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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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 글ㆍ그림 : 이세 히데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10.)
- 책값 : 1만 원



― ‘버려진 책’이 가꾸어 준 내 삶
: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덮으면서


 

 〈1〉 내가 좋아하는 책


 지난 월요일, ‘신구문화사’ 손바닥책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의 전도자 6인》(1976)을 서울 돈암동 헌책방에서 찾았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찾고 있던 책을 이제야 만납니다. 진작 판이 끊어진 책이기 때문에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웬만한 책은 다 갖추었다는 국립중앙도서관에도 《기독교의 전도자 6인》은 없습니다.

 지난 화요일, 라디오 역사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주는 《a pictorial history of RADIO》(Citadel press,1956)를 서울 홍제동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나라밖에서 라디오가 처음 만들어지고 방송이 퍼지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만, 나라밖이든 나라안이든, 라디오라는 물건이 만들어지고 라디오 방송이 우리 삶으로 파고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교보문고에서 이런 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런 책이 있을까요.
 

―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책은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식물학 연구자가 되었다. (56쪽)


 지난달, 《토트 티아메르-청소년의 순결》(가톨릭출판사,1963)이라는 책을 서울 연세대 앞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읽고 있습니다. 책도 묵었고 줄거리도 묵었지만, 처음 나온 지 마흔 해가 지난 이즈막에 읽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대목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다산시선》을 읽어도, 《목민심서》를 읽어도 그렇습니다. 《북학의》나 《을병연행록》을 읽어도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브르 곤충기》뿐 아니라 《파브르 식물기》도, 시튼이 쓴 동물 이야기도 세월이 묵을수록 빛을 더해 간다고 느낍니다.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모래 군의 열두 달》 또한 앞으로 쉰 해나 백 해가 지난다 하더라도 책상맡에 놓고 짬짬이 다시 돌아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피의 나무들”. 책 제목을 새롭게 붙였네! 아카시아 그림은 표지로 다시 태어났고, 내 이름이 그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53쪽)


 지금은 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저입니다. 책을 엮고 책을 쓰는 일을 하는 한편, 책을 가꾸고 지키는 도서관 일을 합니다. 전국 곳곳에 있는 헌책방을 하나둘 찾아다니면서 만나는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조차 없는 책이 제법 되고, 앞으로 세월이 좀더 지나면 ‘헌책방에서마저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책’도 꽤 되겠지요. 이런 책들을 돈 값어치로 셈한다면 ‘값나가느니 값 안 나가느니’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장만할 때 돈이 들어간다뿐, 책을 읽을 때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꾸리는 도서관에 와서 책을 구경하거나 읽는 분들한테도 돈이 들어가지 않겠지요.

 1979년 4월에 나온 잡지 《현존》 100호를 돈으로 따져야 할까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포토그라피》라는 사진잡지를, 《사진문화》라는 사진잡지를 돈셈으로 헤아려야 할까요. 종로서적이 무너지면서 함께 사라진 책들 가운데 하나인 《인권운동》이라는 조그마한 책을 값나가는 보기드문 책으로 쳐야 할까요. 삼성출판사에서 1970년대에 손바닥책으로 엮어낸 ‘한국문학전집’을 돈값에 따라 바라보아야 할까요.


― 책에는 귀중한 지식과 이야기와 인생과 역사가 빼곡히 들어 있단다. 이것들을 잊지 않도록 미래로 전해 주는 것이 바로 를리외르의 일이란다 ……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아. “얘야, 좋은 손을 갖도록 해라.” (45쪽)


 ‘우라느스키’라는 분이 쓴 《무신론자의 바이블》(정음문화사,1984)을 읽으니,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병을 고치는 것도, 노후의 생활도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해 나가는 것이 본래의 모습이다. 신체 장애자의 경우도, 힘껏 공부해서 가능한 한 자기의 힘으로 살아야 하리라. 사는 권리란, 자기 자신의 의사와 능력으로 사는 권리이며, 타인에게 의뢰하며 사는 권리가 아니다.(142쪽)”라는 대목이 보입니다.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다가, 문득 ‘우라느스키’는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여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 봅니다. 하지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책에도 소개가 없고, 인터넷에서도 이이 발자취를 살필 수 없습니다.

 1960∼70년대에 우리 나라에 곧잘 소개된 ‘무샤고오지 사네아쓰’라는 일본 철학가 발자취 또한 인터넷 찾아보기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1961년에 번역된 《젊은 날의 철학》(백문사)을 읽으면, “좋은 문학에 접하면 자기를 살리는 방법, 어떻게 하면 자기 완성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의 사는 목표를 볼 수 있게 된다.(29쪽)”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1961년에 이이 철학책 묶음이 손바닥책으로 여섯 권 나왔습니다만, 마흔 해 남짓 지난 오늘에 와서는 책은커녕 발자국조차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 “책이 이리 되도록 많이도 봤구나.  좋아, 어떻게든 해 보자꾸나.” “전 나무가 좋아요. 이 책엔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24쪽)


 사람들이 저한테 “헌책방이 뭐 그리 좋아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무슨 책을 볼 수 있나요?” 하고 묻거나 “헌책방에서 만난 보물이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면, 제 책상맡에 있는 책을 휘 둘러보다가 요즈막에 장만한 책을 집어서 보여줍니다. “지금은 비록 판이 끊어진 책이거나, 출판사가 문을 닫아서 사라진 책입니다만, 세월이 흘러도 우리한테 즐거움을 안겨 주는 책이에요. 오히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 빛이 나는 책이에요. 세상흐름을 잽싸게 옮겨타며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얻으려 하지 않은 책이라면, 지금은 새책방 진열대에서 밀려나 자취를 감추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헌책방에서 다시 빛을 보기 마련이에요. 저는 헌책을 보거나 새책을 보지 않고 그냥 ‘책’만 보고 있어요. 헌책방에서는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니 하는 이름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책을 살필 수 있어 좋아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크게 칭찬을 하거나 북돋워 주네 하는 이름에 따라 책을 고르지 않을 수 있어 좋아요. 그 어느 평론가나 책소개꾼들도 알아채지 못한 책이라 하겠지요. 누구보다도 샛장수 아저씨들이 고물상에서 건져낸 책이고, 헌책방 일꾼이 솎아낸 책이에요.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그래서 헌책방 일꾼은 허파가 안 좋답니다. 어쨌든, 이분들은 책에 담긴 줄거리는 모르실 수 있으나, 누군가한테 꼭 쓸모가 있구나 느껴서 하나둘 그러모은답니다. 저는 이렇게 솎여진 책에서 제 삶을 가꿀 수 있으리라 여겨지는 책을 가만히 살피면서 즐겨요. 더구나 주머니가 후줄근한 날에도 돈 몇 천 원이면 마음을 살찌우는 책 하나를 고맙게 얻을 수 있으니 좋지요. 책에 낀 먼지는 걸레를 깨끗하게 빨아서 박박 문지르거나 살살 쓰다듬으며 닦으니 더 좋아요. 깨끗한 책을 싫어하지 않아요. 조금 지저분해진 책을 깨끗하게 추슬러 주면서 겉보기를 넘어서는 속살을 읽을 수 있으니 사람을 보는 눈매에서도 겉보다는 속을 더 살필 수 있게 되잖아요.”


― 책방에는 새로 나온 식물도감이 잔뜩 있었다. “그렇지만 난, 내 책을 고치고 싶어.” (8쪽)


 누군가 묻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 많이 보셨겠네요?” 싱긋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요. 어릴 적에 책이 어디 있어요. 다만,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여서 ‘교사용 문제집’은 잔뜩 얻어와서 숙제라며 안겨 주셨어요. 그 문제집 푸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도 제대로 푼 적은 거의 없어요. 밖에 나가 동무들하고 놀기 바빴는걸요. 그래도 교사 집안이라고, 또 형이 어릴 때에 똑똑해서 책을 읽힌다고 딱따구리 무슨 전집이 하나 있었고, 삼국지하고 한국역사 전집 들이 몇 가지 있었어요. 월부책장사한테 산 책일 테지요. 때때로 이 책들을 조금 들춰보기는 했지만, 형하고 저하고 가장 많이 본 책은 클로버문고 같은 만화책이었고(어머니 몰래 사서 모았습니다), 《소년중앙》이었어요. 《보물섬》은 돈이 없어서 빌려서 보았어요. 《소년중앙》에는 만들기 별책부록이 많아서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꼬박꼬박 사서 보았지요. 몰래 모은 이 만화들을 어머니께서 동네 쓰레기통에 죄 갖다 버리셔서 하나도 안 남았지만요. 그러니까,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교 논술시험을 준비해야 하던 그때까지는 책하고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해도 좋아요.”

 
 〈2〉 책은 나한테 무엇이 되었는가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에 나오는 ‘소피’는 를리외르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식물학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를리외르 아저씨 같은 사람도 없었고, 소피처럼 두툼한 식물도감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떠올릴 수 있던 어릴 적 제 책이라면, 어머니가 몇 차례 갖다 버리셨어도 다시 사고 또 다시 사서 갖추었던 《번데기 야구단》(까치) 같은 만화책입니다.

 글쎄, 뒤늦게 책을 깨닫고 지금은 책과 함께 살아가는 제가 된 바탕이 있다면, 아무래도 ‘책을 버리신 어머니’ 덕분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어머니로서는 ‘공부에 도움이 안 될 만화책’이어서 버리셨겠지요. 형과 저한테는 둘도 없는 보물이었을 테지만. 어머니가 책을 버리신 덕분에, ‘한 번 버려지면 다시 찾을 길이 없는 책’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 만화책들이 버려지지 않았다면, 클로버문고뿐 아니라 수많은 1970∼80년대 만화책들이 잘 간직된 채로 부천만화박물관이라든지 어디엔가 바침책으로 드릴 수 있었겠지요. 또는 제가 인천에 연 도서관 책꽂이 한쪽을 아름답게 채우거나요.

 하지만, 형과 제가 없는 용돈을 10원짜리 하나까지 아끼며 사서 모았던 책이 버려졌기 때문에, 그것도 여러 차례 버려졌기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나이부터 다닌 헌책방에서 만난 책들을 좀더 애틋하게 돌보거나 바라볼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나는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살찌울 책을 찾아서 읽으려 한다’는 매무새를, ‘내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이 책들을 이제부터는 하나도 버려지지 않게 잘 간직해서 내 딸아들, 또는 내 딸아들이 낳아 기를 딸아들과 그 뒤 사람들한테까지도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싶다’는 꿈을 가슴 한켠에 새길 수 있었지 싶어요.

 《월간 목회》 1978년 5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글쓴이는 이원수 님. 이 조그맣고 낡아빠진 책에 실린 이원수 님 동화는 ‘깨끗하고 반듯하고 큼직한 판에 글씨도 큰 새로 나오는 책’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1978년 어느 잡지 별책부록으로 당신 동화를 한데 그러모아 펴낸 이원수 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이 〈아버지와 아들〉이 좋습니다. 이원수 님은 머리말에 “나는 얘기를 하고 싶었읍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내 마음속에 그냥 가두어 두고는 배길 수 없어 글로 쓴 것이 나의 동화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암과 싸우며 시름시름 앓고 있던 이원수 님은, 아픔을 온몸으로 삭여내며 원고지를 꾹꾹 눌러 쓰셨습니다.

 동화 줄거리만 헤아리자면 요새 나오는 판으로 읽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저는 동화 줄거리만 얻고자 책을 읽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묵은 책으로 굳이 찾아서 읽을 때에는, 이런 책들이 처음 나오던 때 느낌을 함께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헤아려 볼 수 있어요. 그때 이 책이 책방에 깔리며, 또 그때 사람들 손에 쥐어지면서 어떻게 다가갔는가를 가만히 톺아볼 수 있습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보물이 아닙니다. 늘 옆에 있는 고마운 지기처럼 살가운 동무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오래되어 값나가는 보물이 아닙니다. 한결같이 고운 속살을 내보이면서 마음빛이 바래지 않도록 어깨동무를 해 주는 맑은 벗입니다. 저한테 이 책들은 남 앞에서 뽐낼 만한 장서가 아닙니다. 오래도록 제 삶을 밝히고 가꾸어 주는 가운데, 제가 숨을 거두고 사라진 뒤에는 또다른 누군가한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훌륭한 이슬떨이입니다.


 〈3〉 티끌 같은 아쉬움


 그림책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를 읽으면서, 또 보면서, 또 곰곰이 되새기면서 제 책삶을 하나하나 되짚습니다. 좋은 이야기와 생각을 두루 얻는 한편으로, 몇 군데 아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옮김말. 아이들이 볼 그림책인 만큼, 옮긴이는 아이들 말씨와 눈높이를 조금 더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오래오래 책과 가까이하기 바라는 마음이라면, 이런 책에 담기는 말과 글은 좀더 추스르거나 다독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눈에 뜨이는 아쉬운 글월을 몇 가지 뽑아서, 딱 한 가지로만 손질해 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한 가지로만 손질했지만, 저마다 다 다른 말씨를 살리면서 손질하여 다시 쓰면 더 좋겠습니다.


 ┌ 나무에 대한 건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나무 이야기는 뭐든 다 나와 있어요

 ┌ 이 표지는 제 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껍데기는 제몫은 다한 것 같으니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추는 거야
 └→ 이 기계로 크기를 맞춘단다

 ┌ 그림이 있는 페이지를 빠뜨리셨어요
 └→ 그림이 있는 종이를 빠뜨리셨어요

 ┌ 아까 그림 속의 그 사람이야
 └→ 아까 그림에 그려진 그 사람이야

 ┌ 실의 당김도, 가죽의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선택도
 └→ 실 당김도, 가죽 부드러움도, 종이 습도도, 재료 고르기도

 ┌ 아버지 손은 마법의 손이에요
 └→ 아버지 손은 마법 손이에요



 “두 번 다시 뜯어지지 않는” “나만의 책”을 품에 안게 해 준 를리외르 아저씨는, 아이한테 책을 가꾸고 돌보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어린아이 스스로 살갗으로 느끼도록 이끌어 줍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보던 책 줄거리가 무엇인지 모를 수 있고, 또 알기 어렵겠지만, 당신이 손질하는 책을 보는 사람이 그 책을 아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읽어내면서 단단하게 굳어진 당신 손으로 책에 새 숨결을 불어넣었지요. 아이는 이 숨결을 느끼면서 자기가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에 담은 이야기임을 차츰 깨닫습니다. 부드러운 그림결로 두 사람 삶을 차분히 담아낸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이기에 여러모로 돋보입니다. 하지만, 책날개를 두 가지나 붙여서 만들어야 했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 값으로 1만 원이나 붙게 한 만듦새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사람 마음까지 속깊이 헤아리지는 못한 듯합니다.

 찬찬히 적었어야 할 옮김 말투와 함께 ‘지나친 꾸밈새가 되어 버린 책날개나 만듦새’를 되짚거나 다스릴 수 있다면,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라는 그림책은 더 많은 아이들한테 살뜰한 벗으로, 또 지기로, 또 길동무로, 또 이웃 아주머니나 할아버지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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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2007-10-05 11:49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 번역문장으로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내용에 마구 공감이 가네요.
 
지는 꽃도 아름답다
문영이 지음 / 달팽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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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에서 살아가시는 할머님 모습


- 책이름 : 지는 꽃도 아름답다
- 글 : 문영이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7000원



 이 책 하나 21 ― 할머니 삶터도, 내 삶터도 아름다워요
 :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읽으며



 〈1〉 내가 발딛고 있는 삶터


 태어나고 자란 인천을, 지난 1995년 4월 5일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15일, 열두 해 만인지 열세 해 만인지 돌아왔습니다. ‘텔레비전 소리 시끄러운 집안 분위기’ 탓에 인천 부모님 집에서 더 살기 싫어지기도 했지만, 새로 지은 널따란 아파트 방 한켠에서 지내는 일은 꼭 옥살이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 살고 싶었고, 이웃과 어깨동무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넓은 집으로 옮겨 가고 싶어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넓지 않아도 좋다’고, 마흔여덟 평짜리 새 아파트보다는, 연탄 때는 낡고 조그마한 5층짜리 아파트였어도, 열세 평짜리 헌 아파트가 훨씬 낫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에서는 옆집과 윗집과 아랫집 모두 사촌과 다름없는 이웃이었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았고, 동네 아이들은 모두 제 동생이었으며, 동네 형들은 제 친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 나도 어릴 때는 어른들 새벽잠 없는 내력도 몰랐고, 번개같이 움직이는 칼날 밑에서 실같이 이어져 내리던 실고추 내력도 몰랐다. 그리고 고단한 잠 깨워 이른아침 대참에 찬이슬로 얼굴 씻기시는 어머니 마음은 더더욱 몰랐다 ..  〈13∼14쪽〉


 나어린 사람한테 열 몇 해는 얼마나 긴 세월일까요. 키가 우쑥우쑥 자라고 몸집이 덩실덩실 커집니다. 나이든 사람한테 열 몇 해는, 늙은 나이에 숟가락 몇 번 더하는 세월일까요. 인천을 떠나기 앞서 보았던 그 골목길이 그대로인 곳에서는 ‘그동안 햇볕에 조금 더 바래고 먼지와 차방귀에 조금 더 까매졌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는 집과 길과 나무를 만납니다. 그동안 좀더 많은 사람과 일을 겪었을 뿐, 이제나 그제나 다름없이 허리 구부정하고 얼굴에 주름살 가득한 어르신들을 골목길에서 만납니다.


..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편이 조청을 못 만들게 한다. “사서 먹는 것보다 돈도 더 들고, 욕보고” 하지만, 내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음을 걱정해서란 것을 안다. 슬며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떡방앗간에 가 보면 설탕가루나 당원 봉지를 툭툭 터서 쌀가루에 섞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입맛을 버려 놓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 떡을 할 때는 고명이나 떡가루에 그런 잡스런 것을 못 넣게 지킨다. ‘요즘 사람은 다 단것을 좋아한다’고 떡을 하러 온 사람이나, 방앗간 주인이 말리지만, 나는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  〈160쪽〉


 문득, 나고 자란 이곳에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좁고 자그마한 집이기는 해도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에서 오순도순 지내셨다면 당신들께서 인천을 떠나셨을까 싶은 생각(부모님은 인천을 떠나 용인에서 살다가 음성으로 옮기셨습니다). 덧붙여 제가 인천집을 싫어하며 떠났을까 싶은 생각.

 마당이나 텃밭 딸린 집이었다면 마땅히 나무 한 그루를 어린나무로 심거나 씨앗으로 심었을 테지요. 그 나무가 여태껏 자랐다면 나즈막한 지붕을 훌쩍 넘어 담벼락 바깥 골목길까지 그늘을 드리우거나 열매 달린 가지를 내어주었겠지요.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저는 저대로 기둥 굵게 자란 나무를 보며 집구석을 애틋하게 돌보았겠지요.

 창영동, 금곡동, 송현동, 송림동, 화평동, 만석동, 인현동, 송월동, 전동, 북성동, 송학동, 내동, 용동, 답동, 율목동, 신포동, 신생동, 신흥동, 유동, 항동, 선화동, 숭의동, 도원동, 도화동, 주안동, …… 4월부터 다섯 달 동안 두 다리와 자전거로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면서 동이름을 하나하나 읊어 봅니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신흥동에서 신포동까지 장보러 걸어오던 일, 북성동을 지나 신생동 은행에 들렀던 일, 답동과 율목동을 가로지르는 싸리재를 넘나들던 일, 국민학교가 있던 신흥동 둘레 숭의동과 선화동과 도원동에 사는 동무네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 기찻길로 석탄이 들어오면 연탄공장에서 연탄 찍어서 기찻길로 다시 서울 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일, 기차가 안 다닐 때면 하나부터 천까지 헤아리며 기찻길을 밟고 주안동까지 걸어서 오가던 일을 곰곰이 되짚습니다.

 재개발과 도심정비사업과 구시가지정화라는 달콤쌉싸름한 이름을 내건 막개발로 사라진 조그맣고 지붕 낮은 한 층짜리 집들을 떠올립니다. 아직까지 골목집으로 꿋꿋하게 남아 있으면서 해가 뜨면 빨래나 이불을 내놓아 말리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해바라기를 하는 골목길을 생각합니다. 당신들은 예나 이제나 골목길 한쪽에서 일을 합니다. 잠깐잠깐 쉬는 가운데에도 두 손은 재게 놀려 굴이나 조개를 까거나 나물을 다듬어 저잣거리에 내다 팔 준비를 합니다.


.. 나는 무슨 먹을거리든 주된 재료 맛을 살리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모든 떡을 소금간만 하듯, 김치도 무배추가 지닌 단맛을 살리려 많은 양념을 넣지 않는다. 올해는 통깨 넣는 것도 그나마 잊어버렸다 ..  〈155쪽〉


 머잖아 재개발로 쓸려나갈 주안동, 수봉공원 옆쪽 구석진 동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감나무를 사진에 담을 때입니다. “거, 뭐하시오?” “네, 감나무가 좋아서 사진으로 담으려고요.” “허, 감나무는 뭐하러 찍나?”

 왜 사진 찍느냐고 말을 건 아저씨네 집에서 자라는 감나무도 찍을걸 그랬나요. 아저씨네 감나무를 사진으로 담았다면, 그 아저씨는 무어라 대꾸를 하셨을까요.

 지난 일요일, 송림동 달동네에 있는 꽃집(꽃을 파는 집이 아니라, 꽃을 많이 키우는 집입니다. 꽃그릇 숫자가 쉰은 훌쩍 넘을 듯하고, 온 집이며 마당이며 남새밭으로 가꾸어 놓아서, 꽃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집임자 아주머니가 2층 난간에 기댄 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잘 자란 까마중을 살짝 쓰다듬고 지나갑니다. 까마중을 따먹었다면 아주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나.


.. 어차피 살림은 정성이다. 물을 쓸 때도 무엇을 먼저 씻을까 차례를 잡아서 씻고, 불을 쓸 때도 불을 한 번 지펴 차례를 잡아 잇달아 쓰다가, 시간이 맞지 않을 때만 옆 불구멍을 잠깐 열고 쓰면 좋을 것을 ..  〈148쪽〉


 지난 수요일, 자전거로 광명에서 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당산동을 지나 신촌까지 달렸습니다. 한참 도림동을 지나갈 무렵에는 일부러 오르락내리락하는 달동네 안쪽 골목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서울 도림동 골목집도 조금 묵은 집마다 크고작은 꽃그릇을 계단이며 난간이며 담벽 위며 조그마한 틈이라도 있으면 한둘이든 몇몇이든 올려놓습니다. 좀더 오래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해서 고추 말리는 집까지 보지는 못합니다. 요즈음 인천 동구 골목집들은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거든요. 다 말리고 거두어들인 집도 있으나, 웬만한 골목길마다 ‘차 못 다니는 좁은 길’이면, ‘차 뜸한 길’이면 으레 한쪽으로 길게 고추를 펼쳐놓습니다. 비가 오면 비닐이나 천막을 씌워 놓습니다.


.. 옥수수밭을 매고, 나머지 덩굴콩도 심었다. 덩굴콩이란, 빛깔이나 모양이 제비콩 같으면서 동글동글한데, 맛은 그보다 훨씬 좋은 콩이다. 이름을 몰라, 유난히 덩굴져 오르기를 좋아해서 내가 붙인 이름이다 ..  〈120쪽〉


 어제는 항동에서 집으로 걸어옵니다. 우산이 없어서 택시나 버스를 탈까 싶었지만, 가방에 든 것은 비닐로 꽁꽁 싼 다음 걷기로 합니다. 장대처럼 쏟아지다가 멎고, 가늘게 내리다가 이내 굵어지고, 그러다가 다시 멎는 비. 답동성당 옆으로 지나갈 때 뒤따르던 차가 빵빵거립니다. 10초만 기다려 주면 빵빵거리지 않고도 우리 옆으로 스쳐 지나갈 틈이 나오는데. 골목길 한쪽에 함부로 대놓아 길을 좁게 하는 자동차를 보며 빵빵거리지 않는 차들입니다. 꼭 사람한테만 빵빵거립니다.


.. 옛 방식대로 버려지는 쌀뜨물로 그릇을 씻고, 빨래는 환경친화비누로 쓰는 일을 철저한 사명으로 지킨다면 맑은 냇물이 간직되고, 떠났던 가재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시냇물이 살아나 예전같이 아무 데서나 손으로 물을 움켜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산을 찾는 배낭 속에서 물병을 빼고 그것을 돈으로 셈해 보면(플라스틱 물병까지) 엄청나리라 ..  〈101쪽〉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비가 와서 물이 차거나 넘치는 곳에 가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옛 시외버스터미널 앞길은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찰방찰방. 곱고 멋진 옷 차려입은 어른들은 이제나저제나 버스가 물살을 가르며 와 주나 걱정하며 처마 밑 계단짬에 주루루 서 있고, 저를 비롯한 꼬맹이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가슴까지 물이 찬 터미널 앞길에서 신나게 놉니다.


.. 거름으로 쓰이는 쓰레기는 밥상에 올려지는 밥만큼이나 정갈하게 골라낸 다음이라야 쓸 수 있다. 비닐조각은 없느냐? 유리조각이나 건축폐기물은 아니냐? 화학약품이나 많은 소금기는 없느냐? 건전지, 깡통, 수은, 쇠붙이는 섞이지 않았느냐? ……… 땅도 땅 나름대로 깨끗한 정성을 쏟아야 소화해 내고 살이 된다 ..  〈88쪽〉


 제가 중학생일 때 형은 고등학생. 형은 우산을 거의 안 가지고 다녔습니다. 내리는 비를 그예 맞고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우산을 둘 쥐어 주면서 형한테 주라고 하지만, 형은 우산을 받지 않습니다. 저는 우산을 들어 형한테 씌워 주지만, 형은 발걸음을 빠르게 놀리며 비를 맞고 가겠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이면 늘 되풀이되는 실랑이였는데, 오래지 않아 저도 형을 따라 우산을 접고 비를 맞으며 학교를 오갑니다.


.. 자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다워서이다 …… 그리 높지도 깊지도 않은 그런 곳에 아스팔트길이 왜 있어야 할까? 몇 십 몇 백 년을 자란 숲을 어떻게 그리 쉽게 벨 생각을 했을까? ..  〈79∼80쪽〉


 아무 걱정도 생각도 근심도 마음도 없이 비를 맞고 걷던 적이 언제였을까.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걷기로 하니, 빗방울이 튀어 옷을 적셔도 괜찮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길에서 사진기도 비를 맞히며 걷습니다. 골목길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옆지기가 “또 흑백으로 찍어요? 비오는 날은 칼라로도 찍어 줘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네, 알았어요.” 대꾸하고는 렌즈 앞에 끼운 필터를 빼고 흑백으로 맞춥니다.

 비오는 날 구름을 흑백으로 찍으면 빛도 구름 그림자도 한결 또렷합니다. 빛깔있는 사진으로 찍으면 빗물에 촉촉히 젖어드는 계단이며 골목집 꽃그릇이며 알록달록한 느낌이 살아납니다.


.. ‘요새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바뿐 내 아들딸을 생각하여 고생을 마다하지 않듯이, 늙은 사람도 할 수만 있다면 고단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마음도 있어야겠다. 자리를 양보 받고 마땅히 받아야 할 자리를 받은 것 같은 마음은 없었는지? 그리하여 건성인 인사치레는 없었는지? 나를 돌아보았다 ..  〈70쪽〉


 예배당에서 나온 듯한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쓰고 골목을 걷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이 신을 벗고 양말발로 걷습니다. 쏟아지기도 하지만 골목길을 줄줄줄 흐르는 빗물 때문에 신을 신으나 마나겠지요.


.. 오빠는 내게 가벼운 심부름 한 번 시키는 일이 없었지. 삼촌들이 어쩌다, “영이야 물 한 그릇 다오.” 하면, “삼촌, 영이도 삼촌하고 똑같은 학생이여. 왜 그 애한테 심부름을 시켜.” 하고 오빠보다 두 살 아래인 삼촌에게 싫은 눈치를 보냈지 ..  〈41쪽〉


 집에 닿습니다. 젖은 옷을 벗고 젖은 가방을 풀어 놓습니다. 가방을 열어 비닐봉지에 담긴 책을 꺼내어 펼쳐놓습니다. 몇 권이 살짝 젖었네요. 비닐봉지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 있는 듯합니다. 가방 빨아 본 지 꽤 되었구나 싶어, 이 김에 함께 빨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젖은 옷가지와 가방을 들고 살림집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며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어,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전깃줄을 붙잡고 앉아 있네요. 흔하디흔한 고추잠자리가 이제는 찾아보기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데. 요 고추잠자리가 우리 집 창가 전깃줄에서 비긋기를 하고 있군요.


.. ‘이제 나도 벌레먹은 옥수수가 내 몫이구나.’ 지금 딸아이는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아득한 딱한 일로 보일까? 그 마음 이렇게 잠깐인 것을……. “오늘은 벌레먹은 것까지 어렵지 않게 다 팔고 왔다.”며 어린 아들딸 앞에서 즐거워 할 그 옥수수장수를 떠올리며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  〈31쪽〉


 밤새, 새벽내, 또 아침나절까지 해가 났다가 비가 쏟아졌다가 가랑비로 바뀌었다가 갰다가 되풀이됩니다. 바람은 몹시 붑니다. 뒷집 너머로 있는 전철길에서는 5분에 한 대쯤 지나가는 전철 소리가 꾸준히 이어집니다. 때때로 석탄 실은 짐열차가 지나갈 때면 구르르릉 하면서 건물이 조금조금 흔들립니다. 1958년에 지은 건물인데, 여태껏 저 짐열차 구르르릉에도 잘 견디며 서 있군요.


.. 식혜가 검은빛이 나는 것은 밥이 적게 들어간 것이고, 따라서 달지 않아 설탕을 많이 넣은 억지 맛이다 ..  〈160쪽〉


 〈2〉 일흔세 살 할머님 이야기


 이야기책 《지는 꽃도 아름답다》를 너덧 번 읽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또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오셨는가 돌아보면서.

 책읽을 틈이 없이 바쁘게 산다는 동무나 선후배한테 이 책을 사서 선물해 줍니다. “너희 할머님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어 봐.” 하고 말하면서.

 남편바라지에다가 딸아들바라지로 젊은 날을 다 바친 문영이 할머님은, 마지막 아이가 제금을 난 다음, ‘이제부터는 내 하고픈 일을 하나 해 볼라요’ 하고 남편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시오’ 하고 선선히 받아 주는 말을 듣고, 예순세 살이던 1997년에 문학강의를 처음으로 들어 봅니다. 그 뒤 당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띄엄띄엄 짤막한 글을 쓰셨고, 2003년 8월에 이오덕 선생님 책 《우리 글 바로쓰기》를 읽으며, ‘내가 참 바른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당신이 썼던 글을 ‘우리 글 바로쓰기’에 알맞게 추슬렀습니다. 머리가 허옇게 된 ‘흰바가지’가 되었으나 “동네에 불이 나면 물지게를 지고, 물동이를 이고, 자배기를 안고 저마다 오직 불을 꺼야 한다는 한 생각으로 뭉치던 사람들”처럼 자그마한 글 하나를 써서 나누면서, 말이며 삶이며 사람이며 땅이며 곡식이며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4340.9.2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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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20 : 어떤 책을 선물할까


 모리모토 코즈에코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 《조폭 선생님》을 봅니다. 주인공은 조직폭력배 후계자인 딸이자 고등학교 수학선생. 조직폭력배 집안에서 태어나 조폭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 이 가운데 학교 교사들은 조폭을 쓰레기처럼 여겹니다. 어린 딸아이는 커서 교사가 되기로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잘못된 생각에 아이들이 물들지 않으면서 자기 꿈을 키우고 밝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산바치 카와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 《4번 타자 왕종훈》 쉰두 권을 다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배정서를 잘못 받아 엉뚱한 학교로 가게 된 시골아이 왕종훈은 야구 솜씨가 하나도 없었지만, 농사꾼 아들답게 땀방울 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내면서 자기가 사랑하고 아낄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갑니다. 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땅꼬마이지만, 이 땅꼬마는 터무니없다고 할 만큼 연습과 훈련을 거듭하면서, 겉모습으로만 얕잡아보는 사람들 매무새를 속속들이 깨뜨립니다.

 “일본사람은 엉터리라서 일본만화가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하늘을 날아도 “네, 하늘을 나는군요” 하고 받아들일 뿐이랍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만화에서도 “사람이 하늘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일”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한국만화 가운데 적잖은 숫자는 억지나 거짓으로 느껴집니다.

 《기독교의 전도자 6인》(신구문화사,1976)을 읽으니, 조선 시대에 천주교를 받아들여 온몸으로 믿고 따르던 정하성이라는 분은, 천주교리 참뜻을 헤아리며 착하고 올곧게 살아가려고 애쓸 뿐, 자기 뱃속을 차리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살에 관한 어두운 백서》(종로서적,1981)를 읽으니, 프랑스 사회에서도 엉터리 같은 일이 참 흔히 일어나는군요. 공무원들은 ‘공무집행’만 하고, 자기가 하는 공무집행 때문에 삶이 무너지고 살아갈 빛을 잃으며 목숨을 끊는 사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댁의 문제지요. 저는 돼지고기 상점의 보건 상태를 조사할 뿐입니다. 시설개조를 못하신다면 영업을 계속 하실 수 없을 겁니다.(150쪽)”라고 말하며.

 《오카방고의 숲속학교》(갈라파고스,2005)라는 책을 읽습니다. 아직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아이들이 어머니를 따라 아프리카로 삶터를 옮깁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도 보츠와나가 어디 있는지 찍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는데, “차 뒷자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아주 작은 것들(170쪽)”을 보게 되고, 저마다 자기한테 무엇이 중요하고 아름답고 고마운지 몸으로 깨닫습니다. 《이응노―서울ㆍ파리ㆍ도쿄》(삼성미술문화재단,1994)를 읽습니다. 독재정권이 그림 그릴 자유를 억눌렀지만, 이 억누름은 이응노 님 스스로 새 그림세계를 열도록 도와주기도 했군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펴낸 책이 하나둘 나와 출판기념잔치를 벌입니다. 이 책들은 누구한테 주려고 만들까요. 이 책들에는 무슨 이야기를 담을까요. 선거가 끝난 뒤에도 살가운 동무한테 선물할 만한 책으로 이어갈까요. (4340.9.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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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이라는 긴소설이 1970년대 끝무렵에 조그마한 ‘손바닥책(문고판)’으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으나, 그 뒤로, 또는 그 앞으로 ‘긴 줄거리를 담은 책’이 손바닥책으로 나온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책이 새로 나온 뒤 얼마만큼 팔리게 되면, 손바닥책으로 보급판을 만드는 문화가 널리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토지》 같은 책도 일본에서는 손바닥책으로 나옵니다. 보도사진가를 이야기하는 어느 일본 손바닥책은 쪽수가 자그마치 1000쪽을 훨씬 넘는데 책 만듦새는 튼튼하여 책장이 안 떨어지고, 읽기에도 괜찮고 무게도 가볍습니다. 우리 나라였다면 이런 책을 큼직하고 무겁게 만들어서 들고 다닐 수 없게, 그러니까 책꽂이에만 모셔 두도록 했겠지요. 책값은 5만 원도 아닌 10만 원쯤 붙었을 테고요.

 《태백산맥》과 《아리랑》은 ‘애장용’이라고 하며 양장에다가 책상자까지 만든 판이 나온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좀더 많은 사람이 가벼운 마음으로 값싸게 사서 널리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보급판’이나 ‘손바닥책’을 만들겠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토지》나 《혼불》 같은 긴소설도 손바닥책으로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소설책을 한국처럼 두껍고 무겁고 비싼 고급종이를 써서 만드는 곳은 없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일본이든 다른 어느 나라이든, 소설책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그러니까 공부하는 책, 학문 깊이를 파헤친 책, 인문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어떤 전문 분야를 다룬 책도, 그림과 사진이 많이 들어간 예술 쪽 책도 으레 가볍고 튼튼하면서 보기 좋고 값싸게 만드는 편입니다. 다만, 이렇게 만들면서도,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장서로 갖추어 자료로 쓸 수 있는 판도 함께 만듭니다(도서관에서 기꺼이 사 주니 이렇게 할 수 있을 테지요).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요새는 웬만하게 만들어서는 책이 안 팔린다고 해서 책값을 올리며 빛깔 곱게 꾸밉니다. 책마다 껍데기를 씌우거나 띠지 두르기는 유행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래, 책값을 올려붙인 책이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독자들이 사 주지 않는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이런 책마을 흐름은 ‘어차피 이 책을 사서 볼 사람은 사서 보니까, 그렇게 사서 보아야 할 사람들 주머니를 털어내자’고 생각하는 도둑질은 아닐까요. 좀 지나친 말이라 하실지 모르겠으나, 우리네 책마을 모습이 이렇잖아요. ‘어차피 사서 읽을 사람’이라 한다면 ‘좀더 값싸고 즐겁게 사서 보도록’ 해 주어야 좋고, ‘이 책을 몰라보고 못 사는 사람한테도 널리 알리는 길’을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이 모든 문제를 출판사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책을 읽는 우리들부터 ‘속에 담은 줄거리’를 살피며 책을 사 보는 버릇을 제대로 못 들이고, 또는 안 들이고 있으니까요.

 겉꾸밈(디자인이나 장정)이 좀 허술하더라도 속에 담은 줄거리가 알뜰해야 좋은 책이라고 느낍니다. 널리 이름이 알려졌거나 무슨 교수가 쓴 책이라 해서 훌륭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책을 낸 역사 깊은 출판사라고 해서 ‘이곳에서 새로 내는 책마다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아직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 써낸 책을 낯선 출판사에서 냈을 때, 이 책들은 찬찬히 살피며 돌아볼 값어치가 없을까요.

 제가 헌책방을 자주 다니며 책을 보는 까닭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① 겉꾸밈이 좋다고 모두 읽을 만한 책이지 않습니다. ② 이름난 사람, 학식과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해서 훌륭한 줄거리를 담은 책이지 않습니다. ③ 권위와 역사 깊은 출판사라 해서 한결같이 우리 삶을 밝히는 책을 내지는 않습니다. ④ 책크기(판형)가 작고 가볍고 값싸고 좀 질이 낮은 종이를 쓴 책이라고 해서 뭔가 좀 덜 떨어지거나 모자란 책이지 않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은 사람이든 책이든 사물이든, 일자리든 자연이든 삶이든, 사진이든 연속극이든 영화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좋고 싫고’를 가리기 일쑤입니다.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일도 잘하고 똑똑할 것처럼 생각하지 않나요. 얼굴이 곱상하고 예쁘면 더 마음이 끌리지 않나요.

 참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일 때부터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일류대학교 들어가기 난장판’에 끌려들고 맙니다. 사물과 사람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자기가 참으로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자리를 찾기보다, 돈과 이름과 힘을 더 많고 높고 크게 얻을 수 있는 학벌과 연줄을 찾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갑니다. 형편이 이러하니, 책 한 권을 볼 때에도 속보다 겉을 더 따지거나 찾게 되지 싶어요. 요즘 들어서 드물게 나오지만, 못생긴 탤런트나 영화배우 숫자는 참 적어요. 연속극에 나오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잘나고 잘생기고 몸매 늘씬한 사람입니다. 장애인은 아예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만큼 ‘장애인 이동권’과 ‘장애인 활동권’이 막혀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더욱이 장애인 이야기나 푸대접받는 소수자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구경하기 힘들고, 어쩌다 나오는 책은 실천이 따르지 않는 구호를 벗어나지 못해요. 영어니 논술이니 하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동안 아예 한참 뒤로 밀려나 버리고 만 ‘우리 말과 우리 문화 이야기’를 다룬 책은 큰 책방 진열장에서도 구석진 자리에나 조금 있을 뿐입니다. 뭐, 이런 책을 사 보는 사람이 드무니 책방에서는 어쩔 수 없겠지요.

 사람 손은 하나라서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것도 하나입니다. 욕심을 잡으면 나눔을 못 잡고, 명예나 돈이나 권력을 잡으면 사랑과 믿음과 즐거움을 놓칩니다. 겉멋을 잡으면 속멋을 놓치기 마련이고 학벌과 학력을 잡으면 참된 사람살이와 사람공부는 놓칠밖에 없습니다. 책 하나 만들어 사람들한테 읽히겠다는 책마을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이 마음과 살림을 좀더 헤아리고 살피는 눈길을 잡지 않는다면 얄궂은 길로 갈밖에요. 책 하나 찾아내어 읽는 우리들도 겉꾸밈과 유명세 따위에 자꾸자꾸 빠진다면, 속을 잘 차리면서 알뜰하고 아름답게 가꾼 책하고 그지없이 멀어질 테고요.

 어제부터 《내 나이가 어때서?》(황안나 지음,샨티,2005)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예순다섯 나이에 두 다리로 남녘땅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걸어서 밟아나가는 여행을 떠난 할머니 삶과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나 역시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하기에 ‘오늘’은 항상 가장 적합한 때이다.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본단 말인가!” 하는 대목에서 한동안 책장을 덮습니다. 이 외침 그대로 우리들은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을 밝히는 책, 겉멋이나 유명세나 유행이 아니라 자기한테 지금 가장 쓸모있으면서 올곧음과 즐거움을 베풀어 주는 책, 달디단 설탕이나 짜디짠 소금이 아니라 구수하면서 하루 세 끼니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된장찌개 같은 책을 즐기는 일이 출판사한테는 ‘조그마한 책’ 조촐히 내는 마음을 일으켜세우고, 우리 자신한테는 ‘조그마한 책’ 가붓이 즐기는 마음을 잠깨울 수 있을까요. 조용히 믿어 봅니다. (4338.8.18.나무.처음 씀/4340.9.16.해.고쳐 씀.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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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에서 볼일을 본 어제 낮, 자전거를 몰고 남구로를 지나고 대림동을 지나고 보라매공원을 스쳐서 영등포에 이릅니다. 영등포역을 웃지르는 고가도로를 탑니다. 영등포역 둘레에 조용히 자리한 지붕 낮은 집이 몇 군데 보입니다. 비바람에 지붕 날아가지 말라며 벽돌로 꾹꾹 눌러놓았네요. 어느덧 여의도를 지나 당산역. 한강시민공원으로 잠깐 접어듭니다. 여섯 달 만에 지나가 봅니다. 그때나 이제나 자전거 타고 시민공원 들어가는 길은 참 알쏭달쏭입니다. 길이 익숙한 사람 아니고는 들어갈 구멍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길알림판이란 보이지 않으니까요. 가파른 구름다리 계단을 끙끙거리며 자전거를 밀고 올라갑니다. 차라리 들고 올라가는 편이 나을까. 한강다리를 건너고 합정동으로 나옵니다. 자전거가 안쪽 길로 들어가도록 마음써 주는 자동차가 좀처럼 없었으나 그예 한 대가 살살 멈춰 줍니다. 고개 꾸벅. 홍대전철역 앞을 지날 무렵, 뒤에서 자전거를 들이받을 듯 마구 모는 스포츠카 한 대. 버스는 정류장에 반듯하게 대지 않아 뒷차는 하는 수 없이 길에 뻘쭘하게 서고. 차방귀와 자동차에서 내는 뜨거움을 옴팡 뒤집어쓰며 동교동에 닿습니다.

 오랜만에 서울 시내를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다른 곳에서 달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아버지 어머니들은 자기 딸아들이 자전거를 몰고 볼일을 보러 다녀도 앞뒤옆에서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갑자기 끼어들까요. 당신한테 아버지나 어머니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되는 사람이, 또는 살가운 벗님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골목길에서 불쑥 튀어나와 놀래킬까요.

 동교동 헌책방에서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책을 구경합니다. 제 뒤로 지나가다가 툭 치는 책손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구경하는 자리에 밀치고 들어오는 책손도 있군요. 마침 그림책을 살피고 있는데, 책방 문을 열자마자 제 옆자리로 밀치고 들어온 분은 아이들 영어 그림책을 고릅니다.

 신촌에 있는 헌책방 한 군데 더 들릅니다. 오늘은 몸이 찌뿌둥해서 책 구경은 이쯤에서 접기로 하고, 다시 자전거를 몰아 신촌닷거리에서 애오개로 내닫습니다. 덩치 큰 버스는 자전거한테 1미터를 내주기보다는 빵빵거림으로 주눅들게 합니다. 노란 학원버스는 어디에서나 신나게 내달립니다. 저 버스에는 틀림없이 아이들이 타고 있을 테지요. 아이들은 뒷날 운전면허증을 따서 차를 몰게 될 때에 어떤 매무새일까요.

 어린이책은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고 아버지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좋은 책’을 많이 사 주십니다. 비록 중학교 들어가는 때부터는 ‘좋은 책’은 뚝 끊어지고 ‘학습지와 참고서’로 바뀌긴 해도. 그나저나 우리 어버이들은 당신 스스로 어린이책을 읽고 삭이고 되뇌인 뒤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있을까요. 어린이책에서 말하는 가르침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고, 나보다 가난하거나 힘없는 이를 돕고, 잔꾀 부려 남을 괴롭히지 말며, 오순도순 서로 아끼며 살라’일 텐데. (4340.9.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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