥에서 부친 편지
 └ 감옥에서 적은 일기


 어니스트 톰슨 시튼 님이 쓴 이야기는 ‘동물기’로 알려졌습니다. 장 앙리 파브르 님이 쓴 이야기는 ‘곤충기’로 알려졌습니다. 김찬삼 님이 남긴 이야기는 ‘세계여행기’로 알려졌습니다.


 ┌ -記
 └ 적음 / 남김


 시튼 님이 남긴 ‘들짐승’ 이야기인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와 《회색곰 왑의 삶》과 《뒷골목 이야기》와 《위대한 늑대들》과 《표범을 사랑한 군인》과 《다시 야생으로》를 한 권 두 권 찾아서 읽습니다. 가슴찡함을 느끼면서 자연 삶터를 담아내는 문학이란 얼마나 자연 삶터를 사랑하고 아끼며 가까이하는 가운데 적어내려가야 하는가를 새삼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야기’라는 말은 쓰지 못할까요.


 파브르 님이 남긴 ‘벌레’ 이야기를 읽고 ‘푸나무’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이름은 《파브르 곤충기》와 《파브르 식물기》이지만, 파브르 님은 크고작은 ‘벌레’들을 살펴보면서, 또 ‘풀과 꽃과 나무’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당신 딸아들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그나저나 우리는 왜 ‘-이야기’라는 말은 넣지 못할까요.


 ┌ 들짐승 이야기
 ├ 벌레 이야기
 └ 푸나무(풀꽃/풀) 이야기


 옛날 옛적부터 내려온 이야기이기에 ‘옛날이야기’이건만, ‘민담’이나 ‘민화’니 하는 이름으로만, ‘설화’니 ‘신화’니 하는 이름으로만 우리들한테 읽힙니다. 알려집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는 책,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책은 ‘어린이책’이고 ‘어린이 이야기’일 테지만, 한결같이 ‘동화’라는 이름으로만 자리매깁니다. 이 땅에는 ‘이야기’가 자리잡을 수 없는가요.


ㄴ. 가톨릭 다이제스트


 새벽에 일어나 성당에 다녀옵니다. 오늘은 성당에 바깥손님 한 분이 와 있습니다. 《가톨릭 다이제스트》라는 잡지를 만드는 일꾼 가운데 한 사람. 짤막하게 잡지를 소개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책을 넘겨 봅니다. 2007년 4월치에 박완서 님 만나보기가 있습니다.


.. 사노라면 형제 간처럼 든든한 힘이 없는데 요즘은 아이들을 하나나 둘밖에 안 낳으니 사촌끼리라도 자주 만나 정을 들이고 우애 나누라고 타이르고 그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실은 요새 손자들을 다 모으기도 힘들어요. 누구는 고3이니까 빼 줘야 한다, 누구는 과외공부 갈 시간이다, 이런 식이거든요. 예전엔 특별한 집에서나 아이들을 공주님, 왕자님 취급하는 걸 보았는데, 요즘은 내 손자, 손녀가 다 왕자님, 공주님입니다. 세상이 그렇다니 제가 어쩌겠어요. 저는 이미 구세댄걸요 ..  〈18∼19쪽〉


 몇 꼭지를 빼고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 놓았습니다. 퍽 수수하게 꾸미고 있구나 생각하며 판권을 보니, 잡지가 나온 지 벌써 스무 해. 2007년 4월에 206호였으니 그동안 먼길을 뚜벅뚜벅 걸어왔군요.


 ┌ 리더스 다이제스트
 └ 가톨릭 다이제스트


 잡지이름을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왜 ‘다이제스트’라는 말을 붙였을까? 꼭 ‘다이제스트’라는 말을 붙여야 했을까? ‘다이제스트’라는 말에 어떤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까? 이 나라 이 땅에서 ‘다이제스트’ 아니면 안 되었을까?


 ┌ 가톨릭 이야기
 ├ 작은 가톨릭
 ├ 가톨릭과 삶
 └ …


 벌써 스무 해나 《가톨릭 다이제스트》로 써 왔으니 그대로 나아가는 편이 더 낫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게 붙였든, 알맹이를 차근차근 다지고 추스르면서. 어쩌면 스물다섯 돌을 기리면서, 또는 서른 돌을 기리면서 새 이름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잡지이름 고치기란 참말 어려운 노릇이지만, 이런 어려움이란 마땅히 짊어지고 나아갈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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