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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구시다 마고이치 지음, 심정명 옮김 / 정은문고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5.
까칠읽기 69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구시다 마고이치
심정명 옮김
정은문고
2017.1.17.
“文房具56話”를 옮긴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를 읽었다. 1956년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살짝 해묵은 이야기로구나 싶다. 우리로서는 1956년에 글붓살림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어려웠을 만하지 싶으면서도, 오히려 그무렵에야말로 글붓살림이 무엇인지 더 찬찬히 짚을 만했으리라고도 본다.
거꾸로 2025년 요즈음에야말로 글붓살림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손으로 가꾸는 글살림”을 헤아리는 이야기를 엮을 수 있다. 보는 쪽도 짓는 쪽도 ‘손’을 써야 한다. 종이에 그리든 판(디지털화면)에 그리든, 언제나 손을 쓴다. 손전화나 셈틀도 손을 움직여서 가눈다. 여러모로 보면 모든 곳에서 손이 없이는 아무 일을 못 한다.
거의 잊힌 말씨인 ‘솜씨’라는 우리말은 워낙 ‘손씨’이다. ‘손 + 씨’이다. 손으로 짓기에 손을 거쳐서 씨앗을 심듯 살림을 짓고 빚고 가꾸고 일군다는 뜻이다. ‘솜씨 = 손씨’인 줄 알아차린다면, ‘발솜씨’처럼 터무니없는 말은 안 쓸 텐데, 아무튼, 손을 쓸 적에는 “두 손”을 쓴다. “한 손”으로도 천천히 짓고 움직이고 다룰 수 있되, 우리 몸은 “두 손”을 고르게 쓰는 결이다. 한 손을 다칠 적에는 다른 한 손만 놀릴 텐데, 한손놀림도 두손놀림이라는 얼거리를 헤아리게 마련이다.
왼손과 오른손을 하나인 몸으로 여겨서 다루기에 빚고 짓고 가꾸고 일구고 심고 돌보고 품고 안고 쓰다듬고 손질하고 고치고 나눈다. 글붓이란 무엇일까? 한 손으로 붓을 쥐더라도 다른 손으로 받친다. 한 손으로 다 그리는 듯해도, 다른 손이 단단히 받치거나 잡아 주어야 한다. 언제나 두 손을 한몸으로 움직인다.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를 읽다 보면, 일본사람인 글쓴이는 ‘일본 붓살림’을 놓고서 살짝 푸념하기도 하는데, 이웃나라 눈으로 보자면 너무 배부른 소리 같더라. ‘한국’이라는 나라는 흔한 연필과 볼펜과 종이조차 엉터리이다. 이 나라가 내놓는 지우개도 얼마나 엉터리인지 모른다. 이 나라에서 온붓(만년필)을 내놓을 수 있을까? 설마, 꿈조차 못 꾼다. 이 나라는 붓 한 자루에 종이 한 자락조차 제대로 여미지 못 하면서 갖은 총칼(전쟁무기)에 펑펑질(핵발전소)에 돈을 들이붓는다. 어느덧 ‘한국 연필·볼펜’은 ‘중국 연필·볼펜’보다 뒤떨어졌다. 딴소리 같으나, ‘돌봄이(의사)’는 좀 모자라거나 없어도 되지만, 붓 한 자루는 없으면 안 된다. 돌봄이를 가르치려고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기보다는, 종이 한 자락을 제대로 지어서 누리는 길에 제대로 돈을 써야 하지 않을까?
바탕(기초)은 바로 손을 쓰는 곳에서 비롯한다. 오늘날에도 호미와 낫은 대장간에서 손으로 짓는다. 손으로 빚는 살림은 오래오래 가면서 우리 곁에 있되, 손으로 안 빚는 살림은 얼마 안 가서 스러진다. 손빛을 담아서 손씨를 살리는 손살림이 흐르는 손글이라면 한결같이 반짝일 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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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필로 쓴 글자는 매우 뚜렷이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11쪽)
더욱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연필 깎는 시간 정도는 한숨 돌리고 싶다. (25쪽)
조바심 나는 마음을 누르면서 끈기 있게 하다 보면 끝내 풀리지 않는 적은 거의 없다. 그러느라고 5분씩 10분씩 시간을 써도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74쪽)
지금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붓으로 쓴 편지는 물론이고 봉투에 넣는 편지를 쓰는 일도 줄었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편지를 받는 일도 적어졌다. 매일 받는 우편물 중에서 봉투에 넣어 봉한 편지를 발견하면 정말 기쁘다. (104쪽)
수험생의 필통을 보면 여동생에게 빌려오기라도 했는지 꽃이나 병아리가 달려 있기도 하다.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니 어쨌든 입학시험쯤 되면 진지해지는 모양이다. (175쪽)
#文房具56話 #串田孫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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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문방구》(구시다 마고이치/심정명 옮김, 정은문고, 2017)
지우개 하나가 동그랗게 작아져 있다
→ 지우개 하나가 동그랗게 작다
→ 지우개 하나가 동그랗게 줄었다
16
거리를 걸으면 압지를 나눠주던 시절이 있었다
→ 거리를 걸으면 누름종이를 나눠주기도 했다
49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손해를 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부질없다거나 아깝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 덧없다거나 잃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74
문진을 남에게 받기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한 이유는 습자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 누름돌을 받기도 하고 손수 짓기도 했는데 글씨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 누름쇠를 받기도 하고 몸소 짜기도 했는데 붓글씨 때문이다
101
개인적인 편지를 받는 일도 적어졌다
→ 따로 글월을 받는 일도 드물다
→ 수수하게 글을 받는 일도 줄었다
104
필통, 필갑 그리고 시스
→ 붓집, 붓자루, 칼자루
→ 글붓집, 붓집, 칼집
174
sheath 칼집·칼자루 칼주머니·칼꽂이
나는 그런 도구를 결코 이색분자 취급하지 않는다
→ 나는 그런 살림을 다르게 다루지 않는다
→ 나는 그런 연장을 튄다고 여기지 않는다
18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