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부산 2025.12.1.달.



이 나라에서 ‘서울’을 첫째가는 큰고장으로 치고서, ‘부산’을 둘째가는 큰고장으로 치는구나. 두 고장은 알맞게 떨어졌으니, 저마다 고장빛을 밝힐 만해. 그런데 온나라를 가만히 보면, 첫째가는 곳에만 모여야 한다고 여기는 듯해. 둘째가는 곳조차 ‘떨어지는’ 데라고 여기네. 셋째가거나 넷째가는 곳은 어떠하지? 열째가거나 스무째가는 데는 보이려나? 100째라든지 200째가는 데라면 아주 후지려나? 사람을 이룬 몸은 곳마다 다르게 구실을 해. 팔이 높거나 다리가 높지 않아. 머리카락이 높거나 귀가 높지 않아. 이가 높거나 허파가 높지 않지. 모든 곳은 저마다 몫을 하기에, 알뜰살뜰 어울리는 한몸이요 한빛이고 한사랑이란다. 집을 떠올릴 수 있을까? 어느 집이든 누구 하나만 기둥이지 않단다. 한집에서는 모든 다른 사람이 저마다 기둥이야. 더구나 기둥이면서 바탕이고 지붕이요, 곱게 구실을 해. 마을이라면 모든 집이 어울려서 넉넉할 노릇이야. 어느 집은 가난해도 되지 않아. 어느 집만 돈을 거머쥐면 되지 않단다. 나라에서는 어떨까? 모든 고장이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터전일 노릇이야. 첫째가 따로 없이, 둘째나 다섯째로 줄을 세우지 않으면서, 모든 다른 구실·몫·빛·노릇을 나눌 적에, 서로 즐거우면서 넉넉해. 왜 대학교는 서울에 그토록 많아야 할까? 왜 일터와 일자리는 서울에 몰려야 할까? 둘째간다는 부산조차 ‘서울그늘’에 잡아먹히는 나라를 그대로 둔다면, 부산사람 스스로 ‘둘째‘라는 셈값을 안 내려놓는다면, 작은숲과 작은들과 작은바다로 반짝이는 길을 안 바라본다면, 다들 나란히 죽어간단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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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목사님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0
로알드 달 지음, 쿠엔틴 블레이크 그림, 장미란 옮김 / 열린어린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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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12.12.

맑은책시렁 342


《거꾸로 목사님》

 로알드 달 글

 퀜틴 블레이크 그림

 장미란 옮김

 열린어린이

 2009.8.20.



  오늘부터 우리가 살필 곳이라면, 우리 눈빛일 노릇이라고 느껴요. 언제 어디에서나 속낯을 보고 속빛을 헤아리고 속꽃을 느낄 줄 아는 눈빛으로 가다듬도록 하루하루 살아낼 일이지 싶습니다. 어릴적부터 속눈을 틔우려고 한다면 한결같이 아름눈길일 테고, 아직 손눈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아직 눈감은 마음이지 싶습니다.


  봄나물을 손수 훑으면서 봄나물하고 두런두런 마음을 나누는 눈빛으로 가다듬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을 마주하는 사이로 지낼 만하다고 느껴요. 손수 흙을 만지고, 맨발로 흙을 디디고, 맨몸으로 나무 곁에 설 때라야, 비로소 속눈빛을 밝힐 테지요. 꽃이름이나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을 몰라도 됩니다. 풀책(식물도감)을 안 외워도 됩니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풀꽃나무 이름을 지으면 되어요. 스스로 풀꽃나무랑 사귀면서 찬찬히 알아가면 넉넉합니다.


  바람이 천천히 바뀌는 철입니다. 두바퀴(자전거)로 들길을 달리면, 낮바람과 밤바람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갗으로 먼저 느낍니다. 덜 바뀌었는지 확 바뀌었는지, 이제 바뀌는 길목인지, 어느덧 새길로 들어서는지 알아차릴 만해요. 언제나 흐르는 새바람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가만히 일렁이는 봄바람처럼, 봄빛으로 물드는 하루이면 넉넉히 살아가는 셈일 테지요. 겨울에는 겨울대로 살고, 여름에는 여름대로 살기에, 이 하루가 차곡차곡 모여서 우리 이야기로 흐릅니다. 어느새 한 해 두 해 가만히 이으면서 삶도 새롭게 일굴 테고요.


  《거꾸로 목사님》은 ‘남처럼 못하는’ 몸짓과 모습인 어린날을 힘겹게 보내고서 믿음길잡이 노릇을 맡는 어른 한 사람이 스스로 어떻게 용쓰듯 하루를 맞이하는지 부드럽게 들려줍니다. 숱한 사람한테는 아무렇지 않은 ‘말 몇 마디’일 테지만, 바로 말 몇 마디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는 말소리를 ‘남처럼’ 내기가 어렵고, 누구는 발걸음을 ‘남처럼’ 척척 내딛기가 어렵고, 누구는 손놀림을 ‘남처럼’ 하기 어려울 만합니다.


  누구나 다른 삶이요 사람이라면, 몸도 마음도 누구나 다르게 마련입니다. ‘남처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처럼·나대로·나로서’ 하면 넉넉합니다. 서로서로 ‘나’하고 ‘너’로 마주하는 길이기에 어울릴 수 있습니다. 쭈뼛쭈뼛 수줍고 얼굴을 붉히는 아이어른을 느긋이 기다리고 지켜볼 줄 아는 마음을 그립니다.


ㅍㄹㄴ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날 모인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모임을 나서야 했어요. 하지만 목사님이 워낙 착하고 다정해서 누구도 깊이 미워하진 못했어요. 아무리 봐도 목사님이 일부러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물론 뭔가 잘못되기는 했어요. (21쪽)


물론 어색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목사님이 설교단을 뒷걸음질로 돌면서 설교하는 모습에 금방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따분하기 짝이 없는 설교 시간이 재미있어졌죠. 결국 로버트 리 목사님은 뒤로 걷는 데 아주 익숙해져서 아예 뒷걸음질로만 다녔어요. 그리고 평생 동안 니블스윅의 괴짜 목사님이자 든든한 기둥으로 사랑받으며 살았답니다. (28쪽)


#TheVicarofNibbleswicke (1991년)

#RoaldDahl #QuentinBlake


+


《거꾸로 목사님》(로알드 달/장미란 옮김, 열린어린이, 2009)


어렸을 때 심한 난독증을 앓았어요

→ 어릴적에 몹시 글멀미였어요

→ 어려서 매우 멍했어요

5쪽


과연 교구를 잘 운영할 수 있을까요

→ 참으로 마을을 잘 꾸릴 수 있을까요

→ 그래 고을을 잘 꾸릴 수 있을까요

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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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메이드 8
오토타치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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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12.12.

책으로 삶읽기 1076


《소년메이드 8》

 오토 타치바나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6.5.15.



《소년메이드 8》(오토 타치바나/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6)을 읽었다. 집안일과 집살림을 잘하는 어린돌이가 새길을 스스럼없이 즐겁게 풀어나가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집일꾼’ 차림을 한 겉그림이 뭘까 싶어 열 해 즈음 안 쳐다보다가 뒤늦게 읽는다. ‘외삼촌(어머니 동생)’하고 살아가며 보금자리에 포근히 어울리는 빛을 어떻게 풀고 맺는지 짚을 뿐이구나. 어린이부터 함께 읽을 그림꽃으로 꼽을 만하다고 느낀다. 얼핏 ‘만화 같은 얘기’ 아니냐고 여길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집안일과 집살림을 알뜰히 건사하는 어린돌이가 있고, 푸른돌이가 있으며, 어른이 있다. 이 나라가 ‘집살림돌이’를 눈여겨보지 않을 뿐이요, 오붓하며 아늑하게 피어나는 보금자리라면 으레 ‘살림하는 아버지’가 있다. 살림길을 말하고, 살림손을 나누고, 살림눈을 틔우면 된다.


ㅍㄹㄴ


“평소엔 건조기를 쓰지만, 역시 햇볕에 말리는 게 제일 개운하지.” (43쪽)


“어머, 마도카. 너야말로 이런 데가 다 만나고 별일이구나?” “별 새삼. 치히로가 한참 찾았어요. 왔으면 왔다고 응원석에 가서 말하지 그래요?” (95쪽)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엄마랑 자.” “뭐?” “아니야? 하도 놀려대길래 난 또 샘이 나서 그러는 줄 알았지?” “아, 아냐! 그러는 넌 어떤데?” “나? 나야 늘 여동생을 위한 자리를 남겨둬야 하니까.” (112, 113쪽)


#少年メイド #乙橘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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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2.11. 다행 변명 고통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여태껏 어느 하루도 ‘괴롭던’ 적이 없다고 돌아봅니다. 남이 괴롭힌다고 해서 제가 괴로울 까닭이 없고, 누가 짓밟거나 두들겨패거나 억누른들 제가 버겁거나 힘들 일이 없습니다. 어릴적에 문득 스스로 배운 바가 있는데, ‘몸벗기(유체이탈)’가 있어요. 배움터에 들지 않던 일곱 살까지는 마을에서 누구나 허물없이 어울리면서 뛰어놀던 무렵인데, 배움터에 들기 무섭게 주먹과 몽둥이와 발길질과 따귀가 춤추더군요.


  이제는 예전처럼 배움터에서 아이를 윽박지르고 때리고 밟는 멍청짓은 없을 듯하되, 모든 곳에서 다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주먹질은 안 해도 돈질이나 이름질로 들볶기도 하고, 뒷구멍에서 손가락질로 킬킬거리는 무리도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때에 몸벗기를 하면 아무렇지 않아요. 로알드 달 님이 쓴 《마틸다》에서는 눈짓으로 바꾸는 길을 들려주는데, 저는 누가 저를 때릴 적마다 속으로 ‘딸깍!’ 하고 누름쇠를 건드리면서 “이 몸은 내가 아니야. 나는 몸을 입은 넋이야.” 하고 혼잣말을 되뇌면서 하얀빛이 몸밖으로 붕 나옵니다. 하늘에서 날며 밑을 바라보지요. 넋이 입은 옷인 몸뚱이한테 드잡이를 하는 무리를 물끄러미 봅니다. 그들은 ‘몸에서 나온 하얀빛’을 못 보기에 제 몸뚱이만 갖고놉니다.


  일본스럽다고 해야 할 한자말 ‘다행·변명·고통’이 있습니다. 이럭저럭 손질해 놓기는 했되, 크게 손봐야겠다고만 여기고서 미루고 미룬 끝에 어제오늘 새삼스레 확 가다듬습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를 섞어써야 “다룰 수 있는 말이 더 많다”고 잘못 여기는 분이 참 많아요. 우리는 “우리말을 하면서 이웃말을 익히면 넉넉”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어서 널리 쓸 만한 한자말은 하나조차 없습니다. 중국한자말은 중국말이고, 일본한자말은 일본말이거든요. ‘한국한자말’은 우리말이 아닌 ‘꼰대말(남성가부장권력 지식인 전문용어)’입니다. 굳이 꼰대말을 붙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살림말을 쓰면 되어요.


  아플 수 있고 가슴아플 수 있습니다. 앓을 수 있고 마음앓이를 할 수 있습니다. 멍들 수 있고 멍울이 맺힐 수 있습니다. 눈물 한 방울은 눈물꽃과 눈물바람과 눈물비와 눈물빛과 눈물구름과 눈물앓이로 번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 스스로 즐겁게 펴기에 “다룰 수 있는 말이 가없이 넘실거립”니다. 이러면서 영어하고 한자말을 ‘이웃말(외국말)’로 똑똑히 느껴야, 둘 사이를 제대로 헤아리고 짚으면서 우리말과 바깥말을 알맞게 다루게 마련입니다.


  날이 갈수록 어린이도 푸름이도 그냥그냥 어른이라 하는 분도 ‘말밭’이 그야말로 허거픕니다. 언제나 ‘나’부터 제대로 보아야 ‘너’를 알아보면서 ‘우리’를 아우르는 아름드리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으로 나아가는데, ‘나’라고 하는 ‘우리말’부터 팽개치거나 제대로 느긋이 익힐 틈이 없는 이 나라예요. 지난날 어린이는 열세 살까지 우리말만 익혔습니다. 이러고서 열네 살부터 영어하고 한자를 바깥말로 따로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 낱말과 말소리와 말결과 말뜻과 말씨를 찬찬히 몸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나날을 실컷 누려야, 이다음에 ‘온누리 여러 이웃’하고 사귀고 어울리고 만나면서, 이 푸른별에서 크고 넉넉히 아름숲인 나무빛으로 아우르는 말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사람들이 안 깨어나기를 바라기에 고작 서너 살 어린이한테 영어랑 한자말을 마구 욱여넣는 이 나라입니다. 삶자리에서 살림빛으로 나눌 우리말을 느긋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굳이 서울에 목을 매달지 않아요. 억지로 외워야 하는 영어하고 한자말을 ‘열세 살’도 안 되었는데 머리가 지끈지끈하도록 시달려야 하는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는 글읽눈(문해력)이 사라지고 맙니다.


  꾸밈머리(AI)를 키우는 길에 돈을 허벌나게 쏟아붓는 나라 얼개예요. 꾸밈머리를 내세우면서 ‘내 머리’도 ‘네 머리’도 그냥그냥 ‘돌머리’로 길들이고 죽이려는 속내라고 느낍니다. 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면 꾸밈머리를 끊을 노릇입니다. 이곳에서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을 펴는 새길을 이루고 싶다면 ‘나너우리’라는 결을 읽는 가장 수수하고 쉬운 우리말부터 다시 배울 일입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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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쑥부쟁이 2025.11.30.해.



‘책’이란 스스로 차오르는 빛인 ‘참’을 담기에 차분하고 찬찬히 퍼지는 착한 사랑으로 지은 이야기를 풀어낸 꾸러미란다. 다만, 이제는 ‘책’이라 하기 창피한 종이뭉치가 넘치더라. 너는 ‘참’을 마주하려는 마음으로 책을 쓰거나 읽니? 그냥그냥 하루를 죽치듯 재미를 좇는 재주로 자랑하는 껍데기나 허울을 손에 쥐니? 네가 참을 등지고서 거짓을 부둥켜안더라도, 해는 뜨고 지고 별이 돋고 가는구나. 네가 속을 채우는 착한 이야기를 멀리하더라도, 겨울에 찬바람 맞으면서 쑥부쟁이가 돋아나서 웃네. 모름지기 모든 나무와 풀과 꽃은 ‘살림빛’이야. 이른바 ‘나물’이지. 나물을 한두 포기나 뿌리를 머금어도 넉넉해. 몇 그릇씩 비워야 살림빛이지 않아. 더구나 “입으로 먹지 않”더라도, 손으로 쓰다듬고 눈으로 그윽히 바라보더라도, 모든 풀꽃나무는 네 숨을 살리고 북돋운단다. 이 얼거리를 눈치챈 임금(권력자)은 서울(도시)을 세우려고 들숲메를 깎고 밀고 죽인단다. 보렴! 모든 임금집(궁궐)에는 나무도 풀도 없어. 싹 밀어낸 돌밭에 ‘구경꽃·구경나무’를 조금 심는 시늉인데, 끝없이 가지치기를 하면서 괴롭혀. 사람들 스스로 풀빛과 나무빛과 꽃빛을 못 머금고 못 보면서 굴레에 가두려고 한단다. 너는 쑥부쟁이를 나물이나 살림풀(약초)로 삼을 수 있어. 너는 틈틈이 또는 늘 쑥부쟁이를 바라보고 쓰다듬고 따스히 말을 걸면서 꽃빛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어. 벼를 베어낸 들에 남은 꽁당이를 쓰다듬으면서도 풀빛을 맞아들이고, 시든풀도 너를 살릴 수 있단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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