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퀴어 어른이책) 퀴어 어른이책
브라네 모제티치 지음,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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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9.9.

그림책시렁 1621


《첫사랑》

 브라네 모제티치 글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박지니 옮김

 움직씨

 2018.6.15.



  둘레에서 흔히 쓰는 ‘첫사랑’이라는 낱말은 거의 잘못 쓴다고 느낍니다. 처음으로 싹트는 사랑보다는 처음 마주하는 자리에서 반하며 밝게 마음을 틔우는 길이라면 ‘첫눈’이라고 해야 어울립니다. 《첫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그림책에는 따로 “퀴어 어른이책”이라고 덧달립니다. 글쓴이와 그린이가 “퀴어 어른이책”이기를 바랐을는지 모릅니다만, 굳이 ‘짝맺기’로 몰아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껴요. 두 아이가 첫눈에 반하면서 함께 놀고 어울리고 얘기하고 하루를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거든요. “처음으로 눈뜨는 마음”을 굳이 짝맺기로 못박지 않기를 빕니다. 아이도 어른도 누구하고나 첫눈을 틔울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서 삶을 밝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무요 이웃이면서 ‘님’입니다. 즐겁게 어울리면서 기쁘게 하루를 누리는 사이를 알아보기에 ‘눈뜨다’라 합니다. 눈을 뜬 뒤에는 스스로 일어서야지요. 바람을 일으키고 물결을 칠 노릇입니다. 남이 나를 바꾸지 않아요. 남이 이 딱딱한 담벼락을 걷어치워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보금자리를 따스하게 돌보고 포근하게 품는 나날을 차분히 가꾸면서 모두 바꿉니다. 아이도 어른도 먼저 “싹틔울 씨앗을 따뜻하게 손에 얹어서 마음으로 품는 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요. 씨앗 한 톨부터 심고 돌아보기에 숲을 천천히 이룹니다.


#BraneMozetic #MajaKastelic #PrvaLjubezen


ㅍㄹㄴ


《첫사랑》(브라네 모제티치·마야 카스텔리츠/박지니 옮김, 움직씨. 2018)


할머니 댁을 떠나 엄마랑 도시로 가게 됐어

→ 할머니집을 떠나 엄마랑 서울로 가야 했어

→ 할머니집을 떠나 엄마랑 서울로 갔어

2쪽


뒤뜰의 토끼랑 닭들에게, 같이 놀았던 이웃집 아이들에게 “안녕.” 하고 작별 인사를 했어

→ 뒤뜰 토끼랑 닭한테, 같이 놀던 이웃집 아이한테 “잘 있어.” 하고 헤어졌어

3쪽


딱 하나 좋았던 건 내 방이 생겼다는 것뿐

→ 딱 하나 내 칸이 생겨서 반가울 뿐

→ 딱 하나 내 자리가 생겨서 기쁠 뿐

5쪽


싫어지면 집으로 냅다 도망칠 수 있었지

→ 싫으면 집으로 냅다 달아날 수 있지

6쪽


둘만을 위한 공연을 하기로 한 거야

→ 둘이서 잔치를 열기로 했어

→ 둘이서만 자리를 펴기로 했어

25쪽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알 수 있었지

→ 뭐가 잘못된 줄 알 수 있었지

3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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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가난한 책읽기 . 있을 때



  있을 때에 잘하라고들 하는데, 있을 때에는 늘 그저 스스로 살아낸다고 느낀다. ‘잘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엇나가거나 틀리거나 잘못하기 일쑤라고 느낀다. 봄에 봄을 잘 느껴야 하지는 않아. 올해 맞는 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오늘 이 하루를 노래하면 넉넉하다. 누가 얘기하기에 한 마디도 안 놓치려고 애쓸 까닭이 없다. 다 놓치거나 흘려도 된다. 함께 있는 마음을 느끼면서 기쁘게 어울리기에 느긋하다.


  “있을 때 잘해.” 같은 말은 으레 짐이고 버겁고 떨리고 고단하다. “있으니까 기쁘고 반갑고 고마워.” 같은 마음이면 된다고 본다. ‘잘하려’고 하지 말자. 잘 읽거나 잘 쓰거나 잘 듣거나 잘 먹거나 잘 쉬거나 잘 자거나 잘 놀거나 잘 사거나 잘 말하거나 잘 글쓰거나 잘 일하거나 잘 살림하거나 잘 걷거나 잘 달리거나 잘 보거나 잘 보거나 잘 익히려고 힘쓰지 말자. “너랑 함께 있는 나”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바람 한 줄기를 마시고 내쉬면 된다.


  거의 마흔 살이 되어서야 “사랑해.”라는 말소리를 나즈막이 혀에 얹을 수 있었다. 얼추 마흔 해를 수줍고 쑥스러운 마음으로 살았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사랑해.”라는 말소리를 구슬이 구르듯 노래하더라. 놀랍고 대단하고 조금씩 기운을 내보았다.


  풀한테 먼저 “사랑해.” 하고 속삭인다. 나무한테 넌지시 “사랑해.” 하고 읊는다. 돌과 모래와 흙한테, 바람과 비와 해한테, 별과 밤과 새한테, 개구리와 뱀과 두꺼비한테, 노린재와 나비와 모기한테, 싱싱칸과 두바퀴와 비누한테, 그릇과 수저와 고무신한테, 옷과 집과 쌀한테, 나와 너와 우리한테 가만히 “사랑해.” 하고 들려준다.


  하루 한 마디씩 천천히 이야기한다. 오늘부터 새로 말을 한다. 말로 내놓기 창피하면 글로 적는다. 글로 온벌(100)쯤 적고서 말로 한벌(1) 이른다. 이르는 소리가 차츰 익숙하면 이제 이름으로 피어난다.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닌 줄 똑똑히 아니까 걱정스럽지 않다. 나는 말더듬이라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종 더듬거나 많이 더듬을 수 있다. 때로는 한 마디조차 안 더듬고서 한나절을 말했다면, 잠자리에 눕는 밤에 빙그레 웃는다. “와. 내가 오늘은 솔솔 부는 바람처럼 말을 했어.”라든지 “이야. 내가 오늘은 여름비마냥 시원시원 말을 했네.” 하고 스스로 북돋운다.


  더듬고 꼬이고 버벅인 날은 어느 말씨를 더듬고 꼬고 버벅였는지 되새기며 끝없이 혼잣말을 하며 두바퀴를 달리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일을 한다.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길 하나만 바라본다. 오로지 이 하나이다. 미끄러지든 넘어지든 부딪히든 히히 하하 호호 웃다 보면, 꽃이 자고 별이 돋고 밤새가 울고 풀벌레가 다독인다. 2025.9.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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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9. 가을



  어릴적부터 “너나 잘해!” 같은 말을 곧잘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동무나 언니나 어른한테 조그마한 귀띔이나 도움말을 들려주려는 뜻이었지만, 몸도 자그맣고 힘없이 고삭부리로 지내는 꼬마가 들려주는 말은 썩 안 반가울 만했구나 싶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분들이 먼저 저한테 귀띔이나 도움말을 바라지 않았는데 먼저 불쑥 알려주니까 싫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여쭙기에 찬찬히 짚어서 알려줄 적에도 거북한 낯빛인 분이 제법 있습니다. 이런 나날을 누리면서 조용히 헤아립니다. 아무래도 제 말씨가 그리 상냥하지 않구나 싶으면서, 누구누구를 돕거나 이끌 수 없는 노릇이겠네 싶어요.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스로 부딪히고 스스로 깨달으면서 스스로 어깨를 활짝 펼 뿐이네 싶습니다. “너나 잘하셔!”나 “너나 똑바로 해!” 하고 쏘아붙이던 분들은 그분들 말씨야말로 쏘아붙이는 화살인 줄 모르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새삼스레 생각해요. 저는 이 가을을 새로우며 싱그이 맞이하고 싶다고, “네, 저는 저부터 잘할게요. 가을이에요!” 하고 속삭이면서 제가 걸어갈 길을 바라보려 합니다. 한여름에는 한여름대로 불볕을 마음껏 누렸어요. 한가을에는 한가을대로 열매를 실컷 누리면 되겠지요? 한겨울에는 한겨울대로 함박눈을 푸짐히 누리고, 한봄에는 한봄대로 새잎잔치를 골고루 누리려 합니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기에 맨몸으로 이 비를 맞으면서 시원히 걷습니다. 가을밤에 가을별이 초롱초롱 뜨기에 온몸으로 별빛을 머금습니다.



가을


우리 집 초피잎은

가을이면 샛노랗지

후박잎 동박잎은

갈겨울 모두 짙푸르고


푸른 모과알 유자알

차츰 노르스름 바뀌면

풀노래 조용조용 사위고

바람소리 조금씩 깊어가


쑥꽃 조롱조롱

억새씨앗 하늘하늘

이제 들숲은 누릇누릇

곧 별밤빛은 반짝초롱


고구마를 찔까

감자밥을 할까

갈잎배를 엮어

냇물에 띄울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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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엄마 백희나 그림책
백희나 지음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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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9.9.

다듬읽기 270


《이상한 엄마》

 백희나

 Storybowl

 2024.5.2



  펴냄터를 옮겨서 새로나온 《이상한 엄마》를 곰곰이 되읽어 봅니다. 예전 그림책이나 새로나온 그림책이나 말씨는 매한가지 같군요. 어린이한테 안 어울릴 뿐 아니라, 우리말씨하고 어긋난 대목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껍데기만 바꾸기보다는 알맹이를 추슬러서 ‘속으로 빛나야’ 할 그림책일 텐데요? ㅍㄹㄴ


+


《이상한 엄마》(백희나, Storybowl, 2024)


서울에는 엄청난 비가 쏟아졌습니다

→ 서울에는 비가 엄청나게 옵니다

→ 서울에는 비가 쏟아집니다

→ 서울은 함박비입니다

→ 서울은 큰물입니다

7쪽


열이 심해 조퇴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 몸이 뜨거워 쉰다고 알려옵니다

→ 몸이 달아 일찍 간다고 알립니다

8쪽


이상한 잡음만 들려왔습니다

→ 지지직거리기만 합니다

→ 깨작거리기만 합니다

9쪽


너머에서 희미한 대답이 들렸습니다

→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가 가늡니다

→ 너머에서 가물가물 들립니다

10쪽


냉장고 속에서 찾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 싱싱칸에서 찾았습니다

→ 싱싱칸에서 찾아냅니다

15쪽


조금 겁이 났지만

→ 조금 무섭지만

→ 조금 두렵지만

16쪽


식탁 위에 놓인 달걀을

→ 밥자리에 놓은 달걀을

→ 자리에 놓은 달걀을

19쪽


그건 어떻게 만드는 거냐

→ 어떻게 그리 하느냐

→ 어떻게 짓느냐

→ 어떻게 하느냐

19쪽


이상한 엄마는 지글지글 달걀프라이를 부쳤습니다

→ 낯선 엄마는 지글지글 달걀부침을 합니다

→ 갑작 엄마는 지글지글 달걀을 부칩니다

→ 엉뚱 엄마는 달걀을 지집니다

22쪽


기분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 마음이 조금 낫습니다

→ 조금은 느긋합니다

→ 걱정이 조금 사라집니다

22쪽


곤히 잠든 호호를 보고

→ 달게 잠든 호호를 보고

→ 깊이 잠든 호호를 보고

→ 고이 잠든 호호를 보고

32쪽


부엌에 엄청난 저녁밥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 부엌에 저녁밥을 엄청나게 차렸습니다

→ 부엌에 차린 저녁밥이 엄청납니다

→ 부엌에는 저녁밥이 엄청납니다

3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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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2013 : 인정 소박함 항시 잠복 있 그것 -게 해준


그렇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인정과 사랑과 소박함이 항시 잠복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

→ 그렇지만 마지막은 늘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수수하다. 그래서 즐겁다

→ 그렇지만 마지막은 으레 포근하고 사랑스럽고 털털하다. 그래서 즐겁다

《神父님 힘을 내세요》(죠반니노 과레스끼/김명곤 옮김, 백제, 1980) 9쪽


따뜻하고 사랑스러우면서 수수하게 품는 곳이 있습니다. 포근하고 털털히 어우르는 자리가 있어요. 늘 즐거운 터전입니다. 언제나 즐거운 마을입니다. 이 보기글은 첫머리에 ‘-ㅁ’ 꼴을 끼워넣으면서 글결이 어지럽습니다. “소박함이 항시 잠복해 있다”는 “늘 수수하다”로 바로잡습니다. 옮김말씨인 “그것이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는 “그래서 즐겁다”로 고쳐씁니다. ㅍㄹㄴ


인정(人情) : 1.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2.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 3. 세상 사람들의 마음 4. 예전에, 벼슬아치들에게 몰래 주던 선물

소박하다(素朴-) :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

항시(恒時) : = 상시(常時)

잠복(潛伏) : 1. 드러나지 않게 숨음 2. [의학] 병원체에 감염되어 있으면서도 병의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또는 그런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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