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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랑 노랑 - 시인 오은, 그림을 가지고 놀다!
오은 지음 / 난다 / 2012년 3월
평점 :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291
《너랑 나랑 노랑》
오은
난다
2012.3.28.
빛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는 《너랑 나랑 노랑》은 책이름에만 ‘노랑’을 쓸 뿐, 내내 ‘옐로’라고 글을 쓴다. ‘레드·블루·그린·화이트·블랙·그린·옐로’는 ‘무늬한글’일 뿐이다. 우리말이 아니기도 하지만, ‘빛말’이라 할 수도 없다. 왜 빛말을 꺼릴까? 왜 빛말을 멀리할까?
우리말 ‘노랑·노랗다’는 ‘누렁·누렇다’하고 다르지만 닮는다. 다르기에 닮고, 닮으니 담는다. 담는 대서 같지 않다. 담으니 서로 닮으면서 나란히 간다. 노란 빛깔은 노을이며 너울로 뻗고, 노을과 너울을 줄인 낱말은 똑같이 ‘놀’이라 적지만, 하나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바다를 가리킨다.
노란 빛깔은 ‘놀다’하고 ‘노래’하고 만난다. 이윽고 ‘노느다·나누다’랑 만난다. ‘놓다’로도 만나며, ‘넣다’에 ‘낳다’로 흐른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저 수수하고 흔하다고 여길 우리말 ‘노랑’일 뿐이지만, 노랗다는 빛깔 하나가 우리 삶자락에 어떻게 스미고 퍼지는가 하는 이야기만으로도 책 여러 자락을 써낼 수 있다.
느긋이 넉넉히 빛살을 노래하면 된다. 놀이하듯 나긋나긋 글길을 펴면 된다. 서로 마음을 노느듯 차분히 근심걱정을 내려놓으면 된다. 높이 오르려 하기보다는, 높이 모시거나 섬기려 하기보다는, 너울가지마냥 어깨동무하는 놀이를 지으면 된다.
꾸밀수록 꿈하고 멀다. 수수할수록 숲으로 다가선다. 모든 말뿐 아니라 모든 빛은 숲에서 비롯했다. 빛깔을 노래하며 놀고 싶다면, 서울이 아니라 들숲메바다를 품는 시골에서 손수 살림짓기를 하면서 하루하루 차분히 해바람비를 아우르면 된다. 해바람비도 풀꽃나무도 돌흙모래도 없는 ‘레드·블루·그린·화이트·블랙·그린·옐로’ 타령으로는 죽도 밥도 아무것도 아닌 허울스러운 꼭짓물(수돗물)일 뿐이다.
ㅍㄹㄴ
《너랑 나랑 노랑》(오은, 난다, 2012)
우리가 색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까
→ 우리는 빛을 오롯이 읽을 수 있을까
→ 우리는 빛깔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9쪽
기다렸다는 듯 길고 긴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기다렸다는 듯 길고긴 나날을 헤맸다
→ 기다렸다는 듯 한참 땀흘리며 찾아보았다
→ 기다렸다는 듯 오래도록 더듬더듬했다
10쪽
레드는 탐스럽습니다. 레드는 모든 익는 것들의 종착지입니다
→ 빨강은 먹음직합니다. 열매는 익으며 빨갛습니다
→ 붉으면 맛있습니다. 익으면 모두 붉습니다
16쪽
화염에 휩싸인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건 거리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 길바닥도 불길에 휩싸인 듯했다
→ 거리거리도 이글이글했다
→ 길거리도 타올랐다
→ 길바닥도 새빨갛게 탔다
42쪽
스스로 삶에서 퇴장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허공에 대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 스스로 삶에서 물러나기로 한다. 떨리는 손으로 하늘에 대고 마지막을 찍는다
→ 스스로 삶을 떠나기로 한다. 떨리는 손으로 하늘에 대고 마침꽃을 찍는다
44쪽
우리는 모두 탑 위에 올라가 있었으니까요
→ 우리는 모두 뾰족이에 올라갔으니까요
→ 우리는 모두 높이 올라갔으니까요
54
코발트블루를 발음하다가 어느 순간, 이 다섯 음절의 단어를
→ 바닷빛을 말하다가 문득, 이 석 낱내 낱말을
→ 쪽빛을 소리내다가 얼핏, 이 두 동강 낱말을
→ 짙파랗다고 하다가 설핏, 이 넉 도막 낱말을
78쪽
저녁엔 매양 어스름과 푸르스름이 감돌지요
→ 저녁이면 어스름하고 푸르스름하지요
→ 저녁마다 어스름에 푸르스름하지요
96
하나가 되지 못한 자들은 여러 가지 것들을 퍼즐처럼 끌어모은다
→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은 여러 가지를 끼워맞춘다
→ 하나가 되지 못하면 여러 조각을 끌어모은다
138
이 세상의 소음들이 파묻히고 있다
→ 모든 시끌먼지가 파묻힌다
→ 모든 시끌티끌이 파묻힌다
163
종종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 가끔 스스로 물어본다
→ 곧잘 스스로 돌아본다
→ 더러 스스로 되새긴다
→ 이따금 혼자 곱씹는다
→ 때때로 홀로 되짚는다
174쪽
말들이 범람하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용암처럼 흘러갈 것만 같다
→ 말이 넘치는 듯하다. 곧장 불길물처럼 흘러갈 듯하다
→ 말이 끓는 듯하다. 이내 불꽃물처럼 흘러갈 듯하다
→ 말이 부글대는 듯하다. 이내 불물처럼 흘러갈 듯하다
209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말 것. 너의 눈보단 너의 가슴을 믿을 것
→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마. 네 눈보단 네 가슴을 봐
→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말자. 눈보단 가슴을 보자
→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가슴으로 바라봐
→ 눈에 보인다고 그리지 말고 가슴으로 봐
241쪽
그날의 시작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어요
→ 그날 아침은 여느때와 같아요
→ 여느때 같은 아침이에요
287
스크램블드 에그를 먹고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죠
→ 달걀휘부침을 먹고 책가방을 챙기죠
→ 달걀휘볶음을 먹고 책가방을 챙기죠
287쪽
서른다섯, 절규할 공간이 필요한 나이였다
→ 서른다섯, 외칠 곳을 바라는 나이다
→ 서른다섯, 내뱉을 데를 그리는 나이다
305
블랙은 단정해요
→ 검정은 깔끔해요
→ 까망은 말쑥해요
→ 검으면 매끈해요
334
그런 생각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이었다
→ 멋잡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여길 수 있다
→ 꽃바치라면 누구나 그처럼 볼 수 있다
35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