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버쓰데이 백희나 그림책
백희나 지음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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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9.8.

그림책시렁 1627


《해피버쓰데이》

 백희나

 Storybowl

 2024.12.1



  남이 베풀어 주어야 짐을 풀 수 있을까요? 남한테 기대려고 해야 응어리를 걷어낼까요? 이웃·살붙이·동무·한집안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습니다만, ‘서울’이 아닌 ‘시골’과 ‘들숲메바다’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풀꽃나무와 해바람비와 뭇숨결이 모두 이바지하고 돕는 손끝을 누립니다. 서울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잿더미(아파트)에서 뛰쳐나온다면 골목꽃과 길나무와 구름과 빗방울과 해와 별이 반깁니다.


 《해피버쓰데이》를 들여다봅니다. 굳이 왜 영어를 그림책에 써야 하는지부터 아리송합니다. 어른끼리만 읽더라도 우리말을 쓸 노릇일 텐데요. 더구나 이 그림책에 ‘말시늉’으로 나오는 아이는 ‘그냥사람’입니다. 사람을 그리면 될 텐데, ‘보는꽃(캐릭터)’을 애써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그만 ‘들말이 사는 길’도 ‘사람이 사랑하는 하루’도 아닌, 어정쩡한 ‘서울살이’에 갇히는 얼거리입니다. 이제 시골에는 거의 안 살고 죄다 서울에 빽빽하게 모이는 굴레살이라 할 만하니, 그림책도 얼마든지 서울을 다룰 만합니다. 그런데 느긋이 넉넉히 틈을 두면서 보금자리를 이루고서, 마당과 밭과 들숲메바다를 품은 지난날을 우리 스스로 팽개치면서 “난 왜 살지? 난 어떡하지? 집밖에 나가면 무서운데?” 하는 마음에 사로잡힌다고 여길 만합니다. 부디 아이(서울아이·시골아이 모두)를 “도와줘야 하는 아픈 아이”로 여기지 않기를 빕니다. ‘난날(생일)’이란 ‘나온날 + 낳은날’이면서 ‘태어난날 + 깨어난날’입니다. 밤에 잠들고서 아침에 눈뜰 적에 “잠을 깬다”고 하고, ‘깨어난다’고 말해요. 우리는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삶입니다. 모든 하루가 ‘난날’이면서 ‘빛날’인 줄 안다면, 커다란 옷칸에서 날마다 바뀌는 옷차림으로 겉모습을 꾸미기만 해본들, 오히려 더 굴레에 갇히고 가두면서 마음에 꽃을 못 피웁니다. 그저 흉내나 시늉이나 척일 테니까요. ‘이쁜옷’이 아니라 ‘내가 나로 일어서는 즐거운 마음’을 바라보는 줄거리를 짜서 펼칠 적에 그림책이요 글책이며 어린이책이고 어른문학입니다. ‘겉치레 보임꽃(외양을 치장하는 캐릭터)’는 이제 다 떨쳐내고 내려놓기를 빕니다.


ㅍㄹㄴ


+


《해피버쓰데이》(백희나, Storybowl, 2024)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져서 집에만 머물렀습니다

→ 자꾸 마음이 무거워 집에만 머뭅니다

→ 마음이 무겁기만 해 집에만 있습니다

→ 마음이 늘 무거워 집에만 있습니다

2


어제 곧 너의 생일이잖니

→ 이제 곧 네 잔칫날이잖니

→ 이제 네가 태어난 날이야

4


조심조심 포장을 풀었습니다

→ 살몃살몃 종이를 풉니다

→ 살살 껍데기를 풉니다

8


포장 안에는 커다란 옷장이 있었습니다

→ 꾸러미에 커다란 옷칸이 있습니다

8


하루빨리 나아졌으면 좋겠구나

→ 하루빨리 낫기를 바라

1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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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기각 棄却


 기각 이유를 조목조목 명백히 밝혔다 → 내친 뜻을 낱낱이 뚜렷이 밝혔다

 기각됐다는 사실을 → 물리친 줄을 / 손사래친 줄을

 자료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 밑동이 모자라 물렸다


  ‘기각(棄却)’은 “1. 물품을 내버림 2. [법률] 소송을 수리한 법원이, 소나 상소가 형식적인 요건은 갖추었으나, 그 내용이 실체적으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소송을 종료하는 일”을 가리킨다지요. ‘물리다·치우다’나 ‘치다·쳐내다·자르다·잘리다·끊다’로 손봅니다. ‘버리다·내버리다·내치다·물리치다’로 손볼 만하고요. ‘고개젓다·손사래·도리도리·절레절레·살래살래’로 손볼 만합니다. ‘끝내다·마치다’로 손볼 수 있어요.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기각’을 일곱 가지 더 싣지만 모두 털어냅니다. ㅍㄹㄴ



기각(忌刻) : 남의 재주를 시기하여 모질게 굶 ≒ 시기각박

기각(枳殼) : [한의] 탱자를 썰어 말린 약재. 위장을 맑게 하고 대장을 순하게 한다

기각(?角) : 1. 사슴을 잡을 때 사슴의 뒷발을 잡고 뿔을 잡는다는 뜻으로, 앞뒤에서 적을 몰아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기각지세 2. 두 영웅이 대치하여 세력을 다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각(旗脚) : 깃대의 반대쪽에 있는 기폭의 귀에 붙인 긴 오리 = 깃발

기각(綺閣) : 비단같이 아름다운 누각

기각(?角) : 하나는 위로 솟고 하나는 아래로 처진 뿔

기각(?脚) : [동물] 고래나 물개류 따위에서 볼 수 있는 지느러미 모양으로 된 다리. 평편하여 헤엄치기에 알맞게 되어 있다 = 지느러미발



장시간에 걸친 시민대책위 마라톤 회의 결과 조정안의 수용은 기각되었습니다

→ 길게 나눈 들꽃모임 끝에 맞춤길은 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들빛모임은 오래 이야기한 끝에 안 맞추기로 했습니다

→ 오랫동안 띠앗에서 얘기한 끝에 우리는 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길디긴 들꽃두레 이야기 끝에 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기나긴 두레 이야기 끝에 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초록의 공명》(지율, 삼인, 2005) 54쪽


넌 정보량이 너무 부족하다고 기각시켰지만

→ 넌 이야기가 너무 적다고 물렸지만

→ 넌 밑동이 너무 모자라다고 치웠지만

《다녀왔어 노래 5》(후지모토 유키/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13) 11쪽


제 요리는 키스우드 씨에게 기각을 당했으니

→ 제 밥은 키스우드 씨한테 잘렸으니

→ 제 밥차림은 키스우드 씨가 쳐냈으니

《티어문 제국 이야기 4》(오치츠키 노조우·모리노 미즈/반기모 옮김, AK comics, 2022) 5쪽


일단 전부 기각으로 하죠

→ 뭐 모두 버리기로 하죠

→ 먼저 다 내치기로 하죠

《이거 그리고 죽어 6》(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5)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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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계조 階調


 계조의 변화를 활용하여 → 바뀌는 결을 살려

 계조를 조정하면 → 짙옅빛을 맞추려면


  ‘계조(階調)’는 “[매체] 그림, 사진, 인쇄물 따위에서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해 가는 농도의 단계 ≒ 그러데이션”처럼 풀이하는데, 영어 ‘그러데이션’을 일본에서 옮긴 한자말씨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로서는 ‘바림·바림하다·바림질’이나 ‘짙옅·짙옅게·짙옅다·짙옅빛’로 옮길 만합니다. ‘짙다·짙기’나 ‘결·눈금·빛’으로 옮겨도 됩니다. ㅍㄹㄴ



색연필을 가지고 위에 계조를 더해 보는 것도

→ 빛붓으로 바림해 보아도

→ 빛깔붓으로 짙옅게 더해도

《이거 그리고 죽어 6》(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5)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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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그러데이션gradation



그러데이션(gradation) : 1. [미술] 색깔을 칠할 때 한쪽을 짙게 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차츰 엷게 나타나도록 하는 일 = 바림 2. [매체] 그림, 사진, 인쇄물 따위에서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변화해 가는 농도의 단계 = 계조

gradation : 1. 단계적 차이[변화] 2. (저울 등의) 눈금

グラデ-ション(gradation) : 1. 그러데이션 2. 화면 등의 농담도(濃淡度). (색조의) 바림 3. 등급. 단계. 변화



우리 낱말책에 영어 ‘그러데이션’을 싣는데, 굳이 실을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말로 ‘바림·바림하다·바림질’을 쓰면 됩니다. 쓰임새를 헤아려 ‘짙옅·짙옅게·짙옅다·짙옅빛’이나 ‘짙다·짙기’로 풀어낼 만합니다. 때로는 ‘결·눈금·빛’으로 담아내어도 어울려요. ㅍㄹㄴ



일곱 색깔을 그러데이션으로 그려 봤어

→ 일곱 빛깔을 바림해 봤어

→ 일곱 빛깔을 짙옅빛으로 그려 봤어

《이거 그리고 죽어 6》(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5)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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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9.7.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글, 푸른숲, 2021.6.11.



밤새 풀벌레노래를 듣고, 아침낮저녁에도 듣는다. 고흥 보금숲에서뿐 아니라 부산 한복판에서 하루를 보내며 풀노래에 잠길 수 있을 줄 몰랐다. 아침에 ‘살림짓기’ 모임을 꾸리면서 ‘병원과 낫’을 놓고서 이야기를 푼다. 낮에는 ‘우리말이 태어난 뿌리 ㅊ’ 모임을 일구면서 ‘참·짬·춤·틈·뜸·들’이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가고서 ‘어깨동무(평화·평등)’를 이루려는 길이라면 이제부터 ‘아저씨 살림글 쓰기’를 늘려야 할 텐데, 입다물고서 모임에 안 나오며 안 배우려는 아저씨를 어떻게 일으킬 만한지 수다꽃을 피운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를 읽었다. 첫머리는 뜻깊게 여는가 싶으나 이내 샛길로 빠지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허겁지겁 끝났다. 글쓴이가 이따금 글을 띄우는 ‘브런치’에 적는 글이 있다기에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그런데 ‘산만언니’ 씨는 이녁이 내놓은 책을 읽은 사람이 ‘아쉽다·안타깝다·모자라다’고 짚은 대목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 이 책에는 ‘삼풍 생존자’ 이야기가 아니라 ‘가정폭력 생채기’를 품고서 갓 스무 살이 된 아가씨가 얼마나 스스로 함부로 구르면서 그저 달아나려고만 했는가 하는 불길만 피어났다. 불타오르는 ‘미운 아빠’를 나무라는 일은 옳다. 그런데 미움씨는 늘 미움씨로 이을밖에 없다. 


미움에 불타오르다 보니, 둘레에서 이녁한테 들려주는 말이 하나도 안 들리지 싶다. 어깨동무를 하려는 뜻이라면 ‘세월호’뿐 아니라 ‘무안공항’하고도 어깨를 겯어야 하지 않을까? 해마다 농약과 자동차 탓에 목숨을 잃는 새가 얼마나 많은지 알까? “나만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 하고 외칠 적에는 오히려 “글을 쓸수록 불씨를 못 풀고 안 품으면서 더 타오르게 마련”이다. 부디 ‘불바다’가 아니라 ‘풀밭’으로 푸근히 잠기면서 풀꽃 한 송이 곁에 쪼그려앉아서 풀줄기가 들려주는 푸른노래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스스로 ‘언니’라 일컫기보다, 더구나 ‘산만’이라고 씌우기보다, ‘작고 조용한 나’를 알아보고 바라보고 마주해 보기를 빌 뿐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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