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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6.5.
다듬읽기 262
《흰, 한강 소설》
한강 글
차미혜 사진
난다
2016.5.25.
온누리에 책이 있다. 책은 그저 책일 뿐, 처음에는 ‘작은책·큰책’이 따로 없었고, 글씨를 키운 ‘큰글씨책’하고, 글씨를 작게 넣어 알뜰살뜰 여민 ‘잔글씨책’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큰책(= 잘팔린책·베스트셀러)’이라는 왼켠과 ‘작은책(= 안팔린책·절판본)’이라는 오른켠을 가르는 틀이 섰고, ‘읽는책(이야기를 익히는 책)’이 아니라 ‘이름책(글쓴이와 펴냄터 이름이 드날리기에, 이런 책을 손에 쥐는 사람도 덩달아 이름이 오른다고 여기는 책)’을 가까이하는 분이 부쩍 늘어났다.
‘이름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이름뿐(허울뿐·껍데기뿐)’이게 마련이다. ‘읽는책’을 가까이하다 보면, 누구라도 천천히 ‘삶을 이루고 살림을 일으키고 사랑을 일구고 생각이 물결처럼 이는 길’로 나아간다. 한자말 ‘독서’는 나쁜 낱말은 아니되, 정작 우리가 하는 ‘읽다’를 ‘잊’는 굴레로 밀어놓는다. ‘읽다’라는 오랜 우리말은 ‘일다 + 익다’인 얼거리이다. 물결과 바람처럼 스스로 새롭게 이곳에 지어서 이루는 결이기에 ‘일다’요, 이야기를 스스로 살펴서 차분히 풀고 품는 결이기에 ‘익다’이니, 일으켜서 익히는 ‘읽다’를 제대로 느끼고 알아볼 적에 ‘이야기(잇는 말과 마음)’를 바라볼 수 있다.
모든 작은펴냄터가 ‘작은책(이름과 허울과 껍데기가 아닌 이야기를 살리는 씨앗책)’을 눈여겨보지는 않을 테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큰펴냄터는 갈수록 ‘작은책(씨앗책)’을 잊거나 등지는 얼거리가 깊다. 마을책집(작은책집)이 작은책만 건사해서는 살림을 꾸리기 벅찰 수 있다지만, 우리 스스로 서로 ‘작은이’라는 이웃으로 만나고 아우르는 길을 바로 작은책집(마을책집)부터 열어갈 적에, ‘큰이’ 몇몇이 벼슬자리를 움켜쥐는 굴레가 아닌, 모든 ‘작은이’가 보금자리와 마을에서 손수 짓고 일으키는 ‘작은이야기’를 온누리에 천천히 풀씨와 나무씨로 심어서 가꿀 만하다고 본다.
작은이가 작은책을 만나려고 작은책집으로 마실하면서, 작은씨 한 톨씩 누리고서 작은집으로 돌아가서 작은밭을 일구어 작은꿈을 작은빛으로 돌보면서 작은길을 작은살림으로 내는 사이에, 작은누리가 작은걸음으로 깨어나서 작은날개를 펴는 작은이웃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별로 물결칠 만하지 싶다.
《흰》을 읽었다. 글쓴이는 ‘흰’을 내면서 여러 ‘흰살림’을 짚으려 했구나 싶지만, 짚다가 그쳤다고 느낀다. ‘희다’하고 ‘하얗다’는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이다. ‘희다’는 ‘희끗희끗’처럼 ‘흐리다’하고 맞물리는 낱말이다. 까만머리가 천천히 희끄무레하게 바뀌고, 까만밤이 어느덧 희뿌윰히 바뀐다. 아직 또렷이 알아볼 만하지 않고 잘 모르겠구나 싶은 어렴풋한 결을 ‘희다’로 나타내는데, 이 ‘희다’는 앞으로 다가올 길을 밝힌다. 해가 너머로 오르면 “날이 하얗다”고 한다. ‘하얗다’는 아침에 돋아 낮에 비추는 ‘해’를 보며 따온 낱말이다. 그래서 ‘해맑다·해밝다·해사하다’ 같은 낱말이 있다. 해는 ‘하늘’에 ‘하나’요, 더없이 ‘한(큰)’ 별이다. 끝없도록 커다랗기에 ‘하다’이고, ‘움트며 나아가는 몸짓’을 ‘하다’로 가리킬 뿐 아니라, 처음으로 이루거나 짓는 몸짓도 ‘하다’로 가리킨다. ‘한바탕·한껏·한참·한창·함박·함께·함함·함지’ 같은 낱말은 ‘해’한테서 비롯하고, 밑동은 ‘하’이다. ‘하얗다’는 하나로 덩이를 이루며 끝없고 가없는 빛깔이니, 그야말로 드넓은 결이고, 이를 ‘허옇다·허허·허허바다’로 잇고, ‘헌책’과 ‘헛발·헛심’으로도 잇는다. ‘하찮다’는 “하치 않다”는 얼거리이고, “크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흰’을 돌아본다. ‘흐리다’는 “눈물로 눈앞이 흐리다”처럼 쓰기도 하고,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는데, 이러한 결은 ‘흐르다’하고 맞닿는다. ‘하·허’가 갈마들듯 ‘희·흐’가 맞물리면서 ‘리·르’가 갈마든다. 끝없고 가없이 움직이면서 맑기에 ‘흐르다’이다. 끝없고 가없이 마음이 넉넉하기에 ‘흐뭇하다’이다. 끝없고 가없구나 싶도록 살림이 넉넉하기에 ‘흐드러지다’이다.
하늘빛은 얼핏 파란하늘로 여길 수 있되, 하늘을 이루는 바람은 어떠한 빛깔도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바람에는 아무 빛깔이 없다”고 여길 수 있으면서, “바람은 어떤 빛깔로도 물들일 수 있다”고도 여긴다. 흐르는 바람(하늘)처럼 흐르는 물(바다)이기에, 바람과 바다는 한빛이요, 바탕으로는 파랑이되 온빛이 감도는 숨빛이라고 여긴다. 이 땅에서 살림을 지으며 살아온 ‘한겨레(흰옷겨레)’란 ‘하늘겨레(흰빛겨레)’라는 뜻이다. 하늘은 하얗거나 흰 두 갈래이면서 하나인 숨빛인 터라, ‘흰옷겨레(백의민족)’라 할 적에는, 하양과 흼 둘이 얼크러진다는 밑뜻이다. 천조각인 옷만 희게 입지 않는다. 하늘처럼 하나인 숨결을 함께 가없이 이으면서 어떤 길과 일과 놀이라 하든 모두 받아들여서 품고 풀어낸다는 이름이다.
우리가 스스로 한겨레(흰옷겨레)인 줄 잊었기에 그만 벼슬자리와 감투를 놓고서 ‘조선 오백 해’이든 ‘고려와 네나라’이든 끝없이 칼부림으로 싸웠고, 일본굴레를 거치고 나서도 한겨레끼리 피비린내를 일으키는 싸움수렁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이 싸움수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를 일굴 노릇인데, 자꾸 ‘언놈’을 ‘우두머리’에 앉혀야 하느냐를 놓고서 가없이 싸운다. ‘그들’이 아닌 ‘나·너·우리’를 바라볼 노릇이지만, 스스로 흰빛과 하얀빛으로 물드는 하늘님이라는 숨결인 줄 잊어버리고 만다.
“하얗게 밤을 새운다”고 말하되, “희게 밤을 새운다”처럼 말하지 않는다. “해처럼 하나인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자리라서, 하얗게 밤을 새운다”이다. 들숲마을에 “눈이 하얗게 덮는다”고 말한다. 들숲마을을 끝없고 가없이 하나인 빛과 무늬로 여미듯 눈으로 아우른다는 뜻이다.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면서 “하늘이 흐리”기에, 앞으로 어떤 날씨로 이어갈는지 까마득하게 모르게 마련이지만, 이 ‘흐린빛’이 가시고 나면 어떤 맑밝은 하루로 이을는지 두근두근한 마음이 ‘흐른’다. 아직 뿌옇다고 할 만큼 잘 모르거나 헤매는 길이란, 애벌레가 고치에 깃들어 끝없이 잠들면서 새날을 그리는 꿈과 같다. 흐릿흐릿 흐리멍덩한 고치잠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마참니 ‘흐린빛’에 ‘알록달록 빛그림’을 담고, 이때에 애벌레는 옛몸을 사르르 녹이듯 풀어낸 다음에 새빛을 품어서 ‘날개돋이’라는 길에 따라서 나비로 거듭난다(다시 태어난다).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날개돋이를 이룬다. 바보(밥벌레·애벌레)라는 몸을 스스로 녹이고 풀어내기에 비로소 새몸을 입는다. 새몸을 입기에 하늘과 땅을 잇는 사이를 새삼스레 날면서 활짝 웃는다. 하얀 바탕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듯, 바보마냥 흐린 마음과 몸과 머리이기에 이 마음과 몸과 머리에 꿈씨앗을 담아서 또렷하게 깨어난다.
《흰》은 무엇을 짚는 글일까? ‘흰’도 ‘하양’도 못 짚거나, 조금 짚는 듯하다가 얼렁뚱땅 맺고서 달아났다고 느낀다. 글감(주제의식)을 잘 뽑기에 훌륭하거나 대단할 수 없다. 글감만으로 쓰지 않는 글이다. 글감만 앞세우려고 하기에 갖은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춤추고야 만다. 글감을 앞세우지 않고서 ‘글(말을 그리는 빛살)’을 쓰려고 했다면, 《흰》은 그야말로 흰길과 하얀길이 서로 다른 듯 나아가지만, 속으로는 두 길이 언제나 한꽃같이 어울리면서 흐르는 햇빛인 줄 알아차리면서 이 얼거리를 이야기로 풀어냈으리라 본다.
《흰》은 쓰다가 만 글이지 싶다. 아니, 쓰는 시늉을 했으나 정작 첫자락조차 아직 붓을 못 댄 글이지 싶다. ‘흰’을 쓰려면 ‘흰’부터 온삶을 기울여서 알아보면서 품고 풀고 녹이고 사랑할 노릇이다. 사랑은 이 삶에서 가장 쉬운 길이다. 사랑시늉이나 사랑흉내란 그야말로 꾸밈(연극·문예창작)이라서 가장 고단한 가시밭길이다. 굳이 꾸밈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이, 오롯이 사랑으로 글을 노래하면 될 텐데 싶다.
ㅍㄹㄴ
《흰》(한강, 난다, 2016)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 흰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봄에 줄거리부터 짰다
→ 흰빛을 쓰겠다고 여긴 봄에 이름부터 죽 적었다
→ 무엇이 흰지 쓰려고 한 봄에 벼리부터 엮었다
9쪽
이것을 쓰는 과정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켜줄 것 같다고 느꼈다
→ 이를 쓰는 길에 무엇을 바꿀 듯하다고 느꼈다
→ 이 이야기를 쓰면 무엇을 바꿀 만하다고 느꼈다
10쪽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 시작을 미루었다
→ 물어도 말하기 어려워 첫글을 미루었다
→ 묻지만 말하기 어려워 미루었다
10쪽
열네 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 열네 살 무렵부터 한골앓이는 갑자기
→ 열네 살 무렵부터 외골앓이는 불쑥
11쪽
누군가가, 아마 그동안 이 집에 세들었던 사람들 중 하나가
→ 누가, 아마 그동안 이 집에 깃들던 누가
→ 누가, 아마 그동안 이 집을 빌린 사람이
15쪽
짐을 정리한 다음날 흰 페인트 한 통과 큼직한 평붓을 샀다
→ 짐을 꾸린 다음날 흰 물감 한 통과 큼직한 넓적붓을 샀다
→ 짐을 추스른 다음날 흰 물감 한 통과 큼직한 넓붓을 샀다
16쪽
내 어머니가 낳은
→ 어머니가 낳은
→ 울 어머니가 낳은
20쪽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자랐다
→ 나는 이 이야기로 자랐다
22쪽
죽은 백구는 진돗개의 피가 절반 섞여 유난히 영리한 개였다고 했다
→ 죽은 흰개는 진돗개 피가 섞여 유난히 똑똑했다고 한다
→ 죽은 흰둥이는 진돗개 피가 섞여 유난히 빼어났단다
23쪽
오래전 이렇게 안개가 짙었던 섬의 아침을 기억한다
→ 언젠가 이렇게 안개가 짙던 섬아침을 돌아본다
→ 예전에 섬에서 이렇게 안개가 짙던 아침을 떠올린다
27쪽
오래전 성城이 있었다는 공원에서
→ 옛날에 담이 있었다는 쉼터에서
→ 예전 높터가 있었다는 쉼뜰에서
30쪽
이 도시에는 칠십 년 이상 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 이 고장에는 일흔 해 넘는 살림이 있지 않다
→ 이곳에는 일흔 해가 넘는 살림이 없다
30쪽
결국 타살되었을 여섯 살배기 아이의 최후를 상상하고 싶지 않아
→ 끝내 목숨을 빼앗긴 여섯 살 배기 마지막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 마침내 목숨을 앗긴 여섯 살 아이 끝길을 그려내고 싶지 않아
36쪽
그런 그녀가 이 도시의 중심가를 걷는다
→ 그런 사람이 이 고을 북새길을 걷는다
→ 그런 그이가 이 고장 북적길을 걷는다
39쪽
그 지방의 사람들은
→ 그곳 사람들은
→ 그 마을에서는
→ 마을사람은
47쪽
흰 비늘의 물고기들이 보였다
→ 비늘이 흰 헤엄이가 보인다
→ 흰비늘 헤엄이를 본다
47쪽
이 도시의 외곽에서 그녀는 그 나비를 보았다
→ 그사람은 이곳 귀퉁이에서 그 나비를 본다
→ 그이는 이 마을 기스락에서 그 나비를 본다
49쪽
언젠가 만년설이 보이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한 적 있다
→ 그이는 언젠가 늘눈이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
→ 그사람은 눈갓이 보이는 데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
56쪽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 몇 해 앞서 눈벼락이라는 때였다
→ 몇 해 앞서 함박눈이라는 때였다
63쪽
보름의 달을 볼 때마다 그녀는 사람의 얼굴을 보곤 했다
→ 그는 보름달이 뜨면 사람얼굴을 보곤 한다
→ 그사람은 보름달마다 사람얼굴을 본다
69쪽
어느 추워진 아침
→ 어느 추운 아침
→ 추운 아침
72쪽
왜 흰 새가 다른 색의 새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 그는 왜 흰새가 다른 깃빛보다 가슴을 울리는지 모른다
→ 그사람은 왜 흰새가 다른 새보다 찡한지 모른다
74쪽
회복될 때마다 그녀는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되곤 했다
→ 살아날 때마다 삶이 서늘하다고 느낀다
→ 몸이 나을 때면 삶이 서늘하다고 여긴다
98쪽
칠삭둥이로 그녀는 태어났다
→ 일곱달둥이로 태어났다
→ 일곱달이로 태어났다
104쪽
백지 위에 쓰는 몇 마디 말처럼
→ 흰종이에 쓰는 몇 마디처럼
→ 종이에 쓰는 몇 마디 말처럼
123쪽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 긴 하루가 끝나면 조용히 지내야 한다
→ 긴긴 하루가 끝나면 입을 쉬어야 한다
12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