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8.19.

수다꽃, 내멋대로 22 할아버지한테



우리 아이들 일산 할아버지가 다시 돌봄터(병원)로 실려갔다. 어쩌면 이제 아이들 일산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몸을 내려놓고서 넋으로 돌아가시리라 느낀다. 아이들 일산 할머니한테 전화를 건다. 요새는 돌봄터에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고, 아픈이(환자) 곁에서 보살피는 사람은 돌봄칸(병실)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아픈이가 말끔히 나아서 같이 나오거나, 아픈이가 죽어서 나와야 비로소 나올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 참 대단한 나라로구나 하고 느꼈다. 가시아버지(장모)한테 여쭐 말씀은 몇 가지 있다. “첫째, 여태까지 가시아버지가 잘못한 일도 잘 하신 일도 없답니다. 그저 모두 이 몸을 입은 이곳에서 새롭게 배우려고 겪은 일뿐입니다. 둘째, 아프거나 안 아픈 일은 모두 마음과 생각 탓입니다. 아픔하고 안 아픔 사이에는 아무것이 없어요. 가난하고 가멸(부자) 사이에도 아무것이 없답니다. 가시아버지가 말도 못 하시고 죽음을 코앞에 둔 이 자리에서 두 손에 1조 원이라는 돈을 누가 쥐어 준들, 가시아버지는 가면 살림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텅 빈 사람이 가난합니다. 마음을 사랑으로 그린 사람은 늘 가멸찬 하루입니다. 셋째, 아쉬운 일도 아쉬워할 일도 없어요. 가시아버지가 이루고 싶던 꿈을 펼치지 못해 안타깝다고 땅을 칠 일도 없어요. 몸을 내려놓는 일이란 죽음이 아닌 새길입니다. 우리는 몸뚱이로 살지 않아요. 우리는 몸뚱이로 이 삶을 겪으면서 배울 뿐입니다. 우리는 넋으로만 살아갑니다. 우리 넋은 몸하고 마음으로 두 갈래 길을 걸어가려고 이곳에 태어나는데, 몸으로 맞아들인 삶을 새록새록 새겨서 마음에 담는답니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라고 가르지 마셔요. 바로 오늘 이곳에서 가시아버지가 살아온 모든 나날은 오롯이 ‘삶’이었고 ‘살림’이었기에 가시아버지 나름대로 깨달을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걸어온 길입니다. 아파서 너무 괴로우셨으면, 이 몸을 내려놓고서 새롭게 입을 몸뚱이인 삶에서는, 그러니까 다음삶(내생)에서는 아프지 않을 튼튼한 몸을 그리셔요. 가난한 집안에서 맏이로 태어나서 동생을 먹여살리고 가르치느라 뼈빠지게 힘드셨다면, 가멸찬 집안에서 느긋이 태어나서 가시아버지가 이루고 싶은 꿈을 넉넉히 이루는 새살림을 꿈으로 그리셔요. 이제는 새빛으로 나아갈 새몸을 그리실 때입니다.” 먹어야 배부르지 않다. 안 먹기에 배고프지 않다. 나는 아무리 짊어져도 짐이라 여기지 않고 그저 빙그레 웃는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면 “아, 땀이 이렇구나.” 하고 느낀다. 두 아이 똥오줌기저귀를 날마다 숱하게 손빨래하면서 “우리 어머니도,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먼먼 옛날부터 이렇게 손빛이 눈부신 살림꽃이셨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는 돌봄터(병원)에 들어갈 수 없기에 마음으로 가시아버지한테 마지막말을 띄운다. “오늘까지 걸어오신 몸은 포근히 내려놓으시기를 바라요. 활짝 웃으며 춤출 수 있는 꽃빛으로 피어날 씨앗 한 톨로 새롭게 나아가 보셔요. 오늘하고 어제하고 모레는 늘 하나입니다. 언제나 하나이기에 하늘빛이고 함께예요. 사랑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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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2.8.19.

오늘말. 옛빛


하던 대로 할 수 있고, 되풀이할 수 있고, 예전하고 다르게 처음부터 하나씩 새롭게 지으면서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옛빛을 살려도 아름답고, 오늘빛을 일구어도 아름답습니다. 되살리는 맛이 있고, 오래빛에서 말미암은 숨결을 북돋우는 멋이 있습니다. 오래되기 때문에 오늘하고 안 맞을 까닭이 없어요. 모든 새로운 길은 먼먼 옛날을 바탕으로 삼습니다. 옛모습이 든든히 뿌리를 뻗어서 이 땅에 풀꽃이 물결처럼 너울거리기에 새모습이 하나씩 일어나면서 또다시 맑게 바람이 불고 싱그럽게 비가 오고 밝게 햇빛이 납니다. 지나간 날은 돌아오지 않아요. 예스러운 일을 굳이 돌려야 하지는 않지요. 예나 이제나 누구나 손으로 가꾸었어요. 남 손을 빌리기보다 내 손으로 하나씩 이루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싶나요? 무엇을 듣고 싶은가요? 오늘 깨어난 매미는 지난 일곱 해를 땅에서 곱게 꿈을 그리면서 이웃 풀벌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어요. 오늘 춤추는 나비는 애벌레란 몸으로 풀잎을 갉으면서 즐겁게 꿈빛을 키웠어요. 어떤 틀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해보고 안 되면 또다시 하면 됩니다. 차근차근 걷습니다. 찬찬히 일어섭니다. 뜻한 바를 한 올씩 풉니다.


ㅅㄴㄹ


하다·때문·탓·바·말미암다·등쌀·뿌리·바탕·따르다·-로·-으로·-에·-에서·-은·-는·-이·-가·듣다·보다·읽다·손으로 ← 의하다(依-)


다시서다·다시하다·돌리다·돌아가다·되돌리다·되돌아가다·되살다·되살아나다·되일어나다·되일어서다·되풀이·또·또다시·또또·새·새롭다·아스라하다·지나가다·예스럽다·옛날스럽다·예·예전·옛날·옛멋·옛맛·옛모습·옛빛·오래되다·오랜·오래빛·오랜빛 ← 레트로, 복고, 복고풍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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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빛 2022.8.19.

오늘말. 뜯다


터무니없이 말하면서 이웃을 깎는 이가 있습니다. 이이는 왜 이러나 하고 가만히 보면, 어느 이웃이 이이한테 잘 보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이가 마음에 들도록 굴지 않으니 이웃을 볶거나 밟습니다. 겨레 사이에도 뜯거나 깎는 일이 숱하게 일어납니다. 지난날 독일뿐 아니라, 이 나라도 저 나라도 매한가지예요. 우리나라도 옆나라를 얕보거나 깔본 적이 있고, 옆나라도 우리나라를 밉보거나 깎은 적이 있어요. 손가락질은 어느 한 쪽에서만 하지 않아요. 이쪽도 비꼬고 저쪽도 비웃지요. 서로서로 들볶는 짓을 그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이 못살게 구는 짓을 멈출 수 있을까요? 둘 다 네가 먼저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데, 이렇게 마음을 억누르기만 해서는 스스로 괴롭히는 짓으로 맴돌아요. 뜯고 할퀴는 모든 사람이 안쓰럽습니다. 눈물이 흘러요. 이제라도 고요히 곱씹으면서 밟음질도 볶음짓도 끝내기를 바라요. 남도 나도 누르지 말고, 슬픔을 거두고, 아픔을 달래고, 가만히 어깨동무하는 길을 새롭게 빚을 수 있기를 빕니다. 땅을 기리듯 삶을 기립니다. 아름다이 퍼지는 빛을 떠올리듯 우리 마음이 한결같이 아름다이 퍼지는 빛살이기를 바라요.


ㅅㄴㄹ


이웃뜯기·이웃깎기·이웃볶기·이웃밟기·겨레뜯기·겨레깎기·겨레볶기·겨레밟기·얕보다·깔보다·낮보다·깎다·깎아내리다·비웃다·비꼬다·손가락질·따돌리다·괴롭히다·들볶다·볶다·못살게 굴다·짓밟다·짓누르다·억누르다·밟다·누르다·뜯다 ← 인종차별


구슬프다·슬프다·슬퍼하다·안타깝다·안쓰럽다·아프다·아파하다·눈물겹다·눈물나다·눈물을 흘리다·눈물이 흐르다·곱씹다·기리다·떠올리다·돌아보다·되새기다·되짚다 ← 애도(哀悼)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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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버들잎 소년 - 한국 전래 동화집 1 창비아동문고 23
손동인.이원수 지음 / 창비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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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2.8.19.

맑은책시렁 265


《연이와 버들잎 소년》

 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7.10.첫/2004.12.10.26벌



  《연이와 버들잎 소년》(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이란 옛이야기 글모음이 있습니다. 이제는 백희나 님이 빚은 그림책으로 “연이 버들잎” 이야기가 확 퍼진 듯한데, 아무리 새 그림책이 나오더라도 옛이야기 줄거리하고 얼거리하고 삶넋부터 찬찬히 읽고 돌아볼 노릇이라고 봅니다.


  우리 옛이야기는 모두 수수한 순이돌이 삶을 담습니다. 잘나거나 이름나거나 돈있는 벼슬아치나 글바치나 임금붙이 이야기는 안 담지요. 왜 그럴까요? 돈바치·벼슬아치·글바치·임금붙이는 그야말로 돈·이름·힘에 얽매여 스스로 죽음길로 달려갑니다.


  이와 달리 수수한 순이돌이는 삶·살림·사랑을 숲에서 스스로 짓는 슬기로운 하루를 짓고 나눠요. 우리 옛이야기는 바로 삶·살림·사랑하고 숲·스스로·슬기를 어른하고 어버이부터 되새기면서 아이들이 이 숨결을 고이 이어받아서 새롭게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옛이야기는 심심풀이가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글꽃(문학)이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삶이자, 말이자, 넋이자, 오늘이자, 꿈이자, 사랑이에요.


  아이를 앉히고서 사근사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이나 어버이는 이녁부터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어 상냥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숨결로 서려 합니다. 어른이나 어버이 곁에 앉아 귀를 쫑긋쫑긋 세우는 아이는 앞으로 새롭게 피어날 꿈씨앗을 마음에 품고서 스스로 즐겁게 맞아들일 말빛을 새록새록 듣고 새기지요.


  “연이 버들잎” 옛이야기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오직 삶하고 살림하고 사랑만 흐릅니다. 새어머니는 새어머니대로 아프고 고단한 삶이 있는 나머지, 새아이한테 사랑을 미처 들려주지도 보여주지도 못 합니다. 새어머니를 맞이한 아버지도 똑같아요. 낳든 기르든 사랑이 바탕일 노릇이나, 두 사람은 어른도 어버이도 아닌, 늙은이로 치닫지요. 연이한테는 낯선 남일 수밖에 없는 버들잎인데, 아주 모르던 남남이 처음 숲에서 만나는 곳에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마음을 열기에 낯선 남도 이웃이 되고 동무가 되고 짝꿍이 됩니다.


  마음을 안 열면 한집에서 살아도 남남으로 등돌립니다. 연이하고 버들잎은 새어머니를 미움으로 다스릴 마음이 없어요. 그저 사랑으로 달래거나 녹일 마음뿐입니다. 백희나 님이 새로 빚은 그림책에는 뜻밖에도 사랑이 아닌 미움이 가득하더군요. 옛이야기를 읽고 되새겨서 새 그림책을 얼마든지 낼 수야 있다지만, 막상 삶도 살림도 사랑도 등지고, 숲도 스스로도 슬기도 모르쇠로 넘어간다면, 오늘날 어른하고 아이는 무엇을 듣고 돌아보면서 오늘을 짓는 밑씨앗으로 삼을 수 있을까요?


  비록 나라밖에서 대단한 보람(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런 허울·겉모습·치레를 모조리 내려놓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마음을 읽고 사랑을 빛낼 사람입니다. 연이하고 버들잎 두 아이가 어른(새어머니·아버지)을 미워하다가 앙갚음을 하면 삶이 즐거울까요? 앙갚음하고 미움은 늘 되돌아옵니다. 사랑은 모두 녹여 흙으로 돌아가도록 북돋아 숲을 푸르게 가꾸는 밑거름이나 씨앗이 됩니다.


  옛이야기가 왜 옛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어질게 읽는 어른이 늘기를 바라요. 옛이야기를 오늘 어린이한테 새롭게 들려줄 적에 언제나 사랑하고 숲을 스스로 돌보는 살림빛을 품을 노릇입니다.


ㅅㄴㄹ


“이놈아, 넌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냐?” “아니에요. 나는 아버지 말처럼 선생님 하라는 대로만 했단 말예요. 그리 하는 것이 글 배우는 법이라고 했잖아요. 그리 했는데도 선생님이 공연히 화를 내시니, 저 선생님이 나빠요. 그리고 아버지도 나빠요.” (18쪽)


연이는 무서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도 집에 돌아가서 계모에게 야단을 맞고 매를 맞을 걸 생각하니, 산이 무섭다는 생각은 차차 사라져 버리고 어디든지 춥지 않은 곳에서 몸을 좀 녹일 수만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2쪽)


‘나를 살려 보내 주시오. 나를 살려 보내 주시오.’ 어부는 그 잉어가 엄청나게 큰 때문인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큰 잉어라면 잡아죽이는 건 못할 일이야.” (92쪽)


“암만 기운이 세면 뭘 하나? 사람이 반쪽만으로 어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나? 병신으로 남의 구경거리나 됐지.”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수군거리는 동안에도 반쪽이는 쑥쑥 자라서 드디어 다 큰 청년이 되었습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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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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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웅진책마을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중철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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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2022.8.19.

맑은책시렁 279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구드룬 파우제방

 신홍민 옮김

 김중철 엮음

 웅진닷컴

 1997.4.20.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구드룬 파우제방/신홍민 옮김, 웅진닷컴, 1997)를 1999년에 처음 만났어요. 책이름을 이처럼 아름다이 붙일 수 있어 놀라웠고, 어린이부터 누구나 차근차근 되새길 이야기가 사랑스러워 반가웠습니다. 이때 뒤로 이 책을 둘레에 꽤 건네었고, 알렸고, 들려주었습니다.


  어느덧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는 나날을 살며, 우리 집 아이하고도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읽었니? 이 책에 나오는 미움하고 눈물이 어떤 뜻이라고 생각하니?” 빙그레 웃기만 하는 아이들한테 더 묻지 않습니다. 스스로 느낄 수 있으면 넉넉해요. 천천히 돌아보면서 마음 가득 어깨동무를 품으면 되어요.


  한자말 ‘평화’는 우리말로 하자면 ‘손잡기’나 ‘어깨동무’입니다. 손을 잡기에 평화예요. 서로 손을 잡아야 이 손에 총칼을 못 쥐지요. 아니, 서로 손을 잡기에 따사로이 흐르는 숨결을 서로 느끼고, 이 숨결을 받아들이면서 함께 소꿉놀이를 짓는 길을 생각할 만합니다.


  어깨동무이기에 평화예요. 어깨를 겯으며 걸어야 안 다투지요. 아니, 서로 어깨를 겯도록 눈을 맞추고 키를 살피며 발걸음을 추스릅니다. 나란히 걸으면서 함께 바람을 쐬어요.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지요.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으면서 온몸으로 마음이 타고 흐릅니다.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곱새깁니다.


  손을 안 잡는 이들은 으레 총칼을 쥐더군요. 어깨동무를 안 하는 이들은 으레 혼자 돈·이름·힘을 거머쥐더군요.


  다 훌훌 털 수 있을까요? 총칼로 이웃을 죽이면 즐거운가요? 총칼로 풀꽃나무를 쓰러뜨리고 숲을 망가뜨리면 숨을 어떻게 쉬고 먹을거리를 어디서 얻나요?


  혼자 돈·이름·힘을 차지하니 배부른가요? 빵빵거리면서 골목을 부릉부릉 달리니 신나는지요? 사람만 다녀야 할 길이 아니요, 쇳덩이를 더 빨리 보내야 할 길이 아닙니다. 개미도 다니고 고라니도 건너도 바람도 흐르고 비랑 눈도 내려앉을 길입니다. 씨앗이 싹이 트고 나무가 자랄 길이에요.


  사랑을 마음에 심기에 손잡기·어깨동무·눈맞춤이라는 사랑이 하나둘 깨어납니다. 사랑을 생각하기에 서로 즐겁게 어우러질 길을 하나씩 찾아나섭니다. 부릉이(자가용)를 버릴 줄 알면 총칼이 사라져요.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줄 알면 총칼이 들어설 틈이 없어요. 아이 곁에서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어버이로서 어른으로서 사람으로서 늘 사랑을 속삭이고 그리기에 온누리는 푸른별이란 이름으로 눈부실 만해요.


ㅅㄴㄹ


그때 슈포르너 선생님이 나섰습니다. “너 평화를 폭력으로 강요하려는 거냐?” (35쪽)


“그럴 생각이 있으면 네 부모님이 돈을 내면 되잖아. 네 부모님은 돈이 많잖아. 너 선물도 안 받고, 생일잔치도 안 하고 그럴 거야? 난 못 해. 내가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을 거야.” (54쪽)


“그 대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어. 더 잘 느낄 수 있고. 냄새도 더 잘 맡아. 손 한번 내밀어 볼래? 손만 만져 봐도 네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 알 수 있어.” (108쪽)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거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우리가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어.” (127쪽)


“관세와 여권, 증명서 등을 들고 국경을 오가야 하는 연극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국경을 지키는 보초를 철수시키고, 우리 두 나라 사람들이 언제나 서로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41쪽)


두 나라 왕은 교과서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두 나라 학생들은 처음부터 새 교과서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잔디나라 아이들은 숲나라 사람들이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글을 읽고 무척 놀랐습니다. 숲나라 아이들도 잔디나라 사람들이 흡혈귀라는 글을 읽고 아주 놀랐습니다. (14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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