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님의 "1972. 8. 3. 개정 금리 안내 (상업은행)"

1997년에 아이엠에프 터진 뒤, 다시 한 번 저 금리가 나타난 적이 있읍죠. 저는 그때 여자친구한테 "돈없는 남친은 필요없다"면서 차여, 새삼 돈없이는 서러워 못살겠구나 싶어 없는 월급 탈탈 털어 적금을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금리가 24%에다가 한 해에 한 번씩 생일보너스라고 해서 웃돈을 얹어 주기까지 했습니다. 고작 다달이 10만 원 붓는 적금이었는데 말이지요. 나중에 은행권 분한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농협에서는 1000만 원 1년 거치 하면 1년 뒤에 이자를 1000만 원 주는 적금도 있었다고 합니다. 뭐, 그래 봤자, 돈있는 사람만 돈놓고 돈먹기를 할 수 있던 그때였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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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 65세 안나 할머니의 국토 종단기, 2009년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황안나 지음 / 샨티 / 200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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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 - 내 나이가 어때서?
 : 예순다섯 황안나 할머님 걷기 여행

 
- 책이름 : 내 나이가 어때서?
- 글쓴이 : 황안나
- 펴낸곳 : 샨티(2005.8.5.)
- 책값 : 10000원

 
 〈1〉 익산 사는 할머님

 
 익산에 사는 할머님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만두게 되었지만, 이오덕 선생님 원고 갈무리를 하면서 알게 된 분입니다. 이 할머님은 이제 여든에 가까운 나이인데, 일흔 넘은 나이에 글쓰기에 눈을 떠서 당신이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틈틈이 글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쓰는 글이 아니라 ‘우리 말 다듬기’까지 하면서 쓰는 글입니다. 할머님 나이와 대면 반도 안 되는 젊은 사람들은 ‘우리 말 다듬기’는커녕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엉망인 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가실지 알 수 없는 익산 할머님은 부지런히 국어사전 들여다보고, 《우리 글 바로쓰기》나 《우리 말 살려쓰기》 같은 책을 뒤적이면서 당신이 여태껏 잘못 알고 잘못 쓴 말이 없는가를 살핍니다.


..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우리는 통일전망대를 찾았다. 2천 리 길을 걸어서 도착했던 곳. 그 먼길을 걸어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나는 내 발로 내 일기를 땅 위에 꾹꾹 눌러 쓴 거였다! ..  〈252쪽〉


 익산에 사는 그 할머님은 눈이 안 좋습니다. 늦은 나이에 ‘책읽는 재미’를 붙이셨다는데, 눈이 아파서 책을 보기 어려우니 참 슬프고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젊을 적에는 딸아들 뒷바라지하느라, 또 남편이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지내는 동안 집안살림 꾸리랴 책 한 권 읽을 사이 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해 끼치지 말고 신세지는 짓은 하지 말자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의 신세 안 지고 살 수가 있나? 돌아보면 모든 게 다 신세진 일뿐이다. 농부들 덕에 먹고, 옷 짓는 분들 덕에 입고, 신발 만드는 분들 덕에 이렇게 몇날 며칠을 걷고 있으니 ..  〈78쪽〉


 낮에는 조그맣게 가꾸는 밭에 나가서 밭일을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눈에 힘을 주어가며 셈틀 자판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글을 쓰신답니다. 반 해쯤 앞서는 인터넷도 배우셨는데, 아직은 인터넷편지만 보낼 줄 알고 다른 것까지는 못 배우셨다고 하더군요.


..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호젓한 산길을 걷는다. 고요한 길을 걷자니 마음이 절로 경건해진다. 대자연은 그 자체로 큰 예배당이며 사찰이 되어 주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가식이 없고, 억지가 없고, 포장이 없는 자연 앞에 서니 나 역시 발가벗고 나를 마주하고 싶어진다. 지금껏 살면서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들, 남에게 준 상처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사람에게뿐 아니라 이 자연의 뭇 생명들에게는 또 어떠했을까? ..  〈166쪽〉


 익산 할머님이 못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농사지을 줄 알고, 집안일 할 줄 알고, 집안일에서도 장 담그기부터 옷짓기까지 두루 할 줄 압니다. 언뜻 보면 ‘돈되는’ 일이란 없다고 하겠지만 하나같이 ‘사람되는’ 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보듬고 돌보는 일이지 싶습니다. 남 앞에서 자기를 뽐내거나 내세우거나 드러낼 만한 자랑거리는 없지만, 당신 스스로 좋아하고 즐기고 홀가분하게 삶을 가꾸거나 꾸릴 일거리와 놀이감이 넉넉한 분이라고 느낍니다.

 
 〈2〉 온갖 세상사람들

 
 내일쯤 서울로 책방 나들이를 떠날까 합니다. 이레 동안 시골집에서 조용히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이불 털고 지냈습니다. 여럿이 함께 먹는 밥도 맛있지만, 고구마 송송 썰어서 누런쌀로 지어 혼자 먹는 밥도 맛있습니다. 반찬은 배추속이나 김치나 참치. 때때로 된장 푼 국수를 삶아서 먹습니다. 이렇게 지내노라면 익산 할머님처럼 돈벌 일이란 없지만 돈쓸 일도 없습니다. 돈 나갈 구석이 있어야지요. 돈 나갈 구석이라면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 술 마시는 자리에서, 책방을 찾아가면서 책을 사면서, 사진을 찍으면서뿐. 이때 빼고는 돈쓸 일이 참 없습니다.


.. 찻길 옆으로 걷다보면 군인들을 가득 태운 차가 지나가기도 했는데, 짓궂은 군인들이 던진 건빵에 얼굴을 맞은 적도 있었다. 꽤나 아팠지만, 뭐라고 한 마디 대꾸도 못하고 고개 숙인 채 걷기만 했다 ..  〈34쪽〉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은,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습니다. 올봄부터는 거의 자전거로만 다니는데, 틈틈이 고속버스도 탑니다. 여름과 가을에는 고속버스를 한두 번 탔던가. 겨울 들어 날이 추워진 탓에, 자전거가 몇 번 고장나는 바람에 고속버스를 타기도 했지만, 고속버스를 타면 텁텁한 공기가 마뜩지 않아 힘듭니다. 외려 자전거로 서울을 오갈 때가 시원하고 좋습니다.

 다만, 자전거로 318번 시골길을 지나 38번 국도를 잠깐 탄 뒤, 17번 국도를 지나고 42번 국도로 접어들어 용인 시내를 가로지른 뒤 탄천 자전거길에서 서울로 들어서기까지 자동차와 수없이 부대껴야 합니다. 마음씨 좋은 자동차 운전수도 많지만, 마음씨 고약한 찌질이 운전수도 많습니다.


.. 절뚝이며 식당을 찾아갔는데, 혼자인 걸 보더니 두 손 홰홰 내저으며 식사가 안 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먹고 있는데…… 내 꼴이 거지꼴이었는지 몰라도 기분이 엄청 나쁘다. 아니, 진짜 거지라도 그렇지 ..  〈48쪽〉


 그런데 찌질이 운전수만 있지 않고 찌질이 자전거꾼도 있어요. 한강 자전거길을 탈 때 더러 부대끼는데, 값비싼 자전거에 장비를 갖추고 다른 사람들을 놀리는 이들, 또는 얕보는 이들, 또는 다른 사람 위험하게 마구 내달리는 이들. 이런 찌질이 자전거꾼을 보면, 이들이 자가용을 몰 때에도 찌질이 짓을 하지 않겠느냐 싶어 안쓰럽고 불쌍합니다. 한 번 살다가 가는 이 좋은 삶을 왜 저렇게 얄궂게 보내는가 싶어서요.


..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피다가 ‘사회복지’라고 쓴 팻말 앞으로 갔는데, 담당 직원인 듯한, 머리를 들까불러서 올려붙인 총각이 끝도 없이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가만 들어 보니 업무용 전화도 아니다. 할머니라고 깔보나? 눈꼬리에 살짝 힘을 줬더니 옆자리 아가씨가 무슨 일로 오셨냔다. 손에 들고 있던 신청서와 주민등록증, 통장과 도장을 쓱 내밀었더니, 받아들면서 “할머니, 통장 사본을 가져오셔야죠.” 하며 톡 쏘는 거다. 시치미 뚝 떼고 “사본이 뭔데요?” 했더니 나를 힐끗 바라보고는 말 없이 통장을 복사해서 접수를 시켜 주었다 ..  〈73∼74쪽〉


 서울 나들이를 와 보면 모두모두 놀랍습니다.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기는 했지만, 서울 같은 큰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직도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시골놈 느낌을 지우지 못하겠습니다. 높은 아파트와 건물을 보면 ‘우와’ 하면서 고개가 젖혀지도록 올려다봅니다. ‘저 높은 아파트를 어떻게 올렸을꼬?’ 하는 말도 절로 나옵니다. 으리으리 비싼 자동차를 보면 ‘이야’ 하면서 ‘저런 비싼 차를 어떻게 찻길에 끌고 나올 수 있을까. 다치면 어쩔꼬?’ 하는 말도 쉬 튀어나옵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우며 바삐 걷는 사람들을 보면 ‘어어’ 하면서 ‘이 사람들한테 휩쓸려서 저리로 가면 안 되는데, 난 다른 데로 가야 하는데’ 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립니다. 그래도 한 가지, 시골에는 없는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시골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반가운 책들이 곳곳 헌책방에 많이 있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숨이 막히는 매캐한 배기가스라든지, 구역질이 절로 나오는 소독냄새 짙은 수도물 세상인 서울이지만, 며칠만 잘 견디면 다시 맑은 바람과 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꾹꾹 참고 견딥니다.


.. “아이구, 괜찮습니다. 전 강원도까지 걸어가려고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까지 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아, 제가 아주머니를 어떻게 할까 봐 그러세요?
 그는 불쾌해 하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선의를 베풀려고 한 건데 마치 내가 자기를 믿지 않고 의심해서 타지 않는 걸로 알았나 보다. 그랬다면 언짢을 만도 했을 거다. 나는 그저 연방 굽실대며 고맙단 말만 했다. 차는 먼지를 끼얹으며 떠났다. 차도 화난 듯이 보인다 ..  〈136∼137쪽〉


 사흘이나 나흘쯤, 때로는 닷새쯤 서울에서 나들이를 쭉 다닌 뒤 충주로 돌아갈 때면, 가방은 터질 듯이 꽉 찹니다. 짐수레를 끌고 왔다면 짐수레가 묵직해서 잘 끌리지 않을 만큼 책뭉치를 채워 싣습니다. 이리하여, 처음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올 때는 일곱 시간 안팎 걸리던 길이,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때면 으레 아홉 시간은 넉넉히 걸립니다. 가다가 쉬고, 또 가다가 쉬고, 다시 가다가 쉬면서. 여름날 아침 일찍 떠나도 저녁에 해 다 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닿습니다. 옷이고 가방이고 온통 땀범벅이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제 몸에서 나는 땀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어느 술자리에서 제 옆에 앉게 된 어느 분은 “땀냄새 너무 나서 싫다”고 손사래를 치더군요. 그래서 저는 “화장품 냄새도 너무 싫어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 내가 먹은 건 대량 생산된 인스턴트 라면에 단무지에, 누가 먹을지 생각도 않고 만든 커피다. 그러니 그 안에 무슨 기운이 담겨 있겠는가. 배가 불러도 허전한 건 당연한 일일 게다 ..  〈179쪽〉


 올봄부터 자전거로 충주와 서울을 오갔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한 번뿐이기는 하지만 두루 겪은 셈입니다. 그동안 죽 겪어 보기로, 시골에는 참 사람이 없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뭐, 다 아는 이야기지요? 시골에 사람이 없다는 소리는. 젊은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더러 있다면 다방에서 커피 나르는 아가씨쯤 될까나. 한창 바쁜 농사철에도 논이나 밭에서 사람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없는 사람품으로 농사를 짓자니 농약을 지치도록 뿌리는 농사를 지을 테고, 이런 농사가 아니고는 지금 농사일을 버틸 수 없구나 싶습니다. 말이 좋아 유기농이지, 도시사람들 입맛 돋군다는 유기농이지, 실제로 논밭에 엎드려서 풀을 뽑고 김을 맬 농사꾼 처지를 생각해 보셔요. 요새 배추 한 포기에 얼마 하는지 아나요? 10년 앞서 배추 한 포기 값이 얼마인지 아나요? 스무 해 앞서 배추 한 포기 값이 얼마인지 아나요? 자그마치 스무 해 앞서하고 지금하고 배추값이 ‘똑ㆍ같ㆍ습ㆍ니ㆍ다’.


.. 나는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반갑고 고맙다. 한 사람이 자유로워진다면 그만큼 이 우주도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그 자유로 인해 행복해지는 만큼 이 우주에도 행복의 기운이 생기는 거니까 ..  〈200쪽〉


 제가 사는 시골도 공기가 많이 나빠졌습니다. 땅값이 싸고 서울하고 퍽 가까운 편이라 그런지 온갖 공장이 다 들어섰거든요. 제가 사는 산기슭 집에서도 새로 공장터를 닦는 모습이 내다 보입니다. 아마, 충청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이지 싶어요. 경상도도 전라도도 비슷하겠지요. 아니, 전라도는 좀 덜한 듯해요. 하지만 어느 시골이라고 다르겠어요. 더구나 땅 일구어 먹고살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일하는 시간은 가장 길고 받는 일삯은 가장 적은’ 농사꾼이 되도록 가르치는 교사도 학교도 하나 없는 이 나라에서, 무슨 시골에 어떤 희망이 있을는지요. 희망도 없지만 나날이 공기와 물이 더러워집니다.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는 깊은 밤에는 쏟아져내릴 듯 별이 보여야 하고 은하수도 보여야 하는데, 웬걸요, 별만 좀 많이 보인다뿐이지, 또 이 별도 지난해만큼 보이지도 않아요. 게다가 밤에 울던 소쩍새와 휘파람새는 이제 이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3〉 살아갈 길이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길일까요. 어떤 삶이 잘 꾸리는 삶일까요. 꼭 알맞는 답이 있을까요. 저부터 제가 잘 살고 있는지 못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제 몸이 가자는 대로 살 뿐입니다. 더럽고 나쁜 것하고는 담을 쌓으려 하고, 좋고 깨끗한 것을 찾으려 할 뿐입니다. 소중한 제 삶을 알차고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거나 가꾸려고 할 뿐입니다. 먹고살자면 어느 만큼 돈이 있어야 하기에 밥벌이가 되는 일을 하기는 하지만, 돈 많이 버는 일은 안 합니다. 제 살림에는 많은 돈까지 있지 않아도 되니까요.


.. 내가 살아온 길 옆에서 본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이혼하지 않고 살았느냐고. 그건 내가 남보다 참을성이 많다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다. 남편이 그토록 오랫동안 말못할 고생을 내게 안겨 줬지만 그가 노름을 한 것도 아니고, 술이나 여자로 재산을 탕진한 것도, 게으른 것도 아니다. 다만 하는 일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뿐이다 ..  〈95쪽〉


 자전거 고장이 잦기 때문에, 고장 적고 튼튼하고 잘 나가는 자전거 한 대, 아니 두 대쯤 장만하고픈 마음 굴뚝같습니다. 두 대를 번갈아 타면서 틈틈이 손질해서 오래오래 타고픈 마음 하늘같습니다. 하지만 값싼 자전거 한 대 새로 장만할 살림이 안 되고, 지금 타는 자전거를 알뜰히 손봐서 타야지 싶기도 합니다. 그래, 저는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이지, 자전거 모으기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 나 역시 아직도 과거의 아픔을, 증오를 움켜쥐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의 미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올가미가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내 남은 소중한 시간들을 미움과 원망으로 허비하랴. 이만 하면 됐다 싶다. 바람 한 줄기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  〈170쪽〉


 아무튼. 자전거 타기를 즐길 때 어려운 일이 있다면, 앞서 이야기한 찌질이 운전수와 찌질이 자전거꾼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교통정책이 오로지 자동차 중심으로 되어 있는 형편, 자전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이 하나도 없는 대목,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너무 울퉁불퉁하고 많이 패여 있을 뿐 아니라, 거님길엔 턱이 너무 높아서 아찔할 때가 잦기도 한 일도 걱정입니다. 이리하여 즐겁게 자전거를 타다가도 ‘에이, 썅!’ 하면서 입에서 궁시렁궁시렁 욕이 튀어나오고 이맛살을 찌푸리곤 해요. 걷는사람도 자전거꾼도 자동차모는이도, 다 함께 즐거울 길이란 없을까요. 이런 일은 마음쓸 만하지 않을까요.

 
 〈4〉 고이고 싶지 않은 마음

 
 한 자리에 고이고 싶지 않습니다. 한 곳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있는 자리가 아주 느긋하고 높으며 멋들어졌다고 할지라도. 제가 머물고 있는 곳이 돈 걱정 없고 언제나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 즐길 수 있는지 부딪히고 싶습니다. 제 마음에 쏙 드는 책 하나를 골라서 두고두고 읽을 수도 있어요. 많은 분들이 성경을 품에 안고 살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 마음에 쏙 드는 책을 한 권만이 아니라 백 권쯤, 아니 천 권쯤, 아니 만 권쯤, 될 수 있다면 십만 권도 좋고 백만 권도 좋습니다. 제 힘이 닿는 만큼 만나고 싶어요. 만나기 힘들다면 제 손으로 제 마음에까지 들 만한 책을 써내고 싶습니다.


.. 그렇다! 나는 많이 변했다. 평생을 삶의 짐에 눌려서 지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는 자유롭게 살아갈 것이다. 남들은 나더러 늦었다고 말하지만 뭐가 늦었단 말인가! 나는 지금이 좋다. 나를 얽매게 하는 게 없고, 거칠 게 없는 나이, 어딜 가서 혼자 머물러도 좋은 나이, 아무 옷이나 편하게 걸쳐도 좋은 나이, 아무도 경계하지 않는 나이, 그래서 더없이 편한 나이…… 내 나이가 나를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지! 나는 지금 내 나이가 참 좋다 ..  〈244∼245쪽〉


 사진 한 장을 찍어도 ‘오늘 찍은 사진보다 더 나은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올 한 해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보다 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사진 여러 만 장을 찍었어도, 어느덧 10만 장 넘게 찍었는지 몰라도, 사진찍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아니, 그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손아귀에 힘이 있다면 앞으로도 사진기를 늘 꾹 움켜쥐면서 제 눈길에 살가이 다가오는 우리 삶터를 고이 담아내고 싶습니다.


.. 이제는 뭐든 사 달라면 사 줄 수 있는 영감이 되었는데, 이젠 내가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  〈21쪽〉


 예순다섯 나이에 남녘당을 두 다리로 가로지른 황안나 할머님이 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을 한 해하고도 석 달 만에 다 읽어냈습니다. 2005년 8월 16일에 첫 장을 넘겼고, 2006년 11월 25일에 마지막 쪽을 덮었습니다. 참 더디 읽은 셈인데, 더디 읽고 싶었습니다. 아니, 마음먹고 붙잡으면 두어 시간에도 읽어낼 수 있지만, 일부러 야금야금 읽었습니다. 야금야금 읽다가 책꽂이에 꽂아둔 채 잊기도 했습니다. 좀 묵히려고요. 묵혔다가 다시 꺼내어 읽으려고. 다 읽고 한 번 더 읽을 수도 있지만, 한꺼번에 황안나 할머님 삶을, 황안나 할머님이 그동안 어렵사리 어깨에 올려놓고 있다가 스무사흘 만에 가까스로 통일전망대에 내려놓은 짐을, 찬찬히 헤아려 보고 싶었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책은 황 할머님이 스무사흘에 걸쳐서 땅끝마을부터 통일전망대까지 혼자서 두 다리로 걸어간 이야기를 적바림한 책입니다만, 고작 스무사흘 겪어냄을 적바림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예순다섯 해 삶을 스무사흘 동안 돌아본 이야기로 이 책 하나에 오롯이 담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나이 서른둘 어설픈 나이로는 이 책을 함부로 읽어제낄 수 없겠더군요.

 길을 걷다가 펑펑 울기도 하는 할머님 삶을 어찌 한숨에, 한달음에, 후다닥 읽어제낄 수, 읽어버릴 수 있나요. 할머님 걸음걸음 하나하나 조곤조곤 함께 따라 밟으며 차근차근 지근지근 차곡차곡 따라 읊었지요. 할머님이 웃을 때는 나도 따라 웃고, 할머님이 눈물 흘릴 때는 나도 따라 울면서. 서운한 일을 겪을 때는 저도 따라 서운하고 반가운 일을 만날 때는 저도 따라 반가우면서.

  책이란, 책을 써낸 사람 삶이 담기기 마련이니까. 책에 담긴 글을 써낸 사람 삶을 헤아린 출판사 사람 삶도 함께 담기기 마련이니까. 책펴낸 사람들 마음을 헤아려 땀흘려 일한 책마을 사람들(인쇄-제본소-지업사-코팅회사-배본사 들) 손때도 함께 묻어나기 마련이니까. 책마을 사람 모두가 바라는 마음을 고이 담은 책방 사람 손길이 마지막으로 배면서 책꽂이 한켠에 꽂히기 마련이니까. 이런 책을 그저, 내처, 빨리빨리 읽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늘 곁에 두면서, 가방에 언제나 넣어 다니면서, 똥누러 뒷간에 가더라도, 술 한 잔 걸칠 동무를 만나는 길에도, 졸려서 잠자리에 들기 앞서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 사이에도, 한결같이 옆에 놓고 즐기는 책인걸요.

  아쉬움 한 가지. 황안나 할머님은 남녘땅 가로지르기를 해낸 뒤, 남녘땅 바닷가 훑기까지 해냈습니다. 남녘땅 바닷가를 황해, 남해, 동해에 걸쳐 죽 훑은 이야기도 책으로 묶어내마 하고 다짐하셨다는데, 아직 이 다짐을 몸으로 옮기지 않으셨더군요. 하지만 기다립니다. 예순다섯 해가 지나고서야 겨우 남녘땅 걷기를 할 수 있었는데, 예순다섯 해 삶이 비로소 책 하나로 묶여 나왔는데, 바닷가 걷기 이야기도 기다려야 만날 수 있겠지요. 아직 앙금이 가시지 않고, 채 털어내지 못한 아픔과 힘겨움을 선뜻 내려놓을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황안나 할머님 둘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겠지요. 기다립니다. (4339.12.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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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승달


 저녁을 먹은 뒤 쉬하러 앞밭에 나갔습니다. 앞밭이라고 하지만 제가 사는 집 앞에 있는 밭이지 제가 가꾸는 밭은 아닙니다. 다른 분이 가꾸는 밭입니다. 저는 하루에 한 번쯤, 밭두렁이든 산기슭이든 논두렁이든 자리를 옮겨 가며 한 번씩 쉬를 합니다. 한 자리에서 자꾸자꾸 쉬를 보면 안 좋겠지만, 어쩌다가 한 번 누면 괜찮겠지요.

 부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긁다가 등짝이 너무 아파서 불을 끄고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스캐너가 돌돌돌 굴러가는 소리, 잠깐 켜 놓은 노래테이프 소리. 드러누운 채 내다 보이는 초승달. 아, 그렇구나, 아까 쉬하러 나갈 때에도 초승달을 보았지. 내일부터 다시 추워진다는데, 이렇게 그믐으로 다가갈수록 날이 추워지는가?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헌책방 나들이를 하러 서울에 갈 참인데, 꼭 시골집을 비울 때만 날이 추워지네. 그러면 시골집 물이 다시 얼어붙을 수 있는데, 참, 안 맞네.

 깊은 밤, 둘레에는 아무 불빛이 없고, 제가 깃들인 자그마한 집 작은 방 작은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이웃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있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초승달빛도 밝습니다. 참 밝아서 시골길이 훤히 보입니다. 별자리를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이런저런 별자리가 하늘에 새겨져 있는 듯합니다. 마침 저 멀리까지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고요한 밤이군요. 거룩한 밤이군요.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이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켭니다. 멈춘 스캐너에 필름을 다시 얹고 돌립니다. 열린 창문으로 밤바람이 솔솔 들어옵니다. 책으로만 가득한 이 조그마한 방에 꾸역꾸역 머물러 있을 책먼지도 열린 창문으로 빠져나갈까요. 싱그러운 바깥바람이 이 자그마한 방으로도 스며들까요. 어느덧 동지를 지났으니, 이제부터 하루하루 밤은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겠네요.

 동지만 지나면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합니다. 날 춥기는 그대로이거나 더 추워지기도 하지만, 밤이 짧아지니까요. 낮이 길어지니까요. 또다시 새해가 밝아오네요.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질수록 어서어서 한 해 갈무리를 해야겠다고 바지런을 떨게 되는데, 다시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질 때면,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뀝니다. 요사이 내린 눈은 이제 다 녹았습니다. (4339.12.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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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마음을 함께 느끼니 책이 좋다
 [책이 있는 삶 1] 우리 가슴을 울리는 책을 찾아보자


 지지난달 밤, 《마더 존스 자서전》(평민사,1978)을 다 읽었습니다. 참 좋은 책인데 여러 달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읽었습니다. 몸이 고단한 날은 책을 읽다가 곯아떨어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책을 읽느라 다른 일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마더 존스란 사람은 1830년에 태어나 1930년까지, 꼭 100 해를 산 분입니다. 이름은 ‘메어리 존스’이고, 미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해서 이름 앞에 ‘어머니(마더,mother)’란 말을 붙였다고 해요. ‘마더 데레사 수녀’처럼 말이에요. 우리 나라에는 전태일 님 어머님한테 이런 이름을 붙여 ‘이소선 어머님’이라 합니다.

 그 마더 존스가 1923년 어느 날, 버지니아 지사를 찾아갔답니다. 이 버지니아 지사는 지사로 지낸 스물세 해 동안 미국에서는 ‘가장 서민을 생각하는 정책’을 펼친 사람이라고 하는군요(마더 존스 말로는). 찾아간 까닭은 감옥에 애꿎게 갇힌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그저 ‘파업’을 했다는 까닭만으로 경영주들이 고용한 사설 보안관과 군인에게 붙잡혀 옥살이를 여러 달째 하는 가녀린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그네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겠다며 지사를 찾아갔대요(그때 나이는 93살이었겠군요).


.. “지사님 들어 보세요. 무슨 소리가 들리지요?”
그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아뇨,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그들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어요. 아내와 어린애들은 먹을 것도 없이 울고 있어요”
“조사해 보겠읍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킬 것임을 알았다 ..  〈236쪽〉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모두 풀려났답니다. 지사로서는 그런 일이 ‘돈 많은 경영주’들이 몰래 하는 짓이라 하나하나 알아채기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그런 애꿎은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풀어 주려 애썼답니다.

 아무튼 버지니아 지사도 지사이고, 마더 존스도 마더 존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마더 존스가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하는 대목에서요.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로 들었거든요. 그런 목소리를 들었기에, 울음소리를 들었기에 아흔셋이라는 참으로 늙은 할머니 몸으로도 그네들을 돕고자 나서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참 젊은 나이이고, 참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며, 돈도 퍽 넉넉하다고 할 수 있어요(한 달에 50만 원 넘게 번다면). 그런데 우리들은 무얼 하나요? 무슨 소리를 듣나요?

 그리고 누군가가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하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 때,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 주고, 똑바로 눈을 맞대고 들으면서, 함께 일을 풀자고 다짐할 수 있는가요?

 책 한 권을 읽어도 온몸과 온마음을 다해서 읽어야 좋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를 듣는 거예요. 울음과 웃음을 듣는 거라고요. 이 세상 곳곳에 있는 울음소리를 듣고 웃음소리를 듣는 거지요. 그래서 나 혼자만 잘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갈 삶을 생각하는 겁니다.


 〈밥 한 그릇〉

 나더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한마디로 대답하리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병들어 본 사람은 알리
 병들어 밥을 먹지 못해 본 사람은 알리
 밥 한 그릇 삭혀서 똥을 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행복이라는 걸.
 사랑도 싸움도 그 다음이다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게 해준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해준
 놀랍고 큰 힘,
 그 힘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앎은
 그 다음이다.
 나는 믿는다 그 힘을.
 그 힘 앞에 깨끗이 무릎 꿇는다.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정영상 님이 죽은 뒤 나온 유고시집 5《물인듯 불인듯 바람인듯》(실천문학사,1994)에 나오는 시 하나입니다. 저는 이 시 하나 때문에 이 시모음 한 권을 샀어요.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무릎을 쳤고, 시인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어 봅니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돈 몇 푼으로 얻을 수 있는 밥 한 그릇이 아니에요. 농사지은 분들 피땀이 서려 있습니다. 해와 물과 바람과 땅이 어우러져 있어요. 나락에게는 자기 몸을 바치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먹고 있어요. 돈을 먹는 게 아니라 생명을 먹으며 우리 생명을 이어가요.

 아. 시 하나를 읽으며 이런 걸 느낄 수 있다니. 그래서 이런 시를 듬뿍 담은 시모음을 만나서 찬찬히 읽는 맛은 그 무엇과도 견주기 어렵습니다.


 [엄마] 으아아앙!
 [아이] 왜 울어 엄마? 무슨 일 있는 거야?
 [엄마] 지난 여름에 비해 올해는 체중이 너무 늘어서 비키니를 입으면 흉측해 보여!
 [아이] 지구 인구의 반은 먹을 게 없어서 단지 1그램도 살찌지 못하는 판국에, 엄마는 부끄러워서 위로 받으려고 그런 말이나 하고…… 너무한다는 생각 안 들어?


 어젯밤 ‘끼노’란 아르헨티나 만화가가 그린 《마팔다》(아트나인,2004) 7권을 보았습니다. 7권을 여는 만화 가운데 둘째 편에 “엄마가 비키니 수영복을 못 입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마팔다는 엄마가 살쪄서 비키니를 못 입는 걱정보다는, 가난한 나라에서 굶고 있는 가녀린 사람들 걱정을 하라고 한 마디 툭 쏩니다.

 《마팔다》란 만화는 1964년∼1973년에 아르헨티나 만화잡지와 일간지에 이어실렸다고 합니다. 무정부주의, 인본주의, 세계평화, 사랑과 믿음과 평등, …… 여러 가지를 말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런 사상보다는 ‘한 칸 한 칸에 담는 뼈있는 이야기’가 이 책을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지난 여름에 비해 올해는 체중이 너무 늘어서 비키니를 입으면 흉측해 보여!”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연속극이나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에 어떤 말을 넣으면 좋을까요?

 참 좋다고 할 만한 책, 읽어서 가슴 뿌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라면 그 다음 대목, 마지막 넷째 칸에서 우리 가슴으로 파고들거나 뒷통수를 칠 뿐 아니라, 우리가 옳고 착하고 아름답게 생각하며 살아갈 길을 밝혀 줍니다. 이런 데에서도 책을 읽는 맛을 담뿍 느낄 수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요?

 미처 몰랐거나, 제대로 몰랐던 일을 알아가면서 ‘아,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면서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걸 깨닫고 팔을 걷어부칠 줄 아는 일은 아닐까요? 콩 한 쪽도 나눠 먹듯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나누는 일은 아닐는지요?

 머리속에 지식만 집어넣는 일은 ‘책읽기’가 아닙니다. 그건 용두질(자위행위)이라고 생각해요. 책읽기란 지식을 익히는 일을 넘어서 우리 마음에 살뜰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아로새기는 일이에요. 생각을 아로새기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삶에 받아들여서 자기 깜냥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길이고요. 그래서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목소리를 들으려고요,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들으려고요. 가슴으로 파고드는 한 마디를 듣고, ‘어, 지금 내가 뭘하고 있지? 어디에 있지?’를 느끼려고요. (2004.6.11.처음 씀 /2006.12.26.고쳐 씀)

***
요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이 많고 “책을 읽자”는 운동도 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일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고 좋기도 하지만, 중요한 본질을 놓치지 싶어요. 그냥 무턱대로 “책을 읽자”고 하기보다는, 책을 읽으니 이렇게 좋더라, 이런 것을 함께 나누는 책을 읽자고 넌지시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뜻에서 이런 기획글을 꾸준하게 써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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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민의신문을 보다가... 참 어이없는 일이 또 일어났구나 싶어서 이런 글도 쓰게 되었습니다. 부디... 사람들이 정신 좀 차리며 살기를.)

돈을 조금만 멀리하면 되는데

 
 돈이 없다고 못살거나 죽을 일이란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돈과 바꿀 먹을거리와 입을거리와 잘곳이 없으면 못살고 죽겠지요. 돈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돈하고 바꾸어서 쓸 무엇인가’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같은 돈을 갖고도 서울에서 살 때와 시골에서 살 때, 같은 도시라 해도 인천과 대전과 광주와 부산에서 살 때가 다 다릅니다.

  우리는 한 달에 쌀을 얼마쯤 먹을까요. 다른 먹을거리는 얼마쯤 있으면 넉넉할까요. 우리한테 있어야 하는 옷은 몇 벌일까요. 우리가 깃들 집은 몇 평쯤 되면 알맞을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동안 무엇을 얼마나 쓰는가요.

 대학교를 마친 사람과 전문대를 마친 사람과 고등학교만 마친 사람, 또는 학교를 안 다닌 사람들이 회사에 들어가서 받는 일삯은 아직도 적잖이 벌어집니다. 요즘은 얼마쯤이 평균치인지 모르겠는데, 얼추 한 달에 170만 원을 못 벌면 ‘가난한 축’에 든다고도 합디다. 책마을은 이 나라 ‘문화지식’ 계층 가운데 가장 돈을 적게 버는 사람들인데, 이들만 해도 대학교 마치고 일터를 잡아서 받는 첫 달삯이나 한 해 지난 뒤 받는 달삯이 170만 원은 넘지 싶어요. 저는 2003년에 책마을을 떠날 때 받은 달삯이 180만 원이 좀 못 되었는데(5년 경력자로서).

  그러고 보니 요새는 웬만한 어느 일터를 찾는다고 할 때, 한 달에 200∼300만 원은 바라겠구나 싶어요. 이런 일삯은 큰기업뿐 아니라 작은기업에서도 비슷할 테지요. 신문사나 방송사는 어떨까요? 〈한국일보〉는 사장인지 회장인지가 몹쓸 짓을 하면서 돈을 왕창 울궈먹고 직원들한테 일삯도 안 준다고 하며,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다른 신문과 견주어 적은 일삯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적다’는 숫자가 얼마쯤일 때 적을까요? ‘많다’고 하면 얼마쯤일 때 많을까요?

  제가 보기로는 조금도 ‘진보’나 ‘민주’나 ‘개혁’하고는 가깝지 않다고 느끼는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입니다만, 이 나라 적잖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매체를 ‘진보-민주-개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뭐, 이 두 가지 매체는 그냥 언론매체일 뿐이지, 진보나 민주나 개혁을 앞에 내걸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느끼요. 왜냐하면, 두 가지 매체가 직원들 일삯을 주고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에 들어가는 돈을 재벌회사, 정부한테 받는 광고삯으로 많이 채우니까요. 핵폐기물처리장 문제를 아무리 기사로 떠들면 뭐합니까. 한국수력원자력 광고를 잘만 싣는데. 삼성재벌을 아무리 기사로 비판하면 뭐합니까. 삼성광고 떨어지면 신문사 문닫을 텐데. 케이티엑스 비정규직 문제를 기사로 한두 번 써 보아야 뭐합니까. 허구헌날 케이티엑스 비싼 광고 잘만 싣는걸요. 양담배 광고만큼은 싣지 말아야 한다는 독자들 비판을 한 마디로 뚝 자른 채, 외려 더 큼지막하게 싣는 〈한겨레21〉을 보셔요. 우리 세상을 좀더 올바른 쪽으로, 나은 쪽으로, 아름다운 쪽으로 가꾸도록 힘을 모으려 한다면, 또 우리들 모두가 올바름과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느끼면서 저마다 자기가 선 자리에서 힘껏 일어나서 부대끼고 애써 일하도록 이끌려 한다면, 돈 앞에서 무릎 꿇는 일이란 없어야 합니다. 신문을 돈 주고 사서 읽는 독자들이 있다면, 누구보다 독자들 눈과 목소리가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독자들이 내는 신문값보다 재벌이 던져 주는 뭉칫돈이 더 크기 때문에 이렇게 돈바라기로 나아갈까요.

  뭐, 돈에 팔린 언론매체를 미워할 마음 없습니다. 싫어할 마음 없습니다. 다만, 딱합니다. 불쌍합니다. 가엾군요. 슬픕니다. 안타깝네요. 안쓰러워요. 어쩌다 저리 되었을까요. 그저 혀를 끌끌 찰 뿐입니다. (4339.12.15.쇠.ㅎㄲㅅㄱ)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42025

한겨레, 돈 되면 뭐든지 한다?
FTA홍보책자 배포, 입시설명회 개최 등 구설수
언론노조 “한겨레 브랜드 이미지 좀 먹는 일”
2006/12/15
김고종호 기자 kkjh@ngotimes.net

한겨레가 최근 정부의 한미FTA 협상 홍보책자를 자사 신문에 끼워 배포해 파문이 이는 등 언론 매체의 이익 창출 행위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가 제작하여 한겨레를 통해 배포된 한미FTA 홍보책자.
FTA체결지원위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가 제작하여 한겨레를 통해 배포된 한미FTA 홍보책자.

한겨레는 지난 8~9일에 걸쳐 ‘더 넓은 시장 더 높은 미래를 위한 항해가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B5 크기 8쪽 분량의 홍보책자를 자사 신문에 끼워 독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책자는 한미FTA체결지원위원회(위원장 한덕수ㆍ이하 체결위)가 제작한 것이었다.

이를 보도한 <미디어오늘> 12일자 기사에 따르면 체결위는 모두 20만 부를 한겨레에 제공했으며 배포비로 약 1500만∼2000만 원 가량을 한겨레에 지불했다고 밝혔다. 이 돈은 국민의 세금이 집행된 것이다.

2천만 원에 FTA홍보지를 자임?

그동안 신문사의 지국이나 판매국의 자체 판단 아래 아파트 분양 광고나 백화점 광고지 등이 일부 신문에 삽지되어 배포된 적은 있으나 정부 홍보물이 이런 방식으로 배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는 13일 성명을 통해 “금도를 넘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언론노조는 “신문 배달망이 정부의 한미FTA 홍보망으로 이용됐다는 게 본질”이라며 “단순한 해명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한겨레의 사과문 게재를 촉구했다.

‘한미FTA저지 시청각ㆍ미디어분야 공동대책위원회’도 14일 성명에서 “독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한미FTA의 장밋빛 홍보책자를 배포하고 돈을 챙긴 한겨레신문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한겨레가 스스로 독자들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의 신문 배달망을 이용한 한미FTA 홍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체결위 관계자는 “이후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집행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도 “이제 갓 걸음마를 떼고 있는 신문유통원을 통해 한미FTA 홍보물을 배포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TV, 라디오, 신문, 전광판 등 온갖 매체를 통해 한미FTA를 홍보하고 나서면서 언론계 내부에서도 광고 게재를 두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각 언론들은 국민의 혈세를 광고비로 쓰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기사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그 광고를 게재하여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많은 인터넷매체들도 한미FTA 홍보 배너 광고를 눈에 거슬릴 정도로 비중 있게 배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기사 논조에 배치되는 광고,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오마이뉴스
기사 논조에 배치되는 광고,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논술 광풍에 편승한 입시설명회도

한국언론재단이 펴내는 <신문과방송> 11월호는 ‘교육보도, 교육장사’라는 제목의 집중점검 기획을 통해 경향, 동아, 세계, 조선, 중앙, 한겨레 등 여섯 개 일간지에서 별지로 교육섹션을 발행하고 있으며, 이는 입시를 위한 학습 정보 전달이 주목적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섹션의 콘텐츠 생산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교육 종사자들이었다.

해당 섹션의 기사들 말미에는 제공자 표시의 명목으로 사설학원들의 로고가 들어가고 있어 간접광고 의심을 받고 있다. 또한 이 섹션에는 사설 입시학원ㆍ교재 업체들의 광고가 집중적으로 게재된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논술 교재’를 필요로 하는 수험생 학부모들을 독자로 유인할 수 있고, 광고도 유치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특히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이 발표된 이후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논술 광풍으로 인해 언론들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사실 이 ‘논술 광풍’도 언론 보도가 학생ㆍ학부모들의 초조함을 유발해 나온 현상이다. 최근에는 인터넷매체들도 비슷한 콘텐츠를 강화하는 추세다. 프레시안의 경우 ‘2007 대학특집’ 코너를 통해 사설 입시학원과 손잡고 논술대비전략 등 입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이 강연했던 논술설명회 광고.
한겨레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이 강연했던 논술설명회 광고.

안경숙 미디어오늘 기자는 <신문과방송> 기획을 통해 “신문사가 논술 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면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교육 시장의 이상 열기를 부추기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안팎의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단체 ‘학벌없는사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한 네티즌이 ‘한주이’라는 이름으로 “홍세화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가 논술설명회에서 강연하여 결국 아이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논술 광풍에 한 역할을 했던 부분에 대해 학벌없는사회 측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해명을 요구한다”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이면서 한겨레 시민편집인을 맡고 있는 홍세화 씨는 지난 10월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서울에서 보름에 걸쳐 개최된 ‘한겨레와 초암이 함께 하는 2008학년도 대입&논술 성공 전략 설명회’에 참석하여 ‘논술과 삶’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바 있다. 이 자리에는 사설 입시학원의 강사들도 참석해 특강을 진행했다. 언론사가 전국을 돌며 입시전략 설명회를 개최한 셈이다.

대기업 간접광고 시비, 한겨레의 앞날은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은 <시민의신문> 11일자(679호) ‘기사와 광고의 함수관계’라는 칼럼을 통해 한겨레의 대기업 기사 노출 정도가 광고 크기에 정비례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겨레가 기사에서의 간접광고를 통해 대기업 광고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편집국과 판매국ㆍ광고국의 업무는 분리되어 진행된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된 여러 가지 문제들은 편집국이 추구하는 편집방침ㆍ논조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도 있다. 기업의 특성상 수익을 올려 적자가 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독자들이 조중동도 아닌 한겨레를 구독하는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 고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김고종호 기자 http://kkjh.siminlog.com 

2006년 12월 15일 오후 17시 1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41947

 

아연실색할 기사와 광고의 함수관계
3류 정치소설의 통속적 추리 공식에 ‘염화미소’
2006/12/12
이재영 기자

12월 4일자 '한겨레 신문>'.
한겨레 
12월 4일자 '한겨레 신문'.

지난 4일자 <한겨레>는 참 재밌다. 1면 하단에는 ‘포항공과대학 20년, 포스코와 함께 세계 과학의 중심에 서겠습니다’라는 통광고가 실렸다. 그리고 그 위에는 대기업 전문기자가 쓴 ‘포스코 모든 협력업체 4조3교대 근무 추진’이라는 사이드톱 기사가 실렸고, 17면에는 ‘포스코-협력업체 상생모델 도입’이 한 면 전체를 차지했다. 뭐, 이런 우연이 겹칠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살펴보니, 30면에 논설위원이 쓴 ‘포스텍과 김호길 박사’가 또 있다.

“미국이 탐내는 과학자였지만… 고국으로 돌아가 이공계 명문대학을 지방에 세우겠다는 결심… 박태준… 포항공대… 아시아 최고 수준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4세대 가속기 구상… 대통령은 지원을 약속했지만,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고 있다.” 우연이 참 많이 반복된다.

같은 광고를 실은 같은 날짜의 경향신문에는 포스코 관련 기사가 없고, 조선일보에는 한 개가 있다. 요즘 포스코 홍보실은 기자에게 미팅을 주선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몇 년 전 민주노동당은 홍보 대상 계층 조사, 매체 특성 조사 등을 거쳐 ㄱ신문, ㅈ신문에 광고를 냈다. 며칠 후 두 개의 뉴스가 전해져 왔는데, 그 하나는 <한겨레>가 민주노동당원인 직원들을 징계위에 회부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해진 또 하나의 뉴스는 그 징계위에 광고영업 책임자가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눈에 띄는데…

민주노동당이 한 행동과 <한겨레>가 한 행동, 두 개의 사실을 조합해보니 징그러운 ‘염화미소’가 그려졌다. 그 다음이 궁금하거든, 3류 정치소설의 통속적 추리 공식을 따라가 보라.

요즘 <한겨레>는 ‘기업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에 16개 면을 쓴 11월 30일자 한겨레에는 평소보다 세 배나 많은 21개의 대기업 광고가 실렸다. 그리고 기사와 광고가 아주 균형감 있고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1면 하단 통광고를 낸 농협은 ‘농협, 농민에 10년째 무료법률지원’ 기사를 받았고, 2면에 50cm짜리 세로 광고를 낸 SK는 네 개의 기사를 받았다.

전면광고를 낸 KT와 삼성물산은 ‘통신사 건설사 등 주특기 살려 맞춤형 봉사’라는 특화된 기사를 얻었고, 마찬가지로 전면광고를 낸 포스코는 특화 기사 대신 다섯 개의 기사에서 언급됐다. 전면광고를 낸 대한생명과 LG전자, 현대모비스도 비슷하게 다루어졌다.

<한겨레>에 실린 광고 크기와 기사 노출 정도는 정확하게 비례한다. 조금 작은 광고를 낸 남양유업, 국민은행, KT&G, GS홈쇼핑, 우리홈쇼핑, 현대산업개발은 기사 안에서 한 차례씩만 인용됐다. 가장 뒷면에 전면광고를 낸 삼성은, 역시 가장 많은 12개의 사회공헌 기사와 ‘장애인 맞춤훈련으로 새삶 찾은 김장중씨’라는 미담성 기사를 얻었다.

광고부터였는지 기사부터였는지 또는 기업에서 청탁이 들어온 것인지 신문에서 말을 넣은 것인지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영리기업인 <한겨레>가, 재테크 기사 옆에 부동산 분양 광고를 내는 조중동식 경영에서 과히 멀리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재테크’든 ‘사회공헌’이든, 대학교수나 시민운동가의 말씀을 덧붙이든 말든, 광고 이외의 지면은 그저 ‘기사’라고 믿는 상식으로 신문을 보고 싶다.

기사를 기사로 볼 날 오길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간접광고는 한국방송의 고질병 중 하나다. 오죽했으면 최근 방송심의위원들이 모여 간접광고 ‘퇴치’를 결의했을까? 간접광고란 방송의 일반프로그램 안에서 특정인이나 업체, 상품, 사실 등에 대해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말이 간접광고지 프로그램 속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스타들이 특정 상호를 이야기하거나 의상을 착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직접광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사는 안정적으로 광고주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광고주는 공짜로 홍보를 할 수 있으며, 연예인은 짭짤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피해자는 간접광고로 ‘오염’된 프로그램을 봐야 하는 시청자일 수밖에 없다.”(간접광고에 오염된 프로그램, 한겨레, 2000년 11월 15일)

이재영
criticme@redian.org

레디앙 기획위원
진보정치연합의 마지막 상근자였고, 민주노동당의 첫 상근자였다.
1980년대에는 수도권과 영남권의 공장에 다니며 노동조합 만드는 일을 했고,
민중당에서 정책 일을 시작한 이래 15년 동안 정책전문가로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을 역임하였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

2006년 12월 12일 오후 15시 9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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