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3 : 식민지 이야기책은 일본사람이 쓴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한울,1986)이라는 조그마한 책 하나를 샀습니다. 77쪽짜리 책입니다. 글쓴이는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 이분 책은 1985년에 《한국사입문》(백산서당)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朝鮮史》(講談社)라는 이름으로 1977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글쓴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은 《朝鮮史》를 써낼 때까지 ‘한국땅을 밟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북녘에서 펴낸 거의 모든 역사책을 꼼꼼히 읽었고,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한국사를 연구한 책이나 논문’을 빠짐없이 살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朝鮮史》를 보면, 가지무라 히데키 님이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살펴보았는가가 뒤에 붙었고(그 작은 책에), ‘그때(1977년까지) 남녘이나 북녘에서 나왔던 거의 모든 역사책’이 일본말로 번역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학자는 한국을 와 보지 않고도 한국사람들 안방 구석구석을 훤히 돌아볼 수 있는 셈입니다.

 그제, 《한국근대사 개설》을 살 때 함께 보인 책은 《식민지》. 이 책 또한 일본사람이 쓴 글을 단출하게 추려내어 엮은 작은 책. 문득 생각이 나서, 인터넷새책방을 들어가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식민지’라는 말이 들어간 책이 그럭저럭 보이기는 합니다만, 정작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은 적네요. 게다가, 중고등학생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또 대학생이나 여느 사람들 눈높이에 읽을 만한 식민지 이야기 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전문 학자가 읽을 만한 책 또한 드물구나 싶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 나라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 역사를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줄 만한 읽을거리나 볼거리나 알거리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텔레비전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풀그림?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풀그림은 무엇을 바탕으로 엮어내지요? 초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는 무엇을 바탕으로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칠까요. 아이들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수업 시간 가운데 얼마쯤을 ‘일제강점기 역사는 이렇다’ 하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인터넷새책방에서 ‘식민지’로 찾아보기를 했을 때, 그나마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룬 책 몇 가지는 거의 ‘일본사람이 지은 책’이었습니다. 남녘사람이 쓴 책은 얼마 없습니다. 남녘에서 백제 역사를 다루는 학자 숫자가 열이 안 된다고 하고, 고구려 역사를 다루는 학자 또한 열이 안 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백제나 고구려 역사를 다루면, 더욱이 가야 역사를 다루면, 이런 전문지식이 쓰일 만한 곳이 없다고 하겠지만,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교과서에서도 ‘전쟁 이야기’만 풀어놓지, 그때 사람들 삶과 문화와 발자취는 톺아보지 않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와 가야 역사는, 거칠고 팍팍한 세상에서 먹고사는 지식으로서는 쓸모가 없는가요. 일제강점기 역사는 어떻습니까. 일제강점기 역사 가운데 성노예와 강제징용, 우키시마호, 관동큰지진, 우토로, 만주와 사할린 이야기는 어떤가요. (4340.7.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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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좋은생각>에서 청탁이 들어와서 써 보낸 글입니다.
마감날에 겨우 맞추었네요 ^^;;;;;


― 내 삶에 책 하나 : 마르지 않는 삶을 담은 책


 제가 일하는 책상에는 늘 100∼200권에 이르는 책이 얹히거나 꽂혀 있습니다. 책상 둘레에도 비슷한 숫자로 쌓여 있습니다. 그날그날 제 살림집으로 받아들인 책이 하나둘 모이면서 탑을 이룹니다. 한 번 집어들고 끝까지 쉬지 않고 읽어내리는 책도 있지만, 제 얕은 마음을 휘젓거나 다독여 주는 줄거리를 읽었을 때면 한동안 책을 덮습니다. 지금 막 깨우친 이야기를 차근차근 곰삭이고 싶어서요. 누런 쌀밥을 백 번쯤 우물우물 씹어서 넘기듯,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만났을 때는 서두르지 않고 읽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한 끼니에 열 그릇이나 스무 그릇을 비울 수 없듯이, 제 모자란 깜냥을 일깨우는 책이라면 하루아침에 읽을 수 있으랴 싶습니다.

 우리들이 만나는 책은 ‘그 책을 짓거나 엮은 사람이 짧으면 한두 해, 길면 열이나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쳐서 만든’ 책이에요. 그래, 열 해라는 세월을 한두 시간만에 후루룩 넘겨버릴 수는 없다고도 느껴요. 이러다 보니 책상맡에는 쌓이느니 책이요, 다 읽고 나서도 좀처럼 ‘따로 마련한 책꽂이’로 옮겨 꽂지 못합니다. 다 읽었어도 더 읽고 싶고, 여러 차례 읽었어도 틈틈이 다시 들추고 싶어서.

 그러나 책상맡에 놓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들춰보는 책이 있습니다. 잡지 《샘이 깊은 물》. 1984년에 첫호를 낸 《샘이 깊은 물》은 ‘아줌마 독자’와 ‘아가씨 독자’한테 눈길을 맞추어 우리 사는 세상 이야기를 조곤조곤 돌아볼 수 있게 이끌어 줍니다. 폐간되어 새책방에서 사라지고, 도서관에서도 갖추어 놓지 않는 잡지인 터라,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한 권 두 권 틈틈이 사서 읽습니다. 책꽂이에서 1987년 10월에 나온 《샘이 깊은 물》을 꺼내어 봅니다. 벌써 스무 해나 지나간 옛글이라 할 테지만, 세월을 건너뛰는 슬기로움을 보여줍니다. 철지나거나 묵었으면 ‘이제는 돌아볼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는 요즘 세상이건만, 이 잡지는 철이 지나고 묵을수록 깊은 된장맛을 냅니다. 잡지가 나오던 지난날에는 지난날대로 세상을 앞서 읽던 줄거리를 담았고, 잡지가 자취를 감춘 오늘날에는 지금 우리 모습과 삶을 가만히 되새기고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잡지 이름처럼, 샘이 깊어서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고 시원하게 감겨들까요. 섣부른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말되 세상일에 팔짱 끼고 나 몰라라 하지 않도록, 무엇이든 빨리빨리 외치는 세상 흐름에 끄달리지 말되 자기 줏대와 눈길을 추스를 수 있도록, 조용히 외치고 말이 아닌 온몸으로 파고드는, 내 삶에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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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피의 다락방
베치 바이어스 지음, 김재영 옮김,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잡지 <북새통>에서 "이달에 나온 좋은 어린이책" 추천을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추천하는 후보도서 다섯 권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쓴 소개글입니다. 다섯 권 모두 내키지 않았지만, 그나마 이 책에 별 셋을 주면서 추천을 해 봅니다..............

 

- 책이름 : 앨피의 다락방
- 글쓴이 : 베치 바이어스
- 옮긴이 : 김재영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2007.6.8.)
- 책값 : 7500원


―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다락방에서 내려와야
: 《앨피의 다락방》을 읽으면서



 - 1 -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삶이 즐겁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못하는 것 하나 없고, 꿈꾸는 일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면, 이렇게 누릴 수 있는 삶이 자기한테 가장 신날까요. 나한테 재미난 삶과, 나 아닌 사람들이 둘레에 어우러져 있는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자기가 하고픈 말, 이루고픈 꿈, 좋아하는 무엇을 자기 식구를 비롯해서 동무나 학교 교사나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지만, 어느 한 번도 이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다락방 아이는, 늘 마음문을 닫아걸게 됩니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자기 둘레 사람들이 자기한테 아무 이야기도 안 들어준다고 생각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는 자기 둘레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도 안 들어주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이 아이한테 어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들도 자기 마음에 드리운 그늘과 생채기를 말하고 싶어하면서도, 바로 자기 곁에 있는 식구들한테 드리운 그늘과 생채기에는 나 몰라라입니다. 다락방 아이 어머니가 읊는 “뭐든 얘기해 보라니까. 텔레비전이랑 할아버지 말고는 친구도 없이 하루 종일 집 안에 앉아 있는 엄마 좀 생각해 줘. 무슨 일 없었니?(39쪽)” 같은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참입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어떤 일로 걱정과 근심이 쌓여 아픔과 외로움으로 커 가는지 모릅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일로 고단함과 힘겨움으로 겨우 목숨만 잇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딸내미한테도 “네 오빠 도와주느라 네 소중한 돈을 눈곱만큼 썼지. 난 오빠를 도와줬다고 틀림없이 네가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오빠를 위해 그 돈을 쓴 걸 아직도 아까워하고 있구나.(95쪽)” 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들 마음조차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기 아이들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혼자서 집안살림 꾸리느라 돈벌고 밥하고(밥은 딸내미한테 거의 맡기지만)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느라 마음이 메말라 버렸고 뭉쳐 버렸다고 해야겠지요.

 어쩌면, 다락방 아이부터 이 아이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동무들과 교사들은 ‘자기가 보고픈 것만 보고’, ‘자기 둘레 사람들 삶과 생각과 마음’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구나 싶어요. 자기 마음에 깊게 패인 생채기는 볼 줄 알고 느낄 줄 알지만, 자기 둘레 사람들 마음에 ‘자기 마음에 패인 생채기만큼’, 또는 자기 마음에 패인 생채기보다 더 깊이 난 생채기를 볼 줄 모르고, 처음부터 들여다볼 마음이 없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다락방 아이는 한 가지를 압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135쪽).”는 걸. 그렇지만, 이 다음은 모릅니다. 다락방 아이 누나가 말하는 “앨피는 스스로 내려와야 해요. 꼭 그래야 해요.(111쪽)”를 모릅니다. 하지만, 다락방 아이 누나가 그러했듯이, 이 아이도 아직은 “정말로 상처받은 곳은 손가락으로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아픈 법이다.(154쪽)”라는 참뜻을 헤아릴 날을 맞이하겠지요. 그러니, 다락방을 지켜내려고 꼼짝 않고 버티고 있다가 스스로 마음을 풀고 다락방에서 내려와 말을 했을 테며, 다락방 아이 자기뿐 아니라 자기 둘레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생채기를, 또 이 생채기를 아물게 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보도록 하는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겠지요.

 다락방 아이, 그리고 이 작품을 쓴 사람조차 미처 몰랐을 수 있는 “어쨌거나 너도 날 도와주지 않을 거잖아.(96쪽)”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이 말은 다락방 아이 어머니가 다락방 아이한테 한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도와주지 못할 뿐 아니라 도와줄 마음도 없는’ 가운데 ‘아이가 자기를 도와주기’ 바랍니다. 참으로 철없는 어머니이지만, 이 어머니네 아버지인 다락방 아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락방 아이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다면, 다락방 아이네 누나 한 사람은 다릅니다. 이야기책에서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곁다리로 나타나지만, 다락방 아이에 앞서 ‘다락방 아이가 느낀 그늘과 생채기’를 먼저 느꼈고, 이를 식구들과 동무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슬기롭게 풀어내며 살아갈 길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서 곰삭이고 있거든요. 다락방 아이는 이런 자기 누나를 오래도록 ‘못 보며’ 살다가, 다락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누나라는 사람이 자기 곁에 있음을, 자기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구멍이 난 채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락방 아이네 누나가 “너하고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 걸 가져 본 적이 없어. 오빠가 싫어했던 거라면 몰라도.(84쪽)” 같은 말을 들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기네 학교 수학교사가, 자기가 그린 만화를 보여주었을 때 “이제는 수업이 끝난 다음에만 만화를 그리도록 해라.(70쪽)” 하는 말에 생채기를 받고,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엘피가 바라는 다락방 인생이었다.(139쪽)”와 같이 살아가려 할 뿐이었습니다.


 - 2 -

 동화책 《앨피의 다락방》을 덮으면서, 오늘날 아이들이 마음으로 앓고 있는 아픔이 누구한테나 참 클 수밖에 없음을, 그렇지만 그 아픔이 자기한테만 있는 줄 알고 자기 둘레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안 보려고 하면 ‘세상과 담을 쌓’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함을 살며시 느꼈습니다. 《앨피의 다락방》에 나오는 다락방 아이 엘피는, 앨피 자기처럼 세상을 더 살고 싶지 않고 사람도 더 만나고 싶지 않은 아픔을 이겨내고 제 나름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누이가 있은 덕분에, 다락방을 지켜내고 다락방에서 스스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다락방 아이 엘피는 자기 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자기 누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한 가지씩 생채기를 안고 있는 사람들, 이를테면 자기네 학교 수학교사와 오랜 짝꿍 ‘트리’라는 아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자기를 놀려대는 이웃집 쌍둥이 아이들이 자기네 집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까요? 자기한테 끔찍이 싫은 부버 형과 새언니가 어떻게 세상과 부대끼고 있는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작품 바깥으로 나와서 이 책을 살피면, 무엇보다도 번역이 무척 깔끔하고 훌륭합니다. 군더더기나 쓸데없는 말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할 만큼 빈틈이 없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어렵거나 딱딱하게 굳은 말, 일본 말투나 어설픈 서양 말투에 젖은 잘못된 말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이사이 스며든 그림 또한 ‘스며든다’는 말마따나 참 좋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그린 그림은 너무 틀에 박혀서,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며 다락방 아이와 어우러지는지, 또 다락방 아이네 누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합니다. 다락방 아이 모습은 잘 담아냈지만. 다락방 아이가 ‘자기 둘레 사람들, 식구부터 동무와 이웃 모두를 제대로 살피고 있지 못한 것처럼, 이 동화책에 실린 사잇그림도 다락방 아이를 빼놓고 다른 사람들 마음과 생김과 삶을 못 헤아리며 그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일부러 이렇게 그렸는지 모르지요. 다락방 아이가 세상을 보는 그 눈길만큼만.

 그리고, 책이름을 누름글씨로 새겨넣었던데, 이 책 꾸밈새를 살펴보았을 때, 누름글씨를 해서 제작단가를 높이게 하는 그런 일을 굳이 했어야 하나 싶더군요. ‘앨피의 다락방’ 여섯 글자와 그림 하나를 누름글씨로 안 했어도 느낌이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누름글씨를 안 했으면, 책값이 7500원이 아니라 7000원이 될 수 있었어요. 초등학교 높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좋도록 편집을 잘하기는 했지만, 겉그림 누름글씨는 ‘치명타’라고 할 수 있는 아쉬움입니다. 다락방 아이 앨피가 세상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던 것처럼, 이 책을 우리 말로 옮겨낸 출판사에서 우리네 아이들을 좀더 굽어살피지 못한 아쉬움이 묻어난다고 할까요. 깔끔한 번역글과 짜임새를 가려 버리는 이런 아쉬움을, 다음번 책에서는 떨쳐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별 다섯 만점에서, 별 셋을 주겠습니다. (4340.7.2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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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에 실으려고 쓴 글입니다. 마감날짜에 맞추어 겨우 썼네요. 히유....


 책으로 보는 눈 12 : “신문을 읽으시는 일은 좋지만”

 7월 17일 제헌절 아침, 시내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나갑니다. 영종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싶기도 했고, 나중에 자전거모임 사람들하고 영종도와 용유도를 한 바퀴 돌 생각에 미리 다녀와 보기로 합니다. 동인천에서 탄 시내버스가 월미도에 닿아 바닷가 쪽으로 걸어갑니다. 열세 해 만에 와 보는 월미도. 제헌절이 쉬는날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날이 환하게 개어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붐빕니다. 먼저 표파는곳으로 갑니다. 10분 거리인 영종도를 다니는 배삯은 어른 2500원. 왔다갔다 하려면 5000원. 자전거를 태우면 2500원이 덧붙어, 자전거로 영종도 다닐 생각으로 배를 타면 1만 원이 듭니다. 예전에도 자전거삯을 받았던가? 연안부두에서 제주섬까지 배를 타고 갔을 때 자전거삯은 따로 안 받았는데. 제주섬에서 목포로 갔을 때에도 자전거삯을 달라 하는 사람 없었는데.
 바닷가를 옆으로 끼는 월미도 ‘문화의 거리’를 천천히 걷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날씨인데 구름이 걷히며 해가 쨍쨍 납니다. 더워서 등판에 땀이 흐르지만 이 ‘문화의 거리’에는 햇볕을 그을 만한 그늘이 없습니다. 햇볕에 익고 싶지 않으면 바닷가 한쪽에 길게 이어진 횟집이나 찻집이나 밥집에 들어가야 합니다. 길가에 뒷간을 두 군데 마련했으나 크기가 작아 여자 쪽은 한참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판.


 ‘문화의 거리’ 맨 끄트머리에 겨우 한 군데 마련되어 있는 ‘그늘 있는 걸상’을 찾아낸 뒤 잠깐 다리쉼을 합니다.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생각합니다. 앞으로 월미도를 다시 찾아올 일이 있을까? 인천사람인 내가.


 시내버스를 타고 동인천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갈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서울에 있는 헌책방 나들이를 해 보기로. 용산에 있는 〈뿌리서점〉으로 갑니다. 동인천부터 용산까지는 급행전철이 있어 금방 손쉽게 오갈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서 즐겁게 책을 구경하다가 작은것을 보려 뒷간에 가려는데, 뒷간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여쭈니, 일요일이나 공휴일처럼 건물(여성단체협의회 건물입니다)이 쉴 때에는 경비원도 쉬는 터라 모든 문을 잠가 놓아서 뒷간에 갈 수 없답니다. 그래서 남자 분들 작은것을 보는 뒷간을 바깥에 임시로 만들었고, 여자 분들 볼일 볼 뒷간을 둘레 건물에서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책 구경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갑니다. 저처럼 잠깐 서울 나들이를 마친 사람, 쉬는날임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했을 사람 들로 해서 동인천 급행전철이 미어터집니다. 용산을 떠난 전철은 대방역께부터 설 자리가 모자랄 만큼 들어찼고, 이런 가운데에도 신문을 넓게 펼쳐서 읽는 분이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깊이 마음쓰시는 분이로군요. 이분, 제법 나이를 잡수신 아저씨는 바로 제가 앉은 앞에서 신문을 펼쳐 읽으십니다. 부천역까지 왔을 즈음, 도무지 견디기 어려워 쪽지를 써서 드립니다. “신문을 읽으시는 일은 좋지만, 불빛을 모두 가리지 않으시면 고맙겠습니다.” (4340.7.1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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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요즘 사람들한테 추천할 만한 책이 있으면 한 가지 이야기해 주셔요.” 하고 묻는 분이 곧잘 있습니다. 이런 물음에는 으레 싱긋 한 번 웃은 뒤, “하나도 없네요.” 하거나 “하나도 생각 안 나요.” 하거나 “글쎄요.” 하고 대꾸합니다. 제 대꾸를 듣는 분들은 저으기 놀라실까요. 저로서는 ‘좋은 책 하나 골라서 소개해 달라’는 물음이 참참참 어렵고 답답하답니다. 세상에 우리 마음과 삶을 가꾸고 살릴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 책을 스스로 하나하나 찾아서 읽을 생각은 못하며 ‘자기 몸은 안 움직이고 대신 움직여 달라’니요. 배고픈 사람이 스스로 쌀을 일고 씻고 안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듯이, 마음고픈 사람이 스스로 돈을 모아(일을 해서) 책방 나들이를 떠난 다음 책꽂이와 책시렁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마음에 밥이 될 책을 찾아서 사 읽어야 된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제 까칠한 대꾸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여태껏 책 많이 읽으셨을 텐데, 한 권쯤 기억나는 책이 있지 않아요?” 물으시면, 제 가방에 있거나 책상에 올려진 책을 슬쩍 보면서 이야기합니다. 제 책상머리 책이 언제나 그때로서는 하느님이거든요. 오늘은 제 책상에 《후지무라 미치오-청일전쟁》(소화,1997)이 올려져 있습니다. 청일전쟁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떻게 영향을 끼쳐서 오늘날에 이르는가를 살핀 조그마한 논문.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날마다 밥을 먹고 반찬을 먹지만, 몸소 논밭을 일구어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몸소 논밭 가꾸기를 안 하고 사서 먹는다고 해도, 쌀과 푸성귀와 물고기와 뭍고기 들을 손수 다듬고 익혀서 먹는 사람조차 퍽 드뭅니다. 부모님과 사는 분들은 어머님이, 혼인해서 사는 분들은 여자 쪽에서 밥상을 차립니다. 더구나 나날이 바깥밥 사먹는 분이 늘고 스스로 밥상을 차리는 사람조차 줄어요. 피자며 통닭이며 짜장면이며 국수며 돈까스며 …… 전화 한 통에 뾰로롱 달려와 갖다 바칩니다. 먹고 남은 것은 주마다 쓰레기차가 와서 거두어 갑니다. 형편이 이러하다 보니, 몸을 가꾸는 밥을 제 스스로 제 몸을 살피며 알뜰히 마련하는 문화란 사라지거나 옅어져요. 그래, 몸을 제 스스로 가꾸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까, 제 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느끼지 못하는 삶이다 보니까, 제 마음이 어떤지 헤아릴 수 있는 사람도 줄겠지요. 제 마음을 느끼고 살피면서 가꾸려고 하는 사람도 줄고요. 제 마음을 사랑하고 돌보며 고이 껴안는 가운데 이웃사람 마음을 따스하거나 넉넉한 품으로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 또한 자취를 감추지 싶습니다. 이런 세상이라면, 두 다리를 움직여 찾아가는 책방 문화란 발붙일 수 없구나 싶고, 인터넷으로 목록 죽 뒤져서 주문하는 경제논리만, 두고두고 읽는 책이 아니라 그때그때 유행 따라 읽어치우는 책만 잘 살아남고 두루 사랑받겠습니다. (4340.7.11.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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