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세 시 무렵,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셋이 쪼르르 놀러오곤 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찾아옵니다. 한 번 놀러오면 저녁 여섯 시까지 보드게임을 하거나 저희끼리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밖에 나가 돈벌이를 하고, 집에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만 계시다고 합니다. 보름쯤 앞서, 옆지기가 이 아이들한테 “너희들 고무줄놀이 아니?” 하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몰라요.” 하다가는, “(만화) 《검정고무신》에서 봤어요.” 하면서 옛날 옛적 놀이로 여깁니다. 그러다가는 “전통놀이 아니에요?” 하고 말합니다. 옆지기가 아이 둘을 세워 놓고 다리에 고무줄을 걸고는, 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옆지기는 스물여덟. 어릴 적에 고무줄놀이를 퍽 즐겼다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요즘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지 않습니다. 노는 모습조차 거의 못 봅니다. 너덧 해 앞서도, 예닐곱 해 앞서도 고무줄놀이 하는 아이들을 못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인터넷게임을 하느라 그런다는 소리도 있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인터넷게임조차 할 겨를이 없다고, 학원에 가랴, 책 읽고 느낌글 쓰랴, 글짓기 숙제 하랴, 한문 숙제와 영어 숙제 하랴, 체험학습 다니랴, 몸뚱이가 열 몇 개라도 힘들 만큼 바쁘게 돌아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서울 나들이를 하며 홍제동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는데, 손바닥 만한 운동장에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거나 줄넘기를 할 뿐, 다른 놀이 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그 흔한 비사치기도, 제기차기도, 구슬치기도, 땅뺏기놀이도, 말뚝박기도, 얼음땡도, 술래잡기도, 오징어도, 오재미도, 자치기도, …… 아이들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겠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갑작스럽게 언니 오빠 누나 형한테 물려받는 ‘동네 골목길 놀이’ 또는 ‘마을 고샅길 놀이’가 자취를 감추었으니까요. 놀이가 자취를 감춘 골목길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 있는 덩치 큰 자가용이 가득합니다. 서 있는 차가 없을라치면 배달오토바이가 씽씽 내달리고 크고작은 자가용이 쉴 틈 없이 오갑니다. 학원버스는 아이들을 집과 학원과 학교 사이를 이어줍니다. 아이들은 땅을 두 발로 디딜 겨를이 없습니다. 저나 또래 동무들은 국민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한글을 보았고, 숫자를 셌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알파벳을 보았고, 띄엄띄엄 읽었습니다. 그래도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영어 동화책을 읽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영어 소설을 읽었습니다.

 웬만하게만 만들어 내놓으면, 어린이책은 손해를 보지 않고 잘 팔립니다. 나라밖 명작동화만 잔뜩 옮겨내던 흐름이, 이제는 생활동화며 우리 문화와 철학과 사회와 역사도 다루는 테두리며 넓어집니다. 이 나라 아이들 마음과 삶을 헤아린다는 ‘참 좋아 보이는’ 어린이책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오겠지요. 아니, 많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어쩌지요. 이 어린이책을 볼 아이들한테는 자기 삶이 없는데, 자기 두 발로 디딜 땅이 없는데. 더욱이, 어린이에서 젊은이로 넘어가는 때에 읽을 책도 없는데. (4340.1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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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서 도서관 셈틀을 켭니다. 오늘 일거리를 생각하며 차가워진 손을 비빕니다. 먼저 잡지에 넣을 사진을 출판사로 보냅니다. 인터넷신문에 기사 둘을 띄웁니다. 어제 산 책을 추스릅니다. 몸이 떨려서 청잠바를 걸칩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손이 많이 시려워서 엉덩이 밑에 집어넣고 녹여 봅니다. 한 시간 남짓 그러고 앉아 있으나 손이 잘 녹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인터넷줄 긴 것이 위층 살림집까지 닿을까 헤아려 봅니다. 천천히 풀면서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봅니다. 방까지 죽 이어 놓고도 제법 남습니다. 문 닫을 때 줄이 걸리지 않도록 문 위쪽을 칼로 살짝 도려내 줍니다. 그러고 나서 책과 노트북을 들고 살림집으로 올라옵니다. (4340.11.20.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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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인간 - 해나라 어린이책 8
페르난도 알론소 글 그림, 권미선 옮김 / 해나라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종이 인간
- 그림ㆍ글 : 페르난도 알론소
- 옮긴이 : 권미선
- 펴낸곳 : 해나라(2002.7.30.)
- 책값 : 6000원

 

― 대통령 후보도, 언론도, 유권자도 ‘찌질이’
[그림책이 좋다 41] 페르난도 알론소, 《종이 인간》


 

 〈1〉 빨래


 그제부터 큰 통에 담가 두고만 있던 이불을, 아침에 가루비누를 풀어서 살짝 헹군 뒤, 두 시간 그대로 두었다가 빱니다. 오른팔꿈치가 몹시 저려서 물짜기는 고되었지만 옆지기 도움을 받으며 어느 만큼 짠 다음, 마당으로 들고 나와 탁탁탁 털어서 담벼락에 널어놓습니다.

 인천으로 살림집을 다시 옮기면서 살펴본 대목 가운데 하나는 씻는방이 얼마나 넓으냐였습니다. 그동안 혼자 살아온 살림집에서는 씻는방이 없거나 아주 좁았습니다. 마음놓고 이불빨래를 할 수 없었어요. 이불빨래는 손빨래 가운데 가장 힘들다지만, 힘든 만큼 가장 즐겁고 뿌듯합니다. 어쩌면 손이 덜 가는 빨래일 수 있고, 담벼락에 널어놓고 물방울이 줄줄줄 떨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흐뭇해지는 빨래입니다. 이제 저 빨래가 맑은 햇볕을 받아 뽀송뽀송 마르면 저녁에 잠자리에 들며 아주 포근하겠구나 싶어 한결 즐겁습니다.

 씻는방이 넓기를 바란 까닭은 이불빨래 때문만은 아닙니다. 뒷날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할 때 이 씻는방에서 함께 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이불이며 다른 빨랫감이며 바닥에 죽 깔아 놓고 함께 씻으면서 빨래를 적실 수 있고, 하나하나 아이들과 함께 손빨래를 하면서 놀 수 있겠지요. 저는 한쪽에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한쪽에서 씻는방 바닥을 빗솔로 북북 비비며 닦고. 이불빨래를 때로는 바닥에 쫙 펼쳐서 손으로 비빔질을 해서 함께 빨 수도 있고.


.. 종이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어요. 그렇지만 종이 인간이 들려주는 얘기는 모두 전쟁과 갑작스런 사고나 가난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어요. 아이들은 종이 인간이 해 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주아주 슬픈 얼굴이 되었어요. 몇몇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어요 ..  〈20∼24쪽〉


 제 어릴 적을 돌아보았을 때, 이불빨래 하는 날은 밖에 나가서 동무들과 놀 수 없어서 짜증스러웠지만, 이맛살 찌푸린 채 시키는 대로 밟고 비비고 하다 보면 어느새 이맛살이 스르르 풀리면서 싱글벙글 웃으며 온몸이 비누거품이 됩니다. 옷을 하나둘 벗어던지고 몸씻기까지 같이하고야 맙니다. 밖에 나가 놀자던 생각은 까맣게 잊은 채 형하고 어머니와 낑낑거리며 물을 짰고, 툇마루 난간에 이불을 쫙 하고 널면! 또는 동네 빈 담벼락이나 울타리에 널면!


 〈2〉 옷


 아침에는 모처럼 보일러를 돌려서 몸을 씻었고, 밀린 바지 빨래 석 점을 해치웠습니다. 가을 날씨까지는 손빨래를 신나게 즐기는데, 쌀쌀해진 날씨에는 손이 얼어붙기 때문에 한 점 두 점 밀리기 일쑤가 되고, 더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빨래손을 확 붙잡으면 손이 얼어붙으면서도 어느새 두 점 석 점 해치우게 됩니다. 얼얼한 손을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고 녹이는데, 그러면서도 웃습니다. 좋아서. 오늘은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따순 물을 썼습니다. 따순 물로 빨래하니 손도 따숩고 빨래도 금세 되고 좋네요.


.. 빨래방 간판이 보였어요. 종이 인간은 너무 좋아서 깡충 뛰었어요. 그리고는 굳게 마음을 먹고 빨래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어요. ‘여기서는 내 몸에 쓰여진 것들을 모두 지울 수 있을 거야. 그건 모두 다 아이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뿐이야’ ..  〈28∼31쪽〉


 혼잣살림을 하거나 시집장가를 가서 살림을 하거나, 제 또래동무며 손위나 손아래 동무며, 어르신들이며 모두들 빨래기계를 집에 들여놓고 삽니다. 손빨래로만 살아가는 분은 딱 한 사람 만났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호호 손을 녹이며 손빨래를 하신답니다. 그분 차림새를 보면, 멋을 아예 안 차리지는 않지만 자기 깜냥과 주제에 맞는 멋에 맞출 뿐, 구태여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갈 까닭도 없겠지요. 자기 옷차림이란 자기가 입어서 좋을 옷을 자기 몸이 좋아하는 대로 갖추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자기 옷은 자기가 빨아서 입어야 하는 만큼, 옷 아낌새도 남다릅니다. 돈 몇 푼으로 사서 입다가 유행이 지나면 재활용수거함에 휙 던지거나 ‘아름다운가게’ 같은 곳에 슥 기부하고 마는 옷이 아니거든요. 참말로 자기가 아끼며 입을 수 있는 옷,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옷, 두고두고 오래오래 입을 수 있는 옷, 뒷날 자기 딸아들한테 물려주거나 좋은 동무한테 선사할 수도 있는 옷만 알뜰히 마련해서 적은 숫자로 갖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들한테는 옷이 몇 가지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들한테는 책이 몇 권이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들한테는 은행계좌 남은돈이나 달삯으로 벌어들이는 돈크기가 얼마나 되어야 할까요. 우리들이 살아가는 집터는 몇 평이나 되어야 할까요.


 〈3〉 돈과 집


 우리 도서관이나 살림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은 평수가 꽤 넓은 모습을 보며 놀랍니다. “돈 많이 벌었나 봐요?” “아니에요. 이 동네가 싸요. 다들 서울에서만 살려고 하고, 번화가 도심지 가까이 살려고 하고, 아파트숲에서만 살려고 하니, 자기 살림터를 넉넉하게 즐길 수 없잖아요. 흔한 말로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들 하는데, 시골에 살 때에도 욕심을 안 내면 빈집을 아주 적은 돈만 치르고도 얻어서 쓸 수 있어요. 크고 넓은 집이 아니라, 온갖 물질문명을 다 갖추어 쓸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자기가 마음을 아늑하게 다스리면서 살고 싶은 집,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많은 자기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집, 남한테 잘 보이려는 집이 아니라 자기 몸에 알맞고 동네사람들하고도 오순도순 복닥이고 싶은 집에서 살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값도 싸면서 괜찮은 집을 마련할 수 있어요. 뭐, 서울에서 산다고 할 때에도, 집에서 전철이나 버스 타는 데까지 걸어서 십 분이나 이십 분쯤 나가야 하는 안쪽 깊숙한 데로 얻으면 싸고 괜찮아요. ‘걸어다닐’ 생각이나 ‘자전거 타고다닐’ 생각을 하면 말이에요.”


.. 그렇지만, 종이 인간이 말하려고 하자…… 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종이 인간은 자신의 몸이 온통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  〈41쪽〉


 돈으로 사는 집은 돈으로 잃습니다. 돈벌이 잘되는 나라는 돈벌이로 무너집니다. 사랑으로 나누고 믿음으로 함께하며 나눔으로 웃고 울 수 있을 때, 백 해를 꽉 채우지 못하고 떠나는 우리 삶일지라도 그 백 해쯤 되는 세월을 ‘나, 이 땅에서 잘살다가 떠나네. 아무 아쉬움도 없이.’ 하고 말하며 눈감을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무엇을 물려받으면 좋을까요? 큰 집? 빠른 차? 넉넉한 돈? 높은 이름?

 우리들은 우리 딸아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면 좋을까요? 영어 솜씨? 한문 재주? 일류대 졸업장?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


 〈4〉 사진 찍기


 사진기 하나 어깨에 메고 동네 마실을 다닙니다. 예전에는 가방에 넣고 있다가 찍을 때만 꺼냈는데, 이제는 스스럼없이 어깨에 둘러멘 채 돌아다닙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찰칵찰칵 찍습니다. 다만, 언제나 대놓고 찍지는 않습니다만, 같이 어울리고 있는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집어듭니다. “사진을 왜 찍으셔요?” “지금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아서요.” “아유, 나 같은 사람을 뭐 하러 찍어요?” “할머니 같은 분이니까 찍지요.” “이 쭈그렁 주름살은 나오게 하지 말아요.” “그 쭈그렁 주름살이기 때문에 곱잖아요.”

 

.. 너무 슬퍼서 다시 길을 떠났어요. 종이 인간은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들판으로 나왔어요. 들판으로 나온 순간, 종이 인간은 너무 행복했어요. 종이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종이 인간은 자기 호주머니에 새 한 마리가 들어 있다고 상상하며 활짝 웃었어요. 그리고는 들판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색으로 온몸을 물들였어요 ..  〈42∼44쪽〉


 사진기는 늘 들고 다니지만, 단추를 누를 때까지는 시간을 퍽 두어야 합니다. 기다립니다. 제 마음이 맞은편 마음 한 자리까지 스며들도록 기다립니다. 사진기를 늘 들고 다니고 있음을 맞은편에서도 느끼게 한 다음, 이 사진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그때 바로 집어듭니다.

 사진에 담기는 분들은 모두 내 이웃이요, 그분들한테 저 또한 이웃입니다. 사진에 담기는 분들은 모두 내 식구이자 동무일 수 있습니다. 그분들한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귀담아듣고, 저도 제 나름대로 제 삶을 가만히 이야기로 들려드립니다. 오고 갑니다. 가고 옵니다.


 〈5〉 《종이 인간》이라는 그림책


 그림책 《종이 인간》을 봅니다. 꼭 알맞는 길이로 글이 담겼고 그림이 실렸습니다. 어린아이들 누구나 따라 그릴 수 있을 만치 가볍게 그렸습니다. 가벼운 그림이면서도 오래도록 이 땅 아이들을 살펴보지 않았다면, 차근차근 이 땅 삶터와 세상을 헤아리지 않았다면 빚어낼 수 없었을 그림입니다. 가벼운 그림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기도 할까요?

 ‘종이 사람’이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신문’이기도 하고 ‘글쟁이’이기도 합니다. ‘방송’이나 ‘인터넷’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 ‘종이 사람’, 그러니까 한 마디로 하자면 ‘언론’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요. 이 ‘언론’에 담기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우리 삶을 헤아리고 있을까요. 우리 삶터와 세상은 얼마나 굽어살핀 뒤 담아내고 있을까요. 얼마나 이 땅 사람들 가까이 다가와서 이야기를 건네고 있을까요.

 ‘언론’에 마주하는 우리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나요. 어떤 이야기를 찾고 있나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가슴으로 받아안나요. 우리들은 ‘언론’에 무엇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어떤 모습이 언론에 담길 만하다고 느끼나요.


.. 새롭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머리속을 채워 나갔어요 ..  〈45쪽〉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누가누가 당선가능성이 높다느니 지지율이 얼마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넘칩니다. 지난 선거에도, 지지난 선거에도, 지지지난 선거에도, 지지지지난 선거에도 그랬습니다. 다음 선거도 마찬가지일까요? 다다음 선거도 판박이일까요? 다다다음 선거도 돌림돌림이 될까요? 다다다다음 선거도 한결같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잘산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돌아보고 내다보고 톺아보며 함께 얼싸안거나 부둥켜안거나 껴안을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대통령 후보는 없을까요. 아니, 대통령 후보가 이런 말을 꺼내지 못한다면, 대통령 후보들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록 간지럽히거나 꼬집거나 들쑤실 수 있는 ‘언론’은 없을까요. 아니, 언론이 대통령 후보를 파헤치지 못하는 모습을 깨닫고는, 언론이 언론다울 수 있도록 다그치는 우리들, 백성들, 시민들, 서민들, 국민들, 민중들, 보통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4340.11.1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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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입시험 치른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을까?
 : 친구들아, 이제 ‘진짜’ 책을 쥐어야지



 〈1〉 시험을 마친 친구들한테


 아침부터 날이 따뜻합니다. 지금은 가을이 아닙니다. 겨울도 아닙니다. 미친날씨 탓에 뒤죽박죽이 된 철없는 아침입니다. 그러면 이 아침은 왜 철없는 아침이 되었을까요. 그냥 날씨가 미쳤기 때문일까요?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일까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날까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린 친구들이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르는 날은 모질게 추웠습니다. 열 해쯤 앞서는 더 추웠고, 스무 해쯤 앞서는 훨씬 추웠고,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대단히 추웠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올 11월은 안 춥습니다. 안 추울 뿐 아니라 낮에는 덥기까지 해서 모기와 파리가 잠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시멘트로 지은 학교 건물에 아침부터 늦은밤까지 갇혀 지내면서 이런 미친날씨를 느껴 보았나요? 요즈음 햇볕이 어떠한지, 요즈음 하늘은 파란빛 없이 뿌옇기만 한 빛깔인지, 도시고 시골이고 백 미터 앞도 또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먼지띠가 드리웠는지, 겨울이 코앞인데 안 추운지, 여름이 한창인데 비만 퍼붓는지를 살갗으로 느껴 보았나요? 산성비와 산성이 아닌 비가 어떻게 다른지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열두 시. 친구들은 한창 연필이나 볼펜을 놀리며 문제풀이를 하고 있겠군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모든 친구들이 대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은 한편, 꼭 대학교에 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학교에 가서 학문을 깊이 갈고닦을 수 있지만, 학문을 갈고닦는 길은 반드시 대학교만이 아닙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앞으로 자기가 다니고 싶은 회사에서 쓰일 만한 실무를 익힐 수 있으나, 대학교를 안 가고 곧바로 ‘고졸’ 또는 ‘중졸’ 또는 ‘학력없음’인 채로 세상을 부대끼며 일손을 하나하나 익힐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친구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다 치르고 난 뒤(또는 시험을 안 치르고 보낸 뒤), 어떻게 하루를 마감할까 궁금합니다. 시험을 치르고 난 이튿날부터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까 궁금합니다. 여태껏 하고 싶었어도 못한 꿈을 펼치려는지, 여태껏 보고 싶어도 못 본 영화를 보려는지, 여태껏 사귀고 싶었어도 못 만나고 지낸 이성친구(또는 동성친구)를 만나려는지, 여태껏 다니고 싶었어도 먼나들이(여행)를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자 신나게 길을 나서려는지.

 벌써부터 술맛을 들인 친구도 있을 테고, 술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지내는 친구도 있겠지요. 어떠하든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저, 술 한 잔 사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며 알딸딸한 채로, 마음에만 담고 있던 온갖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일 하루쯤, 또는 이틀쯤 학교를 빠지고 고향땅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여행을 떠나 보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개근상을 반드시 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면 헬멧은 꼭 쓰셔요. 우리들 푸른 친구들 소중한 목숨은 하나이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우리 나라를 한 바퀴 돈 다음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겠지요. 자기 몸뚱이로만, 자기 두 다리로만 페달질을 하면서 홀로 노래도 부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옴팡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밟으며 우리네 이웃사람들 삶터와 발자취를 마음껏 느껴 보아도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해는 1993년입니다. 그때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치러졌고, 저는 11월 6일과 한 달쯤 뒤에 다시 한 번 해서, 두 번 치렀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쉴 수 없었고,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떠날 수도 없었어요. 다만, 제 살가운 너나들이네 집에 놀러갔더니, 동무 아버님께서 손수 고기를 구우시면서, “너희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술을 마셔도 돼!” 하면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뿅 따서 내리 일곱 잔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잔을 마시면, 당신이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손수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시고. 이렇게 거푸 일곱 차례.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열두 시 즈음 끝내더군요. 뭐, 이 나라 고등학교는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치르기’가 끝나면, 우리 친구들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친구들 다니는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친구들이 초등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그리고 고등학교 세 해, 모두 열두 해 동안 배운 교과서란 무엇입니까? 한낱 대학입학시험 치르는 연장일 뿐 아닌가요. 대입시험을 치르면 찢어버려도 되는 종이뭉치, 대입시험을 치르면 헌책방에 내다 팔아도 되는 종이덩이, 대입시험을 치르면 신발로 마구마구 밟거나 종이비행기 접어서 던져도 되는 종이꾸러미…….

 아무튼, 제 고3 때를 더듬어 보면, 두 번째 수능이 끝난 뒤부터는 아주 자유로워졌고, 학교도 일찍 끝냈기에, 저는 곧바로 제 고향인 인천에 있는 모든 책방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대한서림, 동인서관, 시민서점, 동아서림, 한겨레문고, ……, 그리고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들, 부평에 있던 헌책방 광장서점 들 …….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여태까지는 ‘진짜 책이라 할 만한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책이 아닌데, 교과서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담은 책, 우리 이야기를 엮어낸 책, 우리 생각과 뜻과 마음을 이끌어 주거나 북돋워 주는 책, 진짜 책을 만나고 싶어서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낮 열두 시부터 저녁 여덟아홉 시까지 박혀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종로서적에도 먼 나들이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 데는 얼마나 책이 많은가 싶어서.


 〈2〉 교과서는 가짜 책


 우리 푸른 친구들한테 여덟 가지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덟 가지 책은 제 나름대로 참 괜찮다고 느낀 책들인데, 친구들한테도 괜찮다고 느껴질는지, 그저 그렇네 하고 다가갈는지,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책, 친구들 마음을 움직이거나 울리는 책은, 어찌 되었든 친구들 두 손으로 고르거나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제 두 손으로 이 여덟 가지 책을 찾아냈고, 읽어냈고, 가슴으로 녹여냈습니다.

 아무쪼록,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채울 꺼리는 친구들 스스로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그 꺼리는 책이 될 수 있고, 자전거가 될 수 있으며, 살가운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붓이, 인터넷이, 술이, 오토바이가, 또는 호미나 낫이 될 수 있겠지요. 종이접기가, 장구와 북이, 피리와 기타가 될 수 있고요.


 (ㄱ) 두 친구 이야기
 : 안케 드브리스 씀, 박정화 옮김 / 양철북, 2005.11.18, 8500원



..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그…… 그런데…….” 미하엘은 말을 더듬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어요?”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법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저 양반 때문에 못했다! 그 불쌍한 꼬마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도 우리 일이 아니라고 영감이 한사코 말리잖아!”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우리 일이 아니잖아. 이 세상은 골칫거리로 가득하다고. 그걸 다 당신이 해결할 수는 없잖아. 아무도 당신더러 참견하라고 부탁하지도 않았고.” 미하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유디트 등의 멍과 부은 자리만 생각났다. 엄마가 그랬다니! 왜 유디트는 나한테 숨겼을까? 거짓말까지 하면서. 난 유디트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말인가? ..  〈257쪽〉


 (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 러미스 씀, 김종철ㆍ이반 옮김 / 녹색평론사, 2002.12.10, 7000원



.. 매년 몇 십만의 사람들이 살인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큰 살인학교가 있어서, 미국에서 몇 백만 명의―주로 남자들― 사람들이 그 살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살인학교라는 것은 물론 군대입니다. 나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만, 군대의 훈련 중에서 이런저런 기술도 가르치지만, 그 이외 군대의 훈련에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저항이 있어서, 그리 간단히는 되지 않습니다. 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인간의 몸을 겨냥해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그 저항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죽이는 인간으로 훈련시킵니다 ..  〈42쪽〉


 (ㄷ)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 아룬다티 로이 씀, 정병선 옮김 / 시울, 2005.9.29, 8500원



.. 일단 시민사회가 자유를 넘겨주고 나면 투쟁 없이는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는 것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의 자유가 비록 변변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결코 하사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를 얻어낸 것은 우리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때때로 자유를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자유는 위축되고 맙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유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초라하고 빈약한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  〈24∼25쪽〉


 (ㄹ) 백성백작―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
 : 후루노 다카오 씀, 홍순명 옮김 / 그물코, 2006.7.22, 8000원



.. 국산 밀이라고 상표가 붙은 밀가루가 이따금 팔리지만, 내가 알기로는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밀가루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은혜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78∼79쪽, 165쪽〉


 (ㅁ) 블루백
 : 팀 윈튼 씀, 이동욱 옮김 / 눌와, 2000.2.25, 7000원



.. 아벨은 어머니의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는, 자기가 그곳에서 어머니를 돕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밤이면 뜬눈으로 어머니와 롱보트 만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 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날마다 그 박하나무 아래서 어머니는 아벨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서 있곤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해가 지고 달이 가도록 변함없이 그럴 수 있는지 아벨은 당혹해 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벨은 그 모든 것들―바다, 관목숲, 집,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를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양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벨은 그 어머니의 사랑 덕택에, 줄곧 숨죽이는 생활을 해야 했던 도회지에서의 무미건조한 학교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얼굴에 바다의 푸르름을 적시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100∼101쪽〉


 (ㅂ) 희망은 있다
 : 페트라 켈리 씀, 이수영 옮김 / 달팽이, 2004.11.15, 8000원



.. 유럽평화운동을 하는 일원으로서 서유럽에 사는 우리는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과 적극적인 비폭력운동을 통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저지른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정에 대한 마지막 대응수단으로 우리는 불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행동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법적 권리와 도덕적 권리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복종할 시민의 의무(!)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비폭력 시민저항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이 배치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고, 또 미래 세대의 생존기회가 줄어들 것이 뻔합니다. 시민불복종운동이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소련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뿐 아니라, “미국이 이곳에 머물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 점차 급박해지는 이 질문에도 비폭력행동으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  〈69쪽〉


 (ㅅ) 깜둥바가지 아줌마
 : 권정생 씀 / 우리교육, 1998.11.20, 6000원


.. “나도 뚝배기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들이 우리를 무척 업신여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왜 그 애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꾸짖지 않는 거예요?” 뚝배기는 너무 서러워 목이 꺽꺽 막히었습니다. 깜둥바가지는 여전히 상냥스레 타일렀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나쁜 짓 하는 것을 꾸짖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그게 아니란다.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만약 내가 무섭게 그 애들을 꾸짖고 욕하면 되레 우리를 더 미워할 게 아니니? 전보다 더 나쁜 짓을 하면서 대들는지도 모를 거야. 그래, 이 좁은 부엌 안에서 매일 싸움만 하고 서로 미워한다면 얼마나 불안스럽겠니?” 깜둥바가지는 잠시 말을 그쳤습니다. 된장 뚝배기는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참아야 하지 않겠니? 쬐그만 할 때는 누구라도 다 장난꾸러기인 거야. 그걸 탓하지 말고 사랑해 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냥 꾹 참고 지내면 앞으로는 사기 접시도, 오목탕끼도, 수저들도 모두 뉘우치고 우리랑 친할 거야.” 된장 뚝배기는 어느새 눈물을 말끔 씻고 있었습니다 ..  〈40∼41쪽〉


 (ㅇ) 우리 말 살려쓰기 (셋)
 : 이오덕 씀 / 아리랑나라, 2005.8.25, 15000원



.. 초등학교란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보통학교, 소학교, 어린이학교, 그밖에도 몇 가지 의견이 나왔던 모양인데, 왜 온 나라 사람들의 교육을 하게 되는 학교 이름을 붙이는데 일반 백성들의 생각을 물어 보지 않고, 행정관청에서 마음대로 붙이나? 몇 천 명인가를 상대로 알아보기는 한 모양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내 눈에는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이름을 바라나 하는 것이 훤하다. 그러니 이런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을 어떤 사람으로 하나 하는 데 따라서 얼마든지 바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이학교’가 가장 좋다. 그러나 어린이학교로 되리라고는 바랄 수가 없었기에 내 생각을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어린이학교가 되려면 아이들 생각을 들어 봐야 하는데, 일반 교사보다 교감, 교장의 생각을 더 잘 듣는 지금의 행정당국이 아이들 생각에 귀를 기울여 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그 정도로 될 줄 알았지. 우리가 하는 정도가 그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니까. 초등학교가 되더라도 좋으니 부디 교육이나 좀 달라졌으면, 하고 바랄밖에 없다. 국민학교, 아, 그 몸소리나는 국민, 국민, 국민총동원, 총후국민, 비국민, 황국민, 국민정신작흥주간, 대일본국민체조, 국민독본, 국민복, …… 이제 그 왜정 때의 그 지긋지긋한 국민이란 말에서 벗어나게 되려나 ..  〈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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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 저녁, 동인천역 둘레로 나들이를 하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팔뚝에 걸쳐 놓은 신문을 하나 집어서 “석간이에요. 읽어 보셔요.” 하고 건넵니다. “네, 고맙습니다.” 하며 받습니다. 몇 해 앞서부터 수없이 찍혀 나오고 있는 ‘공짜 신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철역 둘레에 쌓여 있는 이런 공짜 신문을 제 손으로 집어들어 볼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늦은저녁, 쌀쌀한 날씨에도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맞춘옷을 입고 덜덜 떨면서 한 장씩 나누어 주실 때에는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며 받아듭니다.

 집에 와서 공짜 신문을 펼칩니다. 광고가 참 빽빽합니다. 이 신문들은 공짜로 나누어 주는 만큼 광고를 받아내어 종이값을 대고 직원들 일삯을 대겠지요. 그러니까, 곰곰이 따지면 공짜는 아닙니다. 우리 눈을 아프게 하는 어수선한 광고까지 다 넘겨서 살피는 대가로 받는 신문입니다. 버스나 지하철도 그렇잖아요. 눈둘 데가 없을 만큼 광고판이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버스와 지하철이 우리들 ‘편의’를 헤아리는 대중교통이라 한다면, 찻삯을 받지 말고 광고로 떡칠을 하든지, 찻삯을 받는 만큼 광고판을 집어치우든지 해야 올바릅니다.

 공짜 신문을 술술 넘기니 ‘친환경상품전시회’ 광고가 있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에는 기사 같았는데 코딱지 만한 글씨로 ‘전면광고’ 꼬리말이 붙었네요. 지구자원을 써서 만드는 물건인데 ‘환경을 사랑하는(친환경)’ 물건이 될 수 있을는지. 지구 삶터를 가장 무너뜨리는 나라가 미국이고, 끊임없는 석유 싸움과 무기 싸움으로 온누리를 괴롭히는 미국인 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며, 미국 부시 대통령을 나무라고 주한미군 문제를 외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환경운동 하는 분들조차 “STOP, CO₂!”를 읊고 ‘친환경상품전시회’ 구호로도 쓰입니다.

 ‘경제’ 지면도 아닌 ‘Money’ 지면에 “내일의 운세를 ENGLISH로”라는 광고가 보입니다. 바로 밑 기사는, “무비데이에 파브시사회서 데이트할까”. 삼성전자에서 새로 내놓은 텔레비전 광고 기사네요. 새 텔레비전 이름은 ‘파브 깐느 풀HD LCD TV’입니다.

 지난 10월부터 〈한겨레〉는 ‘한 부 500원짜리 논술신문’을 펴냅니다. 지난 2005년 겨울, 〈한겨레21〉 587호 별책부록으로 ‘2006 논술 예상문제 6선!’을 끼워팔았습니다. 2002년이었던가요, 그때는 ‘초등학생 영어일기 첨삭지도’를 한 주에 한 차례씩 기사로 실었습니다.

 오늘은 대학교를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또 인터넷이 ‘시험 잘 치르라’는 말을 잊지 않습니다. 저녁이 되면 시험문제 풀이로 떠들썩할 테지요. 하지만, 대학교에 가는 아이들보다 더 많은 ‘대학교 안 가고’ 사회살이를 할 아이들한테 마음쓰는 신문이나 방송은 얼마나 될는지. 서민을 말하고 진보를 말하고 개혁을 외치며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는 어이하여 ‘고졸’ 아이들을, ‘중졸’ 아이들을 못 껴안고 있는지. (4340.11.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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