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관찰 일기
클레어 워커 레슬리.찰스 E. 로스 지음, 박현주 옮김, 최재천 감수 / 검둥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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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연뿐 아니라 삶터까지 망가뜨리는 우리들인데
 [잠깐 읽기 7] 클레어 워커 레슬리+찰스 E.로스, 《자연 관찰 일기》



- 책이름 : 자연 관찰 일기
- 글ㆍ그림 : 클레어 워커 레슬리, 찰스 E.로스
- 옮긴이 : 박현주
- 펴낸곳 : 검둥소(2008.5.21.)
- 책값 : 2만 원



 (1) 한국땅 도시에 남은 자연은 골목길


 옆지기와 함께 동네 골목길을 거닐 때, 꽃그릇 소담스레 가꾸고 있는 집 앞에 오래도록 머물곤 합니다. 잠깐 쭈그려앉아서 꽃잎을 만지기도 하며, 꽃 가까이 얼굴을 내밀어 냄새를 맡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여기에서 그림 그려도 좋겠다”고 말하고, 저는 ‘그 자리에서 여러 모습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다음에 이 앞을 다시 지날 때면 또 한 번 사진을 담습니다. 겨울날, 꽃그릇이 텅 비었을 때부터 봄날, 새싹이 돋을 때와 여름날, 차츰 줄기가 물이 오를 때에다가 가을날, 잎이 지고 떨어질 때까지, 네 철에 따라 같은 골목을 오가며 꽃을 구경하고 느끼고 사진으로 담습니다.


.. 땅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설사 부분적으로 포장이 되어 있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라. 그리고 개체들에 가까이 다가가라. 그러면 그곳에서 나뭇잎, 꽃, 곤충, 바위, 혹은 지렁이 똥을 손쉽게 관찰할 수 있다 ..  (50쪽)


 처음 골목마실을 할 때에는 꽃그릇에 그렇게까지 눈길을 두지 못했습니다. 아니, 눈길을 안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어릴 적 뛰놀던 골목이 어디였을까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지난날과 오늘날 얼마나 바뀌거나 그대로인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옛동무가 아직도 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고, 천천히 거니는 우리를 알아볼 옛이웃이 아직 있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골목길에 골목꽃이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건만, 발걸음을 멈추고 지긋이 바라보고 마음에 담을 줄 몰랐어요.

 어쩌면, 지난 몇 해 사이 뺑소니 자전거 사고 때문에 팔다리가 다쳐서 자전거도 많이 망가지고 몸도 여러모로 다치지 않았더라면, 인천에서 서울로, 또 인천에서 수원으로, 또 인천에서 목포로 부지런히 자전거로 내달리기만 하며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거님길과 골목길은 자전거로 내달리기에 알맞지 않으니, 자전거 타기만 즐긴다면 자동차 달리는 찻길로 똑같이 달렸겠지요. 그러면서 더더욱 골목빛깔과 골목맛과 골목냄새는 못 느끼었지 싶어요.

 외려, 자전거를 타기 힘든 몸이 된 보람이라고 할까요. 두 다리로만 걸으며 돌아다니게 된 뒤로, 자전거로는 안 갔을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고, 까마득한 계단골목을 거닙니다. 손수레 하나 지나갈 틈이 없어서, 이 골목에서 사는 분은 짐을 옮길 때마다 애먹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골목집 사람들은 집옮기는 일이 드뭅니다. 재개발이라 하며 쫓아내기 앞서까지는 한 집에서 오래오래 머뭅니다. 한 집에서 서른 해를 살고 쉰 해를 사니, 구태여 골목이 넓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볼일을 두 다리로 걸어서 오가면서 보시니 굳이 자동차가 안 들어와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살고 있으며 다니고 있는 골목 문화는, 우리들 맨몸뚱이로 가꾸는 삶터에서 시나브로 일구어 왔구나 싶더군요. 대단한 사람들이 들여다보아 주지 않아도 되는 삶터이고, 이웃사람과 오순도순 나누면 넉넉한 삶터인 한편, 이웃사람이 자주 놀러오지 않아도 스스로 즐거워서 일구는 삶터입니다.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한 동네 어느 틈바구니에 한 포기 두 포기 풀이 돋으면서 이윽고 풀밭을 이루게 되듯, 개발업자와 공무원이 건드리지 않으면 골목사람 스스로 골목길을 살뜰하게 아름답게 손질하고 보듬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옮겨다니는 동네하고, 사람들이 거의 옮겨다니지 않는 동네는, 몇 분만 걸어 보면 금세 알겠더군요. 토박이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동네에는 어디에나 골목골목 꽃그릇이 가득 놓여 있습니다. 그닥 크지 않은 플라스틱통에 나무를 심어 기릅니다. 가로세로 1미터 될락 말락 한 흙땅에서 감나무와 앵두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서 스무 해도 서른 해도 야무진 열매를 맺는 모습을 봅니다. 돈 주고 사먹는 감이 아닙니다. 기나긴 세월을 날마다 물을 주고 북을 돋우고 거름을 내면서 가꾼 감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먹습니다.




.. 종종 스케치는 사진으로는 포착이 불가능한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해 준다. 자신이 관찰한 것들에 색다른 확실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 단순하건 복잡하건 하루에 한 가지씩 비범한 이미지를 찾아보자.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쓸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에 간직한다 … 내 일기는 내 삶과 내가 사는 곳을 반영한다 ..  (89, 99, 116쪽)


 날마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고마운 사진을 얻습니다. 당신들이 온삶을 바쳐서 땅에 기대어 살아온 손자취와 발자취를 고맙게 사진 한 장 찍으며 얻습니다. 이 모습을 저는 사진으로 담습니다만, 좀더 긴 시간과 품을 들여서, 걸상도 갖다 놓고 느긋하게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면, 그림을 그리면서 골목집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세상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면, 그림에 담는 멋과 깊이는 한결 그윽하고 멋스럽지 않으랴 싶어요.

 다른 사람보고 하라고 하기보다, 저부터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 들고서 작은 걸상 마련하여 앉은 다음, 골목집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본다면, 사진찍기와는 사뭇 다른, 또 사진찍기로는 미처 못 보던 모습까지 보는, 여기에다가 골목집 사람들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까지, 그림예술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 하루에 10분을 일기에 투자하면 봄이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는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 여름이면 세상은 풍요로워지고 생명으로 가득 채워진다. 모든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몇몇 새로운 장소들을 체험하기도 하고, 고향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다른 종류의 생명들을 관찰할 기회가 올 수 있다 … 우선 마을 주변을 산책하면서 가을의 징후들을 관찰하고 그려 보자 ..  (119, 136, 155쪽)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란다면, 손아귀 힘을 길러서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쥘 수 있으면, 세 식구가 걸상 하나씩 들고 골목마실을 하다가 한 자리씩 잡고서 나란히 앉아 골목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어 봅니다. 또는, 옆지기는 그림을 그리고, 아이는 놀고, 저는 가까운 이웃 골목을 두루 돌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겠지요.




 (2) 《자연 관찰 일기》라는 좋은 길잡이책을 덮으며


 우리 집과 이웃으로 지내는 앞집 헌책방 아주머니는 ‘요새 들어 더더욱 헌책방 하기 싫어진다’는 말씀을 하곤 합니다. 저라도 힘겨워서 그만두고픈 생각이 하루에도 수없이 들리라 봅니다. 날이 갈수록 책읽는 사람이 줄기도 하지만, 책읽는 사람이 줄어드니까 ‘읽히는 책’이 줄고, 읽히는 책이 줄어드니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이 줄어듭니다. 사람들 책읽는 매무새는 ‘다양한 책 살펴 읽기’가 아니라 ‘이름난 책 너도나도 따라 읽기’에 가까워서, 헌책방에 들일 수 있는 책 가짓수가 줄어든다기보다 판에 박히게 됩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 사회 틀거리를 뜯어고치지 않거든요.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핑계로, 잘못된 틀거리를 바로잡지 않는 가운데, 올바른 틀거리를 북돋우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입시지옥을 나무라지만, 몸으로는 입시지옥 한 배를 탑니다. 썩은 정치꾼 하나를 꾸짖는 입은 있지만, 비슷비슷한 정치꾼한테 표를 주거나 아예 투표권을 버리는 우리 손입니다. 생각있다는 사람들조차 1회용품 쓰기를 줄이지 않고, 자동차 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물 한 방울 적게 쓰는 매무새는 바랄 수도 없습니다. 밥그릇 깨끗하게 비우기는 운동이 아니라 삶이어야 하는데, 삶이 삶답게 제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가운데 정치싸움에 지나치게 쏠려 있습니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 책읽는 매무새는 몇몇 갈래에 너무 매달려 있는 나머지, 더 넓고 깊게 껴안지 못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올바르기는 합니다만, 우리 삶은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내놓을 쓰레기가 없도록 가꾸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날마다 치솟는 기름값이 걱정이라서 기름값이라도 벌어야 한다지만, 기름값을 번다고 하면서 몸을 바치고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중고등학생한테 과외를 시키고 돈을 벌면서 사회운동을 하지는 않습니까. 마치, 미국 여느 시민들이 군수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자기 생계를 지켜야 한다고 둘러대듯이.


― 자연 관찰 일기 쓰기는 자연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을 마주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기도 하고. 막상 지렁이를 그리고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은 더 이상 지렁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28쪽)
― 자연 관찰 일기에 풍경을 멋지게 담으려고 하지 말라. (236쪽)
― 살아 있는 동물을 그리면 동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241쪽)
― 늘 그렇듯이 학생들은 그리기를 하면서 숲에 아주 익숙해진다. (253쪽)


 삶을 바꾸지 않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드높은 생각과 거룩한 생각을 훌륭한 책을 읽고 뛰어난 어른이나 스승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 지금 모습을 바꾸어 내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느낍니다. ‘생활철학’이나 ‘생활투쟁’이 아닌 ‘삶’이라고 느낍니다. 지금 자기 삶을 다부지게 붙잡지 못하는데, 무슨 사회운동이 있고 무슨 교육운동이 있으며 무슨 촛불모임이 있겠습니까.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서 크게 솟구치는 물결은 뒤잇는 더 큰 물결에 잡아먹힙니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기 마련이고, 내려갔으니 올라갈 구멍을 찾게 됩니다. 여태 우리 사회는 우리 삶을 밑바닥으로 깔아뭉개며 짓이기고 있었기에, 응어리진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터져나오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목소리는 왜 터져나왔을까요. 큰 발판이 있어서 터져나오게 되었습니다만, 큰 발판을 넘어서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 곪아 있는 부스럼과 고름과 생채기를 볼 수 있습니까.


.. 우리들 대부분은 도회지에서 산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환경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쉬운 곳이 바로 도시 지역이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햇살의 따스한 온기를 느껴 보는 것도, 혹은 지붕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는 걸 실제로 알아차리는 것도 잊어버린다. 농촌 지역에 살거나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조차 그저 잠시라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되어 본다거나 관찰해 볼 시간을 내는 걸 잊어버린 채 차를 들락거리느라 달음질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  (39쪽)




 ‘우리를 둘러싼 사랑스러운 자연 삶터를 눈여겨본 다음, 그림으로 담아내면서 자기 삶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이야기책 《자연 관찰 일기》를 읽는 동안,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또는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미국 나름대로 걱정이 있고, 유럽에서는 유럽 나름대로 근심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일본 나름대로 끌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미국 유럽 일본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대껴야 하는 걱정도 근심도 끌탕도 없습니다.

 식민지를 두고 식민지를 만들고 식민지를 갉아먹으면서 늘리고 키운 살림살이로, 문화를 한다며 예술을 한다며 창작을 한다며 기부와 봉사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네들입니다.

 옐로우스톤은 어마어마한 넓이로 국립공원이 되지만, 한국에서 북한산과 지리산은 이름뿐인 국립공원입니다. 허울은 좋은 국립공원인데, 나라님과 나라사람 어느 누구도 국립공원을 아끼거나 지키거나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가꾸며 보듬는 자연 삶터는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돈을 들여서 새로 짓고 만드는 수목원과 공원만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이야기하는 그림쟁이들이 있으며, 자연 그림책과 도감은 꾸준하게 세상에 나옵니다. 그림책과 도감에 나오는 목숨붙이를 보기란 아주 어려운 노릇인데. 자연 목숨붙이가 깃들일 자연 삶터는 아파트 재개발과 공장터와 새 찻길터로 무너지고 있는데. 끙끙 앓는 목소리로 숨막혀 울고 있는 이들이 한쪽에 버젓이 있는데.


.. 일기 쓰기는 어떤 장소에 대한 진정한 감각, 그리고 생명에 대한 온전한 시야의 개발을 향해 떠나는 개인적인 여정이 될 수 있다 ..  (255쪽)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그윽히 바라보고 살피면서 그림일기를 써 나가려는 분들한테는 훌륭하게 도움이 될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또는 퍽 익숙하다고 할 만한 사람한테까지도 좋은 길잡이가 되는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미술대학에 가는 어린 학생이 많고, 미술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많으며, 그림그리기로 밥벌이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형편을 돌아본다면, 이 모든 사람한테 제법 도움이 될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더구나, 골목길 꽃그릇과 텃밭을 그리는 데에도 알뜰살뜰 도움이 되는 《자연 관찰 일기》예요. 이처럼 나긋나긋하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펼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붉은여우 한 마리가 모래언덕에서 나와 포장도로를 건너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를 지켜보더니 습지대를 가로질러 간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바라본다.(120쪽)”는 말처럼 뭇 목숨붙이를 사랑하고 돌보려는 따순 마음결까지 느낄 수 있는 《자연 관찰 일기》입니다. 그렇지만 책을 처음 펼치던 때부터 덮는 이때까지 숨이 막힙니다. 제가 꿈을 꾸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배가 고프고 울고 싶습니다. (4341.7.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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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동화 보물창고 4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56 ― 지식은 많으나 빛줄기는 없는 가난뱅이 한국
 : 구드룬 파우제방,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책이름 :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글 : 구드룬 파우제방
- 그림 : 최혜란
- 옮긴이 : 함미라
- 펴낸곳 : 보물창고(2005.1.25.)
- 책값 : 9500원



 (1) 서울사람


 사진기와 렌즈를 잃어버렸습니다. 잊고 있었던 우체국 보험을 손해를 무릅쓰고 깬 다음, 어머니와 형한테 도움을 얻으면서 겨우 새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합니다. 인천에서는 물건을 살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서울로 나들이를 갑니다. 혼자 자전거 타고 후딱 다녀오려고 했으나, 옆지기가 함께 가자고 해서 전철을 타고 갑니다. 누가 보아도 배가 불룩 튀어나온 옆지기는 걸어다닐 때에는 그럭저럭 낫지만, 전철처럼 시끄럽고 흔들리고 딱딱한 자리에 앉을 때면 몹시 고달파 합니다. 더구나, 전철이나 버스라는 대중교통은, 이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이 걱정없이 다니도록 하는 데까지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광고방송이 나오고, 눈 둘 데가 없도록 광고판으로 어지러운 한편, 쉴새없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옮겨다니면서 밀치는 사람, 시끄럽게 전화를 받고 거는 사람, 다리 쩍 벌리고 앉는 사람, 내리지 않으면서 문가에 버티고 있는 사람, 내리면서 뒤에서 미는 사람, 앞에서 먼저 타겠다고 헤치는 사람 …….

 우리들은 모두 어머니 배속에서 열 달을 머물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안 소중한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도 사랑 안 받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 하나 소중하다고 느끼는 만큼 이웃 목숨 하나도 소중하다고까지 깨닫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어인 일인지 퍽 드뭅니다.


.. 우리는 많은 집에 지붕이 없어진 것도 알게 되었다. 다락방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누나와 내가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였다. “롤란트, 너 저 비명 소리 들리니?” 누나가 물었다. 물론 들렸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내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참한 소리였다. 그러나 난 모든 것이 마치 꿈속같이 느껴졌다. 그림처럼 많은 꽃들이 있던 작고 아늑한 도시 쉐벤보른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빨리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 같았다 ..  (31쪽)


 볼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촌에서 인천으로 가는 터라 신도림역을 거치게 됩니다. 앞차를 코앞에서 놓치고 한참 기다렸다가 타서 그런지, 북적거리는 칸에서 우루루 내리고, 우루루 내린 사람은 이윽고 들어오는 ‘동인천 가는 급행’을 타려고 우루루 뛰며 계단을 오릅니다. 뜀박질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을 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이가 자기를 치고 지나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프지 않을지 모릅니다. 자기도 그이를 치고 앞지르거나 다른 이를 치고 앞지르면 될 테니까요.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꽤 많은 사람이 우루루 몰려서 탔는 데에도 조금 빈자리가 보여서 우리가 살짝 마지막으로 탑니다. 이번 차를 보내고 뒷차를 탈까 생각했는데.

 등에 진 가방을 내려서 짐칸에 올려놓습니다. 몸이 홀가분해지기는 했으나, 어린 목숨을 부여안고 있는 옆지기는 힘들어 합니다. 한참 서서 가다가 조금 자리가 비니,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는다고 아기엄마 몸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쭈그려앉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또, 자리에 앉는들, 좁은 틈바구니에서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으니 더 고달플 뿐입니다. 모로 엎드릴 수 있다면 모르되, 전철 걸상은 너무 좁을 뿐더러, ‘노약자나 임산부 지정석’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어르신한테도 아기엄마한테도 아늑하지 못합니다.


.. 아빠는 빵과 우유를 구하러 시내에 나가 보았지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살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갈기갈기 찢어지고 불에 탄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선뜻 구호품을 건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52쪽)


 종로3가에서 사진관에 들른 다음 270번 시내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갈 때에는, 용케 문낮은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문낮은 버스는 서는 자리가 조금은 넓어서 몸이 무거운 사람한테는 그럭저럭 아늑합니다. 버스기사가 여느 버스보다 천천히 몰아서 고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빨리 달리기는 빨리 달렸고, 멈출 때에도 확 멈춥니다. 빠르기를 좀더 늦추어도 괜찮을 테고, 다시 움직일 때에도 좀더 느긋할 수 있을 텐데.


.. 나는 누나의 모습에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곧 나는 비명을 지른 것을 후회했다. 내가 놀랐던 것이 누나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몸 색깔이 변하고 반점이 나타난 다음, 누나는 죽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아주 조용하게. 누나는 그냥 그렇게 가 버렸다 …… “운동화 좀 벗겨. 태워 버리기엔 너무 아깝구나. 이제 운동화 같은 건 구할 수도 없는데. 나중에 네가 신어도 되겠어.”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112쪽)


 버스에서 내릴 때, 앞자리에서 내리는 사람과 뒷자리에서 내리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뒷자리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저희만 먼저 내리려고 제 앞으로 끼어들고, 어느 한 사람도 잠깐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앞자리와 뒷자리에서 한 사람씩 내릴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사람만 바보입니다.

 신촌 나들목에서는 건널목으로 건너가기가 까다로워서 땅밑길로 들어갑니다. 옆지기가 뒷간에 들른다고 합니다. 조금 뒤 나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쓰겠다고 합니다. 하긴. 신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뒷간은 고작 몇 칸밖에 안 되고. 그러고 보면 종로3가역도 다르지 않고 동대문역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전철역도 뒷간은 고작 몇 칸만 놓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뒷간 찾기는 보물찾기마냥 어렵습니다.


.. “분유가 무슨 소용이 있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희망이 필요해요. 희망 없이는 아기가 살아서 세상에 태어날 수 없어요.” ..  (158쪽)


 사진기 대리점에 들어갑니다. 미리 부탁한 렌즈를 삽니다. 미리 부탁하는 물건을 사건만, 대리점 사람들이 일을 잘못해서 우리는 그제 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제때 연락을 해 주지 않아 하루를 버리기도 했습니다. 지지난해에 바로 이곳에서 ‘지난주에 잃어버린 사진기를 사면서 회원등록도 했’으나, ‘입력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까지 봅니다. 입으로는 ‘미안합니다’, ‘그때는 저희가 일하지 않아서’ 하고 말하는 직원들이지만, 속으로도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놈은 아쉬워하지만, 아쉬움이 없을 사람들로서는 ‘수많은 일처리’ 가운데 하나로만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 사람들은 찾아낸 물건들을 몰래 숨겨 두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온 쉐벤보른 사람들이 통조림을 얻기 위해 온통 난리를 쳤다. 그 가운데 남아 있는 것들이 지금도 인기 있는 교환 물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가장 힘들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서로 죽이기도 했다 ..  (208쪽)


 사진기 대리점을 나와 뒷길로 빠져서 샛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똑같은 서울바닥이고 신촌거리이지만, 샛골목은 퍽 조용합니다. 샛골목에도 우락부락 오토바이를 몰고 우격다짐으로 자동차를 쑤셔대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큰길을 걸을 때보다 낫습니다.

 노고산동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헌책방 앞에 닿습니다. 한숨을 쉬고 땀을 들이고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새로 장만한 사진기로 사진 몇 장 찍어 봅니다. 퍽 오랫동안 손에 익고 길이 들던 사진기가 아니라 어쩐지 낯섭니다. 예전보다 떨어지는 렌즈를 붙이고 사진을 찍다 보니, 느낌이나 맛이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떨어지는 렌즈로 처음 사진을 배웠고, 떨어지는 렌즈로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내 왔음을 떠올립니다. 더 나은 장비를 쓰면 더 낫습니다만, 덜 떨어지는 장비를 쓴다고 하더라도, ‘장비가 있음’에 기뻐하면서, 이 모자란 장비로 펼칠 수 있는 사진을 생각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2) 인천사람이 벌인 시국미사


 지난 7월 2일, 인천에서도 ‘시국미사’를 열었습니다. 우리 나라 문화재이기도 한 답동성당에서, 인천에서 일하는 신부님 마흔 분 안팎이 모이고, 삼백쯤 되는 신도와 백쯤 되는 여느 사람들이 모여서 미사를 올린 다음, 답동성당부터 동인천역까지 500미터 거리를 느린걸음으로 오가면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에서 이 소식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궁금해서 400원을 주고 사서 펼칩니다. 끝까지 펼치는데 아무런 소식이 보이지 않고, 사설이나 논설에서 한 마디도 안 다룹니다. 그렇다고 인천에서 굵직굵직하게 터지거나 일어나는 소식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맨끝 사진 한 장 넣어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시국미사와 촛불행진’ 기사를 봅니다. 기사에는 신부님이 스무 사람쯤 모였고, 미사를 드린 시민이 이백 사람쯤이라고 나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모임을 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을 뿐더러, 인천 쪽에서 크게 촛불모임을 안 한다고 하더라도 부평역이나 인천시청 앞에서 조촐하게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에서는 ‘서울 쪽 촛불모임’ 기사도 거의 안 다루지만, ‘인천 쪽 촛불모임’ 기사도 거의 안 다룹니다. 그래도, 이날 미사와 행진 때 둘러보니 사진 펑펑 찍는 기자 분들 꽤 많이 보이던데.


.. “누나, 여기도 전부 오염되었다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죽게 되겠지…….” 유디트 누나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누나, 우리가 죽는 거 상상할 수 있어?” “아니, 아직은 못하겠어.” ..  (44쪽)


 미사를 보신 신부님 가운데 한 분도 말씀을 하셨고, 인천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한 분도 말씀을 하셨는데, 두 분은 인천에서 촛불모임을 꾀하기보다는,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들이를 떠나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주말에 서울에서 크게 촛불모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때 함께하며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마땅하고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시립니다. 틀리지 않고 바른 말씀이라고 느끼면서도, 팔다리 한쪽이 저립니다. 반갑고 좋은 말씀이라고 들으면서도, 두 눈을 질끈 감게 됩니다.


.. “하지만 만약 내가 저 사람들처럼 구걸을 하러 다니면요? 아니, 그게 바로 케르스틴이라면요?” 내가 물었다. “나도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밉단다. 하지만 너희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을 구해 줄 수는 없잖니?” 엄마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57∼58쪽)


 인천에서 이래저래 환경운동을 한다는 분이 앞에 나와서 ‘경부운하’ 못지않게 ‘경인운하’가 큰 골칫거리라면서, 이에 따른 환경파괴와 자원낭비와 끔찍한 재앙이 어떻게 닥치는가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 하는 이명박 대통령 꿈은 아직 삽질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 하는 지자체 우두머리 꿈은 일찌감치 삽질을 하며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퍽 문제거리로 기사가 되기도 했는데,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과 견주면 ‘서울과 인천을 잇는 물길’은 코딱지만큼으로 여겨지는지, 요사이는 기사가 되어 나오는 소식을 듣기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워낙 나라 곳곳에 터무니없는 막공사와 날림공사가 넘쳐나다 보니까, 이만한 막공사나 날림공사는 그다지 마음을 안 기울여도 되고, 눈길을 안 두어도 될 만하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민 자유발언’을 해도 된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가 사는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을 꿰뚫어 놓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 넘는 산업도로’ 문제를 이야기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줄 못 느끼면서 내다 버리고 있는 ‘골목길 문화’를 외쳐 볼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 할머니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부모님을 이해해 드려라.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엔 모두들 너무 잘 지내서 아무도 도와줄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사는 걸 잊어버렸단다. 그리고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국가가 맡아서 해결했거든. 그랬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그저 저만 생각하는 거란다. 너희 엄마, 아빠도 바로 정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  (81쪽)


 아기들 아장걸음과 맞먹을 만큼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동인천역으로 가는 동안, 또 동인천역에서 길을 거슬러 답동성당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 길, 지금은 자동차만 다니도록 되어 있는 이 언덕길은 ‘자동차가 없는 사람’한테도 열려 있던 길이었고, ‘자동차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가던 길이었음을 떠올려 봅니다.

 신호등이 없던 나라인 중국에 신호등이 생기고, 건널목이 굳이 없어도 되었던 중국땅 곳곳에 건널목이 그려집니다. 차가 다녀도 사람과 섞이며 다녔고, 차가 아무리 바삐 길을 가야 해도 사람 걸음을 헤아려야 했던 문화가 그리 먼 옛날까지가 아니라 가까운 앞서까지 있던 중국이었음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 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하고, 이렇게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길 구석 좁은 자리로 내몰릴 뿐 아니라, 그 좁은 거님길 한쪽도 길바닥 장사를 하는 사람들한테 막히고, 길거리 가게에서 내놓는 물건에 막히며, 아스팔트길을 밝히는 거리등불과 전봇대 들한테 막히는 데다가 함부로 세워 놓은 자동차한테 막히는 모습을 맞대어 봅니다.

 우리한테는 무슨 권리가 있는지요. 우리가 져야 하는 의무만큼은 아니더라도, 무겁게 지고 있는 의무 모서리 하나만큼이라도 어떤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요. 국방 의무라면서 남정네면 죄 군대에 끌려가서 ‘살인기계 훈련’을 받고 ‘멍텅구리 되어’ 피끓는 젊음을 버린 우리들한테 이 나라는 무슨 평화를 베풀어 주고 있는지요. 직접세보다 무서운 수많은 간접세들이 넘치는 이 나라는 우리들 사회보장과 문화복지와 교육예술에 얼마만큼 돈을 들이고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요. 법은 얼마나 사람을 아끼고 있으며, 규칙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지요.


.. 아직 추수할 게 남아 있는 농가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콤바인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낫으로 짚단을 베어야 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낫질이라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터였다. 사람들은 다시 노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큰 낫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 우리는 잎사귀가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과와 배를 땄다. 자두는 흔들어 떨어뜨렸는데, 설탕이 다 떨어져 조림을 만들 수 없었다. 말려 보려고도 했지만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전쟁도 겪었고, 전쟁 이후의 삶도 다 겪은, 경험 많은 할머니가 우리 곁에 있었더라면! ..  (120∼122쪽)


 시국미사를 이끈 마니산성당 신부님은 “저는 한겨레21을 창간호부터 구독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있는 강화도 마니산성당 마을에는 조선일보 한 가지만 들어와요. 그곳에는 신문이 조선일보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는데, 조선일보를 한 여섯 달쯤 보니까 어느새 조선일보 논조에 따라 생각하고 말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성당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겨레21만 봅니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아니어도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사람들한테 끼치는 힘은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사람들 마음을 크게 휘어잡고 움직이는 힘이 있구나 싶습니다. 이 힘이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튼튼하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슬기로운 쪽보다는 어리석은 쪽으로, 아름다운 쪽보다는 밉살스러운 쪽으로, 튼튼한 쪽보다는 더러움에 찌들어 몸을 망가뜨리는 쪽으로 흐르는구나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이 큰힘을 슬기로운 쪽에 쏟으면 참으로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허튼 생각인지요. 더 널리 읽히며 사람을 이끌 수 있다면, 이 큰힘을 아름다운 쪽에 바치면 그지없이 기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꿈같은 생각인지요. 더 깊이 파고들면서 사람들 몸에 스며들게 한다면, 이 큰힘을 사람들 스스로 마음과 몸을 튼튼하게 북돋우도록 모으면 대단히 훌륭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인지요.


.. 그러나 아빠에게, 아빠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핵폭탄이 터지기 전 여러 해 동안 인류의 멸망이 준비되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아빠는 항상 “도대체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뭘 할 수 있겠니?”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었다. 또 핵무기의 무시무시함 때문에 평화를 보장해 준다는 사실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했었다. 아빠에겐 대부분의 다른 어른들처럼 편리함과 안락함이 가장 중요했고, 아빠와 그들 모두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  (216∼217쪽)


 인천시장과 개발업자가 2013년까지 마무리지으려고 하는 어마어마한 ‘인천 갈아엎기’ 재개발과 재생사업을 보면, 성당이나 교회 자리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성당이나 교회를 둘러싼 골목집, 그러니까 성당과 교회를 나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죄 건드립니다. 학교와 관공서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살림집, 그러니까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관공서로 민원을 넣으려 찾아가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남김없이 건드립니다. 공장과 전철역은 조금도 손대지 않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모여 지내는 동네, 그러니까 공장에 일하러 가고 서울로 일하러 가고자 전철을 타야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은 어느 곳이나 건드립니다.

 인천시장과 개발업자는 ‘인천 갈아엎기’ 재개발과 재생사업이 돈이 되는 일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푸른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며,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온지요.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흐르는 돈인가를 따지기 앞서, 우리 삶에서 돈이 얼마나 크거나 아름다운지요.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이 없으면 굶는다지만, 굶지 않으면서 넉넉히 나누며 살아갈 만한 돈크기는 얼마쯤인지요. 우리는 돈버는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되고, 돈을 쓰지 않으며 즐기는 놀이는 해서는 안 되는지요.


 (3)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이야기책


 1928년에 체코에서 태어나 남아메리카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구드룬 파우제방’이라는 분은 수많은 이야기책을 써냈습니다. 한국말로 옮겨진 책이 제법 많습니다. 제가 읽은 이분 책을 손꼽아 보아도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나무 위의 아이들》, 《그리운 자작나무》,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가 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이분 책을 살펴보면, 《하느님, 한 번 더 기회를 드릴게요!》, 《엘린 가족의 특별한 시작》, 《산적 학교》, 《두브스키와 거리의 악사》, 《그냥 떠나는 거야》, 《강물소리가 들리니 엘린》, 《구름》, 《통조림 속의 인어 아가씨》 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읽은 책으로 헤아려 본다면, 구드룬 파우제방이라는 분은, 입으로만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몸으로 평화사랑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분입니다. 글로만 자연 삶터를 아낀다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마음을 바쳐 자연사랑으로 살아내는 분입니다. 생각으로만 가난한 이웃을 걱정하는 분이 아니라, 말씀과 몸 움직임을 함께 어우러내어 슬기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분입니다.


.. 흰 피부 니콜이 말했다. “비열한 놈! 폭탄이 떨어진 건 당신들 책임이야. 당신들은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든지 상관없었던 거야. 중요한 건 당신들이 편하게 사는 거였지. 지금 당신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고, 그건 당신들이 벌인 일이야. 하지만 우리까지 불행에 빠뜨렸어! 뒈져 버려라!” ..  (144쪽)


 말마디마다 뼈가 담겼는데 딱딱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술술 읽히는데 잊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든 자본주의가 아니든, 한 사람이 사람다움을 추스르면서 삶을 가꾸는 매무새를 다독이도독 손길을 내밉니다.


.. 쓰레기더미 근처에 있는 겨울 호밀을 심은 들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을에, 그러니까 폭탄이 떨어지고 난 뒤에 씨를 뿌린 것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녹고 있는 눈 속에 자그맣고 파란 싹이라니, 온 들판을 가득 채운 파란 새싹이라니! 우리에겐 그것이 꼭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황폐해졌는데도 해야 할 일을 해 놓았구나. 믿기 힘든 일이야.” ..  (177쪽)


 어쩌면,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마흔둘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게 되었기 때문에, 당신 아이한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빛줄기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서, 무지개빛 작품을 하나둘 내놓게 되었을까요. 끔찍한 전쟁통을 겪고, 한겨레(동독과 서독)이면서 남남처럼 나뉘어 으르렁거리던 아픔을 견디어 냈기에, 더 크게 껴안는 어머니품을 작품마다 고이고이 담아내게 되었을까요.

 우리 한국사람들도 식민지를 겪었고 전쟁을 치렀으며 독재를 견디었고 가까스로 선거민주주의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계급과 신분 푸대접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돈과 이름과 힘에 따른 괴롭힘과 따돌림은 여태껏 스러지지 않습니다. 방송은 즐거운 소식과 올바른 이야기를 펼치기보다 상업주의에 찌들거나 물들어 버리고, 끝끝내 권력을 붙잡아 더 큰 잇속을 챙기려는 정치꾼이 넘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못난 정치꾼을 솎아내거나 털어내는 데에 힘을 들이지 않습니다.


.. 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218쪽)


 대학생이 늘고, 유학생이 늘며, 지식과 상식 넘치는 여느 시민이 늡니다. 학교는 넘치고 영어학원과 영어교재는 불티나며 거리마다 양복으로 차려입는 사람이 늡니다. 번쩍거리는 자동차는 기름값이 치솟아도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값싸고 작은 집을 새로 짓는 일이란 없이, 비싸고 큰 아파트만 올려세웠다가 스무 해쯤 지나면 허물고 새로 올려세우는 일만 되풀이됩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도 없는 체코이고 독일이고 남아메리카인데,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문학작품이 태어납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도 있을 뿐더러, 많은데다가, 원폭 2세 환우도 있고 원폭 3세 환우까지도 있는 한국입니다만, 원자폭탄과 핵개발 문제를 다루는 사랑스럽고 뜻깊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은 태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문학으로도, 또 어린이문학으로도. (4341.7.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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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 저쪽 철학 그림책 2
엘즈비에타 지음, 홍성혜 옮김 / 마루벌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평화를 사랑한다면, 돈을 버리셔요
 [그림책이 좋다 47] 엘즈비에타 글ㆍ그림, 《시냇물 저쪽》



- 책이름 : 시냇물 저쪽
- 글ㆍ그림 : 엘즈비에타
- 옮긴이 : 홍성혜 옮김
- 펴낸곳 : 마루벌(1995.5.15.)
- 책값 : 7000원



 (1) 우리 삶터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인가


 어제 저녁, 생협에 미리 부탁해 놓은 감자를 찾으러 길을 나설 때입니다. 아래층에서 참고서 도매상을 하는 분이 우리를 불러서 물값을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물값은 자그마치 삼만구천오백 원……. 도매상을 하는 분들은 당신들도 물을 쓸 일이 많지 않지만, 둘로 나누어서 낸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식구가 쓰는 물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달마다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쯤 물값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어딘가 새는 곳이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도매상 분들은 건물임자한테 따지거나 수도국에 연락해서 물 새는 곳 찾아 달라고 말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애먼 돈이 나가는데. 더욱이, 우리 나름대로 아무리 물을 아껴서 쓰거나 줄인다고 해도 어찌할 길이 없는데.

 마음에 짐이 하나 얹힙니다.


.. 금강이와 초롱이는 매일 함께 놉니다. 어떤 날은 시냇물 이쪽 금강이 동네에서 놀고 어떤 날은 시냇물 저쪽 초롱이 동네에서 놀지요 ..  (2쪽)


 우리가 깃든 집은 올해로 쉰한 해를 묵었고, 바로 옆으로 ‘인천과 서울 오가는 전철’이 다니기에, 전철 오가는 소리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듣습니다. 때때로 짐열차가 지나갈 때면 건물이 웅웅웅 하고 흔들립니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용하게 잘 버틴다 싶으면서도, 한 식구가 깃들어 살기에는 나쁘다고 할 대목이 여럿입니다. 그래도 널찍한 옥상마당에 이불도 널고 고양이도 뛰놀 수 있는 대목은 좋습니다.

 옆지기는 ‘건물임자가 이 집에서 안 좋은 곳을 고쳐 줄 마음이 없다면 집 옮길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을 옮겨야 한다라. 수만 권 책을 다시 싸고 나르고 또 새로 자리잡고 풀고 닦고 꽂고 하자면, 품이며 시간이며 생각도 하기 싫은데. 그러나 사람 사는 형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집에서 오래오래 살 수는 없는 법.

 마음에 짐 하나 더 얹힙니다. 달삯 내며 얹혀 지내는 사람이 두 다리 쭉 뻗고 걱정없이 지낼 만한 집을 찾기란 그리도 어려운 일이어야 하는지요.


.. “쉿! 앞으로 초롱이 얘기를 하면 안 돼.” 엄마가 속삭이셨어요. “왜요?” “초롱이는 우리 편이 아닌 곳에 살기 때문이란다.” ..  (14쪽)


 어제 낮, 집 앞 길가에 소방차가 여섯 대 줄줄줄 들이닥쳤습니다. 하도 큰 앵앵 소리가 나기에 창밖을 내다보니, 온 길바닥을 소방차가 메우고 있습니다. 어디에 불이 났나, 왜 그러지, 하며 내려다보노라니, 바로 앞에 있는 건물로 소방수 몇 사람이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큰불이라도 났는가 싶었으나 아니었고, 나중에 알아보니, 누군가 담배불을 종이 담긴 부대자루에 집어던져서 창문 밖으로 연기가 꽤 많이 새어나와, 안에서 불이 난 줄 알아서 신고가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며칠 앞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답니다. 그 집에 깃든 어느 아저씨가 술이 체하면서 그렇게 한다는데. 책방이 줄줄줄 이어 있는 이곳에서 참말로 불이라도 나면 어떡하라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이웃 가난한 사람을 조금 더 헤아리면서 껴안기란 어려운 노릇일는지. 없이 살면서도 없는 이웃 사람을 조금 더 쓰다듬으면서 어깨동무하기란 힘든 노릇일는지.

 마음에 짐 하나 또 얹힙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서울까지 먼 전철길을 떠나서 촛불모임에 나가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로서는 동네 지키기와 동네 살리기에도 어깨가 빠듯합니다. 동네 지키기라고 대단한 일이 아니고, 남다른 사람이 하는 일도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를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임을 느끼는 한편, 오며 가며 인사하고 나눌 것 나누고, 기쁜 소식 함께 기뻐하고 궂은 소식 함께 아파하는 일이 동네 지키기요 동네 살리기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이 어디 있는데요?” 금강이가 물었습니다. “전쟁보고 가시 울타리를 치우라고 할래요. 그리고 멀리 가 버리라고 할래요!”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으셨어요 ..  (16쪽)


 골목집 모여 있는 동네 한복판을 꿰뚫는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주민들 모임이 어제 밤에 있었습니다. 모두들 저녁나절까지는 돈버는 일 하느라 바쁘고, 밤이 되어야 비로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는데, 팔짱을 끼면서 시간만 보내는 인천시 공무원들 매무새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지치기도 합니다. 이런 대안과 저런 대책을 주민 스스로 여러 해째 내놓고 있지만, 시청 공무원은 어느 하나 귀담아듣거나 꼼꼼히 살피지 않았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자는 협의체를 만들기로 다짐까지는 했으나, 답변은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시청 공무원들은 ‘길은 반드시 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길이라면 찻길입니다. 자동차만 다니는 길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길에는 자전거가 다닐 수 없으며, 처음부터 자전거가 함께 다니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또한, 동네사람이 ‘찻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안전’은 한 번도 머리속에 집어넣지 않습니다. 건널목 하나조차 안 놓을지 모른다는 느낌도 듭니다. 왜냐하면, 차들이 멈추었다가 가면 ‘기름이 더 들고 매연이 더 나와 환경에 나쁘다’고 하는 논리를 대고 있거든요.

 구름다리를 놓아서 힘겹게 넘어가게 하거나 지하도를 파서 땅밑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게 시키리라 봅니다. 나이들어 걷기 힘들어하는 어르신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말입니다.

 오늘날 차 없는 집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 식구처럼 차 없는 사람은 반드시 있습니다. 차가 있다고 해도 이웃집에 가는데 차를 몰 까닭이 없습니다. 걸어서 찾아가 걸어서 만납니다. 요 앞 송현시장에 가고 중앙시장에 가고 신흥시장에 가고 동부시장에 가는데 차를 타야 하지 않습니다. 답동성당에 가고 송림동성당에 가고 창영교회에 가는데 차를 탈 일이란 없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 우리 동네 한복판에 놓여야 한다면, 인천시장이 큰꿈을 품으며 짓고 있는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잇는 ‘가장 빠른 곧은 길’을 길그림에서 자를 대고 죽 그었을 때 우리 동네를 지나가게 되어 있기에, 그 ‘가장 빠른 곧은 길’을 어떻게든 내서, 자기 업적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길 닦는 데 들어갈 돈은 몇 천 억인데, 정작 환경을 걱정하고 기름값이 근심이 되고 지역 문화와 도시 정체성을 헤아린다면, 이 어마어마한 돈은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사회복지와 문화시설에 쏟아야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마음에 또 하나 짐이 얹힙니다.


 (2) 군대와 전투경찰


 한국땅에서 남자로 태어나면, 돈과 이름과 힘이 없을 때에는 ‘군대 의무 복무’를 해야 합니다. 없는 차례에 따라서 외진 최전방 산골짜기로 깊이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한동안 ‘데모 주동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학생들이 최전방으로 많이 가기도 했는데, 무엇 하나 내세울 돈이나 이름이나 힘이 있을 때에는 알게 모르게 ‘조금 더 수월한 데’로 빠져나가곤 합니다.

 그러하나, 좀더 수월한 데로 빠지든 개가 되고 돌이 되어 뒹구는 수렁에 빠지든, 군대라는 곳은 사람이 사람 아니도록 내모는 곳입니다. 군대에서 가르치는 한 가지는, ‘나한테 적이 되는 사람을 가장 빨리 죽여서 없애라’입니다. 총을 쏘든 칼로 찌르든 주먹으로 때리든 발로 차든, 어떻게 해서든 ‘적을 죽이는 훈련’을 거듭하고 되풀이하여 몸에 배도록 시킵니다.

 군대 복무와 마찬가지인 ‘전투경찰 복무’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적’을 바라보는 생각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군대에서는 총을 들고 쏴죽여서 적군을 무찌르는 훈련을 한다면, 전투경찰은 방패를 휘둘러 찍고 몽둥이를 내리쳐서 머리통을 깨며 ‘시위대’, 바로 전투경찰인 자기네 식구요 이웃이요 형제이자 동무인 사람들을 무찌르는 훈련을 합니다.


.. 그렇지만 시냇가에는 여전히 가시 울타리가 쳐 있었습니다. 금강이가 소리쳤어요. “아니에요! 전쟁은 가지 않았어요! 아빠, 왜 전쟁을 쫓아버리지 않으셨어요?” ..  (24쪽)


 남녘땅이나 북녘땅이나 ‘평화’가 아닌 ‘전쟁 그침(휴전)’입니다. 언제든 전쟁을 다시 벌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남녘땅에서 미군이 떠날 낌새를 보이지 않습니다. 남녘 군대는 줄어들거나 사라질 움직임이 없습니다. 수십만 군대를 거느리면서 나라힘을 움켜쥐고 있는 통치권자와 통치권 무리들은 전투경찰이라는 또다른 군부대를 키우면서, ‘정치를 잘못해서 사람들이 반발을 하건 말건’ 입을 닥치게 합니다. 왼손에는 국가보안법으로 사람들 마음을 옥죕니다. 오른손에는 총과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사람들 몸을 갈기갈기 찢습니다.

 여느 나라에도 있는 헌법이 우리한테도 있고, 나라님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헌법을 우습게 깔보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주거권과 생존권을 깡그리 짓밟는 재개발촉진특별법이 있습니다. 계급차별과 빈부차별이란 없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스스로 계급과 빈부에 따라 나뉘어 있어서, 말과 생각과 움직임이 다 다른 반편이로 키우고 있습니다.


.. 금강이는 시냇가 풀밭으로 나갔어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초롱이와 자주 놀던 곳이지요. 금강이는 가시 울타리를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초롱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  (30쪽)


 (3) 조그마한 그림책 《시냇물 저쪽》


 고작 서른두 쪽짜리 그림책 《시냇물 저쪽》을 펼쳐 읽었습니다. 프랑스에서 1993년에 나오고, 우리 나라에는 1995년에 옮기진 조그마한 그림책 《시냇물 저쪽》을 찬찬히 넘겨 보았습니다.


.. “나는 커서, 초롱이 신랑이 될 거야.” 금강이가 말하면, “나는 커서, 금강이 신부가 될 거야.” 초롱이도 말합니다 ..  (4쪽)


 우리 아이들한테 평화가 있어야 한다면, 우리 어른들한테도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더럽혀지지 않은 물과 싱싱한 밥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 어른들한테도 더럽혀지지 않은 물과 싱싱한 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 어른들한테도 따뜻한 사랑과 튼튼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어하는가요.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보고 배워서 따라하게’ 할 생각인가요. 우리 어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게 하려는가요.

 평화가 아닌 전쟁을 가르칠 뿐더러, 평화가 아닌 전쟁을 살고 있는 어른이 아니온지요. 사랑이 아닌 주먹질을 가르칠 뿐더러, 사랑이 아닌 주먹질로 일하고 놀고 부대끼고 있는 어른이 아니온지요. 있으니 나눔이 아니라 있어도 혼자 돈굴리기로 나아가고, 조금이라도 주머니를 더 채우고자 눈을 번득이는 어른이 아니온지요.

 아이들한테 시냇물 저쪽은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반가운 님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시냇물 저쪽에는 더 많은 돈도 없고 더 높은 이름도 없고 더 큰 힘도 없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으며 나눔이 있습니다. 아이들마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살뜰한 목숨 하나로 서로를 꼭 안아 주는 넋이 있습니다.


.. 초롱이가 가시 울타리에 작은 구멍을 내고 시냇물을 건너오고 있었던 거예요 ..  (32쪽)


 귀를 막아도 소리는 있습니다. 내 귀로 소리가 안 들려온다고 해도 소리는 있습니다. 눈을 감아도 움직임이 있습니다. 내 눈으로 움직임이 안 보인다고 해도 움직임은 있습니다. 물은 흘러서 이쪽과 저쪽을 잇습니다. 가시 울타리로 시냇물을 막아도 물은 흘러야 하고,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이 울타리로 그치지 않고 시멘트로 댐을 세워 시냇물 흐름조차 막아 버리면 ……? (4341.7.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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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무 양철북 청소년문학 13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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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3 ―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늘 ……”
 : 카롤린 필립스, 《눈물나무》


- 책이름 : 눈물나무
- 글 : 카롤린 필립스
- 옮긴이 : 전은경
- 펴낸곳 : 양철북(2008.5.26.)
- 책값 : 9000원


 (1) 무엇을 먹으면서 살고 있나


 석유값이 오르기 무섭게 나라안 기름값이 오릅니다. 한 번 올라갔던 기름값은 두 번 다시 내려가지 않습니다. 이와 맞물려 온갖 물건값이 오릅니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책값도 오릅니다. 찻삯이 오르며 전기삯 물삯 집삯 모두 오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곡식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곡식자급율’을 생각해 본다면, 모자라고도 한참 모자라서 하늘로 치솟을 법도 합니다만, 놀랍게도 곡식값은 오를 생각을 않습니다.

 농약과 비료에 찌들지 않은 깨끗한 곡식을 바라는 사람들 손길이 늘어나는 흐름을 살핀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가락이나 쪽쪽 빨아야 하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곡식값은 오르기는커녕, 저잣거리와 할인매장에서는 떨이로 다루기도 하며 아주 싼 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배추 한 포기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이면 삽니다. 굵은 무 하나도 비싸야 이천 원이지, 천 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얼갈이 한 아름에 천 원이나 천오백 원입니다. 애호박 하나에 천 원 하는 일은 드물고 둘에 천 원을 하더니, 곳에 따라서는 서넛에 천 원만 받는 가게도 있습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자기 땅에서 거둔 곡식과 푸성귀를 얼마에 팔고 있으신지. 아니, 얼마나 받고 당신들 피땀을 넘겨주고 있으신지.


.. 여기 티후아나에서 눈에 띄지 않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은 구름만 빼고는. 구름은 국경경찰의 손이 미치지 않는 높은 곳에서 미국 영토로 날아갈 수 있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다 …… 미겔의 아이들이 담장 건너편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후안, 공 이리로 던져 보렴!” 공이 담장 위로 높이 날아서 루카의 발 앞에 떨어졌다. 루카는 공을 건너편으로 차서 돌려보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이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 모습을 국경경찰이 지켜보았다. ‘사람이 공이라면 좋겠다.’ 루카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구름이거나 비둘기라서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170, 182쪽)


 오이를 먹고 열무를 먹고 가지를 먹고 호박을 먹고 버섯을 먹고 순무를 먹고 양파를 먹고 감자를 먹습니다만, 제 손으로 기르지는 못하고 저잣거리에서 사서 먹습니다. 우리 식구 형편으로는 천 원에 오이 넷도 만만치 않은 씀씀이라고 할 수 있으나, 농사꾼들은 이렇게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습니다. 굶어야지요. 무너지거나.

 그러니까, 시골에서 닭을 치고 돼지를 치고 소를 치는 분들은 사료값을 한푼이라도 줄이려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잔뜩 먹입니다. 하루라도 사료를 덜 먹여야 벌이를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밥상에는 철을 잊은 푸성귀와 열매가 오르고 있는데, 우리들은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사서 먹으면서 아무것도 못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언제까지 시골살림이 버티어 줄는지, 언제까지 우리 땅을 더럽히면서 깨끗하게 돌려놓지 않아도 되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제철을 잊은 곡식과 열매를 먹으면서, 제철 곡식과 열매 맛을 잊습니다. 이제는 곡식맛과 열매맛이 아니라 ‘곡식 이름과 열매 이름’만 배속에 넣고 머리로는 ‘무얼 먹었다’고 생각하는 셈입니다. 땅과 햇볕과 물과 바람 기운을 머금은 곡식과 열매가 아닌, ‘얼마얼마짜리 곡식과 열매’를 먹었다고 받아들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한 수박을 먹으면서도, 아직 수박이 날 철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않습니다. 수박철도 아닌데 수박을 먹을 수 있어서 ‘세상 좋아진’ 줄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수박철이 언제인지도 까맣게 잊습니다. 두 손과 온몸으로 땅에 발디디지 않고 살게 되면서,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땅을 잊으니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잊습니다. 하늘을 잊으니 물이 어떻게 아파하는지, 바람이 어떻게 끙끙거리는지 느끼지 못합니다.


.. 루카가 (멕시코에서 살던) 마을 학교에서 2학년에 다니던 일곱 살 때의 어느 날이었다. 고국 멕시코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가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부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막 배우던 그 무럽,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농장에서 해고당했다고 말했다 ..  (46쪽)


 꽤 예전에 한치라는 물고기를 거의 모두 일본으로 내다 팔았다고 합니다. 요즈음도 일본으로 내다 팔 만큼 될는지 모릅니다만, 앞으로는 부피가 차츰 줄어서 나라안에서 먹기에도 벅차리라 봅니다. 아직까지 울릉도 앞바다에서 오징어를 잡는다지만, 언제까지 바다가 깨끗하게 남아 있을까요.

 꽃게 값이, 참게 값이 엄청나게 비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요. 바지락칼국수나 조개구이를 돈 얼마 치르면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다지만, 조개가 자랄 갯벌은 이 땅에 얼마나 남아 있습니까. 논밭을 만든다며 메웠다가는 공장과 아파트로 돌리고, 수 만 마리 철새가 날아드는 아름다운 갯벌이었음에도 마구 메꾸면서 공항을 짓더니, 이제는 그 갯벌터에 수십만 채에 이르는 아파트를 올려세우고 대학교까지 옮겨심고 있습니다. 소래포구도 옛말이지, 이제는 소래아파트단지입니다.

 저는 보리술을 즐겨마시고 있습니다만, 한국땅에서 자라는 보리가 얼마 없을 텐데, 또 있다 한들 한국사람이 마시는 보리술을 댈 만큼 보리가 있지도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열 해쯤 앞서, 저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에서 건너온 쭈꾸미’를 보았습니다. 훨씬 앞서부터 베트남에서 들여왔을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한국땅에서 잡아들일 쭈꾸미로는 한국사람들 배를 채울 수 없었을 터이며, 하루가 다르게 더러워지는 한국 땅과 바다에서 얼마나 많은 쭈꾸미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전거나라였던 베트남이 오토바이나라로 바뀌고 있는 이즈음, 값싼 품삯을 노리고 온갖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 오늘날, 베트남도 앞으로는 쭈꾸미 내다 팔기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미국으로 건너온) 루카가 수업 시간에 뭔가 알아듣지 못하면 친구들이 사방에서 에스파냐어로 설명해 주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루카는 이 학교에 불법 체류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나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  (102∼103쪽)


 식품회사가 넘쳐나고, 온갖 과일주스가 새로 나옵니다. 오렌지, 포도, 토마토, 당근, 사과, 배, 키위, 망고, 파인애플, 알로에, 석류, 매실 ……. 그런데 우리 나라 땅에서 거두어들여서 만드는 과일주스는 몇 가지가 되지요. 있기나 한가요. 있을 수 있습니까.

 밀 한 알 제대로 나지 않는 우리 나라인데, 우리 밀을 심어서 거둔다고 한들 얼마 되지도 않을 텐데, 시골 면내에도 빵집이 한두 군데씩 있을 만큼, 전국 곳곳에 빵집이 참 많습니다.


.. “시내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호세가 말했다. “우리가 자기들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할까 봐 두려워해. 그러니 그 사람들이 우리를 안 보는 게 좋아. 그럼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가 수확한 토마토는 맛있게 먹고, 또 값이 싸다고 좋아하지.” 페드로가 말했다. “미국사람들이 토마토를 수확한다면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 거야. 미국사람들이 이런 저임금으로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  (64쪽)


 날마다 놀라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땅이 꺼지지 않고 하늘이 내려앉지 않아서 놀라면서 삽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좔좔좔 솟아나는데(미터기는 빙글빙글 돌 테지만), 우리 나라가 물이 넉넉한 나라가 아닐 텐데, 이렇게 물을 걱정없이 써도 괜찮은가 싶어서 놀랍니다. 돈 좀 있는 회사마다 시골에 땅을 사들여 땅속 물줄기를 뽑아들여서 돈 받고 물을 팔고 있는데, 이렇게 해도 한국땅에서는 지진 한 번 거의 일어나지 않으니 놀랍습니다.

 서울과 부산,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고 하는 물길을 놓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한테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고 하는 소리가 때때로 먹혀들어가기도 하기에 더욱 놀랍습니다. 발전소 전기를 돌려서 수도물을 끌어들이는 청계천과 같은 물길을 낸다며,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수천 억에 이르는 돈을 쓴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놀랍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도 시와 군 우두머리가 밀어붙입니다. 공무원들은 우두머리 지시와 명령을 받고 착착착 기획서를 올리고 예산안을 짭니다.

 지난달, 우리 동네 큰길가 거님길 돌이 쫙 뜯겼다가 다시 깔렸습니다. 하수도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고, 무슨 사고가 났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지자체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 예산을 써 없애려고 돌바꾸기를 했을 뿐입니다. 이런 바보짓은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퍽 예전부터 나왔으나, 비판이 있든 없든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그예 되풀이되면서 사람을 쉬지 않고 놀래킵니다.


.. “파업이 얼마나 계속될 예정이냐?” 나이가 많은 흑인 직원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가 2주일 동안 시위를 지속한다면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은 일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어쨌든 난 원칙적으로는 너희들 편이야. 30년 전에 우리도 똑같은 행동을 했지. 사람은 가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해. 특히 피부가 희지 않을 때는 말이다.” ..  (159쪽)


 저녁나절, 옆지기 다리를 주무르면서 배에 대고 이야기를 합니다. 두 달쯤 뒤면 세상에 나올 아이한테 말을 겁니다. “꽁꽁이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 무서워서 살기가 팍팍한데, 너도 참 힘들겠구나. 그러니 너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튼튼해야 하고 억세어야 한단다. 굶기지 않도록 애쓸 테지만, 너는 네 힘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단다.”




 (2) 이 땅은 누구네 땅인가


 두어 달 앞서였나, 서울 회기동에 있는 헌책방에서 주한미군부대 병사들이 만들어서 기념으로 나누던 ‘군부대 사진첩’ 하나를 보았습니다. 이 군부대 사진첩은 “미국 제2 야전포병연대 7대대” 사람들 것이었는데, 이들은 1812년부터 싸움을 치러 왔다고 부대 역사를 적어 놓습니다. 1812년에는 캐나다에서 싸웠습니다. 그 뒤 자기들이 맡은 곳에 살던 북미 토박이(인디언)를 싹 쓸어버렸다고 합니다.‘seminoles’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세미놀레스’가 미국땅 이름인지 북미 토박이 겨레이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1840년대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서 이겼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 “당연하지. 멕시코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니까. 모두 여기로 오고 싶어 하잖아.” “틀렸어! 멕시코사람들이 미국을 똑바로 가리킬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그 사람들 땅이기 때문이야! 이 나라에 맨 처음 살았던 주민들은 에스파냐와 멕시코사람들 그리고 인디언들이었어. 영어를 하는 백인들은 전혀 없었다고!” “우리가 1846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걸 너희는 도대체 언제 인정할래?” 조지가 고함을 질렀다. “우린 너희를 이겼어! 그게 그렇게도 알아듣기 힘들어? 국경은 전쟁을 통해 달라지는 거야. 10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불평을 하면 안 돼!” “그건 전쟁이 아니었어. 잔인한 습격이었지.” ..  (111쪽)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듯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였습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며 한국말을 찾았지만, 멕시코는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났어도 멕시코말이 아닌 스페인말을 쓰고 맙니다. 그나마 멕시코 문화라도 고유하게 지킬 수 없던 가운데, 백인들이 땅따먹기 싸움을 하면서 저희끼리 부딪치고 다투는 동안 멕시코 삶터는 더 무너져내렸고, 멕시코 문화는 더 찢기었으며, 멕시코 살림은 더 주저앉았습니다.


.. “…… 우린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취급받으며 살지 않을 거야. 로스앤젤레스에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는 거지. 우린 벌써 투표권을 행사하여 라티노 시장도 뽑지 않았니? 멕시코사람들, 특히 불법 체류자가 없으면 미국 경제는 무너질 거다. 누가 밭에서 토마토와 레몬을 수확하지? 캘리포니아 농장 일군의 95퍼센트는 불법 체류자들이야. 레스토랑에서 누가 음식을 나르지? 부유한 사람들의 집은 누가 청소하고, 누가 아이들을 돌보며, 누가 잔디를 깎지? 우리의 시위가 끝나면 미국사람들은 라티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걸, 한 명도 남김없이 알게 될 거야. ……” ..  (137∼138쪽)


 나라도 겨레도 문화도 살림도 차근차근 지키거나 가꾸기 어려운 멕시코에서 멕시코사람들은 ‘고향나라에서 굶어죽기’보다는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달러 벌며 살아남기’로 가닥을 잡습니다. 마침, 미국도 미국 사회에 걸맞게 노동자 일삯을 주면, 부자들이 부자놀음을 이어갈 수 없었던 터라, 허드렛일을 헐값으로 시키고 부릴 생각으로, ‘불법 이민자’를 자꾸자꾸 받아들입니다. 한손으로는 불법이니 붙잡아서 내쫓고, 한손으로는 싼값으로 일을 부려먹으려고 끌어당기고.


.. 베로니카의 아버지는 매주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라티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집회에 많이 참가할 것을 권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에 도착한 청교도들도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미국의 조상으로 간주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대륙에 있는 모든 백인들도 예전에는 불법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백인들의 아메리카는 4천만 라티노와 함께할 때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 ..  (154쪽)


 한국땅으로 들어오는 나라밖 노동자들도,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멕시코사람하고 똑같은 형편입니다. 빚을 지며 통행삯을 치러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다음, 여러 해 죽을힘을 다해 돈을 모아 빚을 갚고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적어도 아이들한테 자기들과 같은 가난과 못 배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한국땅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 또한, 고향나라에 남은 아이들을 먹여살릴 뿐 아니라 더 높은 학교까지 가르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조선족이 남녘땅에 들어와 밥어미나 청소부나 밥집 아줌마 노릇을 해서 달마다 다문 백만 원이라도 벌어서 보내면(한 달에 딱 하루 쉬며 일하는 동안), 이 돈으로 자식들을 북경으로 보내어 대학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댑니다.


.. “…… 그리고 다른 그링고들도 믿으면 안 돼. 네가 여기에 불법 체류 중이라는 걸 잊지 마. 미국사람들은 우리를 ‘불법 외계인’이라고 불러. 마치 지구 바깥에서 왔다는 듯이. 또 사실 우리를 그렇게 취급하지. 행운을 빈다. 잡히지 마!” ..  (75쪽)


 똑같은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살갗이 하얀 사람은 쏼라쏼라 하면서 영어학원 강사 노릇을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 노릇마저 합니다. 영어 솜씨가 훨씬 뛰어나다고 해도 필리핀사람이 원어민 교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스리랑카사람이나 라오스사람 또한 영어학원 강사를 할 수 없습니다. 아마, 강사나 교사 노릇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싫어하겠지요. 우리들 한국사람은 스스로를 ‘아시아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티벳과 인도로 성지순례를 떠나고 네팔과 몽골에 가서 드넓은 자연에 입을 쩍쩍 벌리는 한국사람들이지만, 티벳 이주노동자와 네팔 이주노동자와 인도 이주노동자와 몽골 이주노동자를 볼 때면, 꾀죄죄하거나 더럽다거나 못났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사람들입니다.


.. 카를로스는 화를 냈다. “이건 멍청한 짓이에요! 내가 오늘 아침에 토르티야를 먹는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지나요?” “모든 사람이 너처럼 생각한다면 정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모부가 카를로스의 손에서 시리얼 봉지를 빼앗았다 ..  (155쪽)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요. 한국사람이 ‘세계 소식’이라면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보고 듣는 이야기는 거의 모두 미국 이야기에 쏠려 있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유럽 이야기에 모두어져 있으니까요. 우리가 언제 티벳이나 네팔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겨레붙이 문화와 사회 이야기를 들어 봅니까. 방글라데시 문화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렇게들 많이 찾아가는 인도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역사는 어떠한지, 베트남과 버마 살림살이가 어떠한지를 곰곰이 헤아릴 일이 있는지요. 인도네시아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말레이지아사람이 무엇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 곁에 있는 이웃나라를 살갗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끼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는데, 부자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한테 자기 재산을 나누어 주려 하지 않으며, 스스로 가난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은 하늘나라에 못 가지 않으랴 싶습니다.

 한국사람이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도, 한국사람 스스로 자기 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 이웃이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못하며, 자기 삶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못 깨닫거나 안 깨닫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3) 《눈물나무》라는 책


 이야기책 《눈물나무》는 독일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씁니다. 멕시코사람이 왜 가난할 수밖에 없으며, 어찌하여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다룹니다.


.. “비바 메히코!” 헤어질 때 호세가 모자를 흔들며 소리쳤다. “잊지 마라, 네 집은 여기야! 국경 건너편에서 돈이야 벌 수 있지만, 네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어야 해. 한 번 멕시코사람이면 영원히 멕시코사람으로 남는 거다. 비바 메히코!” ..  (54쪽)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학교 교수로 일하는 사람도 멕시코사람 이야기를, 또는 가까운 데에 있는 중국조선족 이야기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한겨레 이야기는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니, 한국땅에서 아파하거나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 눈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나로 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 “국경을 건너가면 그렇게 끔찍하다면서, 그럼 아저씨들은 왜 여기에 있지 않고 넘어가려는 거예요?” 잠깐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멕시코에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페드로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27쪽)


 우리네 긴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을 넓힌 적도 있으나, 이웃나라가 쳐들어와서 땅을 빼앗긴 적도 있습니다. 쳐들어갔건 쳐들어왔건, 권력 쥔 사람이 아닌 여느 사람들, 바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부들부들 떨면서 죽어야 했습니다. 군대로 끌려가거나 노예로 붙잡히거나 고향에서 죽어라 농사지어서 나라님한테 바치고 군량미를 대면서.

 신분 푸대접에 따라서 아주 많은 우리 어버이가 고달프게 살았고, 일본제국주의한테 짓눌리기도 했으며, 네나라 때(고구려,백제,신라,가야)와 마찬가지로 한겨레끼리 피를 흘리며 싸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독재는 겨우 걷혔지만, 속속들이 걷어내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은 서슬퍼렇게 남아 있습니다. 미친 소고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숨통은 온갖 나쁜법과 유전자조작 먹을거리 따위로 아슬아슬합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인 사람이 많은 만큼, 정규직인 사람도 많아서 내 이웃 아픔을 내 아픔으로 못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픔이 있고 눈물이 있는 우리 나라요 우리 겨레입니다. 멕시코사람들 아픔을 잘 곰삭이고 새긴 독일 교사 한 사람은 《눈물나무》를 써냈고, 우리 스스로 안고 있는 아픔을 잘 곱씹고 되새길 누군가가 앞으로 ‘눈물꽃’을 써낼는지 모릅니다. ‘눈물꽃’은 시인 고정희 님이 써냈으니 ‘눈물풀’을 누군가 써내려나요. 아니면, 우리 스스로 붙안고 있는 아픔을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눈물도 느끼지 못하고, 한 방울 눈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오로지 돈벌이에만 눈을 밝히면서 살아갈는지요. (4341.6.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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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그늘 자리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이태수 글.그림 / 고인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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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55 ― 사람도 자연, 자연은 그대로 예술
 : 이태수 글ㆍ그림,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



- 책이름 :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
- 글ㆍ그림 : 이태수
- 펴낸곳 : 고인돌(2008.5.25.)
- 책값 : 14800원



 (1) 우리 집 옥상마당


 수요일 저녁, 우리 동네에서는 밥찌꺼기를 내놓는 날입니다. 골목마다 밥찌꺼기 모아 가는 통이 놓이고, 저녁 일곱 시 뒤부터 한 집 두 집 바깥으로 밥찌꺼기를 내다 버립니다.

 밥찌꺼기통은 닫혀 있기도 하지만 열려 있기도 합니다. 옆지기와 밤마실을 하면서 지나가다 보니, 뚜껑 열린 밥찌꺼기통에 머리를 박고 끼니를 채우는 길고양이가 여럿 보입니다. 몇 미터 거리가 되니 고양이가 퍼뜩 놀라며, 먹던 고개를 꺼내어 탈탈탈 걸어서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밑으로 숨거나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집니다. 밤나절은 고양이가 느긋하게 저녁 먹는 때이니 발걸음을 좀더 죽여야겠군요.


[고깔제비꽃] .. 새로 돋아나는 이파리가 고깔을 닮아 붙여진 이름, 고깔제비꽃. 씀바귀를 고채(苦菜)라 부르고 민들레를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하면 참 알아듣기 힘이 듭니다 ..  (12쪽)


 우리 집에서 밥찌꺼기 나올 일은 거의 없지만, 어쩌다가 바나나라도 사먹으면 껍데기가 나옵니다. 양파껍질은 그물주머니에 고이 모으고, 감자며 무며 껍질째 먹으니, 남아서 버려지는 찌꺼기가 없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집에서 나온 밥찌꺼기는 1킬로그램이 채 안 되지 싶습니다. 두 식구가 먹기에 너무 많은 김치를 선물로 받아서 먹다 먹다 지쳐서 버려진 김치를 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이런 몇 가지 밥찌꺼기를 옥상마당에 내어놓고 비를 맞히고 햇볕에 말리니 물기 소금기 쏘옥 빠지며 바삭바삭 부스러지며 가벼워집니다. 이제 흙하고 섞으면 모자라나마 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노라면, 동네에 사는 참새와 까치와 비둘기가 우리 집 옥상마당에 내려앉곤 합니다. 밥찌꺼기 같지도 않은 밥찌꺼기가 조금 나와 있어서 그럴 텐데, 몇 번 부리로 찍어 보더니 ‘영, 시원찮군!’ 하며 다시 포르르 날아가곤 합니다. 지금도 참새 한 마리가 부지런히 뭔가를 쪼고 있는데, 따로 새모이라도 놓을까 싶기도 합니다. 옆지기는 밤나절, 고양이밥을 조금 마련해서 길모퉁이에 놓으면 어떻겠느냐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참개구리] .. 집 뒤에 논이 있었습니다. 오월이면 개구리 소리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작은 물웅덩이 하나 남기지 않은 채 개구리 삶터를 갈아엎고 사람 집을 지었습니다 ..  (32쪽)


 지난해에 옆지기가 데려온 길고양이 열 마리는, 모두 우리 집 옥상마당에서 나가서 인천바닥 어딘가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드물게 만나곤 하는데, 우리 얼굴을 떠올리는지 잊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에 한 마리, 지난주에 한 마리, 또다시 ‘귀염둥이 짐승으로 집에서 기르다가 버려진 고양이’ 두 마리를 우리가 맡게 되었습니다. 맡는다기보다 옆에서 먹이와 물을 주면서,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동네를 누비며 길을 익힐 때까지만 함께 지낼 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녀석 모두 처음 우리 집으로 왔을 때 바들바들 떨면서 구석에 숨은 채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녀석들이지만, 몸으로는 ‘어미 품도 모르면서 이곳저곳에서 떠돌다가 버려지기만 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구나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미 품에서도 떠나야 했지만, 형제도 없고 동무도 없이 외딴 집안에서 집임자하고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자기와 함께 살아갈 집임자가 ‘싫다’면서 내보내게 되었으니, 이런 느낌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녀석들은 하루이틀 지나면서, 사흘나흘 흐르면서, 차츰 우리 집에 익숙해지고 우리 두 사람 얼굴과 목소리에 길이 듭니다. 이제 두 녀석 모두 우리뿐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까지 아양을 떨 만큼 되었습니다. 고양이 바탕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없이 홀로 길을 간다는데, 먼저 온 녀석은 앞으로도 우리 집에 머물 듯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녀석들 풀어 놓은 옥상마당을 슬며시 내다보니, 큰 녀석은 종이상자집에 들어가 알쏭달쏭한 모습으로 단잠에 빠져 있고, 작은 녀석은 쓰레받이며 노끈이며 낡은 바구니며, 옥상마당에 그대로 둔 물건들을 노리개 삼아서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뒹굴면서 놉니다.


[늑대거미] .. 물 위를, 물풀 위를 징검징검 걸어다니면서 벼멸구를 잡아먹는 늑대거미. 살아 있는 농약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은 사람이 끼어들지 않으면 서로 먹고 먹히면서, 서로 도우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스스로 숨쉬며 살아갑니다 ..  (42쪽)


 (2) 골목꽃과 이름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꽃이랑 나랑은 아무 끈이 이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책만 보며 살았고, 책방만 다니면서 살았으며, 자전거로 싱싱 달리기만 했습니다. 더 빠른 길을 찾아내어 달리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자동차와 내기 달리기라도 하듯 용을 써 왔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해 산골자락에서 지내면서 달따라 피어나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보는 동안, 마음이 차츰차츰 바뀌었습니다. 꽃이나 나무나 풀을 살뜰히 담아낸 그림이 담긴 책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두 눈으로 꽃이나 나무나 풀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움직임에는 소홀했습니다. 산골자락 삶 여러 해는, 제 어수룩함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짚어 주었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자연 삶터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이제, 산골자락에서 떠나 도시 한켠으로 들어온 몸이 되면서, 산골자락에서 꽃과 나무와 풀을 느끼듯, 골목길을 다니면서 온갖 꽃과 나무와 풀을 보고 있습니다. 이름을 아는 꽃과 나무와 풀이 있으나, 이름을 모르면서 바라보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 꽃과 나무와 풀이 있습니다.


[봉숭아] .. 흙이 아스팔트로, 시멘트로 덮이고 손톱이 매니큐어에 덮인 지금 붉은 봉숭아물 들이고 여름, 가을 가고 겨울 손톱 끝에 매달린 초승달 사랑을 가슴 졸여 기다리는 ..  (52쪽)


 길을 거닐다가 몇 차례,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한테 여쭈었습니다. “아주머니, 이 노랗고 예쁜 꽃은 이름이 어떻게 되어요?” “할머니, 이 소담스러운 꽃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딱 한 번, 꽤나 긴 서양이름이 붙은 꽃이름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말씨로 줄줄줄 꽃이름을 대는데, 저와 옆지기는 못 알아듣습니다. 속으로, ‘그래, 꽃이름은 몰라도 꽃을 예쁘게 느낄 수 있으면 되지 않아’ 하고 생각했습니다.

 꽃이름을 모른다고 하는 다른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예쁘니까 심었지 뭐” 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당신들도 골목골목 찬찬히 거닐며 저잣거리를 오가는 동안 눈여겨보았던 꽃이 지고 씨를 맺으면, 씨 조금 얻어서 헌 꽃그릇을 마련하고 흙을 어디선가 퍼 오고 거름을 내고 힘을 북돋운 다음 씨앗을 고이 심어서 어여쁜 꽃을 길러내셨지 싶습니다.


[강도래 애벌레] .. 사람이 오고 간 발자국이 많을수록 사람이 남기고 간 자국이 많을수록 맑은 물은 흐려지고 맑은 물에서 사는 작은 생명들은 살 곳을 잃어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도 놀 곳을 살 곳을 잃어 갑니다 ..  (74쪽)


 사람마다 이름이 있고 꽃마다 이름이 있으며 짐승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꽃과 나무와 풀에, 또 짐승들한테 이름을 붙여 주는데, 꽃과 나무와 풀도 우리 사람을 보면서 ‘저건 뭐다’ 하면서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짐승한테 이름을 붙이며 부르듯이, 짐승도 우리 사람을 보면서 ‘너는 뭐다’ 하고 이름을 붙이며 머리속에 새기지 않으랴 싶습니다.

 우리 집 고양이 조금 큰 녀석은 ‘후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전 임자가 붙인 이름으로, 털빛이 후추 빛깔이라 해서 붙였답니다. 지난주에 들인 어린 녀석은 ‘애깽’이라고 하다가 ‘밤톨’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기 고양이라고 해서 ‘애깽’으로 했고, 아직 밤톨 만한 크기이기도 하지만, 털빛이 밤톨 빛깔이라는 느낌이라서 ‘밤톨’이라고 했습니다.


[조릿대] .. 응달에서 잘 자라고 추위에 잘 견디는 조릿대 이파리는 겨울철 먹이가 모자라는 산양에게 겨울을 이겨 내는 먹이가 됩니다 ..  (92쪽)


 (3) 《숲속 그늘 자리》라고 하는 그림이야기


 《보리 아기 그림책》부터 《심심한 오소리》까지, 자연 삶터와 목숨붙이를 찬찬한 그림으로 담아 온 이태수 님이 《숲속 그늘 자리》라고 하는 그림이야기책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그림 하나에 이야기 하나를 붙인 짜임새입니다. 그림 하나에 붙인 이야기 하나는 시라고 느낄 수 있고, 짤막한 생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읽어내기 나름입니다.


[비오리] .. 물이 맑고 물 흐름이 빨라서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 동강은 비오리, 수달, 논병아리, 어름치 ……. 수많은 생명을 품고 흐르고 또 흐릅니다 ..  (102쪽)


 이태수 님은, 책 머리말에서 “이 책에 실린 생명들은 아주 귀한 것보다는 살아가면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많고, 몇몇 생명은 조금만 힘을 들이면 만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자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길을 걷거나, 산에 오르내리고, 바닷가를 걸으면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 삶터는 자연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이 그림이야기책에 실린 목숨붙이들도 ‘너무 멀다’고 느낄지 모르는데, 도심지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면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싱싱 내달리는 찻길가에서 자라는 나무 둘레 몇 뼘 안 되는 흙에서도 보고, 호젓한 골목길 한켠에서도 보며, 골목 안쪽에 손바닥 만하게 마련한 텃밭에서도 봅니다.

 사람 아닌 목숨붙이도 자연이지만, 우리 사람 또한 자연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연이며, 우리 스스로도 자연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 둘레에 고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이웃 자연을 못 느끼거나 못 깨닫거나 못 보지 않느냐 싶어요. 이리하여, 내 이웃과 동무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자연’입니다만, 내 이웃도 ‘살가운 사람’이고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서로 밟고 올라서고 빼앗고 겨루려고만 복닥이는지 모를 일이에요.


[도롱이벌레] .. 집 모양이 도롱이를 닮은 도롱이벌레. 자기 삶터에서 가장 흔한 나뭇가지, 나뭇잎으로 집을 짓고 겨울을 납니다. 집이 무너지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쓰레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  (108쪽)


 나 혼자 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닐 때, 우리 몸에 깃든 자연이 시나브로 빛을 냅니다. 나와 이웃이 함께 흐뭇하기를 바라는 넋을 가꿀 때, 우리 마음에 잠자고 있던 자연이 살며시 깨어나 고운 냄새를 풍깁니다.

 그늘을 드리워 뭇 목숨붙이가 뜨거운 햇살에 마르지 않도록 잎사귀를 벌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일수록 더욱 맛난 밥으로 여겨 잎사귀를 더욱 벌리고 키를 한껏 높이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림이야기책 이름이 《자연이 예술을 품다, 숲속 그늘 자리》인데, 책을 덮으며 헤아려 보건대, “자연은 그대로 예술”이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연인 줄 모르고, 우리 이웃도 자연인 줄 깨닫지 못하는 한편, 우리를 둘러싼 너른 자연이 어떻게 예술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인지를 못 들여다보는구나 싶습니다. 글이 길게 실리지 않은 책이나, 띄어쓰기 틀린 대목이 열 군데가 넘어서 조금 아쉽습니다. (4341.6.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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