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빨래


 누구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아무개는 아침 일찍 책을 읽는다는데,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빨래를 한다. 예전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빨래를 했지만, 요새 하는 빨래는 예전과 다르다. 간밤에 보일러가 돌아가며 덥혀진 물로 하는 빨래이다.

 이제 곧 낮이 되는데, 지금 내가 일하는 방은 온도가 14도. 요즈음 한낮에는 15도를 넘기기 힘들다. 겨울이니까. 밤에는 11도까지 내려가는데, 11도 밑으로 내려가면 보일러가 돌아가도록 맞춰 놓았기에 이보다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밤에 한두 차례 보일러가 돌아가고, 이렇게 돌아가는 동안 많지는 않아도 더운 물이 조금 생긴다. 이 덥혀진 물이 아깝기에 아침에 빨래를 한다.

 덥혀진 물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따뜻하지는 않다. 하지만 찬물과 견주면 얼마나 호강인가. 내가 찬물 빨래에서 더운물 빨래로 돌아선 지는 얼마 안 된다. 굳이 더운물을 쓰고프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더운물을 쓸 수 없이 살았으니까. 더운물 없는 곳에서 살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2003년 봄까지 살았던 집은 밤에 0도 안팎까지 온도가 떨어져서 이불을 두 겹으로 뒤집어쓰고 누워도 코에서 김이 나오는 곳이었다. 이 집에서는 겨울만 되면 물이 얼어붙어서 더운물 빨래고 찬물 빨래고, 아예 빨래를 못하며 지내기도 했다.

 내일도 아침에 빨래를 하겠지. 겨울이니까. 겨울에는 밤에 보일러가 돌아가고, 보일러 돌아가며 조금 얻은 덥혀진 물을 그냥 버리기에 아까우니까. 물이 조금 넉넉하다면 머리도 감고, 머리 감을 만큼이 안 되면 머리는 그냥 찬물로 감지, 뭐. (4339.12.25.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역전 풍경
김기찬 지음 / 눈빛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삶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진책
 - 김기찬 님 사진책 《역전 풍경》


- 책이름 : 역전 풍경(서울역 부근 1968~1983)
- 사진찍은이 : 김기찬
- 펴낸곳 : 눈빛(2002.10.1.)
- 책값 : 2만 원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처음 본 때는 2002년. 네 해가 지난 지금, 이 사진책을 다시 펼쳐 봅니다. 성냥팔이 아줌마, 빗장수 할아버지, 호떡장수 아저씨, 생선장수 할머니가 보입니다. 예전에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한 질감이 새삼 느껴집니다. 군데군데 좀 떡이 되거나 허옇게 날아간 곳이 보이네요. 밝고 어두운 곳이 아주 잘 맞은 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사진재주에서는 어느 만큼 모자랄 수 있지만, 사진에 담는 마음과 손길이 살갑거든요.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세상과 사람들과 서울역 둘레 삶터가 애틋하거든요. 멀거니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좋군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좋은 사진’만 몰래몰래 찍으려는 손놀림이 보이지 않아 반갑네요. 네 해 앞서 이 사진책을 사 두기 참 잘했습니다. 그때, 이 사진책을 죽 둘러보고 짤막하게 쓴 글이 있는데, 살을 붙이고 다듬어서 새로 이 사진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 -

 김기찬 님 사진책 《역전 풍경》을 보았습니다. 책값 이만 원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었지만(2002년에는) 책방에서 《역전 풍경》이라는 사진책을 구경하는 동안, 이만 원이 아닌 삼만 원이었어도 사서 볼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산 뒤 혼자서 집에만 놓고 보지 않고, 틈틈이 갖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만나는 동무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사장님에게도 보여드리며 좋은 느낌을 나누었습니다. 가방이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좋은 사진을 두루 구경시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보람이 훨씬 큽니다.


.. 처음 사진에 입문할 즈음에 나의 사진 주제는 행상이었다. 처음부터 행상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출퇴근길에 자주 마주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이 갔다.
 아기를 업고 머리에는 풋과일이 잔뜩 담겨진 함지박을 인 아낙네와 어떤 노인은 어깨에 싸리비를 메고 또 어떤 이는 열쇠꾸러미를 가슴에 앞치마 두르듯 두르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잘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 한 권 책으로 남기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주말이면 뛰쳐나갔던 곳이 바로 서울역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역전엔 사람들의 통행량이 많은 것은 변함없지만 한두 시간 가만히 서서 들여다보면 30여 년 전 내가 사진기를 메고 처음 드나들던 역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  〈책끝에 붙인 말〉


 〈교보문고〉는 웬만하면 안 갑니다만, 이곳에 갈 일이 있으면 언제나 들여다보는 곳은 한두 군데 있고, 이 가운데 한 곳이 ‘사진’ 칸입니다. 일 때문에 어린이책 칸도 꼼꼼이 살펴보지만, 책값이 비싸서 좀처럼 사보기 어려운 사진책 칸은 부지런히 둘러봅니다. 짧은 동안에 더 많은 사진책을 구경하려고 애씁니다. 삼만 원짜리 사진책을 그날 하루에 열 권을 본다면 삼십만 원이 굳은 셈이고 스무 권을 보면 육십만 원이 굳은 셈이거든요. 사진책은 한 번만 보고 그치는 일이 없습니다. 으레 백 번 이백 번쯤은 다시 보고 또 봐요. 그렇게 보며 이 사진이 어떻게 나왔고, 사진에 나오는 모습은 무얼 담았는지, 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무얼 생각했는가를 가만가만 짚습니다.

 사진 한 장이 대단해서 그렇게 살피지는 않습니다. 글 한 줄이 대단하지 않듯 사진 한 장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게 있다면 바로 우리들 삶이에요. 그러니까, ‘대단한 우리들 삶’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우리들 삶이 지닌 궂거나 좋은 모습을 가리거나 속이거나 감추거나 비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우리한테 새로운 기운과 힘을 준다면, 참으로 훌륭한 글이나 사진이나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사진책을 찾아봅니다. 아무것 아니고 그냥 한 번 쓱 보고 말면 되는 사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 사진 한 장을 몇 분쯤 그대로 들여다보셔요.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모습, 그리고 온갖 푸나무와 짐승과 자연과 하늘과 땅이 가슴으로 살며시 파고듭니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낯빛이 없는 사람, 찌푸린 사람, …… 온갖 모습으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때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았고, 지금은 어떠하며 앞으로는 어렇게 달라지고 바뀌는가도 찬찬히 짚어 봅니다.


 - 2 -

 지난주에 〈교보문고〉를 찾아갔을 때, 새로 막 나와서 책꽂이 한쪽에 곱게 자리하고 있는 《역전 풍경》(눈빛,2002)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옆에 있는 보기책(견본)을 펼칩니다. 한 장 한 장 차근차근 넘깁니다.

 1969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역을 중심으로 사진쟁이 한 사람이 바라보고 느끼고 부대끼며 담아낸 모습이 펼쳐집니다. 서울역으로 와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어딘가에서 와서 서울역에서 내려 제 갈 길을 가는 사람, 서울역 둘레에서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을 붙들고 장사를 하는 사람, 1980년대까지 있던 ‘냉차’를 파는 아지매와 그 아지매를 따라 장사 나와서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가는 계집애와 사내애. 비 오는 날 비닐우산을 팔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갑자기 내린 비에 우산이 없어 서울역 앞에 멀거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아주머니 치마 속으로 들어가 비를 긋는 꼬마. 치마저고리를 벗어서 우산처럼 걸친 할머니, 바지저고리가 젖을까 봐 위로 잔뜩 치켜올리고 걷는 할아버지, 학교가방을 머리 위에 이고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꾹 찔러놓고 성큼성큼 걷는 학생, 새벽같이 일어나 하얀 김을 내뿜으며 손수레를 밀며 장사 나오는 아줌마, 추운 겨울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나가는 길손이 껌 한 통 사 주길 기다리는 할머니, 짐자전거에 두 길이 넘는 많은 짐을 묶느라 애쓰는 일꾼들, …….

 내 모습이고 네 모습이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가 간직했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흔한 모습이고 흔했던 모습입니다. 이 사진에 담긴 모습은 1960∼1980년대 모습이지만, 지금은 또 지금대로 2000년대 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모습을 그냥 흘려넘길 뿐, 지나쳐갈 뿐, 붙잡거나 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우리들이라서, 지금 우리 모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들이라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도 마음을 쓰지 않고, 우리 정치나 문화나 경제가 어떻게 뒤집어져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느냐 싶기도 합니다. 정작 소중한 삶은, 참으로 애틋하고 눈물겹기도 한 삶은 우리 곁에 있는데, 아니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참말로 애틋하고 눈물겹기도 한 모습이며, 이런 우리 삶이 차곡차곡 사진에 담겨서 좋은 이야기를 건네거나 나누기 마련인데.

 사진책 《역전 풍경》에 나오는 모습은 아스라한 옛일일까요. 앞으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모습일까요. 또, 이런 모습이 옛날 모습이면 어떻고,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면 어떨까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우리 삶이요, 나날이 새로워지는 우리 삶터며, 언제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바삐 움직이는 우리 세상이잖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해묵은 모습이라 할 서울역 둘레 모습, 서울역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책 하나는 무엇일까요.


 - 3 -

 고속철도(KTX)를 놓는다며 서울역 너른터를 없앴습니다. 용산역 너른터도 없앴습니다. 너른터가 사라진 자리에는 삐쩍 마른 나무를 돈 주고 사다 심었습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용산역 너른터에서는 풍물마당이 펼쳐지며 사람들이 북적이며 막걸리잔을 부딪히기도 했는데, 이런 놀이판마저 사라졌습니다. 틈틈이 노동자 집회가 있던 역앞인데, 수천 수만에 이르는 노동자 물결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높다랗고 커다란 전자상가 새 건물이 들어섰고, 불빛 번득이는 성탄절 장식이 가득합니다.

 서울역과 용산역 너른터를 없앤 까닭은, 집회를 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꿍꿍이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까닭이야 어찌 되었든, 서울역이고 용산역이고 청량리역이고 하루하루 너른터가 줄거나 사라지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눈길 한 번 안 둡니다. 서울역이 서울역다웠을 때를 잊어버리고, 우리가 우리다웠을 때를 잊어버립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모습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잊습니다. 그저 코앞에 보이는 얕은 이익에만, 눈손아귀에 쥘 수 있는 돈-이름-힘에만 매달립니다.

 너른터가 사라진 서울역에서, 손바닥만큼 줄어든 좁은터에서 한뎃잠을 자는 사람과 어딘가를 오가는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이제 서울역 앞 너른터는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쉴 수도, 모일 수도, 무엇을 즐길 수도 없이 되었습니다. 쉬고 싶으면 ‘돈 내고 어느 가게라도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돈 내고 들어가는 가게에도 ‘돈을 펑펑 쓰지’ 않으면 눈치를 주기에 서둘러 일어나야 합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지는 서울역 앞입니다. 서울역 앞에 있던 수많은 헌책방은 자취를 감추어 딱 한 곳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로이 북적이던 1960∼1980년대 서울역은 책도 자유로이 오가며(하지만 못 읽게 하는 책도 많았습니다) 헌책방도 넉넉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기차를 기다리며 헌책방에서 책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헌책방에서 책 하나 살필 틈조차 내다 버린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 앞은 소주 몇 병을 안주 없이 들이키고, 길바닥이고 걸상이고 아무 데나 드러누워 자는 한뎃잠이 차지가 되었습니다. 용산역 앞은 이마트 주차장이 떡하니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돈-이름-힘에 푹 빠지면서 세상 밖으로, 사회 밖으로 내몬 사람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돈 먹는 재벌들 차지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임자가 되어 서로 복닥이기도 하고 부대끼기도 하던 서울역이, 어느새 사람 발길 뚝 끊기고 사람냄새 사라지며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뒷골목처럼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는 서울역 사람냄새입니다. 사진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역 사람들 웃음입니다. 앞으로도 이처럼 사진으로만 서울역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을까요? 사진이 아닌 삶으로, 사진에 담긴 얼굴이 아니라 맨눈으로 바라보고 함께할 얼굴은 이제는 끝일는지요.

 지난날 모습이 더 아름다웠다고 할 수 없고, 지금은 안 아름답다고 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아름다움이 어찌 달라질지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독재자 세상은 사라졌지만, 먹고살기 팍팍함은 많이 줄었다지만, 어깨동무하면서 웃고 우는 세상 또한 어디론가 사라졌고, 먹고살기 수월해진 사람이 늘어났어도 넉넉해진 마음과 살림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즐거운가요? 살 만합니까?

 서울역은 개발독재가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바삐 움직여야 한다는 구실로 나다움과 사람다움을 기꺼이 내팽개친 우리들이 무너뜨렸습니다. 사진책 《역전 풍경》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를 넌지시 이야기한다고 느낍니다. 아니, 말을 걸고 있습니다. 김기찬 님은 우리한테 《골목안 풍경》과 《잃어버린 풍경》을 남겼고, 여기에 《역전 풍경》까지 하나 더 남겼습니다. 김기찬 님이 계실 하늘나라는 사람냄새 가득한 아름다운 곳일는지요? (4335.12.14.흙.처음 씀/4339.12.25.달.고쳐 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구태여 헌책을 찾나요?

 


 어제 낮, 문화방송 어느 풀그림 사회자하고 만나보기를 했다. 이때 받은 물음 가운데 두 가지 대답. 이 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에다가, 시간이 짧아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 물음 1 -
 “새책도 있는데, 왜 헌책을 찾으러 다니시나요?”

 “저는 헌책방만 다니지 않습니다. 새책방도 곧잘 다닙니다. 다만, 헌책방을 좀더 자주 다닌다뿐인데, 이달에 나오고 한 달이 지나면 그 책은 새책일까요 헌책일까요. 지금 나오는 책들 가운데에는 예전에 나왔다가 다시 나오는 책도 많습니다. 이런 책은 새책일까요 헌책일까요. 세계고전명작이라고 해서, 또는 한국현대소설전집이라고 해서 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리영희 전집이라든지 송건호 전집이라든지, 곧 나올 이오덕 전집이라든지 여러 가지 전집이 있는데, 이런 책은 새책일까요 헌책일까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데 보면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라는 책이 있어요. 이런 책은 1999년부터 찍어서 파는 책도 있고 1980년에 나왔는데 여태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책이 있어요. 그래서 교보나 영풍에서는 2006년 12월에 찍은 판을 만날 수 있고, 헌책방에서는 1999년이나 1985년이나 1989년이나 2004년에 찍은 판을 만날 수 있는데, 교보에서 만난 책은 새책이고 헌책방에서 만난 책은 헌책일 텐데, 두 가지 책은 왜 이렇게 나누어야 할까요? 또, 책에 적힌 값을 빼놓고 새책과 헌책으로 나눈다는 일이, 책에 담긴 줄거리를 읽고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데에 뭐 달라지거나 영향 끼칠 대목이 있을까요? 저는 그저 책을 읽을 뿐입니다. 그래서 책을 바라보는 눈길, 우리 삶에 참으로 도움이 되고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돌아보면서 가꾸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책을 찾을 뿐입니다. 그런데 새책과 헌책을 억지로 나누면 책을 제대로 못 보고 말아요. 생각이 치우친달까요. 껍데기가 낡았다고 줄거리가 낡아질까요? 책에 김치국물이 묻었다고 줄거리에도 김치국물이 묻을까요? 책이 반드레하다고 줄거리도 반드레할까요? 책껍데기가 아름답고 멋져 보인다고 줄거리도 아름답고 멋질까요? 책 꾸밈새가 좀 어설프다고 줄거리가 어설플까요? 이름나고 훌륭하다는 분이 쓴 책이라고 모두 이름날 만하고 훌륭한 줄거리를 담을까요? 우리한테 낯선 글쟁이가 쓰고 처음 보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고 줄거리가 허접하거나 보잘것없을까요? 이른바 ‘편견’이라는 것,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갖고 싶지 않아서, 제 생각과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세상을 부대끼면서 제 자신을 가꾸고 싶어서 헌책방을 찾고, 헌책을 있는 그대로 느끼려 하고 있습니다.”

 

- 물음 2 -
 “책 만드는 일을 하신다고 했는데, 새책을 만드는 일이잖아요. 책을 만드는 몸가짐이라고 한다면?”

 “제가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책은 여러 가지인데, 이 가운데 제게 참으로 고맙고 좋은 책은 ‘서른 해 앞서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또한 ‘서른 해 앞서 나왔는데 지금 읽어도 좋고, 앞으로 서른 해 뒤에 읽어도 좋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책은 더욱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새로 펴내는 책이라 한다면, 앞으로 서른 해 뒤에 누군가 찾아서 읽는다고 할 때에도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을 엮어내려 합니다. 제가 책을 엮는 마음이라면 이런 것이고, 이런 마음을 고이 간직하면서 이어나가려고 헌책방 나들이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른 해 앞서 나왔는데 지금 읽어도 좋다고 느낄 만한 책을 찾으면서, 제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배운다고 할 수 있어요.”

 

 다른 물음도 몇 가지 더 있었으나 잊어 버렸다. 뭐, 짤막짤막한 신변잡기 같은 물음도 있었고. (4339.12.21.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시책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는다

 


 고시책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늘어납니다. 또, 이런 헌책방은 제법 장사가 잘되는 듯하고, 아직 ‘고시책 헌책방’ 가운데 문닫은 곳을 보지 못했습니다. 고시책을 파는 곳은 새책방도 적잖이 잘되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시책이나 수험서를 찾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런 책만 다루는 책방이 새책방이나 헌책방으로 얼마든지 문을 열 수 있겠지요. 매장으로든 인터넷으로든.

 

 그러고 보면, 사진책이나 그림책(미술―디자인까지)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인문사회과학책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시모음이나 소설책만 다루는 전문 헌책방, 전집이 아닌 낱권 어린이책을 다루는 전문 헌책방, 만화책만 다루는 전문 헌책방 들은 문을 열 수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책을 꾸준하게 찾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또, 이런 책을 꾸준하게 펴내는 출판사도 적고요.

 

 〈한겨레21〉에서 “2006 올해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별책부록을 내서 잡지를 사는 사람한테 덤으로 줍니다. ‘예스24’와 함께 기획해서 낸 별책부록인데, 이 책에 이름을 올린 “2006 올해의 책”을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 눈높이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 기자들이 알아보는 책, 평론가들이 책소개를 쓴다며 다루는 책이 무엇인가도 가만히 짚어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성이 없음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4339.12.17.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정만화 2 강풀 순정만화 5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 순정만화(1ㆍ2) - 강풀  2006.10.31 10:13

- 책이름 : 순정만화(1ㆍ2)
- 글/그림 : 강풀
- 펴낸곳 : 문학세계사(2004.2.∼2004.5.)
- 책값 : 한 권에 12000원씩


 인터넷만화를 그리는 이 가운데 나라안에서 가장 이름이 높다는 강풀(강도영) 님. 손이 아닌 셈틀로 그리는 만화를 썩 내켜하지 않기에 이분 만화는 몇 번 지나가며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터넷만화도 마찬가지고요. 너무 손쉽게 그리려 한다는 생각도 들고, 기계로 꾸민 빛깔이 제 눈에는 아주 따갑고 낯설고 사람냄새가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온갖 빛깔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셈틀입니다. 하지만 온갖 빛깔을 다 나타낼 수 있으면 뭐하나요. 사람냄새, 풀냄새, 꽃냄새, 흙냄새가 없는걸요. 이렇게 따지면 요즘 물감도 자연에서 얻기보다는 화학물질을 뒤섞어 만드니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그나마 질감이라도 있기는 하지만.

 한편, 너무 손쉽게 그린다는 느낌이 드는 인터넷만화는 ‘누구나 배워서 그릴 수도 있’다는 좋은 대목이 있어요. 뭐, ‘누구나 배워 쉽게 그린다’고 해도 아무나 대충 그릴 수 있는 그림이나 만화가 아닙니다. 그만큼 애쓰고 갈고닦아야 합니다. 다만 손그림 만화보다 품이 적게 들고, 어차피 인터넷으로 그림을 보여주는 세상이라면 손그림을 긁어서 인터넷에 띄우나, 처음부터 셈틀로 그려서 띄우나 마찬가지일 테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셈틀로 그리는 편이 보기에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어요. 손그림 만화는 종이에 찍어서 맨눈으로 보아야 제맛이고, 셈틀그림 만화는 인터넷으로 보아야 제맛이니까요. 강풀 님 《순정만화》도 어느 만큼은 ‘종이보다 인터넷 화면’이 더 보기에 낫습니다.

 강풀 님이 그리는 만화는 널리 사랑받고 좋은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언제나 세상살이에 가까이 다가서면서 우리들한테 ‘어떤 생각이나 이야기’를 억지로 집어넣으려 하지 않아요. 자기가 겪고 느끼고 본 그대로 꾸밈없이 드러내 보일 뿐입니다. 머리로 꾸미거나 지은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부대낀 이야기를 자기 입이나 동무들 입을 거쳐서 들려줍니다. 그러니 이분 만화에는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싱싱합니다. 파릇파릇한 기운이 있습니다. 잠깐 보고 지나가면 그만인 다른 인터넷만화와는 달리,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는 힘, 기운, 느낌이 서려 있어요.

 낯선 사람을 만나며 차근차근 인연을 쌓다가 자기 삶이 차츰 바뀌고, 어느 결엔가 서로를 생각하고 바라는 마음이 사랑으로 탄탄하게 자리잡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순정만화》입니다. 사내 셋, 계집도 셋, 이들을 둘러싼 크고작은 인연이 하나씩 엉키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하면서 사랑이든 만남이든 헤어짐이든 미움이든 멀리 있지도 않으나 바로 옆에 있기만 하지도 않음을 가만히 느끼도록 합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얼마든지 보이는 사람 사귐을 생각하도록 합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참 흔한 이야기입니다. 뻔한 줄거리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로서로 좋게좋게 끝내는’ ‘순정만화’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뻔하고 흔한 이야기를 잘 그리네요. 뭐랄까,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눈에 힘을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림 그린 이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그렸으니, 그림 보는 우리들도 눈에 힘을 빼고 즐길 수 있습니다. 모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요 놀이라 하겠으나 ‘어떻게 먹고살까’를 생각하지 않고 바삐 돌아가는 우리들한테,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우리는 또 우리대로’ 어떠한 길을 스스로 찾아가면 좋을까를 넌지시 느끼게 해 줍니다.

 문득, 만화쟁이 강풀 님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대로’ 꾸밈없이 그릴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다른 만화쟁이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누구나 다 모르는 줄’ 잘못 생각하는구나 싶고, ‘누구나 다 모를 만한 이야기를 억지로 찾으려’ 바둥거리고 있으니, 마음을 적시고 즐거운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는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만화대사로 쓰는 말을 좀더 다듬고 걸러낼 수 있으면 훨씬 좋은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책값을 지나치게 비싸게 붙였고, 책도 지나치게 겉멋들여서 꾸몄습니다. 그린이와 줄거리하고는 하나도 안 어울리는 부풀린 꾸밈새 때문에, 지난 이태 동안 이 책을 거들떠보지 않다가 이제서야 찾아서 보았습니다. (4339.10.31.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