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그들은 그 기념일 예배에서 하나님이 루터와 다른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종교개혁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개신파의 신앙고백을 계속해서 보호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다.(400)

 

그들은 그 기념일 예배에서 루터와 다른 신실한 사람들에 의해 야기된 종교개혁을 기억하며, 개신파의 신앙고백을 계속해서 보호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했다.

 

독일어 원문: [...] in der Festgottesdiensten der durch Luther und „andere gottseelige Leuth“ herbeigeführten Reformation gedenken und Gott bitten sollten, Er möge auch in Zukunft dem evangelischen Bekenntnis Seinen Schutz und Segen gewähren.

 

der durch Luther und „andere gottseelige Leuth“ herbeigeführten Reformation gedenken

 

= 루터와 다른 경건한 사람들에 의해 야기된 종교개혁을 기억하고

 

Gott bitten sollten, Er möge auch in Zukunft dem evangelischen Bekenntnis Seinen Schutz und Segen gewähren

 

= 하나님이 장래에도 개신교 고백에 하나님의 보호와 복을 베풀어 주실 것을 하나님께 구하기로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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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저자 오류

 

1617423, 하일브론 회담의 공동결의문”Nebenabschied은 개신파 동맹에 속한 모든 회원 교회가 같은 해 112주일을 기념일로 지킬 것을 결정하였다.(400)

 

1617423, 하일브론 회담의 부속결의문”Nebenabschied은 개신파 동맹에 속한 모든 회원 교회가 같은 해 112일을 기념일로 지킬 것을 결정하였다.

 

독일어 원문: So wurde in dem „Nebenabschied“ des Heilbronner Tages vom 23. April 1617 beschlossen, daß alle Miedglieder der Union am Sonntag, dem 2. November 1617, in Festgottesdiensten der [...] Reformation gedenken [...] sollten, [...].

 

Nebenabschied = 부속결의

 

•• 주결의 = Hauptabschied

 

하일브론 회담의 주결의 = ‘개신파 동맹3년 연장한다.

 

저자 오류:

 

1617. 11. 2. = 일요일이 아니라, ‘목요일

 

•• 삭제할 것:

 

주일을

 

단어 및 저자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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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파와 개혁파가 연합하여 경축 행사를 가진다면, 이는 개혁파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고, 또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평화 협약에서 합의된 관용 정책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400)

 

루터파와 개혁파가 연합하여 경축 행사를 가진다면, 이는 개혁파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의 추종자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고, 또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평화 협약에서 합의된 관용 정책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독일어 원문: Wenn Lutheraner und Reformierte das Fest gemeinsam begehen würden, so konnte damit zugleich betont werden, daß auch die Reformierten Anhänger der Augsburgischen Konfession seien, also die Toleranzbestimmungen des Augsburger Religionsfriedens auch für sie Geltung hatten.

 

so konnte damit zugleich betont werden, daß auch die Reformierten Anhänger der Augsburgischen Konfession seien

 

= 이로써 동시에 개혁교회 신자들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의 추종자라는 것이 강조될 수 있다

 

•• 개혁파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에 서명하지 못했다.

 

문장을 바로잡았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독일 위키피디아(특히, 아래 문장)를 볼 것:

 

https://de.wikipedia.org/wiki/Confessio_Augustana

  

Aufgrund von Meinungsverschiedenheiten zum Abendmahl waren die vier oberdeutschen Städte Straßburg, Konstanz, Memmingen und Lindau, die zum Teil Zwinglis Lehre anhingen, nicht an der „Confessio Augustana“ beteiligt: Sie schrieben ihr eigenes Bekenntnis, die Confessio Tetrapolitana (das „Vierstädtebekenntnis“), die jedoch nicht öffentlich verlesen wurde. Aus diesem Grund waren später lediglich die Anhänger der „Confessio Augustana“ reichsrechtlich geschützt und wurden durch die Bestimmungen des Augsburger Religionsfriedens 1555 als gleichberechtigt neben den Katholiken geduld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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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그 외에도 곳곳에서 루터의 생애 중 특별한 시점을 기념하는 관습이 발전되었다. 예를 들어, 1569년 이래로 포메른Pommern에서는 루터가 세례를 받은 1111일을 마르틴의 날”Martinstag로 제정하였고, 루터가 임종을 맞이한 아이스레벤에서는 그의 사망일인 218일을 기념하였다.(399)

 

그 외에도 곳곳에서 루터의 생애 중 특별한 시점을 기념하는 관습이 발전되었다. 예를 들어, 1569년 이래로 포메른Pommern에서는 루터가 세례를 받은 1111, “마르틴의 날”Martinstag에 이 종교개혁자를 기념했고, 루터가 임종을 맞이한 아이스레벤에서는 그의 사망일인 218일을 기념하였다.

 

독일어 원문: [...] So wurde etwa in Pommern seit 1569 am Martinstag (11. November), dem Tauftag Luthers, das Gedächtnis an den Reformator begangen; im Eisleben, wo Luther gestorben war, gedachte man seiner jeweils am 18. Februar.

 

so wurde etwa in Pommern seit 1569 am Martinstag (11. November), dem Tauftag Luthers, das Gedächtnis an den Reformator begangen

 

= 그래서 이를 테면 포메른에서 1569년 이후 마르틴 날(1111), 즉 루터의 세례 일에 이 종교개혁자를 기념했다

 

•• 루터가 태어나기 전부터 1111일은 마르틴의 날 ’.

 

루터가 이 날 세례를 받아, 루터의 이름이 마르틴’.

 

문장을 바로잡았다.

 

    

 

1111일이 축일인 마르틴에 관해서는 다음 사이트를 볼 것:

 

Martin von Tours = Martinus Turonensis = 투르의 마르티누스(316-397)

 

1. 독일 위키피디아

 

https://de.wikipedia.org/wiki/Martin_von_Tours

  

2. 가톨릭사전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853&keyword=Martinus&gubun=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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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이는 이 시대의 루터에 관한 대부분의 문헌들이 주로 신학자들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사실과 잘 부합하는 것이다. 인간 루터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신학 영역에서 루터는 오류가 없는 교회의 교사로서의 권위, 교황에 대해서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다.(397)

 

이는 이 시대의 루터에 관한 대부분의 문헌들이 주로 신학자들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사실과 잘 부합하는 것이다. 신학 영역에서 루터는 오류가 없는 교회의 교사로서의 권위, 교황에게는 부정되는 그런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독일어 원문: Dem entspricht, daß die Literatur über Luther ganz überwiegend von Theologen verfaßt ist. Innerhalb der Theologie aber kam Luther damals fast die Autorität des unfehlbaren Lehramtes zu, die man doch dem Papst bestritt.

 

원문에 없는 부분을 삭제할 것:

 

인간 루터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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