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책읽기


 새 보금자리를 찾는다며 자전거를 끌고 춘천마실을 다녀왔다. 춘천에 가기 앞서 서울을 들렀다. 서울에서는 두 군데 헌책방과 한 군데 인문사회과학책방과 세 군데 출판사와 용산전자상가를 들르느라고 자전거를 한참 달렸다. 춘천에서는 마땅한 살림집을 찾으려고 엉덩이가 아프도록 자전거를 오래도록 달렸다.

 믿고 바라면서 꿈꾸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믿고 바라면서 꿈꾸는 나날로 내 사랑을 기울이면 천천히 이루어지겠지.

 엉덩이가 욱씬거린다. 며칠 동안 자전거를 신나게 타야 했더니, 며칠째 집일을 안 하고 빨래 또한 안 하던 내 두 손에 있던 꾸덕살이 엉덩이 쪽으로 내려온 듯하다고 느낀다.

 새벽나절 우는 풀벌레 온갖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는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울었다. 같은 풀벌레가 이처럼 쉬지 않고 노래를 하는지, 다 다른 풀벌레가 다 다른 때에 한결같이 노래를 하는지 궁금하다. 새 보금자리는 이 보금자리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밤부터 새벽까지, 언제나 수많은 풀벌레 울음소리로 가득하기를 빈다.

 옆지기가 새 보금자리에서 탈 자전거가 왔다. 아주 예쁘장하게 생겼다. 옆지기는 나보고 한번 타 보라 했지만 타지 않았다. 이 어여쁜 자전거는 앞으로 옆지기 엉덩이를 욱씬거리게 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낳겠지.

 마땅한 살림자리를 찾으려면 두 다리로 거닐며 살펴야 한다. 자가용을 몰며 여기저기 휘 돌아다닌대서 마땅한 살림자리를 찾을 수 없다. 살림자리를 알뜰히 찾고 싶으면 자가용에서 내려야 한다. 자전거를 몰며 멧자락 옆에 낀 살림집이 얼마나 있고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있는지 헤아린다. 조용히 둘러본다. 천천히 움직인다. 자전거는 더 먼 길을 헤아리도록 돕는다. 자전거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멈추어 주고 기다려 준다. 엉덩이가 욱씬거리는 만큼 허벅지와 종아리가 붓고, 허벅지와 종아리가 붓는 만큼 등허리가 뻑적지근하다.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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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과 아이와 책읽기


 아이는 바깥으로 나오면 제 어버이 말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른 사람과 말을 섞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말을 섞으면, 다른 사람이 살아오며 쓰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좋은 말이건, 궂은 말이건.

 아이는 글을 깨쳐 스스로 책을 읽을 때가 되면, 어버이가 쥐어 주지 않던 책을 하나하나 찾아 읽습니다. 어버이는 이것저것 가리거나 추려서 건넸고, 책에 적힌 말도 걸러서 들려주지만, 글을 깨친 아이는 저 스스로 하나하나 읽습니다. 올바르며 살가운 말로 이루어진 책이건, 뒤틀리며 메마른 말이 가득한 책이건.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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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 - 옮기던 날의 기록 그리고 그 역사, 개정증보판
리영희·나영순 글, 김동현·민경원 사진 / 열화당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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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사진을 ‘까망하양’사진으로 바꾸다
 [찾아 읽는 사진책 29] 김동현·민경원, 《서대문 형무소》(열화당,1988/2008)


 어느 한 사람을 사진으로 담든, 어느 집 하나를 사진으로 찍든, 어느 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사진을 내놓습니다. 어느 집 하나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 다른 느낌을 사진에 싣습니다.

 다만, 기계를 바꾼대서 사진 느낌이 확 바뀌지는 않습니다. 쓰는 기계가 달라지면 아주 조그마한 대목에서 느낌이 얼핏 바뀌기는 하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사람을 바라보거나 같은 사람이 같은 집을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는 느낌은 거의 똑같습니다.

 기계는 그대로이고 사람이 다르다면, 이때에는 언제나 다른 사진이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마다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나 다 다른 삶을 꾸렸거든요.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사랑을 받으며 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린 사람이기 때문에, 이 다 다른 사람들이 일굴 사진에는 다 다른 사진말이 깃듭니다.

 기계가 그대로요 바라보는 사람 또한 그대로라 할 때에는, 쓰는 필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무지개필름을 쓸 때랑 까망하양필름을 쓸 때랑 사진이 달라집니다. 아니, 사진기를 쥔 사람이 사진기에 눈을 박아 들여다볼 때에는 똑같아요. 다만, 필름에 앉히는 모습이 달라지고, 나중에 종이에 사진을 얹을 때에 새삼스럽게 달라진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한 가지 더. 기계가 같고 바라보는 사람 또한 같으며 필름 또한 같다 할 때에는, 날씨와 날과 철에 따라 달라집니다. 봄철 찍는 사진하고 겨울철 찍는 사진이 같을 수 없습니다. 궂은 날과 갠 날 사진이 같을 수 없습니다. 아침과 새벽과 낮과 밤 사진이 같을 수 없어요.

 사진은 늘 사진이지만, 사진에 이야기를 싣는 사람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으로 이루면서, 사진에 삶을 담는 사람입니다.

 사진찍기를 할 때에 어떠한 기계를 썼느냐는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읽기를 할 때에 사진쟁이가 어떠한 기계를 썼느냐를 하나도 몰라도 됩니다. 사진찍기를 할 때에 사진쟁이가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웠느냐를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쟁이는 이제껏 살아낸 내 나날을 돌이키면서 내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사진읽기를 할 때에 사진쟁이가 무슨무슨 대학교를 나오거나 어디어디 배움길을 다녀왔다 하는 가방끈을 알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읽기를 할 사람들은 사진 한 장에 깃든 이야기가 내 마음밭에 어느 만큼 아로새겨지는가를 느낄 뿐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기계를 따질 일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내 사진에 담기는 사람이나 집이 어떠한가를 돌아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무지개필름을 쓰겠느냐 까망하양필름을 쓰겠느냐를 가눕니다. 요사이는 디지털파일로도 무지개파일을 쓰겠느냐 까망하양파일을 쓰겠느냐를 가눕니다.

 내 사진으로 담으려는 사람이나 집을 ‘아침에 만나’려는지 ‘낮에 만나’려는지 ‘새벽에 만나’려는지 ‘한낮에 만나’려는지 ‘저녁에 만나’려는지 ‘밤에 만나’려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내 사진으로 옮기려는 사람이나 집을 ‘맑은 날에 사귀’려는지 ‘궂은 날에 사귀’려는지 ‘비오는 날에 사귀’는지 ‘눈오는 날에 사귀’려는지 ‘구름 낀 날에 사귀’려는지 ‘안개 낀 날에 사귀’려는지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 사귀’려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 사진으로 빚으려는 사람이나 집을 ‘따순 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꽃샘추위 닥친 봄철에 어우러’지려는지 ‘갓 접어든 여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한창 무더운 여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벼락과 우레가 떨어지는 여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산들바람 가을철에 어우러’지려는지 ‘열매가 무르익는 가을날에 어우러’지려는지 ‘겨울비 내리는 겨울날에 어우러’지려는지 ‘큰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철에 어우러’지려는지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에 어우러’지려는지 ‘따스한 바람이 부는 겨울날에 어우러’지려는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사진책 《서대문 형무소》(열화당,1988/2008)를 읽습니다. 스무 해를 사이에 두고 첫판과 고침판으로 나누어진 두 가지 사진책을 읽습니다.

 사진책 《서대문 형무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88년 사진책이고 다른 하나는 2008년 사진책입니다. 두 사진책은 서로 다른 책입니다.

 왜냐하면, 판짜임과 엮음새가 다를 뿐 아니라, ‘사진마저 다릅’니다.

 처음에는 “한정된 시간 내에 굴절 많은 우리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우리의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1988/사진 찍은 이).”고 밝혔습니다. 그러면, 스무 해 뒤에는 ‘한정된 시간’이 아니었겠지요. 스무 해에 걸쳐 꾸준히 더 찍고 더 만나며 더 어우러졌으면, 2008년에 새로 내는 1988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못 다 이룬 숱한 이야기를 알알이 아로새길 아름다운 사진책이 될 수 있겠지요.

 나중에는 “판형을 확대하고 기록적 가치가 뛰어난 사진과 도면 자료 등을 추가했으며, 독립지사 세 분의 글을 덧붙여 서대문형무소에 관해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2008/편집자).”고 하지만, 2008년 사진책은 그리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2008년 사진책은 판이 조금 커지고 사진 짜임이 조금 달라지며 쪽수가 조금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1988년 사진책하고 무엇이 다른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이럴 바라면 1988년 사진책을 똑같이 다시 낼 때하고 무엇이 나아질까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1988년 사진책과 2008년 사진책은 큰 대목에서 서로 엇갈립니다. 1988년 사진책에는 ‘무지개사진’이 제법 실립니다. 2008년 사진책에는 오직 ‘까망하양사진’이 실립니다. 1988년 사진책에는 ‘무지개사진’이었는데 2008년 사진책에서는 몽땅 ‘까망하양사진’으로 바뀝니다.

 나는 묻고 싶습니다. 온누리 사진쟁이 가운데 ‘무지개사진’으로 찍는 이야기하고 ‘까망하양사진’으로 찍는 이야기가 똑같다고 느낄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까망하양사진이 나쁘고 무지개사진이 좋을 수 없습니다. 까망하양사진이 ‘기록 값어치가 빼어나며 다큐멘터리 빝깔이 더 짙을’ 수 없습니다. 두 갈래 사진은 두 갈래대로 이야기가 다르고 삶이 다르며 생각이 다릅니다. 그저 빛느낌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1988년 사진책부터 ‘사진쟁이는 무지개사진으로 담았’으나 ‘출판사 편집자가 까망하양사진으로 바꾸’었는지 모릅니다. 1988년 사진책과 2008년 사진책에서는 이 대목을 한 마디로도 다루거나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은 반드시 밝혀야 하고 꼭 다루어야 해요.

 앙리까르띠에 브레송 님이 당신 사진을 ‘까망하양사진’이 아닌 ‘무지개사진’으로 찍었다고 할 때에, 이이 사진을 똑같이 바라볼 수 있을까요. 김기찬 님이 담은 《골목 안 풍경》은 까망하양사진일 때하고 무지개사진일 때에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사진으로 담긴 모습뿐 아니라 사진으로 찍는 느낌까지 아주 크게 달라집니다.

 무지개사진과 까망하양사진이 어떻게 다른 줄 모른다면, 새벽에 안개가 드리울 때에 소나무를 찍는 사진하고 한낮에 안개가 모두 걷혀 파란 빛깔 하늘이 눈부실 때에 소나무를 찍는 사진이 어떻게 다른 줄 모르는 삶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사진책 《서대문 형무소》는 이 나라 사진밭이 어떠한 깊이요 너비인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4344.8.22.달.ㅎㄲㅅㄱ)

 

― 서대문 형무소 (김동현·민경원 사진,리영희·나명순 글,열화당 펴냄,1988.1.15·2008.1.1./16000원)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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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밀이 아버지


 곧 백날째 맞이하는 둘째를 씻긴다. 둘째는 저를 씻기려 하면 금세 알아챈다. 아주 좋다며 입을 쩍 벌린다. 까르르 웃는다. 씻길 때에도 웃으면서 좋아한다. 첫째는 요즈음 “싫어.”와 “안 해.”를 입에 달며 산다. 참말로 싫거나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투정이면서 놀이라 할까. “그래, 싫으면 씻지 마.”라 말하거나 “그래, 안 씻으려면 혼자 씻지 마.”라 말하면, 어느새 “씻어, 씻는다구.”나 “씻을래.”라 말한다. 자꾸자꾸 뒷북놀이를 한다.

 둘째를 씻길 때에는 젖을 물릴 때 쓰던 손닦개로 온몸을 구석구석 닦으며 씻긴다. 첫째를 씻길 때에는 내 손으로 닦으며 씻긴다. 네 살 첫째는 때를 밀면 제법 나온다. 손등과 팔뚝과 어깨를 거쳐 목덜미와 등판과 허리와 배와 허벅지와 종아리와 뒷꿈치까지, 골고루 때를 민다. 조그마한 몸뚱이에서 조그마한 때가 슬슬 벗겨진다.

 아버지가 때를 밀면 아이는 저도 때를 밀겠다며 슥슥 문지른다. 아이 힘으로 아직 제 때를 밀지 못한다. 아이는 시늉만 할 뿐이다. 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는, 스스로 시늉을 하면서 조금씩 살이 붙고 힘살이 붙는다. 시나브로 기운이 붙고 아주 천천히 슬기를 얻는다.

 아이가 제 낯을 옳게 씻을 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는 제 목덜미를 스스로 씻는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아직 물만 조금 묻힐 뿐이다. 그래도 말끄러미 지켜본다. 아이가 하는 양을 말없이 지켜본다. 아이가 한참 혼자 깨작거리도록 둔 다음, 천천히 손을 들어 아이가 못한 일을 거든다.

 사람들은 아이가 참 귀여운 짓을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내가 볼 때에, 아이는 그닥 귀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살아낸다. 아이는 온힘을 기울여 살아간다. 아이로서는 모든 기운을 쏟아 살아숨쉬려 하는데, 이러한 몸짓이 무척 어설프거나 서툴기에 어른 눈썰미로는 ‘귀여운 짓’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아이한테는 살림이 아니라 소꿉놀이일 테니까, 아이가 노는 양은 귀엽게 느낄는지 모른다.

 때밀이 아버지로 지내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때밀이 시늉만 한대서 때를 밀 수 없다. 아이는 행주로 밥상을 닦고 걸레로 방바닥을 훔쳐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를 도와 텃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아버지를 거들어 둘째 기저귀를 함께 갈면서 팔힘을 길러야 한다. 아이 책을 아이가 스스로 갈무리하거나 치우고, 밥상을 차릴 때에 수저와 그릇과 반찬통을 조금씩 같이 나르면서 어깨힘을 길러야 한다. 어머니랑 멧길을 오르내리면서 다리힘을 기르고, 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빨래놀이를 하며 손아귀 힘을 길러야 한다. 때가 되면 아이는 저 혼자서 때밀이를 하며 씻기놀이에 푹 빠지겠지. (4344.8.2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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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과 돈과 책읽기


 사람들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돈을 벌 뿐이에요. 일을 한다 할 때에는 이 일을 내 아이가 배우면서 함께 웃고 울어야 해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고 여기지만, 막상 돈을 생각하거나 꿈꿀 뿐이에요. 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이 책을 내 삶으로 삭이면서 아이하고 따사로이 어깨동무해야 해요. (4344.8.1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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