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아저씨 말 3

 
 “헌책방 장사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정년퇴직 걱정 없이 내가 죽는 날까지 평생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야. 그래서 난 죽을 때까지 여기서 헌책방 장사를 할 거야.”


 충북 청주에 있는 헌책방 〈보문서점〉 아저씨, 아니 이제는 할아버지. 당신 또래 동무들은 모두 딸아들한테 눈치보며 용돈 타서 쓰지만, 당신은 헌책 팔아 손주 과자도 사 주고 용돈도 쥐어 줄 수 있으니, 남은 삶도 즐거우시리라 믿습니다. (4340.1.4.나무.ㅎㄲㅅㄱ)

 

헌책방 아저씨 말 4


 “네? 무슨 책이요? 아, 그런 책은 지금 없는 것 같네요. (전화 끊음. 그리고 저를 보면서) 요즘은 다 이렇게 전화로만 물어 봐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는데, 전화만 하지 말고 이런 데 한 번 와서 죽 돌아보면 좋으련만. 태영이가 그러잖아. 전화상으로만 묻는 손님들은 우리들하고 무관하니까 물어 봐도 그냥 책 없다고 그러라고. 하하하.”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1매장 아저씨

 
 ‘헌책’을 찾는 사람이 줄기는 줄었지만, 찾는 사람이 줄었다기보다 ‘손수 찾아다니는’ 사람이 줄었다고 느낍니다. 인터넷 헌책방이 늘어나고 인터넷으로 책 사고파는 일이 늘어나는 숫자를 보면, 이 숫자가 예전에는 손수 헌책방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던 숫자와 비슷하거든요.

 느긋하게 살피고 둘러보면서 책 하나 고르지 못한다면, 자기가 사들인 책을 느긋하게 헤아리면서 읽을 수 없지 싶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찾아들고 집어든 책 하나가 아니라면, 책에 담긴 줄거리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깊은 알맹이는 더더구나 맛을 못 보지 싶습니다. 기꺼이 다리품을 팔지 않을 때에는 헌책방마다 다 다르게 간직한 모습을 볼 수 없을 테고요. (4340.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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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답장―글 잘 쓰는 비결이란?

 

- 받은편지 (북데일리 김ㅇㅇ 기자 2007.1.10.)

 글 잘 쓰는 비결을 알려 주세요.
 최종규 씨 글을 읽으면, 먹지 못하게 뜨거운 숭늉이 알맞게 식어 따뜻하고 찰지게 넘어 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완곡하지만 그 안에 담을 이야기들은 명확히 담는 솜씨도 부럽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날씨 추운데 자전거 타시면서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또 연락드릴께요.

 

- 편지 읽고 보낸 편지 (최종규 2007.1.11.)

 아고, 제가 글을 잘 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에 쓰던 글과 견주면 한결 나아지기는 나아졌어요. 그렇지만 아직 한참 멀었는걸요. 저는 글 고치기를 참 많이 합니다. 한 번 쓴 글이 그대로 남아나는 일이란 아주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보아야지요. 적어도 스무 번은 고쳐서 다시 씁니다. 어느 만큼 마음에 들어서 싸이월드 〈함께살기〉 모임 게시판에 올리는 글은 30번∼50번쯤 손본 글입니다. 인터넷매체나 사외보 같은 곳에서 청탁이 들어와서 쓰는 글은 100번쯤은 다시 쓰고요. 가장 품이 많이 드는 글은 헌책방 나들이 글인데, 짧으면 하루가 걸리고, 길면 두어 달, 또는 반 해가 걸리기도 합니다. 다녀온 지 한참 지나면 느낌이 사그라들기도 하지만, 그때 그 자리 느낌을 그동안 써 온 글과 다르게 풀어낼 때까지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이 없다면, 조금씩 써서 살을 붙이면서, 마무리가 될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든요. 충북 청주에 있는 헌책방 〈보문서점〉 이야기는 여섯 달 묵힌 글입니다. ^^;;;

 저는 소설가 최명희 님이 글쓴 몸가짐하고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1번에 마무리되는 글이란 없고, 100번이고 1000번이고 다시 써서 마무리를 짓지만,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어도 자기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글을 쓰기’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잘 읽어 주시니, 제가 고맙습니다. 칼럼 자리를 채우는 사람으로서, 어느 만큼 자리를 지킬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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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시골집에 있을 때는 쉬를 할 때 꼭 밖에 나갑니다. 밖에 나가서 산기슭이나 감나무 밑이나 밭둑을 찾습니다. 뒷간에서는 똥만 누고 오줌은 곧바로 이 산 저 들에 돌려 줍니다. 예부터 ‘감나무 밑에 개를 매어 놓으면 감이 맛있게 잘 익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자리를 바꾸어 가며 오줌을 누니까 감나무가 썩 잘 자라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어제부터 그믐이지 싶습니다. 달력을 봅니다. 맞네요. 그믐이 되겠네요. 밤에 쉬하러 밖에 나오면 캄캄 어두움이더니만. 제가 사는 바로 옆집은 불이 나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더 깊은 산속에 하나, 마을로도 한참 떨어진 곳에 또 하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깊은 밤에 불을 다 끄고 바깥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어둠뿐입니다. 둘레에 불이 하나도 없으니 밤하늘이 아주 잘 보입니다. 추운 겨울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예부터 추운 날은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했는데, 별이 막 떨어질 듯이 보인다고 했는데, 안경을 안 써서 잘은 모르겠으나 참말 별이 잘 보입니다. 어제는 부엉이 우는 소리를 아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사냥철이 끝나가는지, 사냥꾼들 총부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멧새가 밤에 조용조용 몰래몰래 우는가 봅니다.


.. 사진이란 어떤 예술이라는 말인가. 한마디로 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 복합적인 인생과 자연을 대상으로 거기에서 깨달은 내 생각, 내 느낌을 찍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 진지하게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 사진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사진을 해야 한다 ..  〈62∼63쪽〉


 고요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일이란 큰 고마움이자 아름다움이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제 스스로 몸을 놀려야 살아갈 수 있고, 사람 아닌 온갖 소리와 움직임을 느낄 수 있거든요. 지금 이 세상에는 사람 목소리와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런 소리와 움직임에서 멀찍이 벗어나 나한테서만 나는 소리와 움직임으로, 또 사람 아닌 소리와 움직임을 부대낄 수 있는 곳이 어디일는지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인데, 자연을 못 느끼고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멀리하는 요즘 아닙니까. 더욱이, 이제는 태어나기를 시멘트집에서 태어나고 죽기를 시멘트집에서 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흙하고는 동떨어졌달까요. 인연이 없달까요. 흙이 뭔 줄도 모른달까요.


.. 예술은 황무지에 길을 내는 행위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 이미 닦여진 길은 그냥 걸어가기에는 편하지만, 그것은 남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길을 만드는 일이 아닌 것이다. 예술가란 길을 만드는 사람, 길을 여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149쪽〉


 지지난주부터는 물이 아예 안 나옵니다. 그나마 그사이 날이 풀리며 두 번 녹은 적 있는데, 그 뒤로는 안 녹네요. 이제부터 참 겨울이구나 싶습니다. 뭐, 물이 안 나와도 그동안 미리 받아 둔 물이 있으니 밥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씻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산골짜기에서는 씻지 않아도 때 탈 일이 없으니까, 몸 더러워질 일이 없으니까, 안 씻는다고 몸에 나쁠 일이 없습니다. 외려 씻는 일이 도움이 안 된달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구나 하고, 창밖이 밝아지며 날이 새면 아침이 오는구나 합니다. 아침마다 박새와 콩새가 조잘조잘 지저귀며 창가에까지 날갯짓을 합니다. 사람이 있으니 먹잇감이 둘레에 있을까 싶어 오는구나 싶은데, 안타깝게도 저는 이 새들한테 줄 만한 먹이가 없군요.

 제 사진기는 헌책방에서만 움직입니다. 시골집에 있을 때는 가방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가끔, 제 살림집 둘레라든지 책상맡이라든지 사진으로 담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서 디지털사진을 찍곤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며 밤참으로 먹던 날고구마를 한 장 찍었습니다. 필름값이 두려운 저로서는 가볍게 즐기고픈 사진은 디지털을 씁니다. 필름값이 두렵기는 하지만 헌책방 삶터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기에, 헌책방을 찍을 때만큼은 필름을 씁니다. 거의 아낌없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가꾸며 즐길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저는 저대로 사람 발길 드문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자전거를 타고 헌책방 나들이를 떠납니다. 제가 찍는 사진이라면 이런 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겠지요. 제가 찍는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저부터 제 삶이 반가워야 할 테고 즐거워 할 테며, 기쁜 마음으로 가꾸어야지 싶어요. 뭐, 예술이 안 되더라도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을 담을 수 있다면, 제 목소리를, 제 움직임을, 제 마음을, 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좋을 테고요. (4340.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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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카불의 책장수
- 글쓴이 :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 옮긴이 : 권민정
- 펴낸곳 : 아름드리미디어(2005.11.1.)
- 책값 : 12000원


 지난주 서울 나들이를 갔을 때입니다. 서울에 머물 땐 으레 홍제동에 사는 선배 집에서 지냅니다. 선배들은 텔레비전과 영화를 즐겨보는 터라, 이 집에 머물 땐 텔레비전과 영화도 함께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는 우리 나라에도 곧 들어온다는 〈보랏〉이라는 영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 술탄이 파키스탄에 있는 사이에 그의 책방은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약탈을 당했다. 귀한 책들이 헐값으로 수집자들에게 넘어갔고, 탱크나 총알이나 수류탄과 맞바꿔지기도 했다. 술탄 자신도 책방을 챙기기 위해 파키스탄에서 돌아왔을 때 국립도서관에서 약탈된 책을 몇 권 사들였다. 정말 수지맞는 장사였다. 수백 년 된 작품들을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이 중에는 우즈베키스탄의 500년 된 원고도 있었는데, 나중에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 원고를 되사기 위해 술탄에게 2만5천 달러를 제시했다. 술탄이 발견한 작품 중에는 자히르 샤 국왕의 소장본이자 애독서인, 서사 시인 피르다우시의 《왕서》도 있었다. 술탄은 제목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도둑들로부터 아주 헐값에 책 여러 권을 사들였다 ..  〈36쪽〉


 영화 〈보랏〉은 카자흐스탄사람이 미국에 와서 겪는 일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는 ‘우스꽝스럽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를 아주 바보로, 얼간이로, 질낮고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나라처럼 그렸습니다. 이와 달리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앞서고 멋있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평등과 평화가 넘치는 나라로 그렸습니다.


.. 샤킬라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결혼 후에도 다시 일하러 나가겠다고 하면 허락하겠느냐고 묻는다. 와킬이 그러겠다고 대답하지만 샤킬라는 믿지 않는다. 이 사람은 아마 결혼하자마자 마음을 바꾸겠지. 하지만 와킬은 샤킬라를 안심시킨다. 일하는 게 행복하다면 자기는 괜찮다고, 물론 아울러 아이들과 살림만 잘 챙긴다면 말이다 ..  〈104쪽〉


 영화 〈보랏〉은 카자흐스탄을 무대로 했다지만, 정작 이 영화를 찍은 나라는 카자흐스탄이 아닌 루마니아. 더욱이 영화 무대로 자리를 내어준 루마니아 마을은, 자기네 마을이 ‘강간범이 득시글거리고 꾀죄죄하고 아주 몹쓸 곳’인 듯 그려졌다면서 영화 만든 사람들을 고소한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그래, 영화를 찍은 미국사람들은 미국 극장에 내걸 이 영화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고 ‘저런 미개하고 야만스런 나라!’ 하고 읊겠지요. 참과 거짓이 무엇인지는 조금도 모르는 채, 영화에 담은 ‘우스개’를 즐기는 사이, 어느 곳에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줄 모를 테지요. 이 영화를 내걸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카자흐스탄이 참말로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채, 영화에 나온 모습이 마치 참이라도 되는 듯 엉뚱하게 알지 않겠어요? 언젠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대한민국 남녘’ 모습을 엉터리로 그려내어 말썽이 있었음은 까맣게 잊어버렸을 테고요.


 “여성들은 넉넉한 삶을 살지도,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젊음의 열매를 맛보지도, 사랑의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한다(61쪽).”고 하는 아프가니스탄. “교사의 상당수가 여자였기 때문에 몇몇 남학교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자격을 갖춘 남자 교사들을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100쪽).”는 현실.


 우리들은 ‘북녘’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알면서 북녘 이야기를 할까요. 일본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알면서 일본 이야기를 할까요. 가까운 중국이나 러시아라고 하지만, 이들 나라 속살을 제대로 알까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버마,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는 얼마나 알지요?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 서울이 ‘카불’임을 아는 사람은 그럭저럭 있겠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놀이를 즐기는지, 문화와 사회는 어떠한지, 이 나라를 둘러싼 세계 흐름은 어떠한지를 털끝만큼이나마 헤아리려는 움직임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쳐들어간 까닭을 알아보려는 사람 또한 몇이나 될는지. (4340.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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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하나님과 함께
야누쉬 코르착 지음, 송순재.김신애 옮김 / 내일을여는책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홀로 하나님과 함께
- 글쓴이 : 야누쉬 코르착
- 옮긴이 : 송순재, 김신애
- 펴낸곳 : 내일을여는책(2001.6.5.)
- 책값 : 6500원


 그제 시골집으로 돌아왔을 때입니다. 집안 분위기가 어딘가 으스스했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달리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천장에 올려놓은 쥐끈끈이에 쥐가 잡혀서 죽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튿날 천장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니 작은 새앙쥐가 죽어 있습니다. 그렇구나. 이 목숨 하나 죽어서 그랬구나.

 죽은 쥐를 어찌 할까 망설입니다. 땅에 묻을까 어찌할까. 서울이었다면 묻을 땅이 없으니 쓰레기통에 처박힐 텐데. 망설이다가 보일러방에 옮겨 놓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른 쥐가 들어왔나? 불을 켜 놓고 샅샅이 살펴보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불을 끄면 다시 부스럭 소리.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보일러방에 옮겨 놓은 새끼쥐 주검을 들고 와서 천장에 다시 올려놓습니다. 그 뒤로 소리가 뚝 끊깁니다.

 어미쥐였을까요.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는 앞으로 가방, 자전거로 다시 태어나야지 싶은데, 새끼쥐로도 다시 태어나야겠구나 싶습니다. 책방 나들이를 하며 가방을 애먹이니까, 먼길 나들이를 한다며 자전거를 고달프게 하니까, 또 쥐끈끈이를 써서 쥐를 죽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벼로도 보리로도 콩으로도 배추로도 무로도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제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목숨을 바쳐 준 모든 목숨붙이 삶을 한 번씩 차근차근 다시 겪어야지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제 넋은 홀가분할 수 없어요. 지금은 사람 모습이지만, 또 지금은 사람으로 있다고 해서 다른 목숨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서 먹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못살게 굴기도 하잖습니까. 세상에 하느님이 있다면 사람이 믿는 하느님뿐 아니라 버느나무가 믿는 하느님이 있고, 새앙쥐가 믿는 하느님이 있으며, 쑥이 믿는 하느님이 있다고 봅니다. 또, 이렇게 다 다른 하느님이 있겠지요. 고구마 하느님, 파리 하느님, 개 하느님, 고등어 하느님도 있지 싶습니다. 모든 목숨붙이가 오롯이 제 삶을 사랑하고 가꾸고 즐길 수 있도록 돌보고 어루만져 주는 하느님이 있지 싶습니다.


……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똑바로 서서 간청합니다.
아이들에게 선한 의지를 주시고, 그들의 힘을 북돋워 주시고,
그들의 수고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아이들을 편한 길로 인도하지는 마옵소서.
그렇지만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옵소서.
제가 드리는 간청에 대해 단 한 번 드리는 불입금으로
저의 하나뿐인 찬송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것은 슬픔입니다.
저의 슬픔과 노동을 드립니다.  〈한 교사의 기도 - 120쪽〉


 우리들 믿음이 오롯이 이루어지자면, 하나로 크게 빛을 보자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려면, 사람 아닌 목숨붙이를 아끼는 하느님을 느끼고, 사람 아닌 목숨붙이와 함께하는 하느님을 섬기고, 사람 아닌 목숨붙이를 어루만지는 하느님을 받아들일 때이지 싶습니다.

 낮밥을 먹으려고 밥술을 푸다가 천장을 올려다봅니다. “미안하다, 미안해, 미안합니다.” 세 마디를 속으로 읊습니다. 그러나 “하지만 내가 사람으로 사는걸…….” 하는 핑계가 이어집니다. 참말로 내가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저 새끼쥐를 끈끈이로 잡아 죽여도 되는가요?


..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다만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문제와 시련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의 현장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하루를 넘기기가 버거웠고, 하루의 과제를 해결하느라 늘 허덕이며 씨름하였다. 그는 실천을 소중히 여겼다. 온통 실천과 뒤범벅이 되어 생을 불태웠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 그의 이야기는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또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그 맛은 자극적인가 하면, 때로는 깊고, 때로는 아련한 아픔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쓴 동화들은 아주 재미가 있다. 그의 글은 흔히 논리적인 주장이나 체계적인 이론을 기대한 독자들을 당혹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언제쯤 우리가 알고 있는 개념이나 설명이 나올까 하는 기대를 충족시키지도 않는다. 장르를 구분하기 좋아하는 문학도들은 그의 글을 두고 혹 당혹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글쓰기야말로 읽는 이들이 창조적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독특한 힘이었다 ..  〈옮긴이 말 : 18∼19쪽〉


 쥐를 잡았기에 낮이나 밤에 벽을 긁는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쥐들이 제 책을 갉아먹을 걱정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무겁습니다. 외려 답답합니다. 그렇지만 다시 쥐가 끓어 사각사각 극극 긱긱 하는 소리가 들린다면? 틀림없이 그때 또다시 끈끈이를 다시 찾아서 어딘가에 놓지 않을는지. 못난 사람이라서. (4340.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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