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뢰젤, 구약성경 입문, 김정훈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7).

 

[요엘]

 

성경 구절들(2:17에 있는 42:4, 11이 그러함)이 미래를 지향하며 해석된다는 점도 묵시문학에 잘 어울린다.(156)

 

성경 구절들(2:17에 있는 42:3, 10이 그러함)이 미래를 지향하며 해석된다는 점도 묵시문학에 잘 어울린다.

 

독일어 원문: Zur Apokalyptik passt auch, dass Bibelstellen (so Ps 42,4.11 in 2,17) auf die Zukunft hin ausgelegt werden.

 

성경 구절을 바로잡았다.

 

독일어 성경 시편 42,4.11 = 42:3, 10 한국어 성경 시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구원의 확신성은 항상 하나님의 자비를 순전한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다.

 

파울 알트하우스(2017:314)

 

 

The certainty of salvation still belongs to the humble man who receives God’s mercy as a pure miracle.

 

Die Gewißheit um das Heil behält die Demut, die Gottes Erbarmen als das reine Wunder empfäng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울 알트하우스, 마르틴 루터의 신학, 이형기 옮김,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7(21).

 

만일 은혜가 완전히 보편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보편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해석할 것이다. 그러면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분리될 것이고 부풀어 버린 머리를 얻을 것이다.(314)

 

만일 은혜가 완전히 보편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보편성을 당연한 것으로 여김으로써 해석할 것이다. 그러면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분리될 것이고 오만무도하게 될 것이다.

 

영어 번역문: If grace were completely universal, we would interpret this universality by taking it for granted. Faith would then be separated from the fear of God and get a swelled head.

 

독일어 원문: Wäre die Gnade ganz allgemein, so würden wir Menschen die Allgemeinheit als Selbstverständlichkeit auslegen. Der Glaube würde den Kontrapunkt der Furcht Gottes verlieren und hochfahrend werden.

 

번역을 바로잡았다.

 

get a swelled head = 자만하다

 

hochfahrend = 거만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스발트 바이어,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 옮김, 공감마을, 2023(초판 2).

 

비텐베르크에서 루터와 멜란히톤과 함께 살았던 엘리자베스 크루시거Elisabeth Cruciger(280)

 

비텐베르크에서 루터와 멜란히톤과 함께 살았던 엘리자베트 크루치거Elisabeth Cruciger

 

독일어 원문: die mit Luther und Melanchthon in Wittenberg lebende Elisabeth Cruciger

 

인명을 바로잡았다.

 

아래, 독일어 발음사전을 볼 것:

 

Duden Aussprachewörterbuch, 2005; 302, 2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스발트 바이어,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 옮김, 공감마을, 2023(초판 2).

 

왜냐하면 인간적인 하나님이 자신의 땅에 왔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의 집에서 주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결코 모독이 아니라 가장 영광스러운 해방이기 때문이다.(281)

 

왜냐하면 인간적인 하나님이 자신의 땅에 왔고, 그렇기 때문에 자아가 자신의 집에서 주인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결코 모독이 아니라 가장 영광스러운 해방이기 때문이다.

 

독일어 원문: [...] weil der menschlichen Gott in sein Eigentum gekommen ist und es deshalb keine Kränkung, sondern die herrlichste Befreiung ist, nicht selbst Herr im eigenen Hause sein zu müssen.

 

번역을 바로잡았다.

 

 

271쪽 번역을 볼 것:

 

이러한 설명은 “[자아]는 그 자신의 집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Solche Aufklärung komme »der Behauptung gleich, dass das Ich nicht Herr sei in seinem eigenen Hau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