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7. 여름땀



  집에 있어도 땀이 흐르는데 볕자리에 서면 오히려 땀이 적다. 들바람을 쐬니까 마당이 한결 시원하다. 빨래를 하고 씻고 밥하고 빨래하고 씻고 낮밤을 먹고서 저잣마실을 나온다. 볕길을 걸어도 덥지는 않으나, 집으로 돌아갈 버스를 기다리는 버스나루는 덥다. 등짐차림으로 걸을 적에는 안 맺히던 땀방울이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송글송글하다.


  볕길을 걸으면서 《충청의 말들》을 먼저 읽는다. 충청말을 다루는 책은 심심하다. 그나저나 ‘충청말’이 아닌 웬 ‘충청의 말들’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서울은 ‘서울말’이고 부산은 ‘부산말’이다. 말이나 글에는 ‘-들’을 안 붙인다. 비나 눈에도 ‘-들’을 안 붙인다. 물과 바람에도 ‘-들’을 안 붙인다. 또한, 우리말은 ‘빗물’일 뿐, ‘비의 물’이 아니다. 우리말은 ‘바닷물’일 뿐, ‘바다의 물’이 아니다. 우리는 왜 자꾸 우리말을 잊는가. 우리는 왜 스스로 우리말을 망가뜨리는가. 우리는 왜 이토록 우리말을 가장 모르는 사람으로 나아가는가.


  넋을 차려야 할 노릇이라고 본다. 삶과 살림과 들숲메가 아닌 몇 가지 책에서 따온 글말은 너무 거칠고 메마르다. 삶자리와 살림터를 등진 모든 글에는 씨앗이 없다. 쭉정이는 아무리 잘 여미어도 쭉정이일 뿐이다. 쭉정이로는 밥을 못 한다.


  어떤 말이 어떤 마음자리에서 태어나는가? 어떤 노래가 어떤 손끝에서 태어나는가? 어떤 하루가 어떤 마음결로 싹트는가?


  이윽고 《기계라도 따뜻하게》를 읽는다. 땀흘려 일하는 하루를 차분히 곱새기는 글자락이 잇는구나. 땀흘려 일하니 땀노래를 쓰고, 땀을 씻으면서 쉬니 땀살림을 적는다. 땀흘리는 너를 마주하니 땀길을 함께 걸어가고, 땀을 함께 달래면서 벌렁 드러누우니 땀꽃이 한 송이 핀다.


  시골에서 살든 서울에서 살든 푸른들과 파란하늘을 품어서 풀어내려는 발걸음일 적에 스스로 눈을 뜬다. 서울에서 일하든 시골에서 일하든 푸른눈과 파란꿈을 헤아려서 나누려는 손길일 적에 스스로 새길을 연다. 여름바람이 분다. 여름구름이 흐른다. 여름볕이 내리쬔다. 여름나비가 날고, 여름제비가 빛난다. 거미와 사마귀가 늘어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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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7.1. 집으로 가는 책



  어린날을 돌아보면, 할매할배는 으레 ‘가이’라고 말했다. 시골에서도 ‘가이’라고 흔히 말했다. ‘개’라고 소리를 내면 “참 서울사람이네.” 하고 여겼다. ‘새끼개’나 ‘새끼토끼’처럼 말했다. 아직 ‘새끼줄’을 흔히 꼬던 즈음 이야기이다. 옛말꼴이라지만 ‘삿기’처럼 부드러이 말하는 어른이 많았다.


  이제 부드러이 ‘가이’나 ‘삿기’라 말하는 사람은 자취를 감춘다. 아이나 젊은이가 거칠거나 쇳소리로 말을 하기 앞서 “어른이라 일컬을 자리”에 서야 할 사람들부터 밀소리를 잊고 말빛을 잃고 말씨를 내버렸다고 느낀다. 돈있고 힘있고 이름있어야 어른이지 않다. 말을 말답게 할 줄 알면서, 이이랑 젊은이 곁에서 어질고 밝은 눈으로 온누리를 살피고, 이쪽이나 저쪽이 아니라 온곳을 살피기에 어른으로 여겼다.


  말을 함부로 읊거나, 누구를 섣불리 깎거나, 한켠에 치우치는(팬덤+팬클럽) 몸짓은 어른하고 한참 멀다고 여긴 지난날이다. 곰곰이 보면 예부터 마을과 집을 사랑으로 돌보며 살림하던 어른은 하나같이 ‘가운꽃(아나키스트)’이었구나 싶다. 이도 저도 아닌 가운데이지 않다. 이도 저도 품고 풀어내기에 가운데요, ‘가운꽃’이자 ‘가운별’이고 ‘가운님’이다.


  오늘 우리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하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던 말뜻을 팽개치는 오늘날이다. 거꾸로 “싸움은 붙이고 흥정은 말리는” 굴레에 갇힌다. ‘흥정’이란, “흐르는 말”이다. 무엇을 사고팔 적에 “서로 뜻을 밝히고 값을 나누고 말을 주고받으면서 금을 살피고 맞추는 길”을 ‘흥정’이라 했다. 그래서 “흥정은 붙이라”고 일컫던 옛말은, 싸우거나 다투거나 겨루려는 둘 사이에 서서 “주먹다짐이나 미운말이 아닌, 서로 어떤 마음인지 더 낱낱이 드러내고 알리면서, 서로 마음부터 맞추어 보자”고 길을 트는 일이다. 가운꽃인 어른은 언제나 싸움을 말리면서 “둘 사이에 이야기를 놓는 몫”을 하는 사람이다.


  어른은 왼길도 오른길도 아닌 ‘온길’이다. “두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던 삶말마저 내동댕이치는 그대가 아닌가? 남을 탓하지 말자. 바로 ‘나’하고 ‘너’를 탓하자. 나는, 너는, 우리는 얼마나 싸움을 말리면서 흥정을 붙이는 오늘을 살아가는가? 손가락질과 밉말을 쏟아내는 ‘나너우리’이지 않은가? 흥정을 붙일 마음을 아예 밀쳐내고서 그저 저놈들을 나무라고 타박하기만 하지 않나?


  토미 드파울라 님이 남긴 《오른발 왼발》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아기도 할배도 오른발과 왼발을 나란히 떼면서 걸음을 익히고 사랑을 물려받는다. 어른도 아이도 왼발과 오른발을 갈마들면서 뛰고 걷고 달릴 수 있다. 우리는 두 손발과 두 눈귀와 두 마음을 하나로 모두는 온길을 나아가면서 사랑을 할 사람이다.


  가운꽃인 어른이기에 사랑이다. 왼켠과 오른켠으로 벌리면서 미워하기에 ‘불(분노)’이 일면서 싸움박질(전쟁)로 치닫는다. 나는 닷새에 걸쳐 부산과 부천과 서울을 오가면서 ‘개’하고 ‘새끼’라는 낱말을 비롯해서 ‘온우리말’을 짚어 보았다. ‘순우리말’이 아닌 ‘온우리말’을 생각해 본다.


  한 마디로 “서울말(표준어)을 버려야 사람이 된다”고까지 할 만하다. 우리는 “아직 사람이 아닌 사람옷을 입은 모습”에 머무른 채 쳇바퀴인 우리나라요 터전이며 마을이다. “서울과 서울말과 서울살이를 몽땅 버려야 펑화요 평등이요 민주요 진보요 나라답다”고 할 만하다. 집만 시골이기에 숲말을 쓰지 않는다. 아이를 여럿 낳아서 돌봤어도 살림말을 쓰지 않는다. 서울에 살거나 아이를 안 낳았어도 스스로 가운꽃을 바라보고 바라고 받아들일 줄 알면, 어느새 스스로 어른이 되어 숲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어느 곳을 보금자리로 삼든, 스스럼없이 가운꽃이라는 어른길을 걸어가려는 마음과 매무새일 적에 ‘숲말·살림말·사랑말·사랑말’을 펼 수 있다. 우리 손과 입에서는 ‘꽃말·들말·멧말·바람말·씨앗말’이 태어나고 샘솟아야 한다.


  ‘함께살기(같이살기)’를 등지거나 ‘숲노래(삶노래)’를 잊기에 깜깜하게 갇히고 가둔다. ‘함께노래(같이노래)’를 멀리하거나 ‘숲살림(사람살림)’을 사귀지 않으니 캄캄하게 고이고 묶인다. ‘함께걸음(같이걸음)’을 싫어하고 ‘숲사람(꽃어른)’을 내치기에 까마득히 벼랑으로 굴러떨어진다.


  나는 오늘 우리집으로 간다. 우리별이라는 터전에서 우리말을 하는 우리집으로 간다. 나는 오늘 사랑씨를 그리며 우리집으로 간다. 우리나라이기보다는 우리숲으로, 우리들과 우리메로, 우리씨앗과 우리해를 바라보면서 우리집으로 같다. 나는 오늘 여름볕과 여름구름을 한가득 안고서 사랑노래로 우리집으로 간다. 너하고 나하고 하늘빛으로 마주하기에 우리집이다. 나랑 네가 바람소리를 맞이하기에 우리집이다. 너도 나도 함께 저마다 ‘우리집’으로 걸어가기에 푸른별이 빛난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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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7. 귀제비



  고흥 곳곳에 귀제비가 산다. 귀제비는 제비하고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날고 다르게 둥지를 짓는다. 사람도 다 다르니, 새도 다 다르게 마련이다. 제비하고 귀제비를 모르면, 제비집도 몰라보고 귀제비집은 아주 몰라본다.


  서울사람한테 귀제비집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바보일 수 있다. “제비집을 어찌 생각합니까?” 하고 묻는 일(여론조사)은 없지 싶다. 한 푼도 두 푼도 뒷돈은 뒷돈이요, 한 줄도 두 줄도 베끼기(논문표절)는 베끼기이다. 그렇지만 슬금슬금 넘어가려 한다. 제비가 사라지는 나라는 어찌 망가지는지 아예 어림조차 않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이곳을 뒤흔든다.


  나라일꾼(국무총리·장관·기관장)쯤 맡으려면 50억 원이건 2억 원이건 200원이건 몰래 받는 일이 없이 ‘아이곁에서’ 살림을 짓는 참한 일꾼이어야 하지 않을까. ‘저놈’들은 더 많이 받아먹었다면서 나무랄 까닭이 없다. ‘저놈보다 적게 받아먹었’기에 잘못이 아니거나 없을 수 없다. ‘숙대 글베끼기(논문 표절)’를 따진 손가락으로 ‘칭화대 글베끼기(논문 표절)’을 나란히 따지고 나무랄 줄 알아야 이 나라가 발돋움을 한다. 글베끼기를 하는 사람은 책을 안 읽는다고 느낀다. 이들은 ‘훔칠’ 뿐이다. 배우지 않으니 훔치거나 베끼거나 등돌린다. 


  아이들은 갈수록 읽눈(문해력)이 떨어진다는데, 먼저 어른부터 읽눈이 바닥을 친다. 슥 훑고서 읽었다고 여기는 분이 너무 많고, 책이고 영화이고 고작 애벌만 훑고서 ‘읽었다’고 말하니, 그저 엉성할 뿐이다. 아이도 어른도 “한두 벌 말한다”고 해서 바로 알아듣지 않는다. 자꾸자꾸 말해야 천천히 알아차린다. 어느 책이든 곰곰이 짚으면서 두고두고 되읽어야 비로소 속뜻을 새긴다. 속뜻을 안 새기면서 겉훑기를 하는 물결이 높은 나머지, “우리말이 가장 어렵다”는 어이없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


  언제나 우리말이 가장 쉽다. 쉬운 우리말부터 차분히 익히기에 숱한 새길을 내고 열고 가꾼다. 우리말이 아닌 “우리말 시늉”을 하는 겉치레를 치워야, 아이들부터 굴레(입시지옥)에서 벗어나고, 어른은 저마다 어질게 보금자리를 일굴 수 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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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30. 하루아침에



  부산사상에서 07:00 시외버스를 타려고 05:59 부산전철을 탄다. 큰고장에서는 일찍 움직여서 첫 시외버스를 어렵잖이 탈 수 있다. 시골사람은 으레 02∼03시에 하루를 열지만, 이맘때에 다니는 시골버스란 없다. 일찍 여는 벼슬집(관공서)도 없다. 머잖아 나흘일(주4일노동)이 자리잡을듯한데, 시골사람은 어찌해야 한다는 뜻일까? 더욱이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은 어쩌란 뜻일까? ‘집안일’은 “한 해 내내 + 하루 내내”이다.


  풀은 달날에도 흙날에도 자라고 쉼날에도 한가위에도 자란다. 아이들은 불날에도 해날에도 자라고 한글날에도 자란다. 일을 알맞게 가르거나 나누면서 하는 길이란 무엇일는지 살필 때라야, 아이도 어른도 튼튼히 제자리에 서게 마련이다.


  어제 ㅁ 이야기를 폈다. ㅅ과 ㅇ도 대단하지만 ㅁ도 물줄기처럼 줄줄 흐른다. 하루아침에 다 여미지 않는다. 천천히 하나씩 여미면서 매듭을 지어간다. 곧 싹틀 풀포기처럼, 이윽고 움틀 망울처럼, 새벽마다 맺는 이슬처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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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30. 손으로 쓰고 말하는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서 부천으로 왔다. 등짐이 아직 가볍기도 하지만, 그냥 못 본 척하면서 지나칠 수 없는 책이 수북하다. 그러나 더 보다가는 무거워서 못 걸을 수 있기에, 오늘밤에 읽을 만큼만 고르고서, 이다음달에 마실해서 사읽자고 생각한다.


  요 이레 사이에 쓴 손글하고 두어 달 앞서 쓴 손글을 문득 올려놓고서 들여다본다. 즐겁다. 나는 손수 짓는 사람이로구나. 다리로 걷고 손으로 쓰고 마음으로 읽고 눈으로 느끼고 귀로 받아들이고 살갗으로 배우고, 마침내 사랑으로 품고 풀 길을 곱씹는다.


  우리는 누구나 먼먼 아스라이 머나먼 옛날 옛적부터 손수짓기에 손수빚기에 손수살림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주고서 노래했다. 손발을 쓰고 나누기에 사람으로서 산다. 손발을 잊고서 잃기에 사람빛을 나란히 잊고서 잃는다. 서로 온마음과 온몸으로 만나면 넉넉하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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