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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에서 ㅣ 보림어린이문고
이영득 지음, 김동수 그림 / 보림 / 2006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은 어른들이 그리고 책으로 묶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글책(동화책이나 동시책이나 여러 이야기책)도 어른들이 글을 쓰고 책으로 묶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손에 쥐는 책에는 작게든 크게든 어른들 생각과 마음과 뜻이 담기기 마련이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펼쳐지곤 합니다. 어른들이 어릴 적에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적은 책이 있는 한편, 아이들이 지금 나이에 알아두면 좋을 것을 적은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책 역사가 짧지만, 우리 글 문화는 지배계급 글 문화였기 때문에 종이에 적힌 이야기책이 드물었을 뿐, 전국 곳곳에는 그곳 나름대로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입말,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문화가 오래도록 이어져 왔습니다. 노래와 놀이도 그렇고요. 이런 이야기와 노래와 놀이는 아이들이 즐기는 문화인 한편 어른도 함께 즐기는 문화였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말하는 어른 또한 즐거운 문화였다고 느낍니다.
예부터 이제까지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즐기는 이야기 문화를 가만히 보면, 중심 이야깃감은 자연에 있구나 싶습니다. 그림이야기책 《할머니 집에서》(보림,2006)도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펼칩니다. 자연을 모르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솔이가,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던 아버지 고향(할머니가 계신 곳)에 찾아가 자연을 하나둘 느끼면서 가까이 동무로 삼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날마다 밥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고기를 먹어도, 이 모든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누가 기르거나 잡아서 얻는지 모르는 도시 아이들에게 《할머니 집에서》는 자연을 가까운 동무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길잡이책이자 놀이책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솔이뿐 아니라 솔이 엄마도 자연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감자와 고구마를 가릴 줄 모르니까요(책을 보면, 이 대목에서 솔이라는 아이가 처음에는 감자와 고구마를 가릴 줄 모르다가 몇 줄 뒤에 곧바로 둘을 아주 잘 가려내는 것으로 나와 모순이 되는 잘못이 있습니다). 그래, 《할머니 집에서》처럼 자연을 이야깃감으로 삼는 책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삶을 꾸리는 이 나라 아이들한테 우리한테 무엇이 중요한가를 가르치는 한편, 이 책을 보는 어른들도 말이나 책으로만 아이한테 설교하지 말고, 어른부터 스스로 우리한테 소중한 값어치를 찾아보자고 이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투나 흐름도 부드럽고 살갑습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눈에 띕니다. 《할머니 집에서》는 아이들 그림을 흉내내어 그리면서 일부러 단출하고 가볍게 그림을 그렸는데요, 7쪽에 처음 나오는 할머니 그림에서 손이 뒤집혔고, 주인공 솔이는 오른손잡이로 보이나 책을 보면 왼손잡이처럼 물건을 잡거나 던지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인사를 할 때 왼손을 흔듭니다. 49쪽에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다리가 이상하게 되었는데 54쪽에는 다리를 제대로 그립니다. 알 낳는 닭을 흰닭으로 그렸는데 이 흰닭은 서양에서 들여와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이지, 시골집에서 키우는 닭이 아닙니다. 시골집 닭은 지난날 똥개(누렁이)와 마찬가지로 누런닭이거나 검누런닭입니다. 아이들 그림을 흉내낸다고 해도 사실을 비틀거나 모순되게 그려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 그림이 삐뚤빼뚤이라고 하지만 사실을 비틀거나 모순되게 그리지 않습니다. 제도권 교육에 물들어 판에 박히게 그리는 아이들 그림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기가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리는 아이들 그림을 좀더 눈여겨보아야 더 낫고 살뜰하게 그림책을 엮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마지막으로 10쪽에 시골집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아름드리나무도 많았어요”라고 나오는데, 우리 나라 어느 시골에도 아름드리나무가 많은 곳은 없습니다. 어른이 두 팔을 벌려서 꼭 안을 만큼 줄기가 굵은 나무가 아름드리입니다. 이런 나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산과 들 온갖 나무가 거의 다 죽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 아름드리나무는 마을에 한두 그루만 남았어도 다행이라 할 만하거든요. 지리산이나 한라산이나 설악산도 마찬가지예요. ‘아름드리나무’가 아니라 ‘나무’라고만 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4339.9.26.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