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한우 韓牛


 한우를 사육하는 농장 → 한소를 기르는 들밭

 한우로 유명한 지역 → 누렁소로 이름난 고을


  ‘한우(韓牛)’는 “[동물] 소의 한 품종. 암소는 600kg, 황소는 650kg 정도이며, 누런 갈색이다. 체질이 강하고 성질이 온순하며, 고기 맛이 좋다. 우리나라 재래종으로 농경, 운반 따위의 일에도 이용한다 ≒ 조선소·한국소”를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이라는 우리말을 붙여서 ‘한소’라 하면 됩니다. ‘힘소·힘찬소’라 할 만하고, ‘큰소’라 해도 돼요. ‘누런소·누렁소·누렁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한우’를 둘 더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한우(汗?) : [한의] ‘땀띠’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

한우(寒雨) : 1. 차갑게 느껴지는 비 = 찬비 2. 겨울에 내리는 비



한우 고기를 생산하는 소와 그 주인은 교감 따위가 필요없다

→ 고기를 내놓는 한소와 소임자는 함께할 일 따위가 없다

→ 고기를 내는 누렁소와 소지기는 마주할 따위가 없다

《시간의 빛》(강운구, 문학동네, 2004) 137쪽


나는 1등급 한우마냥 거들먹거리는 ‘진짜 좌파’들이 싫다

→ 나는 첫자리 한소마냥 거들먹거리는 ‘순 왼쪽’이 싫다

→ 나는 첫줄 누렁소마냥 거들먹거리는 ‘참 왼켠’이 싫다

《대한민국 표류기》(허지웅, 수다, 2009) 218쪽


누런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 한우가 사라지게 된 것은

→ 누런빛 아닌 다른 빛깔 우리 소가 사라진 까닭은

→ 누렁소 아닌 다른 빛깔 우리 소가 사라진 까닭은

《내 이름은 왜?》(이주희, 자연과생태, 2011) 18쪽


그도 그런 것이 분윳값은 한웃값과 맞먹는다

→ 그럴 까닭이 가루젖값은 한소값과 맞먹는다

《셋이서 쑥》(주호민, 애니북스, 2014) 136쪽


1등급 한우만 취급해

→ 으뜸 한소만 다뤄

→ 첫째 누렁소만 팔아

《나는 고딩 아빠다》(정덕재, 창비교육, 2018)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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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알량한 말 바로잡기

 사치 奢侈


 사치 풍조 → 겉멋바람 / 치레바람 / 흥청망청

 사치 성향 → 멋부리다 / 멋내기 / 헤프다 / 흔전만전

 사치를 부리다 → 흘러넘치다 / 멋부리다 / 꼴값하다 / 너무 쓰다

 멋과 사치를 즐기다 → 멋과 치레를 하다 / 멋과 돈잔치이다

 사치와 허영에 빠지다 → 겉멋과 거품에 빠지다

 사치하는 것보다 낫다 → 내버리기보다 낫다

 사치한 생활 → 헤픈 삶 / 돈지랄 / 돈잔치

 사치스러운 여행이었다 → 넘치는 마실이었다

 최고급으로 사치스러운 것이었고 → 가장 값져 지나쳤고

 측량할 수 없이 사치스러웠다 → 헤아릴 길 없이 주제넘었다


  ‘사치(奢侈)’는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함 ≒ 사미”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헤프다·헤픈짓·헤픔질·휘두르다’나 ‘흔전만전·흥청망청·흥청질·흥청흥청·흥청거리다’로 손질합니다. ‘흘러넘치다·흘리다·흘려보내다’나 ‘꼴값하다·주제넘다·주제모르다·주제없다’로 손질하고, ‘버리다·내버리다·내다버리다·내버려두다·냅두다·내비두다’로 손질해요. ‘너무 쓰다·넘치다·넘쳐나다·지나치다’나 ‘돈잔치·돈지랄’로 손질할 만합니다. ‘겉멋·겉멋스럽다·겉멋쟁이·겉멋꾼·겉발림·겉발리다’나 ‘겉치레·겉으로·겉질·겉짓·겉꾼·겉사랑’으로 손질하면 되고요. ‘멋·멋나다·멋내다·멋내기·멋스럽다·멋길·멋꽃·멋빛·멋살림·멋부리다·멋부림’이나 ‘치레·치레하다·치레질·치렛감’으로 손질해도 어울립니다. ‘마음껏먹다·맘껏먹기·마음껏받다·맘껏받기·실컷먹기·실컷받기’나 ‘배부르다·배불리·배가 부르다·배불뚝이·배뚱뚱이·배부장나리’로 손질하지요. ‘우습다·우스개·우스꽝스럽다·웃기다’나 ‘있다·있음·있는집·있는집안·있는꽃·있는빛’으로도 손질해요. ‘잔뜩밥·잔뜩먹다·잘먹다·잘먹이다’로 손질하며, ‘지랄·지랄잔치·지랄판·지랄맞다·지랄하다·지랄버릇’이나 ‘탕·탕탕·팡·팡팡·펑·펑펑·펑펑 쓰다·펑펑 놀다·펑펑질·펑펑판·퐁·퐁퐁’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낱말책에 한자말 ‘사치(邪侈)’를 “사악하고 사치스러움”으로 풀이하며 싣지만 털어냅니다. ㅍㄹㄴ



이제야 사치스런 생활에 질린 모양이군

→ 이제야 마구 쓰는 삶에 질린 듯하군

→ 이제야 펑펑 쓰는 삶에 질린 듯하군

→ 이제야 막쓰는 살림에 질린 듯하군

《코》(아쿠타가와 류노스케/전아현 옮김, 계수나무, 2007) 70쪽


한 끼에 거한 사치를 부릴 때가 있다

→ 한 끼에 대단히 쓸 때가 있다

→ 한 끼에 대단히 돈쓸 때가 있다

→ 한 끼를 실컷 누릴 때가 있다

→ 한 끼를 신나게 즐길 때가 있다

《우물밖 여고생》(슬구, 푸른향기, 2016) 143쪽


거품 넘치는 버블 시기에 거품 돈으로 사치하고 즐긴 것은 나도 알지만

→ 거품 넘치는 때에 거품돈으로 펑펑 쓰고 즐긴 줄은 나도 알지만

→ 거품 넘치는 무렵에 거품돈으로 펑펑대고 즐긴 줄은 나도 알지만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 29쪽


그야말로 사치스럽고 후안무치한 잡생각이다

→ 그야말로 꼴값에 뻔뻔하고 부질없다

→ 그야말로 배부르고 창피하고 덧없다

→ 그야말로 흔전만전 건방지고 못났다

《인월 4》(김혜린, 대원씨아이, 2018) 36쪽


안 팔린다고 걱정하는 것은 하나의 사치일 것이다

→ 안 팔린다고 걱정하면 배부른 소리일 듯하다

→ 안 팔린다고 걱정하면 좀 지나치다

→ 안 팔린다고 걱정하는 소리는 퍽 너무한다

《변명과 취향》(김영건, 최측의농간, 2019) 45쪽


이렇게 맛있는 것을 일반 시민이 먹는 것은 사치라며

→ 이렇게 맛있는데 누구나 먹으면 꼴값이라며

→ 이렇게 맛있으니 여느사람이 먹기엔 배부르다며

《요리조리 세계사》(손주현·여희은, 책과함께어린이, 2019) 132쪽


우리 형편에는 당치도 않은 사치였기에

→ 우리 살림에는 어림도 없었기에

→ 우리 집에서는 꿈도 못 꾸었기에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이병철, 천년의상상, 2021) 15쪽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틈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마저도 배부를 수 있는 줄 안다

《엄마는 그림책을 좋아해》(이혜미, 톰캣, 2024) 81쪽


언어가 낭비이다 못해 사치네 사치

→ 말이 헤프다 못해 주제넘네 주제

→ 말을 막쓰다 못해 꼴값이네 꼴값

《우리 그런 말 안 써요》(권창섭, 창비교육, 2024)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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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8 넋나간 짓

책벌레수다 : 넋찾는 길에 읽고쓰기



   우리 삶자락에 깃들 만하구나 싶은 낱말이라면 이제 붙여쓰기를 할 노릇이라고 본다. 국립국어원이나 국어학자가 새 낱말을 알려줄 때에만 붙여쓰기를 할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짓는 이 삶에서 스스로 느끼고 배우고 깨닫고 익히는 대로 새말을 지으면 된다. ‘새말’을 아무나 지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마음은 맞다. 참으로 ‘아무나’ 지으면 안 될 새말이다. 그래서 ‘누구나’ 지으면 될 새말이다. ‘새말 = 사투리’이다. 예부터 모든 곳 모든 사람이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말을 지었다.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한테 이름을 붙이고, 손수 가꾸며 지내는 집에도 이름을 붙이고, 새와 풀과 나비를 바라보다가 이름을 붙인다. ‘이름 = 이르는 소리 = 말’이다. ‘이르다’란 저곳에서 이곳으로 잇는다는 뜻이다. ‘말·이름’을 붙일 적에는, 아직 우리한테 스미거나 녹아들지 않던 저곳에 있는 삶과 살림을, 이제는 이곳에 있는 우리한테 풀어내거나 품는 하루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오늘은 문득 ‘읽고쓰다’라는 낱말을 붙여서 적어 본다. 오늘날 숱한 사람은 두 가지를 나란히 한다. 읽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다고 여기기 어렵다. 읽기에 쓰고, 쓰기에 읽는다. ‘읽고쓰기’하고 ‘쓰고읽기’는 함께 흐른다.


참새가 입원하면 먼저 지렁이를 찾고, 나비의 애벌레를 모으는 것도 우리가 할 일입니다. 지빠귀는 나방이 주식이에요. 이들이 입원하면 의료진 모두 곤충 채집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물총새가 입원하면 다들 어부가 된 듯 뜰채를 들고 강으로 나서고, 눈토끼가 오면 농부로 변신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 55쪽


  나는 아무래도 넋나간 듯 책을 읽고 글을 쓰는구나 싶다. ‘닥치는’ 대로 읽지는 않으나, 손에 닿는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한다. 한 사람이 읽어낼 만한 책은 그리 안 많다지만, 온갖 책을 안 가리면서 읽으려고 한다. 온갖 사람을 딱히 안 가리고 싶기에 책도 그저 모두 집어들어서 줄거리를 짚고 이야기를 느끼려고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 그루(주식)가 껑충 뛴다고 말이 많은데, 난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그루에 돈을 놓을 뜻이 아주 없다. 나는 읽고쓰기에 돈과 품과 마음을 들이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요즈음이라면 씨앗돈이 있으면 얼른 그루에 돈을 놓아서 돈벼락을 맞을 수 있을 텐데, 돈벼락을 등진 채 책벌레에 글벌레로 살아가려고 하니, 참으로 넋나간 짓일 만하다.


트리혼은 《머리 없는 괴물》에 대해 독서 감상문을 쓸 생각이었다. 선생님이 만화책에 대한 독서 감상문을 써도 된다고 한 적은 없지만, 쓰면 안 된다고 한 적도 없었다. 《트리혼의 보물 나무》 29쪽


  일본 훗카이도 두멧골에서 ‘이웃돌봄터(동물병원)’를 꾸리는 집이 있다지. 이웃인 들짐승은 돌봐준들 값(치료비)을 치르지 않는다. 숲짐승이나 들짐승이 무슨 돈을 건사하겠는가. 돈나라(자본주의)로 친다면 넋나간 짓이다. 그렇지만 훗카이도 이웃돌봄터 사람들은 넋나간 짓을 웃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온몸을 바쳐서 한다. 나는 어느 터(회사·직장·기관·연구소·학원·재단)에 몸두지 않으면서 낱말책을 쓴다. 어느 터에 몸두면 다달이 일삯이 나올 뿐 아니라, 심부름꾼을 두면서 수월하게 낱말책을 쓸 테지. 자잘한 모든 일을 남한테 맡기고서 뜻풀이만 해도 될 텐데, 심부름꾼이 여럿이면 뜻풀이마저 맡길 수 있다. 그런데 밑글을 모으고 살피고 추스르는 자잘한 일부터, 말밑을 캐고 찾고 알아내면서, 이 모든 줄거리를 이야기로 묶어서 글로 쓰는 데까지 오롯이 혼자 한다. 이러며 집일과 집살림을 고스란히 맡는다. 이러며 아이들하고 놀고 수다를 떤다. 이러며 두바퀴를 달려서 저잣마실을 하고, 곧잘 시골버스로 읍내로 가서 저잣마실을 하지.


“있지,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지금 멀리 간 거지?” “응, 이젠 안 돌아와.” “많은 엄마들 중에서 우리 엄마한테 온 거니까, 다시 올 거야.” “엄마, 아가 얼른 돌아오라고 내가 편지 썼다? 여기, 받으세요♡” 《투명한 요람 2》 73쪽


  둘레(사회)에서 바라보는 “넋나간 짓”이라면, 겉돈하고 담쌓은 삶이라 할 만하다. 느닷없이 돈벼락에 올라앉을 오늘날 이 나라하고 엇나간다면 넋나간 짓이다. 어느 터에든 슬그머니 올라타서 목돈을 만지거나 이름값을 높이려는 길을 손사래칠 적에도 넋나간 짓이다. 그렇지만 우리집 아이뿐 아니라 이웃집 아이를 보더라도 ‘어른으로서’ 살아가려 하는 마음에다가 ‘사람으로서’ 일하려는 마음이기에, 둘레가 아닌 ‘나너우리’를 바라보려고 한다. 나너우리로 맺고 품는 푸른별이라는 곳에서는 ‘어른으로서 + 사람으로서’라는 길을 잊는 모습이야말로 “넋나간 짓”이라고 느낀다. 나는 넋찾기를 하려고 읽고쓴다. 나는 뭇이웃 누구나 넋찾기를 스스럼없이 너끈히 하기를 바라며 읽고쓴다. 우리가 함께 누리고 나눌 아름책과 아름글을 헤아리면서 읽고쓴다.


“용신은 믿지 않으면서 그런 건 믿으시네요.” “다 그런 거야.” 용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옛날 일이에요.” 《드래곤 키워 주세요 1》 113쪽


  ‘집’이란, 지으면서 즐겁게 지내는 곳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집’이라는 낱말이 왜 ‘집’인 줄 까맣게 잊거나 안 쳐다보기 일쑤이다. ‘밥’이란, 바다와 바람한테서 오는 바탕을 받아들이는 길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는 ‘밥’이라는 낱말이 왜 ‘밥’인 줄 아예 잊거나 안 바라보곤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수수한 낱말·이름을 깡그리 잊다가 잃는 굴레라고 할 만하다. 그야말로 ‘문해력·어휘력’ 같은 일본말씨가 춤출 뿐 아니라, 이런 일본말씨를 붙이는 글장사와 말장사가 판치는데, 정작 ‘글눈·말눈’을 저마다 스스로 익히면서 삶을 가꾸는 길하고 어울리는 읽고쓰기는 좀처럼 날개를 못 편다고 느낀다. 그루에 돈을 놓아서 벼락돈을 맞는 데에 넋이 팔린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남이 좋게 보아주기를 비느라, 막상 “내가 나를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바람이 되고 바다로 서는 길”을 등지는 나라이기도 하다.


“넌 그게 나아. 쓸데없는 건 보지 마. 하나만 보면 돼.” 106쪽


  ‘지기’란 어떤 사람일까? ‘지기’란 “집을 일구고 돌보며 지키는 일꾼”을 가리키는 이름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고을지기(지자체장)라든지 벼슬지기(국회의원·기초의원)를 맡는 무리를 보자. 이 나라에서 어떤 고을지기나 벼슬지기가 “집을 지키는 어진 일꾼”으로 서는 삶일는지 아리송하다. 집을 일구려면 집일을 맡을 노릇이다. 집을 돌보려면 집살림을 할 노릇이다. 집을 아끼고 사랑하려면 몸소 아이를 품으면서 가르치고 이끌며 함께 걸어야 할 노릇이다. 아이랑 손잡고 눈을 마주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 때라야, 비로소 ‘넉차린’ 몸짓이라고 느낀다. 아이랑 손을 안 잡고서 눈도 마주보지 않는 몸짓이라면 ‘넋나간’ 하루라고 느낀다. 아이곁에서 읽고쓰기를 하는 수수한 매무새일 적에만 ‘어른’이지 싶다.


ㅍㄹ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다케타쓰 미노루/안수경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2.20.)

《트리혼의 보물 나무》(플로렌스 패리 하이드 글·에드워드 고리 그림/이주희 옮김, 논장, 2009.9.5.)

#TreehornsTreasure #FlorenceParryHeide #EdwardStJohnGorey

《투명한 요람 2》(오키타 밧카/서현아 옮김, 문학동네, 2022.12.2.)

#透明なゆりかご #沖田×華

《드래곤 키워 주세요 1》(마키세 쇼운 글·히가시우라 유키 그림/김동욱 옮김, 재담, 2024.12.31.)

#ドラゴン養やしなってください #牧瀨初雲 #東裏友希

《안녕, 아름다운 날 8》(아카네다 유키/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25.5.15.)

#さらば佳き日 #?田千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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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 애매하게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돈'립생활 이야기
신민주 지음 / 디귿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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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6.3.29.

까칠읽기 122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신민주

 디귿

 2021.4.16.



  돈(연구비)을 넉넉히 타면서 살림살이 걱정이 없이 글(연구논문)을 쓰는 길잡이(대학교수)는 셈값(숫자·통계·도표)에 얽매여 먼발치에서 구름에 앉아 구경하는 눈이라고 느낀다.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일꾼(활동가)이 쓰는 글(보고서·르포)은 스스로 살아내지 않는 이웃집 이야기를 자주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스스로 보내는 삶하고는 먼발치에 있어서 속으로 녹아들지 않는 눈이라고 느낀다.


  가난집이나 가난칸에서 지내는 사람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라고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구경글(관전기·관람기)’이 아니라, 스스로 온몸으로 살아낸 바가 아니라면, “스스로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일하는 아이들》이나 《파리아의 미소》나 《니사NISA》처럼 ‘그곳 그사람’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낼 적에 이 나라와 이 별을 가꾸거나 바꿀 길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나눌 만하다고 본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돌아본다. 처음에는 ‘칸(한두 칸)’을 빌려서 달삯을 내는 사람들 목소리와 삶을 얼핏 옮기는가 하고 느끼다가, 갈수록 ‘칸살이’ 목소리가 사라진다. 칸살이 이야기를 책으로까지 내고 싶다면, 글쓴이 스스로 “제대로 가난하게 살아야”지 싶다. ‘정당인’이라고 해서 “안 가난”하지는 않을 텐데, 가난하게 살아가며 칸살이로 몸마음을 쉬고 일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까지 적어내지는 못 하는구나 싶다.


  ‘대학교 과방·동아리방’이 넓은 데도 있을 수 있으나, 그냥 조그맣거나 휑뎅그렁한 데도 많다. 이런 데서 이불조차 없이 쪽잠으로 웅크리는 밤이 칸살이보다 낫다고 여겨서 한밤을 보내는 가난배움이가 꽤 있다. 비록 춥고 배고프며 고단한 쪽잠이되 ‘대학교 과방’은 ‘고시원’에 대면 으리으리한 임금집 같다. 동트는 해를 느끼면서 기지개를 켜고, 드넓은 마당에서 몸을 풀고, 아무도 없는 뒷간에서 고즈넉히 씻고 머리를 감고서 이른새벽을 보내고서, 조용히 책을 읽고 새하루를 맞이하는 나날이다. 다만 밤에는 지기(수위) 아저씨가 ‘과방·동아리방 쪽잠’을 누리는 젊은이가 있나 하고 돌아보기 때문에, 발자국 소리가 나면 조용히 숨기도 해야 한다.


  이러구러 서울이라는 데는 숱한 가난배움이와 가난이한테는 집살이 아닌 칸살이일 수밖에 없는데, 왜 서울에서 버티는지 더 들여다보아야 이 책을 이루는 줄거리를 제대로 짚을 수 있지 않을까? 구태여 서울에서 버틸 까닭이 없이 시골에서 손수짓기와 새살림으로 집살이를 할 수 있다는 대목을 나란히 짚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쓴 분을 비롯해서, 글바치(대학교수·전문작가)는 하나같이 서울에서 살 뿐이라 시골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집살이를 아예 모르거나 아주 안 보거나 앞으로 그릴 즐거운 꿈(대안)으로 못 삼는다고 느낀다. ‘기본소득당’이 ‘서울이 아닌 시골 군의원’부터 해낼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밑살림돈(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사람들한테 알릴 만하다고 본다.


ㅍㄹㄴ


그 애가 보증금 50, 월세 18만 원짜리 방에서 산 지 몇 년이나 지난 후 문득 나는 그때의 일에 대해 물어봤다. 그 방에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고, 고단하지는 않았냐고. 그러자 그 애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 집에 가기 전, 고시원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매일 과방에서 잠을 잤어요. 가끔이 아니라.” 28쪽


그제야 뒤늦게 이태원에 잘 안 간 이유가 하나 더 기억났다. 이태원은 너무 비쌌다. 33쪽


가난은 낭만이 돼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도 미담으로 소비돼서는 안 된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구출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마음 착한 시민들이라면 그것은 미담이 아니라 불행이다. 45쪽


엄마는 단 한 순간도 ‘우리’ 집에 얹혀살지 못했다. 사랑하고 가꾸는 일, 돌보고 챙기는 일이 모조리 엄마의 것이 돼서는 안 됐다. 50쪽


사람들은 앞으로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할 것을 약속해야 했고,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하다는 것을 긴 서류로 알려야 했으며, 내 장애의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사 앞에서 증명해야 했다. 65쪽


+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신민주, 디귿, 2021)


누군가는 기본소득이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 누구는 밑살림돈이 지나치게 뜬구름이라고 헐뜯을지 모른다

→ 누구는 밑돈이 지나치게 바보같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 누구는 씨앗돈이 지나치게 말이 안 된다고 비웃을지 모른다

8


가난은 낭만이 돼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도 미담으로 소비돼서는 안 된다

→ 가난은 달콤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삶도 꽃빛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 가난은 봄꿈이어서는 안 된다. 가난살이도 곱게 써없애서는 안 된다

→ 가난은 멋이어서는 안 된다. 가난삶도 곱상하게 머금어서는 안 된다

45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살고 있지만 어느새 그건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해지고 말았다

→ 누가 돌봐주며 살지만 어느새 숨쉬기처럼 마땅하게 여기고 만다

→ 누가 돌보기에 살아가지만 어느새 숨쉬기처럼 잊어버리고 만다

53


잉여로운 사람들과 잉여롭게 하루를 보내다 보니

→ 남아도는 사람들과 남아돌듯 하루를 보내다 보니

→ 노닥이는 사람들과 하루를 노닥이다 보니

77


그들은 제주도 위에 막 상륙한 상태였다

→ 그들은 제주섬에 막 내렸다

→ 그들은 제주섬에 막 내려앉았다

95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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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신값



  우리 나라지기가 일본에 가서 발에 꿴 신 한 켤레가 ‘75만 원’짜리라고 한다. 신 한 켤레가 75만 원뿐 아니라 750만 원도 할 수 있지. 나라지기쯤 되는 자리이니 75만 원짜리 신을 꿸 수 있겠지. 그런데 푸른집(청와대)에서 밝히기로는, 나라지기 아닌 옆사람(보좌관)이 꿰는 신을 빌려신었다고 한다. 옆사람은 한달벌이가 얼마이기에 75만 원짜리 신을 꿸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신을 못 만드나? 이웃나라로 건너가서 일본 나라지기를 만나는 자리라면 되도록 ‘우리나라 옷·신·살림’을 챙길 노릇 아닐까? 웬 뜬금없는 ‘이탈리아 75만 원짜리 신’을 챙겨야 할까?


  나는 2003년부터 고무신을 꿴다. 고무신 한 켤레는 2003년에 2500원이었다. 이 값은 꾸준히 올라서 2026년에는 한 켤레에 5000원(또는 6000원)을 한다. 고무신 한 켤레는 10∼12달을 꿰면 바닥이 닳아 구멍이 난다. 2026년 값으로 친다면, 75만 원으로 고무신을 150켤레를 장만할 수 있는 셈인가. 신값 75만 원이라면 앞으로 온쉰(150) 해를 신나게 달리고 거닐고 일할 수 있구나.


  발을 아끼려는 마음으로 75만 원이건 750만 원이건 7500만 원이건 얼마든지 쓸 일이다. 나라지기이건 옆사람이건 신값이 대수롭지 않다. 다만 하나는 곰곰이 헤아려 본다. 신 한 켤레가 값이 얼마인지 왁자지껄한 마당을 감추거나 둘러대기보다는 “다달이 책값 75만 원쯤 가볍게 씁니다” 하고 말할 줄 알면 될 텐데. 한 달 책값 75만 원이라 해도 책을 그리 많이 사읽는 셈은 아니다. 나라지기를 모시는 도움일꾼이라면 이레에 75만 원쯤 책값으로 쓰면서 온갈래 온살림을 더 힘써 배운다고 밝힐 노릇이지 싶다.


  아직 책값으로 이레에 75만 원조차 못 쓰는 나라지기나 도움일꾼이라면 이제부터 하루에 10만 원씩 책값을 쓸 수 있기를 빈다. 이미 하루 책값 10만 원을 쓰는 나라지기나 도움일꾼이라면, 이제부터 하루 책값 20만 원을 쓰면서 더 깊고 넓게 배우고 살피는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빈다. 나라지기를 비롯해서 고을지기와 벼슬아치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오늘 읽은 책입니다.”라든지 “오늘 읽으려는 책입니다.” 하고 책수다를 들려줄 수 있는 나라를 그린다. 널리 이름난 책이 아닌,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수수하고 아름다운 책을 나라일꾼이 저마다 수다꽃으로 지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면 된다. 신값은 안 대수롭다. 옷값과 집값도 안 대단하다. 날마다 책값으로 20만 원을 기꺼이 신나게 쓸 줄 아는 사람만 나라지기를 비롯한 나라일꾼 자리에 앉기를 빈다. 2026.1.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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