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 - 이순옥 그림책 사계절 그림책
이순옥 지음 / 사계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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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5.26.

그림책시렁 1813


《초록초록》

 이순옥

 사계절

 2020.5.8.



  중국스러운 한자말 ‘초록(草綠)’은 ‘풀 + 푸르다’인 얼개입니다. ‘풀’이기에 푸르고, 푸르기에 ‘풀’입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풀빛’이나 ‘푸르다’라 합니다. 일본스러운 한자말 ‘녹색(綠色)’은 ‘푸르다 + 빛’인 얼개입니다. 그저 ‘풀빛·푸른빛’을 가리킵니다. 《초록초록》은 ‘어린배움터 놀이마당’을 ‘푸른이웃’이 신나게 누린다는 줄거리로 보여줍니다. 갈수록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에서는 놀이마당(운동회)이 사라집니다. 봄볕이건 가을볕이건 실컷 쬐면서 봄바람과 가을바람을 나린히 쐬고 땀흘려 뛰놀고 어울리기에 놀이마당입니다. 놀이마당이니 부딪히거나 넘어질 수 있고, 이기거나 질 수 있어요. 어느 하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놀이마당은 누구나 뛰놀면서 까무잡잡하게 해바라기로 어울리면서 새롭게 배우는 자리예요. 지난날에는 모든 아이가 너른터이건 골목이건 한길이건 들숲바다이건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뛰놀았습니다. 이제는 시골도 서울도 온통 달구지(자동차)한테 빈터를 빼앗겨서, 아이가 뛰놀거나 어른이 쉴 빈터가 죄다 사라집니다. 앙증맞은 ‘푸성귀’나 ‘열매’를 귀엽게 보여주는 얼거리는 나쁘지 않되, 마을놀이와 골목놀이와 한길놀이부터 되찾아야 할 텐데 싶습니다. 어느 틀에 맞추는 놀이마당에 앞서, 그저 아이들 스스로 마음껏 노는 이야기부터 다뤄야지 싶습니다. ‘푸릇푸릇’ 천천히 돋아나는 길을 다시금 밝히고 천천히 되새기는 길부터 가야지 싶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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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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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6.5.26.

다듬읽기 290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2021.8.18.



  일자리만으로 본다면, 시골일자리는 멧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일자리는 거의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맡는다. 내가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1980해무렵부터 오늘날 2020해무렵까지 마흔 해를 돌아보고, 또 1940해무렵부터 1980해무렵을 짚어도, 배움터에서 시골일자리를 알리거나 북돋우지 않는다. 예나 이제나 언제나 누구나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얼뜬 말만 일삼는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할 까닭이 없다. 사람은 나고자란 터전을 사랑하며 살림하는 사이로 설 줄 알 노릇이다. 서울내기라면 서울을 푸른고을로 일구는 길을 살피면 된다. 시골내기라면 시골을 푸른숲으로 돌보는 길을 헤아리면 된다. 이따금 서울내기가 시골로 깃들 수 있고, 가끔 시골내기가 서울에 눌러앉을 수 있다.


  곰곰이 보면, 나라지기도 벼슬아치도 시골을 싫어한다. 시골을 안 싫어한다면, 시골이 이토록 망가질 때까지 팽개치지 않겠지. 시골이 싫지 않다면 시골에 으리으리 큰집이 아니라 조촐히 오두막을 짓고서 작은살림을 지을 테지. 그저 시골이 싫기에 시골을 안 쳐다본다. 그냥 서울을 좋아하기에 서울만 바라본다.


  이러다 보니, 서울내기는 서울이 좋으면서도 으레 지겹고 따분하다. 지겹고 따분한 서울에서 숨을 돌리려고 날개를 타고서 먼나라로 놀러간다. 다른 나라 다른 서울을 맛보고 싶은 서울내기이다.


  《지구 끝의 온실》을 읽었다. 오로지 서울바라기로 살아온 글님 마음결을 또렷이 느낄 만하다. 시골을 쳐다보지 않기에 “서울나라(도시문명사회)가 망가지고 무너져도, 똑같이 서울을 다른 곳에 억지로 만들어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줄거리”를 짤 수밖에 없다. 서울 탓에 푸른별이 망가져서 먼지보라가 휘날린다는데, 이런 때마저도 ‘서울부스러기’를 뒤져서 살림살이를 챙긴다고 하니, 딱하고 안타깝다.


  시골을 안 쳐다보느라 논밭살림을 다 잊어서 망가진 서울인데, 뭘 얻어서 뭘 먹을까? 먹고사는 일뿐 아니라, 똥오줌은 어찌한다는 소리인가. 구정물은 어찌하며, 마실물은 얻을 수 있는가?


  아무리 서울이 밤을 잊고서 번쩍거리더라도, 서울을 둘러싸고서 들숲메바다가 있기에, 서울나라가 버틴다. 서울도 부산도 큰고장이되, 서울은 다른 큰고장에 둘러싸인 잿더미이고, 부산은 바다를 넓게 끼면서, 멧숲을 퍽 깊게 품는다. 여러모로 보면, 부산이 서울보다 훨씬 살 만하고, 사람빛을 건사할 만한 고장인데, 이런 부산조차 싫어서 서울로 휙휙 떠나서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사람이 넘친다.


  푸른별이 망가진 판에 이르러도 ‘포근집(온실)’을 찾는 줄거리에는 아무 앞길도 앞빛도 앞날도 없다. 서울내기 스스로 온나라와 온누리를 망가뜨렸으면, 이제는 잿더미를 그만 놓고서 호미와 낫과 쟁기를 쥘 노릇이다. 이제는 맨발과 맨손과 맨몸으로 흙을 만지고 들을 살피고 숲을 노래하고 멧바람을 쐬고 바다랑 하나인 살림을 지을 노릇이다.


  서울에 갇혔으면서 갇힌 줄 모르기에 ‘오늘꿈’이 없이 ‘살아남기’에 매달린다. 살아남으려고 하니까 ‘겨루고 다투고 싸운다(전쟁)’. 늘 싸움박질을 하니 이웃과 동무를 스스로 버릴 뿐 아니라, 참나(참다운 나)를 들여다볼 짬마저 없다. 오늘까지 오늘꿈을 못 그렸어도, 바로 오늘부터 오늘길을 다스리면서 눈을 뜨려고 마음을 기울여야지 싶다. ‘서울’에도 ‘다른 서울’에서 앞날과 씨앗이란 없다. 덩치를 줄이고, 더께를 벗어야 한다.


  들이 눈부신 줄 알아보는 눈을 뜰 일이다. 숲이 밝은 줄 알아채는 눈썰미를 기를 노릇이다. 해가 환하게 비추기에 서로 즐겁게 살아가는 줄 알아내야지 싶다. 모든 책도 모든 살림도 모든 말도 모든 꿈도 모든 사람도 들숲메바다에서 태어난다.


  ‘별끝(지구 끝)’으로 달아난들 살아남지 못 하나. 빽빽하고 뿌옇고 시끄러운 모든 쇳덩이와 잿덩이를 걷어내면서 흙으로 돌보는 길을 열 때라야 비로소 아름답게 어깨동무한다. 새를 내쫓고 개구리를 밀치고 풀벌레를 짓밟는 서울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내쫓고 밀치고 짓밟게 마련이다.


ㅍㄹㄴ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자이언트북스, 2021)


흙이 말라 있어

→ 흙이 말랐어

→ 흙이 푸석해

→ 흙이 부석해

11쪽


조심 좀 해. 내성이 널 모든 더러운 것들로부터 지켜주진 않아

→ 좀 살펴. 넌 모든 더럼먼지를 견딜 수 없어

→ 좀 살펴봐. 넌 모든 더럼치를 버틸 수 없어

→ 좀 삼가. 넌 모든 더럼티를 못 끌어안아

14쪽


안개가 숲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라 역시 안개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안개가 숲을 덮는다. 아마라도 안개를 느꼈는지 걱정스레 둘러본다

→ 안개가 짙다. 아마라도 안개를 느끼며 근심스레 둘레를 본다

15쪽


산딸기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 멧딸기를 놓고서 한바탕 시끄러웠다

→ 멧딸기를 먹다가 한바탕 시끌거렸다

25쪽


산딸기가 원래 떪은맛이 나나?

→ 멧딸기가 워낙 떫은맛인가?

→ 멧딸기가 이렇게 떫나?

26쪽


대단한 건 없었어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것과 똑같아요

→ 대단하지 않아요. 밑터하고 똑같아요

→ 대단찮아요. 바탕터하고 똑같아요

43쪽


무성한 잡초들도 지금은 그림자로만 존재했다. 푸른빛의 먼지들만이 느린 바람을 타고 흩날리고 있었다

→ 우거진 풀도 이제는 그림자 같다. 푸른먼지만 바람을 타고서 천천히 흩날린다

→ 풀이 우거져도 이젠 그림자 같다. 푸른먼지만 바람을 따라서 가만히 흩날린다

67쪽


이희수가 흔쾌히 수연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 이희수는 기꺼이 수연이 말을 받아들인다

→ 이희수는 수연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 이희수는 수연이를 덥석 받아들인다

72쪽


아무 말 없이 가버린 것이 무척 서운했다

→ 아무 말 없이 가버려서 무척 서운하다

→ 말도 없이 가서 무척 서운하다

81쪽


고립된 섬에서 자연적인 조건으로 일종의 돔 역할을 하는 기류가 형성되어

→ 외딴섬에서 저절로 둥근지붕 노릇을 하는 기운이 일어나

→ 섬에서 스스로 동글지붕 구실을 하는 바람이 생겨서

94쪽


그 식물들이 이 마을을 먹여살린다는 거야?

→ 그런 풀이 이 마을을 먹여살린다고?

→ 이 마을은 그런 풀로 먹고산다고?

150쪽


마을 사람들은 모든 일상적인 작업을 중단하고 봉쇄를 준비했다

→ 마을사람은 모든 일을 멈추고서 닫아걸려고 한다

→ 마을사람은 모든 일을 그치고서 막아내려고 한다

204쪽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야

→ 내가 아직도 풀지 못한 일이야

→ 난 아직도 모르겠어

→ 난 여태 모르겠어

224쪽


죽음의 먼지가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물자를 구하기 위해 인근 폐허에 다녀온 사람들은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구역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 죽음먼지가 온누리를 뒤덮는다. 쓸거리를 찾으려고 가까운 벌판을 다녀온 사람들은 이제 살아남을 수 있는 땅이 확 줄어든다고 말한다

→ 죽음먼지가 이 별을 뒤덮는다. 살림거리를 얻으려고 둘레 벌판을 다녀온 사람들은 앞으로 살아갈 만한 곳이 확확 줄어든다고 말한다

230쪽


혹은 관측으로부터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확한 분석을 거쳐 귀납적으로 하나의 이론을 이끌어낸다

→ 또는 바라보며 바탕틀을 다지고, 꼼꼼히 짚고 헤아려 얼거리를 이끌어낸다

→ 아니면 살펴보며 밑틀을 쌓고, 하나하나 파고 살펴서 틀거리를 이끌어낸다

257쪽


더스트 폭풍이 지나가고 공동체의 사람들이 절반 넘게 죽자, 남은 이들의 의견이 갈리는 것을 지수는 보았다

→ 지수는 보았다. 먼지보라가 지나가고 마을사람이 토막날 만큼 죽자, 살아남은 사람이 둘로 갈렸다

→ 지수는 보았다. 먼지회오리가 지나가고 마을사람이 엄청나게 죽자, 살아남은 사람이 다들 엇갈렸다

288쪽


마을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이후 지수는 이 숲을 가짜 더스트로 감추기로 결정했다

→ 마을이 제법 자리잡을 즈음, 지수는 이 숲을 먼지로 속여 감추기로 한다

→ 마을에 집이 꽤 늘어나자, 지수는 이 숲을 먼지시늉으로 감추기로 한다

300쪽


지금 어떻게 그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 이제 어떻게 이를 밝힐 수 있을까 헤아리다가

→ 오늘 어떻게 이를 보여줄 수 있을까 살피다가

35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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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한 아이도 버리지 않겠다고 (+ 진보교육감)



  우리집 큰아이는 올해(2026해)에 이름쪽(주민증록증)을 받는다. 여덟 살부터 올해까지 해마다 ‘입학유예신청서’를 내느라 애썼다. 작은아이는 앞으로 세 해 더 이 종이를 써야 한다. ‘우리집배움터’라는 길을 걸어가는 모든 아이와 어버이는 이 종이를 꼬박꼬박 써야 한다. 그저 집에서 스스로 배우는 길을 걷는데, 나라에서는 ‘위기청소년’이라든지 ‘학교밖 청소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얼핏 보면 ‘학교밖’이 맞다만, 이런 이름을 굳이 붙이려 한다면, 집에서 스스로 배우지 않는 아이들은 ‘집밖’인 셈 아닌가. 요즈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언제 집에 발붙을 수 있는가. 숱한 어린이와 푸름이는 여덟 살이 되기 앞서부터 스무 살에 이르도록 “집이란 자느라 살짝 스치는 곳”일 뿐이다. 집에서 함께하는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이 없이 몸뚱이가 커야 하는 오늘날 어린이·푸름이인 줄 알아챌 수 있을까.


  전남 고흥에 깃든 지난 열여섯 해를 되새긴다. 이동안 배움일꾼(교육감)이라는 사람을 늘 갈아치우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때껏 모든 ‘전남교육감’은 “전라남도 시민사회·교육단체가 밀어주는 진보교육감 후보”가 뽑혔다. 그런데 이때껏 뽑힌 모든 ‘전남 진보교육감’은 ‘새길(진보)’이 아닌 ‘벼슬꾼(공무원)’으로 곧장 나뒹굴었다. 이때껏 뽑힌 모든 ‘전남 진보교육감’은 너나없이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내걸었다. 이들은 ‘집밖(학교안)’과 ‘학교밖(집안)’에서 배우는 모든 어린이·푸름이가 고르게 제몫을 누리는 길을 열겠다고 밝혔으나, 아직 어느 누구도 이 말을 안 지켰다. 그래서 올해에 전남광주교육감을 새로 뽑는 마당에서 다시금 ‘새새새새 진보교육감 후보’를 밀기로 했다.


  전남뿐 아니라 경남도 충남도 비슷한데, 모든 고장에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푸름이”한테 꽃돈(장학금)을 엄청나게 몰아준다. 이와 달리,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나 어린배움터만 마치고서, 시골에서 논밭을 돌보거나 들숲메바다를 아끼는 길을 걷겠노라 밝히는 푸름이한테는 언제나 0원을 이바지한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어버이한테 땅이 없으면, 시골아이여도 어떤 ‘농업지원’을 못 받는다. 이미 땅임자(지주)끼리 돌라먹는 얼거리요 판이며 고을(지방자치)이다.


  시골에서 나고자란 사람이 시골빛을 배우고 익혀서 시골살림을 북돋우고 살리려는 배움길과 익힘길을 열겠다고 밝힌 일꾼(교육감·군수·도지사 후보자)을 전남광주뿐 아니라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이나 서울경기나 강원이나 대전충청 어디에서도 보거나 들은 바 없다. 즈믄해쯤 거뜬히 살아내는 나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품고 사랑할 노릇인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어린배움터나 푸름배움터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은배움터(폐교)를 살려서 새롭게 꾸릴 수 있다.


  이미 배움터가 닫을 때까지 일을 안 한 그들(교육청·군청·도청 공무원)이다. 시골아이가 시골에 뿌리내리는 배움길이 없고 익힘길이 없으니, 시골배움터는 갈수록 사라질밖에 없다. 파란바다 한복판과 푸른메 한켠에 때려박는 ‘태양광·풍력’이 푸른길(친환경)일 수 없다. 시골에서 서울로 끝없이 긴 빛줄(송전선)을 어마어마한 돈과 품을 들여서 새로 놓아야 하는데, 이런 짓은 터럭만큼도 푸른길이 아니다.


  한 아이도 팽개치지(포기) 않겠다고 말하려면,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를 고이 아끼고 보살피는 길을 열어야 맞다. 나무 한 그루와 아이 하나가 나란하다. 시골과 서울이 함께살 수 있는 길이 아니라면 모두 겉치레요 눈속임이며 거짓말이다. 삽질로 목돈을 끌어들이는 짓을 멈출 때라야 비로소 아이어른이 함께웃는 터전으로 나아가겠지. 2026.5.2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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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놀러가는 너



  나는 집안일과 집밖일을 나란히 한다. 두 일을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저 두 일을 함께 맡는다. 여태 모든 일을 언제 어디에서나 기꺼이 맡았다. 어린배움터를 여섯 해 다니는 동안 ‘쓸고닦기(청소)’를 빼먹은 날이 하루조차 없고, 넓고 큰 짐승집(사육장)조차 동무하고 둘이서 내내 쓸고닦았다. 누가 짐이 무거우면 어린이 주제에 도맡거나 나눠들고, 어머니가 저잣마실을 가면 꼬박꼬박 짐꾼으로 따라나섰다. 싸움터(군대)에서 터무니없는 심부름을 시켜도 그저 맡았다. 싸움터에서는 윗내기(상관)가 시키면 “네! 알아서 죽겠습니다!” 하고 외치면서 다 해내야 했다. 200들이 기름통을 벼랑길에서 아찔아찔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혼자 굴려서 나르고, 멧길걷기(천리행군)를 하다가 쓰러진 뒷내기나 누가 있으면, 쓰러진  사람이 남긴 짐까지 어깨에 걸쳐서 끝까지 날랐다.


  큰아이가 태어나고 작은아이가 태어나는 동안 두 아이를 돌보면서 함께 노는 몫을 즐겁게 맡았다. 천기저귀를 대면서 날마다 빨래바람이요, 모든 빨래를 손발로 했고, 아이를 업거나 안으면서 달래고 자장노래와 놀이노래를 들려주었다. 밥을 짓고 비질과 걸레질을 하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하루를 오롯이 살면서 틈을 내어 ‘낱말책짓기(사전편찬)’를 했다. 일손이 바쁠 적에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서 노래를 부르며 글일을 여몄다. 두 아이를 두바퀴(자전거)에 태워서 고흥 모든 곳을 다녔다. 멧자락도 오르고 바닷가를 달리고 들녘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다가 잠들면 두 어깨에 한 아이씩 안고서 걸었다.


  집안일과 집밖일을 도맡는 나날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일하셨고, 우리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도 이와 같이 일했을 테지. 사내(아버지) 가운데 두 일을 도맡는 사람이 드물 뿐, 누구라도 할 만한 일이다.


  언제나 아이곁에서 지내는 하루란, 아이한테서 배우고 아이한테 사랑을 속삭이는 길을 익히는 꿈빛이라고 느꼈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며 스스로 몸씻기를 해내려고 할 적에는 살짝 섭섭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씻고 나면 늘 목이나 팔뚝이나 등이나 곳곳에 땟자국이 고스란하다. 잘 비비고 문지르고 벗겨 주고 싶지만 꾹 참았다. 스스로 머리를 감는다고 용쓰지만 부스스하거나 먼지를 떨구지 못 한 모습을 보고도 말없이 지나갔다.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 스스로 알아채면서 즐겁게 해낼 테니까.


  어느 해부터 쇠날(금요일)이 몹시 붐빈다. 시골에서 서울로 가는 길도, 서울일을 마치고서 시골집으로 돌아갈 적에도, 쇠날 + 흙날은 그야말로 온나라 길바닥이 미친듯이 붐빈다. 살림하고 일하는 사람은 날짜(요일)를 안 따진다. 다녀야 하니 다닐 뿐이고, 일해야 하니 일할 뿐이다. 어쩌다가 쇠날하고 흙날이 겹치거나 끼면, 길손채를 잡느라 애먹고, 탈거리(버스·전철) 어디서나 빼곡빼곡 바다를 이룬다.


  삼성전자 일꾼이 꽃돈(상여금)을 뱉어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지. 일하는 사람은 일삯을 받을 몫이 있으며, 목소리를 내려고 머리띠를 두를 몫이 있다. 그러면 일꾼은 어느 만큼 일삯을 받으면서 제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제는 ‘목소리’만 높일 때가 아니다. 이제는 ‘함께’라는 길을 볼 때이다. 지난날에는 어린배움터에서조차 길잡이가 아이들 뺨따귀를 순이돌이를 안 가리면서 갈겼다. 사내도 가시내도 길잡이 주먹질과 발길질에 피멍이 들 뿐 아니라, 피가 철철 흘렀다. 푸른배움터 길잡이는 아주 주먹꾼(권투선수)마냥 얼굴을 마구마구 두들겨패면서도 고개를 뻣뻣이 들고는 돈자루(촌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지난날 “주먹잡이 길잡이(폭력교사)”는 멀쩡히 꽃돈(연금)을 넉넉히 받으며 탱자탱자 보낸다. 이러다가 요즈막에는 배움터가 뒤집혔다. 아무 곳에나 ‘아동학대’란 이름을 들먹이면서 아이들이 길잡이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히기 일쑤이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길잡이를 두들겨패거나 괴롭힐 적에는 종이(학적부)에 안 남는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판이다.


  일몫(노동권)을 어떻게 펴고 나누어야 슬기로운 나라요 터전일는지 헤아려야 할 때이다. 배움몫(교육권)을 어떻게 베풀고 추슬러야 어진 나라요 터전일는지 살펴야 할 때이다. 옳은목소리(정의로운 주의주장)로는 쌈박질만 하다가 다같이 죽는다. 옳은목소리가 아닌 ‘함께’라는 길, 곧 ‘함께살기·함께살림·함께꽃’을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2026.5.16.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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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청초 淸楚


 들녘 한쪽에 청초하게 핀 → 들녘 한쪽에 곱게 핀

 가냘프고 청초한 아름다움 → 가냘프고 맑은 아름다움

 웃음은 연꽃처럼 청초했다 → 웃음은 못꽃처럼 정갈했다


  ‘청초하다(淸楚-)’는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만, 뜻풀이를 ‘화려하다 = 눈부시다 = 아름답다’로 이으니, 겹말풀이요 뜬금풀이입니다. ‘곱다·곱살하다·곱상하다’나 ‘해곱다·해맑다·해말갛다·해밝다·해사하다’로 고쳐씁니다. ‘구슬같다·구슬빛·구슬처럼·구슬꽃’이나 ‘깨끗하다·깨끔하다·보얗다·부옇다’로 고쳐써요. ‘푸르다·푸르스름하다·푸른빛·푸릇하다’나 ‘눈부시다·빛나다·반짝이다·드맑다’로 고쳐쓰지요. ‘말끔하다·멀끔하다·말쑥하다·멀쑥하다’나 ‘맑다·말갛다·맑밝다·맑고밝다·말긋말긋·말똥말똥’으로 고쳐씁니다. ‘정갈하다·칠칠맞다·칠칠하다·티없다·티끌없다’나 ‘이슬·이슬빛·이슬꽃·이슬같다·이슬처럼·물방울 같다’로 고쳐쓸 만해요. ‘산뜻하다·상그럽다·상큼하다·선뜻하다·선선하다·싱그럽다’나 ‘들길·들빛·들빛길·숲빛·숲빛깔·쑥·쑥쑥’으로 고쳐쓰지요. ‘아름답다·아리땁다·아름꽃·아름별·아름빛·아름꽃빛·아름빛꽃’이나 ‘예쁘다·예쁘장하다·이쁘다·어여쁘다·좋다’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푸른사랑·푸른바라기·풀빛사랑·풀빛바라기·풀꽃사랑·풀꽃바라기’로 고쳐쓰며, ‘풋-·풋풋·풋풋하다·풋길·풋나이’나 ‘함초롬하다·함함하다’로 고쳐써도 됩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청초’를 셋 더 싣는데 다 털어냅니다. ㅍㄹㄴ



청초(靑초) : 꼭지를 제외한 몸통 전체가 푸른 연

청초(靑草) 1. 싱싱하고 푸른 풀 2. 퍼런 잎을 썰어 그 자리에서 말린 잎담배 = 풋담배 3. 배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아직 맛도 모르고 담배를 피우는 짓

청초(請招) : 사람을 청하여 부름 = 초청



야생 난 한 포기 청초하다

→ 들난 한 포기 맑다

→ 들난 한 포기 푸르다

→ 들난 한 포기 산뜻하다

《회화나무 그늘》(이태수, 문학과지성사, 2008) 39쪽


사야의 매력은 있는 그대로의 청초함이야

→ 사야는 있는 그대로 맑아서 그림같아

→ 사야는 있는 그대로 싱그러워 반하지

《사야와 함께 3》(타니카와 후미코/문기업 옮김, AK comics, 2017) 110쪽


정말 청초해 보였다

→ 참말 맑아 보였다

→ 참 산뜻해 보였다

→ 아주 푸르다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박남옥, 마음산책, 2017) 57쪽


청초해서 좋잖아

→ 맑아서 좋잖아

→ 말끔해서 좋잖아

→ 상큼해서 좋잖아

《고깔모자의 아뜰리에 1》(시라하마 카모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8) 15쪽


어찌나 청초하고 가련한지

→ 어찌나 싱그럽고 가녀린지

→ 어찌나 해맑고 가냘픈지

《행복화보》(오사다 카나/오경화 옮김, 미우, 2019) 39쪽


밤하늘에 청초하게 뜬 만월이 보인다

→ 밤하늘에 곱게 뜬 둥근달이 보인다

→ 밤하늘에 정갈히 뜬 보름달을 본다

《날마다, 도서관》(강원임, 싱긋, 2025)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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