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미친 김 군
김동성 지음 / 보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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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4.18.

그림책시렁 1571


《꽃에 미친 김군》

 김동성

 보림

 2025.1.7.



  1700년대를 살았다는 김덕형 님 이야기를 다룬 《꽃에 미친 김군》을 읽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돈·이름·힘을 물려받은 나리(양반)는 손에 흙이나 물을 묻힐 일이 없이 한갓지게 글붓만 만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김덕형 님은 기꺼이 흙을 만지면서 풀꽃나무를 곁에 두었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손에 흙을 묻히면서 풀꽃나무를 만지는 차림새는 어떠했을까요? 이 대목을 더 살피지 못 한듯해서 아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호미는 날이 너무 작군요. 날이 좁은 호미(뻘호미)는 뻘밭에서 바지락을 캘 때 씁니다. 밭에서 쓰는 호미(밭호미)는 날이 펑퍼짐하고 큽니다. 밭호미는 ‘작은삽’이라 여길 만합니다. 다만 밭에서도 김매기를 할 적에는 뻘호미처럼 날이 좁은 호미를 쓰기도 합니다. 온갖 풀꽃을 사랑하는 분이 곁에 두는 꽃뜰이라면 흙이 까무잡잡할 테지요.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꽃뜰을 보면, 흙이 너무 허옇습니다, 이만 한 풀꽃밭이라면 흙이 까무잡잡해야 할 텐데 아리송합니다. 게다가 이 그림책에 깃든 풀꽃을 본다면 “심은 풀꽃”만이 아닌 “스스로 돋는 풀꽃”도 많은데, 흙이 허여멀걸 수 없습니다. 또한 달걀꽃(망초)이 너무 많은데, 달걀꽃은 죽어가는 흙인 곳에서 흐드러집니다. 살뜰히 돌본 꽃뜨락에도 이따금 달걀꽃이 오를 수 있으나, 기름진 꽃뜰에서는 달걀꽃이 시들시들하고 조그맣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나팔꽃은 울타리나 기둥 언저리에 심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나팔꽃을 보려고 따로 대나무 작대기를 안 박았습니다. 그나저나 가느다란 대나무를 어떻게 박았을까 하고도 곱씹을 노릇입니다. 가느다란 작대를 박으면 잔바람에도 쉽게 쓰러집니다. 우리나라에도 더러 “줄기를 휜 소나무”가 있기도 하지만, “줄기를 휜 소나무”는 일본 꽃뜰에 흔합니다. 우리는 “곧고 길게 오르는 소나무”를 높이 여겼습니다. 꽃사랑이라면 소나무 줄기나 가지를 함부로 안 휘리라 봅니다. 곧고 길게 올려야 맞을 테지요. 더구나 1700년대인걸요.


  줄기가 휜 소나무 곁으로 등꽃이 수북하게 드리우는데, 등꽃은 어떻게 이처럼 드리울 수 있을까요? 다른 나무나 기둥을 타야만 꽃이 드리우는 등나무입니다. 등꽃이 치렁치렁하려면 따로 굵고 크게 기둥과 지붕을 대야 하지만, 이 그림책에서는 기둥도 지붕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도 버팀대(지주)를 세우기는 했을 테지만, 버팀대로 땅감이나 고추나 오이를 돌본 곳은 일본이라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요새야 우리나라도 어디에서나 버팀대를 놓지만, 우리는 버팀대를 그리 안 세운 흙살림이라는 대목을 살펴보아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꽃그릇(화분)을 아예 안 두다시피 했습니다. 일본은 꽃그릇을 따로 집안에 들이는 꽃꽂이를 예부터 즐기고 요새도 즐기지만, 우리는 꽃그릇이 아닌, 그저 흙이라는 터에 숲빛 그대로 자라는 풀꽃나무를 즐겼습니다.


  우리나라 꽃뜨락은 “사람이 함부로 안 건드리면서 아주 가볍게 어루만지는 길”입니다. 1700년대를 살던 김덕형 님 마당에 꽃그릇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20세기 첫무렵에 비로소 들어왔다고 여기는 살살이꽃(코스모스)인데, 어떻게 18세기 마당에 흐드러질 수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박제가 님이 남긴 글에 김덕형 님을 ‘金君’으로 적었다지만, ‘군·양’으로 가리키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마구마구 퍼졌습니다. 이제는 일본말씨인 ‘군·양’을 함부로 안 씁니다. 비록 한문에 ‘金君’으로 남았다고 하더라도, “꽃에 미친 김군”이 아닌 “꽃에 미친 김씨”쯤으로 옮겨야 알맞으리라 봅니다. 수수하게 “꽃아이”나 “꽃돌이”로 옮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문 아닌 한글과 우리말로 삶과 살림과 사랑을 나누는걸요. 더 헤아려 본다면, 김덕형이라는 분은 “꽃에 미쳤다”기보다는 “꽃사랑이”로 가리켜야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어린이한테 꽃빛을 들려줄 그림책이라면 “꽃사랑 하루”라든지 “꽃을 사랑한 하루”라든지 “꽃을 사랑한 사람”이라든지 “꽃을 사랑한 아이”처럼 더 수수하게 들꽃빛으로 들꽃말씨를 헤아리면 어울렸을 텐데 싶어서 무척 아쉽습니다.


ㅍㄹㄴ


《꽃에 미친 김군》(김동성, 보림, 2025)


민들레꽃을 신기하게 보던 한 아이가 있었다

→ 민들레꽃을 놀랍게 보는 아이가 있다

→ 민들레꽃을 놀라워하는 아이가 있다

1쪽


담장 위의 나팔꽃이

→ 담 너머 나팔꽃이

→ 담을 탄 나팔꽃이

4쪽


아이가 꽃의 세계에 빠져든 순간이었다

→ 아이가 꽃누리에 빠져든 때이다

→ 아이는 꽃빛에 빠져든다

5쪽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도

→ 이제 어른이 되어서도

→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서도

7쪽


사람들은 그저 김 군이라 불렀다

→ 사람들은 그저 김씨라 했다

9쪽


김 군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꽃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밤사이 안부를 살피는 것이었다

→ 김씨는 맨 먼저 꽃이랑 눈웃음을 짓고서 밤사이 잘 잤느냐고 묻는다

→ 김씨는 먼저 꽃하고 눈짓을 하고서 밤사이 잘 지냈는지 살핀다

12


오도카니 앉아 있었고

→ 오도카니 앉고

→ 오도카니 있고

13쪽


고양이 이름을 청화, 백화라고 지었다

→ 고양이 이름을 파란꽃, 흰꽃이라 지었다

→ 고양이를 파랑꽃, 하양꽃이라고 했다

15쪽


하루 종일 꽃만 바라보거나

→ 하루 내내 꽃만 바라보거나

→ 하루를 꽃만 바라보거나

17쪽


금세 자리를 뜨기

→ 곧 자리를 뜨기

→ 이내 자리를 뜨기

17쪽


꽃에 빠져 있을 때 김 군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 꽃에 빠진 김씨는 마치 다른 곳에 사는 사람 같다

→ 꽃에 젖은 김씨는 마치 너머에서 사는 사람 같다

17


많은 사람이 이런 김 군을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조롱거리로 삼았다

→ 사람들은 이런 김씨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고 놀림거리로 삼는다

→ 사람들은 김씨더러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고 놀린다

18쪽


하지만 누가 그를

→ 그러나 누가 그를

→ 그런데 누가 그를

19쪽


참다운 의미를 알지 못할

→ 참뜻을 알지 못할

→ 참맛을 알지 못할

19쪽


봄이 오면 꽃에 대한 김 군의 설렘도 기지개를 켰고

→ 봄이 오면 기지개 켜듯 꽃이 설레고

→ 봄이 오면 봄꽃에 설레고

21


여름을 머금은 초롱꽃 덕에 김 군의 마음 또한 풍성해졌다

→ 여름을 머금은 초롱꽃이 피니 김씨는 마음이 넉넉하다

→ 여름을 머금으며 초롱꽃이 피어 마음도 흐뭇하다

24


가을 국화의 은은한 향기는 김 군의 섬세함이 되었고

→ 가을 움꽃 그윽한 내음은 김씨한테 부드러이 스미고

→ 가을 움큼꽃은 그윽히 김씨한테 나긋나긋 감돌고

25쪽


겨울 매화의 고고한 자태는

→ 겨울 매꽃 의젓한 몸짓은

→ 겨울 매꽃 참한 매무새는

→ 겨울 매꽃 눈부신 맵시는

→ 겨울 매꽃 드높은 빛은

27쪽


봄을 기다리는 김 군의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

→ 봄을 애타게 바라는 마음이 된다

→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

28쪽


자연을 스승 삼고 꽃을 벗 삼으니

→ 숲을 스승 삼고 꽃을 벗삼으니

29쪽


꽃에 관해서는 그를 넘을 자가 없을 만큼 그 세계가 넓고도 깊다

→ 꽃으로는 그를 넘을 이가 없을 만큼 그릇이 넓고도 깊다

→ 꽃만큼은 누구도 넘을 수 없도록 넓고도 깊다

30쪽


그의 붓 끝에서 이 세상 모든 꽃들이 다시 태어난다

→ 그이 붓끝에서 온누리 모든 꽃이 다시 태어난다

→ 이이 붓끝으로 온누리 모든 꽃이 다시 태어난다

31쪽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빛난다

→ 가지가지 눈부시다

→ 무지갯빛으로 아름답다

→ 반짝반짝 빛난다

36쪽


한평생 꽃을 제 몸처럼

→ 한삶 꽃을 제 몸처럼

→ 살며 꽃을 제 몸처럼

4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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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17.

숨은책읽기 67


《꿈을 비는 마음》

 문익환 글

 백범사상연구소

 1978.4.20.



  나이가 어리다고 젊은이가 아니요, 나이가 많다고 늙은이가 아닌 줄 시나브로 배웁니다. 어릴적부터 이 대목은 늘 느꼈어요. 둘레에 어른다운 어른이 드물었던 터라, 어릴적 제 꿈 가운데 하나는 “나이만 먹는 사람이 아니라 슬기를 먹는 사람이 되자”였어요. “슬기롭게 자라서 이 땅을 디디는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면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여겼어요. 문익환이라는 이름을 곧잘 들었지만 누구인지 모르다가, 1993년부터 이분 책을 찬찬히 찾아서 읽는데, 어느 날 헌책집에서 《꿈을 비는 마음》이란 매우 얇은 꾸러미를 만났어요. 이 손바닥책에 〈전주 교도소로 이감되던 날〉이라는 노래가 있더군요. “감방쪽으로 돌아서는 길목에서 / 말없이 지켜보던 개나리 꽃봉오리들 / 활짝 피며 흩날릴 그 금싸라기들은 / 영영 볼 길이야 없겠지만―”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가 차가운 사슬터에서 봄을 그리는 노래를 썼다니, 더욱이 이런 글을 서슬퍼런 박정희 굴레 한복판에 썼다니, 그즈음 다른 글바치는 무엇을 했을까 궁금하더군요. 따뜻한 집에서 붓을 휘두르면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쥔 숱한 이들은 어떤 글을 펼쳤을까요? 꿈을 비는 마음이 없는 이들이 너무 많고, 꿈을 빌지 않는 채 쓰는 글이 너무 넘실거리는 이 나라이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덧.

94쪽에 ‘고은’이라는 분이 “시집이 나오는 날 나는 내 몇백억원을 다 가지고 나가서 그를 위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얼싸안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하고 적습니다. 사슬터에 갇힌 사람을 걱정한다는 말이 ‘술자리’라니, 참으로 술망나니인 고은답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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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17.

숨은책 1044


《韓國動亂과 맥아더元帥》

 ? 글

 하혁 옮김

 범국민양서보급회

 1968.11.15.



  인천에서 나고자란 어린이 가운데 몇이나 ‘맥아더’가 좋다고 여기면서 자랐을까 궁금합니다. 저는 맥아더를 좋아한 또래를 한둘 빼고는 아예 못 보면서 자랐습니다. 인천에 있는 골목마을을 내려다보는 곳에 손바닥만 한 ‘자유공원’이라는 데가 있는데, 인천에서 배움터를 다닌 분이라면 으레 이곳으로 봄나들이나 가을나들이를 가야 했습니다. 지긋지긋했어요. 한 군데 배움터만 자유공원으로 봄가을 나들이를 가지 않거든요. 초·중·고가 나란히 이곳으로 우글우글 몰리는데, 여러 배움터 사람들이 북새통으로 뒤덮이면서 앉지도 서지도 쉬지도 못 하는 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맥아더 동상 앞 기념사진”까지 찍어야 겨우 하루를 마치고서, 집까지 먼먼 길을 다시 걸어가야 했습니다. 《韓國動亂과 맥아더元帥》는 누가 언제 낸 어느 책을 훔쳐서 낸 판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만, 일본책을 훔쳤지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신 분은 빈자리마다 노랫말을 잔뜩 적으셨군요. 마르고 닳도록 읽었을 뿐 아니라, 수첩처럼 삼은 셈인데, ‘인천상륙작전’을 한답시고 월미도를 비롯해 인천 골목마을을 아주 잿더미로 짓밟은 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나중에 다 드러난 일입니다만, ‘미국 군인이 보기에 놈(적군)과 우리켠(아군)이 똑같이 생겼기에 그냥 다 밀어버리고(죽이고)서 들이치려’ 했다지요. ‘전쟁영웅’이라는 이름이란 하나같이 “사람을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게 아주 많이 죽인 놈”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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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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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17.

다듬읽기 261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2011.6.20.



  말더듬이 눈으로 온누리를 보면, 어쩜 사람들이 소리 하나 안 흘리거나 안 놓치거나 안 꼬이면서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이라고 느끼지요.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스스로 애쓰고 힘쓸 테지만, 말더듬이는 그야말로 죽도록 스스로 다스리지만, 끝없이 용쓰더라도 실오라기 하나만큼조차 풀리지 않아서 괴롭거나 창피한 나날을 기나긴 해에 걸쳐서 보내게 마련입니다.


  둘레를 보면, 말더듬이가 길잡이(교사)를 하거나 알림꽃(아나운서·사회자)을 맡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할 만큼 거의 못 봅니다. “말을 안 더듬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말더듬이한테 ‘말하는 일’을 시켜야 하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더듬는다고 해서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말은 더듬지만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기도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면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238쪽)”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낱말책은 돌림풀이를 하지 않아야 할 꾸러미인데, 우리 낱말책은 그만 돌림풀이에 갇혔습니다. 어쩌면 ‘엉터리 우리나라 낱말책’을 가볍게 핀잔하는 말씨일 수 있고, 그냥 ‘낱말책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불쑥 끼워넣은 말씨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모두 사람입니다. 우리말에는 처음부터 ‘장애(障碍)’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바라보되, 딸이면 딸이라 하고 아들이면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이면 아이라 하고 어른이면 어른이라 했어요. 크가 크니 키다리라 하고 키가 작으니 난쟁이라 했습니다. 앉은 몸짓이기에 앉은뱅이에 꿈에 잠기듯 눈을 감은 몸이라서 장님이라 하고, 꽃봉오리나 멧봉우리처럼 듬직하면서 곱게 피어나는 마음을 드러낸다고 해서 벙어리라 했습니다.


  말더듬이란, 그냥 더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더듬더듬하는 매무새는 풀벌레나 나비한테 있는 ‘더듬이’하고 같은 밑동입니다. 풀벌레하고 나비는 더듬이가 있기에 ‘눈코귀살’로 느끼지 못 하는 결을 더듬이로 더듬더듬 미리 느낍니다. 말더듬이는 말을 더듬더듬 겨우 하되, 스스로 들려주고 싶으면서 둘레에 나누고 싶은 마음을 한 올씩 풀어내려고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곰곰이 읽으면서, ‘처음부터 영화로 찍기를 바란 티’를 물씬 느꼈습니다. 2025년에 이르러 이 책을 읽고 나서 알아보니, 책은 2011년에 영화는 2014년에 나왔군요. 올바름(PC)을 외치려는 줄거리로 짰구나 하고 느끼는데, 글쓴이는 시골을 잘 모르는 듯합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 ‘농촌마을’이 아닙니다. ‘농촌마을·어촌마을’이란 틀린말인데, 아직도 모르는 듯합니다. 두 푸름이하고 여러 어른 사이에 어떤 마음이 오가는가 하는 대목을 짚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골이라는 터전을 들여다보고 눈여겨볼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 보지 않는다면, ‘터(배경)’만 시골일 뿐, 하나도 시골스럽지 않은 얼거리이게 마련입니다.


  1990년으로 접어드는 언저리에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이 나오고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책과 영화를 2011∼14년판으로 다시 꾸몄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1980년대 푸름이는 손글과 소리(라디오)로 마음을 나누려 했다면, 2010년대 푸름이는 누리글과 손전화로 마음을 나누려는 틀로 바꾼 셈이라고 할까요.


ㅍㄹㄴ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창비, 2011)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길은 우리가 찾지 않는다

→ 알 수가 없다. 삶은 우리가 세우지 않는다

6쪽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마음속 낱말집이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속에서 낱말종이가 작게 회오리친다

10쪽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 바닷바람에 오래 마른 고기처럼 제 몸을 줄여가며 둘레를 넓힌 말이다

10쪽


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 움직이는 거였다

→ 바람에 바람새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 움직인다

→ 바람에 바람쇠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보면 움직인다

11쪽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 땅에 뿌리내리기도 하고 풀꽃씨처럼

→ 땅바닥에 뿌리내리거나 풀씨처럼

11쪽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 아무래도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이룬 바깥넓이를 가늠해야지 싶다

11쪽


산 깊고 물 맑은 농촌마을이었다

→ 메 깊고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두멧골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물 맑은 두멧시골이었다

11쪽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 썼다

→ 사람들은 살림을 손수 기르거나 지어서 썼다

→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손수 기르거나 지었다

12쪽


포효하고픈 심정도 들었다

→ 소리치고도 싶었다

→ 벼락치고도 싶었다

17쪽


다섯 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 다섯 손바닥은 나란히 숨죽인 채 나를 느꼈다

→ 손바닥 다섯은 다같이 숨죽인 채 내 숨빛을 느꼈다

40쪽


나를 낳고 부모님이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였다

→ 나를 낳은 두 분은 너무 모르는 줄 뼈저리게 느꼈단다

→ 엄마아빠는 나를 낳고서 너무 몰랐다고 뼈저리게 느꼈단다

59쪽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도 아들의 클릭질이 한심하게 보일 게 틀림없었다

→ 뭐 아버지 보기에도 아들 딸깍질이 바보스레 보일 테지

→ 아버지 눈으로도 아들 또깍질이 우스워 보이리라

75쪽


부모는 왜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 어버이는 왜 어려도 어버이 얼굴일까

→ 엄마아빠는 왜 어려도 엄마아빠일까

77쪽


이유 같은 건 없어

→ 까닭은 없어

→ 다른 뜻은 없어

112쪽


너스레를 떠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 너스레를 떨어야 할 듯했다

→ 너스레를 떨어야겠다 싶었다

118쪽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 제가 여쭐 수 있는 말은

159쪽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다 아는 분이 어떻게 모르는 놈을 알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 훌륭한 분이 어떻게 초라한 놈을 헤아릴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170쪽


마우스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다람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또각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179쪽


내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그런 메씨지를 받아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 내 또래 가시내한테 그런 쪽글은 태어나 처음 받아보았다

187쪽


나는 그애에게 때이른 만족을 주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벌써 기뻐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바로 반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197쪽


나도 잘 살펴볼게

→ 나도 잘 볼게

→ 나도 살펴볼게

216쪽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 나는 내가 달아나려 하던 처음이 다시 내 앞에 놓였기에 설레면서 두려웠다

→ 나는 내가 놓으려 하던 첫걸음이 다시 내 앞에 있기에 설레고 두려웠다

221쪽


시시한 얘기도 이메일을 통해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기쁨을 주었다

→ 시시한 얘기도 누리글로 하곤 했다. 그렇지만 누리글은 누리글대로 기뻤다

→ 시시한 말도 누리글월로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이런 글대로 기뻤다

230쪽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

→ 낱말책은 늘 되풀이말이야

→ 낱말책은 워낙 되풀이야

238쪽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 두 사람은 내내 실랑이였다

→ 두 사람은 또 실랑이질이다

34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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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별책부록



 별책부록을 증정한다 → 덧책을 준다

 별책부록처럼 딸려서 온다 → 딸려서 온다 / 곁딸려 온다


별책부록 : x

별책(別冊) : 따로 엮어 만든 책 ≒ 별권

부록(附錄) : 1. 본문 끝에 덧붙이는 기록 2. 신문, 잡지 따위의 본지에 덧붙인 지면이나 따로 내는 책자



  따로 붙이기에 한자말로 ‘부록’이라 합니다. 곰곰이 보면 ‘별책부록’은 겹말이라 할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는 ‘곁따르다·곁딸리다·딸리다·딸림’이나 ‘딸림꽃·딸림책’이나 ‘더·더더·덤·덤덤’으로 고쳐쓸 만합니다. ‘덤책·덧책’이나 ‘덧·덧거리·덧감·덧달다’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들러리·머금다·붙임·붙이다·붙임책’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옆·옆구리’나 ‘있다·작다·작은이·작은자리’나 ‘품·품속·품꽃’으로 고쳐써도 되어요. ㅍㄹㄴ



별책부록처럼 함께 파생되는 논란이 있다

→ 곁딸리는 말썽거리가 있다

→ 덧붙는 골칫거리가 있다

→ 함께 도마에 오르는 일이 있다

《상냥한 폭력들》(이은의, 동아시아, 2021)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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