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7.

숨은책 1050


《우리黨의 綱領·政策》

 유진오·김대중 엮음

 신민당

 1969.



  1967년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신민당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사슬로 온나라를 꽁꽁 틀어막은 박정희한테 맞서려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았다고 하되, “박정희한테 맞서는 길”은 있어도 “온나라 수수한 사람하고 어깨동무하는 살림”하고는 아직 한참 먼 모둠이기도 했습니다. 이나마 있었기에 작게라도 촛불을 피워서 얼음나라를 녹였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1969년에 나온 《우리黨의 綱領·政策》을 가만히 훑으면, 1989년에도 2019년에도 그리 안 바뀐 틀이로구나 싶고, 2025년에 우두머리 한 사람을 끌어내리고서 새로 나라일꾼을 뽑는 자리에 이르러도 벼슬꾼(정치꾼) 머릿속은 그대로이구나 싶기도 합니다. 요새는 나이든 사람도 어리거나 젊은 사람도 글이나 책을 꺼리면서 그림(동영상)만 들여다본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왜 글이나 책을 꺼릴는지 살펴봐야겠지요. “읽을 글”이나 “읽힐 책”을 얼마나 썼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목소리만 높인다거나 못 알아들을 글을 그냥그냥 먹물티를 내면서 높다랗게 내세우지 않았나 하고 돌아봐야지요. 나라일꾼(대통령)으로 서고 싶다면, 먼저 “집안일을 맡으면서 아이를 돌본 서른 해를 살림하기”부터 해야지 싶습니다. 고을일꾼(시도지사·군수·구청장)으로 서고 싶다면, 먼저 “집안일을 맡으면서 아이를 돌본 스무 해를 살림하기”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작은벼슬(국회의원)이라도 얻고 싶다면 “집안일을 맡으면서 아이를 돌본 열 해를 살림하기”는 밑동으로 두어야 할 테고요. 아이곁에 설 줄 알고, 집살림을 추스를 줄 알아야, 고을도 나라도 아름답고 밝게 다스릴 테니까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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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7.

숨은책 1047


《新羅夜話(서라벌 이야기)》

 손대호 글

 선일사

 1956.1.25.첫/1962.3.15.4벌



  서울에서 가난한 책벌레로 살던 무렵, 도무지 사읽을 주머니는 안 되어 책집에서 늘 서서읽기를 했는데, 헌책집에서 서서읽기를 할라치면 책마다 외치는 소리에 귀가 쟁쟁거렸습니다. “나 좀 봐!” “어이, 여기도 봐!” “얘야, 나를 봐주렴!” 책마다 지르는 소리로 귀청이 떨어질 듯했지만,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는 듯했습니다. 책한테 다가가서 “그렇지만 널 장만할 주머니는 아닌걸? 널 샀다가는 오늘도 저녁은 굶어야 하는데?” 하고 속삭입니다. “걱정 마. 하루쯤 굶어도 되잖아? 아니, 사나흘쯤 굶어도 안 죽잖아?” “너는 밥을 안 먹는다고 나더러 굶으란 얘기이니?” “아냐. 우리도 밥을 먹어?” “뭔 밥을 먹는데?” “우리는 우리를 매만지는 사람들 손길이라는 밥을 먹지.” “…….” 아무튼 《新羅夜話(서라벌 이야기)》도 갖은 책소리를 듣다가 집었습니다. 또 저녁을 굶겠구나 하고 여겼습니다만, 더는 고개를 돌릴 수 없더군요. 이 책은 “네가 오늘 날 집어들지 않으면 난 이제 죽는다구. 난 이제 사라져버려!” 하더군요. 이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책끝에 몇 글씨 남겼습니다. 한때 읽혔어도 한참 잊힌 책이 울부짖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할 수 없던 마음이라고 할까요.


2000.3.11.흙. 용산 뿌리서점. 폐지가 되려던 책을 건진셈인가. 어느 책이든 폐지가 될 수 있지. 사람도 죽듯 책도 죽을 수 있지. 살아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야지.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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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7.

숨은책 1046


《改訂 歷代朝鮮文學精華 卷上》

 이희승 엮음

 박문출판사

 1947.7.20.



  주시경 님이 쓴 《국어문법》을 읽고서 길을 찾았다고 밝힌 이희승 씨요, ‘국어학자’라는 이름으로 살았지만 정작 이분이 걸은 길은 ‘한문학자’였고, 일본앞잡이 모윤숙 같은 사람을 감싸던 힘켠(권력자)에 선 나날입니다. 1961년에 이분이 엮었다는 ‘민중서관 국어대사전’은 온통 일본 낱말책을 훔친 티가 물씬 났고, ‘엣센스 국어사전’에서 ‘엣센스’도 일본 낱말책 이름을 슬그머니 따왔습니다. ‘이희승 국어사전’을 첫줄부터 끝줄부터 읽어 보면,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이 얼마나 잔뜩 실렸는지 놀랄 만한데, 막상 통째읽기를 한 사람이 드문 탓인지, 속낯을 모르는 분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굴레에서 벗어난 뒤에 나온 《改訂 歷代朝鮮文學精華 卷上》 같은 책에서도 엿보듯, 이희승 씨는 한문을 좋아합니다. 우리 옛글을 읽어내자면 한문을 모르면 안 될 터이지만, ‘한문이라는 글’이 아닌 ‘입에서 입으로 이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려고 했다면, ‘국어학자’나 힘켠이 아닌 ‘말글지기’에 ‘작은걸음’을 내딛었을 테지요. 젊은날에 조선어학회에 몸담은 적이 있다지만, 그 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이르는 길에 어떤 발걸음이었는지 찬찬히 짚노라면 딱할 뿐입니다. 우리나라 말밭(국어학계)이란 참 초라하구나 싶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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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1049


《뱅뱅클럽》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글·사진

 김성민 옮김

 월간사진

 2013.3.11.



  우리나라 빛밭(사진계)은 고이다 못해 이제는 한 줌 재로도 안 남고 사라졌다고 느낍니다. ‘유리원판’에서 ‘대형원판’을 거쳐 ‘중형필름’과 ‘소형필름’을 지나는 동안에도 몇몇이 또아리를 틀 뿐이었고, ‘디지털’로 넘어올 적에도 몇몇이 거머쥐며 저희끼리 다투느라, 바야흐로 ‘누구나 찍고 즐기고 나누는’ 오늘날에는 이 나라 빛밭은 그야말로 초라하고 후줄근할 뿐입니다. 붓을 쥔 사람은 ‘쓰기·적기·옮기기·그리기’를 한다면, 쇠(찰칵이)를 쥔 사람은 ‘찍기·담기·얹기·새기기’를 합니다. 글담(문단권력)도 드세기는 하지만 빛담(사진권력)도 드센 나머지, ‘누구나 찍고 즐기고 나누는’ 물결을 이루는 한 줌짜리 사진잡지나 사진평론이나 사진전시가 얼마나 부질없는 멋자랑인지 환히 드러날 텐데, 아직 이런 수렁에서 헤매는 판입니다. 《뱅뱅클럽》은 불화살(총탄)이 춤추면서 숱한 사람들이 고꾸라져 사라지는 싸움터 한복판에서 작은쇠(소형사진기)를 쥐고서 손을 덜덜 떨며 ‘불바다(참혹한 전쟁현장)’를 찍어서 남긴 사람들이 겨우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불바다에서 살아남은 이 가운데 ‘케빈 카터’도 있는데, 글담을 휘두르는 이는 난데없이 케빈 카터를 벼랑으로 내몰아 죽음길로 걷어찼습니다. 요즈음 이 나라는 ‘딥페이크’를 핑계로 들며 ‘졸업사진책’조차 안 냅니다. 이른바 구더기 무서워 된장 못 담그는 꼴입니다. 빛이 왜 빛이요, 빛을 담는 길인 ‘사진’이 어떻게 사진인지, 아이곁에 서서 아이가 알아들을 목소리로 사근사근 들려주려는 빛바치(사진가)가 아주 몇 사람조차 없다시피 한 나머지, ‘졸업사진책’을 안 내거나 굴레(법)만 더 세우면 되는 줄 잘못 아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글이 왜 글인지 가르치고 배워야 글빛이 살아나고, 빛이 왜 빛인지 배우고 가르쳐야 빛밭이 깨어납니다. 돈만 바라보는 직업훈련으로는 글도 땀도 빛도 붓도 덧없습니다. “어느 나라 글인지 알쏭달쏭한 옮김말씨에 일본말씨로 늘어놓는 글·그림(창작·비평)”으로는 그저 더 막장으로 치달을 뿐인 빛밭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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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916


《주 시경 선생의 생애와 학문》

 허웅·박지홍 글

 과학사

 1980.3.30.



  날마다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하루를 누구나 누린다지만, 왜 말을 할 수 있는지 짚거나, 어떻게 글을 쓸 수 있는지 되새기는 사람은 적은 듯싶습니다. 마음을 소리로 옮긴 말을 할 수 있기에 함께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누면서 이 삶을 노래합니다. 말은 ‘아이’가 아닌 ‘어른’이 터뜨립니다. 이 별에서 손수 짓는 하루가 놀랍고 아름답고 새롭게 사랑인 줄 알아볼 때마다 하나하나 이름을 붙였기에 ‘말’입니다. 모든 말이란, “손수 사랑으로 빚는 마음에서 깨어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마다 보금자리를 이루며 푸른숲살림을 짓는 길하고 등진, 바야흐로 서울(도시)을 세우며 나라(정부)를 닦는 무리는 “손수 짓는 말”을 꺼렸고, 나라무리(정부기관)는 사람들을 옥죄어 ‘누구나 말’을 가두거나 길들이려 했어요. 이러면서 ‘글’이 생겨요. 글은 처음에 ‘굴레’였습니다. 그런데 글을 만든 사람이 굴레로 쓰려 했어도, 사람들은 말눈 못잖게 글눈을 틔웠고, 우리나라에서는 ‘한말(한겨레말)’에 이은 ‘한글(한겨레글)’로 이야기를 펴는 길을 엽니다. 《주 시경 선생의 생애와 학문》은 ‘한글 살림길’을 처음으로 연 주시경이라는 사람이 걸은 길을 짚습니다. 우리 스스로 말글을 가꾸며 이 살림을 북돋우려는 마음이라면 바로 ‘한글과 주시경’을 보고 배워서 익힐 노릇인데, 막상 주시경 살림빛은 까맣게 잊힙니다. 우리는 언제쯤 속눈을 틔우며 말씨앗을 심을 수 있을까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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