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0(257).

    

어느 초여름 저녁,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데미안 초상화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것은 나의 내면, 나의 운명 혹은 내 속에 내재하는 수호신이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다시 한 친구를 찾아낸다면, 내 친구의 모습이 저러리라. 언제 하나를 얻게 된다면 내 애인의 모습이 저러리라. 나의 삶이 저럴 것이며 나의 죽음이 저럴 것이다. 이것은 내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었다.

그 몇 주 동안 나는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였는데, 전에 읽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 그것은 노발리스의 책으로 편지와 잠언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나를 매혹시켰고 긴장시켰다. 잠언 하나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 잠언을 펜으로 초상화 밑에 적어놓았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이름이다.> 그 말을 내가 그때 이해했던 것이다.”(113)

 

그것은 나의 내면, 나의 운명 혹은 내 속에 내재하는 수호신이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다시 한 친구를 찾아낸다면, 내 친구의 모습이 저러리라. 언제 하나를 얻게 된다면 내 애인의 모습이 저러리라. 나의 삶이 저럴 것이며 나의 죽음이 저럴 것이다. 이것은 내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었다.

그 몇 주 동안 나는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였는데, 전에 읽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 그것은 노발리스의 책으로 편지와 잠언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나를 매혹했고 사로잡았다. 잠언 하나가 그때 생각났다. 그 잠언을 펜으로 초상화 밑에 적어놓았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이름이다.> 그 말을 내가 그때 이해했던 것이다.

 

독일어 원문: [...] es war mein Inneres, mein Schicksal oder mein Dämon. So würde mein Freund aussehen, wenn ich je wieder einen fände. So würde meine Geliebte aussehen, wenn ich je eine bekäme. So würde mein Leben und so mein Tod sein, dies war der Klang und Rhythmus meines Schicksals.

In jenen Wochen hatte ich eine Lektüre begonnen, die mir tieferen Eindruck machte als alles, was ich früher gelesen. [...] Es war ein Band Novalis, mit Briefen und Sentenzen, von denen ich viele nicht verstand und die mich doch alle unsäglich anzogen und umspannen. Einer von den Sprüchen fiel mir nun ein. Ich schrieb ihn mit der Feder unter das Bildnis: »Schicksal und Gemüt sind Namen eines Begriffs.« Das hatte ich nun verstanden.

 

umspannen = umspinnen실을 자아서 감싸다의 복수 3인칭 과거형.

 

번역자는 순간적으로 이 과거형을, 복수 3인칭 현재형의 umspannen동형이의(同形異義)으로 잘못 읽었다. umspannen의 뜻도 spannen에 방점을 두어 긴장시키다로 해석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싸안다’, ‘포괄하다’.

 

 

Einer von den Sprüchen fiel mir nun ein. = 잠언 하나가 그때 생각났다.

 

잠언 하나가 생각난 것은 화자(話者) 싱클레어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현재 시점이 아니라, 그 당시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데미안 초상화를 바라보던 때.

 

정리하자면, 싱클레어는 노발리스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후 초상화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는데 그 생각의 결론이 노발리스 책에서 읽었던 잠언으로 요약될 수 있음을 깨닫고 그 잠언을 초상화에 기록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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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0(257).

 

더러움과 끈적거림 너머로, 깨진 맥주잔과 독설로 지새운 밤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주문에 걸린 몽상가가, 추하고 더러운 길을 쉬지 않고 고통당하며 기어가는 모습이. 공주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오물 웅덩이에, 악취와 쓰레기 가득한 뒷골목에 박혀 있는 그런 꿈들이었다. 내 형편이 그랬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런 식으로 나는, 외로워지도록, 그리고 무정하게 환히 웃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잠긴 낙원의 문 하나를 나와 유년 사이로 세우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향수의 눈뜸이었다.”(103, 띄어쓰기 수정인용 )

 

더러움과 끈적거림 너머로, 깨진 맥주잔과 독설로 지새운 밤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주문에 걸린 몽상가가, 추하고 더러운 길을 쉬지 않고 고통당하며 기어가는 모습이. 공주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오물 웅덩이에, 악취와 쓰레기 가득한 뒷골목에 박혀 있는 그런 꿈들이었다. 내 형편이 그랬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런 식으로 나는, 외로워지도록, 그리고 무정하게 칼을 번쩍거리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잠긴 낙원의 문 하나를 나와 유년 사이로 세우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향수의 눈뜸이었다.”

 

독일어 원문: Über Schmutz und Klebrigkeit, über zerbrochene Biergläser und zynisch durchschwatzte Nächte weg sehe ich mich, einen gebannten Träumer, ruhelos und gepeinigt kriechen, einen häßlichen und unsaubern Weg. Es gibt solche Träume, in denen man, auf dem Weg zur Prinzessin, in Kotlachen, in Hintergassen voll Gestank und Unrat steckenbleibt. So ging es mir. Auf diese wenig feine Art war es mir beschieden, einsam zu werden und zwischen mich und die Kindheit ein verschlossenes Edentor mit erbarmungslos strahlenden Wächtern zu bringen. Es war ein Beginn, ein Erwachen des Heimwehs nach mir selber.

 

ein verschlossenes Edentor mit erbarmungslos strahlenden Wächtern = 무자비하게 칼을 번쩍거리는 문지기들이 지키는 굳게 잠긴 에덴의 문.

 

이 구절의 출전(出典)은 구약성경 <창세기> 3: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문지기들과 번쩍거리는 불 칼(독일어 루터 성경의 해당 구절: “mit dem flammenden, blitzenden Schwert”)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도록 지킨다.

 

결국, mit erbarmungslos strahlenden Wächtern에서 ‘strahlend’는 문지기들이 환히 웃는모습이 아니라 문지기들이 무장한 칼의 번쩍거림.

 

어떤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인용하고, 인유(引喩)할 경우 해당 텍스트를 찾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파악해야만 적절한 번역어를 선택할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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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0(257).

 

그런데 연구자들이 자주 시험해 본 바로는, 이 나방들 중에 암컷이 하나 있으면 밤에 이 암컷에게로 수나방들이 날아오는데, 그것도 여러 시간 떨어진 곳에서 오는 거야, 여러 시간 떨어진 곳에서! [...] 그건 일종의 후각이거나 아니면 그런 무엇일거야. [...] 이 나방들에게서 암컷이 수컷처럼 흔했더라면, 수컷들의 는 그렇게 예민해지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야. 수컷들에게 그런 예민한 가 있는 것은 다만, 스스로를 그렇게 조련시켰기 때문인 거야.”(75, 부분삭제 인용)

 

그런데 연구자들이 자주 시험해 본 바로는, 이 나방들 중에 암컷이 하나 있으면 밤에 이 암컷에게로 수나방들이 날아오는데, 그것도 여러 시간 떨어진 곳에서 오는 거야, 여러 시간 떨어진 곳에서! [...] 그건 일종의 후각이거나 아니면 그런 무엇일거야. [...] 이 나방들에게서 암컷이 수컷처럼 흔했더라면, 수컷들의 후각은 그렇게 예민해지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야. 수컷들에게 그런 예민한 후각 있는 것은 다만, 스스로를 그렇게 조련시켰기 때문인 거야.”

 

독일어 원문: Wenn du nun von diesen Nachtfaltern ein Weibchen hast -- es ist von Naturforschern oft probiert worden -- so kommen in der Nacht zu diesem Weibchen die männlichen Falter geflogen, und zwar stundenweit! Stundenweit, denke dir! [...] Es muß eine Art Geruchssinn oder so etwas sein, [...] Nun sage ich aber: Wären bei diesen Schmetterlingen die Weibchen so häufig wie die Männchen, so hätten sie die feine Nase eben nicht! Sie haben sie bloß, weil sie sich darauf dressiert haben.

 

die feine Nase = 예민한 후각

 

곤충의 경우, Nase가 아니라 후각’.

 

문맥과 상황에 맞게 어휘를 선별해 쓰는 게 번역/편집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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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0(257).

 

마침내 나는 베아트리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뭇잎 몇 개는 완전히 실패하여 버려버렸다. 때때로 거리에서 마주쳤던 그 소녀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잘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소녀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얼굴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환상에 따라, 시작만 해놓고는 붓 가는 대로, 물감과 붓에서 저절로 나오는 선에 따라 그렸다. 거기서 나온 것은 꿈꾸었던 얼굴이었다. 별로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즉시 시도를 계속했다. 새로운 종이 한 장 한 장이 그 무엇인가를 더 분명하게 말했다. 비록 결코 실물에 가깝지는 않아도 그 유형에는 가까워져 갔다.”(109-110)

 

마침내 나는 베아트리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종이 몇 완전히 실패하여 버려버렸다. 때때로 거리에서 마주쳤던 그 소녀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잘되지 않았다. 마침내 나는 소녀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얼굴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환상에 따라, 시작만 해놓고는 붓 가는 대로, 물감과 붓에서 저절로 나오는 선에 따라 그렸다. 거기서 나온 것은 꿈꾸었던 얼굴이었다. 별로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즉시 시도를 계속했다. 새로운 종이 한 장 한 장이 그 무엇인가를 더 분명하게 말했다. 비록 결코 실물에 가깝지는 않아도 그 유형에는 가까워져 갔다.”

 

독일어 원문: Schließlich aber begann ich, Beatrice zu malen.

Einige Blätter mißglückten ganz und wurden weggetan. Je mehr ich mir das Gesicht des Mädchens vorzustellen suchte, das ich je und je auf der Straße antraf, desto weniger wollte es gehen. Schließlich tat ich darauf Verzicht und begann einfach ein Gesicht zu malen, der Phantasie und den Führungen folgend, die sich aus dem Begonnenen, aus Farbe und Pinsel von selber ergaben. Es war ein geträumtes Gesicht, das dabei herauskam, und ich war nicht unzufrieden damit. Doch setzte ich den Versuch sogleich fort, und jedes neue Blatt sprach etwas deutlicher, kam dem Typ näher, wenn auch keineswegs der Wirklichkeit.

 

Einige Blätter mißglücken = 종이 몇 장을 망치다.

 

여기서 Blatt/Blätter나뭇잎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종이’.

 

 

다음을 참고할 것:

 

종이에 문장의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119)

 

Ich ging nun daran, ein neues Blatt zu malen, den Wappenvogel.

 

새의 머리는 내 도화지 위에서 황금빛이었다.(119)

 

der Kopf des Vogels war auf meinem Blatte goldge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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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데미안(세계문학전집 44),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0(257).

 

나의 생각은 온통 이 하루가 준 큰 약속에 쏠려 있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데미안의 어머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그들의 술집을 멀리하고 얼굴에 문신을 새기든, 세계가 썩어 그 몰락을 기다리고 있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오로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운명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향해 오는 것을.”(185)

 

나의 생각은 온통 이 하루가 준 큰 약속에 쏠려 있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데미안의 어머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생들이 그들의 술판을 벌이든 얼굴에 문신을 새기든, 세계가 썩어 그 몰락을 기다리고 있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오로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운명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독일어 원문: Als ich jedoch in meiner entlegenen Wohnung angekommen war und mein Bett suchte, waren alle diese Gedanken verflogen, und mein ganzer Sinn hing wartend an dem großen Versprechen, das mir dieser Tag gegeben hatte. Sobald ich wollte, morgen schon, sollte ich Demians Mutter sehen. Mochten die Studenten ihre Kneipen abhalten und sich die Gesichter tätowieren, mochte die Welt faul sein und auf ihren Untergang warten was ging es mich an! Ich wartete einzig darauf, daß mein Schicksal mir in einem neuen Bilde entgegentrete.

 

ihre Kneipen abhalten = 그들의 술판을 벌이다

 

‘abhalten’이 행사나 회의, 모임 등의 명사와 함께 쓰일 경우, 그 의미는 거행하다’, ‘개최하다’, ‘집행하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문신은 요즘 유행하는 미용 목적의 문신(文身)이 아니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는 칼싸움으로 시비를 가리는 결투가 유행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문신은 결투를 하다, 상대방의 칼날에 의해 얼굴에 난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자국흉터에 가까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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