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헤센과 작센의 동맹관계는 1526년 슈파이어 제국회의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양 제국 대표단은 통일된 복장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Verbum Dei Manet In Æternum, 40:8)는 라틴어 성서 구절의 파 글자 ‘VDMIÆ’를 각자의 기장에 새기고 참석했다. 제국회의가 열리는 몇 달 동안 헤센과 작센은 종교개혁을 채택했고, 양 제후국은 이후 30년 동안 확실한 독일 개신교의 정치적 지도부를 형성했다.(329)

 

헤센과 작센의 동맹관계는 1526년 슈파이어 제국회의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양 제국 대표단은 통일된 복장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Verbum Dei Manet In Æternum, 40:8)는 라틴어 성서 구절의 파 글자 ‘VDMIÆ’를 각자의 기장에 새기고 참석했다. 제국회의가 끝난 후 몇 달 동안 헤센과 작센은 종교개혁을 채택했고, 양 제후국은 이후 30년 동안 확실한 독일 개신교의 정치적 지도부를 형성했다.

 

독일어 원문: Auf dem Speyerer Reichstag 1526 trat das hessisch-kursachsische Bündnis erstmals eindrucksvoll in Erscheinung: die beiden Reichstagsdelegationen erschienen in einheitlicher Kleidung, mit dem Abzeichen „VDMIÆ“, einer Abkürzung für den lateinischen Bibelvers „Gottes Wort bleibt in Ewigkeit“ (Verbum Dei Manet In Æternum: Jesaja 40,8), als gemeinsamem Erkennungszeichen. In den auf den Reichstag folgenden Monaten führten Hessen und Kursachsen, beide flächendeckend, die Reformation ein, und die beiden Fürstentümer bildeten in den kommenden drei Jahrzehnten die unbestrittene politische Führungsspitze des deutschen Protestantismus.

 

in den auf den Reichstag folgenden Monaten

 

= 제국회의에 뒤이은 몇 달 동안에

 

참고로, 1526년 슈파니어 제국회의 기간 = 1526. 6. 25. - 8. 27.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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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1552511일 비너는 헤르만슈타트 교구 본당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155226일에는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비너를 감독으로 선출한 교구회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그는 교회의 보이는 머리이며 모임을 소집하고 축성과 안수를 통해 설교자에게 성직을 수여한다.”(251-252)

 

1552511일 비너는 헤르만슈타트 교구 본당 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155226일에는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비너를 감독으로 선출한 교구회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그는 교구회의의 보이는 대표이며 모임을 소집하고 축복 안수를 통해 설교자에게 성직을 수여한다.”

 

독일어 원문: Am 11. Mai 1552 wurde Wiener zum Stadtpfarrer, am 6. Februar 1553 zum Superintendenten (Bischof) gewählt. Die geistliche Synode, die Wiener zum „Superintendenten“ erkor, deklarierte, „dass er ihr sichtbares Haupt sei und die Versammlung berufe und die Ordnung erhalte und die Prediger durch Segen und Handauflegung weihe“.

 

er sei ihr sichtbares Haupt

 

= 그는 그[=교구회의] 보이는 대표라고

 

Segen = 축복

 

용어 선택과 사용에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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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 1547년 초에는 헤르만슈타트에서 협정된 교회법이 라틴어로 공포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회법은 독일어로도 공포되었다. 독일어판 교회법은 혼테루스에게 증정된 것이다.(251)

 

[..] 1547년 초에는 시비우에서 협정된 교회법이 브라쇼브에서 라틴어로 공포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회법은 독일어로도 공포되었다. 독일어판 교회법은 혼테루스의 작품이었다.

 

독일어 원문: Die im Fruhjahr 1547 in Hermannstadt vereinbarte Kirchenordnung wurde zuerst in lateinischer Sprache in Kronstadt publiziert. Kurz darauf erschien dieselbe „Kirchenordnung aller Deutschen in Sybemburgen“, die Honterus zugeschrieben wird.

 

 

Hermannstadt = Sibiu = 시비우

 

= 루마니아 중부의 도시

 

Kronstadt = Braşov = 브라쇼브

 

= 루마니아 중부의 도시

 

die[=Kirchenordnung] Honterus zugeschrieben wird

 

= 교회법은 혼테루스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빠진 지명을 보완하고, 문장을 바로잡았다.

 

 

 

요한네스 혼테루스 동상, 루마니아 바르쇼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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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지벤뷔르겐 전 지역이 루터화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개신교적이 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1546년에 이미 존재했으나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1546년의 교회법은 물론 종교개혁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교리적으로 가톨릭과 종교개혁을 분명하게 분리시키는 데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교회 직무의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251)

 

트란실바니아 전 지역이 루터화되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개신교적이 되었다.” 이러한 마르틴 부처 견해는 1546년에 이미 존재했으나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1547년의 교회법은 물론 종교개혁 쪽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교리적으로 가톨릭과 종교개혁을 분명하게 분리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교회 지도부의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독일어 원문: Schon 1546 wusste Martin Bucer, dass „ganz Sibenburg [] lutherisch [ist], wie mans nendt und evangelisch worden“. Ganz stimmt dies nicht. Während die Kirchenordnung von 1547 zwar reformatorisch orientiert war, war der Konfessionsbildungsprozess noch lange unabgeschlossen, auch die Angelegenheiten der Kirchenleitung.

 

Siebenbürgen = Transylvania = 트란실바니아

 

= 현재, 루마니아의 중부와 서북부 지방

 

빠진 인명을 보완하고, 연도를 바로잡았다.

 

 

 

 

트란실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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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황제의 증여로 독일기사수도회(Ritterorden)에 주어진 구도시와 신도시의 두 거류지는 교회의 현실을 반영했다. 독일기사수도회들은 고딕 양식의 할렌 교회(Hallenkirchen)를 본떠 두 개의 주요 교회(1270년 성 블라시우스, 1317년 성 마리아)를 건축했다.(351)

 

황제의 증여로 독일기사수도회(Ritterorden)에 주어진 구도시와 신도시의 두 거류지(기사수도회의 관구) 교회의 현실을 형성했다. 독일기사수도회 고딕 양식의 할렌키르헤(Hallenkirche) 두 개의 주요 교회(1270년 성 블라시우스, 1317년 성 마리아)를 건축했다.

 

독일어 원문: Geprägt wurde die kirchliche Realität jedoch von den beiden Niederlassungen (Kommenden) des Deutschen Ritterordens durch kaiserliche Schenkungen in der Altstadt und in der Neustadt. Ihnen war auch der Bau der beiden Hauptkirchen als gotische Hallenkirchen (St. Blasius 1270, St. Marien 1317) zu verdanken.

 

Kommende = 기사수도회의 관구

 

Hallenkirche = 할렌키르헤

 

건축전문용어 = 신랑과 측랑의 높이가 똑같이 되어 있는 형식의 성당.

 

내부가 넓어 보여 홀과 같은 인상을 준다. 보통 큰 자형 지붕으로 성당을 덮고 있는 것이 외관상의 특징.

 

단어와 문장을 바로잡았다.

 

 

 

아래 그림을 참고할 것:

 

할렌키르헤 단면도

바실리카 단면도

할렌키르헤 내부

할렌키르헤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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