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우리가 들어야 하는 유일한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명은 19345월에 발표된 <바르멘 신학 선언> 1조의 인용이다. 당시 이 문장에는 성서가 증언하는 계시 외에, 1933년 바이에른의 라디오 방송인 <독일의 시간>(die deutsche Stunde)에서 일종의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던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에 대한 거부가 내포되어 있다.”(133, 문장부호 수정인용)

 

“<우리가 들어야 하는 유일한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명은 19345월에 발표된 <바르멘 신학 선언> 1조의 인용이다. 당시 이 문장에는 성서가 증언하는 계시 외에, 1933히틀러의 집권기인 <독일의 시간>(die deutsche Stunde)에서 일종의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던 독일 그리스도인 연맹에 대한 거부가 내포되어 있다.”

 

독일어 원문: Der Satz von Jesus Christus als dem »einem Wort Gottes, das wir zu hören haben«, zitiert die 1. These der Barmer Theologischen Erklärung vom Mai 1934, Damit war damals eine Absage an die Beutschen Christen verbunden, die neben der biblisch bezeugten Offenbarung auch in der deutschen Stunde von 1933 eine Art Gottesoffenbarung sahen.

 

예를 들어 라디오 방송 독일의 시간의 인식이 그렇게 주장한다!”(134)

 

예를 들어 히틀러의 집권기인 독일의 시간의 인식이 그렇게 주장한다!”

 

독일어 원문: Z. B. Erkenntnis der deutschen Stunde!

 

die deutsche Stunde = ‘독일의 시간

 

= ‘1933년 히틀러 집권과 더불어 나치즘과 독일 민족적 고유성이 현실 정치의 원리로 작동하던 시기

 

독일 신학자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교회의 독일의 시간(Die deutsche Stunde der Kirche, 1933)을 참고할 것:

 

“Unsere evangelischen Kirchen haben die deutsche Wende von 1933 als ein Geschenk und Wunder Gottes begrüßt.”

 

아울러, H. G. 푈만의교의학(이신건 옮김, 신앙과지성사, 2012) 77-79쪽 글, ‘-계시와 독일적 그리스도인들의 신학을 볼 것.

 

아울러, 독일의 시간’(1)도 참고할 것:

 

http://blog.aladin.co.kr/livrebuch/952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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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17)

 

그때 교회는 그분의 음성 외에 다른 어떤 음성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131)

 

그때 교회는 권위 있는 그분의 음성 외에 다른 어떤 음성도 들을 필요가 없다.”

 

독일어 원문: Sie[=die Gemeinde] braucht dann keine Stimme neben der seinen als maßgeblich zu hören.

 

빠진 단어를 보완하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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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16)

 

신약성서의 증인들에게 그와 같은 인식이 전달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다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128, 문장부호 수정 및 부분삭제 인용)

 

신약성서의 증인들에게 그와 같은 인식이 전달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그들 가운데 다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

 

독일어 원문: Es wurde ja diesen Zeugen jene Erkenntnis vermittelt, indem Jesus jetzt »so wieder unter sie trat, [...]«

 

빠진 단어jetzt를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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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바로 이 사건(부활)이 관건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 사건 속에서 그 자체로는 적절하게 <역사적으로 파악될 수 없는선역사의 사건>(prähistorische Geschehen)만을 찾는다거나(371), 또는 단지 <사실사적>인 이해만을 시도한다면, 그 사건은 즉시 잘못 이해된다.”(128, 문장부호 수정인용)

 

바로 이 사건(부활)이 관건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 사건 속에서 그 자체로는 적절하게 <역사적으로 파악될 수 없는선역사의 사건>(prähistorisches Geschehen)만을 찾는다거나(371), 또는 단지 <사실사적>인 이해만을 시도한다면, 그 사건은 즉시 잘못 이해된다.”

 

독일어 원문: Denn weil es um dieses Geschehen geht, haben wir es in him mit einem »prähistorischen Geschehen« zu tun, das als solche angemessenerweise »historisch nicht faßbar« ist (371), bzw. als »historisch« zu fassen versuchtes sofort verkannt wird.

 

prähistorisches Geschehen

 

형용사의 어미(語尾)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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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누락(15)

 

그 계시는하나님의 확실하고 새로운 행동 안에서 다음과 같은 분명한 인식을 전달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인식이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 예수 안에서 활동하셨고죽으셨으며, 그런 죽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오히려바로 그러한 가장 깊은 낮아지심 속에서바로 그 인간과 함께 전적으로 철저하게 죽으셨던 바로 그곳에서스스로 유일하게 한 분이신 높으시고 참된 하나님으로서 행동하셨고 스스로를 그렇게 증명하셨다>(/1, 322)”(128, 문장부호 수정인용)

 

그 계시는하나님의 확실하고 새로운 행동 안에서 다음과 같은 분명한 인식을 전달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고후 5:19)는 인식이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 예수 안에서 활동하셨고죽으셨으며, 그런 죽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오히려바로 그러한 가장 깊은 낮아지심 속에서바로 그 인간과 함께 전적으로 철저하게 죽으셨던 바로 그곳에서스스로 유일하게 한 분이신 높으시고 참된 하나님으로서 행동하셨고 스스로를 그렇게 증명하셨다>(/1, 332)”

 

독일어 원문: »[...] ... die untrügliche, in einer neuen Tat Gottes gerade [das] die unzweideutig klarmachende Vermittlung der Erkenntnis: daß Gott war in Christus (2. Kor. 5,19), d.h., daß Gott selbst in dem Menschen Jesus am Werk gewesen ... und in den Tod gegangen war und nicht trotz dieses Endes, sondern ... in dieser seiner tiefsten Erniedrigung eben dort, wo es mit diesem Menschen ganz und gar zu Ende war als der eine Hohe, wahre Gott gehandelt und sich erwiesen hat« (/1, 332).

 

빠진 성경 구절을 보완하고, 출전을 바로잡았다.

 

아울러, 독일어 원문도 인용자가 빠뜨린 단어das를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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