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간 나팔꽃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선정작, 2021 북스타트 선정 도서 글로연 그림책 19
이장미 지음 / 글로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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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5.2.

그림책시렁 1575


《달에 간 나팔꽃》

 이장미

 글로연

 2020.10.1.



  누구나 스스로 하루를 그립니다. 즐겁거나 안 즐겁거나 모두 우리 손으로 짓는 오늘입니다. 남이 내 하루를 그려 주지 않습니다. 남이 내 삶을 보내지 않아요. 나는 나로서 일어서며 나아갈 길을 걷습니다. 너는 너대로 네 삶을 그리기에 서로 마주합니다. 사람도 새도 개구리도 풀꽃나무도 스스로 하루를 그려요. 밤에 눈을 감고 쉬면서 그리는 꿈이요, 새벽에 눈을 뜨면서 펴는 살림입니다. 《달에 간 나팔꽃》은 나팔꽃 한 송이가 어느 밤에 달을 보고는 달한테까지 덩굴을 뻗고픈 꿈을 품고서 이 꿈으로 살아낸 길을 들려줍니다. 왜 굳이 ‘달’을 골랐는지 갸웃할 일이지만, 낫거나 나쁜 꿈이란 없습니다. 풀꽃나무나 새나 개구리라면 ‘달’은 ‘돌’일 뿐인 줄 알 텐데, 마치 사람처럼 그린 듯해서 아쉽습니다. 풀꽃나무라면 달이 아니라 ‘별’을 그려서 나아간다고 느껴요. 오늘은 이 별에서 싹을 틔워서 자라는 푸나무요, 모레는 저 별에서 씨앗을 깨워서 푸르게 뻗고픈 푸나무라고 할 만합니다. 매캐하고 갑갑한 서울 한복판부터 풀숲과 나무숲으로 포근히 덮는 꿈부터 품을 만하고요. 부디 서울과 서울곁 모두 잿더미(시멘트·아스팔트)는 이제 멈추고서 풀씨와 나무씨를 심는 손길과 마음길이 늘어나기를 빌 뿐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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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0. 한달읽기 한해읽기



  여러 어린배움터에서는 ‘온읽기’를 한다. ‘책 하나를 통째로 읽기’인데, 우리나라 배움책(교과서)은 줄거리나 한두 대목만 슬쩍 실을 뿐이라서, 이렇게 겉훑기를 하기보다는 ‘온책읽기’를 해야 제대로 헤아려서 알 수 있다는 배움길이라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나는 좀 갸우뚱한다. 배움책은 책을 통째로 못 싣고, 아이들한테 책 하나를 통째로 가르칠 수도 없다. 배움길이란,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나설 노릇이다. 길잡이로서는 “자, 이런 책이 있단다. 책을 다 알려줄 수는 없고, 같이 다 읽을 수도 없지만, 너희가 스스로 짬을 내어 느긋이 읽어 보렴.” 하고 들려주고서 마쳐야 맞지 않을까? ‘온읽기’까지 시키기보다는 ‘고루두루 온갖 책을 알려주고 짚어주기’를 할 적에 배움터다우리라 본다.


  배움터에서 쓰는 배움책이란, 으레 ‘여섯달읽기’나 ‘한해읽기’이다. 책 하나를 놓고서 꽤 오래도록 짚고 다루고 되새기고 돌아보고 다시 살피고 또 헤아린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가 헤아릴 ‘읽길(읽는길)’이라면, 책 하나를 한 해를 통틀어서 늘 곁에 놓고서 틈틈이 되읽는 매무새 하나가 있어야 할 만하다.


  슥 다 훑었다고 해서 읽기를 마쳤다고 여기지 않는다. 첫줄부터 끝줄까지 훑었으면 ‘훑기 애벌’이다. ‘읽기’란, 이야기와 줄거리를 우리 스스로 저마다 다른 삶에 맞추어서 풀어내고 품는 틈을 내고서 차분히 돌아보는 날을 ‘이어’서 ‘이야기’를 ‘일구’고는, 내가 나로서 이곳에 ‘있는(사는·살림하는·사랑하는)’ 뜻을 느끼고 헤아려서 꿈을 스스로 ‘이루’려는 하루를 누리면서 ‘익히’는 길이라고 여겨야 옳다고 본다. 그러니까 오늘날 숱한 사람들은 ‘읽기’를 모르기도 하고, 배운 적이 없고, 가르치지 못 할 뿐 아니라, 제대로 다가서지도 못 하곤 한다.


  이를테면 낱말책은 ‘온삶읽기’를 하는 꾸러미이다. 낱말책을 슥 훑었기에 치워도 될까? 아니다. 어제 찾아본 낱말을 오늘 다시 찾아보더라도 낱말뜻과 낱말결과 낱말빛을 새롭게 바라보게 마련이다. 낱말책은 우리가 숨을 내려놓는 끝날까지 곁에 두는 ‘온책’이다. 이러한 낱말책과 비슷하게, 우리 마음을 움직이거나 북돋우는 책이라면 여섯 달이나 한 해쯤, 적어도 한 달쯤, 자리맡에 놓고서 날마다 몇 줄씩 되새길 노릇이지 싶다. 이렇게 ‘한달읽기’나 ‘한해읽기’를 해본다면, 굳이 붓바치(비평가)가 책을 풀어내는 글을 안 읽어도 우리 눈과 마음과 넋으로 모든 책을 헤아릴 뿐 아니라, 알아볼 만하다고 느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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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4.30. 풀한테 손발이 없을까? (+ 그릇꽃)



  해파리한테는 골(뇌)이 없다고 잘못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해파리는 해파리로서 골이 있다. 해파리는 해파리라는 숨빛으로 바라보아야 해파리가 어떤 몸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해파리가 사람을 바라보며 “넌 왜 몸을 무겁게 치렁치렁 달고 살아?” 하고 묻는다면 사람으로서 무어라 대꾸하겠는가? 해파리가 사람을 쳐다보며 “넌 골이 크다고 여기는데, 그렇게 커다란 골로 무슨 일을 하니? 이 별에서 총칼을 만들어서 마구마구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짓을 그렇게 커다란 골라 만드니?” 하고 묻는다면 무어라 말하겠는가.


  풀한테 ‘손’이나 ‘발’이 없다고 여기는 말은 어쩐지 안 맞지 싶다. 아니, 하나도 맞을 수 없다. 풀꽃나무가 사람을 보면, “어머, 쟤들은 어떻게 뿌리도 잎도 줄기도 가지도 없어? 저러고 어찌 살아?”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정작 풀꽃나무는 사람한테 뿌리나 잎이 없어도 걱정하거나 따지지 않으니까.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림을 지으려면 늘 들숲메바다를 품을 노릇이다. 우리가 시골을 등지고 서울에 뿌리를 내리면서, 들숲메바다를 통째로 잊어버린 뒤에, 조금이라도 푸른빛이 그리워서, 숨통을 틔우고 싶은 사람이 처음으로 “서울(도시) 겹집(아파트)에서 집에 꽃그릇(화분)을 들였지 싶”다. 1970∼80년대까지도 ‘도시 단독주택’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마당에 풀꽃나무를 두었을 뿐인데, 풀꽃나무를 더 두고 싶으나 자리가 모자란 탓에 그제서야 꽃그릇도 마련해서 곳곳에 더 놓기도 했다.


  ‘분재(盆栽)’는 일본말이고, 일본살림이다. 우리나라는 ‘그릇꽃’을 굳이 안 했다. 풀과 꽃과 나무를 그릇이 담아서는 풀꽃나무가 제 숨빛을 잊고 잃도록 괴롭히는 굴레라고 여겼다. 우리나라는 ‘그릇풀꽃’이 아닌 꽃밭과 마당과 뒤꼍을 꾸렸다. 우리나라는 ‘그릇풀’로 풀꽃나무를 길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서려면 발바닥을 땅바닥에 디디며 일하고 놀아야 하듯, 풀꽃나무는 언제나 드넓은 들숲메에 뿌리를 내리고 해바람비를 머금으며 스스로 푸르게 빛날 노릇이라고 여겼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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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4.30. 마음으로 함께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인천에서 나고자랐으나, 1994년에 서울에 있는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니, ‘인천에 남은’ 또래는 “넌 이제 인천사람 아니네?” 하고 여겼습니다. “뭔 소리야? 그런 말이 어딨어?” “서울물을 먹으면 사람이 바뀌어.” “난 서울물이 아니라 미국물을 먹어도 언제나 나일 뿐이야.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배우면 스스로 바꾸어야 하는데, 어떻게 나를 안 가꾸고 안 배우면서 살 수 있니?” “넌 서울에 가면 바뀔 테니까 이제 인천사람이 아니지. 벌써 서울사람이 된 듯한데?” “뭔 소리니? 나는 날마다 새로 배우기에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니까 날마다 바뀌는 사람인데, 고작 인천에서 서울로 삶터를 옮긴 대서 ‘사람이 바뀐다’면, 그때에는 ‘맛갔다’고 해야지. 나는 앞으로 어디에서 살든 인천말씨를 건사하면서 늘 나답게 살 생각이야. 너야말로 사람이 바뀌지 마.”


  저는 1994∼2003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말씨에 물들지 않고서 인천말씨로 살았습니다. 2003년 가을부터 충북 충주를 오가며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과 책을 갈무리할 적에도 충주말씨나 음성말씨나 ‘이오덕 말씨’에 물들지 않고서 ‘인천에서 나고자란 내 말씨’를 그대로 이었습니다. 2007년 4월 5일에 인천으로 돌아오니 그때 동무들이 하는 말. “넌 어떻게 안 바뀌냐? 야, 딴 애들은 한 달만 서울에서 일해도 바뀌던데, ○○이 있잖아, 걔 좀 봐.” “너흰 내가 예전에 한 말을 잊었니? 나는 늘 배우는 사람이라서 난 똑같은 적이 아예 없어. 다만, 내가 쓰는 말씨는 앞으로도 한결같겠지. 말씨는 언제나 똑같을 테지만, 말씨는 안 바뀔 테지만, 말씨에 담는 마음과 생각은 앞으로도 언제나 새롭게 가다듬을 생각이야.”


  2011년에 전남 고흥으로 옮기고서 어느새 열다섯 해를 전남 시골내기로 살아가지만, 제 입에서 흐르는 말씨는 ‘1975년 인천말씨’ 그대로입니다. 인천 도화1동과 주안동과 신흥동3가와 신선동과 만석동과 용현동과 숭의동과 송림동과 송현동과 송월동과 관동과 신포동과 전동 …… 내동 사동 송학동 연안동 산곡동 화수동 화평동 부개동 관교동 옥련동 …… 이제는 날이 갈수록 오래동무가 살던 마을이름과 골목이름이 차츰 가물가물한데, 인천 새하늬마높 골골샅샅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동무가 누빈 길을 모두 거닐면서 모든 곳이 제 발바닥과 손바닥과 눈코귀입에 고스란합니다. 그래서 제 귀로는 ‘만석동 말씨’와 ‘화수1동 화수2동 말씨’가 다른 줄 느낍니다. 도원동 말씨와 유동 말씨와 용동 말씨도 다른 줄 느끼고, 송월동1가와 송월동2가 말씨가 다른 줄 느껴요.


  누구는 묻지요. “무슨 인천말씨(인천사투리)가 있다고 그래?” 저는 되묻습니다. “서울사람은 고흥말씨와 장흥말씨와 보성말씨가 뭐가 다른 줄 몰라요. 그러나 보성사람은 고흥말씨와 장흥말씨하고 다른 보성말씨를 쓰는 줄 알고, 읍내와 면소재지뿐 아니라 마을(리) 말씨까지 다 다른 줄 낱낱이 느끼고, 마을에서 집집마다 말씨가 다른 줄 느껴요. 거꾸로 전라남북도 사람은 인천말과 부천말과 안산말이 뭐가 다른 줄 못 느끼지만, 부천사람은 인천말뿐 아니라 부평말도 다른 줄 느끼고 알아요.”


  지난 3월 28일에 태어난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즐기고 나누는 조촐한 자리를 4월 30일에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꾸렸습니다. ‘인천에서 나고자란 인천작가’라지만, 정작 인천시립도서관에서 여태 책수다를 해본 적이 없고, 전남 고흥에서 살아도 막상 고흥군립도서관이나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책수다를 한 일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뜬금없다’ 싶은 부산시 여러 도서관에서 여러 책수다를 폈고, 2025년에는 부산 마을책집 〈책과 아이들〉에서 ‘상주작가’로 일곱 달 동안 여러 일을 꾀하려고도 합니다. 그래도 전남 순천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푸름이하고 책수다를 딱 한 자리 연 적은 있군요.


  ‘시·군·구 도서관’에서 책수다나 이야기(프로그램·강연)를 펴려면, ‘시·군·구’한테 밉보일 말이나 글을 한 자락이라도 써서는 안 됩니다. 시장이나 군수나 구청장이나 도지사가 ‘지역개발·부흥·일자리창출·경제성장’을 이루겠다면서 밀어붙이는 여러 삽질(토목공사)을 나무라거나 따지는 글꾼(작가)은 어떤 책수다도 열지 못 합니다. 이른바 글쓰기를 하며 글삯을 번 1992년부터 2025년까지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책수다를 펴려고 책을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 배운 바를 갈무리하려고 책을 썼고, 아직 아이조차 없던 무렵에도 “나중에 우리 아이한테 물려주려는 마음”으로 책을 내놓았습니다. 나부터 스스로 배우려고 쓰는 책이라서, 나를 이웃이며 동무로 여기는 누구나 함께 즐기려는 뜻으로 책을 쓰고 낱말책을 여밉니다. 2016년에 내놓은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하고, 2025년에 내놓은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은 인천과 서울과 양구와 충주와 전남과 고흥과 부산이라는 고장이 무엇보다 크게 밑거름이 되어서 태어났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늦어도 2034년에는 새 낱말책으로 내놓으려고 서른 해째 붙잡는 꾸러미가 있는데, 오늘 하루도 등짐살이를 기쁘게 이으려고 합니다.


  발걸음이 닿는 고을마다 그 고을에 뿌리내린 작은책집으로 찾아가서 몇 자락씩 책을 사들여서 온나라 온사람 마음이 흐르는 말빛과 말씨와 말결을 숲빛으로 풀어내는 길을 차곡차곡 여미려고 합니다. 알아볼 사람을 바라면서 쓰는 책이 아닌, 스스로 알아보면서 쓰는 책입니다. 아무리 인천이 ‘공장도시·침대도시·마계도시’라 하더라도, 뿌연 밤하늘 너머로 틀림없이 별이 있습니다. 모든 곳이 ‘도시’라는 이름보다는 ‘마을’과 ‘골목’과 ‘살림터’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느슨히 신나게 뛰노는 곳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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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759 : 전쟁 인간 가장 참혹 고통 주는 폭력 그 이상 이하


전쟁은 인간에게 가장 참혹한 고통을 주는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싸움은 사람한테 가장 끔찍한 막짓일 뿐이다

→ 싸움은 사람을 가장 사납게 괴롭히는 짓이다

《냉전의 벽》(김려실과 일곱 사람, 호밀밭, 2023) 69쪽


우리말 ‘가장’은 오직 하나만 가리킬 적에 씁니다. 가장 좋아도 한 가지요, 가장 나빠도 한 가지입니다. 이 대목을 헤아리면 ‘가장’을 알맞게 다룰 만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일본을 거쳐 스민 옮김말씨입니다. 우리말씨로는 ‘-뿐’을 써요. 또는 “이도 저도 아니다”처럼 씁니다. 싸움길이란, 싸움짓이란, 싸움수렁이란, 사람으로서 가장 끔찍한 막짓입니다. 죽이고 죽는 짓이란 그저 괴롭히면서 사납게 휩쓸리는 수렁입니다. ㅍㄹㄴ


전쟁(戰爭) : 1.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 ≒ 군려·병과·병혁·전역·전화 2.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간(人間) : 1.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 상의 고등 동물 2. 사람이 사는 세상 3. 사람의 됨됨이 4. 마음에 달갑지 않거나 마땅치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참혹(慘酷) : 1. 비참하고 끔찍함 2. 지나칠 정도로 한심함

고통(苦痛) :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 ≒ 고한

폭력(暴力) :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할 때에 쓰는, 주먹이나 발 또는 몽둥이 따위의 수단이나 힘. 넓은 뜻으로는 무기로 억누르는 힘을 이르기도 한다

이상(以上) :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

이하(以下) : 1.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적거나 모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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