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타카의 일생
헨리 윌리엄슨 지음, 한성용 옮김 / 그물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수달 타카의 일생
 - 지은이 : 헨리 윌리엄슨
 - 옮긴이 : 한성용
 - 펴낸곳 : 그물코(2002.7.5)
 - 책값 : 12000원


 수달에게도 삶이 있는가?
 - <수달 타카의 일생>을 읽고


 <1> 수달은 슬프다


 .. 데드락(사냥개)이 타콜(수달)의 다리를 물고 흔들어 공중으로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타콜이 다시 일어서려 할 때, 많은 턱
 들이 그의 몸을 물고, 머리를 박살냈으며, 그의 옆구리와 발, 꼬
 리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목초지에 피는 작은 해바라기들 사이에
 서 그의 몸은 밟히고 뒤틀리고 부서지면서 위로 들렸다 다시 떨어
 졌다. 사냥꾼들의 갈채와 환성이 집요하게 흔들어대며 으르렁거리
 는 사냥개들의 요란한 소리와 섞였다. 타콜은 눈이 멀고, 턱이 산
 산이 부서질 때까지 그들과 싸웠다 .. <349쪽>


 수달은 슬픕니다. 아픕니다.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조용히 죽어가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수달뿐이겠습니까. 이 땅에서 범과 여우와 늑대와 이리와 사슴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습니다. 들과 산에서 뛰노는 사슴이 없는 남녘땅입니다. 들과 산에 사슴이 있다면 채산이 맞지 않아 문을 닫아 버린 사슴농장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무너뜨려서 '탈출'한 '고기사슴'이 있을 뿐입니다. 사슴은 사슴농장에서 탈출할 때 한 사슴 등을 받침대로 삼아 다른 사슴이 뛰어서 나오거나, 여러 사슴이 한꺼번에 몸을 울타리 벽에 부딪쳐서 울타리를 무너뜨린다고 합니다. 채산이 맞지 않아 사슴농장을 닫을 때 먹이를 안 주고 사슴을 굶겨죽인다는데, 먹을거리가 없어 죽음에 다다른 사슴은 마지막에 이렇게 안간힘을 쓰며 겨우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충주에서 일을 하며 들과 산에서 불쌍한 사슴을 자주 만납니다. 사슴농장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녀석들입니다. 사슴고기로 키우던 녀석들이라 덩치가 어른 둘을 더한 것만큼 큽니다. 하지만 사람을 어찌나 무서워하는지 모릅니다.

 불쌍한 사슴을 늘 보기 때문일까요? <수달 타카의 일생>이란 책을 읽으면서 가슴아픔과 씁쓸함이 내내 감돌았습니다. 1920년대 영국 어느 마을에서 있던 일을 아주 실감나게 그린 <수달 타카의 일생>은 '타카'라는 수달 한 마리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그런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결과에서 뚜렷하게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시달리는가를 꼼꼼하며 차근차근 담습니다.


 <2> 한국땅에서 거의 사라진 수달이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사냥개와 사냥꾼에게 시달리는 수달. 산속에서는 산림감시원이 놓는 덫과 총을 피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들판에서는 농부와 양치기 눈을 피하며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끈질기게 수달 사냥을 하는 사람들 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국땅에서는 어떨까요? 비슷합니다. 아직 몇 마리 남았으나 사람 눈길과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삽니다. 하지만 그런 깊숙한 곳까지도 기어들어오는 사냥꾼들 득달거림 때문에 늘 쫓겨다녀요. 세상에 가장 무서운 적인 사람들 때문에요.


 ..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던 새끼는 덫을 땅에 박아두었던
 못을 뽑아냈고, 덫을 끌고 배수로 밖으로 나와 어린 나무들 사이
 로 느릿느릿 도망쳤다. 어미는 타카와 다른 새끼를 부르는 휘파람
 을 불었고 그들은 나무 덤불 아래에서 뛰어나와 어미 뒤를 따랐다.
 어미는 새끼들과 함께 작은 길을 달리다가, 검은딸기 덤불울 부수
 고 돌과 뿌리에 부딪혀 소리를 내는, 꼬리에 매달린 덫 때문에
 간신히 뒤따라오는 새끼에게 되돌아왔다. 꿩들은 몸을 숨기고 있
 던 나뭇가지에서 날아올랐고 지빠귀들도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감
 탕나무들 사이에서 날개를 쳤다. 검은딸기 덤불에서 내려앉은 굴
 뚝새와 울새 들은 높은 소리로 불평을 해댔다. 고슴도치들은 가시
 가 있는 공처럼 몸을 말았고, 들쥐들은 참나무 아래 말라죽은 이
 끼 옆에서 몸을 웅크렸다 .. <86쪽>


 <수달 타카의 일생>에는 수달을 비롯한 온갖 들짐승이 나오고 들풀과 나무와 꽃이 나옵니다. 산과 들과 물에서 살아가는 온갖 목숨붙이가 나와요. 풀은 풀대로, 짐승은 짐승대로 자기 목숨을 잇습니다. 수달도 뭇 목숨붙이 가운데 하나로 토끼도 잡아먹고 물오리도 잡아먹습니다. 여우에게 쫓기기도 하고 족제비와 다투다가 내빼기도 하며 까마귀에게 혼줄이 나기도 하는 수달입니다. 저마다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는 짐승들이에요.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머리를 굴려서 무엇을 만들고, 자기들만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면서 자연을 무너뜨리고 파헤칩니다. '개발'이란 허울좋은 이름을 내세우면서요. 뭇 목숨붙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인데, 사람들은 멋대로 자연을 무너뜨리고 파헤쳐요. 그런데 파헤치는 사람은 파헤치는 대로, 파헤친 떡고물을 먹고사는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대로 자연을 파헤치는 일이 나중에 무엇을 선사(?)할는지 생각하거나 알려 하지 않습니다.

 아. 이런 한국땅에서 수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 수달이라는 짐승이 있거나 말거나 우리들 사람 삶과는 아무런 인연도 상관도 없다고 보지 않나요? 아니 수달이 있기나 한지도 모르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저 동물원에서 구경할 수 있으면 그뿐이라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보면 그만이라고 여겨 버리지는 않는지요.


 <3> 어우러지기에 아름다운 자연


 수달을 가까이에서 보지 않거나 못하기 때문에 수달을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어쩌다가 다치거나 아프면 부모나 자식이나 동무가 다치거나 아플 때처럼 걱정하며 돌보는 우리들이잖아요. 하지만 범이 죽고, 여우가 다치고, 다람쥐가 병에 걸리고, 수달이 덫에 치여 다리가 잘리고, 농약에 병든 물고기를 먹다가 왜가리와 두루미가 죽어가거나 도심지 시내에서 배기가스를 마시는 나무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우리들이에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삶터와 너무 떨어진 곳으로 내쫓기며 사라지기 때문에 더더욱 들짐승이 살아갈 수 없는지 모릅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라는 책은 어떤 풀이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짖궂을 뿐 아니라 나쁘기까지 한 사람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온삶을 괴롭게 보내는 수달 이야기를 참 덤덤하게 펼칩니다. 그러면서 수달뿐 아니라 뭇짐승이, 또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죽고 또 되풀이하는 못 목숨붙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지루한 보여주기(묘사)만 가득한 책이라고 여길 수도 있어요.


 .. 수달들은 이곳에서 베도라치와 망둥이, 그리고 해초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찾아 헤맸다. 수달들은 참새우를 잡
 아 꼬리부터 먹었지만 머리는 절대 삼키지 않았다. 또 이빨로
 바위에 붙어 있는 섭조개를 뜯어내 앞발로 붙잡고 으깨서 살을
 핥아 먹었다. 회색주둥이가 까나리를 찾는 동안 타카는 집게발
 이 하나뿐인 바닷가재가 사는 깊은 웅덩이를 탐험했다 ......
 이 바닷가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위험을 겪었다.
 크라이드와 햄 마을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란 막대기
 와 갈고리를 매달아 바닷가재를 잡으려 했다. 바닷가재는 여러
 번 발을 잃어, 아홉 번째 발이 뜯겨 나가자 녀석의 뇌도 결국
 은 새로이 발을 자라게 하는 걸 포기했다 .. <137쪽>


 .. 꺾이고 눌린, 속이 빈 갈대 줄기로 만든 보금자리에서 편히
 몸을 편 타카는 날개를 반짝이며 물위에서 나는 잠자리들을 바
 라보았다. 그 옆의 갈대에는 수 년 동안 작은 물고기와 물벼룩
 들을 잡아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그 전날 연못에서 기어나온 잠
 자리 유충이 부서질 듯한 회색빛 가면처럼 붙어 있었다. 햇빛이
 비쳐 유충의 껍질이 바짝 마르자 그 가면은 부풀어올라 등이 갈
 라졌다. 이윽고 거의 투명해 보이는 다리와 머리를 가진 곤충이
 축 처진 짧은 날개를 달고 빠져나왔다. 날개가 뜨거운 열기 때
 문에 쭉 펴지고 단단해지는 동안 그 곤충은 무심한 듯 갈대에
 매달려 있었다. 곤충의 몸은 정오의 용과 같은 숨을 쉬며 주홍
 빛으로 바뀌었다. 그 눈은 여름의 불기운을 받아 광택을 냈다.
 연못도 반짝였다. 볼품없이 몸 아래쪽에 붙어 있던 날개들이
 넓게 펴졌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떨렸다. 이윽고 몸에 노
 란색, 검은색으로 줄무늬가 있거나 에메랄드빛으로, 붉은빛으로,
 파란빛으로 빛나며 날고 있는 잠자리 떼에게 날아가버렸다 .. <76쪽>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듭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란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사람들 등쌀에 밀려 어렵게 살아가는 수달 이야기'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서 찬찬히 읽다 보니 '사람들 등쌀에 밀린 수달 이야기'보다 더 큰 이야기가 있더군요. 수달이라는 짐승이 사람들 등쌀에 밀려 얼마나 고달프게 살아가는가를 그리는 가운데 수달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 이야기를 다뤄요. 크나큰 자연 품 안에 있는 수달 한 마리랄까요. 사라져가고 쫓겨가면서 괴롭고 고달픈 수달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아름답게 빛나며 따뜻하게 감싸는 한편 매서운 눈보라로 고달픈 삶을 살도록 하는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자연과 어우러지는 수달과 뭇 짐승을 이야기해요.

 지은이 헨리 윌리엄슨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아주 지긋이 바라보고 느낍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가이 나타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서사시 한 편을 읊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우리네 삶터 이야기랄까요.

 수달뿐 아니라 뭇짐승이 괴로워하는 삶터를 아프게 읽으면서도, 자연은 이렇게 수많은 목숨붙이가 어우러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사람만 살아가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과 모든 목숨붙이가 서로를 돌보고 감싸고 함께할 수 있을 때 참 아름답다 하는 것도 돌아봅니다. 37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었지만, 지난 3월 5일부터 한 달 넘게 이 책을 들고 다니며 읽은 시간은 참 즐거웠습니다.

***
요즘 들어 환경 이야기를 다룬 책이 많이 나옵니다. 참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 아닌 생명체 눈길과 눈높이'에서 그 생명체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사는지, 또 사람 아닌 생명체가 어우러지는 삶터가 어떻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그려나가는 책은 드물어요. <수달 타카의 일생>은 이런 여러 가지 간지러우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 소개하는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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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 - 2010년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최은숙 지음 / 샨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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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
- 글쓴이 : 최은숙
- 펴낸곳 : 샨티(2006.3.3)
- 책값 : 10000원


.. “괜찮아, 아까 담임 선생님이 데리러 오셨는데 내가 잘 말씀드렸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교장 선생님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거기 계셨다. 그때는 잘 몰랐다. 그것이 얼마나 큰 여유로움에서 나온 파격인지를. 나중에 내가 선생이 되어 학교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그 교장 선생님 같은 어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과 그런 여유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학교 사회란 참으로 하찮은 장부들에 생활을 비끄러매고 사는 곳이다 ..  〈30쪽〉


 올곧은 교사 한 사람이 태어나자면 이 교사가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이끌어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어야 합니다. 이 아이를 둘러싸고 함께 어울려 놀면서 세상을 부대끼게 해 주는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이 있어야지요. 마을 어른이 있어야 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란 곳이 있다면, 이 학교에서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껴안고 보듬을 수 있어야겠지요. 또한 아이가 늘 뛰어놀고 부대낄 수 있는 자연 삶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 아닌 목숨붙이들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어야 하며 갇혀 지내지 않아야 하고, 함부로 어떤 목숨도 죽이지 않는 삶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언제나 40만 사람이 교사로 있는 이 나라에서 참답게 교사라 할 만한 사람이 몇쯤 될까요? 이 가운데 1/100, 아니 1/10000이라도 있을까요?

 교사 최은숙은 아마 어릴 적 부대끼고 느낀 여러 일, 만난 수많은 사람이 ‘교사라는 일이 아이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면서 참삶을 보여주는 한편, 자기 스스로도 참삶을 꾸리도록 하는 일이구나’ 하고 느꼈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아이들 부모(곧 마을사람)와 부대끼는 일이 참 살갑고 구수하구나 하고 느끼지 싶어요. 이리하여 몇 해 앞서는 《세상에서 네가 제일 멋있다고 말해 주자》를 냈고, 이번에­ ‘교사로 지낸 이야기’를 담은 두 번째 책 《미안, 네가 천사인 줄 몰랐어》를 냅니다.

 다만 한 가지. 교사 최은숙은 자기가 만나고 부대끼는 아이들과 어른들(그러니까 학부모이면서 마을사람인 분들)을 좀더 있는 그대로 보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도 많이 다가서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마음을 열고 꾸준하게 다가서려고 힘씁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온 두 번째 책은 앞선 책보다 한 걸음 더 내디딘 이야기예요. 아마 몇 해 뒤 세 번째 ‘교사로 지낸 이야기’를 묶어 낼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당차고 씩씩하게 걸음을 내디딘 이야기를 담겠지요. 네 번째 책을 낼 수 있다면 그때는 더 알뜰할 테고요. (4339.3.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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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클리닉 8 - 완결
카루베 준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푸른 하늘 클리닉 (8)
- 그린이 : 카루베 준코
- 옮긴이 : 최미애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6.2.25)
- 책값 : 3500원


 저는 의사를 믿지 않습니다. 저처럼까지는 아니나 의사를 못 믿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의사는, ‘아픈 사람 몸을 돌보거나 따뜻하게 보듬는’ 일보다는 ‘높다란 사회계층을 차지하면서 돈-이름-힘을 긁어모으는’ 쪽이라고 보아야 옳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처럼 병원 나들이를 합니다. 병원을 굳게 믿고 다니는 분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처럼 의사라는 일이 돈-이름-힘에 가깝다면, 또 의사들 스스로 이런 얼개를 무너뜨리며 보통사람과 자기들 사이에 놓인 높다란 벽을 허물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어찌 될까요?


 [151쪽] 환자와의 만남은, 보통 사람을 의사에 가깝도록 만들어 주는구나.
 [145쪽] 설비가 없는 쪽이 실력이 느는 경우도 있어.
 [139쪽] 자연이. 이 섬이. 바꿔 줬어.
 [87쪽]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생명을 위해서. 그것만을 위해서.
 [57쪽] 간호사도 할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것. 고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
 [32쪽] 사람은 가끔 기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남겨진 자에게 희망을 준다. 진실한 웃음을 준다.


 한국처럼 사회봉사에 힘쓰는 의사가 적은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제3세계나 어려운 나라에 의료봉사를 나가는 의사도 대단히 적지만(아예 없지는 않으니 다행일까요? 하긴 의사가 되기까지 쏟아부은 돈을 거둬들이자면 사회봉사할 틈이 어디 있겠어요. 나중에 그럭저럭 돈이 모인 뒤에는 놀러다니느라 바쁠 테고요), 나라안 구석구석 의료 혜택을 조금도 못 받는 곳으로 기꺼이 나아가는 의사도 참 적습니다. 교사들이 시골 외진 학교로 가기를 꺼리는 것처럼, 의사들도 섬마을 진료소나 시골 보건소로 일하러 가기를 꺼립니다. 하지만 교사나 의사뿐일까요? 버스기사는, 게임방은, 구멍가게는, 이발소는, 옷가게는 어떻지요? 모두들 도시로, 좀더 큰 마을로, 시내 중심지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지요? 의사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푸른 하늘 클리닉》이라는 만화 8권이 나왔습니다. 이 만화는 8권이 끝입니다. 줄거리를 잠깐 간추리겠습니다. 도쿄라는 큰도시를 떠나 훗카이도에서도 안쪽으로 더 들어가는 외진 섬마을에 보건소 의사로 가게 된 ‘유우’라는 젊은 여의사가 있습니다. 환자들이 앓고 있는 병은 척척 알아맞추면서 기계처럼 빈틈없이 약을 쓰던 사람인데, 자기가 왜 의사로 일하는지를 찾아보려고 어느 날 도시에서 아주 외진 섬마을 보건소로 스스로 나서서 갑니다. 이 만화는 젊은 여의사 유우가 보고 듣고 겪고 만나고 부대끼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다른 꾸밈이나 겉치레를 들씌우지 않고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아픔, 슬픔, 기쁨, 즐거움, 부딪침, 싸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구석구석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만화를 그린다고 할까요? 그림결은 오롯한 순정만화라서,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비슷한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이 순정만화는 여느 순정만화와는 좀 다릅니다. 이이 그림은 그렇게까지 ‘예쁘다’ 할 만한 주인공을 그리지 않거든요. 파란 하늘, 파란 바다에 둘러싸인 파랗게 보이는 조그마한 섬마을 진료소를 둘러싼 사람들과 삶터와 자연이 있는 그대로 나타납니다. 의사인 유우도, 만화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어떤 실마리를 붙잡거나 마무리를 짓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마다 자기가 ‘살아가는 뜻’을 어렴풋하게 느끼면서도 잘 알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지만 소중히 여기면서 놓지 않으려고 해요.

 8권을 덮으면서 ‘여기서 끝나다니 참 아쉽구나’ 하는 생각이 짙게 듭니다. 그래도, 이이가 그렸던 다른 만화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는 10권에서 번역이 끝나 버려서 그 뒤로 어찌 되었는가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참 얄궂어요. 아무리 이야기가 훌륭하고 줄거리가 살뜰해도 ‘많이 팔리지 않으면’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는 이 나라 만화산업이거든요. 만화가 문화가 아니라 ‘산업’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7권이 나오고 한참 동안 8권이 안 나와서 ‘이 만화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한숨을 쉬던 때에 드디어 만난 《푸른 하늘 클리닉》은 새삼스레 반갑고 고맙습니다. (4339.2.2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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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삼인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글쓴이 : 사이토 미치오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삼인(2006.1.5)
- 책값 : 10000원

 우리 나라에도 틀림없이 ‘장애인 공동체’라는 곳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아끼고 돌보며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꿈을 펼치도록 도우려는 손길도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끼거나 바라보아 주는 마음길이란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 만약 관리 규칙이 있다면, 모든 것이 ‘규칙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까’라고 정리해 버려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롭게 활달한 의견이나 발상이 파묻혀 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37쪽〉


 정신장애인들이 모여서 산다는 ‘베델의 집’. 정신장애면 어떻고 다른 장애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문제이고 골치입니다. ‘이런 장애인이 있대’가 아니라 ‘장애인이네’ 하고 바라보기만 하지 못하는 비장애인 문제입니다. 치우치거나 비뚤어진 생각을 씻지 못하는 우리들 문제입니다.

 장애인은 장애인입니다. 장님은 장님이고 귀머거리는 귀머거리입니다. 앞을 못 보니 장님이고 소리를 못 들으니 귀머거리예요. 이런 낱말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괴롭히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장님’을 깔보는 말로 여겨서 ‘시각장애인’으로 돌려서 말하고 ‘장애인’을 ‘장애우’로 돌려서 말합니다. 우리는 낱말만 바꾸려 하고 우리들 생각과 몸짓은 하나도 안 바꿉니다. 비장애인 삶에만 맞춘 제도 또한 그대로 두려 합니다. 이러면서 무엇을 하지요? 껍데기만 그럴싸하면 되나요? 요즘 지하철에는 꽤나 큰돈을 들여서 ‘스크린도어’라는 것을 만드는데, 이것은 ‘비장애인 안전’만 생각하는 시설일 뿐 장애인도 함께 헤아리는 시설은 아닙니다(여기에 들이는 돈과 잽싼 움직임과 어떻게 짓는가를 보면 훤히 알 수 있어요). 더구나 우리네 교통 현실은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고 사람 대접을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가용 중심이고, 관리자 중심이거든요. 버스타는곳이고 전철역이고 앉을 자리, 걸상이 몇 없습니다. 사람들 거님길에 ‘턱’이 너무 높거나 많으면 휠체어 타기 아주 안 좋습니다. 게다가 비장애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도 아주 안 좋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기에도 참 나쁩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은 좀체로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못 느끼고 건의도 제대로 안 하지만, 건의를 받는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스스로 문제를 찾거나 고치려고도 하지 않아요. 이러니까 장애인 문제는 ‘그들한테만 문제인 것’쯤으로 여겨 버리겠지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는 작은제목으로 “문제투성이 ‘베델의 집’ 사람들의 놀라운 회사 창업 성공기”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네, 이런 창업성공기도 좋고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더 재미있고 좋은 대목은 ‘장애인이면 어떻고 비장애인이면 어떠냐? 똑같이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하는 이야기를 차분하게 건네는 데에 있습니다. 그저 즐겁게 어울리는 사람들, 규칙이나 틀로 서로를 옭아매려 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예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렇게 산다구’ 하며 이야기를 건넵니다. 딱히 따뜻하지 않게, 그러나 구태여 차갑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남김없이 보여주면서 손을 내밉니다. 이 손을 장애인들 손으로 느끼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사람 손’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이야기책입니다. (4339.2.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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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이다 -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음, 박경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삶은 기적이다
- 글쓴이 : 웬델 베리
- 옮긴이 : 박경미
- 펴낸곳 : 녹색평론사(2006.2.15)
- 책값 : 7000원


 우리 나라에 참된 과학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과학뿐 아닙니다. 문학도 사상도 철학도 역사도 참답게 자리잡고 있을는지요? 글쎄. 그러면 책은 어떻습니까? 그림이나 사진은? 교육이나 사회는? 정치나 경제는? 노동은? 운동경기는 어떨까요?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즐겁게 맞이하면서 너나없이 고르게 함께할 수 있는가요?


.. 과학은 인간적 한계를 지니며, 늘 인간의 무지와 오류를 포함한다. 과학이 발명해내거나 발견해낸 해결책들이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또 그 자체가 새로운 문젯거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발견해냈지만, 핵의 사용은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핵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폐타이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 항생제의 사용은 항생제의 남용을 가져왔고, 계속 이런 식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우리는 일상적 삶 속에서 황당한 과학지식에 매달린다. 가령 우리는 유전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우리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  〈53∼54쪽〉


 한 달쯤 앞서, 서울역에서 전철을 탈 때입니다. 저는 멀리 가는 길이라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전철을 탔는데 마침 유모차를 끌고 계단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젊은 어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한쪽 어깨에는 자전거를 메고 있었지만 한쪽 손은 자유로워서, “아주머니, 같이 들어 드릴게요” 하고는 꽤나 긴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저는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갔고, 아이 어머니는 표를 사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유모차를 어떻게 개찰구를 넘어 나오는가로 힘들어합니다. 아마, 전철역까지 오는 동안 꽤나 애먹고 힘들었는가 보군요. 그런데 서울역 개찰구에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뚫려 있는 다른 문’이 없습니다. 표를 끊고 지나가는 자리도 대단히 좁습니다. 그래,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들어서 안쪽으로 옮겨야 했고, 아이도 누군가 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계단에서도 그랬으나, 이 개찰구 앞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기는 했어도 누구 하나 손을 거들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침 이날만 이렇게 돕는 손길이 없는지도 몰랐겠지만요.


.. 다행스러운 것은 과학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한 여성”, “한 남성”, “한 아이”, “한 사례”와 같은 범주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정을 느낄 때 우리는 추상과 추상화의 범주들을 깨부수고, 고유한 생명과 장소를 지닌 피조물 그 자체와 대면하고 싶어한다 ..  〈65쪽〉


 아기를 제가 안고 있는 동안 젊은 어머니는 유모차를 낑낑거리며 개찰구 아래로 밀어서 가까스로 빼냅니다. 겨울이지만 얼굴엔 땀이 줄줄 흐릅니다. “아유, 서울 한번 나오면 힘들어서 못 다니겠어요. 다니기 너무 불편해요!” 하는 아이 어머니. 저는 4호선을 타고 아이 어머니는 1호선을 탑니다. 길이 엇갈려서 걱정스러운데, 저 어머니가 가는 길에 도와줄 사람이 있을는지…


..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뭔가를 “알아내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며, 동시에 있는 그대로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고통받으면서, 또 있는 그대로 기뻐하면서 우리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서 우리는 생명을 이해했다는 누군가의 주장에 의해 생명이 소유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생명은 우리가 향유하는 것이지만, 우리 너머에 있다 ..  〈18쪽〉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양문), 《생활의 조건》(산해) 같은 책에 이어 우리 말로 번역된 ‘웬델 베리’ 님 책 《삶은 기적이다》입니다. 과학기술이라는, 또 물질문명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제정신을 잃어버린 우리들한테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즐거운가를 자기 경험을 밑바탕 삼아서 들려주는 이야기책입니다. 소중한 나를 찾고, 내 삶터를 찾을 때는 우리 삶을 ‘기적’이라 할 만하지만, 나 자신을 소중히 느끼지 못하고 내 삶터를 소중히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를 억누르는 권력자들 배만 불려 주는 ‘기적’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담아요. (4339.3.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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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번역은... 다른 녹색평론사 책과 마찬가지로 엉망입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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