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여섯 해 만에 새로



  지난 2020해에 전주마실을 하면서 《남해에서 뭐 해 먹고사냐 하시면 아마도책방이겠지요》라는 책을 장만해서 읽었다. 전남 고흥과 경남 남해는 그리 멀지않으나, 뚜벅이나 두바퀴로 가기에는 하염없는 길이다. 여섯 해가 흐르는 동안 아직 남해에 첫발을 디디지는 못 한다. 앞으로 언제쯤 남해마실을 해볼는지 모른다.


  올 2026해 늦봄 어느 날 부산 언덕마루(산복도로) 한켠에 있는 마을책집 〈만만〉에 들르는데 〈아마도책방〉 지기님이 쓴 책이 보인다. 이미 사읽은 책이지만 새로 산다. 오늘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새로 읽는다. 이밖에 오늘 버스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는 책을 허벅지에 얹고서 해바라기를 해본다.


  서울이건 부산이건 인천이건 진주이건 마산이건 청주이건 대전이건 광주이건 속초이건 영양이건 안동이건 정읍이건 공주이건, 온나라 모든 마을책집이 반갑다. 우리 어버이가 나고자랐다는 당진은 언제쯤 책집마실을 해볼는지 아직 모른다. 아마도 예순 살이나 일흔 살에 갈는지 모르고 아흔 살이나 온 살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지.


  엊그제 고흥 시골집에서 곁님과 두 아이랑 한참 ‘미치오 카쿠’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카쿠 할아버지는 어릴적에 ‘아인슈타인이 못 푼 길’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왜 엄마한테 안 물어봤대? 엄마한테 물어보면 엄마가 알려줄 텐데?” 하고 말했다지. 우리 곁님은 카쿠 할배 말마따나 아인슈타인이 ‘아인슈타인 엄마’한테 물어봤으면 즐겁게 모든 길을 풀었으리라고 얘기한다.


  어제오늘 부산으로 이야기꽃을 펴러 나들이를 하는 동안 이 대목을 내내 곱씹었다. “아빠한테 물어보았다면 풀었을까?” 하고 곱씹자니 아무래도 아빠한테 물었으면 그저 풀죽었으리라 느낀다. 엄마는 아빠와는 달리 “그래? 무슨 일이야? 뭐? 못 푸는 길이 있다고? 이리 줘 봐. 이렇게 하면 돼!” 하고 알려주고는 다른 일을 하러 갔으리라 본다.


  시골내기는 시골내기가 반갑다. 낯도 이름도 모른다만, 말을 섞은 바도 없지만, 아무래도 싱그럽고 시원한 골짜기가 짙푸른 모든 시골은 나란히 이웃이라고 느낀다. 일거리와 읽을거리를 새로 품고서 우리집으로 돌아간다. 버스는 순천에서 쉴 테고, 나도 순천에서 기지개를 켤 테고, 늦봄볕은 슬슬 여름티가 스미고, 바람에는 곧 밤꽃가루빛이 번질 테며, 논마다 사름이 오르겠구나. 어느덧 모래내(섬진강)를 스친다. 2026.5.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5.14. 밑그림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2025해하고 2026해는 밑그림(계획서)을 한참 오래 자주 씁니다. 밑그림을 여러 곳(공공기관)에 보내느라 꽃종이(소식지)를 꾸려내는 일이 꽤 밀립니다. 그동안 ‘2025년’처럼 쓰다가, 지난해부터 ‘2026해’처럼 살짝 바꿉니다. 이제는 ‘5월’ 같은 말은 아예 안 쓰면서 ‘늦봄’이나 ‘닷쨋달’처럼 씁니다. 어느 쪽이 옳거나 맞기 때문에 바꾸지 않습니다. 해달날때를 가리키는 낱말을 곰곰이 짚으면서 햇빛과 별빛을 말씀으로 담고 싶습니다.


  여태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 밤에 잠들고 새벽에 일어날 적에 늘 하루그림부터 마음에 담았습니다. 모든 날은 살림그림에 따라서 스스로 짓고 여미어요. 어느 곳에 내는 밑그림이야 품이 많이 들면서 틀에 맞추어야 한다면, 우리가 손수 빚으며 나누는 길그림은 틈을 내면서 싹틔우는 노래입니다. 뿌리가 깊고 줄기가 굵으려면 ‘그루’라고 하는 밑동부터 든든할 노릇입니다. ‘주식(株式)’이 아닌 ‘그루·그림·글·그릇’을 헤아리는 오늘입니다. 나구나 나무여야 날아요.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나뭇잎을 보면



장갑 낀 손으로는

신이나 버선 꿴 발로는

나무를 못 타더라


맨손과 맨발과 맨몸이어야

신나게 나무랑 한덩이를 이뤄서

파란바다 같은 파란바람 쐬지


봄나무는 가을에 가랑잎 내고

늘푸른나무는 봄여름에 가랑잎 내


기꺼이 똑똑 툭툭 잎이 지면서

몽글몽글 새잎이 돋고

탱글탱글 열매가 굵어


그렇구나

나무야, 넌 온몸으로 보여주네


2026.5.12.불.


ㅍㄹ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820 : 아주 많이 오래 깊이 숙고


아주 많이 오래 깊이 숙고한 끝에 그래도 선택하겠다고 한다면 할 수 없이 원조는 아끼지 않겠다는 말이지

→ 아주 많이 오래 깊이 짚은 끝에 고르겠다고 한다면 아낌없이 돕겠다는 말이지

→ 아주 많이 오래 깊이 살핀 끝에 하겠다고 한다면 아낌없이 돌본다는 말이지

《이거 그리고 죽어 7》(토요다 미노루/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6) 121쪽


이미 ‘숙고’라 하면 깊거나 오래 살피거나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아주 많이 오래 깊이 숙고한”은 겹겹겹겹말입니다. 앞에 잔뜩 꾸미는 말을 일부러 놓는 보기글이니 “아주 많이 오래 깊이 + 짚은”으로 손볼 만합니다. ‘살핀’이나 ‘본’이나 ‘따진’이나 ‘헤아린’이나 ‘생각한’으로 손보아도 되고요. ㅍㄹㄴ


숙고(熟考) : 곰곰 잘 생각함

곰곰 : 여러모로 깊이 생각하는 모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겹말 손질 2819 : 비가 거의 매일 내리는 비의 철


비가 거의 매일 내리는 비의 철이라는 시기가 있는데

→ 비가 거의 날마다 내리는 철이 있는데

→ 비가 잦은 철이 있는데

→ 비철이 있는데

→ 장마철이 있는데

《이야기꾼 미로》(천세진, 교유서가, 2021) 102쪽


비가 거의 날마다 내린다면, 우리말로는 ‘비철’이라 합니다. 또는 ‘장마’라 하지요. 조금 길게 “비가 거의 날마다 내리는 철”처럼 쓸 수 있고, 단출히 “비가 잦은 철”처럼 쓸 수 있어요. 그저 가볍게 ‘비철’이나 ‘장마철’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