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마찬가지로 항상 음모를 꾸미며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인간이 성령의 거룩한 능력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마귀는 그의 포로인 인간을 풀어 주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면, 다시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156)

 

마찬가지로 항상 음모를 꾸미며 모든 힘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항하여 싸우는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마귀가 성령의 거룩한 능력에 의해 격퇴되지 않는 한 마귀는 그의 포로인 인간을 풀어 주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면, 다시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독일어 원문: So, wenn wir glauben, daß Satan der Fürst dieser Welt ist, indem er dem Reich Christi mit allen Kräften ständing nachstellt und gegen es kämpft, um die gefangenen Menschen nicht freizulassen, falls er nicht durch die göttliche Kraft des Geistes zurückgedrängt wird, so ist es wiederum offenbar, daß es keinen freien Willen geben kann [...].

 

falls er[=Satan] nicht durch die göttliche Kraft des Geistes zurückgedrängt wird

 

= 만일 사탄이 성령의 신적 능력에 의해 격퇴되지 않는다면

 

문장을 바로잡았다.

 

 

 

다음 번역문을 참고할 것:

 

이렇듯이 만일 사탄이 이 세상의 통치자란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사탄은 그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항하여 영원히 음모를 꾸미고 대적하고 있다. 그리고 사탄이 자신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성령의 거룩한 능력이 강요하기 전까지는 놓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유 선택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다.(451)

 

마르틴 루터, 노예 의지에 관하여, 김주한 옮김,루터와 에라스무스: 자유 의지와 구원(기독교고전총서 16), 두란노아카데미, 2011(2). 145-453.

 

추기: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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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다른 한편, 에라스뮈스는 무엇보다도 윤리적 요구에, 혹은 공관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제자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55)

 

다른 한편, 에라스뮈스는 무엇보다도 공관복음서에서 볼 수 있는 윤리 혹은 제자도의 장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Andererseits muß berücksichtigt werden, daß Erasmus vor allem bemüht ist um die Förderung der Ethik oder der Nachfolge im Sinne der synoptischen Evagelien.

 

um die Förderung der Ethik oder der Nachfolge im Sinne der synoptischen Evagelien

 

= 공관복음적 복음서들의 의미에서 윤리 또는 본받음의 장려에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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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칭찬한 적도 많았고, 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압력이 없었다면 루터와의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149)

 

루터는 에라스뮈스에 대해 칭찬한 적도 많았고, 후에 나온 그의 저술들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잠재해 있던 이견들이 은폐될 수는 없었다. 자발적으로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공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에라스무스의 업적을 루터는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에라스뮈스 자신도 압력이 없었다면 루터와의 논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Mancherlei wohlwollende Bemerkungen, die in den folgenden Jahren auch von Luther gemacht wurden, konnten doch die latenten Differenzen nicht verdecken. Von sich aus hätte Luther Erasmus schwerlich angegriffen; dazu schätzte Luther die Leistungen des Erasmus zu hoch ein. Erasmus seinerseits hätte von sich aus wohl ebenfalls keinen Streit angefangen, er tat es vielmehr nur unter Druck.

 

빠진 부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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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루터는 이미 1516년에 쓴 한 서신에서 에라스뮈스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에라스뮈스는 바울의 자기 의”(自己義) 혹은 행위의인개념을 단순히 의식적(儀式的) 행위로만 해석했다는 것이다.(149)

 

루터는 이미 1516년에 쓴 한 서신에서 에라스뮈스를 비판한 적이 있었다. 에라스뮈스는 바울의 자기 의”(自己義) 혹은 행위의인개념을 단순히 형식적 규정의 준수로만 해석했다는 것이다.

 

독일어 원문: [...] kritisiert, daß Ersmus bei seiner Paulusdeutung unter der Eigen- oder Werkgerechtigkeit lediglich die Beobachtung zeremonieller Vorschriften verstehe [...].

 

daß Ersmus bei seiner Paulusdeutung unter der Eigen- oder Werkgerechtigkeit lediglich die Beobachtung zeremonieller Vorschriften verstehe

 

= 에라스뮈스는 그의 바울 해석에서 자득적 칭의 혹은 행위적 칭의를 단지 형식적 규정의 준수로 이해한다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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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 복 있는 사람, 2019(4).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일어난 아우구스티누스 르네상스는 종교개혁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새로 출간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이 없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148)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일어난 아우구스티누스 르네상스는 새로 출간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이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독일어 원문: [...] die Augustin-Renaissance etwa in Wittenberg ist ohne die Neuausgabe seiner Werke nicht vorstellbar.

 

• 원문에 없는 부분을 삭제하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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