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만세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
후쿠다 이와오 지음, 김난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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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서 방귀 뀐 아이, 학교, 글쓰기
 [그림책이 좋다 44] 후쿠다 이와오, 《방귀 만세》



- 책이름 : 방귀 만세
- 글ㆍ그림 : 후쿠다 이와오
- 옮긴이 : 김난주
- 펴낸곳 : 아이세움(2001.4.10.)
- 책값 : 7500원



 (1) 방귀

 한창 공부를 하고 있던 1학년 3반 교실에 뿌웅 하는 소리가 납니다. 방귀 뀐 아이를 놀리고 싶어하는 짝꿍은 벌떡 일어서서 아무개가 뀌었다고 일러바칩니다. 아이들은 웅성웅성 이 말 저 말 나옵니다. 선생님은 “얘들아, 조용히 해야지. 방귀 좀 뀌면 어때서?” 하다가는 “방귀는 건강하다는 증거다. 소리가 큰 것도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야.” 하고 말합니다만, 방귀 뀐 아이는 그예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렇게 되면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 말마따나 ‘방귀 좀 뀌면 어떠냐’ 싶지만, 정작 자기도 모르게 방귀를 뀌게 된 사람이나, 둘레에서 수군수군거리는 사람, 그리고 일러바친 사람한테는 이와 같은 말이 얼마나 씨가 먹힐는지요.

 할아버지도 뀌는 방귀요 어머니도 뀌는 방귀요 고양이도 뀌는 방귀입니다. 배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하니까 나오는 방귀입니다. 보리밥을 먹으면 보리 방귀를, 고구마를 먹으면 고구마 방귀를, 감자를 먹으면 감자 방귀를 뀝니다. 고기를 먹은 사람한테는 고기 방귀가 나옵니다. 저마다 먹은 대로 방귀가 나오고, 저마다 몸에서 삭여지는 대로 냄새가 납니다. 소리는 큰데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방귀가 있고, 소리는 없는 듯한데 냄새가 구린 방귀가 있습니다. 혼자 뀌면 아무 일이 없으나, 여럿이 있는 자리라면 크게 달라지는 방귀입니다. 혼자라면 마음 놓고 뀔 터이나, 혼자가 아니면 속이 끓어도 참고 또 참아서 답답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밖에서 밥을 자주 사먹으니 방귀도 자주 뀌고 냄새도 많이 납니다. 시골집에서 손수 일군 밥을 해먹는 사람이라면 방귀도 그다지 나오지 않으나, 나온다 한들 냄새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 스스로도 느끼지만, 배가 아닌 혀에 달콤한 밥을 잔뜩 먹게 되면 언제나 구린 방귀가 나옵니다. 누런쌀과 콩으로 지은 밥에다가 푸성귀를 반찬 삼아서 알맞춤하게 먹으면 방귀가 거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가끔 나와도 냄새를 못 느낍니다.


 (2) 학교

 한 아이가 방귀를 뀌면 교실은 공부를 하기 힘들어집니다. 냄새가 난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법석이 되기 일쑤이고, 방귀 뀐 아이를 놀려대느라, 잘못해서 방귀를 뀐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집니다. 선생님으로서도 차분하게 아이들을 다스리기 쉽지 않습니다. 글쎄, 우리 나라 수십만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어떻게 마주하실는지요. 제가 초중고등학교 때 겪은 교사들 가운데, 방귀 소리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면서 서로 깊이있게 이야기를 나눈 분들이 있었나 떠올려 봅니다. 거의 우격다짐으로 우리를 내리눌렀는데, 그런 가운데에도 몇몇 분들은 뜻있는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거나 이야기를 건네려 했습니다. 그러나, 뜻있는 말을 들려주어도 곧이듣거나 새겨듣는 동무가 많지 않았다고 떠오릅니다. 장난으로 방귀 뀐 아이는 반죽음이 되도록 몽둥이찜질이 되었고, 장난 아닌 방귀를 뀐 아이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습니다.


.. “선생님 집에 미키라고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그 녀석도 방귀를 뀐단다.” “에, 정말요?” “거짓말이죠?” “고양이가 어떻게요?” 싱긋싱긋 웃는 선생님의 눈이 가늘게 붙어 버렸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은 다들 방귀를 뀌는 거야. 방귀에 관한 결론이다. 다들 알았냐?” 선생님은 뿌듯해하며 수염을 만지작거렸습니다 ..  (21쪽)


 그림책 《방귀 만세》에 나오는 선생님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습니다. 선생님도 아이들한테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억지스럽게 짓누르거나 억누르거나 다그치는 목소리가 없습니다. 일러바친 아이는 짓궂었지만, 속으로까지 얄궂지 않습니다.

 문득,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학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 우리네 교실도 이처럼 살아숨쉬거나 싱싱한 기운이 넘쳐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선생님은 방귀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자, 아이들과 함께 ‘방귀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거리낌없이 주고받은 다음, ‘방귀를 글감 삼아 글 하나 써 보자’고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러한 선생님 말을 고이 받아들여서 즐겁게 글쓰기를 합니다.


 [일러바친 아이 글 : 방귀 조회]
 어제 아침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긴긴 얘기를 듣고 있는데
 방귀가 나왔다.
 엉덩이도
 심심했나 보다.
 끝.



 이제는 대학교 입시에서 논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도 ‘글쓰기’를 한다고 그럽니다만, 정작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열거나 나누면서 세상 보는 눈을 기르는 글쓰기는 자취를 감춥니다. 마음을 살찌우거나 가꾸면서 아이들 삶도 살찌우거나 가꾸게 되는 글쓰기도 차츰 사라집니다. 오로지 ‘논리와 이론을 담아 쓰는 글’인 논술만 판칩니다. 글 잘 쓰는 법을 다루는 책이 나오기는 하나, 글을 왜 잘 써야 하는가를 헤아리거나 돌아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거의 안 담기거나 한두 줄 잠깐 다루고 그칠 뿐입니다.


 [방귀 뀐 아이 글 : 꽃 방귀]
 선생님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방귀를 뀐다고 했다.
 그렇다면 풀이나 나무나
 꽃도 방귀를 뀔까?
 물푸레나무의 맛있는
 꽃향기는 꽃이 뀐
 방귀 냄새일까?


 일본은 ‘초중고등학교 글쓰기 역사’가 백 해가 넘었습니다. 일찍부터 아이들한테 자기 삶을 담은 글을 쓰도록 학교에서 교사들이 이끌었습니다. 꾸밈이나 치레가 아닌 자기 속생각을 있는 그대로 담도록 이끌었습니다. 대학교 입시 때문에 하는 글쓰기가 아닙니다. 이리하여 교사들은 자기가 맡은 아이들이 어떤 형편에서 살고,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학교를 다니는가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고, 아이들도 쉬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앓이를 속시원하게 쏟아낼 수 있습니다.

 《방귀 만세》라고 하는 그림책에서 이러한 일본 글쓰기 문화를 살며시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끄는 길을 잘 따르는 한편, 저희들 나름대로 자기 길을 새롭게 열거나 찾아나섭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한 고비를 겪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여태껏 살아오면서도 미처 못 느끼거나 못 본 대목을 아이들한테 배우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3) 아쉬움 한 가지

 그림책 《방귀 만세》를 보면, 아이들이 자기 집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아들 시중을 들고, 아버지는 신문을 읽으며 앉은 자리에서 밥상을 받고, 옆에는 아들이 앉아 있습니다. 어머니만 따로 나온 그림에서도 어머니는 ‘집에서만 있는 사람’인 듯 그려집니다. 이와 같은 그림결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벗어나기 힘든 굴레일까요. 아니, 이렇게 그려야만 우리 삶을 담아내는 셈일까요.

 집안일이야 아버지가 할 수도 있고 어머니가 할 수도 있습니다. 바깥일이야 둘 모두 할 수 있고 어느 한쪽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일이 더 높지 않고 어느 일이 더 낮지 않습니다. 다만, 한쪽으로만 굳어지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성평등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이러한 그림결은 곰곰이 살피면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4341.5.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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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느긋하게 달리는 사람은 책도 느긋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빠르게만 내달리는 사람은 책을 손에 쥘 틈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알맞는 때에 알뜰하게 모는 사람은 책을 손에 쥐는 넉넉함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몰아도 그저 자기가 맨앞에서 싱싱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책하고는 담을 쌓으며 삽니다.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읽는 책이 아닙니다. 더 빨리 가야만 하기에 타는 자동차가 아니요 자전거가 아닙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흐느적흐느적 걸어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운동 삼아서 자전거를 타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느끼고 싶기에 걷습니다. 세상을 껴안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땅기운을 느끼고 싶기에 걷습니다. 우리 사는 둘레를 고이 보듬고 싶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겨울꽃을 보고 봄꽃을 기다리고 있기에 걷습니다. 겨울눈과 겨울바람, 봄비와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좋기에 걷습니다. 따순 햇볕에 얼굴이며 팔뚝이며 허벅지며 새까맣게 타는 맛이 좋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어깨와 다리와 팔과 허리가 내 몸뚱이로구나 느끼기에 걷습니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이 처음에는 주르륵 흐르다가 그예 방울로 맺히며 똑똑 떨어지는 짭쪼름한 맛이 좋기에 자전거를 탑니다.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저는 요즈음 자전거를 통 못 타고 있습니다. 왼어깨와 오른팔꿈치가 꽤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힘겹습니다. 오른손목이 저리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뺑소니 교통사고를 겪었습니다. 1998년 9월, 신문배달을 하며 살던 때, 새벽일을 마치고 신문사지국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까맣고 큰 차가 뒤에서 제 짐자전거를 쳤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하늘을 날았고 몇 초쯤 뒤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때 ‘아, 머리는 깨지면 안 돼’ 하고 생각하며 오른팔로 머리를 감싸서 머리는 안 깨지고 오른손목이 나갔습니다. 2004년 여름, 내리막길에서 짐차 한 대가 제 앞에 확 끼어들었습니다. 차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서둘러 멈추었다가 차와는 가까스로 안 부딪히고 길바닥에 어깨가 질질질 갈렸습니다. 여섯 달 뒤 비슷하게 들이미는 차 때문에 다시금 뒹굴며 오른팔꿈치가 나갔습니다.

 한동안 그럭저럭 참으며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어깨를 쓰고 팔을 쓰고 손을 쓸 때마다 뜨끔뜨끔 아픔이. 책만 볼 때는 몰랐던 세상 마음씀이 몸뚱아리 깊숙히 배어듭니다. 자전거로 달리며 바라보고 느낀 삶터와 사람 매무새는 책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쉬게 되니 전철이나 버스를 탑니다. 어디 오갈 때 책읽는 시간이 늡니다. 그렇지만 답답합니다. 훌륭한 이야기를 가슴으로 받아먹으니 즐거웁지만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달별을 못 부대끼니 서운하면서 쓸쓸합니다. 그래서 제가 즐겨타던 자전거 두 대를 아는 분한테 빌려드렸습니다. 내 몸이 다 낫는 날을 맞이하면 돌려받기로 하고. (434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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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사람들은 거님길이 아닌 찻길로 달리기 마련입니다. 거님길에서 자전거를 달리면 이 길에서 걷는 사람을 위험하게 할 수 있으니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다음으로, 거님길은 파인 데가 많고 울퉁불퉁하고 턱이 많습니다. 가게에서 내놓은 물건과 버스정류장과 갖가지 알림판이며 전봇대며 걸리적거리지요. 이리하여 찻길에서 자전거를 달립니다. 생각해 보면, 자전거는 찻길로 달려야 합니다. 또한 자전거는 찻길에서 달릴 권리가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 때면 거님길로 지나고요.

 그렇지만 찻길에서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자전거한테 찻길 달릴 권리가 없는 듯 여깁니다. 더욱이 시골과 시골을 잇는 길,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은 자꾸만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고속화도로(또는 고속도로)’로만 뚫습니다. 처음부터 자전거가 다니도록 할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니, 시골 국도나 지방도로에 시골사람이 두 다리로 걸어서 다니도록 하려는 데에는 조금도 마음을 안 기울입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꿋꿋하게 자전거를 몹니다. 걷는 사람도 당차게 걷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자전거꾼과 걷는이는 ‘매캐한 자동차 방귀’와 ‘바퀴가 닳으며 날리는 고무먼지’와 ‘자동차에서 내뿜는 열기’를 옴팡 뒤집어씁니다. 찻길을 닦는 데 들어가는 돈은 우리가 낸 세금이건만, 찻길을 누리는 권리나 ‘나쁜 공기 안 마시고 안전하게 다니는’ 권리를 자동차꾼만 누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군수 들이 되면 ‘관용차’가 나옵니다. 이들이 ‘서민을 만나거나 언제나 서민 삶과 부대끼’도록 ‘관용 자전거’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들한테 ‘전철 한 해치 정액권’이나 ‘버스 한 해치 찻삯’을 주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찻길을 닦고, 교통정책 세우고, 교통순경 두고, 찻길 정비를 하고, 자동차를 저마다 장만해서 다니는 데에는 얼마나 큰돈이 들까요. 우리들은 부자이건 부자가 아니건 어디이든 마음껏 움직이거나 찾아갈 권리를 누리면서 맑고 시원한 바람을 쐴 권리를 함께 누려야 하지 않을는지요. 또한, ‘왜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고다니니?’ 하고 자전거꾼보고 ‘스스로 목숨 내놓고 다닌다’는 말이 아닌, ‘그래, 우리 모두 안전하고 아늑한 삶터에서 살도록 자전거를 타야겠구나’ 하는 말을 해야지 싶어요.

 정치꾼과 공무원부터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장 노동자와 농사꾼도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아이들도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운동, 진보운동, 정치운동, 통일운동, 교육운동, 문화운동을 하는 이들도 자전거를 타고다녀야 합니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만 자전거를 타서는 우리 삶터와 사회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글쟁이도 그림쟁이도 사진쟁이도 자전거를 타야지요. 종교를 믿는 분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두 다리와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에 매이는 사람한테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습니다. 책을 읽어 세상을 더욱 넓게 부대끼려는 마음마저 줄어듭니다. (4341.2.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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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는 아이 티스투 길벗어린이 문학
모리스 드뤼옹 지음, 자끌린 뒤엠 그림, 나선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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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하나 49 ― 사랑을 심는 어린이, 전쟁을 사고파는 어른
 : 모리스 드뤼옹,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



- 책이름 :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
- 글 : 모리스 드뤼옹(모리스 드리용)
- 그림 : 최윤경
- 옮긴이 : 배성옥
- 펴낸곳 : 민음사(1991.3.10.)


* ‘민음사’에서 펴낸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는 판이 끊어졌고, 2005년 7월 15일에, 나선희 님이 새로 옮긴 판으로 ‘길벗어린이’에서 《꽃 피우는 아이 티스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와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저는 길벗어린이 판보다 민음사 판 번역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민음사 판 책으로 읽으며 느낌글을 씁니다. 프랑스에서 1957년에 나온 이 동화는 “Tistou Les Pouces Verts”였고, 우리 말로 옮기면 “풀빛 엄지손가락 티쭈(티스투)”입니다.


 (1) 어른들이란, 참!


 제가 일하는 ‘동네 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어린이, 다음으로 어른. 도서관을 찾아오는 어린이는 조용히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잡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느긋하게 책을 볼 만한 자리를 찾아서 철푸덕 하고 앉습니다. 소리를 낮춘 노래를 틀어 놓습니다. 너무 조용하기보다는 알맞춤한 가락이 흐르는 편이 나으니까요. 시골이라면 아무 노래를 틀어놓지 않아도 바람소리가 있고 새소리가 있고 물소리가 있습니다. 바람이 부는 결에 따라서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도 있습니다. 나뭇잎이 부딪힐 때는 반짝반짝 빛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도시에서는 자동차 소리와 빵빵질 소리와 공장 돌아가는 소리, 갖가지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전화기 소리만 그득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는 노래를 틀어야 합니다.


.. 이건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시청이나 교회에는 아나톨이니, 쉬잔느니, 아녜스니, 장클로드라고 신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톨라, 제트, 푸스 혹은 미스투플레라고 불리우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오죽 많은가요! 이것은, 그저 어른들이란 진짜 우리 어린이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증거이지요. 게다가 어른들 자기네들이야 다 안다고들 말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모든 일에 관하여 틀에 박힌 생각만을 갖고서,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말해 버립니다. 그런데 틀에 박힌 생각이란 대개가 잘못된 생각이지요. 그런 생각들은 아주 오래 전에 이루어졌으며,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모르고, 또 매우 낡아빠진 생각들이랍니다 ..  (13∼14쪽)


 아이들은 참으로 다소곳하게 책을 읽습니다. 보던 책을 제자리에 꽂아 놓고 새로운 책을 뽑아들기도 하지만, 앉던 자리에 그대로 놓기도 하는데, 아직 버릇이 덜 들었거나 깜빡 잊었기 때문입니다. “얘야, 보던 책은 꽂아 놓아야지.” 하고 이르면, “네” 하면서, 깜빡 잊었다는 얼굴이 되어 뾰로롱 달려가서 책을 집어 얌전하게 꽂아 놓습니다.

 어른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선뜻 찾아내지 못합니다. 아이들과 달리 출판사 이름을 보고 지은이 이름을 보고 책이름을 봅니다. 출판사며 지은이며 책이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드는가 안 드는가, 자기 마음밥을 채워 주는가 못 채워 주는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책,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 널리 알려진 책, 교수님이 읽어 보라고 한 책, 언론에서 큼직한 기사로 소개한 책에 손길이 뻗칩니다.


.. 아아,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학교는 티쭈에게 예상할 수 없었던 나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칠판에 알파벳 글자들의 느린 행렬이 시작되기만 하면, 또한 삼 곱하기 삼, 사 곱하기 사 같은 기다란 사슬이 펼쳐지려고만 하면, 티쭈는 왼쪽 눈이 따끔거림을 느끼고는 이내 깊이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티쭈는 바보도 아니었고 게으르지도,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부하겠다는 의지에 넘쳐 있었습니다 ..  (31쪽)


 지난주에 도서관을 찾아온 어느 어른은, 퍼질러 앉아서 느긋하게 책을 읽으라고 깔아 놓은 깔개를 신발로 밟고 다니면서 책을 고릅디다. 그러면서 “이 책 얼마예요?” 하고 묻더군요. 틀림없이 우리 도서관 1층 문간에 ‘사진책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큰 글씨로 적어 놓았고, 지난 금요일에는 건물 바깥벽에 커다란 간판도 달아 놓았건만, 더구나 도서관 안쪽에 ‘도서관 소식지’를 잘 보이는 자리에 늘어놓기도 했는데, 이런 데에는 한 번도 눈길을 안 두는가 봐요. 나즈막한 소리로 대답해 드립니다. “여기는 도서관입니다.” “아, 그런가요? 어쩐지 좋아 보이는 책이 많이 있던데.” “네, 도서관이니까 좋은 책을 갖추어 놓지요.”

 책방이라고 좋아 보이는 책이 없겠느냐만, 더 많은 사람한테 더 두루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어 놓은 도서관이니, 마땅한 소리입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은 털푸덕 앉아 있기도 하던 깔개를 신발로 꾹꾹 밟던 그분은, 책을 제자리에 꽂아 놓고 밖으로 나갑니다만, 책을 꽂아 놓을 때에도 깔개를 또 밟습니다. 에휴, 한숨을 쉬고는 걸래로 발자국을 지웁니다.


.. “도시란 보다시피 거리와 건물과 집,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네 생각에, 무엇이 도시에서 제일 중요할 것 같으냐?” 티쭈가 대답했습니다. “식물원요.” “아니야, 도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질서야. 그래서 지금 우리는 질서를 관리하는 건물로 가 보려 한다. 질서가 없이는 도시도, 나라도, 사회도, 모두 바람처럼 도무지 유지가 안 된다. 질서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무질서를 벌주어야 해!” 티쭈는 생각했습니다. ‘므슈 트루나디스의 말이 분명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왜 저렇게 고함을 치실까? 트럼펫 같은 목소릴 가진 어른이 바로 이분이시구나. 질서 때문에 저토록 소리를 질러야 할까? ..  (58쪽)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바닥에 깔아 놓고 펼쳐서 읽거나 무릎에 올려놓고 펼쳐서 읽습니다. 잘 보이도록 하려고 펼칩니다. 그래서 좀 묵은 만화책이나 그림책은 쩍쩍 갈라지거나 튿어지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달리 힘이 있어서 한손으로 책을 끄집어 내어 한손으로 팔랑거리며 책을 넘기기도 합니다. 이때는 제아무리 묶임새가 야무졌던 책이라 해도 실이 풀리고 풀이 떨어집니다. 보다 못해서 ‘안내 쪽글’을 부랴부랴 적어서 도서관 책손한테 한 장씩 돌립니다. 안내 쪽글에는 “이곳은 책방이 아니라 도서관이니 책을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인 만큼 다른 사람들도 책을 즐길 수 있도록 깨끗하게 간수해 주소서” 같은 글도 적어 놓습니다.

 쪽글을 돌리니, 어린이들은 모두 그대로 앉아서 책을 보지만, 어른들 2/3는 밖으로 나갑니다. ‘뭐야? 책도 안 팔잖아?’ 하는 얼굴입니다. 남아 있는 어른 1/3은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하십니다. 이분들도 이곳이 어떤 곳인 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는가?


.. 식물학자들이 모이게 되면 커다란 회의가 열립니다. 미르포왈에는 그리하여 대대적인 식물학회가 열렸습니다. 꽃의 종류는 한없이 많지만, 식물학자들은 뛰어난 식물학자와 유명한 식물학자, 그리고 탁월한 식물학자, 이렇게 세 종류뿐이랍니다. 그들은 ‘선생님……, 교수님……, 명예로운 동료 학자님……’이라고 부르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정원사 할아버지는 대답했지요. “저 식물학자들이란 꽃다발 하나도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이란다.” …… 식물학자들도 그래서 보고서를 꾸몄지요. 아무도 알아먹지 못하는 과학용어들로 꽉 채워서 쓴 보고서였는데 ..  (75∼76쪽)


 하루일을 마치고 도서관 문을 닫습니다. 어질러진 책을 가지런히 맞추고 쓸고 닦고 빈 그릇과 물잔을 씻아서 말려 놓습니다. 옆지기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렇게 큰 간판까지 밖에 내걸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여기에 와서 책 안 파느냐고 물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서관하고 분위기가 달라서 그렇지요’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동네사람들도 제가 도서관을 꾸리는 줄을 진작부터 알고는 있으시지만, 동네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서관은 ‘독서실’입니다. ‘도서관 = 독서실’이고, 이러한 독서실은, 중고등학교 수험생이나 고시 공부 하는 사람들이 와서 칸막이책상에서 문제집 푸는 곳입니다.

 “바쁘실 테지만, 가끔 책도 보면서 마음도 쉬어 보셔요.” 하고 동네 아저씨며 아주머니며 붙잡아 보지만,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한가할 때 올게요.” 하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 “저 동물들은 어디서 왔어요?” 티쭈가 경비원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먼 데서 왔다. 아프리카, 아시아 ……, 나도 모르는 그런 데서 실어 왔다.” “이리로 데려오기 전에 데려와도 되느냐고 동물들한테 물어 보았어요?” 경비원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자기를 놀린다고 투덜거리면서 멀리 사라졌습니다. 티쭈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우선 저 경비원 아저씨는 자기가 맡은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이니 지금의 직업을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  (108쪽)


 우리 나라에 ‘어린이 도서관’은 몇 군데 없습니다. 뜻있는 단체에서 애써서 열어 놓은 곳(인표어린이도서관)이 남달리 있고, 텔레비전 영향으로 군데군데 생기기도 하지만(기적의 도서관), 정부에서 세우는 어린이 도서관이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새로 한 곳을 세우기는 했습니다만). 지역자치단체에서 세운 어린이 도서관이 따로 있습니까. 시청과 구청에서 다스리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습니까(그래도 요즘은 구청이나 동사무소 한쪽 자리를 터서 어린이책 몇 천 권 꽂아 놓은 도서관을 꾸며 놓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어린이 도서관도 없는 이 나라에는, 푸름이(청소년) 도서관도 없습니다. 푸름이 도서관도 없는 이 나라이지만, 여느 일꾼이 찾아갈 만한 도서관조차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새벽바람으로 일터에 가서 저녁 늦게 일마치고 집으로 오는 일꾼이 찾아갈 수 있는 도서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밤늦게 문을 열어 주거나 새벽 일찍 여는 도서관이 있습니까. 쉬는 날도 따로 없이 꾸려 나가는 도서관은 어디에 자리잡을까요. 또한, 도서관에서 갖추는 책은 어떤 갈래 책들입니까. 어떤 신문을 갖추어 주고, 어떤 잡지를 받아들여 주고, 어떤 이야기로 우리들 마음밥을 선사해 주고 있습니까.


 (2) 또다른 어른과 우리 세상


 아침에 잠깐 성당 나들이를 갑니다. 이제 예비자교리를 마치고 다다음주에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하여 저한테 어떤 믿음이 깊다거나, 새로워지는 믿음이 생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여느 믿음이들 길을 걸어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해 예순아홉인 동네 할아버지가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주까지는 수녀님한테 배웠고, 마지막 배움은 믿음이 무척 깊은 할아버지가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며 살아가기’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 “책만 보면 졸음이 오니까 책을 아예 없애 버리자구. 우리 아들이 다른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니까, 새로운 교육제도로 키워 봅시다. 사물을 눈으로 직접 보면서 배우도록 하겠소. 조약돌이 무엇인지, 정원이 무엇인지, 들과 밭이 무엇인지, 일일이 보여주도록 합시다. 그밖에 티쭈가 어른이 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설명해 주도록 합시다. 결국 우리들의 생활 자체가 가장 훌륭한 학교인 거요. 결과는 두고봅시다” ..  (40쪽)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다가, 당신이 얼마 앞서 신협(신용협동조합) 부이사장 선거에서 떨어졌다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중에 신부님하고 이야기를 하니, 신부님은 할아버지가 부이사장 선거에서 떨어지기를 바라셨답니다. 할아버지로서는 부이사장이 되면 연봉 3600만 원을 받고, 동네 성당 할아버지들한테 짜장면도 사 주면서 어깨도 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다는데, 이러한 우쭐거림이 자칫 교만으로 흐를 수도 있었으리라고, 그래서 정작 당신이 당신 딸아들과 친구들한테 미안하다고 할 판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들 자기를 달래 주려고 애쓰더라고, 그럽니다.

 저는 빙그레 웃으면서, “잘 떨어지셨네요.” 하고 말씀드립니다. 일흔을 앞둔 할아버지로서는, 신협 부이사장이 되어 한 달에 삼백만 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적지 않은 돈으로 이래저래 베풂도 하고 선물도 하고 그럴 수 있지만, 그만한 돈을 받는 만큼 그곳에서 당신한테 고달픈 데까지 시간과 마음을 쏟으면서 바쳐야 합니다.

 동네 이웃인 할아버지와 당신 딸아들과 손주한테 들이면 좋은 것은 ‘돈으로 나누어 주는 베풂’이 아니라, 당신 마음과 몸으로 아껴 주는 사랑이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뜻에서 할아버지가 그 선거에서 떨어진 일은 잘된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 티쭈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에 무스타슈 할아버지는 천천히 정원을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날 비로소 티쭈는 왜 정원사 할아버지가 평소에 그렇게도 말을 적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할아버지는 꽃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 무스타슈 할아버지는 그렇게 꽃송이 하나하나의 건강을 살피면서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  (48∼49쪽)


 할아버지는 신학교 시험에 다섯 번 떨어지고 수도원에도 들어가 지내기도 했지만, 몸이 아파서 끝내 신부가 되는 길을 접어야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광주 살레지오 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때 여름철 모기를 몰아낸다며 디디티를 기숙사 방에 잔뜩 뿌려서, 여느 때에도 썩 좋지 못하던 허파가 더 나빠져서 폐렴으로 번졌고, 결핵까지 앓아서, 광주에서 연평도까지(50년대까지 연평도에서 사셨다고 하네요)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내내 울며 손수건을 적셨다고 합니다.

 신부가 되지 못하면서 곧바로 혼인을 하게 되었고, 딸아들을 다섯 두었는데, 이 가운데 둘째 딸은 수녀로, 셋째 아들은 신부로 컸다고 합니다. ‘당신은 신부가 될 그릇이 못 되어 하느님이 물리치고, 당신 아들이 당신보다 신부가 될 그릇으로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받아들여 주지 않았느냐’는 말씀을 붙이시는데, 이 말씀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 얼굴이 퍽 맑다고 느낍니다.


.. 하늘색 꽃들로 된 둥근 천장이 보기 흉한 판자집을 가려 주었습니다. 잔디가 난 길 주변은 온통 제라늄으로 울타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너무나 흉해서 지금껏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이 비참한 빈민가는 이제 미르포왈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가 되었습니다. 미술관을 구경 오듯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  (87쪽)


 늘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은, ‘그래, 최종규라는 사람은 부지런히 책을 사고 읽어야 해’라는 말로 들립니다. 또한, ‘글 한 줄을 쓰든 두 줄을 쓰든, 좀더 깊이 곰삭이며 되뇌이는 가운데 알뜰하게 담아내야 해’라는 말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서둘러서 읽는 책은 속알맹이를 제대로 못 새기기 마련이고, 바쁘다며 부랴부랴 쓰는 글은 나중에 크게 고쳐서 다시 써야 하니 애먼 시간만 버리는 셈’이라는 말로 파고듭니다.


.. “자, 티쭈, 오늘 무얼 배지? 의학에 대해 뭘 알게 됐니?” “저는요, 슬픈 마음을 치료하는 데에 의학은 별웠로 힘을 못 쓴다는 걸 배웠어요. 병을 낫게 하려면 살고 싶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의사 선생님, 희망을 주는 알약은 없나요?” 모디베르 박사는 저런 꼬마한테서 그처럼 슬기로운 말을 듣게 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사가 맨 처음으로 알아야 할 것을 넌 혼자서 터득했구나.” “그럼 두 번째로는 무얼 알아야 하나요, 선생님?” “환자들을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많이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거야.” 의사 선생님은 티쭈에게 사탕을 한 주먹 집어 주시고는 공책에 좋은 점수를 써 주셨습니다 ..  (96쪽)


 할아버지와 나누는 이야기를 마칩니다. 할아버지는 성당 뒷문에서 왼편으로 걸어갑니다. 저는 오른편으로 걸어갑니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집니다. 해가 나올 듯 말 듯합니다. 천천히 내디디는 걸음을 멈추며 사진을 한 장 두 장 담습니다. ‘경축, 송림초등학교 주변 정비사업 지정’을 알리는 걸개천, ‘정비사업 설명회’를 알리는 걸개천이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학교 둘레 산비탈 골목집을 뜯어내어 아파트를 짓겠다는 일인데, 이 일은 ‘도시정비’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사람이 살기 나빠서 하는 ‘정비’가 아니라, 높은자리 분들이 보기에 나빠서 한다는 ‘정비’입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집을 ‘정비’한다는 일은 왜 모두 ‘30∼40층짜리 아파트 짓기’로 이어질까요. 그나저나, 30층이 넘는 아파트를 초등학교 울타리와 마주한 자리에 짓는다고 한다면,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시끄러워서 어떻게 공부하지요? 더구나, 학교 둘레 골목집에 사는 아이들이 바로 이 송림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이 아이들은 자기 집이 재개발이 되면 어디로 옮겨가서 살아야 하는가요. 아이들은 나중에 ‘도시 정비사업’이 끝나면 자기 고향 동네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 짐나스티크가 말했습니다. “울어야 한다. 어른들은 우는 걸 참지만, 그럼 안 돼. 눈물이 마음속에서 얼어붙어 버리거든. 그러니까 어른들은 마음이 돌처럼 딱딱하지.” ..  (162∼163쪽)


 사진기를 거두어들이고 걷습니다. 길에 쭈그려앉아서 시멘트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내민 민들레를 봅니다. 어느새 어른 손목 만한 굵기로 자란 꽃나무를 봅니다. 이 조그마한 풀과 나무는 하루아침에 삽날에 잘려나가며 아무 자취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한 번 파헤친 우리 삶터를 돌이킬 수 없듯, 한 번 줄기가 꺾이고 뿌리가 파헤쳐진 들풀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길로 가고 있는가 생각해 보다가,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앞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3) 싸움, 죽임


 집으로 돌아와 버섯감자끼개를 끓입니다. 어제 송현시장에 갔더니 버섯 담은 작은 상자 둘에 천 원에 팔기에 샀습니다. 엊저녁에 한 통 절반을 넣은 버섯국을 끓여서 먹고 오늘 낮에도 절반을 넣은 버섯국을 감자 두 알과 양파 한 알을 송송 썰어서, 된장 하나만 풀어서 끓여먹습니다.

 밥을 먹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소고기 하나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가 벌어집니다. 고기소가 되는 소한테 몸에 나쁜 병이 깃들인다면, 소 아닌 다른 유전자조작 먹을거리는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키운 소뿐 아니라 한국에서 키우는 소는 어떠할지 궁금합니다. 한국땅에서 살아가는 소라고 하여 여물을 먹으면서 크고 있을는지요. 소 아닌 돼지는 어떠하지요. 사료가 아닌 메뚜기나 애벌레를 먹으면서 크는 닭이 있는가요.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거두어들이는 푸성귀는 얼마나 될까요. 쌀과 보리와 수수와 조와 율무와 콩은 얼마나 비료와 농약에서 홀가분한지요. 지금 우리 밥상에 올려지는 먹을거리 가운데 ‘유기농까지 바라지 않아도’ 깨끗하다고 할 만한 먹을거리로 무엇을 손꼽을 수 있을까요.


..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나이 이후로 티쭈는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티쭈야, 우리 집 장사는 재미가 좋은 장사란다. 대포는 우산이나 밀짚모자 같지가 않거든. 우산이란 날씨가 좋으면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고, 밀짚모자란 비오는 날이면 진열장 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데, 대포는 날씨가 어떻든 간에 팔리는 물건이란다.” ..  (26쪽)


 마시는 물은 얼마나 깨끗하며, 숨쉬는 바람은 얼마나 싱싱한지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새로운 손전화 기계가 멋들어져 보인다고 느끼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새로 나오는 옷이 예뻐 보인다고 느끼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싱싱한 바람을 들이쉴 수 없습니다.

 한 차례 비바람이 지나간 하늘은 살짝 맑아졌습니다.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 사이사이로 해가 비칠 때마다 올려다보면 파란빛이 보입니다. 그러나 구름이 모두 걷힌 뒤 하루만 지나도 파란빛은 잿빛으로 덮입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여 날마다 타고 있을 자가용과 버스에서 내뿜는 배기가스가 하늘을 다시 덮을 테니까요.


.. 무스타슈 할아버지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전쟁에 대해선 할 얘기가 아직 더 있다. 요리하는 아줌마 아멜리는 말이다, 전쟁으로 자기 아들을 잃어버렸단다. 팔을 잃은 사람, 다리를 잃은 사람, 정신을 잃은 사람도 있지. 전쟁이 나면 모두들 뭔가를 잃어버리게 돼.” ..  (117쪽)


 미국은 더 많은 석유를 얻으려고 전쟁을 서슴지 않고 일으켰습니다. 한국사람 가운데 이 싸움판을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봅니다. 미국은 더 많은 석유뿐 아니라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려고 유전자조작 먹을거리를 세계 곳곳에 내다 팝니다. 한국땅은, 미국이 달러를 벌어들이도록 하는 저잣바닥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을 머리속에 새기고 있으면서도, 더욱이 촛불집회에 나가 정권을 꾸짖으면서도, ‘한국전쟁 때 우리를 지켜 준 고마운 나라’라는 생각을 이어나가는 분이 제법 많습니다. 참말로 미국은 남녘나라 사람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총칼과 탱크와 전투기와 군함을 몰고 이 땅에 찾아왔습니까.


.. “왼나라도 우리 물건을 사 주는 손님이거든.” 미르포왈의 대포들은 그리하여 이쪽저쪽으로 편이 갈라져서 서로 맞대고 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쪽 정원과 저쪽 정원이 함께 부서져 버릴 것입니다. “그게 바로 장사라는 거야.” 므슈 트루나디스가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 장사란 것 아주 나쁜 짓이네요!” “뭐라고?” 쇠망치 소리 때문에 티쭈의 말이 들리지가 않았으므로 므슈 트루나디스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면서 물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장사는 아주 나쁜 짓이라구요. 왜냐하면 …….” 그 순간 처얼썩! 하고 따귀가 날아들었습니다. 오른나라와 왼나라의 싸움이 갑자기 티쭈의 뺨에까지 퍼졌던 것이었지요 ..  (127쪽)


 (4)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라는 이야기책


 모리스 드뤼옹(모리스 드리용) 님은 1957년에 《초록색 엄지 소년 티쭈》라는 이야기책을 써내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나쁜가를 아이들한테 일깨워 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러니까 1950년대에만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엄청난 싸움판 아픔이 채 아물기 앞서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 가슴에 대못이 박히고 눈물과 생채기가 얼룩진 때입니다. 이때 우리 나라는 어떠했을까 떠올려봅니다. 1950년대를 살지 않았으나, 신문으로, 또 책으로, 또 그때를 살았던 어르신들 말씀으로 짚어 보건대, 우리들은 큰 싸움판 갈무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으나, 서로가 서로를 더욱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하면서 ‘때려잡자’는 외침이 온나라를 휩쓸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는 ‘때려잡자’는 외침이 살아남아서 큰힘을 내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도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통일보다는 합병을, 평화보다는 전쟁을 더 사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 만약에 우리가 커서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틀에 박힌 생각들은 자라나는 우리 머리속에 아주 쉽게 들어앉아 버립니다 ..  (14쪽)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평화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는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동네나 마을에서는 아이들한테 믿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한테 나눔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을 가르칩니다. 오직 점수를 가르칩니다. 다만 돈을 가르칩니다. 그예 이익을 가르칩니다.


.. “감옥이 저렇게 보기 싫게 생기지 않았으면, 아마 도망 가고 싶은 생각이 덜 날 텐데요.” 이제 므슈 트루나디스의 볼도 귀만큼이나 빨개졌습니다. 그는 ‘이상한 아이로군. 교육을 죄 다시 시켜야겠어’라고 생각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감옥의 죄수는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아야 돼.” “그럼 나쁜 점을 고치려고 저런 곳에 두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저런 감옥에 둔다.” “감옥이 저렇게 보기 싫게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쁜 점은 훨씬 빨리 고쳐졌을 거예요.” ..  (61쪽)


 우리들 살고 있는 이 한국땅에 천사가 내려와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우리들 살고 있는 이 한국땅에야말로 천사는 벌써부터 내려와서 우리 이웃으로, 또는 우리 아이로, 또는 우리 할머니로, 또는 우리 동무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둘레에 고운 천사들이 그득그득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우리들은 눈이 멀어서 천사를 못 알아보고 귀가 먹어서 천사들 외침을 못 듣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티쭈가 풀빛 엄지손가락을 꾹 누르며 풀이 자라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나무가 크도록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 느끼지 못하면서, 더 많은 돈과 더 큰 이름과 더 센 힘을 바라면서 우리 목숨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심지만, 어른들은 전쟁을 사고파는 나라, 이러한 나라는 미국만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도 사랑을 나누지 않고 전쟁을 사고팔며 이익이 된다고 하하호호 웃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한민국 어른입니다. (4341.5.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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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원과 다시다


 ‘미원’과 ‘다시다’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조미료가 있습니다. 화학조미료지요. 일본에서 만든 조미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만들고, 상품광고마저도 일본 광고를 고스란히 베껴서 내보내 왔습니다. 1998년에 신문방송학 공부를 하면서 본 일본 조미료 회사 광고와 한국 조미료 회사 광고가 하나부터 열까지 똑같고, 노래며 광고말이며 어느 하나 안 베낀 곳이 없는데, 이와 같은 광고가 한국에서는 ‘광고상’까지 받는 형편이었으니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미원이며 다시다며, 또 맛나며, 또 새로운 이름으로 나오는 숱한 조미료며,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끊임없이 엄청나게 사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찌개를 끓이고 국을 끓입니다. 조미료가 있기 앞서까지는 된장과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보았으나, 조미료가 싼값으로 퍼져나가자, 모두들 된장과 소금과 간장을 뒤로 밀쳤습니다. 집집마다 다 다른 손맛과 입맛으로 우리 몸을 북돋우던 흐름이 하루아침에 끊겼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나라에서 라면공장 키우는 정책을 펼치며, 사람들 밥상에 라면이 부쩍 자주 오르게 되었고, 이제 라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느끼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라면에는 ‘스프’가 들어가는데, 이 스프는 미원이나 다시다보다 더 자극이 센 조미료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제까지, 찬장에 미원이나 다시다나 맛나나 라면스프가 없는 집을 거의 못 보았습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밥과 국을 하는 손길을 찾는 일은 놀이터 모래밭에서 천 원짜리 캐내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동네 이웃집에 놀러가서 밥 한 그릇 얻어먹게 될 때면 일찌감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고 비손을 올려야 합니다. 조미료덩이를 배속에 집어넣고 삭여야 할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지만, 싫은 얼굴을 할 수 없습니다. 세탁기 안 돌리고 텔레비전 안 본다는 대목 하나만으로도 ‘미친 놈’ 소리를 듣고 있는데, 조미료 하나 안 쓰고 소금과 된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해서 찌개를 끓여서 먹는다고 하면, ‘이 동네를 떠나 산골구석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눈초리를 받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꼭 물똥을 누거나 속이 뒤집어져서 괴로웠지만, 어디를 가도 하도 커피를 타 주기 때문에 차마 개수대에 흘려보내기만 할 수 없어서 억지로, 어거지로 마시고 했더니 이제는 몸에서 조금 받아 주기는 합니다. 토마토나 딸기 대접을 받을 때, 그냥 꽁다리까지 우걱우걱 씹어먹습니다. 설탕은 안 묻히고 먹습니다. 그러나 ‘그럼 맛없어!’ 하면서 일부러 설탕을 푹 묻혀서 이쑤시개로 찍어서 제 손에 쥐어 주십니다. 능금이나 배를 먹을 때 껍질을 안 벗기고 속까지 모두 먹고 싶으나, ‘맛없어! 그걸 왜 먹어!’ 하면서 쓰레기통에 얼른 집어넣으십니다.

 눈물이 핑 돌지만, 가슴이 쓰리지만,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옆지기와 저는 배추 날것 그대로 물에 씻어서 먹기를 좋아하나, 싱그러운 열매는 껍질과 씨까지 오독오독 깨물어 먹기를 즐기나, 집에 찾아온 손님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라도 능금 껍질을 벗겨서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껍질 안 벗긴 것을 속까지 냠냠짭짭 씹어서 먹지요.

 여러모로 알아보고 생각하고 길찾기를 해 본 끝에, 우리들이라도 도시에서 똥오줌을 거름으로 삭혀서 집에서 푸성귀를 기른다든지, 아니면, 만들어 놓은 거름을 동네 꽃밭에라도 뿌려 줄까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동네이웃하고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고 신날 텐데, 옆지기가 이웃 아주머니한테 들어야 하는 소리는 장난이 아닙니다. 어느 만큼 어림하고 있었습니다만,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이 아주 남다른 삶도 아닌데, 당신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고작 스무 해나 서른 해 앞서만 해도 다들 이렇게 사셨는데, 그리고 당신들 아주머니 아저씨를 낳아 기른 아버님 어머님은 모두 그렇게 살아오셨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모두들 거리낌이 없는 모습과 매무새로 그렇게들 이 땅에서 어울려 왔는데.

 무거운 마음을 풀고자 동네 막걸리집에 갑니다. 동네 막걸리집에서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51%인데 어쩌고 ……, 식량위기가 저쩌고 …….”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뭐라고?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51%라고? 뭔 소리여? 우리 나라 식량자급률이 25% 밑으로 떨어진 지가 언제인데 헛소리를 늘어놓고들 있나? 아니, 헛소리이건 아니건, 그렇게 자기들도 우리 나라가 ‘식량 위기’인 줄 안다면, 이러한 이야기를 크나큰 특집으로 삼아서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깨우치고 몸을 움직여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하지 않나?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도, 아저씨들도 모두모두 집에서 저 텔레비전 소식을 들으실 테지요. 식량 위기가 어쩌고, 자급률이 어쩌고 ……. 그런데 우리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 가운데 몇 분쯤이나마, 이런 이야기를 당신들 살갗으로 받아들이면서, ‘미원’과 ‘다시다’로 물들이고 있는 삶을 털어내도록 움직여 주실 수 있을까요. (4341.5.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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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ms 2010-07-12 10:41   좋아요 0 | URL
다른 이유로 검색하다가, 즉 우연히, 들렀습니다.
저도 멸치는 대가리 내장(?) 다 먹는 편이고
명태도 새우도(?) 대가리까지 먹지만
사과 내장은 그 사과씨의 독특한 맛 때문에 ... 네 사과 뼈는 맛이 괜찮습니다.
또 하나 사과 배꼽(꽃자리)는 맛이 별로 입니다.
맛이 별로인 것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과씨는 근거가 부족하니
사과배꼽도 마찬가지겠네요.
포도씨도 씹자니 삼키자니 ... 포도 껍질도 어느덧 벗기는 게 씹는 것보다 편해졌고 ...
딸기 꼭다리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네요. 딸기는 흔하지도 않아서였는지 ...
요즘은 애들과 애엄마랑 먹을 때 기준이 내가 아니라 더더욱 ...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