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옐레,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이용주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3).

 

“[...] 바르트의 삶을 통틀어 일관되게 존재하는 많은 상수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세계를 향한 관심과 깨어 있는 태도다. 바르트는 결코 상아탑에 갇혀 구슬치기나 하면서 말만 앞세우는 폐쇄적인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서 외에도 특히 신문을 관심 있게 읽었다.”(171, 부분삭제 인용)

 

“[...] 바르트의 삶을 통틀어 일관되게 존재하는 많은 상수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세계를 향한 관심과 깨어 있는 태도다. 바르트는 결코 상아탑에 갇혀 사변적 지적 유희나 하면서 말만 앞세우는 폐쇄적인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서 외에도 특히 신문을 관심 있게 읽었다.”

 

독일어 원문: [...] Barth war kein introvertierter Gelehrter, der sich in den sprichwörtlichen Elfenbeinturm zurückgezogen hätte, um sich dort einem Glasperlenspiel hinzugeben. Neben der Bibel war für ihn die Zeitung die wichtige Lektüre.

 

Glasperlenspiel = 사변적 지적 유희

 

독일 <Duden>사전의 뜻풀이를 참고할 것:

 

rein akademisches, theoretisch-abstraktes Gedankenspiel ohne praktischen Zw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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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옐레,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이용주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3).

 

다음은 1942의 기도의 날(Bettag)에 바르트가 장크트갈렌에서 출판한 8쪽짜리 인쇄물에 담긴 내용이다.

 

[...]

 

다음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11022에 열린 망명자후원회 회합에서의 연설문 중 일부다.”(134, 부분삭제 인용)

 

다음은 1942의 기도의 날(Bettag)에 바르트가 장크트갈렌에서 출판한 8쪽짜리 인쇄물에 담긴 내용이다.

 

[...]

 

다음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42 1022에 열린 망명자후원회 회합에서의 연설문 중 일부다.”

 

독일어 원문: [...] einen Monat später, am 22. Oktober 1942, [...], schrieb Karl Barth.

 

연도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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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크 옐레,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이용주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3).

 

농업 및 산업 생산물을 수출함으로써 스위스는 <3제국 노동시장의 부담을 경감시켜주고 있다. [...]>”(133, 문장부호 수정인용)

 

농업 및 산업 생산물을 수출함으로써 스위스는 <추축국들 노동시장의 부담을 경감시켜주고 있다. [...]>”

 

독일어 원문: Mit dem Export landwirtschaftlicher und industrieller Produkte entlaste die Schweiz «den Arbeitsmarkt der Achsenländer [...]»

 

Achsenländer = 추축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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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옐레,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이용주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6(3).

 

당시 스위스에서는 연방정부가 몇 개 주로 구성되어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131)

 

당시 스위스에서는 연방정부 각료를 7, 또는 9명으로 해야 할지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독일어 원문: Zur damals diskutierten Frage, ob sieben oder neun Bundesräte vorzuziehen seien, [...]

 

Bundesrat = 연방정부의 각료

 

현재, 스위스 연방정부의 각료는 7.

 

다음 사이트를 참고할 것:

 

https://de.wikipedia.org/wiki/Bundesrat_(Schwe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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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상호 관계는, 하나님의 계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오직 하나님 안에 근거하며, 결코 ‘하나님 우리안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Die ewige Korrelation zwischen Gott und uns, wie sie in Gottes Offenbarung sichtbar ist, ist in Gott allein und nicht etwa in Gott und in uns begründet.

 

The eternal correlation between God and us, as shown in God’s revelation, is grounded in God alone, and not partly in God and partly in us.

 

KD /1,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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