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님의 "시골에서 헌책방을 차린다는 것에 대하여..."

홍성 <느티나무>는 `헌책방 + 마을 도서관'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상일은 `사업체'로 해서 벌이도 있어야겠지만, 벌이를 얼마로 잡으면 되느냐 하는 잣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홍성 <느티나무>는 여느 헌책방이나 사업체와 견주면 벌이나 이윤은 적지만, 지역 헌책방+도서관으로 꾸려 갈 만큼은 되지요. 책이 씨가 마르면, 도서관으로 바꾸겠지요 ^^ 서울이나 부산이나 여러 곳 헌책방을 두루 다니면서 책을 살 때면, 한 곳에서 지나치게 많이 사지 않고, 또 자기가 읽으려고 사기도 하니까, 소매값으로 사온다고 해도 손해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또한, 때때로 <아름다운가게>에 기증된 책을 잔뜩 사들이기도 하니, 이런 것으로 어느 만큼 수지타산을 맞추기도 할 테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사진에는 찍는 사람 삶이 담깁니다
 - 《사진, 예술로 가는 길》을 읽으며

 


-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지난 토요일인 9월 9일, 인사동 김영섭갤러리에 찾아갔습니다.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전시회가 12일까지 열리는데, 이날은 전민조 님이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좀 늦게 가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전시장에 온 사람이 적어서 나중에 전민조 님과 함께, 가까운 다른 전시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기 사진을 걸어 놓은 다음 사인회 같은 행사를 할 때면 으레 옷도 차려입고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과 만나고 몇 마디 그럴듯한 말도 하기 마련입니다. 거의 그렇지요. 하지만 전민조 님은 수수한 옷차림에다가 한쪽 어깨에는 작은 사진기를 메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사진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전민조 님은 스스로 ‘사진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늘 살아 있는 사진, 살아숨쉬는 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 싶어요.


.. 제 느낌 따라서 사물을 보고, 제 생각 따라 사물의 의미가 정해지는 것이지 사물이 어떤 고정된 의미를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졌는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  〈45쪽〉


 전민조 님 안내와 소개를 받으며, 인사동 다른 곳에서 열리는 ㄱㅇㅌ 님 사진 전시회를 구경합니다. 전민조 님은 자기 사진은 보잘것없다 하고 ㄱㅇㅌ 님 사진을 훌륭한 작품이라며 추켜세웁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 ㄱㅇㅌ 님과 전민조 님은, 서로 찍는 사진이 다르고 대상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사람’을 사진감으로 삼는다고 해도, 정물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일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알몸사진을 찍을 수 있고, 어떤 몸짓을 해 보라고 한 뒤 빛을 맞추어 찍기도 하지요. 사람을 찍는 방법만 해도 참 갖가지이고, 사람한테서 무엇을 느끼느냐도 참 갖가지입니다. ㄱㅇㅌ 님은 사람이 아닌 자연 대상물만 찍는 분입니다. 전민조 님은 사람만 찍는 분입니다.


.. 사진의 내용을 결정지어 주는 것은 셔터 찬스이지 구도가 아닌 것이다. 구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 화면의 정리뿐이다. 정리는 조금 덜 되어도 내용이 좋아야지, 화면만 깔끔한 채 속이 텅 빈 사진은 쓸모가 없다. 말솜씨가 조금 서툴러도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이 좋으면 그게 훌륭한 말이요, 화려한 말솜씨에 내용이 없으면 그게 바로 헛된 말장난인 것이다 ..  〈72쪽〉


 ㄱㅇㅌ 님과 전민조 님 두 분은, 서로 찍는 사진이 다르다 보니, 여느 때 모습도 다릅니다. ㄱㅇㅌ 님은 무거운 장비를 둘러메고 사막을 헤매는 분이기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안 찍습니다. 그래서 사진 전시회 자리에도 사진기를 안 메고 있습니다. 전민조 님은 늘 자기 둘레에 있는 사람들부터 사진으로 찍기 때문에 언제나 사진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습니다. 예전에 김기찬 님을 전시장에서 뵌 적 있는데, 김기찬 님도 조그마한 사진기를 언제나 품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어느 때라도 곧바로 꺼내어 찍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ㄱㅇㅌ 님 사진은, 자기가 찍으려는 대상을 훌륭히 찍었기 때문에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진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이분처럼 어느 대상을 깊이있게 살피며 ‘빛을 만지작’거릴 수 있습니다. 사진 찍는 길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든 자기 길을 곧게 잘 갈 수 있으면 좋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길로 갈 생각이 없다뿐이고, 전민조 님처럼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닐 뿐입니다. 저는 사람을 찍는 사람이니까요.


.. 이런 특수한 기법은 특수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 그런 기법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표현이 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을 현혹시키려는 얕은 꾀로 떨어지기 쉽다.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볼지 몰라도, 사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경멸당하기 쉽다 ..  〈89쪽〉


 값싸고 손쉽게 찍을 수 있는 디지털사진기가 널리 퍼지면서 사진은 ‘취미’라 말할 수 있는 일이 되었고 때때로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담배를 태우듯, 술잔을 비우듯 사진 찍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주말 인사동을 걸으니 그 엄청난 사람숲을 메운 어느 사람 어깨에도 사진기가 대롱대롱 걸려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나 싶어서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참 많이 찍어도 그 흔한 사진 전시회는 들여다보지 않고, 또 찾아갈 마음도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취미이고 놀이니까 다른 사람 전시회야 보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진은 ‘보여줌’인데. ‘나 혼자 좋아서 찍고 그치는 일’이 아닌데. 태우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담뱃재가 아니라, 잔을 비우면 사라지고 마는 술잔이 아니라, 담배 태우는 즐거움이자 술잔 기울이는 즐거움인데. 으리으리한 전시장에 사진을 걸어놓아야만 사진이 아닌데. 자기 집에 찾아오는 사람한테 보여주는 사진첩도 바로 ‘조촐한 자기 사진전시’인데.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마음이기에, 사진기를 들면서도 무엇을 찍고 나누고 보여주면 좋을지를 못 느낄까요. 거울로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얼굴을 매만지기는 해도, 해가 가고 달이 가며 자연스럽게 갈고닦이는 자기 얼굴을 가꾸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 필자의 글을 지침서로 활용할 수는 있어도 이를 미신처럼 믿어서는 안 된다. 남의 생각대로만 따르다가는 자기를 잃기 쉽다. 예술에서 자기를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필자의 진의가 여기에 있다.
 초보자의 경우, 어느 것이 필요하고 필요없는지 그것조차도 모르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구분하라는 말인가, 걱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필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고 했지만, 다른 말은 따르지 않더라도 다음 말만은 그대로 기억해 두고 따라 주기 바란다.
 초보자든 경험자든 여러분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 자기 느낌에 따라 전적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해야 한다. 만일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원칙은 아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참고 사항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 놓고 …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사진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채워 나갈 길을 몰라 걱정하는 것이니까 모르는 것이 아니요, 자기 사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다 ..  〈147∼148쪽〉


 저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느냐 싶기도 하지만, 겉멋들린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이 참 거슬리고 비위가 안 좋습니다. 책 하나 냈다고 해서 자기를 ‘작가’라 한다거나, 전시회 한 번 했다고 ‘작가’라 내세우는 사람이 아주 많거든요.

 

 사진도 예술이라 하지만, 사진이 예술이 되든 안 되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마음둘 대목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며, 사진이 예술이든, 또는 예술로 올라가든 말든, 그런 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배우는 일이란 기계 다루는 법, 장비 만지는 법, 대상을 요리조리 살피며 찍는 법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구도 잡거나 빛과 색감 느끼는 법도 사진 배우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보고 느끼는 일이 바로 사진 배우기입니다. 전시회를 찾아가고 사진책을 사서 모으는 일이야말로 사진 배우기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찍은 좋은 사진을 보고 자기 마음이 뭉클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 사진 가운데 잘 찍은 좋은 사진을 보며 마음이 뭉클하거나 짠하거나 감동을 하니까요.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며 감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사진을 백 날 찍어 보아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사진은 기록이다”고도 하는데, 요즘 사진을 찍는 분들 어느 누구를 보아도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몇 년 몇 월 몇 일 어디에서 누구랑 찍었다는 기록”일 뿐, 자기 눈과 마음과 생각과 몸가짐과 몸짓으로 자기 나름대로 찍은 사진이라는 느낌이 안 듭니다. 사진을 예술이라 한다면, “사진 찍는 이 나름대로 자기 느낌과 생각과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지 싶은데, 예술이든 아니든 자기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취미’나 ‘놀이’도 아닌 ‘기록’하는 사진일 뿐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이런 사진이라면 자기부터 재미가 없고, 이 사진을 볼 다른 사람도 재미가 없을 텐데 싶어요.


.. 자기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적당히 감추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솔직해야 된다. 솔직해야 좋은 사진이 찍힌다. 특히 유교적 규범 속에서 자라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에 퍽 조심스러운 편이다 … 가릴 것 다 가린 누드 사진보다 체모든 성기든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라야 한다. 보이는 것 다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라야 한다. 우리가 바위를 찍을 때 어느 부분을 가리고 찍는 일이 있던가? 꽃을 찍을 때 어느 부분을 피해 가면서 찍은 적이 있던가?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자연으로 상대하는 것,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 사진이다. 우리의 몸도 자연의 일부이다. 꽃은 가리고 찍지 않는 사람이 몸은 왜 가리고 찍을까? ..  〈163∼164쪽〉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이가 똥누는 모습도 사랑하고, 코를 골며 자는 모습도 사랑하며, 코가 막혀 킁 하고 풀었는데 콧물이 손등에 튀는 모습이라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기가 오줌을 지려서 옷을 적셨다 해도 ‘더럽다’고 느끼는 부모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든 모습을 그대로 껴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겉모습을 보고, 얼굴이나 몸매를 보면서 마음이 끌린다 해서 사랑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겉모습과 얼굴과 몸매를 보며 섣불리 ‘사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적잖은 분들도 이런 사랑놀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참사랑에는 자꾸만 멀어지지 싶어요. 연속극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책마저 그렇습니다. 이런 형편이고 흐름이니, 사진 하나를 찍어도 있는 그대로를 찍기보다는, 자기 눈으로 본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찍는 사진보다는, 잘 찍었다 하든 못 찍었다 하든 ‘나 아무개가 찍은 사진이요’ 하는 느낌이 배어나는 사진보다는, 구도가 엇나가고 흔들리기도 하고 빛도 어설피 맞추었다고 해도 ‘내가 찍고 싶어서 찍었어’ 하는 사진보다는,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히고 뻔할 뻔자이며 남들 다 찍는 사진을 따라쟁이로 좇아가는 사진만 찍는구나 싶어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자기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재미를 함께 느낍니다.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올바른 마음을 함께 얻거나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작은 것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그동안 하찮게 여기거나 그냥 지나쳤던 대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거나 차분히 되돌아보는 마음을 느끼며 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자기가 사는 대로 사진이 찍히기 때문이에요. 놀 때도 그래요.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노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그 사람 성격과 삶이 고스란히 배어나옵니다. 좁은 한강 자전거길을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내달리면서 딸랑이를 시끄럽게 울리는 사람이 ‘자전거를 즐긴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 사람 삶부터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고 사진도 좋아하고 책과 헌책방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탄다고 모든 자전거꾼을 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있다고 모든 사진작가를 다 좋아하지 않으며, 책을 즐겨읽는 사람이라 해서 모든 책쟁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삶부터 다부지게 가꿀 줄 아는 사람, 자기한테 딱 하나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사진기를 들고 책을 읽으며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습니다.


.. 사진만이 예술이어도 좋고, 예술이 아니라 해도 그 가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의미에 변화가 없다. 사진 말고는 말이 그러해서, 문자에 의한 기록은 그것이 설사 예술이 못 되어도 가치가 있다 ..  〈68쪽〉


 사진을 보며 사진을 느낀다기보다는, 사진을 보며 사람이 꾸려가는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찍은 사진을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책을 다루는 매무새를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끼고, 아무개가 다니는 책방이나 도서관을 보며 그이가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을 꾸리는가를 느낍니다.


.. 우리는 흔히 사람을 찍고, 꽃을 찍고, 풍경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관찰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찍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꽃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는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시간이다. 사람의 몸에 묻은 시간, 꽃이 아니라 꽃에 핀 시간, 풍경이 아니라 풍경에 담긴 시간을 우리는 찍고 있는 것이다 ..  〈64쪽〉

 

 


 


 오늘 충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아침에 잠이 깨었어도 몸이 고단해서 일어나지 못했고, 끝내 시간을 많이 넘겼습니다. 서울에서 충주까지 7시간 걸려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아침에 길을 나서지 않으면 저녁에 위험한 터라, 오늘 같은 날은 길을 나서기 힘듭니다. 그래, 덕분에 오늘 하루는 서울에서 더 보내야 하지만, 서울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된 만큼, 오늘은 서울 인사동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전민조 님 사진 전시회에 조용히 한 번 더 보러 갈 생각입니다. 고작 스물여섯 장밖에 안 건 조촐한 사진 전시회이지만, 자기 마음과 삶을 고루 담아서 손수 뽑아내 걸어 놓은 저 사진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일도 좋다고 느끼거든요. 집에 하루 더 빨리 돌아가는 일도 좋지만, 하루 늦게 돌아가는 일도 나쁘지 않아요. 집에 빨리 가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즐기는 일이 목적이니까요. 뭐, 그래서 요새는 돈버는 일도 안 하고 있습니다. (4339.9.1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나귀님님의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21) : "반쪽이" 최정현의 표절작..."

<반쪽이, 세계 오지를 가다>는 처음 나왔을 때, 어느 작품 하나가 아니라, 책 전체를 놓고 표절이라고 하여 적잖이 비판을 받고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떠올립니다. 일간신문에도 관련기사가 나왔고, 표지와 본문 대조 사진까지 함께 들어간 기사를 본 일이 떠오릅니다. 이분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나마 갖고 있던 책은 다 헌책방에 내놓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 정도만 갖고 있기 때문에, 그때 관련기사라든지, 다른 도움자료가 없어서, 무언가 덧붙이고 싶은데 덧붙일 수 없네요. 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소박한 삶
- 지은이 : 레기네 슈나이더
- 펴낸곳 : 여성신문사(2002.2.15.)
- 책값 : 8000원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돈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은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도시사람들만 겪는 돈 문제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 자원과 에너지가 어떻게 낭비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22쪽〉


 돈으로 물건을 사서 쓰는 세상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 풉니다. 자기 손으로 지어내는 물건이나 먹을거리는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누구한테 무엇인가를 선물할 때에도 돈을 주고 살 뿐이지, 손수 마련하는 일이란 보기 드뭅니다. 떡국도, 만두도, 김치도 다 사서 먹으니까요.

 

 이렇게 돈으로 모든 일을 풀다 보면,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밖에 없고, 이러는 가운데 ‘물건도 돈으로 사고, 쓰레기도 돈으로 치우면 그만’이라는 버릇이 몸에 배어듭니다.


.. 값비싼 선물 공세를 펴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시간이 너무도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즉, 선물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을 메꾸려 하는 것이다 ..  〈51쪽〉


 적잖은 사람들이 ‘옛날이 좋았어’ 하고 떠올리는 옛모습이란, 사람다운 마음, 이를테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있는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 사람과 온갖 목숨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마음쓰던 삶터,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어도 도둑이 들지 않는 마을 문화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리워하는 지난 옛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까닭은,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 삶에서 빠져나오기 싫기 때문이지 싶어요. 자기부터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사람들한테 펼치고픈 마음은 없이, 남들이 자기한테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테고요. 자동차를 몰 때는 경적을 울리기만 할 뿐, 빠르기를 늦춰 다른 차가 먼저 가도록 마음을 쓴다거나, 자전거나 걷는사람이 먼저 가거나 마음놓고 다닐 수 있도록 눈길을 두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도 느낍니다.


.. 미래에는 산업생산품의 풍요가 아니라, 그런 걸 만들어내느라고 우리가 파괴해 버린 것들, 즉 자연ㆍ시간ㆍ공간ㆍ여유ㆍ건강ㆍ환경 등이 중요해진다. 이제 한적함과 고요함이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걸 얻으려면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늘날엔 시장을 보거나 자동차를 몰 때,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소란과 번잡을 참아내야 한다. 다세대 주택의 벽들은 너무나 얇아서 이웃들이 내는 별별 소리가 모조리 들린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너무도 자극을 받은 나머지 이제는 오히려 고독과 정적을 겁내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너무도 낯설어진 것이다 ..  〈27쪽〉


 장마가 걷히니 날이 푹푹 찝니다. 방 온도가 27도나 됩니다. 잠깐잠깐 집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쐽니다. 오랜 비가 내린 뒤끝이기 때문에 밤하늘 별이 대단히 잘 보입니다. 안경을 끼고 올려다보니 미리내도 얼핏 보일 듯합니다. 다른 별도 깨끗하게, 굵게 보입니다. 개 짖는 소리도 없고, 차 나다니는 소리도 없습니다. 개구리와 벌레 우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제가 사는 산속은 사람이고 자동차고 들어올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야 집이 이런 시골이니, 밤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느끼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날마다 느끼는 모습을 보려고 시골로 휴가를 떠나시겠지요? 그러면 저는 맨날 ‘휴가를 즐기는’ 셈인지 모르겠네요. (4339.7.31.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지성자연사박물관 1
백남극 / 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뱀 - 지성자연사박물관 1
- 글쓴이 : 백남극, 심재한
- 펴낸곳 : 지성사(1999.3.3.)
- 책값 : 15000원


.. 뱀은 머리를 제외하고는 몸 전체가 땅에 닿기 때문에 다리가 필요치 않다. 좁은 빈틈을 지나갈 때는 다리가 없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 또 다리가 없으니 앞다리를 받쳐 주는 어깨뼈도 당연히 있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뱀이 큰 먹이를 삼키는 데 매우 유리한 조건이 된다 ..  〈25쪽〉


 ‘뱀’이라는 짐승을, ‘쥐’라는 짐승을 굳이 알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지난날은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살았으니 뱀을 잘 알아야 했겠지만(뱀에 물려서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요즘 같은 때, 뱀을 알아서 어디에 쓸까요. 아마도 그림책으로만, 또는 텔레비전 다큐멘타리로만 만날 뱀이라고 봅니다. 뱀 하면 곧바로 이어서 떠올릴 만한 개구리나 쥐도, 시골에서조차 하루하루 줄어듭니다. 도시에서는 더욱 자취를 감추겠지요. 그나마 ‘뱀’은 이렇게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주기는 하는데, ‘쥐’­를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줄는지는, ‘참새’나 ‘비둘기’를 자연생태 이야기책으로 다루어 줄는지는…….


.. 뱀 쪽에서 보면 독액 분출은 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시간을 버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  〈66쪽〉


 사람 아닌 목숨붙이 삶을 알아보거나 헤아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갈까요. 아이들은 왜 짐승 기르기를 좋아할까요.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는 왜 온갖 짐승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야구니 축구니 농구니 뭐니 하는 운동선수단 상징물에 짐승이 많이 쓰일까요. 짐승들을 사랑해서? 짐승들은 우리 이웃이라서? 이 세상은 사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터전이라서?


.. 이처럼 뱀의 천적들은 많이 있으나 자연계에는 먹이사슬이 잘 이루어져 있어 뱀의 생존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근년에 와서 인간들이 보신문화에 의한 상업주의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뱀을 잡아 생존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 ..  〈56∼57쪽〉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느끼고, ‘우리들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다른 목숨붙이’를 받아들이는 데에, 뱀이고 쥐이고 다른 짐승이고 살피고 헤아리는 뜻이 있을까요. 때로는 동물실험을 한다면서 살피기도 하겠고, 돈벌이를 목적으로 살피기도 하겠지요. 이 모두를 넘어서 누구나 즐겁게 어울리고, 다 다르게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뜻이 있을까요.

 뱀도 쥐도 개구리도, 참새도 비둘기도 까치도, 지렁이도 바퀴벌레도 개미도, 모두 우리와 똑같은 목숨붙이고 소중한 자기 삶을 꾸립니다. 뱀한테도 하느님이 있을 테며, 개미한테도 하느님이 있지 싶습니다. 밥이 되어 준 쌀한테도, 반찬이 되어 준 배추와 무한테도 하느님이 있을 테지요. 우리가 《뱀》과 같은 자연생태 이야기책을 펴내고 찾아서 읽고 헤아리는 일은, 우리 둘레에 있으나 우리 스스로 제대로 못 느끼고 있는 하느님을 느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백남극, 심재한 님은 뱀을 사진으로 찍고, 뱀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저는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고, 헌책방과 책과 우리 말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어쩌면, 백남극 님과 심재한 님은 뱀을 보며 세상을 읽고, 저는 헌책방을 보며 세상을 읽는지 모르겠습니다. (4339.8.19.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