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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눈동자 - 양장
이슬아 지음, 이훤 시.사진 / 먼곳프레스 / 2026년 1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5.6.
까칠읽기 126
《갈등하는 눈동자》
이슬아 글
이훤 빛꽃
먼곳프레스
2026.1.5.
맨발로 이 땅에 서면, 발끝까지 햇볕을 머금으면서 새롭게 걸어갈 수 있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면, 손끝부터 머리끝까지 흙내음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일할 수 있다. 맨몸으로 나무를 타면, 살갗부터 뼛속까지 나무노래를 들으면서 새롭게 놀 수 있다.
꽃하고 이야기를 한다면 외롭지 않다. 새하고 노래를 부른다면 쓸쓸하지 않다. 바람하고 하루를 나눈다면 즐겁다. 햇볕을 쬐면서 해하고 생각을 주고받으면 반짝인다. 밤에는 소쩍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아늑하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이야기와 말과 숨결을 헤아려 본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스스로 빛나는구나 싶다.
《갈등하는 눈동자》를 읽었다. ‘갈등·동자’ 같은 한자말은 흔하다고 여길 만하지만, 제뜻이나 속뜻이나 밑뜻을 감추는 꾸밈말이라고 느낀다. ‘눈’이라고만 하면 되고, ‘눈알’이나 ‘눈망울’이라 하면 된다. ‘눈빛’이나 ‘눈길’이나 ‘눈결’이라 할 때가 있겠지. 다 다른 마음을 ‘동자’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그저 숨길 뿐이다.
우리는 치고받거나 툭탁거릴 수 있다. 얽히거나 밀고당길 수 있다. 다투거나 싸울 수 있고. 꼬이거나 넝쿨질 수 있다. 벌어지거나 미울 수 있지. 불꽃이 튀거나 들끓거나 동떨어지거나 갈라칠 수 있다. 사이가 나쁘다든지 부딪힐 수 있다. 다 다른 때와 곳과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른 마음을 다 다른 말로 나타낸다면 두동질 일이 없다.
요즈음 나래터(우체국)에 가면 미국으로 부치는 글월이 비싸니 미리 알아두라는 글이 붙는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가, 이달에 모처럼 미국으로 글월을 한 자락 띄우는데 썩 안 비싸더라. 이만 한 값으로 호들갑을 떨 일이 없을 텐데 싶더라. 다만, 누리글월을 적으면 돈이 안 들겠지. 손수 글씨를 적어서 나래터를 오가는 데 품이며 참이며 돈이며 드니까 얼핏 비싸다고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마음을 나누고 싶기에 손으로 글을 적어서 띄운다. 마음을 읽으면서 새롭게 어울릴 길을 찾고 싶기에 굳이 종이책을 온돈을 치러서 마을책집에서 사서 읽고, 또 품과 짬을 들여서 느낌글까지 쓴다.
이 삶이란 자리에서 싸울 일이란 없다. 다만, 돈을 더 벌고 싶으니 싸운다. 이름을 더 드날리고 싶으니 다툰다. 힘을 뽐내고 싶으니 겨룬다. 《갈등하는 눈동자》는 ‘더 더 더’를 슬며시 숨기면서 ‘덜 덜 덜’인 흉내를 내는 글이라고 느낀다. 왜 이렇게 감추거나 숨기지? 돈을 더 벌고 싶으면 더 벌면 된다. 이름을 더 드날리고 싶으면 드날리면 된다. 힘을 자랑하거나 뻐기고 싶으면 자랑하거나 뻐기면 된다. 나쁠 일이 아니다. 그냥 삶이다. 삶이라는 길을 가면서 배울 뿐이고, 배운 뒤에는 바꾸려고 가꾸면 될 하루이다.
남이 아직 안 써 보았지 싶은 글을 쓰려고 억지를 쓰느라 일본말씨나 옮김말씨가 춤추고, 일본옮김말씨로 범벅을 할 뿐 아니라, 고약한(가부장) 옛 중국한자말이나 일본한자말을 덕지덕지 쓰고 만다. 그저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하루를 그냥그냥 즐겁게 노래하려는 마음을 글로 옮기려고 하면, 다섯 살 아이를 곁에 두면서 소근소근 속삭속삭 속살속살 참새처럼 노래하듯 글을 여미게 마련이다.
모둠겨룸(종합격투기)을 좋아해서 구경해도 안 나쁘다. 다만 빠져들면 수렁에 잠기거나 늪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뭐든 좋아하면 되지만, 좋아할수록 종처럼 졸졸 얽매이기 일쑤이다. 그러니까 ‘좋고싫고’를 따지면서 가르려고 하니까 망설인다. 한때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되, 이제는 그만 좋아하고 그만 싫어할 때에, 비로소 글눈을 뜨고 글길을 연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글이 망가지고 어지럽다. 좋거나 싫다는 느낌이 아닌, “사랑은 뭘까? 짝짓기는 사랑이 아닌 짝짓기일 텐데, 좋다고 달라붙어도 사랑이 아닐 텐데? 사랑이란 참으로 뭘까?” 하고 스스로 묻고 되뇌고 헤매노라면, 어느새 사랑길로 접어들면서 살림길을 일구는 내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글을 쓰려면 사랑하면 된다. 글을 읽으려면 살림하면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글씨(글씨앗)이다. 살림하는 손길이 바로 손씨(솜씨)이다. 부디 이제는 머뭇대지도 불타오르지도 시끌거리지도 않는 길인, 오롯이 스스로 사랑이라는 살림숲을 바라보면서 “서울을 떠나서 손수 빚고 짓고 가꾸는 길”을 걸어가기를 빈다. 서울내기로 살고 싶다면, 어디이든 다 걸어다니면 된다. 이따듬 두바퀴를 달리고 버스도 타고 싶다면 시골에서 살면 된다. 삶을 바꿔야 글을 가꾼다.
ㅍㄹㄴ
그렇게 싸워놓고도 서로의 평안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두 선수를 본다. 상대가 무탈하길 가장 바라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적들일 것이다. 어떤 시공간에서는 폭력과 사랑이 충돌하지 않는다. 복수에 한없이 존경을 담을 수도 있음을 격투기판에서 배운다. 25쪽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삼십 분 뒤 오토바이와 함께 음식이 도착하는 시대에 《던전밥》을 읽는다. 식량자급률이 낮고 농업인을 귀히 여기지 않는 국가에 살며 거식과 폭식 사이를 자주 오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어떤 감각을 돌려준다.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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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눈동자》(이슬아·이훤, 먼곳프레스, 2026)
쓰기를 연마해 온 나의 십수 년이 무색해질 만큼
→ 쓰기를 갈고닦은 열몇해가 남사스러울 만큼
→ 쓰고 벼리던 열몇해가 부끄러울 만큼
→ 글을 갈아온 열몇해가 간질댈 만큼
→ 글을 가다듬은 열몇해가 쑥스러울 만큼
9쪽
무대에 오를 때마다 미래에 관한 질문을 듣는다
→ 자리에 오를 때마다 앞날을 묻는 분이 있다
→ 마루에 오를 때마다 새날을 물어보신다
9쪽
에이아이가 모든 걸 바꿔놓을 격변기에 작가로서
→ 지음꽃이 모두 바꿔놓을 여물목에 글바치로서
→ 새꽃이 모두 바꿔놓을 너울목에 글쟁이로서
→ 꾸밈꽃이 모두 바꿀듯 일렁이는데 글꾼으로서
10쪽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그리워서, 어느 날 책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 무엇보다 스스로 그리워서 어느 날 책으로 돌아오리라고
→ 무엇보다 내가 나를 그리며 어느 날 책으로 돌아온다고
13쪽
섞어가며 겨룰 수 있게끔 룰을 고안한 종합격투기MMA는 풍부한 텍스트를 지녔다
→ 섞어가며 겨룰 수 있게끔 틀을 짠 모둠싸움에는 이야기가 많다
→ 섞어가며 겨룰 수 있게끔 판을 짠 한겨룸에는 이야기가 푸짐하다
16쪽
이 나라에서 내가 배우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 나는 이 나라에서 이런 일도 배운다
→ 난 이 나라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다
→ 난 이 나라에서 늘 배운다
32쪽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끌어당긴다
→ 나는 죽음 이야기에 끌린다
→ 난 죽는 이야기가 끌린다
→ 난 죽음 이야기가 재밌다
→ 난 죽는 이야기를 눈여겨본다
41쪽
그러나 연대는 어떠한가.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하거나 멀찍이 떨어지게 할 이 단어의 진실은
→ 그러나 손은 어찌 잡는가. 가슴이 달아오르거나 멀찍이 떨어질 이 낱말 속내는
→ 그러나 두레는 어떠한가. 가슴이 불타오르거나 멀찍이 떨어질 이 낱말 속빛은
50쪽
이토록 높은 품질의 텍스트와 이미지가 무료란 점이 동료로서 분통이 터졌다
→ 이토록 훌륭한 글과 그림을 거저 봐도 된다니 글동무로서 부아가 터진다
→ 이토록 알찬 글과 그림을 그냥 볼 수 있다니 글또래로서 불길이 터진다
79쪽
주어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각색하는 방법을 나는 어쩐지 배우고 있다
→ 나는 어쩐지 앞말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고치는 길을 배운다
→ 나는 어쩐지 임자말에 따라 이야기를 손보는 길을 배운다
88쪽
우리를 갈등하게 할 항목들은 아주 많다
→ 우리가 갈라설 곳은 아주 많다
→ 우리가 부딪힐 데는 아주 많다
→ 우리가 뒤엉킬 칸은 아주 많다
96쪽
저의 스승은 말했어요. 측은지심을 잃으면 끝장이라고요
→ 스승은 말했어요. 눈물을 잃으면 끝장이라고요
→ 스승은 말씀해요. 가여워하지 않으면 끝장이라고요
→ 스승은 말씀해요. 슬퍼하지 않으면 끝장이라고요
118쪽
겪은 일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편집이 들어가기 마련이죠
→ 겪은 일을 깁다가 이래저래 손대게 마련이죠
→ 겪은 일을 건사하며 이곳저곳 만지게 마련이죠
135쪽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나의 부모는 왜 나와 다른 눈을 가졌는가
→ 늘 묻고 싶었다. 어버이는 왜 눈빛이 다른가
→ 다 묻고 싶었다. 엄마아빠는 왜 눈이 다른가
184쪽
모국어가 서툰 타국어로 점차 대체되는 동안 언어는 충분한 집이 될 수 없었다
→ 우리말을 서툰 이웃말로 조금씩 바꾸는 동안 말은 든든한 집이 될 수 없다
→ 엄마말을 서툰 바깥말로 차츰 갈아입히는 동안 말은 너른집이 될 수 없다
185쪽
질의응답 시간엔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청아한 눈동자를 지닌 이가 손을 들었다
→ 물음꽃에선 구슬같은 눈망울인 이웃이 손을 든다
→ 수다꽃에선 눈이 맑은 동무님이 손을 든다
25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