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열 살과 팬클럽 (2025.12.12.)

― 부산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둘쨋날



  추운 날에는 신나게 춥게 지내다 보면, 어느새 봄이 오는 줄 알아봅니다. 겨울로 접어들어 날씨가 똑똑 떨어질수록 거꾸로 봄으로 다가서는 셈이고, 긴밤(동지)이 지난 뒤부터는 아침도 낮도 저녁도 길어가는 줄 누립니다.


  함께 살림짓는 사이라면 겨울에 서로 겹겹으로 품으면서 이야기를 짓습니다. 함께 살림하는 우리라면 여름에 서로 맺을 열매를 돌보고 가꿉니다. 추워서 싫거나 더워서 싫다고만 말하면, 언제나 싫은 일이 찾아들어요. 다 다른 철에 다 다르게 누리고 즐기며 나눌 살림길을 바라볼 일입니다.


  아침에 수정초등학교로 갑니다. 기차나루에서 멀잖은 안골에 있습니다. 큰길에서 벗어날수록 조용하고, 나무가 큽니다. 안골에서 자라는 나무는 가지치기에서 꽤 살아남는군요. 그렇지만 배움터 앞 부채나무(은행나무)는 짜리몽땅합니다. 오늘은 수정초 3학년 어린이와 말빛과 글빛을 놓고서 작게 모임을 꾸립니다. ‘열 살’이란 나이를 넘어서는 이 아이들한테 ‘열’이라는 낱말에 숨은 뜻을 알려주고서, 아이들이 저마다 궁금한 대목을 여럿 듣고서 모두 풀어내어 들려줍니다.


  이윽고 보수동책골목에 살짝 들르고서 벡스코로 건너갑니다. 〈부산국제아동도서전〉 둘쨋날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곳 ‘강연회장’은 ‘강연’도 ‘이야기’도 아닌 ‘팬클럽 칭찬대회’ 같으면서 너무 길어요. 기다리는 어린손님은 하나도 안 헤아립니다. ‘상 받은 작가’만 불러모으는 자리는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어린책 큰잔치’라지만 정작 어린이는 뒷전이요 안 쳐다보는 얼거리입니다.


  돈과 멋과 이름이라는 세 가지는 안 나쁘다고 봅니다. 그러나 돈에 멋에 이름에 얽매이면 그만 스스로 늪에 빠지고, 허우적거리고, 잠깁니다. 모든 딱한 만무방(독재자)은 스스로 늪을 파서 스스로 빠질 뿐 아니라, 둘레 사람까지 늪에 사로잡으려고 팔을 뻗지 싶어요.


  돈을 바라니 돈에 잠깁니다. 멋을 내니 멋에 매입니다. 이름을 드날리고 싶으니 이름에 붙들립니다. 이와 달리 ‘이야기’를 바라보면 서로 마음을 잇습니다. 서로 마음을 이으니 두런두런 말씨가 나무씨 한 톨로 깃들어 푸른숲으로 갑니다. 요즈음 숱한 책은 ‘이야기’를 잊은 채 ‘돈·멋·이름’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좋아하기(팬클럽)’는 안 나쁩니다. 좋으니까 좋을 텐데, 좋다는 그물을 스스로 쓰느라 언제나 졸졸 좇는 종으로 얽매여요. 우리는 ‘종’이 아닌 ‘종이’를 보아야 눈뜰 수 있습니다. 위아래로 누르거나 무리짓기(팬덤)를 하지 말고서, 누구나 두 손에 붓과 종이를 가볍게 쥐고서 이야기를 그려서 함께할 일입니다.


ㅍㄹㄴ


《안녕, 미래의 국회의원!》(이사벨 미뉴스 마르틴스 글·카롤리나 셀라스 그림/김여진 옮김, 봄날의곰, 2025.10.2.)

#Deputados do Futuro, Ola! #IsabelMinhosMartis #CarolinaCelas

《소나기 저편, 뉴욕의 어느 날》(피에르 에마뉘엘 리에/박재연 옮김, 봄날의곰, 2025.12.11.)

#De l'autre cote de la pluie #PierreEmmanuelLyet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권민경, 문학동네, 2018.12.17.첫/2018.12.31.2벌)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이오덕, 고인돌, 2013.8.25.)

《이오덕 유고 시집》(이오덕, 고인돌, 2011.7.20.)

《그 유물, 진짜로 봤어?》(박찬희·배성호, 철수와영희, 2025.10.18.)

《저녁별》(송찬호 글·소복이 그림, 문학동네, 2011.7.25.첫/2011.12.19.3벌)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김도용, 생능, 2021.2.15.)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콜센터상담원, 코난북스, 2021.8.2.)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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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모던modern



모던 : x

modern : 1. 현대의, 근대의 2. 현대적인, 모던한 3. 최신의 4. 새로운, 선구적인

モダン(modern) : 모던, 현대적



영어 ‘모던’을 붙여 ‘모더니즘’이라고도 쓰지요. 영어 ‘모던’은 ‘새로운’을 가리킵니다. 한자말 ‘현대·근대·최신’을 찬찬히 따지면 하나같이 ‘새로운’으로 이어요. 그러니까 ‘오늘·오늘길·오늘눈·오늘보기·오늘하루’나 ‘오늘날·오늘터·오늘판·오늘마당’로 다듬습니다. ‘요새·요사이·요즈막·요즈음·요즘·요즘터·요앞’이나 ‘이곳·이쪽·이켠·이자리·이때·이적’으로 다듬어요. ‘이제·이참·이 길·이즈막·이즈음·이무렵·이맘때’나 ‘얼마 앞서·여·여기·갓·막·따끈따끈’으로 다듬고요. ‘하루·하루꽃·하루빛’이나 ‘새·새롭다·새눈·새눈길·새뜻하다·새록새록’으로 다듬을 만합니다. ‘새날·새길·새곳·새꽃·새나라·새누리·새삼스럽다’나 ‘새물결·새모습·새너울·새바람·새빛·새넋·새얼’로 다듬을 수 있어요. ‘새싹·새얼굴·새빛물결·새빛너울·새얼물결·새얼너울’이나 ‘새로가다·새로오다·새로걷다·새로고치다·새로바꾸다·새로나오다’로 다듬으면 되고, ‘새로서다·새로열다·새로짓다·새로 태어나다·새로하다’나 ‘새터·새마을·새고을·새고장·새밭·새틀·새판’으로 다듬어도 어울립니다. ‘산뜻하다·상큼하다·선뜻하다·선선하다’로 다듬어요. ‘눈부시다·빛나다·빛빛·빛바르다·빛있다’로 다듬습니다. ‘말끔하다·멀끔하다·말쑥하다·멀쑥하다’나 ‘반듯하다·번듯하다·반짝·반짝반짝·빤질·번쩍·번쩍번쩍·뻔질’이나 ‘열다·트다·트이다’로 다듬기도 합니다. ㅍㄹㄴ



이것을 벗어나는 것이 건강하고 모던한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 이를 벗어나야 튼튼하고 새롭게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 이를 벗어나야 안 아프고 산뜻하게 산다고 봅니다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황혜주, 행성B, 2017) 63쪽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그저 한탄해본다

→ 새로운 모습이라고 그저 한숨짓는다

→ 새물결이라고 그저 한숨을 쉰다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서정학, 문학과지성사, 2017) 14쪽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모던한 부엌

→ 잿돌이 드러나게 마감한 새 부엌

→ 흰돌이 드러나며 깔끔한 요새 부엌

《도쿄의 부엌》(오다이라 가즈에/김단비 옮김, 앨리스, 2018) 5쪽


아버지는 모던하고 근대적인 것을 만들어 왔지만

→ 아버지는 새살림을 지어 왔지만

→ 아버지는 새롭거나 산뜻하게 지어 왔지만

《러브 인 하우스 1》(타카스카 유에/윤현 옮김, 학산문화사, 2018)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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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리드미컬rhythmical



리드미컬 : x

rhythmical : 1. 주기적인, 규칙적 순환을 하는; 리드미컬한, 가락이 맞는 2. 율동의, 운율의

リズミカル(rhythmical) : 1. 리드미컬 2. 운율적인. 율동적인. 리듬이 있는



‘rhythmical’은 “가락이 맞는”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가락·노래’나 ‘놀다·노닐다’로 손볼 만합니다. ‘가볍다·가뿐하다’나 ‘즐겁다·신나다·구성지다’로 손보고, ‘날다·날아가다·날아다니다’나 ‘힘차다·기운차다·씩씩하다’로 손보지요. ‘사뿐사뿐’이나 ‘꾸준히·자꾸’나 ‘덩실·덩실덩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쿵·쿵쿵·쿵덕·쿵더덕·쿵더쿵’이나 ‘쿵덕쿵덕·쿵덕덕·쿵하다·쿵쿵하다·쿵쾅’으로 손보아도 되어요. ㅍㄹㄴ



전라도 방언이 가장 리드미컬했고

→ 전라도 사투리가 가장 힘찼고

→ 전라도 말이 가장 노래 같았고

→ 전라말이 가장 구성졌고

《빠알간 피이터 추송웅》(추송웅, 기린원, 1981) 129쪽


팔의 각도를 90도로 유지하고 크고 리드미컬하게 흔들면서 걸어야 해요

→ 팔은 90도로 굽히면서 크고 힘차게 흔들며 걸어야 해요

→ 팔은 90도로 굽히면서 크고 씩씩하게 흔들며 걸어야 해요

《내 마음속의 자전거 12》(미야오 가쿠/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2004) 6쪽


마음이 들떠서 걸음이 리드미컬하기까지 하다

→ 마음이 들떠서 걸음이 기운차기까지 하다

→ 마음이 들떠서 걸음이 가뿐하기까지 하다

→ 마음이 들떠서 걸음이 가볍기까지 하다

→ 마음이 들떠서 걸음에 힘이 넘치기까지 하다

→ 마음이 들떠서 걷기가 즐거웠다

→ 마음이 들떠서 사뿐사뿐 걷는다

→ 마음이 들떠서 신나게 걷는다

→ 마음이 들떠서 날아갈 듯이 걷는다

《내 나이가 어때서?》(황안나, 샨티, 2005) 155쪽


이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뭔가 의미가

→ 이 힘찬 움직임은 뭔가 뜻이

→ 이 기운찬 움직임은 뭔가 뜻이

《가면 여고생 하나코 1》(오다 료/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2019) 147쪽


콧노래를 불렀다 리드미컬하게

→ 콧노래를 불렀다 가볍게

→ 콧노래를 불렀다 신나게

→ 콧노래를 불렀다 구성지게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박태건, 모악, 2020)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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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영어] 콘크리트concrete



콘크리트(concrete) : [건설]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골재 따위를 적당히 섞고 물에 반죽한 혼합물.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고 내구성이 커서 토목 공사나 건축의 주요 재료로 쓴다 ≒ 혼응토

concrete : 1. 콘크리트로 된 2. 사실에 의거한, 구체적인 3. 실체가 있는 4. 콘크리트 5. 콘크리트를 바르다

コンクリ-ト(concrete) : 1. 콘크리트 2. 시멘트와 모래·자갈·물 등을 섞은 건축 재료 3. 유형의. 구체적인. 실재적인



영어 ‘콘크리트’는 그냥 쓸 수도 있되, 우리가 쓰는 살림길을 돌아보면 빛깔을 헤아려서 ‘잿빛·잿돌·잿덩이·잿더미·잿덩어리’나 ‘잿빛덩이·잿빛더미·잿빛덩어리’라 할 수 있습니다. ‘흰돌·하얀돌’이라 해도 될 테고요. ㅍㄹㄴ



번쩍이는 장대한 콘크리트 유적지

→ 번쩍이고 드넓은 잿더미

→ 번쩍이고 커다란 잿덩어리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김선우, 문학과지성사, 2007) 33쪽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모던한 부엌

→ 잿돌이 드러나게 마감한 새 부엌

→ 흰돌이 드러나며 깔끔한 요새 부엌

《도쿄의 부엌》(오다이라 가즈에/김단비 옮김, 앨리스, 2018)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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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쿠팡체험 군대체험



  찬바람이 가득한 1998년 어느 날, 〈한겨레〉 새내기라고 하는 안수찬 씨를 만난 적 있다. 그무렵 나는 〈한겨레〉를 나르는 일꾼(신문배달부)이었는데, 안수찬 씨는 ‘신문배달부 석 달 경험’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고 밝히더라.  요새는 사라졌을 수 있고, 다른 새뜸에서는 안 하는 줄 아는데, 한동안 〈한겨레〉는 모든 새내기(신입기자)한테 ‘석 달 신문배달부 체험’을 시켰다. 누구나 반드시 석 달 동안 ‘사는집 가까운 신문배달구역’에서 새벽마다 일하도록 해야 했다.


  석 달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여름 석 달을 일한 사람과 겨울 석 달을 일한 사람은 오지게 다르다. 봄가을에 석 달을 일했으면 또 다르다. 새뜸나름이로 가장 고단한 철은 여름이다. 한겨울에도 늘 땀범벅으로 뛰고 일하는 나름이(배달부)인데, 여름에는 따로 수건을 둘씩 챙겨서 손땀을 닦더라도 ‘집집마다 나르는 새뜸’에 땀이 묻는다. ‘젖은 새뜸’이 집에 닿으면 싫어하는 분이 많더라. 모든 새벽나름이는 한겨울에도 수건을 챙기면서 일한다. 온몸에 흐르는 땀을 비롯해서, 손에 돋는 땀을 닦고서 새뜸을 넣거든. ‘수건을 챙기지 않는 새뜸나름이’가 있다면 엉터리이거나 거짓말이다.


  여름에는 1분만 지나도, 겨울에는 12분쯤 지나면, 수건마저 땀으로 흥건하다. 그야말로 “땀방울 안 묻은 새뜸”을 넣기는 너무 어렵다. 어떤 분은 “땀방울 묻은 새뜸”을 못 보겠으니 바꿔 달라고 새벽에 신문사지국으로 전화를 건다. 어쩌겠는가. 바꾸러 그 집에 두바퀴를 달려서 찾아가야지.


  1998년 어느 날 안수찬 씨를 만난 자리에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새벽에 신문배달부 체험은 하셨다지만, 새벽만 돌렸으니까 ‘수금’은 안 하셨겠지요?” “네? ‘수금’이요? 수금이 뭔가요?” “신문을 돌렸으면 신문값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지로’나 ‘찌라시’를 넣은 적도 없겠네요?” “지로요? 찌라시요? 그게 뭔가요?” “아무리 신문배달 체험이라고 해도요, 지로와 찌라시도 모르면 일을 했다고 할 수 없어요. 요새는 그마나 나아서 ‘지로’를 끼워서 돌리는데요, 지로를 끼워도 신문값을 안 내는 분이 아주 많아요. 수금을 하러 가면 값을 깎아 달라고 하려고 하시거든요.” “…….” “신문배달은 새벽일이 끝이 아니에요. 한 달 가운데 보름은 아침과 낮에 수금을 하러 집집마다 다 다시 돌아야 하는데, 신문값을 그날 바로 받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신문배달로 새벽 두 시간을 달린다면, 수금을 하러 아침과 낮에 여덟 시간을 달려야 해요.” “…….”


  요새 ‘쿠팡 때리기’를 하듯 ‘쿠팡 체험’을 하고서 글을 쓰는 분(기자·작가)이 꽤 있는 듯싶다. 이런 분들은 지난날 ‘한겨레 신입기자 석 달 신문배달부 체험’조차 아닌 하루이틀이나 기껏 보름쯤 조금 해보고서 글을 쓰더라. 그런데 하루이틀이나 보름 조금 맛본대서 뭘 알까? 겉은 훑을 수 있겠으나 뭘 알지? 쿠팡이 ‘한국계 기업’인지 ‘미국계 기업’인지 모르겠으나 ‘중국계 기업’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왔고, 쿠팡 못지않게 ‘새벽배송’을 하는데, 여태 ‘중국계 기업 새벽배송’을 놓고서 한 마디라도 하는 글꾼(기자·작가)은 한 놈도 없다.


  이따금 ‘해병대 체험’이라든지 ‘군대 체험’이라면서 ‘유격훈련’을 한나절이나 몇날쯤 해보는 분이 있더라. 그런데 싸움터(군대)는 ‘훈련이 목적’이 아니다. 싸움터는 ‘경계근무’와 ‘전쟁수행’을 꾀하는 곳이다. ‘헬기레펠’이라든지 ‘철조망 포복’이라든지 ‘통나무 들기’는 아주 귀여운(?) 노닥질이다. ‘사상교육’을 날마다 꼬박꼬박 스물여섯 달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날마다 둘∼네 시간씩 경계근무’를 스물여섯 달 내내 해본 적이 있는가? ‘경계근무’란 ‘완전무장’을 한 채 꼼짝않고 소리도 안 내면서 가만히 서서 북녘 철조망과 초소를 노려보며 보내는 짓이다.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똑같다. ‘물골작업·제설작업·도로보수’를 끝없이 오로지 삽 한 자루를 들고서 한다. 소대마다 적어도 1km쯤 삽 한 자루로 맡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빗물이 흘러갈 물골을 내러, 눈이 오면 눈을 쓸러, 적어도 1km 길을 오직 삽 한 자루만 들고서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내내 길에서 보내어 본 적이 있을까.


  국방부장관 같은 자리라면 ‘육군 보병 소총수’로 철조망을 앞에 끼고서 보낸 구슬픈 사람한테 맡길 노릇이라고 본다. ‘디엠지 특수부대원’도 힘들겠지. 그러나 ‘디엠지 특수부대원’은 ‘수색로 정찰’을 하는 몫일 뿐, 그들이 펑(지뢰)을 묻거나 거두지 않는다. 가시울(철조망)을 세우고 고치는 몫이라든지, ‘사주정리(수색·정찰·경계를 할 적에 걸리적거리는 풀과 나무를 쳐내려고 고엽제를 뿌리거나 정글칼로 제초작업을 하는 일)’는 오롯이 육군 보병 소총수가 한다. ‘디엠지 특수부대’에 먹을거리나 살림살이를 갖다 주는 몫도 육군 보병 소총수가 다 해준다. 물골내기와 눈치우기도 육군 보병 소총수가 다 해준다. 육군 보병 소총수는 ‘도솔산’을 지키지만 ‘해병대’는 도솔산 귀퉁이에도 없다.


  나는 ‘도솔산 중대’와 ‘도솔산 선점’에서 꽤 오래 지냈는데, 도솔산이라는 곳은 “한 해 가운데 이레만 해가 나는” 미친 멧골짝이었다. 빨래가 마르지 않는 채 한 해를 보내야 하고, 언제나 곰팡이를 먹어야 하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 ℃’로 뚝 떨어지고, 한겨울에는 ‘- 54 ℃’까지 떨어지는, 그런 곳이 우리나라 어느 켠에 있다. 군대체험이란 뭘까? 두 시간을 넘어 서너 시간쯤 경계근무를 설라 치면, 꼼짝않고 한곳에 서서 북녘을 노려보기만 해야 하다 보면 쉬가 마렵게 마련인데, 한겨울에 쉬를 누면 오줌발이 바닥에 떨어지기 앞서 얼어붙는다. 겨울에 쉬를 누면 ‘언 오줌’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런 곳이 이 나라에 있고, 이런 곳에 가난하고 힘없고 돈없고 이름없는 젊은사내가 마냥 끌려가서 젊은날 죽도록 얻어맞고 추레질(동성 성폭력)에 시달리고 겨우 살아남아서 바깥(사회)으로 돌아온다.


  새벽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저 새벽에 하는 일이다. 체험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그저 겉훑기일 뿐이다. 살아가는 사람을 알고 싶다면, 삶터를 옮겨서 이웃으로 여러 해 지내면 된다. 삶터를 옮길 마음이 없이 어쩌다가 하루이틀쯤 조금 맛보기를 했대서 섣불리 ‘체험’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한자말 ‘체험’은 ‘맛보기’가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기’일 텐데, 조금 굴러 보았대서 ‘얼마나 느끼거나 알’는지 그야말로 아리송하다. 2026.1.10.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둘쨋것이 무슨 사진인지 모를 사람도 있을 텐데

농약 뿌리는 무인헬리콥터가 마구 날아다니며

뿌리던 모습이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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