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as Feininger (Paperback)
Andreas Feininger / Stern Portfolio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이야기하려는 사진책은 뜨지 않기에,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 사진삶을 알 수 있는 다른 책에 걸어 놓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나이 들면 ‘추상’에 젖는다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0] 안드레아스 파이닝거(Andreas Feininger), 《TREES》(Rizzoli,1991)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길을 걸어온 ‘사진밭 어르신’은 나이가 들수록 ‘추상’ 사진을 찍곤 합니다. 나이가 아직 많이 안 들었어도 제법 이름을 알린 뒤에는 추상 사진을 즐기곤 합니다. 돌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시골 논자락을 보거나 물을 보거나 풀을 보거나 하면서 추상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구상’이 있기에 추상이 있고, 추상이 있으면서 구상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구상이든 추상이든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애써 구상이나 추상으로 나눌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으로 말할 뿐이요, 사진을 찍는 사람 또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사진책 《TREES》(Rizzoli,199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TREES》를 내놓은 이는 ‘Andreas Feininger’ 님입니다. 한글로 이 이름을 어떻게 적어야 좋을는지 모르겠는데, ‘안드레아 파이닝거’라 적는 분이 있고 ‘앙드레아 파이닝거’라 적는 분이 있으며 ‘안드레아스 파이닝거’라 적는 분이 있어요. 어쩌면 ‘앤드래이어스 파이닝거’라고 적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저로서는 어느 쪽이 맞게 부르는 이름인지 알쏭달쏭하기에 ‘안드레아스 파이닝거’로 읽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책 《나무들》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은 적잖은 사진비평을 썼고, 이분 사진비평은 1970∼80년대에 곧잘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와 2010년대가 된 오늘날에는 이분 사진비평을 찾아보기 몹시 어렵고, 이제 이분 사진비평을 들면서 사진을 살피거나 배우는 흐름은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예전 사람이요 예전 이야기이며 예전 사진이니까 이렇게 잊을 만하거나 손사래쳐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어느 한때에만 읽거나 살필 만하고 다른 한때에는 안 읽거나 안 살필 만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읽거나 살필 만하면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읽거나 살필 만합니다. 안 읽거나 안 살필 만하면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안 읽거나 안 살필 만해요.

 어찌 바라보면 사진책 《나무들》 또한 추상 사진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들》을 추상 사진으로 넣는 일은 썩 옳지 않다고 느껴요. 안젤 아담스 님 사진이 추상 사진이 아니듯,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 사진도 추상이 아니요, 또 구상이 아닌, 그예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책 《나무들》에는 나무들을 사진으로 담은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 글이 퍽 길게 많이 깃듭니다.

 무슨 할 말이 이다지도 많아 ‘사진쟁이’가 사진 아닌 글로 이야기를 일구어 사진책을 내놓을까요. 사진쟁이가 사진 아닌 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얼마나 사진쟁이답거나 사진책을 잘 일구었다 할 만할까요.

 사진은 사진이기에 사진으로 처음과 끝을 보여주어야 옳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은 사진이니까 사진이 아닌 글로 처음과 끝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글이나 그림도 이와 똑같습니다. 글은 글이기에 글로 모두 보여줄 수 있지만, 글을 줄이거나 덜어 그림이나 사진을 넣으면서 보여줄 수 있어요. 그림에서도 그림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나, 그림을 줄이거나 덜며 사진이나 글이 어우러지도록 이야기를 엮을 수 있어요.

 사랑은 사랑으로 보여줍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디에 깃들까요. 사랑은 무엇으로 보여주거나 무엇으로 느끼게 할까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차리는 밥 한 그릇에 사랑이 깃듭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입히는 옷을 빨아서 곱게 널어 보송보송 말릴 때에 사랑이 깃듭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새근새근 재우는 포근한 보금자리에 사랑이 깃듭니다.

 사진쟁이가 사람 삶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큐사진이 된다 하지만, 사진쟁이가 무당벌레 삶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큐사진이 됩니다. 사진쟁이가 가난한 사람들 마을에서 오래오래 지내면서 사진을 찍을 적에도 다큐사진이 된다 할 테지만, 사진쟁이가 쑥이나 질경이 한살이를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큐사진이 돼요.

 다큐사진에는 어떠한 틀이 없습니다. 사진에는 이런저런 울타리가 없습니다. 다큐글도 아무런 틀이 없고, 글 또한 구지레한 울타리가 없어요. 오직 삶으로 말합니다. 오로지 삶을 사랑하는 넋으로 말합니다. 온통 삶을 사랑하는 넋을 따스히 어루만지면서 말해요.

 사진책 《나무들》을 여러 차례 되읽으면서 거듭거듭 되뇝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진길을 걷는 숱한 어르신들이 사진책 《나무들》에 어떠한 손길과 마음길과 눈길이 깃드는가를 차분히 느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고 거듭거듭 되뇝니다. 사람을 찍어도 사람들 눈동자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스며들면서 어깨동무하지 않을 때에는 겉치레로 그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어도 나뭇잎 한 장이 아니라 등걸과 나이테와 꽃송이 깊디깊게 스며들어 어깨동무할 때라야 비로소 사진입니다.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은 숱하게 쓴 사진비평으로 사진길 걷는 사람들한테 좋은 이슬떨이가 되었는데, 사진비평을 《나무들》 같은 사진책에 살포시 녹이면서 ‘머리로 하는 이론’이나 ‘머리로 만드는 사진’이 아닌, ‘삶으로 나누는 말’과 ‘마음으로 찍는 사진’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나무숲에 들어가 보셔요. 가까이에 나무숲이 없다면, 도시 한복판에서 자동차한테 둘러싸인 외로운 나무 곁에 서 보셔요.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든 외로운 나무 곁에서든, 나무 한 그루가 자라온 나날이 아로새겨진 굵직한 줄기를 쓰다듬으면서 나무가 사람 손을 거쳐 나누려 하는 따스한 기운을 받아들여 보셔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어 보셔요. 우람한 나무에 내려앉아 다리쉼을 하는 온갖 새를 바라보고, 이 온갖 새가 지저귀는 끝없는 노래를 들어 보셔요.

 나무 숨소리와 나무 노랫소리를 나무 푸른그늘과 함께 맞아들일 수 있으면, 누구나 《나무들》 같은 사진책을 예쁘게 일구며 흐뭇하게 웃습니다. (4344.7.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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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내 고향은 영어를 참 좋아한다


 제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인천입니다. 서울 옆에 있다지만 인천은 인천입니다. 부천은 부천이고 수원은 수원이며 안산은 안산이에요. 서울 둘레에 있대서 서울하고 한동아리일 수 없고, 서울을 쉬 찾아갈 수 있대서 서울 문화를 누릴 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울하고 곁에 있어서 그런지, 인천사람은 퍽 예전부터 서울을 자주 드나듭니다. 똑똑하다 싶은 아이라면 일찌감치 서울로 보내서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대학교를 다녀도 인천에 있는 대학교가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공부 좀 한다고 여기며, 일자리를 얻어도 인천 아닌 서울에서 얻어야 제대로 일하는 줄 여겨 버릇합니다. 이런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서울에서 하면 인천도 뒤따르고 마는 요즈음 흐름입니다. 서울시에서 ‘Hi Seoul’이라고 내세우니 인천시에서는 ‘Fly Incheon’을 내세웁니다. 다만, 서울시 누리집을 들어가면 서울시는 ‘서울특별시’라고 한글로 적고 나서 누리집 맨 아래쪽에 ‘Hi Seoul’이라는 글월을 넣지만, 인천시는 누리집 대문 가장 잘 보이는 데부터 ‘Fly Incheon’을 넣습니다. 누리집 맨 아래쪽에서야 비로소 한글로 ‘인천광역시’라고 적어요.

 우리 나라는 무엇이든 서울로 쏠립니다. 우리 나라는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는 소식이 되고, 큰 신문사이든 방송사이든 출판사이든 회사이든 서울에 모이기만 합니다. 서울에 있대서 잘못이 아니라, 서울에만 있으니 골칫거리이거나 말썽거리가 됩니다. 이리하여, 서울시가 ‘Hi Seoul’이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썼을 때에 언론사마다 날카롭게 꾸짖으면서 이래서야 이 나라 얼굴이 제대로 서겠느냐고 따졌으나, 서울하고 맞붙은 인천시에서 아예 ‘인천광역시’라는 이름조차 뒤로 숨기거나 안 쓰면서 ‘Fly Incheon’이라고만 쓸 때에는 어느 누구도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았어요. 아니, 이렇게 이름을 쓰는 줄 몰랐겠지요. 이러다가 한글날 즈음 되어서야 비로소 인천시가 ‘Fly Incheon’을 쓰는 일을 나무라고, 대전시가 ‘It's Daejeon’을 떠벌이는 모습을 꾸짖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달이 《굿모닝 인천》이라는 소식지를 받아보니까, 이 소식지를 들여다보면서 인천시가 얼마나 영어를 사랑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요 한두 달 사이에 나온 소식지를 들추다가 2011년 5월치가 눈에 뜨여 빙그레 웃으면서 펼칩니다. 강원도 평창에서는 겨울올림픽을 이끌었다면서 기뻐 하는데, 인천에서는 2014년에 아시아 경기대회를 이끌었다며 즐거워 합니다. 2011년 5월치에는 겉에 이 소식이 하나 나옵니다. 다만, ‘아시아 경기대회’나 ‘아시안 게임’이라 안 쓰고 ‘AG’라 쓰는군요.

- 굿모닝 인천 Good Morning INCHEON

 그러고 보면, 소식지 이름은 《굿모닝 인천》이지만, 이렇게 알파벳으로 “Good Morning INCHEON”이라고 덧답니다. 나라밖 사람들, 그러니까 외국사람도 읽을 소식지라면 이렇게 알파벳 이름을 함께 붙일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굿모닝 인천》은 한글로 만드는 소식지입니다. 영어로 기사를 넣지 않아요.

 다른 지자체나 관공서나 회사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지자체 소식지이든 관공서 소식지이든 회사 소식지이든, 알파벳으로 소식지 이름을 밝힐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 대한민국은 ‘우리 말을 한글로 적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곳이지, ‘영어를 알파벳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나누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식지 겉에 적힌 몇 가지 눈에 뜨이는 글을 알리는 대목을 봅니다.

- Special
- 인천 孝
- 2014 인천AG
- Old But New 용현동

 한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인천’과 ‘용현동’만큼은 알파벳으로 적으면 알아보기 더 힘드니까 한글로 적은 듯해요.

 소식지를 넘깁니다. 첫 쪽부터 ‘차례’가 아닌 ‘Contents’라 적습니다. 그러네요. 이제 이런저런 소식지이든 잡지이든 으레 ‘차례’나 ‘벼리’ 같은 말마디는 구지레하다 여기면서 이처럼 ‘Contents’라 적기 일쑤예요.

 ‘Contents’라는 자리에 어떤 말을 쓰는지만 돌아보더라도, 인천에서 내는 소식지 빛깔을 알겠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Contents’는 이렇게 짜였습니다. 하나하나 읽다가 입에 쩍 벌어집니다.

- Event : 5월 페스티벌
- INCHEON 2014 : AG 포스터
- Special : 어린이 꿈제작소
- 가정의 달 5월 : 인천 孝
- 책 읽는 인천 : 독서가족
- 2014 인천AG : Tibet, 라싸
- Old But New : 용현동
- Culture News : 문화뉴스, 이달의 공연전시
- 사람과 사람 : 조학영, 김효민
- Civic News : 시정뉴스
- Council News : 의정뉴스
- Infobox : 생활정보
- Spot the Difference : 틀린그림 찾기
- Reader's Photo : 김치찰칵
- 모닝커피 한잔 :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페스티벌’과 ‘포스터’와 ‘뉴스’는 왜 한글로 적는지 궁금합니다. ‘Tibet’은 알파벳으로 적는데 ‘라싸’는 왜 한글로 적을까요. 인천시에서 내놓는 이 소식지를 읽는 사람은 차례 아닌 Contents에 실린 이런저런 이름을 들여다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좋을까 궁금합니다. 한국으로 찾아온 외국사람이 한글을 신나게 배우면서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힘쓰는데, 인천시에 살 집을 마련해서 인천시 소식지를 펼치면서 이러한 Contents를 읽어야 할 때에 무슨 생각을 할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소식지 간기 자리를 봅니다. 한글로는 따로 적는 말이 없이 “Incheon monthly magazine vol.209”라고만 적습니다. ‘209호’라고 적는 줄 몰라서 ‘vol.209’로 적었을까요. ‘인천시 월간지’라고 적을 줄 몰라서 ‘Incheon monthly magazin’로 적었을는지요.

 소식지 겉에 실은 사진을 이야기하면서 ‘Cover Story’라 적습니다. 그렇군요. ‘Cover Story’가 되겠네요. 우리 나라 중앙일간지 가운데 신문이름을 한글로 붙인 곳에서 내는 주간잡지에도 ‘커버스토리’가 실립니다. 다만, 이 주간잡지에서는 알파벳으로 ‘Cover Story’라 하지 않고 한글로 ‘커버스토리’라 합니다.

 인천시가 다달이 내는 소식지를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차례 자리를 비롯해 소식지에 실은 글에도 영어는 곳곳에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하나 들자면 끝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히유 한숨을 내쉬고는 소식지를 덮습니다. 인천시가 내세운 상징이름이라 할 ‘Fly Incheon’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인천시는 꼭 이렇게 영어로 상징이름을 지어야 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날자 인천’이라든지 ‘난다 인천’이라든지 ‘나는 인천’처럼 이름을 붙일 수 없었나 아리송합니다.

 모르는 노릇이기는 한데, ‘나는 인천’이라 이름을 붙였다면, “하늘을 나는 인천”이면서 “나라는 사람은 바로 인천”이라는 뜻이 됩니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며 일하는 모든 삶이 곧 인천이니까, 나 스스로를 자랑스레 여기면서 씩씩하고 사랑스레 아끼자는 뜻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렇지만 ‘Fly Incheon’일 때에는 그저 영어 이름이요, 한국사람한테나 인천사람한테나 그다지 가슴으로 와닿을 만한 아름다움이 깃들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싶어요.

 독일사람은 독일말로 상징이름을 짓습니다. 프랑스사람은 프랑스말로 상징이름을 지어요. 네덜란드사람은 네덜란드말을 쓰고, 스웨덴사람은 스웨덴말을 씁니다. 베트남사람은 베트남말을 쓰고, 스리랑카사람은 스리랑카말을 써요. 모두들 제 나라 제 겨레 말을 씁니다.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이 ‘김치’를 ‘기무치’라고 고쳐서 말할 때에 못마땅해 합니다만, 정작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거나 사랑스럽거나 착하거나 참답게 쓰지 않아요.

 아, 저는 제 고향을 사랑해야 할까요. 우리 말글은 아끼거나 좋아하거나 보듬거나 돌볼 줄 모르는 이 고향을 사랑해야 하나요. (4344.7.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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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4 : 내 삶에 따라 읽는 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안다면, 아이 어버이라든지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교사라든지 어린이책을 좋아하는 어른이라든지 책마을 일꾼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는 어른이나 둘레에 아이가 없는 어른이라면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아닌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라면, 또 대학교 교수라면 어린이책을 애써 읽으려 하지 않아요. 책마을 일꾼이라 하더라도 어린이책을 만들거나 다루지 않는다든지, 책마을 이야기를 글로 쓴달지라도 어른책 이야기만 쓰는 사람은 이러한 그림책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저마다 알거나 읽거나 즐기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다릅니다. 스스로 어떠한 길을 사랑하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느냐에 따라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책이 다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가장 많이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도 즐거이 읽도록 마련한 책입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이라는 말이나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도록 만들지 않으니까요.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모두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도록 만듭니다.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어떠한 어린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돈을 벌어 장만할 수 없습니다. 모든 어린이가 읽는 모든 어린이책은 ‘어른이 일을 해서 돈을 번 다음, 이 돈으로 책방에 마실을 가든 누리집을 뒤적여 집에서 소포로 받든’ 해야 합니다. 어린이책을 책방에서 사들이거나 도서관에서 빌릴 때에 ‘늘 어른이 먼저 읽거나 살피’기 마련이에요.

 그림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은 참 예쁘며 시원한 그림에다가 참말 어여쁘며 시원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림으로 빚어 나누는 문화나 예술이라면 현대회화나 정통회화에 앞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즐기는 그림책’만큼 돋보이거나 아름다울 문화나 예술은 둘도 없지 않겠느냐 싶도록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을 장만해서 읽는다더라도, 이 그림책이 어떻게 즐겁고 얼마나 고운가를 못 느낄 어른과 어린이가 꽤 있습니다. 제아무리 빛나는 그림책이라지만, 빛나는 속살을 읽을 빛나는 내 삶이 못 된다면 빛나는 책 하나를 가슴으로 품지 못해요. 돈을 더 벌기를 바라며 사는 책, 영어시험 점수를 높이려고 사는 책, 진급이나 승진을 바라며 처세를 잘하려고 사는 책, 재미난 이야기만 좇으며 사는 책, 베스트셀러라는 유행에 휘둘려 사는 책, …… 이런저런 책은 모두 내 삶이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고운 넋으로 고운 삶을 일굴 때에 고운 글을 쓰면서 고운 책을 빚습니다. 고운 얼로 고운 말을 나누며 고운 사랑을 어깨동무할 때에 고운 책을 알아보며 즐깁니다. (4344.7.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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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거지


 밥을 다 먹고 나서 몇 가지 그릇과 접시와 수저에 비누를 묻혀 물에 부시는 일은 설거지가 아니다. 고작 몇 가지 그릇과 접시와 수저에 비누를 발라 헹구고서는 집일을 제법 도왔다고 여길 수 없다. 밥을 다 먹고 나서 하는 그릇씻기는 밥을 하는 동안 하는 설거지하고 댈 수 없을 만큼 얼마 안 된다.

 밥물을 안치고 미역국을 끓이며 반찬을 마련하는 동안 책 한 줄이라도 읽자고 다짐하기를 몇 해이지만, 이제 이러한 다짐은 거의 떠올리지조차 못한다. 밥물을 안치기 앞서 미역을 끊어서 불려야 하고, 쌀을 씻어서 불린 다음 국거리와 반찬거리로 쓸 푸성귀와 여러 먹을거리를 손질한다. 무를 씻고 감자를 씻으며 당근을 씻는다. 감자를 썰고 무를 썰며 당근을 써는 사이사이 칼을 닦고 도마를 씻는다. 양파를 까서 썰 때에도 칼을 닦고 도마를 씻는다. 마늘을 절구로 찧었으면 절구와 절구공이를 씻어서 말린다. 불 셋을 쓰면서 밥과 국과 반찬을 하니까, 반찬을 두 가지 하려면, 반찬 한 가지를 끝내고 얼른 냄비 하나를 씻어서 다시 써야 한다. 다 불린 미역은 세 차례 물로 헹군다. 미역을 다른 그릇에 불렸으면 다른 그릇을 설거지하고, 체로 미역을 받으며 헹군다면 체도 설거지한다. 으레 기름 안 쓰고 물로 스텐냄비에 볶지만, 드물게 기름을 써서 볶았으면 기름기를 닦아내어 새 반찬을 하느라 손이 더 간다. 도마질을 하는 개수대가 정갈하도록 행주로 수없이 개수대 물기를 훔치고 물을 짜면서 다시 빨기를 되풀이한다. 밥이 거의 다 되면 쌀겨가루를 한두 숟가락 넣고 섞는다. 이무렵 국이 펄펄 끓으니 살짝 간을 보면서 소금을 더 넣을까 간장을 마무리로 넣을까 생각한다. 미역국에 조개나 새우살을 넣는다면, 얼린 조개나 새우살을 녹이며 헹구느라 손이 간다.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을 큰 통에 담아 헹구느라 손이 갈 뿐더러 큰 통을 설거지해야 한다. 콩나물과 여러 푸성귀를 씻거나 헹구며 부스러기가 떨어지니, 개수대 찌꺼기받이를 들어내어 비우고 닦는다. 개수대 바닥과 옆을 쇠수세미로 닦는다. 밥에 쌀겨가루를 골고루 섞었으면 뚜껑을 덮고 몇 분쯤 기다렸다가 불을 끄고, 밥상을 닦는다. 반찬그릇을 꺼내고 마무리지은 반찬을 접시에 담는다. 반찬을 하느라 쓴 냄비와 주걱과 숟가락과 접시를 설거지한다. 국이 다 되면 불을 끄고 간장을 살짝 넣거나 말린명태껍데기를 잘라서 넣는다. 말린명태껍데기를 가위로 잘랐으면 가위를 설거지한다. 오이와 오이지를 알맞게 썰어 접시에 담는다. 칼을 다시 닦고 도마를 다시 씻는다. 두부를 데쳤으면 국자로 떠서 접시에 담아 칼로 작게 썬다. 도마에 얹어 자르고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면 도마를 또 씻어야 해서 그냥 접시에 담아 칼로 자른다. 두부 데친 냄비를 얼른 설거지하고 칼을 다시 닦는다. 이제 칼 쓸 일이 더 없겠지 하고 생각하며 반찬 담은 접시와 밥그릇과 수저를 밥상으로 나른다. 첫째 아이가 얌전하거나 상냥한 날에는 수저를 알뜰히 제자리에 놓아 주고 반찬뚜껑도 열어 준다. 첫째 아이가 말똥쟁이 노릇을 하는 날은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내야 한다. 더욱이, 아이가 혼자 손을 뻗어 저 먹고픈 대로 먹으면 골이 아프다. 국을 국그릇에 하나하나 뜬다. 더운 여름날은 국이 쉬기 때문에 끼니마다 새로 끓이려고 애쓴다. 다 비운 국냄비와 국자를 설거지한다. 밥냄비를 밥상으로 옮기면서 아이 몫과 어머니 몫을 푼다. 아이한테 어머니도 먹자고 불러야지 하고 이야기하면서 잘 먹겠습니다 하는 말을 먼저 하면 아이도 따라서 말한다. 자리에 앉을 겨를 없이 다시 부엌으로 가서 흐트러진 부엌을 갈무리한다. 밥을 하며 쓴 연장은 모두 설거지를 하고, 행주로 개수대와 가스렌지를 닦는다. 마무리로 행주를 빨고, 행주를 빨며 개수대에 튄 물을 다시 닦고 행주를 꾹 짜서 펼쳐 넌 다음 손을 씻는다. 어제 먹고 남은 반찬을 유리그릇이나 스텐그릇에 담았다가 밥자리에서 새 접시에 담았으면, 유리그릇이나 스텐그릇을 마저 설거지한다.

 이렇게 밥을 차리며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밥을 먹고 나서 해야 할 설거지가 멧더미처럼 쌓인다. 집에서 설거지를 거들겠다는 사내들이라면 밥을 다 먹은 다음 하는 설거지가 아니라, 밥을 차리면서 설거지를 해야 옳다. 밥하는 사람 옆에 붙어서 밥하는 사람이 쓴 부엌 연장을 그때그때 잽싸게 설거지해서 말리거나 물기를 닦아서 건네야 맞다. 내가 쓴 밥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했대서 설거지를 도왔거나 집일을 거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이는 ‘설거지 돕기’나 ‘집일 거들기’가 아니라, 밥을 차리며 설거지를 한 집일꾼한테 지키는 아주 조그마한 ‘인사치레(예의)’일 뿐이다. (4344.7.1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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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4 16:13   좋아요 0 | URL
매일 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된장님께서 문장으로 풀어놓으신 것을 보니, 우리는 매일 엄청난 일을 하고 있군요! ^^

인사치례는 커녕
밥 차리면 재까닥 오기라도 하는 예의가 없는 사람도 저희 집에 있습니다. ㅎㅎ

파란놀 2011-07-14 17:14   좋아요 0 | URL
ㅋㅋ
그렇지요.
밥상에 차릴 때까지 밥상 앞에서 얌전히 앉아서 기다릴 줄 안다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부디 집일을 잘 거드는 아이로 자랄 수 있기를
날마다 빌어 마지 않아요~~~
 

 

자전거쪽지 2011.7.11.
 :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 소리



- 12일 장날에도 비가 쏟아질 듯하다고 느낀다. 어차피 장마당도 제대로 안 설 테고, 장마당이어야만 살 수 있는 푸성귀는 아니기에, 오늘 비가 좀 뜸할 때에 맞추어 읍내마실을 나서기로 한다.

- 그제에도 읍내에 다녀갔다. 사흘 앞서 셈틀이 갑자기 맛이 가는 바람에 그제 낮 이 녀석을 수레에 싣고 읍내로 가야 했다. 아이가 수레 앞에 앉고 셈틀을 수레 뒤에 넣으니 수레 무게가 꽤 나갈 뿐 아니라 뒤로 쏠려서 고개를 오를 때에 무척 애먹었다. 오늘은 홀가분한 수레이다. 그런데 어쩐지 기운이 나지 않는다. 힘들다.

-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에서 다시금 느낀다. 오늘 따라 무척 힘들다. 하는 수 없이 숯고개 꼭대기에 거의 다다를 무렵 자전거를 세운다. 한숨을 돌린다. 읍내에서 비가 쏟아졌기에 아이한테 비옷을 입히고 나도 비옷을 입었는데 비가 그쳤다. 아이가 비옷이 답답하다며 벗겨 달라 한다. 아이 비옷을 벗긴다. 그러고 나서 우리를 둘러싼 멧자락을 휘 둘러본다. 아이한테 저 구름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구름이 멧등성이에 앉았네. 구름도 다리를 쉬려고 멧자락에 앉았나 봐.”

- 아이는 아버지 말을 고스란히 따라한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 앞에서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 쓸 말이 달라지리라. 어버이부터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이 말을 해야 아이가 아름다우며 착하고 참다운 말을 배우겠지.

- 큰길이 끝나고 마을로 접어든다. 마을에 접어든 다음 만나는 가파른 오르막에서도 자전거를 멈춘다. 끙끙거리며 미는데 아이가 걷고 싶다며 아버지를 부른다. 잘 됐다. 아이를 내린다. 아이는 콩콩 뛰듯 신나게 걷는다. 조금 걷자니 멧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가득하더니 어치가 한 무더기 이곳에서 저곳으로 날아간다. 스무 마리 넘게 보인다. 게다가 어치 사이사이 꾀꼬리가 한 마리씩 섞인다. 아이는 ‘새’만 보고 ‘꾀꼬리’는 자꾸 놓친다.

- 더 걷는다. 옆으로 자동차가 석 대 지나간다. 자동차를 모는 사람은 시골길을 달리더라도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일이 없겠지. 요즈음 쏟아지는 빗줄기를 그으려고 허둥지둥 다니는 어린 사마귀를 볼 일도 없겠지. 갓 깨어난 자그마한 사마귀가 시골길을 허둥지둥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며 자칫 밟을 뻔했다.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자그마한 크기인 새끼사마귀이니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알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알아보려 할 수조차 없다.

- 자꾸 걷는다. 마을길로 접어든 다음에는 수레에서 아이를 내려 걷게 하면 더 좋겠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집에 거의 다 온다. 마지막 얕은 오르막에서 바람이 꽤 세게 분다. 휘이이 소리를 내며 나뭇잎을 잔뜩 흔든다. 아이는 바람소리가 좋고 바람결이 시원하다며 소리를 꺄악꺄악 지른다. 고개를 들어 나무숲굴처럼 된 곳에서 푸른 잎 우거진 나뭇가지를 올려다본다.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느낀다. 귀만 열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가 저 앞으로 달려간다. 아이 뒷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 더 찍으면서 이 사진에는 아이와 아버지가 함께 걸어가며 들은 바람소리도 담겼을까 하고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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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7-14 14:14   좋아요 0 | URL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의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 봤어요.
바람에, 바람결에, 바람소리에 내어맡기는 거...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파란놀 2011-07-14 17:14   좋아요 0 | URL
빗소리와 바람소리를 함께 듣는 여름날은
빨래가 안 말라도... 그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