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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5.6.
인문책시렁 424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1.10.
고래는 바다에서 삶을 짓기에 바다를 말할 만합니다. 사람은 들숲메에 깃들면서 바다를 품는 삶을 누리기에 들숲메바다를 두루 말할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들도 숲도 메도 바다도 좀처럼 말을 못 합니다. 들소리를 못 듣고, 숲빛을 못 보고, 멧자락에 깃들지 않고, 바다를 사랑하지 않거든요.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를 읽는데, ‘흰고래’가 ‘고래잡이배’하고 싸우는 줄거리만 가득합니다. 정작 흰고래가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첫머리에 살짝 바다와 아이 이야기를 짚는가 싶더니, 이내 끝없는 쌈박질과 죽임질만 다룹니다. 이 책은 “고래잡이를 죽인 흰고래”라든지 “흰고래를 죽이려는 사람”쯤으로 이름을 붙여야 어울릴 텐데 싶습니다.
바다는 모든 숨결을 받아들이는 바탕입니다. 바다는 받아들여서 새롭게 배는 밭입니다. 바다가 드넓기에 비구름이 태어나고, 비구름이 맑은 물줄기를 들숲메에 흩뿌리기에 샘이 솟으며 내가 흐릅니다. 이윽고 이 물줄기는 바다로 돌아가서 바다를 새롭게 북돋아요.
“바다를 말하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바다가 흐르는 숨결을 들려줄 노릇입니다. 흰고래가 바다를 말한다면, 흰고래가 살아숨쉬는 바다가 어떻게 이 별을 살찌우고 일으키는지 짚을 노릇입니다. 바다는 싸움터일 수 없고, 바다에서 돈을 얻으려는 얕은 눈짓으로는 하나도 못 배웁니다.
ㅍㄹㄴ
뾰족한 산호초의 충격조차 견디지 못할 만큼 허술한 배를 타고 거친 파도에 맞서려고 하는 그들의 용기와 불굴의 의지를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20쪽)
그들(사람)이 나를 향해 감탄과 놀람의 함성을 지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으쓱해지곤 했다. (34쪽)
나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을 꼬리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것도 모자라 나는 배를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쳐 가던 인간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97쪽)
나는 끈질기고 집요한 인간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 당연히 그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바다나 육지 어느 곳에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지, 언젠가 그들이 탐욕을 채우는 모습을 보게 될지 궁금해졌다. (107쪽)
할머니 고래들과 바다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위대한 여행을 떠나지도 못한 채, 인간의 탐욕을 피해 도망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112쪽)
#LuisSepulv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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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루이스 세풀베다/엄지영 옮김, 열린책들, 2025)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가운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 물결이 밀려오고 밀려간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 바다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우리는 한동안 가만히 앉았다
13쪽
어떻게 물 위에서 움직이는지
→ 어떻게 물에서 움직이는지
→ 어떻게 물낯에서 움직이는지
19쪽
대양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가 되어 완전히 혼자 살 수 있을 때까지
→ 바다에서 가장 커다란 숨붙이로 혼자 오롯이 살 수 있을 때까지
→ 너른바다에서 가장 커다란 몸으로 혼자 잘 살 수 있을 때까지
27쪽
나를 향해 감탄과 놀람의 함성을 지를 때마다 괜히 기분이 으쓱해지곤 했다
→ 나를 보며 놀라서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저 으쓱했다
→ 나를 보며 놀라서 외칠 때마다 어쩐지 으쓱했다
34쪽
조금 전에 본 것처럼 크고 웅장한 배였다
→ 조금 앞서 보았듯 커다란 배이다
35쪽
내가 본 어떤 장면도 그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 내가 본 어떤 모습도 그한테는 새롭지 않았다
50쪽
계절이 바뀌면서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일조량도 줄어들었다
→ 철이 바뀌면서 낮이 차츰 짧고 해도 줄어든다
→ 철이 바뀌어 낮이 조금씩 짧고 볕도 줄어든다
57쪽
너는 당장 대장정을 떠나지는 않을 거야
→ 너는 바로 먼길을 떠나지는 않아
→ 너는 곧장 멀리 떠나지는 않아
58쪽
비몽사몽간에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도
→ 꿈결에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줄 느낄 때도
→ 멍하니 배가 가까이 다가온다고 느낄 때도
77쪽
나는 끈질기고 집요한 인간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졌다
→ 나는 끈질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 나는 물고늘어지는 사람을 볼 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107쪽
수로의 출구 쪽에 있던 배에서도 소형 보트 여러 척을 물 위에 띄워 놓았다
→ 물골 밖에 있던 큰배도 작은배 여럿을 띄운다
→ 뱃길 너머에 있던 배도 쪽배 여럿을 띄운다
112쪽
할머니 고래들과 바다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다
→ 할머니 고래하고 바다 모든 이웃이 바라는 대로 못한 셈이다
→ 할머니 고래하고 바다 모든 숨붙이 뜻대로 못 이룬 셈이다
11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