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511 : 이건 합리적 의심


이건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하다

→ 아무래도 못미덥다

→ 좀 미덥지 않다

→ 이러면 얄궂다

→ 이렇다면 구리다

《체리새우》(황영미, 문학동네, 2019) 12쪽


어쩐지 미덥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일은 좀 얄궂다고, 뒤가 구린 냄새가 난다고 느끼곤 합니다. 아무래도 아닌 듯하기에 바로 믿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짚으면서 이모저모 살핍니다. 찬찬히 들추고 따지면서 어쩌면 고약하거나 숨겨서 알쏭달쏭한 데를 찾아낼 만합니다. “이건(이것은) + 합리적 의심을 + 할 만하다” 같은 보기글은 일본옮김말씨입니다. “이러면(이 일은) + 못미덥다”쯤으로 단출히 손볼 만합니다. ㅍㄹㄴ


합리적(合理的) :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의심(疑心) : 1.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 의회 2. [역사] 과거(科擧) 문제의 하나 =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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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2.7.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애덤 바일스 엮음/정혜윤 옮김, 열린책들, 2025.2.10.



겨울은 춥다가고 녹고, 풀리다가 얼며, 바람이 불다가도 잔잔한 철이다. 몇날쯤 포근하기에 널뜀날씨(기후이변)이지 않다. 어제오늘 얼음바람이 씽씽 불자니, 둘레에서는 “너무 춥다”고 엄살이지만 막바지 잎샘바람이다. 잎망울과 꽃망울이 곧 터지라고 알려주는, 새봄이 샘솟도록 북돋우는 바람이다. 겨울바람이 이제 떠난다고 알리는 바람이다. 풀벌레와 개구리더러 곧 겨울잠을 깰 때라고 노래하는 바람이다. 늦여름은 가을로 건너가기에 섭섭하지 않다. 늦가을은 겨올로 넘어가기에 아쉽지 않다. 늦겨울은 봄으로 나아가기에 시샘하지 않는다.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 “글을 쓰기까지 스스로 어떻게 무엇을 왜 배웠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꾸러미이다. 책이름만 보아서는 헛짚기 쉽다. 글을 쓸 적에는 누구나 글을 살필 뿐이다. 밥을 할 적에는 밥을 살피고, 뜨개질을 할 적에는 뜨개질을 살핀다. 터럭만큼이라도 딴청을 부리면 다 어긋난다. 글바치가 저마다 어떻게 배웠는지 들려주는 마음을 읽으라고 해야 할 텐데, 실마리(주제)를 담아낼 책이름을 잘못 옮기면, 한글판을 마주할 이웃을 샛길로 엉뚱하게 몰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짝을 만나면 오직 ‘사랑짝’만 생각해야지. 딴 곳에 마음이 가면 되겠나? 아이를 가르치는 길잡이는 아이만 생각할 노릇이고, 나라일을 맡은 일꾼은 사람과 살림을 생각해야 한다.


#TheShakespeareandCompanyBookofInterviews #AdamBiles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대장동 50억 공소기각' 곽상도 측 "검찰에 손해배상청구·고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891620?rc=N&ntype=RANKING


조국 "혁신당 밟으면 선거 도움되나"…與강득구 "무원칙은 공멸"(종합)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891687?rc=N&ntype=RANKING


"우리는 결코 잊지 않는다" 벵가지 테러범 압송부터 유명 앵커 모친 수색까지, FBI 총력전(기자회견 풀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i4NSs7rB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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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6
호시노 나츠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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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2.12.

바보와 사랑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6》

 호시노 나츠미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6.1.15.



  먼먼 옛날부터 ‘고양이사랑이’와 ‘고양이바보’는 늘 있습니다. 이와 나란히 ‘고양이미움이’에 ‘고양이사냥꾼’도 늘 있습니다. 고양이를 곁에 두거나 돌보기에 착하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꺼리거나 싫어하기 때문에 안 착하거나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 마음이 다를 뿐입니다.


  고양이를 사랑한다면, 고양이 두드러기가 있는 이웃도 헤아리게 마련입니다. 또한 고양이 두드러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웃도 헤아릴 노릇입니다. 내가 풀밥을 즐긴대서 너도 풀밥을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고기밥을 즐기니까 너도 고기밥을 즐겨야 하지 않아요. 서로 다른 몸과 마음으로 서로 다르게 어울리는 집과 마을과 나라이면 됩니다. 서로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살피면서, 이 터에서 나란히 살림하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을 노릇입니다.


  이 땅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는 다릅니다.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전라도는 들과 냇물이 드넓다면, 경상도는 메와 숲이 드넓어요. 숲들메가 다른 두 터전이니, 두 터전에서 오래오래 나고자라며 이어온 살림과 말씨가 다르고, 이렇게 다른 만큼 서로 바라보는 눈이나 길이 다를밖에 없습니다. 다르니까 다른 줄 헤아리고 받아들여서 “이곳에서는 이런 길을 푸르게 지어.” 하고 속삭이면 되고, “저곳에서는 저런 길을 푸르게 짓는구나.” 하고 배우면 됩니다.


  한글판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6》을 읽습니다. 첫걸음부터 스물여섯걸음까지 한결같이 ‘고양이사랑’인 아이어른이 나오고, 이 아이어른은 고양이랑 나이를 함께 먹습니다. 그런데 둘레에서는 ‘고양이사랑’인 사람들을 ‘고양이바보’로 여기곤 합니다. 이 그림꽃에 나오는 ‘꽃사내’ 셋은 다른 데에는 그닥 마음이 없이, 저마다 집에서 돌보는 고양이하고 겪은 일을 늘 즐겁게 수다꽃으로 피웁니다. ‘멀쩡한(?)’ 푸른사내 셋이 언제나 상냥하고 곱게 말을 가리면서 ‘고양이돌봄이’로 지내는 삶이란 드물다고 여길 수 있지만, 꼭 드물지 않습니다. 티내거나 드러내지 않을 뿐, 언제나 착하고 참하게 집안일에 앞장서면서 수수하고 조촐히 살림을 지으려는 사내도 무척 많습니다.


  얼뜨고 멍청한 사내도 수두룩합니다. 이와 맞물려 외곬로 치닫는 가시내도 수두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사납거나 모질거나 무시무시한 ‘그들’이 아닌, 우리가 저마다 작고 수수하고 즐겁게 짓는 살림꽃을 바라보면 넉넉합니다. 서로서로 상냥하고 참하면서 곱게 지피는 보금자리를 품으면 느긋해요.


  그림꽃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를 어린이집과 어린배움터뿐 아니라 푸른배움터에서도 곁책(참고도서)으로 삼아서 함께 읽고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토록 작고 수수하게 ‘사랑’과 ‘바보’ 사이를 오가는 착하고 참한 ‘사내’도 꽤 있다는 대목을 오늘날 ‘사내(어린이와 푸름이와 아저씨와 할아버지 모두)’들이 좀 눈여겨보고 들여다보고 바라보고 살펴보고 알아보도록 나긋나긋 북돋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얼뜨거나 어리석거나 모지리로 구는 숱한 사내가 아직 많습니다. 그래도 온나라 마을책집과 작은책집을 헤아리면서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작은사내도 제법 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마흔 살이나 예순 살 나이에도 종이(면허증)를 안 따고서 걸어다니는 조용한 사내도 꽤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작고 수수하면서 참한’, 그러니까 ‘사랑스러우면서 바보스러운’ 어진 이웃을 알아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하루를 살아야지 싶습니다.


  제 열여덟 살 무렵을 곧잘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다른 또래(사내)는 하나같이 종이(운전면허증)를 따려고 서두르고 애썼어요. 저는 그때에나 오늘에나 종이를 딸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종이(면허증·자격증)를 따기 앞서 책부터 느긋이 즐겁게 읽을 노릇이면서, 착하고 조용하게 살림을 짓는 길부터 배울 일”이라고 봅니다. 집안일을 즐겁게 익히고 난 다음에 종이를 따도 안 늦습니다. 집살림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매무새를 들이고 난 다음에 종이를 따야 아름답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서둘러서 종이를 따느라, 우리나라 어느 고장에 가더라도 마구마구 내달리거나 빵빵대는 쇳덩이가 넘치지 않나요? 모든 종이(운전면허증)는 ‘30살∼60살’ 사이에서 꼭 서른 해만 건사하라 하고서, 30살에 이를 때까지는 걸어다니거나 두바퀴(자전거)를 달리고, 예순 살을 넘으면 종이와 쇳덩이를 내려놓은 몸차림으로 뚜벅뚜벅 걸어서 책집마실을 다니라고 북돋우는 나라로 거듭나기를 빕니다.


  나이가 들었기에 종이(면허증)를 빼앗지 말고, 그냥 예순 살부터는 걸어다니거나 두바퀴를 달리거나 여느길(대중교통)을 타라고 하면 됩니다. 걸어야 마을을 보고, 집을 느끼고, 이웃을 알아챕니다. 걸어야 들꽃과 길고양이와 풀벌레와 새가 어우러진 작은숲을 알아챕니다. 걸어야 스스로 사람이라는 숨빛으로 반짝이는 줄 알아갑니다.


ㅍㄹㄴ


여기가 제일 마음이 놓여, 라고 생각하는 코우메였습니다. (10쪽)


“굉장하지 않아. 아기 고양이 때부터 이 집에서 자랐는데 아직 발톱 깎기 힘든 아이도 있어.” (38쪽)


“못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어. 여기서 누군가를 기다렸다가 달려들려고 그러지. 그럼 못써요. 나쁜 짓을 하면 나중에 자기한테 돌아올지도 몰라. 지금도 내가 못 보고 닫아버렸으면 코유키 넌 갇혔을 거야.” (62쪽)


“어머, 웬일이야. 왠지 평소보다 사이가 좋아 보이네?” (74쪽)


“고양이 얘기에 신난 남자애들 신기하다.” “좀 유명한 선배래. 큰소리로 말할 수는 없지만, 고양이바보 3인조라고.” (108쪽)


“혼자 산책할 때는 힘껏 잡아당기면 빠지는 타입으로 바꾸는 게 좋겠어.” “설마 목걸이가 걸릴 줄은 생각 못 했어요. 선배가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아, 그거 내가 아니라 우리집 고양이야.” “네?” “치비가 여기 있다고 알리러 집까지 부르러 왔어. 이 아이 덕분에 빨리 구해줄 수 있었던 거야.” “도와달라고 부르러 갔다고요? 고양이인에 굉장해! 고마워.” (121쪽)



#キジトラ猫の小梅さん #ほしのなつみ #ねこぱんちコミックス


+


《줄무늬 고양이 코우메 26》(호시노 나츠미/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26)


모두의 도움을 받았으니 당분간 착하게 지내자고

→ 모두 도왔으니 한동안 착하게 지내자고

74쪽


고양이러버가 아니라 고양이바보라고 불리는구나

→ 고양이사랑이 아니라 고양이바보라고 하는구나

108쪽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얘길 나누는 것뿐인데

→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얘길할 뿐인데

→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말을 나눌 뿐인데

109쪽


왜 몸 위에 올라가는 거지?

→ 왜 몸에 올라가지?

→ 왜 몸을 타고 오르지?

128쪽


혹시 너무 졸려서 무심코 최단거리로 이동하려고 한 걸까

→ 설마 너무 졸려서 그냥 지름길로 가려고 하나

→ 너무 졸려서 문득 질러가려고 하나

→ 너무 졸려서 그저 빨리가려고 하나

128쪽


여기 있는 고양이들은 다들 스트릿 출신이야

→ 여기 있는 고양이는 다들 길내기야

→ 여기 있는 고양이는 다들 길에서 났어

→ 여기 있는 고양이는 다 길에서 자랐어

141쪽


“코우메, 작아졌네여.” “코유키가 커진 거야.”

→ “코우메, 작네여.” “코유키가 커.”

14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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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네 이야기 11
유키 스에나가 지음, 모에 타카마사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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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2.12.

나는 내 말씨부터


《아카네 이야기 11》

 스에나가 유키 글

 모우에 타카마사 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7.25.



  우리나라 글살림을 엄청나게 갈아엎는 첫길을 연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이 1989년에 태어났습니다. 이 책을 쓴 이오덕 님은 사슬나라(일제강점기)이던 무렵부터 차꼬나라(군사독재정권)이던 내내 어린이 곁에서 어린이를 돌보면서 어린이 스스로 살림짓기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가꾸는 나날을 살아냈습니다. 이러다가 전두환 막바지에 어린배움터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전교조 교사’가 아니었어도 쫓겨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입니다.


  멧골마을 작은배움터에서 더는 어린이를 못 돌보고 못 지키고 못 가르치는 날벼락 탓에 몹시 슬프고 아프셨다는데, 이듬해에 어느 큰배움터(대학교)에서 이오덕 님더러 “이제는 젊은이한테도 글살림을 가르치는 길잡이가 되실 만하지 않나요?” 하고 여쭈며 찾아왔다지요. 어린길잡이(초등교사)만 하던 사람이 어찌 젊은이를 가르치느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받아들이기로 하고서, 이태 동안 스물 안팎 나이인 젊은이를 가르치고서 그만두기로 했답니다. 더 가르칠 수 있지만, “어느 대학교 한 곳을 다니는 젊은이만 이끌기보다는, 온나라 모든 젊은이한테 ‘글길잡이’ 노릇을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또한 “대학교를 다니지 않는 젊은이, 그러니까 푸른배움터만 마친 채 일하는 모든 젊은이”한테도 글길잡이가 있을 노릇이면서, “이미 어른이 된 서른 살과 마흔 살과 쉰 살과 예순 살 모두”한테도 새롭게 글길잡이가 있어야 할 노릇이라고 느꼈다지요.


  우리는 흔히 잘못 짚거나 엉뚱하게 새기곤 합니다. ‘길잡이(교사·지도자)’는 훌륭한 사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길잡이란, 그저 먼저 어느 길을 나아간 사람입니다. 가시밭길이건 꽃길이건 스스럼없이 누구보다 먼저 걸어가면서 느끼고 겪고 배운 바를 고스란히 둘레에 알리고 나누는 사람입니다.


  어린배움터이든 푸른배움터이든 큰배움터이든 매한가지입니다. ‘길잡이’는 훌륭한 어른일 까닭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모든 길잡이는 ‘어린이랑 함께 배우려는 사람’이면 됩니다. 마을길잡이도, 배움길잡이도, 나라길잡이도, 집안길잡이도, 글길잡이도 똑같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세워서 ‘똑같이 따라하’지는 말아야 하고, 어느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할 까닭이 없으며, 어느 우두머리 마음이나 입맛에 들려고 아양을 떨지 않아야겠지요.


  “가르치는 사람”이란 “배울 줄 알며, 기꺼이 배우고, 즐겁게 배운 다음 익혀서 다시금 들려주고 알려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르치는 길을 배우는 사람이 바로 ‘길잡이’입니다.


  “배우는 사람”이란 “가르칠 줄 알며, 신나게 가르치고, 기쁘게 가르치는 동안 가만히 사랑이 피어나서 노래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배우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이 ‘배움이(학생)’입니다.


  두 길과 두 사이와 두 사람과 두 자리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글 바로쓰기》란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야 할 길잡이’일 수 없습니다.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은 ‘멧골자락 작은배움터 길잡이’로 내내 살아오고 일하다가 ‘서울 젊은이를 만나서 배운 바’를 글어른 나름대로 익히고 가다듬어서 풀어놓은 작은씨앗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아카네 이야기》는 퍽 아름답게 줄거리를 여미어 들려주는 그림꽃입니다. 첫걸음부터 열걸음을 지나는 동안 이러한 물줄기가 고스란합니다. ‘아카네’라는 아이는 어린배움터를 다니기 앞서부터 ‘아버지가 펴는 소리마당’을 지켜보면서 따라했고, 어린배움터를 다닐 적에는 ‘나 나름대로 배우는 소리마당’으로 건너갔고, 푸른배움터를 마치며 젊은이로 피어나는 동안에는 ‘나와 너(이웃)를 아우르는 하늘빛(우리)으로 날개돋이하는 소리마당’을 바라봅니다.


  모든 사람이 길잡이로 살아갑니다. 스승 하나만 길잡이일 수 없습니다. 함께 배우는 동무도 길잡이로 만납니다. 또한, 나 스스로 너한테 길잡이요, 나는 스승한테까지 길잡이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길잡이요 스승이고 동무에 이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사람인 줄 알아챈다면, 사람인 스승한테서도 배우고, 엄마아빠한테서도 배우고, 동생과 언니한테서도 배우고, 낯선 이웃한테서도 배웁니다. 게다가 사납거나 모질거나 매몰차거나 차갑거나 고약한 짓을 일삼는 모두한테서도 배워요.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삶과 살림을 착하게 일구는 빛”을 배웁니다. 나쁘거나 얄궂다고 하는 굴레에 빠진 사람한테서는 “삶과 살림을 스스로 망가뜨릴 적에 어떻게 망가지는가 하는 늪”을 배웁니다. 먹을 적에는 먹는 살림을 배우고, 내놓을 적에는 내놓는 살림을 배워요. 이쪽도 살림길이고 저쪽도 살림길이에요. 그래서 이 푸른별에는 ‘밤낮’이 있고, 우리는 낮이 아닌 밤을 먼저 짚고 이야기합니다.


  밤이란, 몸에서 모든 힘을 빼고서 가만히 누이고 곧게 편 뒤에, 오롯이 마음에 담는 빛줄기로 넋을 깨워서 꿈을 그리는 때입니다. 그래서 밤에 별을 마주하고 품습니다. 그렇기에 밤에 돋는 별이 ‘밝다’고 합니다. 밤이란, 밝은 때요, 밝은 빛으로 어둠을 다스려서 모든 어렵고 힘들던 실타래를 푸는 길입니다.


  낮이란, 밤새 되찾은 기운을 바탕으로 새벽(새롭게 트는 빛)을 맞이하고서, 새벽이슬 한 톨을 받아들이는 하루를 살아내는 때입니다. 낮에 뜨는 해는 모든 나(숨결)가 나무처럼 서면서 나비처럼 날갯짓을 하며 일하고 노는 길입니다. 밤새 어둡던 길을 밝히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이기에, 아침은 ‘환하다’고 합니다. 환한 낮이기에 활짝 날개를 펴지요. 활개를 치듯 일하고 놀이합니다.


  《아카네 이야기》를 이루는 이야기는 꼭 《우리글 바로쓰기》를 아우르는 이야기하고 닮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여태 ‘우리글’이 아닌 ‘중국글’에 ‘일본글’에 ‘미국글’로 휩쓸리면서 제넋도 제가락도 제길도 잊다가 잃었다는 줄거리마냥, 높다란 스승만 좇다가는 어떤 소리마당도 ‘나답게’ 펴거나 일굴 수 없다는 줄거리입니다.


  말을 잘 해야 하지 않습니다. 말을 못 해야 하지도 않습니다. 글을 잘 쓰거나 못 써야 하지도 않아요. 오직 “말을 하면” 되고, “글을 쓰면” 됩니다. 마음을 담은 소리인 말이니, 내 마음과 네 마음이 만나서 우리 마음으로 피어나는 길을 읽고 이으면 누구나 이곳에 빛나는 이름으로 있게 마련입니다. ‘잘’울 따지느라 그만 ‘잘못’이 뒤따르지요. 말을 잘 하거나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울면, 어느새 “잘 하는 말”하고 “못 하는 말”을 ‘좋다·나쁘다’로 가르느라 싸웁니다. 싸우니 겨루고 다툽니다. 싸워서 겨루고 다투니 값(순위·등급·계급·질서)을 매깁니다. 값을 매기느라 잘난책(베스트셀러)이 생기고, 잘난책은 자랑책으로 뻗다가 시나브로 자빠지고 말아요.


  말은 그저 할 노릇입니다. 모든 하루를 그저 삶이라는 길로 느끼고 받아들여서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을 노릇입니다. 나무를 이루는 바탕은 뿌리가 아닌 ‘그루’입니다. 나무는 그루가 있기에 하늘을 보며 줄기를 올리고, 땅을 품으며 뿌리를 뻗습니다. 그루에서 고르고 곧게 나아가는 줄기와 뿌리요, 이러한 결을 가지로 이어서, 가지에 잎을 내고 꽃을 피워서 씨앗과 열매를 베풀어요. 사람도 나무와 매한가지인 터라, 사람을 이루는 몸마음이라는 ‘그릇’이 ‘그루’와 나란한 살림길을 여미면 넉넉합니다.


  땅을 호면서 홈을 내는 연장이라서 ‘호미’입니다. 바느질에도 있는 ‘호치다’입니다. 홈이란 하나로 이루는 골이자 길입니다. 하나로 이루는 골이자 길처럼 스스로 배우고 나아가니 ‘홀·혼·홑’입니다. 누구나 홀로 나아가고 혼자 일구며 홑으로 깨어납니다. 하나인 ‘홀·혼·홑’이기에, 나처럼 너도 하나인 ‘홀·혼·홑’을 맞아들여서 ‘나하고 너를 아우르는’ 바람과 바다처럼 ‘우리’를 열어서 웃고 우는 오늘을 이룹니다.


  웃은 하루라면 웃은 삶을 그대로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울어버린 하루라면 울고 만 삶을 낱낱이 말하고 글쓰면 됩니다. 웃기에 기쁘지 않고, 울기에 슬프지 않습니다. 가두기에 갑갑하다가 슬프고, 나누기에 싹트면서 기쁩니다. 모든 말은 마음으로 이루고, 모든 마음은 삶으로 일구고, 모든 삶은 꿈으로 짓고, 모든 꿈은 한밤에 심는 생각씨앗 한 톨로 폅니다. 좋은말과 나쁜말이라는 사슬(감옥)을 가르지 않을 줄 알면, 누구나 말지기에 글지기로 섭니다. 좋은글과 나쁜글이라는 굴레(독재)를 가두지 않을 수 있으면, 누구나 살림말과 살림글을 즐기며 나눕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글을 써야 할는지 망설일 까닭이 없습니다. 다 핑계입니다. 그저 나를 말하고 너를 들으면서 우리를 나누면 파랗게 일렁이는 바람 한 줄기가 찾아듭니다. 그대로 나를 나타내고 고스란히 너를 바라보면 우리를 살리면서 파랗게 넘실대는 바다빛을 빗물 한 방울과 샘물 한 모금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말씨를 사랑합니다. 너는 네 말씨를 사랑하지요. “내 말씨”랑 “네 말씨”는 바로 ‘사투리’입니다. ‘서울말(표준말·교양 있는 언어)’이 아니라, 서로서로 사투리(내 말 + 네 말 + 우리말)를 즐겁게 쓰면 저절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저절로 어깨동무를 하니,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글은 노래요 춤이면서 별빛 한 자락입니다.


ㅍㄹㄴ


“시끄러. 내게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거다. 그것뿐이야.” (22쪽)


“라쿠고를 할라치면 딱 성실해져.” “성실하면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만, 아직 멀었어. 더 할 수 있잖아? 넌 자기 실력의 반도 못 보여주고 있다고.” (59쪽)


“당연히 하는 거지. 에도 사투리 없이 ‘너구리 주사위’를 하라고.” (71쪽)


“물론 속은 상하지. 하지만 울분에 잠겨 있을 수만은 없어. 불행하지도 않았고.” (135쪽)


‘이제 기초만이 아니어도 좋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놀면 되는 거다.’ (182쪽)


#あかね噺

#末永裕樹 #馬上鷹将

《아카네 이야기 11》(스에나가 유키·모우에 타카마사/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5)


관객 4명으로 시작한 이 회가, 4회째에 벌써 만원 사례잖냐

→ 손님 넷으로 연 이 모임이, 넉걸음에 벌써 구름떼잖냐

→ 구경꾼 넷을 연 이 모임이, 넉벌째에 벌써 붐비잖냐

8쪽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베팅한다

→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건다

→ 마음에 드는 녀석한테는 크게 민다

41쪽


제 18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 제 자랑이 될 수 있다고?

→ 제 꽃노래가 될 수 있다고?

54쪽


실패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기예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모 아니면 도, 한판 승부

→ 넘어지면 이제까지 쌓아온 길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돌개바람. 모 아니면 도, 한판겨룸 

→ 쓰러지면 여태까지 쌓아온 재주까지 잃어버릴지 몰라. 큰바람. 모 아니면 도, 한판싸움

68쪽


“알고 계셨군요.” “스승님한테 들었어.”

→ “아셨군요.” “스승님한테서 들었어.”

9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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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함부로 했으면



날씨는 날마다 바뀌지. 똑같은 날인 적이 아예 없듯, 똑같은 날씨인 적은 아예 없어. 따뜻하다가 시리다가 덥다가 춥게 나아가는 다 다른 날이야. 요즈음 사람들은 ‘널뜀날씨(기상이변·기후위기)’ 같은 이름을 섣불리 붙이는구나. 날씨가 늘 바뀌니, “안 바뀐(이변·위기)” 적이 없잖아? 더구나 “뭘 줄이고 안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데, “전기 먹는 플라스틱 제품”부터 다 버리면 될 일이고, 다 버리더라도 흙으로 돌릴 길을 찾아야 하겠지. 무엇보다도 모든 ‘널뜀날씨’는 ‘나라(국가·정부)’를 세워서 ‘서울(대도시)’을 키우면서 불거졌잖니? 그럼 뭘 하고 뭘 바꿔야겠니? ‘나라’부터 없애고 치우면 돼. 나라 사이를 긋고 막으면서 죽어라 싸우지? 금(경계선·국경선)을 지킨다면서 애꿎은 목숨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데, 쌈박질(전쟁·전쟁무기)에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지 들여다봐야 해. 쌈박질은 사람도 죽이지만, 땅을 망가뜨리고, 들숲바다를 모두 더럽혀. 서울(도시)은 어떠할까? 서울사람이 누리는 새길(현대문명)이야말로 이 별을 어지럽히고 더럽히고 무너뜨리고 죽여. 이 두 가지 민낯을 제대로 보면서 갈아엎으려고 해야 ‘참날씨’를 되찾아. 이제 차분히 헤아리렴. 여태 이 별에서 사람들이 ‘나라’를 함부로 세워서 ‘쌈박질’을 함부로 일삼았고 ‘서울’을 함부로 키우고 늘렸어. 이와 같이 멍청하게 함부로 해댄 모든 부스러기를 멈추고 내려놓고 끝내면서, 풀꽃나무를 보금자리에서 품고, 해바람비를 온사람이 누리고, 들숲바다에서 살림길을 지을 때라야, 다 다른 날에 늘 새롭게 찾아드는 날씨를 받아들여서 사랑으로 빛난단다. ‘탄소발자국’을 줄인다면 ‘탄소발자국’만 줄여. ‘태양광·풍력’은 나라·서울·쌈박질을 못 끝내. 네가 숲에 보금자리를 짓고서 푸른숨을 마셔야 다 바꾸어 제자리를 찾는단다. 2026.1.19.달.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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