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와 1970년대에 나온 낡은 노래테이프를 헌책방에서 열 나문 사들였습니다. 스무 해나 서른 해가 묵은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돌아가나 알아보려고 하나씩 카세트에 넣고 돌립니다. 몇 가지는 소리가 잘 안 나오거나 지지직거립니다. 그렇지만 그럭저럭 들을 만하기에 아침저녁으로 틈틈이 들으면서 일을 합니다.

 묵은 노래테이프를 들을 때면, 테이프가 끝나는 자리에 꼭 ‘건전가요’가 하나씩 끼어듭니다. 때로는 군인노래(군가)가 끼어듭니다. 군대에 있을 적 죽어라 불러야 했던 그 노래를 묵은 테이프에서 들으니 새삼스럽습니다. 새삼스럽게 소름이 돋습니다. 군대에서 벗어난 지 벌써 열 해가 넘었건만, 아직도 그 군인노래들이 제 귓가와 입가에 맴돌고 있네요.

 지난날 박정희 정권 때, 군인노래를 짓고 건전가요를 짓던 사람들은 어떤 대가와 보람을 얻었을까요. 지난날 군인노래와 건건가요를 짓던 사람들은 높은 이름과 많은 돈과 노래판 힘을 얻었을까요. 그 돈과 이름과 힘은 여태까지도 고이고이 이어오고 있을까요. 문득, 그때 그 사람들이 군인노래와 건전가요가 아닌 다른 노래, 여느 대중노래를 지었다면 어떠했을까, 자기 창작욕이나 상상힘을 불태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쎄, 그 사람들한테는 자기 창작과 상상을 한껏 불사르기보다는 손쉽고 값싸게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 쪽으로 갔을까요. 자유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이 넘실넘실거리는 터전이었다고 했어도. (4340.7.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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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 벗어나기
강수돌 지음 / 메이데이 / 2007년 2월
품절


학교는 앞으로 노동시장에 팔려나갈 노동력을 짜임새있게 길러내는 곳이다. 여기서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거의 스무 해라는 긴 세월을 보낸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한마디로 ‘쓸모’있는 노동력을 만드는 공장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무 해 남짓 교육을 받는 동안, 수많은 잠재력과 고유한 꿈과 뜻을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생산요소’ 한 가지로 쫄아들어 버리고 만다. 시험과 점수가 엄청난 통제 수단이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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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바라는 일꾼을 대학교에서 기르고, 대학교에서 바라는 학생을 고등학교에서 기르며, 고등학교에서 바라는 학생을 중학교에서 기릅니다. 초등학교 또한 중학교에서 바라는 학생을 기릅니다. 우리 나라 부모들은 아이를 초등학교에 넣기 앞서 초등학교가 바라는 아이가 되도록 기릅니다. (4340.7.1.해.ㅎㄲㅅㄱ)-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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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오월 이삭문고 1
윤정모 지음, 유승배 그림 / 산하 / 2011년 2월
구판절판


"옴마, 우리 집 밥상!" 누나는 밥상 앞에 달려들어 밥을 퍼먹어댔다. 배가 고파서만은 아닌 듯했다. 집에서 먹어 보는 밥상이 그처럼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우리 집 김치가 참말로 꿀맛이다, 꿀맛!" 엄마는 달걀 부친 것도 슬며시 누나 밥그릇 옆으로 디밀었으나, 누나는 김치와 청국장만 허겁지겁 먹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엄마와 아버지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굶었으면 저럴까 싶은 모양이었다. "천천히 묵어라잉." 그렇게 말해 놓고 엄마는 누른 밥을 긁어 왔다. 누나가 그 누른 밥까지 달게 먹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인제 다시는 안 나갈 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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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신포시장에서 감자 한 봉다리를 천 원에 샀습니다. 알이 작은 녀석이고 떨이입니다. 저잣거리에서 감자를 팔 때면 으레 굵직한 녀석을 파는데, 이런 알 작은 녀석은 사가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돈 천 원으로 여러 날 넉넉히 먹을 만한 감자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4340.7.3.불.ㅎㄲㅅㄱ)-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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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일터인 도서관을 찾아오는 책손 가운데 “책 많이 모으셨네요?” 하고 여쭙는 분이 있고, “모은 책 다 읽으셨어요?” 하고 여쭙는 분이 있습니다. 이럴 때면 으레 “읽으려고 산 책이에요.” 하고 대꾸를 하고 “사 놓고 바로 읽어야만 하지는 않아요. 한두 해쯤 지나서, 또는 열 해쯤 지나서 읽어도 좋아요. 사서 바로 읽는다고 해서 그 책에 담긴 뜻과 줄거리를 오롯이 헤아린다고 볼 수 없거든요. 사 놓은 그 책을 열 해쯤 뒤에 읽고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고, 몇 차례 거듭 읽은 끝에 서른 해 뒤에 깨달을 수 있는 한편, 열 번 스무 번을 읽었어도 죽는 날까지 그 책에 담긴 고갱이 가까이 못 다가가기도 해요.” 하고 덧붙입니다. “교보문고에 가서 ‘이야 책 많네!’ 하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헌책방에서든 도서관에서든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그곳에 책이 많으냐 적으냐에 눈길을 두기보다는, 이곳에서 내 마음을 적셔 줄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 내 마음을 움직일 책 하나를 찾아야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두면 좋겠어요.” 하는 말도 덧붙여요. “그러면 어떤 책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인가요?” 하고 묻는 분이 계십니다. 이때는, “지금 제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서른 해쯤 뒤에도, 또 제 딸아들 될 사람이나 제가 죽은 뒤 제 책을 거두어서 읽을 사람한테도 우리 세상과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겠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표를 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인형을 모으듯 책을 모으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면, 책은 ‘모아서 어디에 쓸모가 있을’까요. 모은 책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 이렇게 좋은 책 많소!’ 하고 자랑을 할 때? 인터넷으로 책방을 열어 장사를 할 때?

 “책을 몇 권쯤 모으셨어요?” 하고 여쭙는 분들한테는 “한 권 두 권 사서 읽다 보니까, 이렇게 모이더라구요. 사서 읽은 뒤 파는 책이 있고 동무들한테 선물하기도 해서, 몇 권이 있는지 몰라요. 저한테 책이 몇 권 있는지 세어 보는 일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어느 갈래 지식을 얼마만큼 머리속에 가두어 두고 있는 일이 그 갈래를 제대로 아는 일이 아닌 만큼, 제가 책을 몇 권 갖추고 있다는 일이 제가 그 책들을 사랑하거나 아끼는 일이 아니라고 느껴요. 또한 늘 새로운 책을 꾸준하게 사서 읽고 책꽂이에 꽂아 두고 있으니까, 지금은 몇 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바로 하루만 지나도 숫자가 바뀌어요. 한 해가 지나면 크게 바뀌겠지요. 그러면 그 숫자들은 우리가 책을 잘 읽거나 새기고 있음을, 또는 책을 읽어서 얻은 깜냥을 잘 곰삭이고 있음을 얼마나 제대로 보여줄까요?” 하고 되묻곤 합니다.

 고개를 숙인다는 ‘익은 벼’는, 누구한테나 밥이 되어 줍니다. 넉넉하게 배를 채워 줍니다. 다부지게 일하거나 놀거나 어울릴 힘을 선사합니다. 익은 벼는 제 몸을 바쳐 다른 목숨들한테 새삶을 건네주며 자기는 조용히 스며듭니다. 우리가 읽는 책은 어디로 어떻게 얼마만큼 스며들고 있을까요. (4340.6.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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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였다. 아내가 어릴 적부터 다닌 일산 탄현동 성당에서 구역장을 맡고 계신 분이 나를 보더니, “그런데, 성당에 오실 때는 긴바지 입으셔야 돼요.” 하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런가요? 인천에 있는 성당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없던걸요. 일산만 그런가요, 다른 성당도 그런가요?’ 하고 되물으려다가 그만둔다. 인천에 있는 답동성당이며 송림동성당이며 찾아갈 때에, “반바지 입고 오면 안 됩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신부님한테도, 수녀님한테도. 미사를 함께하러 오는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들한테도. 어젯저녁에는 구역미사에 갔다. 이 자리에서도 신부님과 수녀님을 비롯하여 동네 어르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내 옷차림을 놓고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한 마디, “젊은 친구니까 많이 먹어야지. 많이 드세요.” 하는 말은 듣다. 저녁 여덟 시부터 이루어진 미사가 한 시간 십 분쯤 걸려 끝났고, 미사가 끝난 뒤 위층으로 올라가서, 동네 신자 아주머니들이 차려 주는 저녁을 다 함께 먹었다. 저녁자리에는 신부님도 수녀님도 모두들 허물없이 어울렸고, 나이 지긋한 수녀님은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하고 손뼉치기 놀이도 하신다. 오늘 새벽, 아내는 답동성당에 새벽 미사를 드리러 나들이를 갔다 왔고, 집으로 온 뒤 곧바로 길을 나서서 일산으로 온다. 용산급행 전철이 신도림역을 지날께, 탄현동 구역장님이 아내한테 손전화 문자를 보낸다. “성당 올 때 긴바지 입어야 한다”는 줄거리를 담은. 아내가 몸담은 탄현동 성당에 내가 갈 수 있는 때는 한겨울뿐이겠다. (4340.6.28.나무.ㅎㄲㅅㄱ)

 


(2007년 1월, 서울발바리 잔치에 나갔을 때 찍힌 사진.

 나는 이 사진에서 보듯이, 12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긴바지를 입는다. 2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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