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고다씨 이야기 5
오자와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마음을 읽는 좋은 벗과 함께 살기
 [만화책 즐겨읽기 48]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5)》



 그치지 않는 빗줄기 소리를 듣습니다. 시골자락에서 그치지 않는 빗줄기는 멧등성이를 타고 줄줄 흘러내립니다. 도랑을 내려다보면 멧등성이부터 흙이 조금씩 깎이거나 휩쓸리며 흘러내리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멧자락에 풀이 없거나 나무가 없다면 비가 올 때마다 멧자락이 퍽 깎이거나 휩쓸리겠지요. 멧자락 흙이 밑으로 흐르고 아래로 쓸리기를 백 해 즈믄 해 만 해 이어지면 이 나라 터전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합니다. 내 몸이 고작 백 해를 살아내기 힘들다지만, 백 해 뒤 내 보금자리는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가 깃들는지 궁금합니다.

 마음을 읽는 벗처럼 살가이 만나거나 사귈 만한 사람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살붙이라 하더라도 늘 얼굴을 마주하거나 스친다 하더라도 반갑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엊그제부터 장마철을 맞이했습니다. 장마철이 되니 갓난쟁이 기저귀를 말리기 몹시 힘듭니다. 빨래하는 기계라든지 물을 짜는 기계를 따로 건사하지 않는 살림인 터라, 날마다 마흔 장 안팎 나오는 기저귀를 틈틈이 빨고 널어 말리기란 참으로 벅찹니다.

 1995년 11월에 들어가 1997년 12월에 나온 군부대 적 일을 떠올립니다. 스물여섯 달을 군부대에서 썩어야 하던 지난날, 제가 몸담은 군부대는 강원도 양구 멧골짜기에 있었고, 이 가운데 열두 달을 지내던 두솔산이라는 곳은 한 해 가운데 해가 나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 해 내내 온통 구름에 둘러싸이거나 감긴 채 축축하거나 눅눅한 군부대였습니다. 이곳 군부대는 1997년 12월에 저와 또래들이 사회로 돌아오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체되어 사라졌는데, 이무렵 남녘에 거의 남지 않던 ‘갈탄 뻬치카’를 썼어요. 소대마다 짤순이를 하나씩 주었고, 중대에 빨래기계를 둘 주었습니다. 짤순이까지 부대에 주는 일은 거의 없으나, 두솔산 군부대는 한 해 내내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안개가 끼어 빨래가 마를 겨를이 없다 보니, 짤순이가 없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옷이며 모포이며 침낭이며 늘 곰팡이 내음이 배었어요.

 해를 볼 수 없이 눅눅한 데에서 눅눅하게 살아야 하니, 군대라는 곳은 더 눅눅하다지만, 사람이 죄 눅눅해지고, 마음씨나 생각밭이나 눅눅한 틀에서 허우적거립니다. 보송보송 마른 옷을 입을 수 없고, 곰팡내를 씻길 수 없이 잠자리에 들거나 막사에서 지내야 하니, 따사로이 마음을 쓰거나 너그러이 생각을 기울이기 힘듭니다. 가뜩이나 거친 말과 주먹다짐이 오가는 군부대에서 늘 찌푸린 날씨가 겹치니, 이런 데에서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안 미칠 수 없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아빠께. 이 부적은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건강 조심하면서 일 열심히 하세요. 유미는 하트 모양을 제일 좋아해요.’ (28쪽)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봅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이기 때문에 방바닥에 틈틈이 불을 넣습니다. 집안이 눅눅해지지 않게끔 불을 넣으면서 따순 물을 쓸 수 있겠다 싶은 때에는 물을 받아서 두 아이를 씻깁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빨래한 다음, 아버지는 찬물로 몸을 씻습니다.

 아이들을 다 씻기고 혼자서 빨래 마무리를 짓고 몸을 씻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내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때에 내 어머니는 두 아들을 어떻게 씻기거나 먹이거나 재우거나 놀리거나 심부름을 시켰을까 하고. 어머니 살림집에 빨래기계가 아직 들어오지 않던 때에는 집식구 빨래를 당신 손으로 어떻게 치르셨을까 하고.

 둘레 사람들은 우리한테 빨래기계를 들이라 이야기합니다. 이것저것 집일이 많고 할 일이 많다면서 왜 빨래를 애써 손으로 하면서 겨를을 버리느냐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손으로 빨래를 하고, 발로 자전거 발판을 밟습니다. 손으로 빨래를 하기에 품이며 겨를이며 더 많이 들인다 할 만하고, 발로 자전거 발판을 밟으며 읍내 장마당을 다니니까 몸이 더 고단하며 품이나 겨를 또한 한결 많이 들인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손을 쓰거나 발을 쓰면서 기름을 안 써도 되거나 적게 쓰면 되니까 마음이 좋습니다. 손을 쓰면서 내 살붙이들 몸과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한편, 내 어린 날 내 어머니 삶을 돌아보고, 내 어머니가 어렸을 적에 내 어머니를 보살핀 어머니(나한테는 외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발을 쓰면서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다가 내가 뿌리내려 살아가는 보금자리와 마을을 곰곰이 둘러보며,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를 낳아 돌본 아버지가 ‘자동차 없이 살던’ 지난날 어떤 삶과 꿈과 넋이었을까를 짚거나 살필 수 있습니다.


- “그건 그냥 본래의 나로 돌아간 것뿐이니까.” “그 전에 병원에 가 봐! 때때로 기억이 사라지면 그건 병이잖아!” “됐어.” “되긴 뭐가 돼! 난 요스케가 날 잊어 버리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처럼 되어 버리는 것도 싫어. 신 귤을 줬던 것도, 며칠이나 밤을 새면서 바자회 소품 만들었던 것도, 우울할 때 전골 재료를 사들고 놀러왔던 것도, 학원제에서 집사 코스프레로 우승해서 받은 컵라면 반 년치를 전부 나한테 준 것도, 감기 걸렸을 때 죽 끓여 준 것도, 잊어버리는 건 참을 수 없어!” “이온, 너, 목소리가 너무 커. 게다가 그건 거의 다, 내가 너한테 해 줬던 일뿐이잖아.” (58∼60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학산문화사,2011) 5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6권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는 《이치고다 씨 이야기》 5권은 ‘마음을 읽는 좋은 벗’하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을 찬찬히 다루는데, 이 ‘마음을 읽는 좋은 벗’이란 하늘에서 똑 떨어진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별나라나 달나라에서 온 사람이 아니고, 잘나거나 못난 사람 또한 아니에요. 돈이 많거나 없는 사람이 아니고, 이름이 있거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좋은 사람이고, 그예 착한 사람이며, 그대로 어여쁜 사람입니다.

 땡볕에 김매기를 할 때에 곁에서 십 분쯤 호미질을 거든다든지, 퍼붓는 비에 물골을 내느라 허우적거릴 때에 옆에서 몇 분쯤 삽질을 돕는다든지, 밥하는 때에 양파와 마늘 껍질을 벗겨 준다든지, 설거지하는 때에 그릇 물기를 훔쳐 준다든지, 집안을 쓸고 닦을 때에 걸레를 빨아 준다든지, 날마다 조금씩 손을 거들며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가 사랑스럽습니다.

 마음을 읽지 않고서는 곁에서 일을 거들 수 없어요. 마음을 느끼지 않을 때에는 옆에서 삶을 함께 나눌 수 없습니다.


- “하지만 이온과 만나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어. 고마워.” (85쪽)
- ‘바로 지난달까지만 해도 함께였는데, 이제는 만날 수 없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상실감으로 가득하다. 이런 식으로 상처받고 우울해 할 때면 어느 틈엔가 옆에 와서, 같이 흘러가는 구름을 지치지도 않고 바라봤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 같은 그 친구를, 난 얼마나 알아줬던 걸까 하고.’ (132∼133쪽)


 지구별 바깥에서 지구로 찾아온 이치고다 씨를 둘러싼 사람들은 조금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름난 가방회사 사장이라 하더라도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저한테 있는 줄조차 모르던 딸아이’한테 편지를 처음으로 받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지구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가던 지구사람 몸에 깃들어 목숨을 잇던 또다른 ‘지구별 바깥사람’이 차츰차츰 기운을 잃어 멀리멀리 사라지고 마는 자리에서, 이이 또한 홀로 말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어느 한쪽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웃음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앞에서 함부로 짓는 웃음이 아닙니다. 웃음을 짓는 사람 앞에서 부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한테는 눈물과 웃음이 갈마듭니다. 다른 한 사람한테도 웃음과 눈물이 잇달아 찾아듭니다. 눈물이 있기에 웃음이 있는 삶이요, 웃음이 있으면서 눈물이 있는 사랑이에요.


- ‘한 달 빨리 태어난 그 아기는 조그맣지만 매우 건강한 남자아이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름은 부모 이름에서 한 자씩 딴 세나. 무라타니 세나. 성별과 상관없이 붙이려던 이름. 우리 아이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185∼186쪽)
- ‘인간이 왜 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립다든가 가슴 아프다든가 괴롭다든가 기쁘다는 감정, 모두가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61∼62쪽)



 온누리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큰회사에서 간부가 된다거나 높은자리를 차지해야 잘나지 않습니다. 내 이름이 박힌 책이 나와야 대단하지 않으며, 내 은행계좌에 숫자가 빼곡히 찍혀야 즐겁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서 140킬로미터나 150킬로미터로 달린대서 겨를을 아껴 집에 일찍 돌아오거나 볼일을 수월히 마치지 않아요. 밥을 남보다 곱배기로 먹어야 할 까닭은 없고, 더 값지거나 비싼 옷을 마련해서 입어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먹어서 좋으면서 즐거운 밥을 스스로 차려 먹을 때에 아름답고, 입어서 홀가분하면서 기쁜 옷을 손수 기워 입을 때에 어여쁩니다.

 밥 한 그릇을 차리는 손길에 사랑이 깃듭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한때에 사랑이 머뭅니다. 기저귀를 빨고 이불을 빠는 팔뚝에 사랑이 스밉니다. 아이를 안거나 업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보내는 나날에 사랑이 찾아옵니다.

 마음을 읽는 벗이 반갑고, 마음을 나누는 살붙이가 고마우며, 마음을 보듬는 이웃이 즐겁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만화책 하나가 기쁘고, 마음을 얼싸안는 만화책 하나가 예쁘며, 마음을 아낄 줄 아는 만화책 하나가 보배롭습니다. (4344.6.24.쇠.ㅎㄲㅅㄱ)


― 이치고다 씨 이야기 5 (오자와 마리 글·그림,황경태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4.1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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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과 책읽기


 장마철 첫날, 음성 장마당에 수레를 단 자전거를 끌고 다녀온다. 아이를 태우고 함께 다녀오고 싶었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틀림없이 비가 퍼부을 듯해서 혼자 나가기로 한다. 고뿔이 나서 한동안 자전거를 안 태웠기 때문에, 또 몸이 아파서 바깥에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한 터라, 아이는 서럽디서럽게 운다. 바깥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한참 듣다가 장마당 마실을 갔다.

 음성 읍내에 닿기 무섭게 빗줄기가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를 쫄딱 맞는다. 집식구 먹을거리를 가방과 수레에 실은 채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나는 여태껏 얼마나 오랫동안 자전거 안장에서 살았을까.

 나한테 자가용이 있어 읍내 장마당에 휙 다녀올 수 있다면, 가고 오는 데에 고작 십 분쯤 걸리리라. 나한테 자전거가 있어 읍내 장마당에 땀 뻘뻘 흘리며 낑낑거리는 데에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나는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자전거에 앉은 채 길에서 흘리는 겨를이 길까?

 빗물을 혀로 핥으며 더 생각한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이라면 읍내 장마당 다녀오는 데에 얼마 걸리지 않을 테지만, 다른 곳을 돌아다니느라 외려 자동차 걸상에 훨씬 오래 앉은 채 보내리라고.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추스른다. 아이와 옆지기가 먹을 밥을 차리기 앞서, 몸을 씻는다. 내 몸을 씻어 땀기를 가신 다음, 둘째 갓난쟁이를 씻기고, 네 살박이 첫째를 씻긴다. 이런 다음 아이와 옆지기가 먹을 밥을 차린다. 부산을 떨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집안일을 하는 데에 얼마나 기나긴 겨를을 들이면서 살아가는가. 밥을 차리는 데에, 설거지를 하는 데에, 빨래를 하는 데에, 집안을 쓸고 닦는 데에, 아이를 돌보는 데에, ……. 이와 함께,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한테는 얼마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가를 곱씹는다.

 이모저모 따지니, 하루 가운데 책읽기에 들일 만한 겨를은 아예 없다. 책읽기를 할 틈이 생길 수 없다. 1분이라도 등허리를 펴고 자리에 누워 한숨을 돌려야 겨우 다음 일을 할 만하구나 싶다.

 깝깝한가? 고단한가? 괴로운가? 슬픈가? 서운한가?

 아이와 옆지기가 새근새근 잠든 깊은 밤에 깨어 똥오줌기저귀 일곱 장과 이것저것 빨래하는 동안 다시금 생각한다. 나는 고작 서너 해 이렇게 아이키우기로 온삶을 바친다지만,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님은 당신 아이들 보살피는 데에 온삶을 쏟았다. 나는 이것저것 하면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지만,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님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또 내 어머니를 낳아 돌본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님을 낳아 보살핀 어머님은 어떤 삶이었을까. 당신들은 얼마나 오랜 나날을 집안일을 하면서 보내야 했을까.

 참말, 집안일을 하면서 책읽기를 할 수는 없다. 집안일로 온몸 기운이 쏘옥 빠져나가고 눈코 뜰 사이 없는 터라, 책읽기를 생각할 틈바구니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일에 매인 채 살아가면,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물려줄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일만 하는’ 어버이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거나 생각할까.

 더없이 고되지만, 1분 더 쉬기보다는 1분이라도 말미를 내어 책을 펼치자고 다짐한다. 고작 하루에 1분이더라도 수첩에 글을 끄적이자고 다짐한다. 아이는 책을 펼치거나 글을 끄적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책 읽어?” “공부해?” 하고 묻는다. 아버지는 “응, 책 읽어.” “그래, 공부해.” 하고 말한다.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이는 놀이를 한다고 시늉한다. 저랑 더 기쁘게 놀아 주지 못하는 어버이인 탓에 말을 잘 안 듣거나 말썽을 피우곤 하지만, 아이는 참 착하다. 예쁘다. 이 착하고 예쁜 아이는 앞으로 제 삶을 빛내거나 밝히는 고운 책을 스스로 즐거이 찾아내어 맞아들일 수 있기를 빈다. 이러면서 집안을 돌보는 일과 살림이 무엇인지를 슬기롭게 깨달아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힘겨운 나날이 이어지는 어버이로서, 아픈 옆지기가 집일이나 집살림을 거의 거들지 못하는 나날을 늘 맞이하는 어버이로서, 우리 집 아이들이 한손에는 걸레나 호미나 빨래비누를 쥐고, 다른 한손에는 책이나 연필이나 물감을 들기를 비손한다. (4344.6.2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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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철 빨래하기


 첫째는 천기저귀 스물여섯 장으로 버티었다. 아직 석 돌이 다 차지 않았으나, 지난달부터 밤오줌가리기를 한다. 밤오줌을 가리도록 하자면, 어버이 가운데 한 사람이 새벽이나 밤에 한 번 아이를 일으켜 오줌을 누여야 한다. 잘 자다가 일어나자면 고단할 테지만, 둘째 똥오줌기저귀를 시간마다 갈아야 하니까, 첫째가 몇 시에 잠들었고 몇 시쯤 일어날는지 잘 어림하면 밤에 이불에 쉬를 하지 않고도 밤오줌가리기를 할 수 있다.

 둘째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지난달부터 훨씬 수월하게 밤오줌을 가리도록 했을는지 모르는데, 둘째가 태어났기 때문에 첫째 밤오줌가리기를 더 빨리 해야겠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둘째 똥오줌기저귀 빨래를 하는데에만도 팔다리가 쑤시고 몸이 힘드니까. 더욱이, 둘째 기저귀를 날마다 마흔 장 남짓 빨래해야 하는데, 여기에 첫째 오줌기저귀까지 빨래하고 싶지 않다. 두 아이 기저귀를 빨아내기란 참으로 벅차다. 기저귀 빨래로 그치지 않고, 여느 때에 입는 옷이나 손닦개나 걸레 빨래도 늘 나오니까.

 장마철이 다가오기 앞서 빗줄기가 듣지 않는 날이 내내 이어졌다. 낮에는 몹시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며 견디어야 했는데, 이런 날씨에는 빨래가 아주 훌륭히 마른다. 날이 더워 고단하지만, 기저귀가 금세 보송보송 마르니, 이러한 대목에서는 고맙다고 하늘을 보며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바야흐로 맞이하는 장마철.

 둘째는 천기저귀 서른 장을 장만해서 돌린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집안은 언제나 물기를 머금으니 보일러를 틈틈이 돌려서 집안을 말린다. 기저귀 빨래는 두어 시간에 한 번씩 한다. 한꺼번에 모든 빨래를 하지 않고, 앞서 한 빨래가 얼추 마를 즈음에 빨래를 한다. 앞서 한 빨래는 보일러를 돌릴 때에 바닥에 죽 깔아서 짱짱하게 말릴 때까지 지켜본다. 잘 말랐는가 아닌가는 기저귀와 옷을 들어 볼과 코에 살살 비비면서 살피고, 물기를 하나도 못 느낀다면 곧바로 갠다.

 장마철 비는 참 질기기도 하지 하고 속으로 노래하지만, 지난 두 해에 걸쳐 첫째 기저귀 빨래도 용케 해냈다. 아이들과 함께 세 해째 맞이하니까 지난 두 해를 더듬으며 슬기롭게 견디자고 생각한다. 첫째를 낳던 날부터 이제 잠자기는 글렀다고 여기며 살았고, 참말 지난 세 해에 걸쳐 팔다리 느긋하게 뻗고 네 시간 넘게 잔 날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밤마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간 기저귀는 이내 빨면서 살아왔으니까. 더욱이, 아이를 보살피며 꾸리는 삶은 빨래만 할 수 없잖은가. 밥도 해 먹이고 놀이도 함께 즐기며 살림도 이래저래 돌보아야 하는데.

 밤 열두 시에 우르릉 쾅쾅 하는 빗소리에 번쩍 깨어 둘째 기저귀를 갈고 첫째 오줌을 누인 다음, 둘째 똥오줌기저귀 일곱 장하고 배냇저고리 한 장하고 옆지기 핏기저귀 두 장을 빤다. 이제 네 시나 다섯 시 즈음에 그사이 나올 똥오줌기저귀하고 어제 남긴 빨래 한두 점을 마저 하면 또 새 하루가 찾아오겠지. (4344.6.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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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s 서울놀이 - 배두나의 일상, 그리고 서울여행
배두나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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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이 예쁘면 ‘예쁜 사진’을 보여주셔요
 [찾아 읽는 사진책 34] 배두나, 《두나's 서울놀이》(중앙북스,2008)



 140쪽이 되어서야 비로소 ‘예쁘게 찍어서 보여주려’ 했다는 서울 모습이 나오는 《두나's 서울놀이》(중앙북스,2008)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배두나 님은 “해외여행 후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볼 때면 느끼던, 그 설렘과 반가움, 되돌아와 쉴 수 있는 내 공간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사진에 남겨 두고 싶었다(17쪽).”고 이야기하며, “서울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나의 집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행복한 추억이 가득한 곳(50쪽)”이기 때문에 “서울을 실제보다 더 예쁘게 보이도록 찍으려고 욕심을 부렸다(50쪽).”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배두나 님이 찍은 《두나's 서울놀이》에 나오는 서울은 참말 ‘예쁜 서울’이라 할 만할까요. 참으로 예쁘게 찍어 사랑스러운 서울이라 할 만한가요.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에는 ‘예쁜 서울’이 한 가지도 나오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에는 ‘배두나 단골가게’가 나올 뿐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배두나가 서울에서 노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 ‘예쁜 서울을 보여줄 만한 이야기’는 없는 책이에요.

 곧, ‘배두나 님 스스로 좋아하는’ 서울이기에 마냥 ‘스스로 예쁘게 바라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글을 곁들여 묶은 《두나's 서울놀이》예요.

 이리하여, 배두나 님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지하철을 타고 보니, 서울이 다시 보였다(212쪽).”는 말마디마따나, 배두나 님은 ‘여느 사람이 여느 삶을 여느 사람하고 사귀면서 보내는 서울(과 한국이라는 터)에서 퍽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갑니다. 늘 자가용을 타야 할 테니까요. ‘여느 사람’한테 붙잡혀 사인공세에 시달린다든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 일에 시달리기 싫거나 힘드니까요.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추억을 떠올리려’고 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일터를 다니든 배움터를 오가든, ‘여느 삶(일상)’으로 타는 지하철이면서 시내버스이고, 이 지하철과 시내버스에서 아침저녁으로 오징어떡이 되도록 시달립니다. 도무지 추억으로 여길 수 없는 메마른 삶이고, 차마 추억을 떠올리기 벅찬 힘겨운 나날이에요. 배두나 님과 여느 사람은 퍽 일찍부터 ‘시달리는 삶’이 다릅니다. 시달리는 삶이 다르니 바라보는 삶이나 누리거나 즐기는 삶이 다릅니다. 누리거나 즐기는 삶이 다를 때에는 생각하는 삶이나 사랑하는 삶 또한 다를밖에 없어요.

 사진기를 쥔 사람이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하더라도, 똑같은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배두나 님은 배두나 님대로 재미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 되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대로 재미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 돼요. 그러니까, 《두나's 서울놀이》는 처음부터 굳이 ‘서울을 더 예쁘게 찍어서 내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배두나 님 스스로 좋아하는 삶결대로 서울을 바라보면서 하나씩 담으면 됩니다. 나중에 이 책을 장만해서 사진을 들여다볼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거나 말거나 아랑곳할 일이 없습니다. 좋게 봐주면 좋게 봐주니 고맙게 여기면 되고, 나쁘게 봐주면 나쁘게 바라보는 대로 나한테 모자라거나 아쉬운 대목을 고맙게 엿들을 수 있다고 여기면 됩니다.

 《두나's 서울놀이》라는 책은, 그예 배두나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예쁘게 다가설 수 있으면 됩니다. 배두나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누군가는 집안일이 힘들지 않으냐며 도우미 아줌마를 써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누군가 나의 살림을 보는 것이 싫다. 그것도 우리 엄마 닮았다. 그리고 집안 청소는, 운동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에겐 아주 유익한 아침 운동이다. 사방이 막혀서 답답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러닝머신 위를 하염없이 달리는 것보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적어도 나에겐 더 재미있고 보람 있다(31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서로 삶을 한껏 사랑하면서 즐기는 길을 찾자고 말머리를 열면 됩니다.

 왜냐하면, 더 예쁜 삶터란 없거든요. 도쿄가 서울보다 더 예쁘지 않고, 런던이 도쿄보다 더 예쁘지 않으며, 파리가 도쿄보다 더 예쁘지 않습니다. 또한, 서울이 파리보다 더 예쁘지 않아요.

 도쿄는 도쿄대로 예쁘고, 서울은 서울대로 예쁘며, 런던은 런던대로 예쁜 한편, 파리는 파리대로 예쁩니다.

 춘천은 춘천대로 예쁠 테지요. 부여는 부여대로 예쁠 테고, 진주는 진주대로 예쁩니다. 더 하거나 덜 하지 않습니다. 보금자리로 여겨 따순 마음으로 어깨동무하려는 사람들 몸짓대로 예쁩니다.

 배두나 님은 처음부터 ‘배두나는 예쁜 삶과 예쁜 놀이와 예쁜 사람을 좋아해요’ 하고 한 마디를 읊으면서 나아가면 됩니다. ‘배두나 님 추억이 어린 곳은 배두나 님 눈썰미로는 하염없이 예쁠는지 모르나, 다른 여느 사람한테는 심심하거나 밋밋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나로서는 예뻐 보이는 모습을 남한테까지 예쁘게 여기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글에서든 몸글에서든 오붓한 삶과 호젓한 꿈을 사랑스레 즐기면서 머잖아 ‘뉴욕놀이’를 선물해 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그저 ‘배두나대로 논 나날’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두나's 서울놀이》는 ‘배두나대로 논 나날’에도 미치지 못하고, ‘서울을 예쁘게 누리거나 즐긴 삶’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이야기로 두루뭉술합니다.

 서울이 예쁘면 참말 ‘예쁜 사진’을 보여줄 노릇입니다. 서울이 예쁘면 이 예쁜 서울 구석구석을 ‘마실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으로 보여줄 일입니다. 구경하는 사진은 언제나 재미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습니다. 런던으로 찾아가든 도쿄로 찾아가든, ‘한두 번 찾아간’ 사람이 ‘오래오래 산’ 사람보다 덜 보거나 못 보지 않아요. 거꾸로, 서울에서 태어나 오래오래 살았대서 서울을 더 잘 바라보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4344.6.2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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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말(인터넷말) 78] ‘사이트맵’과 ‘둘러보기’

 누리집을 죽 돌아보거나 한눈에 알아보도록 하는 자리를 일컬어 으레 영어로 ‘사이트맵’이라 이름을 붙이거나 ‘sitemap’처럼 아예 알파벳으로 적바림하곤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누리집 지도’라는 말을 쓰고, 한글학회에서는 ‘누리집 얼개’라는 말을 씁니다. 둘 모두 ‘맵(map)’을 어떻게 풀어서 쓸까를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쓰는 말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끼지만, 조금 더 헤아린다면, ‘사이트맵’이란 누리집을 한눈에 살피도록 돕는 곳인 만큼 ‘누리집 길잡이’나 ‘누리집 한눈보기’라 할 수 있고, ‘누리집 둘러보기’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디지털 도서관이라는 디브러리 누리집에서는 ‘사이트맵’이라는 데에 들어가면 ‘도서관둘러보기’라는 곳이 새로 나옵니다. 여기에 붙인 말마디 ‘둘러보기’를 ‘누리집 둘러보기’처럼 쓰면 돼요. 스스로 알맞게 잘 쓰는 말이 무엇인가를 알뜰히 느끼면 좋겠습니다. (4344.6.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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