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츠바랑! 1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요츠바랑! (1권∼ ) (2007년 10월까지 6권이 번역됨)
- 그린이 : 아즈마 키요히코
- 옮긴이 : 금정
- 펴낸곳 : 대원씨아이(2004.8.30∼ )
- 책값 : 한 권에 4000원씩



 웃음을 잃어버린 분이라면 이 만화를
 [살가운 만화 28]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1〉 지구한테 적


 일을 하다가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무언가 답답할 때면 집어드는 만화책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은 만화책인 《요츠바랑!》. 이 녀석은 한 번 손에 쥐면 끝까지 안 보고는 다시 놓기 힘듭니다. 마지막까지 다 본 뒤 ‘아, 아직 연재가 안 끝났지. 뒷편은 언제 번역되나?’ 하는 생각에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1권부터 다시 들춰보기도 하고, 또다시 1권부터 보기도 하며 여러 번 되풀이 봅니다.


 “에이, 요츠바였구나.”
 “아! 예쁜이 언니다!”
 “아사기야, 아사기.”
 “아 싸게.”
 “아사기.”
 “오늘은 뭐야? 무슨 볼일?”
 “후카한테 한 마디 해 주려고 왔어!”
 “에헤, 어째 또 재밌겠네. 근데 후카는 지금 나가고 없거든.”
 “이구우? 그럼 어쩔래…?”  1권 〈98∼99쪽〉



 에어컨을 틀어 놓은 방에 들어가서 “이 방, 시려워!”, “여긴 겨울이냐?”고 묻는 요츠바입니다. 그러다가 에어컨을 안 틀어 놓은 방에 들어가서 “이 방은 덥네! 에나, 에어컨 아냐?” 하고 묻습니다. 그동안 에어컨이라는 것을 몰랐다가 처음 알게 된 뒤, 그 하나를 알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겨서 말합니다. 그런데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은 아이(에나)는 요츠바에게 ‘지구온난화’라는 문제가 있기에 되도록 안 쓰려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요츠바는 “에어컨은 나빠? 지구의 적이냐?” 하고 묻는데, 이때 지구온난화 이야기를 해 준 아이가 “어라? 요츠바네는 에어컨 없어?” 하고 물으니 요츠바는 깜짝 놀라며, “어, 없는데! 왜냐면 아빠는 착한 사람이거덩! 에어컨 같은 거 없어! 아마 없을 거야…” 하다가 집으로 확 뛰어갑니다.


 “아빠! 이 집에 에어컨 있어?”
 “오. 에어컨 말이냐! 하긴 할머니네는 없었지. 할아버지가 에어컨을 싫어하셨으니까. 하지만 이 집에는 있지롱! 쨔안! 침실에도 있고 2층에도 있고.”
 “아빠, 우리 편 아니야!”
 “에엑? 어, 어째서 우리 편 아니라는 건데? 어?”
 “지구온난화!”
 “허거덕? 너, 너 그런 것도 알고 있었냐?”  〈1권 107∼110쪽〉


 이때, 요츠바는 자기한테 에어컨을 가르쳐 준 이웃집 큰딸 ‘아사기’도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음을 떠올리며, “아사기는 지구의 적이야! 지구온나나! 지구가 뜨거워진단 말이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아사기는 “그러니까, 에어컨으로 지구를 식히고 있는 거야.” 하고 말합니다. 말문이 막힌 요츠바. 이제 요츠바는 무엇을 할까요?


 〈2〉 그네


 신문지국 아저씨가 요츠바네 집에 찾아옵니다. 요츠바네 아저씨는 낯선 사람한테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몇 번씩 다짐하며 낮잠을 잡니다.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고단했나 봅니다. 요츠바는 혼자서 상자 만들기 놀이를 하며 다부지게 집을 지킵니다.


 “안녕, 신문 아저씬데.”
 “예-? 뭐십니까?”
 “응… 아빠나 엄마 계시니?”
 “아빠는 있어요. 엄마는 없어요.”
 “그럼 아빠 좀 불러 줄래?”
 “안 돼요.”
 “에엑?”
 “쉿-.” 〈2권 96∼97쪽〉



 요츠바는 “쉿-.” 하고는 문을 닫습니다. 신문지국 아저씨는 아이가 왜 저러는지 모를 테지요. 아이가 장난치는 줄 알까요? 아니면, 아이네 집에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미안하구나’ 하고 말하며 돌아설까요?


 (아빠) 신문 받았더니 이런 걸 주네. 워터월드 초대권.
 (점보-아빠 동무) 오호-.
 (요츠바) 오-! 거기구나?
 (점보) 음? 요츠바, 워터월드 아냐?
 (요츠바) 모르는데.
 (점보) 너,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요츠바) 응? 응. 〈2권 114∼115쪽〉


 멀고 먼 곳에서 큰도시로 살림을 옮겨 온 요치바 네. 요츠바는 놀이터 그네를 처음 보았고, 이 그네가 무언가 궁금해 한참 혼자서 만지작거리다가 머리를 쿵 찧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놀이터 옆을 지나가는 사람한테 저기 뭐 하는 거냐고 묻고는, 그네타기를 배웁니다.

 그네를 타 본 적 없으니, 그네에서 떨어져 본 적도 없겠지요. 아무 생각 없이 그네를 타며 가장 높은 데까지 휙휙 올라가며 재미있어 합니다. 요츠바한테 그네타기를 가르쳐 준 동네 아이는, 이제 됐겠지, 하며 뒤돌아가다가 설마 싶어서 뒤를 돌아보는데, 요츠바는 아주 위험하다고 할 만치 높이 오르락내리락입니다. 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동네아이는 서둘러 “손, 손, 손은 떼면 안 돼!” 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요츠바는, “손?” 하면서 그네를 잡던 손을 떼고 자기 손을 봅니다. 그 뒤 요츠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 말투


 비디오집에 가서 디브이디를 빌리는 두 사람, 요츠바랑 요츠바네 아빠. 요츠바느 ‘야생동물 시리즈’를 빌리면서, 가게 언니한테 묻습니다. “있지, 그거 재미있어?” “음, 언니는 이거 안 봤지만 아마도 재미있을 거야.” “재밌대. 전에 아빠가 빌린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다던데.”(5권 133쪽)

 가게 언니는 요츠바네 아빠한네 “죄송합니다” 하고 절을 합니다. 요츠바는 아빠가 집에서 요츠바 앞에서 했던 말투를 그대로 배워서, “더럽게 재미없다”를 말합니다. 요츠바는 늘 배웁니다. 늘 모두가 새롭습니다. 늘 모두한테 스스럼없이 굴고 있는 그대로 마주합니다. 요츠바네 아빠가 여느 때에 “포도는 먹기 어려워” 하고 말했기 때문에, 아빠한테 온 포도 선물을 들고 이웃집에 가서 ‘요츠바가 늘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하고 드리는 자리에서, 요츠바는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이거, 할머니가 보내 줬어. 포도는 먹기 힘들어서 주는 거야.” 하고 말합니다. 딴 생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빠가 늘 하던 말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배워서 말할 뿐입니다.


 (요츠바) 요츠바도 아사기한테 볼일 있어! 아! 담배다 담배는 나쁘니까 안 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근데 아빠도 옛날에는 피웠다고 그랬어. 아빠도 옛날에는 나빴다! 넌 지금 나쁘냐? 왜 담배 피우는데?
 (토라코-요츠바 옆집 아사기 동무) 멋 부리려고.
 (요츠바) 멋지다-. 멋진데, 너! 맘에 들었다요! 〈3권 16~18쪽〉



 어른들은 나어린 아이들한테 반말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말끝에 ‘-요’를 붙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대접해 주면서, 자기들이 높임말로 대접받기를 바라나요. 한편, 아이들이 어른한테 높임말을 써야만 어른이 ‘높아지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말이나 몸짓보다 속으로 헤아리는 마음이나 매무새가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아무튼, 때때로 요츠바한테 ‘어른한테는 높임말 좀 쓰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요츠바는 높임말을 쓰기도 합니다. 뭐, “맘에 들었다!”고 할 말 뒤에 “맘에 들었다요!”처럼 붙이는 말투이긴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배울 대목이 많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이런 말을 귀담아들을 줄 모르는 한편,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대로 이야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어떤 틀에 가두거나 맞추려고, 지식을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른들이 하는 말은 배울 대목도 적고 재미없기도 하지 않나요? 우리 어른들은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잔뜩 멋을 부리거나 껍데기를 뒤집어씌우거나 검은 속셈을 능구렁이처럼 숨긴 채 말하지 않나요?

 “너 몇 살이야?”
 “나, 나이 많아.”


 만화 《요츠바랑!》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올봄까지 지낸 충주 시골집 둘레에 살던 이웃집 아이한테 들은 말입니다. 이웃집 아이는 자기한테 나이를 묻는 어른들이 하도 많아서 나중에는 귀찮은 나머지, “나, 나이 많아. 묻지 마.” 하고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4〉 만화책 《요츠바랑!》


 이웃집 언니 가운데 하나인 ‘후카’는 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갑니다. 이 모습을 본 어느 날 요츠바는, “자전거 타니까 멋지구나, 후카라도!” 하고 말하며 아빠한테 자전거를 사 내라고 조릅니다(후카가 여느 때엔 안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 아빠가 후카를 처음 본 날, 그 집에서 ‘안 예쁜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츠바) 촥― 콰당!
 (공원 나들이 아주머니) 저런. 괜찮아요?
 (아빠) 아, 저 정도는 괜찮습니다.
 (요츠바) (까진 팔꿈치를 보며 울먹울먹)
 (아빠) 뚝! 아줌마한테 요츠바가 얼마나 센지 보여드려!
 (요츠바) (울음을 참으며) 요츠바는 울지 않아!
 (아주머니) 어머, 장하기도 해라. 〈6권 58∼59쪽〉



 아빠가 아무 생각 없이 주절거리는 말도 배우는 요츠바지만, 아빠가 아이를 다부지게 키우고자 북돋우는 말도 잘 받아들이며 배우는 요츠바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는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 둘레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자그마한 것 하나라도 넉넉히 나눕니다. 고마운 선물을 받아서 보답을 하려고 놀이터 풀밭을 뒤져서 네잎 토끼풀을 찾아서 선물해 주고(3권 첫머리), 꽃집에서 한 가득 받아서 남은 꽃을 이웃사람들한테 한 송이씩 나눠 주면서 “언니도 힘내라!” 하고 말합니다(3권 가운데). 자기 욕심, 소유욕, 이익을 생각하는 어른들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또 하지도 않는 일들이겠지요. 어쩌면 우리 모두 처음부터 간직했으나 차츰차츰 잃어버렸고, 잃어버린 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가장 사람답고 올바른 몸가짐이기도 할 테고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 둘레 삶터가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에 따라서 우리 자신 삶이 달라진다고 느낍니다.

 학교를 많이 다녀야만 세상 똑똑하게 잘살 수 있을까요. 머리속에 담은 지식이 많아야만 우리 삶이 한결 넉넉할 수 있을까요. 연봉 높은 일자리를 얻어야만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을까요. 내 옷차림과 얼굴 생김이 텔레비전 연예인 같이 보여야만 즐거울 수 있을까요.

 늘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어울리고 놀면 즐겁지 않은가요.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할 수 있을 때에는, 모르는 일이 잘못이 아니라 아직 깨우치지 못한 세상을 배우는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는 보람이 없는가요.

 느끼는 그대로 배우고, 보는 그대로 느끼며, 있는 그대로 보는 요츠바입니다. 맛이 있으면 맛있다고,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 말합니다. 고우면 곱고, 곱지 않으면 곱지 않다고 말해요.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 어른들은 움찔하고 놀랄 수 있지만, 이내 자기 모습과 형편을 제대로 살필 수 있습니다. 겉치레로 사는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 어른들이 우리 세상을 싱그럽게 웃으며 살고자 한다면, 해맑게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자 한다면, 만화책 《요츠바랑!》에 나오는 요츠바는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남 눈치를 보는 삶이 아닌,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내 뱃속을 더 채우려는 마음이 아닌 곳을 바라볼 수 있다면, 만화책 《요츠바랑!》에 나오는 요츠바 같은 아이를 우리 집 둘레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4338.8.8.달.처음 씀/4340.10.28.해.고쳐씀.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태일 통신 우리시대의 논리 4
전태일기념사업회 엮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전태일 통신
- 엮은이 : 전태일기념사업회
- 펴낸곳 : 후마니타스(2006.11.13.)
- 책값 : 만 원



.. 점점 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아르바이트로 사람을 채우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파트타임이라는 이름으로요. 시간당 임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일자리입니다. 4대보험이라고 하는 건강보험도, 고용보험도, 산재보험도, 국민연금도 물론 없습니다. 그 시간당 임금도 최저임금에 딱 맞추어 그 이상은 주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것일까요? 오히려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까지 다 빼앗긴 채 일하고 있습니다 ..  〈41쪽〉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담아내어 나눌 만한 자리가 얼마쯤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신문에? 방송에? 잡지에? 낱권책에? 교과서에?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포털이라고 하는 곳에 작은 모임이나 방을 마련해서 자기 이야기를 띄울 수 있습니다. 자기가 띄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몇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나 경제나 여러 곳에 두루 ‘영향을 끼칠 만한 매체’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를 기꺼이 찾아다니며 듣고 담아내는 일이란 몹시 보기 힘듭니다.


.. 강남구청은 주변 아파트에서 보기 흉하다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이유를 내겁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궁색한 억지 주장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파트 쓰레기를 치우고 재활용하는 넝마공동체가 없다면 그 처리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충당해야 합니다 ..  〈133쪽〉


 너무 낮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할까요? 너무 낮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듣지 못할까요? 너무 낮은 자리에서 아파하기 때문에 내려와서 쓰다듬어 주기 힘들까요?

 낮은 자리에서 살면 안 될 까닭이 있을까요? 낮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인가요?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푸대접을 받아야 할 까닭이 있는가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어울리면서 조용하게 공동체를 이루어 지내면 안 되는가요?


.. 21세기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삼성재벌이 어떠한 방법으로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악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지, 듣고도 믿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  〈267쪽〉


 더 오래 학교를 다녀서 더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학교를 못 다니거나 덜 다닌 사람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졸업장 갯수와 자격증 갯수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자격증과 졸업장 하나 없는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은행계좌에 돈이 어마어마하게 쌓인 사람이라고 해서, 통장 하나 없이 살아가는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돌아볼 대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감쌀 대목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며 받아들일 대목은 무엇일까요. 아이들한테 흐르는 맑은 냇물이 아닌 정수기를 사 주면 될까요. 아이들한테 산과 들과 멧짐승과 들짐승이 아니라, 그림책과 사진책과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여주면 될까요. 아이들한테 따순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아니라, 졸업장과 대기업 명함과 서울 강남 아파트를 장만해 주면 될까요? (4340.10.26.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천으로 살림을 옮긴 올 4월부터 아침 또는 낮 또는 저녁에 틈틈이 동네 골목길 마실을 합니다. 으레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메지만, 사진기를 놓고 다닐 때도 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나오지 않을 때면 꼭 ‘이 모습은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지만, 이런 아쉬움을 느끼는 일도 좋다고 느낍니다. 사진은 발자국이 되어, 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을 때에도 뒷사람들이 살펴보고 요즈음 인천 삶터를 느끼도록 해 줄 테지만, 제 눈으로 비춰지고 제 마음에 담긴 인천 골목길 삶터 모습은, 비록 ‘눈으로 그려 볼 수 있는’ 발자국으로 남지 못할지라도, 제가 만나는 사람들한테 하나하나 펼쳐지겠지요. 사람과 사람으로 부대끼고 복닥이고 어울리는 느낌이 건네지면서.

 달동네 골목길 밤마실을 하면, 저기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고, 깊어가는 밤에 반짝이는 전기불빛 가운데 도드라지는 붉은 십자가, 하얀 십자가가 많이 보입니다. 예배당이 참 많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옵니다. 보고 보고 또 보아도 이런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그러던 지난주, ‘저 예배당 사람들도 설교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지구가 많이 아파하고 환경이 더러워지고 있음을 이야기로 듣고 할 텐데, 왜 밤에도 십자가 불을 켜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길이 어두워서? 깊은 밤에도 동네사람들한테 따순 사랑과 믿음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지난 목요일,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한다며 전철길에 오릅니다. 인천에서도 서쪽 끝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 길. 참 멉니다. 걸상이 천이 아닌 쇠붙이로 된 열차가 드문드문 있어서, 이런 열차를 타고 가자면 엉덩이도 시렵지만 기분이 나쁩니다. 누가 불지를까 걱정된다고 전철 깔개를 쇠붙이로 한다면, 버스 깔개와 기차 깔개도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요? 비행기는 어떻고? 궁시렁궁시렁 중얼중얼 투덜투덜 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그즈음, 양복을 쪼옥 빼입은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긁직한 목소리로 ‘하느님 찬양’과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읊습니다. 전철을 함께 탄 옆지기는, 저 아저씨 예전에도 보았다고 옆구리를 쿡 찌르며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읽던 책에 다시 머리를 박습니다. 조금 뒤 책을 덮고 고개를 듭니다. 참사랑이라면, 믿는 사람한테만 축복을 내리는 사랑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한테도 축복을 내리는 사랑일 텐데,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참사랑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한테 저주를 퍼붓는 사랑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끌지 않으며 더욱 아끼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랑일 텐데, 하는 생각이 꼬물꼬물. 하느님을 믿는다기보다 자기 이익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 사랑을 믿는다기보다 자기 이름과 돈과 힘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다기보다 하느님 말씀을 자기 좋을 대로 풀이해 버리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이 성경이라고 해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외려 ‘하느님 이름’으로 전쟁이 판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4340.10.24.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빡이면 어때 쪽빛그림책 3
쓰치다 노부코 지음, 김정화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마빡이면 어때
- 글ㆍ그림 : 쓰치다 노부코
- 옮긴이 : 김정화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7.9.20.)
- 책값 : 8000원



― 왜 이런 그림책을 번역해서 아이들한테 읽히나?
: 쓰치다 노부코, 《마빡이면 어때》를 보면서



 〈1〉 수수한 이야기 하나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주인공 데코는 일요일 아침 머리를 자릅니다. 어머니가 손수 잘라 줍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뺀 집안 식구들이 아이 머리를 보면서 ‘이마가 너무 넓다’면서 하하호호 웃습니다. 집안 식구들 웃음은 자연스럽게 터져나온 웃음일 텐데, 아이로서는 마을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여깁니다. 이리하여 몸이 움츠러들고 모든 일에서 짜증만 쌓입니다.

 아이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이런 아이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못 헤아렸는지 모르고, 어쩌면 아이가 자기 나름대로 어려움을 풀어나가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아이 오빠도 동생을 감싸기보다는 짓궂게 놀리기를 즐길 뿐입니다. 다만, 아이 언니는 가만히 동생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 하나 떠올려 냅니다. 그리하여 아이는 훤하게 드러난 그 이마도 괜찮은 이마가 될 수 있다고, 아니 예전 이마보다 훨씬 괜찮은 이마라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 언니는 대단한 요술을 부리지 않았으나, 그 마음씀 하나와 작은 물건 하나로 동생 마음뿐 아니라,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동무들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책을 덮습니다. 참 수수한 이야기, 흔한 이야기네요. 이렇게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참으로 잘 잡아챘네요. 이 그림책을 그려낸 일본사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문득,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이 어릴 적에 겪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에 이런 일을 겪으며 잔뜩 심통을 부렸는데, 자기 언니가 ‘그 어린 나이로서는 요술을 부렸다’고 느낄 만한 어떤 일 하나를 해 주었고, 그 일 덕분에 여태까지 즐겁게 잘 살아오고 있어서, 언니와 어머니와 식구들과 동무들한테 이런 자기 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림책을 빚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제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형과 제 머리는 늘 어머니가 깎아 주셨습니다. 머리 깎는 집에 갈 돈을 아낄 셈이었지요. 없는 살림에 머리 깎을 돈까지 쓰기란 얼마나 힘들었던가요. 그래서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이웃집 어머니들도 당신 딸아들 머리를 손수 깎아 주었습니다. 머리 깎는 가위는 몇 없어서, 가위 하나로 온 동네 어머니들이 서로 빌려 가면서 깎곤 했습니다. 머리집 머리가 아닌 어머니 머리라서 우둘투둘 깎인 아이도 있어서(제 머리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서로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었던 일도 생각납니다.

 아이 어머니가 아이 머리를 눈썹 위로 싹둑 하고 많이 깎는 까닭이라면, 머리가 눈을 찌르기 때문이지요. 훤히 드러나는 자기 이마를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라면, 또 이렇게 훤한 이마를 놀리는 동무들이라면, 사람을 겉모습으로 먼저 살피는 마음이 벌써부터 물들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좋고, 살이 통통하면 통통한 대로 좋으며, 머리숱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습니다. 서로를 생긴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좋다고 느낍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는 이런 데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우리네 아이들을 지긋이 바라보아 주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머니가 좋은 뜻에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고 해도, 아이가 바라는 머리 모양도 조금은 헤아려 주어야지요.


 〈2〉 아쉬움


 퍽 괜찮다고 느낀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를 몇 번 다시 넘겨보다가 덮으며 생각합니다. 일본땅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은 여러모로 많이 즐겁고 재미있을 만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한국땅 아이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을 아이들한테 읽혀 주거나 보여줄 한국 어머니들한테는 어떠할까 싶어서.

 글쎄, 저는 이 그림책을 한국땅 어머니들한테 딱히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썩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책을 보면서 곳곳에서 아쉬웠습니다.

 먼저, ‘마빡이’라는 이름이 아쉽습니다.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아서 그 이름을 고스란히 따서 책이름으로 삼고, 책 곳곳에 ‘마빡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을 펴낸 일본에서는 《데코짱》이라고만 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텔레비전 익살꾼들이 ‘마빡이’라고 말하듯 그림책에서도 ‘마빡이’를 말하면 훨씬 잘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하겠지만, 익살꾼 유행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으로서는 ‘마빡이’가 참 잘 붙인 이름이라 하겠지만, 열 해나 스무 해 뒤에도 잘 붙인 이름으로 이어갈까요? 그때 아이들은 ‘마빡이’가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 번역 그림책을 한두 해만 아이들한테 읽힐 생각은 아니겠지요?

 다음 아쉬움으로, 나오는 사람들 이름. 주인공은 일본 이름인 ‘데코’를 쓰지만, 마을 가게 이름이며 유치원 이름이며, 유치원에서 어울리는 동무들 이름이며 모두 한국 이름입니다.

― 경아, 세은, 대현, 주희, 순화, 고은, 연우, 성은, 가람, 금미, 혜원, 정화

 왜 주인공 아이만 일본 이름을 쓰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마을 모습이며 학교 모습이며 아이들 놀잇감 모습이며 집안에서 할아버지와 부모님들 모습이며 모두 ‘일본 문화와 사회’임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데코’라는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 하다가 일본사람 이름임을 천천히 알아갈 텐데, 갑자기 마을 분위기나 유치원 동무들 이름을 이렇게 한국 이름으로 바꾸어 놓으면 더 헷갈리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이런 이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얄궂게 쓰고 만 낱말과 말투들. 몇 가지 다듬어 봅니다.

 ┌ 데코의 머리를 잘라 준대요
 └→ 데코 머리를 잘라 준대요

 토씨 ‘-의’를 붙였지만, 책 뒤쪽에 보면 “데코 이마”로 적은 대목이 보입니다. “데코 이마”로 쓰듯이 “데코 머리”로 써야 알맞습니다.

 ┌ 시장에 가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 시장 나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 이렇게 하는 건 어때?
 └→ 이렇게 하면 어때?

 ‘것’을 붙여서 말을 늘여뜨립니다. 요즘 어른이나 아이나 다들 이런 말투를 씁니다. 자꾸자꾸 퍼집니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처럼도 씁니다.

 ┌ 자, 귀여운 이마로 변신!
 └→ 자, 귀여운 이마로 바뀌어라!

 ┌ 으, 얼굴 심하다
 └→ 으, 얼굴 너무한다

 요즈음 아이들도 ‘변신합체로봇’을 좋아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장난감을 쥐어 주고 싶어하며, 어떤 말과 글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 거울 속 이마에는
 └→ 거울에 비친 이마에는

 ┌ 언니 주문이 진짜 통했나 봐요
 └→ 언니 주문이 진짜 들었나 봐요

 거울을 보면 자기 얼굴이나 몸이 비칩니다. “거울 속에 내가 있네” 하고 말할 수 있으나, 거울을 들여다볼 때 보이는 모습을 가리키자면, “거울에 비친 이마”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 마빡이 주문은 점점 퍼져 나가서
 └→ 마빡이 주문은 조금씩 퍼져 나가서

 ‘점점(漸漸)’이나 ‘점차(漸次)’나 ‘차차(次次)’는 한자말입니다. 한자말이라 해서 쓰면 안 되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이 예부터 써 온 토박이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씩-차츰-자꾸-꾸준히-지며리’ 들이 있음을.

 또다른 아쉬움을 들자면,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는 2000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07년에 번역됩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합’니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밥상 앞에 앉아 신문이나 보’고 있습니다. 주인공 데코네 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머니 일을 돕’습니다. 그 옆에서 데코네 오빠는 ‘자기 아버지처럼 밥상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합니다. 주인공 훤한 이마 문제를 언니가 풀어 준 아침 모습에서도, 어머니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 아버지 되는 분은 늦잠을 잔 뒤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이미 차려진 밥상 앞에 앉을 테고, 양복을 차려입고(이때에도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 주고 옷을 입혀 주고) 회사에 가겠지요. 그 뒤 어머니는 할아버지 수발을 한 다음,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저녁 찬거리를 사겠지요.

 이야기 무대는 ‘옛날이 아닌 지금’입니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집식구들 모여 있는 자리라든지, 서로 맡은 일이라든지 이렇게 그려야 했을까요. ‘여자 = 부엌데기’, ‘남자 = 바깥양반’이라는 낡은 틀을 그대로 이어가야 했을까요. 한 번쯤은 깊이 돌아보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더 있습니다. 그림책 《마빡이면 어때》에 담긴 줄거리나 느낌이나 뜻이나 즐거움은, 그림책 작품으로 보자면 참 괜찮구나 싶은데, 우리가 굳이 이런 일본 그림책까지 한국말로 옮겨서 펴내야 할까 싶어요. 다양성을 생각해 본다면, 좋은 일본 그림책을 번역하는 일이란 반갑습니다. 하지만, 이만한 깊이와 너비를 담은 그림책쯤이라면, 한국 그림책 작가가 우리 터전과 아이들 문화를 헤아리며 스스로 빚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생활 이야기 그림책’조차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들이 스스로 빚어내지 못할까요? 출판사에서는 ‘손쉽게 번역하는 길’만 좇을 생각인가요?

 그림책 번역은 다른 번역보다 품이나 시간이 적게 듭니다. 금세 옮겨서 펴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 하나를 창작하자면, 제대로 된 그림책 하나 빚어내자면, 아이들이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할 만한 그림책 하나 엮어내자면, 그림을 그려내는 분도 짧지 않은 시간을 땀흘려야 하고, 출판사 편집자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편집을 하면서 품을 들여야 합니다. 그만큼 돈이 많이 듭니다. 게다가, 애써 펴낸 창작 그림책이 두루 사랑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알 길이 없겠지요.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 그림책 작가가 못 빚을’ 만한 이야기책도 아니요, 우리 둘레에도 참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그림감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번역하는 한편으로, 또는 이 책을 번역하지 않는 한편으로, 우리 나라 그림책 작가나 그림책 작가가 되고픈 젊은이를 알아본 다음, ‘이와 같은 이야기를 우리 형편에 맞게 그려 보면 어떨까요?’ 하고 주문을 하고 자료를 대어 주면서 창작을 불태울 수 있게끔 뒷배해 주면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먹고살아야 하기에, 먹고사는 길을 헤아려 ‘좀더 많이 팔릴 만한 책’, ‘계약금과 인세 낸 돈을 거두어들일 만한 책’을 빨리빨리 번역해 내는 일은 무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책을 내서는 우리 아이들 앞날이 밝을 수만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우리 나름대로 꿋꿋하게 발판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지 않으면, 지붕을 튼튼히 마련할 수 없잖습니까. 뿌리가 깊은 나무여야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부터 보는(아이들만 보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아이들부터 보는 책이 어린이 그림책입니다) 그림책 하나는, 한 나라에 태어나 한 사람으로 커 가는 어린이들 마음에 자그마한 씨앗을 심거나 어린나무를 심어서 앞으로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도록 옆에서 손을 내미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책 하나를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한테나 굴뚝같겠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는 ‘좋은 그림책 만 권’이 반가울까요?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날마다 여러 번씩 읽어 줄 ‘수수한 그림책 열 권’은 안 반가울까요? 아이들한테는 더 많은 책보다는 더 많은 부모 사랑이 애틋합니다. 그림책을 엮어내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더 많은 좋은 책’을 베풀어 주려는 마음보다는, ‘수수하고 멋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물리지 않으면서 피와 살이 될 수 있는 밥과 같은 책을 딱 한 가지’ 베풀 수 있으면 좋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더 나으리라 봅니다.

 돈 많은 부자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돈 많은 부모를 둔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가 아니니까요. 책으로 둘러싸인 아이가 행복할까요? 펴내는 책 가짓수가 많은 출판사가 좋은 책을 펴내는 곳일까요? 일본책 이름 《데코짱》을 《마빡이면 어때》로 이름을 고쳐서 낸 이 그림책은, 별 다섯 만점에서 넷 반을 주고 싶으나, 이 책을 번역해 낸 마음씀과 움직임을 헤아렸을 때에는 둘 반만 주고 싶습니다. (4340.10.25.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에서 크는 아이들 -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자라는 숲 속 유치원 이야기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 지음, 나카무라 스즈코 그림, 은미경 옮김 / 파란자전거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숲에서 크는 아이들
- 글 : 이마이즈미 미네코, 안네테 마이자
- 그림 : 나카무라 스즈코
- 옮긴이 : 은미경
- 펴낸곳 : 파란자전거(2007.3.24.)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24 ― 골목집 꽃밭길과 숲속 학교
 : 독일에는 《숲에서 크는 아이들》이 있네


 〈1〉 초등학교 교과서 ‘자연 사랑’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만들어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배우는 《생활의 길잡이》라는 교과서를 보았습니다. 교과서 한 권을 본다고 해서,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 샅샅이 살필 수 없습니다. 다만, 살갗이라도 핥을 수 있을까요.

 7단원 ‘자연 사랑’을 펼칩니다. 첫 주제는, “자연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까닭을 알아봅시다”입니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고, “우리가 지구 환경을 보전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해 봅시다” 하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쪽에서는 “나무를 심자!”는 제목으로 글 하나 싣습니다. “우리 나라는 전체 차량의 37%에 해당하는 약 2백만 대의 차량이 디젤 자동차이니 그만큼 공기 오염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하고 말하면서.

 나무를 심는다고 공해 문제가 풀릴 턱이 없지만, 나무를 심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나무를 어디에 심을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서는 “공기 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로수를 많이 심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가로수로 과일 나무를 심는다면 거리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교과서로서는 온힘을 다해 밝힌 ‘더러워진 공기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 셈이라 하겠으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인지 낱낱이 들어서 말해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가로수를 많이 심”자고 교과서는 말합니다만, 거리나무는 누가 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심을 수 있나요? 자동차 북적이는 길거리 어디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요? 아스팔트를 깨고? 거님길 돌판을 깨고?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를 뽑고? 길거리에서 나무를 심을 만한 자리는 있을까요?


.. 아이들은 모두 물놀이를 아주 좋아합니다. 페릭스도 정원에서 있는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자주 하지요. 그런데 냇물에서의 물놀이는 집에서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입니다. 파블로나 베스는 벌써 장화 신은 발로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냇가에 들어갔네요 ..  〈25쪽〉


 우리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살아가는 도시 어느 곳에도 ‘아이들이 나무를 심을 만한 조그마한 땅뙈기’는 없습니다. 동네 골목길에도 나무를 심을 자리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이 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산다고 할 수 있는 아파트 꽃밭에 나무를 심을 틈이 있을까요? 다세대주택이 바글바글 몰려 있는 비탈길 동네에 나무 심을 빈 땅이 있을까요?


.. 집에서는 무엇을 어디에서 어떻게 할지 항상 아빠하고 엄마가 정하지만, 숲속 유치원에서는 뭐든지 다 같이 결정합니다 ..  〈29쪽〉


 ‘자연 사랑’ 단원에서는 “장바구니 사용하기”도 말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갈 때에 비닐 봉지 한두 개씩만 절약한다면, 우리 나라 전체로 볼 때에 엄청난 양이 절약됩니다. 어머니들이 시장에 가실 때에 꼭 장바구니를 가져가도록 말씀드리는 것도 작지만 환경 보호를 위해 해야 할 우리의 몫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저잣거리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일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늘 장바구니뿐 아니라, 헌 비닐봉지를 갖고 다닙니다. 그러나 저잣거리를 거닐며 하나둘 사들이는 찬거리나 푸성귀나 먹을거리 어느 것도 ‘가게에서 비닐랩을 씌워 놓았’습니다. 벌써 한 번 비닐랩에 씌워진 물건을 살 때 비닐봉지 하나 적게 쓰는 일도 우리 삶터를 지켜 주는 좋은 일이곤 합니다. 하지만 비닐랩은 어쩌지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 족발이나 다른 먹을거리를 주문해 먹을 때, 밥집에서는 비닐랩을 얼마나 씌워서 가져다주는지요.

 우리 스스로 줄일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만, 정작 크게 마음쓰고 바꿔야 할 곳, 뿌리깊은 골칫거리를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들 몸짓은 그저 헛시늉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더욱이, 저잣거리에 물건 사러 가는 사람을 오로지 ‘어머니’로만 못박은 대목이 껄끄럽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죽 살피면서, ‘집안일은 어머니(여자) 몫, 집안에서 아버지(남자)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는 몫’으로 나눠져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 그뿐인가요? 나무열매들도 빨강, 파랑, 검정 다채로운 빛깔을 뽐냅니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선명한 황록색 잎사귀들이 아름답게 펼쳐 있습니다. 새의 깃털처럼 우아한 이 땅꼬마 풀고사리들이 숲속에서는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려 냅니다.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니, 숲은 단순히 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는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네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들과 풀들이 모여 숲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제 잘 알겠습니다 ..  〈34쪽〉


 초등학교 교과서를 덮으면서 생각합니다. 중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고등학교 교과서는 어떨까? 설마…….

 두렵습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면서 지식을 외워야 할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짜여져 있는지 들춰보기 두렵습니다. 아니, 이 두려운 교과서로 열두 해씩이나 제도권교육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되어 있는 틀에서 찌들고 시들면서 싱싱함을 잃어가는데, 싱싱함을 잃어가는 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두렵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사회에 나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과 부대끼며 어떤 일을 어떤 자리에서 할까요.


.. 천천히 먹고 여유 있게 쉬었기 때문인지 페릭스는 다시 힘이 솟았습니다. ‘야, 이제 놀아야지! 그런데 장난감도 없는데 뭘 하지?’ 집이라면 정원 모래밭에서 놀아도 되고 트럭이나 미니카 같은 장난감도 있지만, 숲속에는 나뭇잎과 나무, 풀, 나뭇가지, 흙, 돌멩이 같은 것밖에 없습니다. 새로 온 아이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어요 ..  〈42쪽〉





 〈2〉 골목집 꽃그릇


 도서관 일을 마치는 저녁나절, 사진기 하나를 들고 골목길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도심 정화 재개발 사업’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밀려나거나 무너질 판에 놓인 여느 사람 살림집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놓습니다. 시와 개발업자는, 골목집 사람들한테 ‘입주권’이나 ‘이주 비용’을 도와준다고 말하지만, 입주권이 있다 한들, 골목집 사람들은 ‘새로 지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없습니다. 아파트 값도 치러내지 못하지만, 관리비 낼 만한 형편도 아닙니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골목집에서는, 많지 않은 돈으로도 달세를 내고 살림살이를 장만하며 오순도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집 사람들이 어깨동무하고 있던 조그마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면, 이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자리를 마련해 어떻게 먹고사나요. 시나 개발업자 눈으로는 지붕 낮고 꾀죄죄해 보이는 게딱지집일지 모르지만, 이 게딱지집에 사는 이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하고 넉넉한 궁궐입니다. 한 사람한테는 발 뻗고 개운하게 잘 수 있는 방 한 간, 새힘을 얻을 밥을 해먹고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부엌 한 자리만 있으면 됩니다. 여기에, 제 먹을거리 얼마쯤 손수 마련할 수 있는 자그마한 텃밭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 주차장에는 부모님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침과 같이 페릭스 엄마는 자동차를 타고 왔고, 베스 엄마는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왔지요. “자동차보다 수레 달린 자전거가 더 멋져.” 페릭스는 베스의 자전거가 부러웠습니다 ..  〈48쪽〉


 골목집 사람들은 시멘트로만 뒤덮인 길바닥 한켠에 크고작은 꽃그릇을 그러모아 내놓습니다. 헌 스티로폼 상자도 알뜰히 모아 놓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놀려 흙을 한 주먹씩 퍼 온 다음 헌 꽃그릇과 스티로폼 상자에 차곡차곡 모읍니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놓고, 때때로 당신들이 눈 똥오줌도 모아서 작게 두엄더미를 만들어 꽃그릇 흙과 섞곤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골목길 바닥에는 흙 한 줌 없지만, 날마다 푸른 새숨을 내뿜어 주는 싱그러운 꽃밭길로 다시 태어납니다.


.. 아이들은 낙엽을 모아서 땅바닥에 늘어놓고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색을 칠하지? 도대체 누가 이런 모양을 만드는 걸까. 숲의 요정일까?” 페릭스가 물었습니다. “나무 스스로 이렇게 아름다운 색을 만든단다. 나무는 살아 있기 때문이지. 사람이나 동물처럼 말야.” ..  〈73쪽〉


 지난 4월부터 올망졸망 터져나온 꽃망울이 시월을 넘기며 마지막으로 노랗고 붉은 꽃내음을 남깁니다. 드문드문 있는 거리등불 어두운 골목을 거닐면서도 풀냄새와 꽃냄새를 느낍니다. 무릎을 꿇어 풀하고 키높이를 맞추고 꽃하고 눈높이를 맞춥니다. 사진 찍던 손을 거두어 꽃잎을 쓰다듬습니다. 가로세로 50센티미터를 겨우 넘을 만한 작은 꽃그릇에서 나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봅니다. 한두 평 될까 말까 한 작은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서 발그스름하게 익어 가는 감을 올려다봅니다. 저 감나무는 저 집하고 역사를 함께했을까요? 저 작은 집을 마련한 분이 ‘우리도 이제 우리 식구들 따숩게 지낼 집 하나 마련했다고’ 하면서 기쁜 마음에 어린나무 얻어와 마당 한켠에 심어서 이렇게 키워냈을까요?


.. 귀를 기울여 보니 나뭇잎들이 스치며 사락사락 속삭이는 소리, 바람이 낙엽을 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끔은 퍼드덕거리는 새의 날갯짓 소리도 들렸고요.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다정다감한 숲의 너른 품에 포근히 안겨 있는 듯했습니다. 아침에 엄마한테 혼났던 것도, 친구들과 싸운 것도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  〈76쪽〉


 시골에 갈 때마다, 산에 갈 적마다 흙을 한 봉지씩 담아 와서 옥상에 텃밭을 마련한 분들을 봅니다. 하루이틀이 아닌 한두 해에 걸쳐서 흙을 조금씩 모아 오셨고, 이렇게 모은 흙으로 옥상 텃밭을 일굽니다. 흙과 함께 벽돌도 하나둘 모았습니다. 다른 사람 손이 아닌 당신들 손으로 꾸민 옥상 텃밭에는 온갖 푸성귀가 무럭무럭 자라서 당신들 밥상에 올려놓고도 남을 만큼 됩니다. 고추농사를 짓는 텃밭이 되었다가는 콩농사를 짓는 텃밭이 됩니다. 어느새 3층 다세대집을 웃자랄 만큼 키큰나무가 된 오동나무를 보면서, 이야, 오동나무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컸구나, 하고 놀랍니다.


.. 다른 아이들도 뒤영벌이 다시 꽃에 살포시 앉는 것을 기다렸다가 설레는 맘으로 만져 보았습니다. 곤충을 쓰다듬어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왠지 뒤영벌과 친구가 된 것처럼 모두 기분이 좋았습니다 ..  〈125쪽〉


 아파트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집안에 들여놓고(또는 툇마루에 내놓고) 지냅니다. 골목집에서 사는 분들은 꽃이며 풀이며 나무며 집밖에 내놓고 지냅니다. 생각해 보면, 아파트는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꽃밭이 있으나, 이 꽃밭은 관리인이 꽃나무 몇 가지와 잔디를 모셔 놓는 자리이지, 상추나 시금치나 무나 배추를 심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골목집은 집 바깥에 꽃이나 풀을 내놓을밖에 없습니다. 집안이 좁으니까요. 골목집 바깥 꽃그릇에는 온갖 푸성귀와 꽃이 자랍니다. 그러나 이 푸성귀를 뜯어 가는 사람이 없고, 예쁜 꽃이 자랐다고 해서 꽃그릇을 훔쳐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 숲은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으며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답니다 ..  〈122쪽〉


 달동네 집을 죄 밀어내고 번듯번듯 높직높직 올려세운 아파트 옆을 지나갈 때면 몸이 움츠러듭니다. 아파트 둘레는 ‘아파트사람들 자가용’이 들락거리기 좋도록 길을 닦았기 때문에,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느라 걷기 안 좋습니다. 게다가 씽씽 내달리기까지 합니다. 빵빵거리기도, 앞등 불빛을 깜빡거리거나 사람 눈높이로 쏘기도 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자전거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을 지나갈 때면 몸을 활짝 폅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는 조용한 골목길. 드문드문 옛날 나무전봇대를 만납니다. 인천에 터잡은 중국사람들 살림집을 봅니다. 예전에 틀림없이 다른 살림집이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계단짬에 잠깐 앉아 다리를 쉽니다.

 아직까지 살아남은 달동네 언덕받이입니다. 그다지 멀잖은 곳에 바다가 보입니다. 도심지 살림집과 길거리 등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기불은 언제까지 켤 수 있을까요.





 〈3〉 우리 어른들은 무슨 학교를 바라는가


 《숲에서 크는 아이들》은 독일에 있는 ‘숲속 유치원’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아이들은 시멘트나 쇠붙이 따위로 지은 딱딱한 건물이 아닌, 부드럽고 무른 흙과 풀이 있는 숲에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배웁니다.

 참 부럽습니다. 우리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교육 터전입니다. 지금 우리한테 숲이 얼마나 남아 있나요? 온누리 구석구석 아파트를 짓는다며, 지역자치정부는 공장을 세워 돈벌이를 해야 한다면서, 인천시장만 해도 그나마 남은 몇 안 되는 곳까지 파헤쳐 경제자유도시니 영어도시니 뭐니 만든다고, 여기에다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를 때 쓸 경기장이니 선수촌아파트니 지하철 2호선이니 또 짓는다고 어마어마하게 공사판 법석을 피웁니다.

 지금은 국제공항이 들어섰지만, 이 자리는 오랜 소금밭이었습니다. 도시사람들이 좋아하는 ‘조개구이’에 쓰이는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는 드넓은 갯벌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영종도와 용유도 앞바다는 망둥이도 잡던 곳이었으며, 몇 만 마리에 이르는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로지 사람 좋을 대로만 생각하면서 날짐승과 바닷짐승 보금자리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아이들이 함께 누리고 즐길 ‘바다 놀이터’ 또한 빼앗은 셈입니다. 가까이 보면 인천사람이지만, 인천 둘레 바닷가로 놀러와서 갯벌과 밀물썰물 달라짐을 느끼면서 자기 마음에 깃든 자연을 키울 남녘나라 사람들 삶터를 잃었어요.


.. 아이 엄마는 냇가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짐작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  〈49쪽〉


 《숲에서 크는 아이들》에 나오는 ‘숲속 학교’는 돈으로 닦아세우거나 올려세울 수 없는 학교입니다. 돈을 들일 까닭도 없는 학교입니다. 우리 삶을 바꿀 수 있으면, 우리 생각을 돌려놓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학교이고, 언제 어느 곳에서도 알뜰히 돌보거나 가꿀 수 있는 학교입니다.

 참말, 우리 터전에서는 숲속 학교란 꿈꾸기 어려운 곳이라 할 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조금은 남아 있잖아요. 숲속 학교뿐 아니라 ‘바다 학교’를 가꿀 수 있고, ‘들(논밭) 학교’와 ‘산 학교’를 껴안을 수 있어요.


.. 요즈음 엄마 아빠와 함께 숲에 산책하러 가는 일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숲은 아무리 가도 물리지 않는 곳이니까요. “저건 전나무, 저건 가문비나무예요.” 페릭스는 아빠에게 가르쳐 주기 바빴습니다. “어떻게 아니?” 아빠는 언제나 신기해 하며 물었습니다 ..  〈136쪽〉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돈’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바다 학교든 찾아내어 가꿀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일류대학교 졸업장’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들 학교든 돌보며 지킬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풋풋한 젊음을 키워 가는 아이들한테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선물하고 싶다면, 숲속 학교든 산 학교든 어깨동무하며 웃고 뒤놀 터전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4340.10.21.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한 아침 2007-11-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번역한 책을 이렇게 리뷰해주시니 새롭고 기쁩니다. 제 블로그에 이 글을 옮겨 놓겠습니다.

숲노래 2007-11-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은 참 좁네요 ^^;;;
어줍잖은 글 읽어 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