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 계약의 성취는 죄로 인해 그 동기가 유발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피조물들에 대해 하나님이 본래 가지고 계셨던 선한 의지의 실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계약이 단지(nur) 죄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면, 계약의 죄의 조건 아래 있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죄의 극복 자체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계약이 또한(auch) 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면, 그때 계약계약 당사자의 한쪽 편인 인간을 상실하게 되어 결코 <성취>되지 못할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한 언약의 성취는 죄로 인해 그 동기가 유발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피조물들에 대해 하나님이 본래 가지고 계셨던 선한 의지의 실행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이 단지(nur) 죄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면, 언약의 죄의 조건 아래 있게 되며, 그렇게 된다면 그 언약은 죄의 극복 자체로 말미암아 또한 무효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언약이 또한(auch) 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면, 그때 언약언약 당사자의 한쪽 편인 인간을 상실하게 되어 결코 <성취>되지 못할 것이다.”

 

독일어 원문: 2. Diese Bundeserfüllung in Jesus Christus ist nicht zu verstehen als erst durch die Sünde provoziert, sondern als die Vollstreckung von Gottes ursprünglichem gutem Willen mit seinen Geschöpfen. Wäre sein Bund nur Reaktion auf die Sünde, so stünde er unter der Bedingung der Sünde und würde mit deren Überwindung selbst auch hinfällig. Würde er nicht auch auf die Sünde reagieren, so würde er wegen des Ausfalls des menschlichen Bundespartners nie »erfüllt«.

 

hinfällig = 효력이 없는, 실효(失效)

 

er[=der Bund] ... würde mit A hinfällig

 

= 언약은 A와 더불어 효력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A = mit deren[=der Sünde] Überwindung = 죄가 극복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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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바르트는 창조의 선함은 인간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인간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나아가 육체적-영적 생명체로서 이웃 피조물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유한한 시간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데, 그 시간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피조물은 각각 실존한다.”(102)

 

바르트는 창조의 선함은 인간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인간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나아가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 그리고 육체적-영적 생명체로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유한한 시간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데, 그 시간 안에서 있는 그대로의 피조물은 각각 실존한다.”

 

독일어 원문: [...], die[=Wohltat] nach Barth darin besteht, daß der Mensch nicht allein existiert, sondern wesentlich in Verhältnissen existiert nämlich zugleich im Verhältnis zu Gott, ferner im Verhältnis zum Mitgeschöpf und zu sich selbst als einem leiblichßseelischen Lebewesen und schließlich im Verhältnis zur befristeten Zeit, in der das Geschöpf als solches je existiert.

 

im Verhältnis zum A und zu B als C

 

= AC로서 B의 관계에서

 

A = Mitgeschöpf, B = sich selbst, C = einem leiblichßseelischen Lebewesen

 

• 독일어<Duden>사전을 참고할 것.

 

<Duden>에 따르면, Mitgeschöpf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도 포함된다.

 

Mitgeschöpf = Mensch, auch Tier als Geschöpf, das mit andern in der Gemeinschaft lebt, den Lebensraum mit andern teilt

 

따라서 짐승에 영적seelisch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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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구조들은 인간 존재 그 자체로부터는 인식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말씀 안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참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인간>이신 말씀 안에서 인식될 수 있다. <참인간>이란 바르트의 표현으로는 <현실적 인간>(wirklicher Mensch)이다.”(102쪽, 문장부호 수정인용)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구조들은 인간 존재 그 자체로부터는 인식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 자신의 말씀 안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참하나님>, 동시에 <참인간> 안에서 인식될 수 있다. <참인간>이란 바르트의 표현으로는 <현실적 인간>(wirklicher Mensch)이다.”

 

독일어 원문: Eben deshalb sind die Strukturen des Menschseins nicht aus diesem selbst zu erkennen, sondern im Wort Gottes selbst, konkret in dem, der nicht nur »wahrer Gott«, sondern »wahrer« und d.h. für Barth zugleich wirklicher Menssch ist.

 

in dem [=A] = [=A] 안에서

 

A = der nicht nur »wahrer Gott«, sondern »wahrer« und d.h. für Barth zugleich wirklicher Mensch ist

 

= <참하나님>일뿐만 아니라 <참인간>이자 동시에 <현실적 인간>(바르트의 표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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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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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와 같이 이중적이지만 그러나 하나인 현실성은 역사, 곧 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는 진리다.”(101)

 

“(3) 이와 같이 이중적이지만 그러나 하나인 현실성은 역사, 곧 성서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님이 말씀 가운데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는 진리다.”

 

독일어 원문: 3. Diese doppelseitige, aber eine Wirklichkeit ist die Wahrheit, die uns durch die Geschichte bekannt wird, in der Gott sich uns in seinem Wort gemäß dem Zeugnis der Heiligen Schrift kundtut.

 

in seinem Wort = 자신의 말씀 가운데

 

빠진 부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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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신데, 어떤 한도에서 그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에서는 화해나 구원의 사역에서와는 다른 어떤 것을 행하시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것은 오로지 창조가 계시로부터 이해될 때, 다시 말해 창조가 창조 안에서 실행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부터 이해될 때,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계약은 성서가 증언하는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계약이다.”(100)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역에서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신데, 어떤 한도에서 그 하나님이 창조의 사역에서는 화해나 구원의 사역에서와는 다른 어떤 것을 행하시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이것은 오로지 창조가 계시로부터 이해될 때, 다시 말해 창조가 계시 안에서 실행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으로부터 이해될 때,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언약은 성서가 증언하는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이다.”

 

독일어 원문: [...] Das ist nach Barth nur zu erklären, indem die Schöpfung von der Offenbarung, von dem in ihr vollzogenen Bund zwischen Gott und Mensch in der biblisch bezeugten Geschichte Israels und Jesu Christi her verstanden wird.

 

von dem in ihr[=der Offenbarung] vollzogenen Bund Gott und Mensch in der biblisch bezeugten Geschichte Israels und Jesu Christi

 

Bund = 언약

 

누가복음 22:20대표적인 한 가지 예을 참고할 것:

 

Desgleichen auch den Kelch nach dem Mahl und sprach: Dieser Kelch ist der neue Bund in meinem Blut, das für euch vergossen wird! (Lutherbibel 2017)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개정개역)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에, 잔을 그와 같이 하시고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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