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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4.17.
다듬읽기 261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2011.6.20.
말더듬이 눈으로 온누리를 보면, 어쩜 사람들이 소리 하나 안 흘리거나 안 놓치거나 안 꼬이면서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도무지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이라고 느끼지요.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스스로 애쓰고 힘쓸 테지만, 말더듬이는 그야말로 죽도록 스스로 다스리지만, 끝없이 용쓰더라도 실오라기 하나만큼조차 풀리지 않아서 괴롭거나 창피한 나날을 기나긴 해에 걸쳐서 보내게 마련입니다.
둘레를 보면, 말더듬이가 길잡이(교사)를 하거나 알림꽃(아나운서·사회자)을 맡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할 만큼 거의 못 봅니다. “말을 안 더듬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말더듬이한테 ‘말하는 일’을 시켜야 하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안 더듬는다고 해서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말은 더듬지만 어느 일을 잘 알거나 다루거나 하”기도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으면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238쪽)” 같은 대목이 나오는데, 틀린 이야기입니다. 낱말책은 돌림풀이를 하지 않아야 할 꾸러미인데, 우리 낱말책은 그만 돌림풀이에 갇혔습니다. 어쩌면 ‘엉터리 우리나라 낱말책’을 가볍게 핀잔하는 말씨일 수 있고, 그냥 ‘낱말책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불쑥 끼워넣은 말씨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모두 사람입니다. 우리말에는 처음부터 ‘장애(障碍)’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예부터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바라보되, 딸이면 딸이라 하고 아들이면 아들이라 했습니다. 아이면 아이라 하고 어른이면 어른이라 했어요. 크가 크니 키다리라 하고 키가 작으니 난쟁이라 했습니다. 앉은 몸짓이기에 앉은뱅이에 꿈에 잠기듯 눈을 감은 몸이라서 장님이라 하고, 꽃봉오리나 멧봉우리처럼 듬직하면서 곱게 피어나는 마음을 드러낸다고 해서 벙어리라 했습니다.
말더듬이란, 그냥 더듬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더듬더듬하는 매무새는 풀벌레나 나비한테 있는 ‘더듬이’하고 같은 밑동입니다. 풀벌레하고 나비는 더듬이가 있기에 ‘눈코귀살’로 느끼지 못 하는 결을 더듬이로 더듬더듬 미리 느낍니다. 말더듬이는 말을 더듬더듬 겨우 하되, 스스로 들려주고 싶으면서 둘레에 나누고 싶은 마음을 한 올씩 풀어내려고 합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곰곰이 읽으면서, ‘처음부터 영화로 찍기를 바란 티’를 물씬 느꼈습니다. 2025년에 이르러 이 책을 읽고 나서 알아보니, 책은 2011년에 영화는 2014년에 나왔군요. 올바름(PC)을 외치려는 줄거리로 짰구나 하고 느끼는데, 글쓴이는 시골을 잘 모르는 듯합니다. 시골은 시골일 뿐 ‘농촌마을’이 아닙니다. ‘농촌마을·어촌마을’이란 틀린말인데, 아직도 모르는 듯합니다. 두 푸름이하고 여러 어른 사이에 어떤 마음이 오가는가 하는 대목을 짚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만큼,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골이라는 터전을 들여다보고 눈여겨볼 뿐 아니라, 몸소 살아내 보지 않는다면, ‘터(배경)’만 시골일 뿐, 하나도 시골스럽지 않은 얼거리이게 마련입니다.
1990년으로 접어드는 언저리에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이 나오고 영화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책과 영화를 2011∼14년판으로 다시 꾸몄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1980년대 푸름이는 손글과 소리(라디오)로 마음을 나누려 했다면, 2010년대 푸름이는 누리글과 손전화로 마음을 나누려는 틀로 바꾼 셈이라고 할까요.
ㅍㄹㄴ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 창비, 2011)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 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길은 우리가 찾지 않는다
→ 알 수가 없다. 삶은 우리가 세우지 않는다
6쪽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마음속 낱말집이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 바람이 불면 속에서 낱말종이가 작게 회오리친다
10쪽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 바닷바람에 오래 마른 고기처럼 제 몸을 줄여가며 둘레를 넓힌 말이다
10쪽
바람에 풍경(風磬)이 흔들리듯 내가 물어 무언가 움직이는 거였다
→ 바람에 바람새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 움직인다
→ 바람에 바람쇠가 흔들리듯 내가 물어보면 움직인다
11쪽
지상에 뿌리내린 것이 있고 식물의 종자처럼
→ 땅에 뿌리내리기도 하고 풀꽃씨처럼
→ 땅바닥에 뿌리내리거나 풀씨처럼
11쪽
중요한 건 그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만든 바깥의 넓이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 아무래도 말이 몸피를 줄여가며 이룬 바깥넓이를 가늠해야지 싶다
11쪽
산 깊고 물 맑은 농촌마을이었다
→ 메 깊고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두멧골 물 맑은 시골이었다
→ 물 맑은 두멧시골이었다
11쪽
사람들은 필요한 게 있으면 대부분 직접 기르거나 만들어 썼다
→ 사람들은 살림을 손수 기르거나 지어서 썼다
→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손수 기르거나 지었다
12쪽
포효하고픈 심정도 들었다
→ 소리치고도 싶었다
→ 벼락치고도 싶었다
17쪽
다섯 개의 손바닥은 일제히 숨죽인 채 내 존재를 느꼈다
→ 다섯 손바닥은 나란히 숨죽인 채 나를 느꼈다
→ 손바닥 다섯은 다같이 숨죽인 채 내 숨빛을 느꼈다
40쪽
나를 낳고 부모님이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자신들이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였다
→ 나를 낳은 두 분은 너무 모르는 줄 뼈저리게 느꼈단다
→ 엄마아빠는 나를 낳고서 너무 몰랐다고 뼈저리게 느꼈단다
59쪽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도 아들의 클릭질이 한심하게 보일 게 틀림없었다
→ 뭐 아버지 보기에도 아들 딸깍질이 바보스레 보일 테지
→ 아버지 눈으로도 아들 또깍질이 우스워 보이리라
75쪽
부모는 왜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 어버이는 왜 어려도 어버이 얼굴일까
→ 엄마아빠는 왜 어려도 엄마아빠일까
77쪽
이유 같은 건 없어
→ 까닭은 없어
→ 다른 뜻은 없어
112쪽
너스레를 떠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 너스레를 떨어야 할 듯했다
→ 너스레를 떨어야겠다 싶었다
118쪽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 제가 여쭐 수 있는 말은
159쪽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다 아는 분이 어떻게 모르는 놈을 알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 훌륭한 분이 어떻게 초라한 놈을 헤아릴 수 있는지, 참 어려운 일 같거든요
170쪽
마우스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다람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 또각이를 쥔 손이 조금 떨렸다
179쪽
내 또래의 여자아이에게 그런 메씨지를 받아본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 내 또래 가시내한테 그런 쪽글은 태어나 처음 받아보았다
187쪽
나는 그애에게 때이른 만족을 주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벌써 기뻐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 나는 그애가 바로 반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197쪽
나도 잘 살펴볼게
→ 나도 잘 볼게
→ 나도 살펴볼게
216쪽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 나는 내가 달아나려 하던 처음이 다시 내 앞에 놓였기에 설레면서 두려웠다
→ 나는 내가 놓으려 하던 첫걸음이 다시 내 앞에 있기에 설레고 두려웠다
221쪽
시시한 얘기도 이메일을 통해 나누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기쁨을 주었다
→ 시시한 얘기도 누리글로 하곤 했다. 그렇지만 누리글은 누리글대로 기뻤다
→ 시시한 말도 누리글월로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이런 글대로 기뻤다
230쪽
사전은 원래 동어반복적이야
→ 낱말책은 늘 되풀이말이야
→ 낱말책은 워낙 되풀이야
238쪽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 두 사람은 내내 실랑이였다
→ 두 사람은 또 실랑이질이다
34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