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가을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젯밤, 그리고 오늘낮, 집에 있는 온도계를 보니 16∼17도입니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은 20도를 넘길까요? 오늘은 며칠 만에 해가 얼굴을 내밀고 있어서 부랴부랴 이불을 걷어서 담벼락에 널어 놓습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감고 웃도리와 수건 빨래를 합니다. 온도계로는 가을이라 그런지 이른새벽이나 이른아침에는 머리감기 힘듭니다. 이제 막 가을 문턱을 넘어서서 그럴 텐데,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겠지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머리를 잘만 감아 왔으니까요.

 빨래는 집안에 널어 놓은 다음, 머리카락 물기를 조금 털어내고 마당으로 나와 해바라기를 합니다. 갈비뼈처럼 보이는 양털구름이 좋아 보여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앞집 하나 건너에 있는 기찻길로 전철이 오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요새는 전철길을 따라 길게 울타리가 놓여서 시끄러운 소리를 조금이나마 막아 줍니다. 이 울타리조차 없던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 사람들은 우예 살았을까요. 아니, 지난날에는 기찻길 옆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리 공해’에 시달린다는 생각을 아예 안 했겠지요. 생각해 보면, 기찻길이든 넓은 찻길이든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죽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 모여살던 마을은 그예 두 동강이 나서 얼결에 남북, 또는 동서로 갈린 채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처럼 되고 맙니다.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이 고속도로 왼편과 오른편으로 갈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 싶어 가슴이 짠합니다. 어쩌면, 두 마을 분들은 서로 오갈 일이 없을지 모르겠고, 고속도로로 나뉜 지 오래되어서 서로 오갈 일도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동안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데에도 머리카락 물기가 거의 다 마릅니다. 웃도리를 들고 도서관으로 내려옵니다. 물 한 잔 마시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4340.10.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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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신문>에 주마다 한 번씩 싣는 글. 어느덧 스물한 번째 글이 되었네.

그나저나, 글에서 이야기하는 <민족통일을 위하여>는 미처 겉그림을 긁어 놓지 못했다 ^^;;;








 책으로 보는 눈 21 : 어떤 책을 선물받고 싶나



 2001년 세상을 떠난 송건호 님이 1986년에 써낸 책 《민족통일을 위하여》(한길사)가 있습니다. 227쪽자리 조그마한 판으로, 이 나라 민족지성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현대 역사는 어떻게 연구해야 좋은가, 식민사관은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가, 일본과 우리 나라는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가, 오늘날(1980년대)을 살아가는 젊은이들한테 바라는 일, 통일 이야기로 무엇을 주고받으면 좋을까, 남북이 나뉘어 있는 이 땅에서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들을 차근차근 짚어 나갑니다.

 지난 2004년, 전교조 ㄷ지부를 찾아가서 학교 선생님들 앞에서 우리 말 이야기를 들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나이 또래 선생님도 계셨겠지만, 저보다 한참 나이든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나어린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배워야 할 일이 있으면 자기보다 한참 젊거나 어린 사람들 말도 귀담아들어야 좋음을 살갗으로 느꼈습니다. 이날, ㄷ역에서 모임터까지 차로 실어다 준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분한테 “오늘 ㅇ동 헌책방거리에서 송건호 님 책을 한 권 우연하게 만났어요(전집이 나오기 앞서까지 송건호 님 책은 거의 모두 절판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또 찾을 수 있으니, 선생님이 한번 읽어 보셔요.” 하고 말하며 《민족통일을 위하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께서는 “송건호요? 어떤 분이지요?” 하고 물으십니다. “……. 1975년에 동아일보를 그만두시고, 1988년에 한겨레신문을 만드셨던 분인데, 모르시겠어요?” “하하, 제가 책을 잘 안 읽어서요.” “책 읽을 틈은 없으셔도 신문 읽으실 틈은 있으실 텐데.” “저는 그 책을 받아도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최 선생님께서 그냥 읽으시지요.” “저는 예전에 읽은 책입니다. 오늘 모임에서 만나는 분한테 선물로 드리려고 일부러 한 권 샀어요. 우리 삶을 밝힌 훌륭한 어른 가운데 한 분인 송건호 님이에요. 바쁘시더라도 한번 살펴보시고, 학교에서 아이들한테도 이런 분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읽어 보시고 괜찮으면 다른 선생님을 드리셔도 좋고, 그다지 마음에 안 드시면 헌책방으로 가지고 가 파셔도 좋고요.”

 그 뒤로 세 해가 지난 2007년 가을, 아직까지 송건호 님 《민족통일을 위하여》라는 책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분은 책 읽을 틈도 없고 송건호 님도 모른다고 했으니 그 책을 드리지 말았어야 했나 모르겠습니다. 송건호 이름 석 자만 알고 이분 삶과 생각을 잘 모르는 분한테 드리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송건호 님 이름과 삶을 조금은 알지만, 이분 생각과 발자취를 잘 모르는 분한테 드리는 편이 한결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민족통일을 위하여》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지만, 《민족지성의 탐구》나 《한국현대사론》이나 《한국현대인물사론》 같은 책은 헌책방에서 곧잘 보입니다. 다만, 이 책들은 책이름을 한자로 적어 놓고 있어서 알아채는 분이 갈수록 줄어듭니다. ‘송건호 언론상’을 받는 분들한테 송건호 님 책을 드리면 반가이 받아들며 읽어 주실까요. (4340.10.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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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이노리티 시선 19
정은호 지음 / 갈무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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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만에 다시 읽고, 다시 쓰는 소개글입니다 ^^;;;; 예전 글은 너무 부끄러워서~~)


- 책이름 :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글 : 정은호
- 펴낸곳 : 갈무리(2003.10.30.)
- 책값 : 6000원



 ― 우리 삶을 옥죄는 비바람은 무엇일까
 [말을 붙잡는 시 5]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1〉 어떤 끝을 볼 수 있을까


 엊저녁, 잠깐 밤마실을 나옵니다. 언제 사 두었는지 알 길이 없는 김빠진 맥주 하나가 냉장고에 있더군요. 날이 차츰 쌀쌀해지고 있기 때문에, 머잖아 냉장고 돼지코를 뽑을 생각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어쩔 수 없이 냉장고를 돌렸지만, 추운 겨울에는 냉장고를 쓰지 않아도 먹을거리가 다치지 않아요. 마음 같아서는 여름에도 냉장고를 끄고 싶으나,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군요.

 아무튼, 냉장고에 들어 있던 맥주를 치워내야 하기에, 안주거리 될 만한 과자부스러기라도 살 생각으로 동네 구멍가게로 찾아갑니다. 여덟 시만 되어도 가게문은 거의 다 내리고 조용해지는 배다리 골목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쉬는 날
 저녁시장에 갔던
 아내가 내온 방울토마토
 웬 방울토마토?
 퉁명한 내 말에
 요즘 시장에서 제일 싼 게
 방울토마토라 한다
 …  〈방울토마토〉



  사람도 뜸하고 차도 뜸한 길을 설렁설렁 걸어갑니다. 얼마 앞서 다시 연 ‘24시간 불가마 찜질방’을 왼쪽으로 끼고 걷습니다. 저 찜질방은 이 동네에서 얼마나 장사가 되려나. 예전에 장사가 안 되어서 문을 닫았을 텐데.

 사람들 살림집을 밀어내고 산업도로를 닦는다며 파헤쳐 놓은 길 옆을 지납니다. 그나마 마을 분들이 힘을 모아서 이 공사를 멈추게 했지만, 개발업자는 언제 다시 삽날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라니……. 참으로 터무니없는 소리요, 어처구니없는 막공사입니다. 동네사람들도 참 어리석었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개발업자와 인천시 담당공무원 들은 ‘여느 길 하나 닦는다’는 거짓말로 동네사람들을 속였더군요. 아무렴. 컨테이너차나 덤프가 씽씽 내달리는 산업도로를 닦는다고 처음부터 말했으면 어느 누가 도장을 찍어 주었을까요.


 양손에 수갑차고
 끌려가지 않아도
 감방에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리들 생존의 벌판
 깊숙이 파고든 손길

 노동자 관리리스트
 A, B, C 등급
  A : 특별 관리대상
  B : 잡무 우선배치
  C : 특근 잔업 전혀 없음
 … 〈구속 2〉



 할배와 할매가 번갈아 지키는 구멍가게로 들어갑니다. “안녕하셔요” 하고 고개숙여 꾸벅 인사를 합니다. “어!” 하고 인사를 받는 할배는 가게 불을 켭니다. 손님이 들어올 때에만 가게 안쪽 불을 켭니다. 할배는 텔레비전 역사연속극을 보고 있습니다.

 과자부스러기 몇 점을 집다가, 막걸리도 한 병 집습니다. 늘 마시던 소성막걸리는 다 떨어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누룽지막걸리를 집습니다.

 우리가 고른 물건이 셈대 위에 놓이니, 할배는 뒤쪽에서 주판을 꺼내어 톡톡톡 알을 놓습니다. 속으로, ‘아이고, 사진기 가지고 나올걸. 잠깐 나온다며 사진기를 괜히 놓고 왔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할배가 한 마디 건넵니다. “옥상에 있는 꽃 사진으로 찍지 않을래?”


 일요일 한 번 쉬어 보는
 절실한 노동자들
 다 버려 두고

 통념도 상식도 다 무시하고

 공공부문
 몇 천 명 사업장
 먼저 쉬어야 하는가

 공익 위해서라도
 공공부문 사업장보다
 선방공 용접공 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노동강도를 따져 보아도
 근무조건 열악한
 작은 공장 노동자들
 먼저 쉬어야 하는 것이 순리다

 몇 천 명 쉬는 것보다
 몇 명 쉬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주 5일 근무 2〉



 할배는, 셈을 마친 뒤 가게문을 잠깐 내리고 우리를 이끌며 가게 옥상이 올려다보이는 골목 안쪽으로 갑니다. “저기 하얀 꽃 보이지? 희귀한 꽃이라는데 참 예쁘게 잘 피었어.” “그러네요. 지금은 어두워서 찍을 수 없고, 내일 아침이나 낮에 다시 올게요.” “그래, 아침에는 내가 없을지 모르지만,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사진으로 찍어.”

 가지고 온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합니다. ‘할배네 옥상에 온갖 꽃이 가득하던데. 석류도 있고. 그 꽃들을 혼자서만 즐기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셨을까. 보기 좋은 꽃이라면 이웃들한테도 내보이면서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으셨을까. 골목길 바깥쪽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내놓고 키우는 모든 살림집 어르신들 마음도 이와 같을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도화동 어느 집 감나무를 구경하면서 나무가 참 좋다고 말하니 그곳 집임자가 웃으면서 좋아했는데.’


 …
 담배 한 갑에도
 소주 한 잔에도
 온갖 세금들이 다 떨어지고
 의무만 존재할 뿐
 …  〈이민을 꿈꾸는 것은〉



 집에 닿아 먹자판을 벌여 놓고 창밖을 잠깐 내다봅니다. 영화를 찍는다는 대학교 아이들이 헌책방거리에 찾아와서 어제부터 무언가를 찍고 있습니다. 어제는 이른저녁부터 동틀녘까지 퍽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내 주려나? 동네길에서 밤늦게까지 영화를 찍는다고 부산을 떠니, 그 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옵니다. 그나저나 저 젊은 아이들이 찍는 영화는 무엇을 주제로 삼고 있을까. 무슨 줄거리를 찍기에, 꼭 헌책방에 와서 찍어야만 했을까. 저 젊은 아이들한테 헌책방이란 어떤 곳일까. 저 젊은 아이들은 영화를 찍기 앞서, 그리고 영화를 찍은 다음에, 이 헌책방거리에 찾아와서 자기 마음밭을 일굴 책을 차분히 즐길 수 있을까.


 아이들 학원비며
 집장만하며 낸 대출금이자
 각종 공과금
 들어갈 건 많고
 손에 묻은 밥풀 같은 월급 쪼개어도
 생활비는 늘 모자란다
 …  〈금 닷돈〉



 남쪽 바다에는 태풍이 찾아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는 동네에도 거센 바람이 씽씽 붑니다. 아직 비바람으로 몰아치지는 않습니다. 낮에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더니, 매지구름도 보이고 먹구름도 드문드문 보이던데. 문득, 볕드는 날이 줄고 비가 잦은 올해 날씨는, 하늘에 짙게 드리운 먼지띠를 많이 씻어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먼지띠는 고스란히 바다로, 땅속 깊이 스며들었을 테지요. 덕분에 올해는 지난해와는 달리 햇볕 맑게 내리쬐는 날, 가끔이나마 눈이 살짝 부실 만큼 빛살이 좋고 하늘이 파랗기도 했어요.


 정규직은
 아예 모집하지 않는다

 정규직을 모집한다 해도
 젊은 사람 오지 않는 공장

 비정규직 라인에 붙이건만
 점심시간 되기도 전
 말도 없이 사라지고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만
 남아서 일하고 있는 공장  〈3D 공장〉



 막걸리를 마시다가 다 마시지 못하고 1/3쯤 남깁니다. 늘 마시던 막걸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속에서 잘 안 받습니다. 마개를 꾹 닫고 자리를 치웁니다. 셈틀을 잠깐 켜고 버마사람들 소식을 살핍니다. 이제서야 이 나라 적지 않은 사람들도 ‘미얀마’가 아닌 ‘버마’임을 조금씩 느끼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로 이 땅을 찾아온 사람이 아니라, 고향나라에서 민주주의 되찾는 싸움을 하다가 쫓겨나고 내팽개쳐진 ‘망명가’임을 차츰 깨닫고 있을까요. 글쎄, 글쎄. 글쎄, 모르겠습니다.


 …
 축배를 들며
 아이엠에프를 극복했다
 야단이면 무엇 하나

 늘 우리는
 하루 해가 길기만 하다  〈땜방〉



 어제는 도원역 건너편에 있는 닭집에 들렀습니다. 닭집에 앉아서 옆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닭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야 하는데, 아직 못 뽑아서 이렇게 힘들어요.” 하고 말하는 두 분. 아주머니는 쉴 틈 없이 닭을 굽고, 아저씨는 숨돌릴 겨를이 없이 배달을 나가고.

 사람들이 집에 앉아 전화기 단추만 꾹꾹 눌러서 시켜먹기만 하는구나 싶은 한편으로, 이런 밥집이나 술집 일거리조차 안 찾는구나 싶은 생각.

 낮에는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머리에 지식만 쌓아 놓고 있는 사람들은 헌책방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무식한 사람들이나 헌책방 장사를 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고. 가슴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네들은 헌책방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큰놈 작은놈 데리고
 집 앞 놀이터에 갔다가
 체육공원 잔디밭 간다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나는 일요일도
 공장에 일하러 간 날들을 헤아려본다
 …  〈일요일 2〉



 저녁 열한 시 넘어까지 다니는 버스. 열두 시 넘어까지 오가는 전철. 버스 소리와 전철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눕습니다. 때때로 짐기차가 지나갈 때면 건물이 웅웅웅 소리를 내며 조금씩 흔들립니다. 우리가 깃든 이 집은 1958년에 지은 집. 어느덧 쉰 해 동안 온갖 소리를 받아들이고 온갖 흔들림에 익숙해졌군요. 앞으로 얼마나 더 긴 세월을 온갖 소리와 흔들림을 껴안으며 이 자리에서 꼿꼿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영화 찍는 젊은이들은 아직도 부산한가 봅니다. 오늘까지만 찍고 내일은 안 올까. 내일도 영화를 찍으러 올까.


 〈2〉 시집 하나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가
 갑자기, 직책이 뭐냐
 직장생활 십 년 넘도록 했으모
 무슨 직책이 있을 거 아니냐고 묻는다

 평생을 다녀도
 직책 같은 것 없이
 급수만 올라간다고 했건만

 직책이 없다는 말에
 마냥 섭섭해 하신다  〈직책〉



 시집 하나를 다 읽어냅니다. 네 해 앞서 한 번 읽고, 사이에 한 번 잠깐 들추었다가 책꽂이에 꽂아 두고는 잊었는데, 보름께 앞서부터 다시 생각이 나더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읽어냅니다.

 시집에 담긴 이야기는 그대로이고, 시집을 써낸 사람도 그대로일 테며, 시집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대로일까요. 지난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까지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묵은 잡지, 1990년대 첫머리에 나온 어느 잡지를 보니, ‘미술경매 문제 있다’는 특집 꼭지가 있습니다. 특집 꼭지는 ‘1990년대 첫머리 그때뿐 아니라 열 해 앞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그 뒤로 열 몇 해가 흐른 요즈음은 어떠할까요.

 노동자 전태일 님이 죽은 1970년과, 노동자 배달호 님이 죽은 2003년은, 이 땅에서 노동자들한테 어떤 해였을까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정부단체 광고로 곳곳에 나부끼고 있는 2007년 오늘날, ‘경제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정책’을 바라기는,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이 쓰면서 살 수 있는 세상보다는 적게 벌어도 걱정없이 살 수 있고 푸대접을 안 받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일이란 헛꿈이나 헛생각일까요. 초등학교만 나온 사람도 일자리를 넉넉히 얻을 수 있는 한편 따돌림을 안 받을 수 있고, 몸과 마음이 고달픈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조금 더 일삯을 받을 수 있으며, 주5일 노동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먼저 하면서 이 사업장 살림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경제 움직임이란 바랄 수 없는 일인지. 그치지 않는 먹구름뿐이고, 쉴 사이 없이 찾아드는 비바람뿐인지. (4340.10.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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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ㅈ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방 하나를 조용히 꾸려가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적어 놓은 글을 읽고 댓글을 하나 남겨 보았습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있는 ‘사교육(과외)’으로 쉽게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불편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으로서 가장 쉽고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거고, 나를 위해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좀더 몸을 쓰면서 정직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고. 이 마음을 앞으로도 고이 이어나갈 수 있다면, 나날이 추스르고 북돋우며 살뜰히 가꿀 수 있다면, 우리 삶터는 한결 아름다울 수 있겠지요.

 저는 이런 댓글을 남겼습니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러니? 네 곁에는 내가 있는걸.’ 하고 한 마디 해 줄 수 있겠네요. 〈한겨레〉에 시험 치고 들어가실 수 있다면, 들어가셔서 힘껏 싸워 주셔도 좋겠구나 싶습니다. 다만, 저는 〈한겨레〉가 ‘학력제한 없음’을 내걸고는 있지만, 여태까지 어느 한 사람도 학력제한에 상관없이, 그러니까 대졸자가 아니면서도 이곳에 취직한 사람이 없다는 대목에 슬프고, 학력제한이 없으면서 토익점수를 내라고 하는 입사자격제한이 슬퍼서, 예전에 특채로 뽑아 주겠다고 하는 제의를 거절하고, 토익점수 내라는 자격제한을 풀면 공채로 들어가겠다고 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1998년과 1999년 사이에. 생각해 보면, 글은 길게 쓰거나 짧게 쓰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담아냈느냐, 자기 마음이 아닌 헛소리나 딴사람생각 짜깁기를 늘어놓고 있느냐가 중요해요. 자기 삶을 찬찬히 담고 있다면,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좋고, 긴 글은 긴 글대로 좋습니다. 지금 세상은 짧거나 길거나 제대로 자기 삶을 담아서 적바림하고 있는 글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고 느낍니다.” (4340.10.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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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이라는 분이 쓴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 보았습니다. 문득, 나도 이 ㅎ님처럼, 누군가를 비평하거나 어느 작품을 비평할 때, 좀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은 채 미리 ‘마무리말(결론)부터 내려 놓고 밀어붙이기’를 하지 않았는가 싶어서, 또 ‘내 생각만 옳은 듯 칼부림 글을 쓰지 않았는가’ 싶어서.

 제가 적은 댓글은 이렇습니다. “어떤 작품을 이야기할 때, 그 작품을 쓴 사람이 그동안 이루어 온 다른 작품들을 함께 살피지 않고 이야기를 해야만, 올바르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최규석 같은 사람 다른 작품들은 인터넷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이가 다른 작품을 어떻게 펼쳐내고 있는가를 좀더 차근차근 살피지 않고, 이 작품 하나로만 평가와 결론을 내리는 일은 적잖이 섣부르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군요. 이른바 게으름이라고 할까요. 한편, 최규석이라는 분한테는 손수 인터넷편지를 띄워서, 이 만화를 어떤 생각으로 그렸는가 하고 물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알아보고 쓰는 글하고, 자기 생각만으로 결론을 다 내려버린 다음에 쓰는 글은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4340.10.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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