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6.


《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

 김성효 글·홍지혜 그림, 한솔수북, 2020.3.20.



마을책집을 꾸리는 어느 이웃님이 《천년손이와 사인검의 비밀》이란 동화책을 아이랑 무척 재미나게 읽었다고 하시기에 누가 썼나 하고 살피니 ‘김성효’란 분이고, 전라북도에서 장학사 일을 하며, 아이를 돌보는 아주머니이자, 초등교사로 오래 일했다고 하는구나. 초등교사·어머니·아줌마·장학사에 이어 동화작가라니. 이분은 어릴 적에 둘레에서 어떤 눈길을 받으면서 어떤 사랑으로 하루하루 살아오셨을까. 틀림없이 이 나라뿐 아니라 이 별 곳곳에서 가시내는 찬밥이었고 따돌림이었다. 이 흐름은 이제 많이 걷혔으나 ‘꽤 걷혔다뿐 사라지지 않’았다. 이와 맞물려 적잖은 사내도 찬밥이거나 따돌림이었지. 어느 한켠만 찬밥이거나 따돌림이지 않은걸. ‘범칼(사인검)’이 하늘나라를 떠나 사람나라에 조용히 깃들어 아이 하나만 지키고 싶다는 뜻을 드러낼 만하다. 꽃할머니를 돕겠다던 시민모임이 보여준 슬픈 검은자취를 보라. 아름뜻으로 아름일을 할 생각이라면 돈도 ‘아름돈’으로 가꿀 노릇이다. 목소리만 높인대서 시민운동이 되지 않는다. 늘 삶자리에 바탕을 두면서 꽃순이·꽃돌이를 보아야 하고, 스스로 꽃순이·꽃돌이여야겠지. 동화작가 장학사님이 글결을 조금 더 쉽고 부드러이 가다듬으면 한결 빛나리라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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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5.25.


《행복한 사자》

 루이제 파쇼 글·로저 뒤바젱 그림/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 1997.6.18.



어린 초피나무를 옮겨심으니 초피냄새가 엄청나게 퍼진다. 아무리 작아도 넌 틀림없이 나무야. 게다가 초피나무인걸.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볕이 잘 드는 자리로 옮겼는데, 손에도 몸에도 초피내음이 물씬 밴다. 저를 눈여겨보고 햇볕하고 놀도록 옮겨서 기쁘다는 눈치이다. 순천 〈도그책방〉에서 장만한 《행복한 사자》를 피아노 곁에 한참 둔다. 오래된 그림책이지 싶은데 이야기가 알뜰하다. 사자를 비롯한 들짐승이나 숲짐승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 적에 즐거울까? 누가 저를 때리거나 치거나 죽일 걱정이 없이 날마다 넉넉히 밥을 누린다면 즐거운가? 저를 보겠다면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서 사진을 찍거나 손을 흔들면 즐거운가? 그런데 쇠기둥이 촘촘히 박힌 짐승우리(동물원)가 아닌, 바깥으로 사자가 어슬렁 나와서 ‘사자나라 말’로 사람들을 부른다면? 이때에도 사람들은 사자를 구경하거나 좋아한다고 얘기하려나? 사슬터에서는 어느 누구도 즐겁거나 홀가분하지 않다. 이곳에 있든 저곳에 있든 모두 마음으로 마주하는 동무로 사귈 적에 비로소 기쁘게 웃음짓고 즐거이 노래할 만하다. 나라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들이밀려고 용쓴다. 바보같다. 돌림앓이가 아니어도 왜 사슬터로 몰아붙일까? 아이들은 삶을 누려야 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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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을 생각한다

숲노래 우리말꽃 : 초등학생 국어사전 추천



[물어봅니다]

  초등학생 국어사전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7세입니다.



[이야기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책을 그닥 안 읽었어요. 1975년에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그무렵에는 바깥에서 뛰놀기에 바쁘기도 했고, 저희 집이나 둘레 이웃집에서도 딱히 어린이한테 책을 사서 읽히는 어버이는 거의 못 봤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둘레 어른은 동화책을 사서 읽히는 일이 없다시피 했고, 그때에는 그림책이 아예 없다시피 했지만, 만화책만큼은 스스로 소꿉돈을 모아서 사읽곤 했습니다.

  1980년대나 1990년대를 돌아본다면, 그무렵에 ‘어린이 국어사전’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전과 말풀이’하고 똑같았어요. 이 흐름은 2000년대로 넘어서고 2020년대에 이르도록 거의 안 바뀌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어린이한테 맞춤한 사전을 고르거나 살피거나 이야기하기란 참 힘들어요. 먼저 ‘사전’이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기로 해요.


[표준국어대사전]

사전(辭典) :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사전(事典) : 여러 가지 사항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 각각에 해설을 붙인 책


  나라에서 선보인 《표준국어대사전》은 한자가 다른 두 가지 ‘사전’을 풀이합니다. 이 풀이를 읽고서 어린이가 얼마나 알아들을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어른 가운데에서도 아리송하다고 여길 분이 있겠지요.


[보리 국어사전]

사전(辭典) : 여러 낱말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풀이한 책. 낱말의 뜻, 소리, 쓰임새 들을 찾아보는 데 쓴다

사전(事典) : 어떤 내용을 차례대로 늘어놓고 풀이한 책. 그림이나 사진을 곁들이기도 한다


  초등학교 도서관에 많이 있고, 아이를 둔 어버이가 많이 사읽힌다는 《보리 국어사전》 뜻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조금 줄이고, 한자말을 한국말로 손질했구나 싶습니다. 아마 우리는 ‘사전’이라는 책을 이처럼 “낱말을 늘어놓고 풀이한 책”으로 여기지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사전 = 낱말책’으로 바라보는 셈입니다.


  자, 그렇다면 더 생각해 보기로 해요. 낱말을 풀이한 책이 사전이라면, ‘낱말풀이’는 어버이인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들려주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느 사전을 펴더라도 ‘낱말풀이’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더구나 ‘돌림풀이·겹말풀이’가 수두룩합니다. 우리 어버이나 어른이 아는 만큼 그때그때 스스로 풀이를 해서 아이한테 이야기하는 길이 한결 나을 만하다고 여겨요.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사전이 갇히고 만 ‘돌림풀이·겹말풀이’를 들여다보시면 좋겠습니다.


  몇 가지 보기를 들면서 이 대목을 짚겠습니다. ‘사전 추천’을 그냥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한국에서 어떻게 무슨 사전을 추천해야 할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불우·어렵다·힘들다’를 놓고서 어린이 사전인 《보리 국어사전》을 살펴볼게요. 어른이라면 그냥 지나가겠지만, 어린이라면 ‘불우이웃돕기’란 말씨에서 ‘불우’가 뭔지 모르기 마련입니다. 동화책이나 그림책에 곧잘 “불우한 어린 시절” 같은 말씨가 나오는데요, ‘불우’ 같은 한자말을 굳이 써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만, 아무튼, 어린이한테 참 어려운 이 낱말을 사전은 어떻게 다뤘을까요?


[보리 국어사전]

불우 : 형편이 어려운 것

어렵다 : 1. 어떤 일을 하거나 이루기가 힘들다 2. 어떤 것을 알거나 풀기가 쉽지 않다 3. 형편이 넉넉지 않거나 사정이 좋지 않다 4. 윗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마음껏 행동하기 거북하거나 두렵다

힘들다 : 무엇을 하는 데 힘이 퍽 많이 들어서 하기가 어렵다


  ‘불우’를 찾으니 ‘어렵다’로 돌립니다. ‘어렵다’를 찾으니 ‘힘들다’로 돌립니다. ‘힘들다’를 찾으니 다시 ‘어렵다’로 돌립니다. 돌림풀이란 이런 뜻풀이를 가리킵니다. 낱말을 풀이하지 않고, 비슷한 다른 낱말로 슬쩍슬쩍 돌려서 끝내 뜻풀이를 안 하는 얼개가 돌림풀이예요.


  ‘힘들다’를 “힘이 들어서 어렵다”로 풀이하지요. 이런 뜻풀이는 ‘겹말풀이’입니다. 같은 풀이가 잇달아 나온 셈이거든요. 이러한 뜻풀이를 읽을 어린이가 낱말을 얼마나 헤아리거나 알거나 짚을 만할까요?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은 사전을 읽으면서 말을 익힐까요?


  아니지요. 이 말을 저 말로 풀고, 저 말은 그 말로 풀다가, 그 말은 이 말로 풀면, 어린이는 어느새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 뿐 아니라, 비슷하지만 다른 여러 말을 뒤죽박죽으로 쓰고 맙니다.


[보리 국어사전]

불쌍하다 : 형편이 딱하다. 또는 남의 형편이 딱해서 가슴이 아프다

딱하다 : 1. 처지나 형편이 불쌍하다 2. 일을 어떻게 하기 어렵다

가엾다 : 딱하고 불쌍하다

안쓰럽다 :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이 가엾고 딱하다

아깝다 : 1. 소중한 것을 놓치거나 잃어서 섭섭하고 아쉽다 2. 어떤 것이 소중하고 귀해서 쓰거나 버리기 싫다 3. 사람이나 물건이 가치에 걸맞게 쓰이지 못해 안타깝다

안타깝다 :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보기에 딱하여 속이 타고 갑갑하다


  ‘불쌍하다·딱하다·가엾다·안쓰럽다·아깝다·안타깝다’ 이렇게 여섯 낱말을 잇달아 살펴볼게요. 여섯 낱말이 뒤죽박죽으로 돌고 돌 뿐 아니라, 겹말풀이까지 뒤섞여요. ‘안쓰럽다 = 힘들어서 가엾고 딱하다’라 하는데 ‘딱하다 = 불쌍하다 + 어렵다’요, ‘가엾다 = 딱하다 + 불쌍하다’라 합니다.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런 뒤죽박죽 겹말풀이·돌림풀이에 갇힌 사전을 어린이한테 읽혀도 될까요? 그런데 이 대목은 어른 사전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오늘날 한국에서 나온 거의 모든 사전은 낱말을 더 많이 실었다고 자랑하기만 할 뿐, 정작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을 제대로 갈라서 밝히지 못하고, 낱말 하나를 깊이 헤아리면서 알아보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이라고 거듭 이야기하는데요, 비슷한말은 비슷하다 싶으나 다른 말입니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이러한 결을 찬찬히 보고 익혀야지 싶습니다. 우리 어버이·어른은 어린이한테 더 많다 싶은 낱말을 알도록 가르치기보다는, 몇 안 되는 낱말을 들려주어 가르치더라도 제대로 뜻·결·쓰임을 갈라서 밝히고 이야기할 노릇이라고 느껴요.


  살아가면서 쓸 바탕이 될 말씨를 제대로 익힌다면, 앞으로 어린이가 자라 푸름이가 되고, 푸름이에서 싱그러이 자라 어른이란 자리로 나아가는 동안,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뿐 아니라, ‘새로 듣거나 마주하는’ 낱말도 스스로 헤아리면서 풀이하고 결하고 쓰임을 알아낸다고 느껴요.


[보리 국어사전]

공간 : 1.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곳 2. 정해진 테두리가 없이 모든 방향으로 뻗어 있는 곳 3.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곳

장소 :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

데 : 1. 곳이나 장소를 뜻하는 말

곳 : 사물이 있는 자리.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

자리 : 1. 사람, 무건이 있거나 있을 만한 공간


  어린이는 사전에서 어떤 낱말을 찾아볼까요? 아마 웬만한 어버이나 어른은 이 대목을 쉽게 놓치실 텐데,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기에 아주 쉽거나 흔한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어른이라면 ‘공간’이나 ‘장소’ 같은 한자말을 굳이 사전에서 안 찾을 만해요. 그러나 어린이라면 마땅히 찾아본답니다. 그리고 ‘곳’이나 ‘자리’ 같은 낱말도 찾아보지요.


  ‘공간·장소·데·곳·자리’란 낱말을 《보리 국어사전》이 어떻게 풀이했나요? 다른 어린이 사전도 이와 비슷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다른 어른 사전도 이와 비슷해요. 모두 겹말풀이에 돌림풀이입니다.


  이제 ‘사전’은 어떤 책이어야 할까를 새롭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꾸준히 여러 사전을 새로 쓰는데요, 앞으로 언제 마무리할는 지 몰라도, 새롭게 엮을 《숲노래 사전》에 ‘사전’이란 낱말을 이렇게 풀이할 생각입니다.


[숲노래 사전]

사전 : 말에 담은 생각을 찾아보면서 삶·살림·사람·숲·사랑을 다시 바라보거나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새롭게 알거나 받아들이도록 돕는 책. 문득 내뱉을 수 있는 어느 한 자락 삶을 오직 한 마디로 그려내어서 늘 새로울 수 있는 살림으로 지피는 이야기가 되는 바탕이 되는 말을 엮어서, 그 한 마디 말을 마음에 생각으로 심고는 ‘오늘·사랑’을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한길로 이어서 즐겁게 나누도록 이바지하는 꾸러미. 나·우리 눈으로 온누리를 보고 느끼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엮은 말을 글로 담은 책. 새롭게 배우는 길에 말로 징검다리가 되는 책.


  어린이한테 사전을 읽히려 한다면, 먼저 어버이·어른부터 사전을 곁에 두고 읽어야지 싶습니다. 어린이 사전만 곁에 둔다면, 어린이 사전에서 숱하게 드러나는 아쉽거나 엉성하거나 어설프거나 모자란 대목을 채우거나 보태거나 손질해서 들려주어야 할 텐데, 맞춤한 어른 사전을 어버이가 먼저 곁에 안 두다가는 힘들지요.


  이런 아쉬운 얼거리를 헤아린다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으로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익힐 만합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으로 겹말풀이를 벗어나는 길을 배울 만합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으로 사전을 스스로 어떻게 읽으면 되는가를 돌아볼 만합니다.


  어린이가 스스로 사전을 읽도록 하기보다는, 일곱 살이든 열 살이든, 사전찾기는 나중에 시키면 좋겠어요. 적어도 열다섯 살 무렵까지는 어버이나 어른이 그때그때 이야기로 풀이해서 들려주기를 바랍니다. 어버이하고 어른이 어린이·푸름이 곁에서 함께 말을 새롭게 배우고 익히고 갈고닦고 가다듬고 갈무리하면서, 함께 생각을 키우면 좋겠어요.


  어린이한테는 사전을 따로 장만해 주시기보다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나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처럼, 이야기 얼개로 낱말 흐름을 짚는 책을 읽도록 하시면 좋겠고, 어린이 혼자서 읽도록 하기보다는 어버이하고 어른이 나란히 읽으면서 말씨가 왜 ‘말씨(말을 이루거나 말로 된 씨앗)’인가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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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강아랫마을 포근한 쉼터 (2020.3.11.)

― 서울 내방역 〈메종 인디아〉


02.6257.1045

서울 서초구 방배로23길 31-43

http://www.maisonindia.co.kr



  2월에는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깨어나는 소리가 퍼집니다. 5월에는 봄이 스러지면서 여름이 피어나는 소리가 번져요. 8월에는 여름이 떠나면서 가을이 노래하는 소리가 흐르고, 11월에는 가을이 잠들면서 겨울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서울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란다면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새로우며 날마다 새삼스러운 소리를 가누기 어려울는지 몰라요. 그러나 서울처럼 큰고장에서 나고 자라더라도 스스로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맛보고 빗물을 혀로 받으며 손으로 푸나무를 쓰다듬는 하루를 연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철을 헤아릴 만하지 싶습니다.


  어릴 적에는 학교 가는 길에 우산을 안 챙기고 싶어서 하늘하고 바람을 읽으려 했어요. 스무 살 무렵에는 자전거를 달려 신문을 돌리면서 밤하고 새벽에 ‘바람에 묻은 비내음’이나 ‘바람에 감도는 뜨거운 볕살’을 읽으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디에서든 모두 헤아릴 만하다고 느꼈고, 무엇보다 나무가 우거졌느냐 있느냐 없느냐로 크게 갈리는 바람맛을 알았어요.


  전남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달려 서울로 가자면, 지리산, 전북, 충남, 경기를 거쳐 서울에 이르도록 다 다른 하늘·들·숲·멧골·길을 느낍니다. 전남을 벗어나면 멧자락이 사라지고, 전북을 벗어나면 숲을 보기 어렵고, 충남에 이르며 전봇대에 공장이 늘더니, 경기에 접어들면 하늘을 꽉 막은 높은 집에 숨이 막혀요. ‘센트럴시티’라고 하는, 뭔 소리인지 모르겠을 이름인 곳에 내리면 사람물결이 대단하지요. 이 사람물결에 섞여 조용히 흐르다가 내방역에서 전철을 내려 몇 걸음 내디뎌 골목으로 접어들면, 안골에 깃든 작은 쉼터에서 춤추는 나무를 보면, 서울 강아랫마을 한복판에 이런 아늑한 데가 다 있구나 싶어서 숨을 새롭게 쉬곤 합니다.


  2019년에 이어 2020년에 동시집을 새로 냈습니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란 이름입니다. 새 동시집을 서울 은평에 있는 헌책집 지기님한테 손수 가져다주고 싶어서 서울마실을 했고, 하룻밤을 묵은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가기 앞서 〈메종 인디아〉에 들러 다리를 쉬기로 합니다. 3월 첫머리에도 따스하면서 부드러운 햇볕이 아름답습니다. 책집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바람이며 해가 그득그득 들어오도록 하니, 이 마을책집에 퍼지는 기운이 한결 새롭습니다. 새벽나절에 동시 ‘돌나물’하고 ‘질경이’를 썼어요. 


어떻게 그리 메마르고 단단한

아무 풀포기 안 자라는

참 거친 땅바닥에

뿌리를 다 내리느냐고?


어쩜 그렇게 밟히고 또 밟혀

게다가 자동차까지 부릉부릉

밟고 다니는 길에서

잎을 다 틔우느냐고?


메마를수록 어루만지고 싶어

단단할수록 녹이고 싶어

거칠수록 쓰다듬고 싶어

아플수록 웃고 싶어


이 땅을 사랑하려 해

이 길이 푸르길 바라

이 숨빛을 나누려 해

이 마음을 꽃피우면서 (질경이/숲노래 씀)


  책집지기님한테, 또 동시집을 펴내 준 출판사 대표님한테, 새로 쓴 동시를 하나씩 드립니다. 함께 낮밥을 먹고서 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둘 고릅니다. 고흥으로 달릴 시외버스에서 읽으려 합니다. 하나는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윤선영, 북로그컴퍼니, 2017)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좋아》(정경희, FOR BOOK, 2012)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예전에는 서울 강아랫마을 서초에 헌책집이 거의 없었어요. 그럴 만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곳곳에 알맞춤한 크기로 마을책집이 기지개를 켜면서 알뜰히 우물가 노릇을 하고 샘터 구실을 하며 나무그늘 몫을 하는구나 싶어요. 아무리 커다란 집이 겹겹이 빼곡하고, 아무리 으리으리 자동차가 끝없이 씽씽 달리더라도, 이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 누구나 푸르면서 포근하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마을책집이 있다면, 서울도 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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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책숲말 2020.5.14. 덧종이


인천에서 나고 자랐어도 찻길하고 집이 가득한 마을에서 벗어나면 논밭을 쉽게 봅니다. 겹을 이루어 지은 논밭을 바라보며 참 멋지다고 느꼈어요. 보기에도 아름답고, 이 멋진 논밭을 겹겹이 일구느라 흘린 땀방울이 떠올라 가없이 아름다운 터전이로구나 싶었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이 논밭을 두고 ‘다락논’이라고도 하고 ‘다랑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어슷비슷한 말씨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왜 ‘다락·다랑’을 쓰는가를 어림하지 못했어요. 이름만 알려주기보다는 생김새에 쓰임새에 말결에 말밑을 함께 짚는다면 머리를 환히 틔울 테지요. 커다란 책이라면 ‘큰책’입니다. 조그마한 책이라면 ‘작은책’이에요. 남이 아닌 내가 임자로 있는 땅이니 “내 땅”이요 “우리 땅”이에요. ‘임자땅’이라 해도 되겠지요. 우리는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나타내도록 말을 하면 돼요. 몸짓을 그대로, 생각을 낱낱이, 마음을 하나하나 밝혀 봐요. 기름결이 흐르니 기름종이입니다. 밑에 대는 종이라서 밑종이가 되어요. 덧댄다는 쓰임새라면 덧종이가 되겠지요. 이 이름 저 이름 외우기보다는, 그때그때 맞게 아이하고 이름을 떠올리면서 붙여 봐요. ㅅㄴㄹ


다락논·다랑이·다랑논 ← 계단식 논

큰책·큼직책 ← 대형서, 대형도서, 대형 활자본, 빅북

작은책·손바닥책 ← 소형서, 소형도서, 문고본, 문고판, 미니북

내 땅·우리 땅·임자땅·임자 있는 땅 ← 사유지

기름종이·밑종이 ← 덧지(-紙), 시트지, 트레이지(tray紙), 트레이싱지(tracing紙), 트레이싱 페이퍼(tracing pape), 습자지

덧종이 ← 덧지(-紙), 시트지, 트레이지(tray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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