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친구랑 손절을 했는데



[물어봅니다]

  마음이 안 맞아 싸운 친구하고 손절을 하려고 하는데, ‘손절이 뭐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저희끼리는 그냥 쓰는 말이라서 무심코 썼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채 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절’이 뭔가요? 그리고 이 말이 바르게 쓰는 말이 아니라면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이야기합니다]

  친구하고 싸우셨군요. 그래요, 마음이 안 맞을 적에는 보기 싫으리라 생각해요. 말씀처럼 서로 사이를 끊을 수 있고, 한동안 안 보고 살 수 있어요. 말을 안 섞는다든지 등을 지거나 돌릴 수 있겠지요.


  ‘손절’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친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이 한자말하고 비슷하면서 다른 텃말을 살펴야 해요. 가까이 지내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하고 이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려고 하는 판이잖아요.


[국립국어원 사전]

친구(親舊) :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 친고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동무 : 1.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 2. 어떤 일을 짝이 되어 함께 하는 사람 3. [광업] 한 덕대 아래에서 광석을 파는 일꾼


  국립국어원 사전으로 보자면 한자말 ‘친구’는 ‘동무’로 고쳐쓸 만합니다. 그런데 ‘동무’를 쓰는 분보다 ‘친구’를 쓰는 분이 많지 싶습니다. 예전에는 너나없이 ‘동무’라 했고, 동무에서 한결 마음 깊이 사귈 적에 ‘벗’이라 했어요. 딱히 가까이하지는 않으나 나이가 비슷하거나 생각이 어울릴 만하다 싶으면 ‘또래’라 했고요.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그만 남·북녘으로 갈렸어요. 그무렵 북녘에서는 한자말 ‘동지(同志)’를 쓰지 않고 ‘동무’로 고쳐서 썼습니다. 말뜻도 말결도 그렇거든요. 그즈음은 남·북녘 어디나 ‘동무’란 말만 썼다고 할 텐데, 한 나라가 두 나라로 갈린 뒤에 남녘에서는 낱말 하나를 놓고 토를 달았어요. ‘동무’란 낱말을 쓰면 마치 북녘바라기라도 되는 듯이 몰아세웠습니다.


  이런 물결이 퍼지면서 국가보안법이 춤추었고, ‘동무’란 오랜 낱말은 팔다리가 뎅겅 잘려요. 그러나 동무란 낱말은 너나없이 사귀면서 즐겁게 노는 어린이를 비롯해, 상냥하고 착한 사람들 누구나 스스럼없이 쓰는 이름입니다. 팔다리가 뎅겅 잘려도 죽지 않았어요. 살아남았지요.


 어깨동무, 소꿉동무, 놀이동무, 글동무, 책동무, 말동무, 새동무


  적잖은 자리를 ‘친구’란 한자말이 잡아먹었지만 ‘동무’는 꿋꿋했어요. 그리고 이즈막에 조금씩 숨통을 트면서 깨어나려 하지요. 워낙 우리 삶과 살림과 사랑을 담던 낱말이거든요.


[숲노래 사전]

친구 : → 동무

동무 : 1. 늘 가까이 어울리는 사이. 가까이 어울리며 즐거운 사이 2. 어떤 일·놀이을 함께 하거나, 어떤 길을 함께 가는 사이


  마음이 안 맞아서 끊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왜 그러한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첫째로, 가까이 어울리고 싶지 않지요? 둘째로, 가까이 있거나 어울릴 적에 안 즐겁지요? 어떤 일이나 놀이를 함께 하거나 누리고픈 마음이 안 들지요? 어떤 길을 한뜻이 되어 갈 만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사전이라는 책에는 이런 느낌이나 결을 고루 담아내야 알맞지 싶어요. 이제는 ‘동무’란 낱말을 한결 깊이 바라보면서 다룰 노릇이라고 봅니다.


[국립국어원 사전]

손절(孫絶) : 대를 이을 자손이 끊어짐 = 절손

손절(損切) : x

손절매(損切賣) : [경제] 앞으로 주가(株價)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여,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입 가격 이하로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일


  요즈음 어린이·푸름이 사이에서 흐르는, 또 여러 곳에서 적잖이 퍼지는 ‘손절’이란 한자말은 ‘損切’이란 한자로 적고, 손절매(損切賣)를 줄인 한자말인데, 일본 한자말입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팔아치우다·내치다’나 ‘싸게넘기다·싸게팔다’쯤 되겠지요.


  일본 한자말이기에 안 써야 한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이 한자말은 한글로 적든 한자를 밝히든 뜻을 알기에 퍽 어렵습니다. 이 말을 쓰는 어린이나 푸름이 가운데 얼마나 이 말뜻을 바로 알거나 제대로 짚을까요? 어른 사이에서도 이 말씨는 뜻을 헤아리기가 만만하지 않아요.


  이와 달리 ‘팔아치우다·내치다·싸게넘기다·싸게팔다’는 누구나 한눈에 알아보겠지요. 고쳐써야 할 말이라기보다, 쉽고 즐거우며 부드러이 누구나 쓸 만한 낱말이 있다면 그쪽으로 갈 노릇이라고 여겨요.


 끊다·멀리하다·꺼리다·등지다·등돌리다·끝내다·끝장·끝

 안 보다·보지 않다·남남·안 만나다·만나지 않다

 뿌리치다·고개젓다·손사래·도리도리·도리질

 그만두다·그만하다·자르다·딱자르다


  동무로 지내다가 더는 동무로 지내고 싶지 않다면 여러 가지 말씨를 헤아릴 만합니다. 동무는 아니고 ‘아는 사이’였는데, ‘아는 사이’로도 있고 싶지 않다면, 이런 여러 말씨를 쓸 만하지요.


  그러고 보니 ‘절교’란 한자말을 쓰는 어른이 있습니다. 만나던 사이를 끊는다고 할 적에, 이를 한자로 나타낸 말인데요, ‘손절’이든 ‘절교’이든 끊으니까 ‘끊다’라 하면 되어요. 또는 ‘끝내다’라 하면 되겠지요. “너랑 나는 이제 끝이야”처럼 ‘끝’이라 해도 되고, ‘끝장’ 같은 말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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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우리말이 아름다운 시



[물어봅니다]

한국말사전을 쓰는 샘님이 보기에 우리말이 아름다운 시는 무엇일까요? 한 가지를 꼽아 주실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꼽기 어려우면 두 가지를 꼽아 주셔도 좋겠습니다.


[이야기합니다]

우리말을 잘 살려서 쓴 시로 흔히 윤동주 님이나 김소월 님이나 백석 님을 들곤 합니다. 이분들 시도 더없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저도 이분들 시를 즐겨요. 다만 이분들 시보다 한결 즐기면서 우리 집 아이들이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때부터 끝없이 부른 노래가 있어요. 이 가운데 두 가지를 들 텐데요, 앞에서는 널리 알려진 싯말 그대로 옮기고, 뒤에서는 제가 아이들한테 노래로 들려줄 적에 손질한 싯말을 옮기겠습니다.


※ 햇볕 (이원수)

ㄱ.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ㄴ.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세상을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 햇볕 (숲노래가 손질한 글)

ㄱ.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풀빛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ㄴ.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누리를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이 되어요


제가 손질한 대목은 “초록이 되고”를 “풀빛이 되고”이고, “열매 속에 들어가선”을 “열매에 들어가선”이며, “온세상을”을 “온누리를”이고,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를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이 되어요”입니다.


이원수 님이 쓴 노래를 그대로 아이한테 불러 주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손볼 수 있다면 한결 고우리라 생각했어요. 저는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내가 살던 마을은”으로 부릅니다. 이는 이원수 님도 이렇게 노래를 고쳐서 부르기를 바라신 대목인데요, 사람들 입에 워낙 박혀서 고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여기셨다고 하지요.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한테는 새롭게 빛나는 말로 노래를 하고 싶어요. 고운 노래가 더욱 눈부시도록 살짝 손길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겨울 물오리 (이원수)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 겨울 물오리 (숲노래가 손질한 글)

얼음 어는 냇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판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 않다

오리들아 이 냇물에서 같이 살자


지난날에는 ‘강’이 아닌 ‘내’라고만 했고, 드넓은 내일 적에는 ‘가람’이라 했다지요. 모래가 고운 냇물은 으레 ‘모래내’라 해요. 이 냇물 이름은 나라 곳곳에 참 많습니다. 하늘을 별빛으로 가르는 모습도 ‘미리내’라고 해요. 미르(용)가 노니는 냇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겨울 물오리〉란 노래에서 “강물”을 “냇물”로, “얼음장 위에서도”를 “얼음판에서도”로 손질해서 부릅니다.


저는 이 두 노래를, 동시를, 두 아이가 0살이던 무렵부터 10살이던 때까지 셀 수 없도록 불렀습니다. 예닐곱 살 무렵까지는 날마다 짧으면 한나절을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어요.


두 노래 가운데 〈햇볕〉은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마음을 어떻게 건사할 적에 스스로 듬직하고 즐거우며 아름다운가 하는 실마리를 참 잘 밝혔다고 느껴요. 어린이도 어른도 다같이 햇볕이 되고, 햇빛이 되며, 햇살이 될 적에 오롯이 사랑으로 피어난다고 하는 뜻을 놀랍도록 단출히 풀어냈습니다. 게다가 우리 밥이란 바로 햇빛이면서 사랑이고, 우리 살림도 해님처럼 일구고 나누면서 활짝 웃자고 하는 마음까지 들려주어요.


동시 〈겨울 물오리〉는 이원수 님이 숨을 거두기 앞서 이녁 딸아이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그려서 남긴 노래라고 해요. 저는 이 동시 〈겨울 물오리〉가 이원수 님으로서 우리한테 마지막으로 남기는 눈물글(참회록)이라고 느꼈어요. 이원수 님은 서슬퍼런 이승만·박정희 독재가 춤추던 때에도 독재정권을 나무라는 동화를 꾸준히 썼어요. 전태일 님이 몸을 불살라 죽은 뒤에 곧장 쓴 〈불새의 춤〉은 참으로 엄청났지요. 이 동화 〈불새의 춤〉은 1970년대뿐 아니라 1980년대에도 곧잘 가위질이 되었는데요, 1981년에 숨을 거둔 이원수 님은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린이문학으로 눈물글을 남겼구나 하고 느낍니다. 바로 〈겨울 물오리〉로요.


잘 보셔요. 얼음이 언 냇물이 추워서 동동동 구르는 아이는 오리를 보면서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 얼음판에서 맨발로 웃으며 뛰노는 오리를 보며 시나브로 기운을 내고, 어느덧 “나도 이제 찬바람 무섭지 않다” 하고 외치면서 “오리들아 이 냇물에서 같이 살자” 하고 노래하지요.


이원수 님은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 지난날 친일시를 가슴에 묻고 살았구나 싶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눈물글을 쓸 수 없을 테니까요. 이원수 님을 기리는 곳에 ‘이원수 친일시’를 크게 붙였다고 하는데, 그 친일시 곁에는 꼭 이 〈겨울 물오리〉를 나란히 붙여놓고서, 1981년에 전두환이 칼춤을 추던 그무렵 눈물글로 남긴 동시라고 하는 덧말도 적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이쁜 낱말을 골라서 이쁘장하게 꾸며서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아름다움이란, 삶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 슬기로운 사랑이 바탕이 되어 태어난다고 느껴요.


잘잘못을 떠나, 우리가 저마다 살아온 길을 찬찬히 짚으면서 그 모든 발자국을 고이 끌어안고서 눈물로 씻고 웃음으로 피우며 허물벗기하고 날개돋이를 할 줄 알기에 비로소 동시요 시이며 문학이지 싶습니다. 제가 꼽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린 시’라면 이원수 님이 남긴 두 가지 동시입니다. 삶을 사랑으로 밝히기에 아름다운 〈햇볕〉이고, 삶을 눈물로 빛내기에 아름다운 〈겨울 물오리〉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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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숲노래 우리말꽃 : 전문용어를 다루는 눈



[물어봅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바꿀 수 있을까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울 듯해요. 전문용어는 일본 말씨이든 영어이든 한자말이든 다 그대로 쓰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이야기합니다]

  모든 전문용어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오래오래 쌓거나 다스린 말입니다. 또는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처음에 문득 얼핏 쓰다가 어느새 자리를 잡아서 굳어진 말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씨나 일본 영어일 숱한 전문말이 이와 같은데요, 다른 사람한테서 배우며 그 전문가라는 길을 왔기에, 그 전문가로서는 처음 배우면서 받아들인 말을 그대로 쓰곤 합니다. 또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깊이 알지 못하거나 넓게 알아내지 못한 탓에 그냥 쓰는 전문말도 수두룩합니다.


  수학 전문가라면 수학 전문말을 쓰겠지요. 살림 전문가라면 살림 전문말을 쓸 테고요. 자, 생각해 봐요.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수학 전문말은 누가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수학 전문가 사이에서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속뜻이나 참뜻이 아리송한 말이 있지 않을까요?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누가 못 알아들을 만할까요? 어쩌면 살림 전문가 사이에서 쓰는 살림 전문말은 ‘살림 전문가를 비롯해서 살림 전문가 아닌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고, 어린이도 쉽게 알아들으며 받아들일 뿐 아니라, 새롭게 가꿀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요?


  대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면서 깊거나 넓은 길을 파고든다고 해서 그 갈래에 있는 사람만 ‘전문가’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말은 말에서 끝나지 않아요. 모든 말은 삶에서 태어나고 삶에서 자라며 삶으로 가꾸고 삶으로 나눕니다. 논문으로만 쓰고, 학회지에만 선보이고, 방정식 풀이에만 애쓴다면, 이러한 수학말은 굳이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새롭게 지을 까닭이 없을 만합니다. 이때에는 그저 ‘끼리말(끼리끼리 쓰는 말)’에 머물거든요.


  그런데 알아두어야 합니다. 끼리말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끼리끼리로 갇힌 채 오랫동안 맴도느라, 끼리말을 배우면서 학문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분들은 그 끼리말이 아니고서는 그 학문을 할 수 없네 하고 느끼기 쉬울 뿐이에요. 그리고 그곳 바깥에 있는 이들은 먼저 끼리말 때문에 걸려넘어져서 그곳으로 들어오기 어렵고, 이러면서 그 학문자리는 끼리말이 더욱 단단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단단해진 끼리말이야말로 ‘좋은 전문말’로 여기면서 굳어지곤 합니다. 새로운 싹이 틀 틈이 없는 셈입니다.


  어린이는 ‘구구단’이란 이름부터 낯섭니다. 아니, ‘덧셈·빨셈’도 낯섭니다. ‘더하다·빼다’는 어린이도 알고 삶으로 누리지만, 여기에 ‘-셈’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쩐지 하나도 모르는 자리라고 여기고 말아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덧셈·뺄셈’처럼 삶말로 수학말 한 가지를 가다듬었습니다만, 이를 아직도 한자말로 쓰는 어른(전문가)이 있고, 이를 그냥 영어로 쓰는 어른(전문가)도 있어요.


  학문이 깊이하고 너비를 두루 품자면, 삶이라는 자리로 들어서야 합니다. 우리 삶자리에서 수학이나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이지 않은 세간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모든 곳에는 모든 학문이나 전문성이 골고루 깃듭니다. 책 한 자락을 찍고 엮는 인쇄소나 제본소나 출판사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관리하고 회계에도 수학이 있지만, 옷을 마름하고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는 데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논밭을 일구는 연장인 쟁기나 가래나 호미에도 수학이 있습니다. 쟁기날이나 삽날이나 호미날에 수학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별자리에는 수학이 없을까요? 또, 별자리에 문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 없을까요?


  벼꽃에도 과학이며 철학이 흐르고, 벼알인 나락을 훑어서 햇볕하고 바람에 말린 뒤에 절구질로 빻아서 키로 까부르고 조리로 골라서 물을 맞추어 솥에 앉혀 밥을 짓는 이 흐름에도 과학이며 수학이며 철학이며 문학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그저 이를 수학 방정식이나 과학 실험이나 문학 작품이나 철학 이념으로 풀어낸 전문가란 어른이 매우 드물 뿐입니다.


  살림 전문가 곁에 선 수학 전문가라면 이런 수학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물 부피하고 쌀알 숫자를 어느 만큼으로 맞추어야 하는가?”라든지 “더 맛있는 밥이 되도록 하려면 쌀을 어떠한 결로 씻고, 쌀알이 솥에 어떤 결로 켜켜이 앉아야 하는가?”를 방정식을 지어서 풀도록 할 수 있어요. 우주선이 대기권을 벗어나서 달을 한 바퀴 돈 다음에 지구로 돌아오는 길만 수학 방정식을 지어서 풀어야 하지 않습니다. 마룻바닥을 가장 쉽고 빠르며 꼼꼼하게 걸레질을 하는 ‘함수’를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시골 할머니가 등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호미질을 할 수 있는 길을 사차원이나 오차원 방정식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네 학교나 사회에서 전문가 자리에 있는 분들이 쓰는 말은 아직 너무 단단한 울타리에 갇히곤 합니다. 바로 학문이란 자리에 있으려면 대학교 바깥이나 연구소 언저리로 나아가면서 깊고 너른 품이 되어야 할 텐데, 좀처럼 삶자리나 살림자리나 사랑자리로는 안 나아가거든요.


  그러나 꼭 짚을 대목이 있어요. 사람들 사이로 스미지 못하는 전문말을 아직 붙잡는 전문가 어른이 많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인 분이 전문말을 붙잡는다고 해서 이 말씨를 잘못이라거나 나쁘다고 바라보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요. 그저 그런 말을 그대로 붙잡을 뿐이에요.


  우리는 앞으로 새롭게 나아갈 즐거운 말씨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노래하듯이 나누면 되어요.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은 말이란 없어요. 어깨동무하면서 즐거울 말을 생각하면 되어요. 손을 잡으면서 기쁘고 사랑스레 춤추는 말을 헤아리면 됩니다.


  전문용어를 우리말로 하나씩 바꾸기보다는, ‘살림하는 자리에서 한결 즐겁게 쓸 새로운 말을 하나씩 생각해 보기’로 나아가면 어떨까요? 바꾸어도 나쁘지는 않아요. 때로는 바꾸는 쪽이 한결 수월하거나 나을 수 있습니다. 바꿀 만한 말은 바꾸기로 해요. 그대로 두는 쪽이 낫다 싶으면 한동안 그대로 두되, 앞으로 우리 생각이 새롭게 자란다면 그때에 더 살펴서 손질해도 되고, 새말을 지어서 써도 되겠지요.


  살림하는 전문가는 밥을 하면서 물 부피가 몇 씨씨인가 하고 살피거나 재지 않아요. 밥알이 몇 톨인가를 세지 않아요. 이 눈썰미하고 마음에 흐르는 사랑 어린 손길을 헤아린다면, 전문말을 풀어내는 상냥하면서 알뜰한 눈빛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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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전쟁’하고 ‘평화’는 무엇일까요



[물어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또 우리가 사는 나라에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아요. 그래서 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끊이지 않는 전쟁하고, 바라고 싶은 평화를 생각하다가, ‘전쟁’하고 ‘평화’를 사전에서 풀이한다면 어떻게 다루시려는지 궁금해요. 새 뜻풀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은 언제나 우리 삶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고스란히 말로 나타나요.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면 말 그대로 ‘사이좋다’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투거나 싸운다면 이 말처럼 ‘다투다’나 ‘싸우다’로 나타나겠지요. 스스로 하지 않는 일이라면 스스로 말하지 못해요.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람한테는 ‘이웃돕기’나 ‘이웃사랑’이란 말이 마음이나 머리에 남거나 맴돌 수 없습니다.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시샘하지 않으며 따돌리지 않는다면 ‘미움’이나 ‘시샘’이나 ‘따돌림’이란 말을 모르면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지 싶어요.


  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저를 쳐다보면서 들려주는 말을 받아들이고서 따라해요. 갓난쟁이에서 두 살이나 네 살을 지나도록 아이 입에서는 거친 말이나 막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거친 말이나 막말을 누가 하겠어요? 그러나 어린이가 거친 말이나 막말을 한다면, 또 푸름이가 거친 말이나 막말을 한다면, 어린이나 푸름이는 누구한테서 거친 말이나 막말을 듣거나 배웠을까요?


  처음부터 거친 말이나 막말을 머리에 담고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 되니까 갑자기 거친 말을 쓰지 않아요. 열다섯 살이 되었으니 하루아침에 막말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 바로 사회가 거칠기에 어른들이 거친 말을 써요. 우리 삶자락, 바로 사회이며 정치이며 문화에 아름답지 못한 일이 자꾸 불거지니 막말이 흐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전쟁(戰爭) : 1.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 ≒ 군려·병과 2.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화(平和) :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전쟁·평화’ 두 가지를 찾아봅니다. 뜻풀이를 읽어 보니 좀 모자라지 싶습니다. 어딘가 풀이를 하다 만 느낌 아닌가요? 우리 삶터나 지구라는 별 테두리에서 일어나거나 마주할 만한 ‘전쟁·평화’ 이야기가 두 마디 뜻풀이에 제대로 스몄을까요?


  총칼을 손에 쥐고서 싸울 적에도 전쟁이라 합니다. 사전은 ‘전쟁 = 싸움’으로 풀이합니다. 모질게 겨루어야(경쟁) 하는 일도 전쟁으로 다룹니다. 아무래도 푸름이 누구나 맞닥뜨리는 ‘입시전쟁’이 있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취업전쟁’이 있다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기쁨이란 열매로 아이를 낳은 뒤에는 ‘육아전쟁’도 있다고 합니다.


  아, 우리는 이렇게 전쟁을 벌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즐겁고 아름답게 다니면 안 되는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일자리를 놓고서 겨루거나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서로 슬기롭게 새로운 일거리를 지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는 틀림없이 사랑으로 낳을 텐데, 아이를 돌보는 살림도 전쟁처럼 싸움으로, 치고받으면서, 툭탁거리면서, 아웅다웅 힘들게 해야 할까 궁금해요. 우리는 어쩌면 전쟁이란 낱말을 아무렇게나 쓰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힘든 수렁으로 내모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런 흐름이라면 말만 곱게 바꿀 수 없다고 느껴요. ‘입시싸움·입시겨룸’이나 ‘취업싸움·취업겨룸’이나 ‘육아싸움·육아겨룸’처럼, 낱말을 바꾼들 바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숲노래 사전]

전쟁 : → 싸움(싸우다). 서로 알고 싶지 않고, 사귀려는 마음이 없어, 부짖히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일·길·짓

평화 : → 사이좋다. 어깨동무.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제가 쓰는 사전에는 ‘전쟁·평화’를 이렇게 다루려고 생각합니다. 한자말을 한국말로 바꾼다기보다는, 두 마디에 흐르는 기운을 깊이 짚고서 이를 풀어내는 길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여깁니다. 생각해 봐요. 서로 알고 싶은 사이인데 싸울 일이 있을까요? 서로 즐겁게 만나면서 어울리는 사이에서 싸울까요? 서로 반가이 만나고 사랑으로 돌보는 길에 어떤 기운이 흐를까요?


  오늘날 나라 곳곳에 워낙 ‘전쟁·평화’라는 말마디가 넓게 흐르거나 퍼지기에 열 살 어린이조차 이 한자말이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깊은 속내까지 알거나 짚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두 말마디에 흐르는 속내부터 짚고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를 바로 말로 새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사전]

싸우다 : 1. 힘·총칼·주먹·말글·군대 들을 앞세워서 오는 쪽을 받아들이거나 그쪽에 넘어가거나 쓰러지지 않으려고, 똑같이 힘·총칼·주먹·말글·군대 들로 그쪽을 마주하면서 쫓아내거나 없애려고 하다 (서로 알고 싶지 않고, 사귀려는 마음이 없어, 부짖히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일·길·짓) 2. 어느 자리·판·마당·놀이·경기에서 어느 쪽이 낫거나 모자라는가를 놓고서 마주하다 (솜씨·재주가 누가 낫거나 좋거나 앞서는가를 알아보려고 마주하다) 3. 세거나 크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일·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기운·힘을 내다 4. 세거나 크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괴롭더라도 이루거나 누리거나 얻거나 되거나 하려고 기운·힘을 쓰다

사이좋다 : 사이가 좋다. 서로 즐겁거나 따스하게 지내다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어깨동무 : 1. 서로 어깨에 팔을 얹거나 끼면서 나란히 있거나 서거나 걷거나 노는 일 2. 나이·키·마음·뜻이 비슷하거나 같아서 즐겁거나 부드럽게 어울리는 사이 3. 마음·뜻·일·길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서 돕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어울리는 사이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싸웁니다.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기에 사이좋을 뿐 아니라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자말 ‘평화’뿐 아니라 ‘연대·연합·협동·협력’ 같은 결을 바로 ‘사이좋다·어깨동무’가 담아냅니다. 어렴풋한 느낌이 아닌,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알 수 있는 말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듣고서 생각하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싸움 또는 전쟁)를 낱낱이 헤아리면서, 이대로 그냥 갈는지, 아니면 새롭게 가꾸는 길(사이좋다·어깨동무 또는 평화)로 가고 싶은가를 말 한 마디로 나눌 만하지 싶습니다.


  사전 뜻풀이는 뜻을 풀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풀다’는 “밝혀서 알도록 이끌다”만 가리키지 않아요. 엉킨 실타래를 더는 안 엉킨 환한 모습이 되도록 이끌기에 ‘풀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뜻풀이라면, 사전 뜻풀이라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겉모습을 밝히는 구실을 한 가지 하면서, 우리가 마음으로 헤아려서 속내를 스스로 깨닫고 가꾸도록 씨앗을 심고 북돋우는 구실을 하나 더 하는 일이라고 여겨요.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마치지 않는 마음을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은 그저 낱말 몇 가지로만 슬쩍 건드린 뒤에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어요. 그냥그냥 쓰는 말에는 그냥그냥 스치는 삶이 흘러요. 가만가만 짚고서 생각하는 말에는 어제하고 오늘을 이어서 모레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생각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살림을 짓는 바탕이 생겨요. 푸름이 여러분 마음으로 스스로 물어봐 주셔요. 여러분은 어떤 말길하고 삶길하고 마음길을 걷고 싶나요? 전쟁이나 싸움인가요? 평화나 사이좋다나 어깨동무인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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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사춘기란 뭘까요?



[물어봅니다]

  선생님, ‘사춘기’란 뭘까요? 아, 그냥 모르겠어요. 사춘기란 말뜻도,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푸름이가 사춘기인가요? 아마 그럴는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사춘기란 참말 무엇이려나요? 사전 뜻풀이를 넘어서, 또 둘레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대목을 넘어서, 푸름이 스스로 “사춘기란 참말 뭘까?”를 먼저 마음으로 물어보면 좋겠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사춘기(思春期) :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 가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여느 사전에서 ‘사춘기’란 한자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며 몸이 달라지며 ‘춘정을 느끼’는 때”가 사춘기라 하는데, 이런 뜻풀이가 가슴으로 와닿는지요?


  제가 어른이란 몸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이 뜻풀이는 사춘기를 제대로 풀이하지 않은 듯합니다. 자, 사춘기란 한자말을 잘 뜯어 볼게요. ‘思(생각/헤아림) + 春(봄) + 期(때/철)’ 얼개요, 이는 ‘봄을 생각하는/헤아리는 때/철’입니다.


  푸름이 여러분, “봄을 생각하는 때”나 “봄을 헤아리는 철”이란 무엇일까요? 봄은 어떤 철일까요?


 봄 : 새싹. 새잎. 새로운 나뭇가지하고 나무줄기 + 이른 꽃

 여름 : 짙은 잎. 굵은 가지하고 줄기 + 무르익는 꽃 + 이른 열매

 가을 : 바래는 잎. 지는 잎. 가랑잎 + 무르익는 열매 + 갈무리

 겨울 : 씨앗. 새봄을 기다리며 꿈꾸는 잎눈하고 꽃눈


  네 철을 이렇게 갈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흐름을 본다면 “봄을 생각하는/봄을 헤아리는” 무렵이란, 새로 돋을 잎을 이야기한다고 할 만해요. 사춘기란, 이제 갓 피어나려는 옅고 보드라우면서 푸른 잎사귀를 그리는 철이나 나이라 할 만하지요. 그러나 아직 여름이 아닌 봄인 터라, 잎이 돋고 줄기나 가지가 차근차근 뻗으려 해요. 아마 사춘기라는 나이나 때나 철을 지나면 줄기하고 가지가 굵으면서 꽃이 피는 흐름으로 들어서겠지요.


  푸름이 여러분은 이런 ‘봄나이’나 ‘봄철’을 그려 보았을까요? 흔히들 사춘기라는 때는 “성호르몬 분비에 따른 이차성징으로 몸이 많이 바뀌면서 힘들고 어지럽고 아픈 나날”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 볼 일은 없지 싶어요. 우리가 새봄에 마주하는 꽃이며 풀이며 나무는 그다지 아프거나 힘들거나 어지러워 보이지 않거든요.


  봄날 매화꽃이나 벚꽃이 아파 보이는 꽃인가요? 봄에 돋는 새싹이 아파 보이나요? 봄꽃이 어지러워 보이나요? 봄꽃이 힘들어 보이나요? 온통 기쁨으로 반짝이고, 언제나 기쁘게 활짝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눈부시게 우리를 부르지 않나요? 이리하여 저는 ‘사춘기’라는 낱말을 새롭게 풀이하려고 생각합니다.


[숲노래 사전]

사춘기 : → 꽃나이. 봄나이. 꽃철. 봄철

꽃나이 : 1. 꽃을 생각하거나 그리거나 꿈꾸거나 마음에 품는 나이. 씨앗·열매을 맺으려고 피우는 숨결을 품었다 할 나이나 때 2.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눈부신 나날·때·철·삶이라 여기면서 마음에 품는 나이나 때 3. 가장 돋보이거나 대수롭거나 뜻있거나 크거나 사랑스럽거나 뛰어나거나 아름답다고 할 나이나 때


  먼저 ‘사춘기’란 이름보다는 ‘꽃나이’나 ‘봄나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쓰고 싶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꽃철’이나 ‘봄철’을 함께 쓸 수 있어요. 뜻풀이는 ‘꽃나이’를 붙여 봅니다. 꽃을 생각하는 나이라서 꽃나이라 할 만해요. 꽃을 생각한다는 뜻은 꽃다운 숨결을 앞으로 이루려는 뜻이나 꿈으로 간다는 나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푸름이 여러분이 맞이하는 꽃나이·봄나이·꽃철·봄철은 어지럽거나 힘들거나 아픈 때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꼬물꼬물 애벌레가 깊이 잠들고 나서 눈부신 나비로 거듭나듯이, 푸름이 여러분은 바야흐로 ‘꿈꾸는 애벌레’처럼 한창 꿈을 꾸면서 곧 이 꿈에서 일어나 ‘나비로 거듭나는 길’에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꽃나이·푸른꽃나이

봄나이·봄

꽃철·봄철·꽃날·봄날

푸름이·푸른날


  저는 여러분을 ‘푸름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 한자말 ‘청소년’은 그다지 안 쓰고 싶습니다. ‘청소년’이란 이름을 사회에서 널리 쓰기는 해도 제 입에는 잘 안 붙어요. 푸르게 빛나고 싶은 꿈꾸는 애벌레다운, 또 새봄을 맞이해서 갓 돋은 맑은 풀빛다운 넋이요 숨결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느끼기에, ‘푸르다 + 이’ 얼개로 ‘푸름이’라는 이름을 쓰곤 합니다.


  우리는 사춘기를 거쳐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꽃나이를 즐겁게 맞이하고 누리면서 꽃철로 접어드는 꽃길을 가면 넉넉하다고 여깁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중2병도 고2병도 고3병도 아닌 언제나 싱그러운 푸름이요 푸른꽃이요 푸른봄이요 푸른나이라고 느낍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곳에서 푸르게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숨결을 바로 저 같은 어른한테 푸른 사랑으로 나누어 준다고 느낍니다.


  자, 봄철 봄나이를 누려 볼까요? 꽃철 꽃나이를 누리면 어때요? 푸른꽃나이를 누리고, 푸른봄나이를 함께해 봐요. 여러분 모두 다 다르게 빛나는 나비가 되어 온누리에 아름다운 사랑을 널리 펴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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