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 집으로 가는 책
어린날을 돌아보면, 할매할배는 으레 ‘가이’라고 말했다. 시골에서도 ‘가이’라고 흔히 말했다. ‘개’라고 소리를 내면 “참 서울사람이네.” 하고 여겼다. ‘새끼개’나 ‘새끼토끼’처럼 말했다. 아직 ‘새끼줄’을 흔히 꼬던 즈음 이야기이다. 옛말꼴이라지만 ‘삿기’처럼 부드러이 말하는 어른이 많았다.
이제 부드러이 ‘가이’나 ‘삿기’라 말하는 사람은 자취를 감춘다. 아이나 젊은이가 거칠거나 쇳소리로 말을 하기 앞서 “어른이라 일컬을 자리”에 서야 할 사람들부터 밀소리를 잊고 말빛을 잃고 말씨를 내버렸다고 느낀다. 돈있고 힘있고 이름있어야 어른이지 않다. 말을 말답게 할 줄 알면서, 이이랑 젊은이 곁에서 어질고 밝은 눈으로 온누리를 살피고, 이쪽이나 저쪽이 아니라 온곳을 살피기에 어른으로 여겼다.
말을 함부로 읊거나, 누구를 섣불리 깎거나, 한켠에 치우치는(팬덤+팬클럽) 몸짓은 어른하고 한참 멀다고 여긴 지난날이다. 곰곰이 보면 예부터 마을과 집을 사랑으로 돌보며 살림하던 어른은 하나같이 ‘가운꽃(아나키스트)’이었구나 싶다. 이도 저도 아닌 가운데이지 않다. 이도 저도 품고 풀어내기에 가운데요, ‘가운꽃’이자 ‘가운별’이고 ‘가운님’이다.
오늘 우리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하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던 말뜻을 팽개치는 오늘날이다. 거꾸로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리는” 굴레에 갇힌다. ‘흥정’이란, “흐르는 말”이다. 무엇을 사고팔 적에 “서로 뜻을 밝히고 값을 나누고 말을 주고받으면서 금을 살피고 맞추는 길”을 ‘흥정’이라 했다. 그래서 “흥정은 붙이라”고 일컫던 옛말은, 싸우거나 다투거나 겨루려는 둘 사이에 서서 “주먹다짐이나 미운말이 아닌, 서로 어떤 마음인지 더 낱낱이 드러내고 알리면서, 서로 마음부터 맞추어 보자”고 길을 트는 일이다. 가운꽃인 어른은 언제나 싸움을 말리면서 “둘 사이에 이야기를 놓는 몫”을 하는 사람이다.
어른은 왼길도 오른길도 아닌 ‘온길’이다. “두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던 삶말마저 내동댕이치는 그대가 아닌가? 남을 탓하지 말자. 바로 ‘나’하고 ‘너’를 탓하자. 나는, 너는, 우리는 얼마나 싸움을 말리면서 흥정을 붙이는 오늘을 살아가는가? 손가락질과 밉말을 쏟아내는 ‘나너우리’이지 않은가? 흥정을 붙일 마음을 아예 밀쳐내고서 그저 저놈들을 나무라고 타박하기만 하지 않나?
토미 드파울라 님이 남긴 《오른발 왼발》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아기도 할배도 오른발과 왼발을 나란히 떼면서 걸음을 익히고 사랑을 물려받는다. 어른도 아이도 왼발과 오른발을 갈마들면서 뛰고 걷고 달릴 수 있다. 우리는 두 손발과 두 눈귀와 두 마음을 하나로 모두는 온길을 나아가면서 사랑을 할 사람이다.
가운꽃인 어른이기에 사랑이다. 왼켠과 오른켠으로 벌리면서 미워하기에 ‘불(분노)’이 일면서 싸움박질(전쟁)로 치닫는다. 나는 닷새에 걸쳐 부산과 부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개’하고 ‘새끼’라는 낱말을 비롯해서 ‘온우리말’을 짚어 보았다. ‘순우리말’이 아닌 ‘온우리말’을 생각해 본다.
한 마디로 “서울말(표준어)을 버려야 사람이 된다”고까지 할 만하다. 우리는 “아직 사람이 아닌 사람옷을 입은 모습”에 머무른 채 쳇바퀴인 우리나라요 터전이며 마을이다. “서울과 서울말과 서울살이를 몽땅 버려야 펑화요 평등이요 민주요 진보요 나라답다”고 할 만하다. 집만 시골이기에 숲말을 쓰지 않는다. 아이를 여럿 낳아서 돌봤어도 살림말을 쓰지 않는다. 서울에 살거나 아이를 안 낳았어도 스스로 가운꽃을 바라보고 바라고 받아들일 줄 알면, 어느새 스스로 어른이 되어 숲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어느 곳을 보금자리로 삼든, 스스럼없이 가운꽃이라는 어른길을 걸어가려는 마음과 매무새일 적에 ‘숲말·살림말·사랑말·사랑말’을 펼 수 있다. 우리 손과 입에서는 ‘꽃말·들말·멧말·바람말·씨앗말’이 태어나고 샘솟아야 한다.
‘함께살기(같이살기)’를 등지거나 ‘숲노래(삶노래)’를 잊기에 깜깜하게 갇히고 가둔다. ‘함께노래(같이노래)’를 멀리하거나 ‘숲살림(사람살림)’을 사귀지 않으니 캄캄하게 고이고 묶인다. ‘함께걸음(같이걸음)’을 싫어하고 ‘숲사람(꽃어른)’을 내치기에 까마득히 벼랑으로 굴러떨어진다.
나는 오늘 우리집으로 간다. 우리별이라는 터전에서 우리말을 하는 우리집으로 간다. 나는 오늘 사랑씨를 그리며 우리집으로 간다. 우리나라이기보다는 우리숲으로, 우리들과 우리메로, 우리씨앗과 우리해를 바라보면서 우리집으로 같다. 나는 오늘 여름볕과 여름구름을 한가득 안고서 사랑노래로 우리집으로 간다. 너하고 나하고 하늘빛으로 마주하기에 우리집이다. 나랑 네가 바람소리를 맞이하기에 우리집이다. 너도 나도 함께 저마다 ‘우리집’으로 걸어가기에 푸른별이 빛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